rewr2021-11-08 16:01:36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
영화 〈행복의 속도〉 리뷰
일본의 국립공원 중 하나인 오제는 네 개 현에 걸쳐 있는 광활한 습원이다. 희귀 동식물이 많아 습지 보호를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에 차량 통행도 불가하다. 산장으로 짐을 운반하는 봇카가 필요한 이유다. 오제에는 여섯 명 안팎의 봇카가 있는데 이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매일 80킬로그램에 가까운 짐을 지고 오제를 가로지른다. 〈행복의 속도〉는 그중 이시타카와 이가라시 두 봇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건 오제의 풍경이다. 영화 중간중간 부감숏으로 나오는 오제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낸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오제를 대하는 인간의 마음도 예쁘다. 드넓은 습원 중 인간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건 통행을 위해 만든 좁은 나무판자길뿐이다. 관광객이 몰릴 때면 판자길 위에서 가만히 기다리며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봇카의 모습은 빠르고, 효율적이며, 편리하지 않은 것도 가치 있는 태도임을 가르쳐 준다.
오제의 모습
이시타카와 이가라시는 각자 다른 태도로 등에 짐을 싣고 오제를 걷는다. 이시타카는 오제 밖에서 할 수 있는 봇카 일을 열심히 찾는다. 봇카 일은 겨울에는 할 수 없기에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 주지 않고, 건강 상태에 따라 당장에라도 일을 그만둬야 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청년봇카대라는 단체를 꾸려 오제에서뿐만 아니라 여행, 등산을 가는 사람들의 짐을 대신 들어 주는 사업을 추진하며 도시로 나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이가라시 역시 이시타카와 같은 고민을 한다. 다만 고민을 해소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 그는 오제의 변화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감각하는 사람이다. 아가라시는 그 무거운 짐을 나르면서도 마음을 끄는 풍경이 있으면 발걸음을 멈춰 이를 카메라에 담는다. 눈이 소복이 쌓인 오제에서도 능숙하게 길을 헤쳐나간다. 헬기가 산장으로 짐을 나르는 모습, 즉 자신들의 일자리가 곧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랜 시간 오제와 조율해 온 호흡을 신뢰하며 묵묵히 제 일을 해낸다. 이가라시에게 오제는 돈을 버는 장소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오제는 몸의 감각을 활짝 개방하여 적극적으로 서로를 주고받는 상호적 삶의 대상이다.
이가라시와 이시타카
이시타카와 아가라시 중 누가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영화도 누가 옳다는 식으로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의 선택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는 ‘취향’, ‘성향’의 차이일 것이다.
나는 이가라시의 방식이 더 좋았다. 아들과 함께 떠난 오제 트레킹에서 아들이 새가 자신을 피하지 않아 놀라자 그는 “오제와 사람은 서로 빼앗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가라시가 불안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흐름과 속도, 태도를 잃지 않을 수 있는 건 자신이 오제로부터 무언가를 빼앗지 않는 한 오제도 자신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가라시
이가라시는 시종일관 부드럽고도 단단한 태도로 그가 오제와 맺어 온 오랜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는데, 이를 보고 있자면 ‘봇카의 노동이 참 고되겠다’는 안타까움이 ‘나에겐 과연 이가라시와 오제처럼 서로를 존중하며 단단히 묶여 있는 무언가가 있는가’라는 부끄러움으로 바뀌게 된다. 나아가 저런 태도야말로 잔뜩 웅크린 채 주변의 모든 것을 나를 위협하는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이 서 있는 장소와 함께 호흡하며 서로를 보듬음으로써 형성하는 신뢰. 어쩌면 봇카는 우리가 상실한 과거, 그리고 언젠가 도래할 미래의 표상일런지도 모른다.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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