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예슬2021-11-18 23:35:37
풋풋하고 싱그러운 남녀의 성장 - <시시콜콜한 이야기>
<시시콜콜한 이야기> 영화 리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로스쿨을 보고 이수경 배우의 연기가 너무 인상 깊어서 필모그래피를 훑던 중 보게 된 단편 영화이다.
로스쿨에서 비춰진 냉정한 모습이 아닌 따뜻하고 호기심 가득한, 그리고 이수경 배우만의 수수한하고 청초한 이미지가 너무나도 신선했고, 특히 엄태구 배우가 눈에 들어왔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이 웃던 배우였나.. 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항상 진지하고 무거운 역할들을 맡아서 그런지 영화를 보면서 생각지도 못한 색다른 재미를 느꼈던 것 같다.
영화 줄거리는 감독 지망생이자 시나리오 작가, 도환(엄태구 배우)과 대학생, 은하(이수경 배우)가 지인 추천으로 사설모임에서 만나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소소한 이야기이다. 특히 둘은 공통으로 좋아하는 '글쓰기'란 소재로 서로에게 더 다가가면서 알아간다. 낯도 많이 가리고 옛 연인을 잊지 못한 채 계속 똑같은 시나리오만 쓰던 도환이었는데, 은하를 만나고 나서 별거 아닌 시시콜콜한 대화들을 이어나가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었던 옛 연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정리할 수 있었고 아예 새로운 테마로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계기가 된다. 은하도 항상 궁금했던 '글쓰기'에 대해서 도환한테 '뭐 써요?, 무슨 내용이에요?' 등과 같은 질문을 통해 더욱더 도환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산책하면서 또는 전화를 하면서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며 누구는 자신의 과거를 흔쾌히 떨쳐내는, 누구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다가오는 상반된 이미지가 연출되어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임팩트가 강했던 것 같다. 32분이라는 짧은 러닝 타임이었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적 배경 덕분에 산뜻하고 시원한 공간적인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서로가 천천히 밀고 당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고 그래서 그런지 여운이 더욱더 남았던 것 같다.
32분이라고 못 느낄 정도로 보는 동안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고 알차고 편안하게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제목 그대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다루면서 한 층 더 발전된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등장인물 모두, 그리고 시청자로서 보는 나 또한, 성장할 수 있는 영화였던 것 같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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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 모음.zip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연일 장마가 계속되며 밖에 나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죠.
그래서 이번에 씨네랩에서는 비가 오는 날 집에서 보기 좋은 영화를 추천 드리려고 합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영화와 함께 집에서 온전히 영화에 빠져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그럼, 지금부터 씨네랩이 추천하는 비 오는 날 보기 좋은 영화 모음집!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٩( ᐛ )و
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 1952
ⓒ IMDB
synopsis
무성 영화에서 유성 영화로 넘어가는 할리우드의 화려한 변신을 주된 내용으로 젊고 발랄한 뮤지컬 스타들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영화.
cine pick!
시대를 경쾌하게 풍자한 뮤지컬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았으며,
미국영화협회가 뽑은 아메리칸 베스트 필름이자 미국자본가협회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수많은 영화에서 패러디 될 정도로
대중들에게 사랑 받는 영화이다.
쉘부르의 우산
The Umbrellas Of Cherbourg, 1964
ⓒ 네이버 영화
synopsis
프랑스 노르망디 해협의 작은 항구도시 쉘부르,
어머니의 우산가게 일을 돕는 ‘쥬느비에브’와 자동차 수리공 ‘기’는 사랑에 빠진다.
팍팍한 현실과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어린 연인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의 군 입대로 둘은 원치 않은 이별을 하게 되는데…cine pick!
프랑스의 대표적인 뮤지컬 영화이자,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한 대단한 작품이다.
자끄 드미만의 동화같은 색감과 미셸 르그랑의 대중적인 음악이 더해져 매력을 증가시켰다.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1994
ⓒ 네이버 영화
synopsis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술집을 찾은 경찰 223.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술집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마약밀매상.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고 있는 경찰 663.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쥔 단골집 점원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
cine pick!
전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중경삼림>은 한국에서도 벌써 3번 재개봉을 했다.
세련되고 감각적인 연출으로 신선한 충격을 준 <중경삼림>은 개봉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이들의 인생 작품으로 꼽힌다.
이프 온리
If Only, 2004
ⓒ 네이버 영화
synopsis
눈앞에서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남자는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연인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기쁨도 잠시,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 없단 것을 깨달은 그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전하기로 마음먹는데…cine pick!
극장 비수기 시즌에 입소문으로 6주 이상 장기 상영을 하며 100만 관객을 돌파한 작품이다.
또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도 다 알고 있는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이라는 곡이 영화의 OST로 나옵니다.
<이프 온리>는 수많은 이들의 인생 영화로 손꼽히기도 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영화이기도 하다.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지상의 세계를 동경하여 지하왕국을 탈출한 공주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 가지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는 동화적 세계와 스페인 내전이라는 정치적인 배경이 혼합된 판타지영화
cine pick!
포스터만 보고 아이들을 위한 판타지 영화인 줄 알고 갔다가, 아이들이 울면서 나온 영화로 유명한 작품이죠.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어린이 보다는 어른이를 위한 공포 판타지 영화이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작품상부터 의상상, 분장상 등 여러 상을 받을 정도로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괴물
The Host, 2006
ⓒ 네이버 영화
synopsis
한강에 갑자기 괴물이 나타나며 사람들을 해치고 현서를 낚아채 한강 속으로 사라진다.
현서를 찾기 위해 현서 가족은 폐쇄된 한강에 침투하는데...
cine pick!
개봉과 동시에 한국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영화로 기록된 <괴물>.
강렬하고 긴장감 넘치는 전개, 시각적 충격과 새로움을 안겨준 괴물의 모습이 더해져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끈 작품이다.
말할 수 없는 비밀
Secret, 2007
ⓒ 네이버 영화
synopsis
예고로 전학 온 첫날, 교정에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린다.
소리에 이끌려 문을 연 음악실. 거기 한 여학생이 있다.
첫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홀연히 사라진다.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그녀. 그녀에게 더 다가가고 싶다.
cine pick!
배우 주걸륜이 각본부터, 감독, 주연까지 맡았으면, 이 작품이 주걸륜 배우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예술 고등학교가 배경인만큼 환상적인 연주로 귀를 즐겁게 한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
Coraline, 2009
ⓒ 네이버 영화
synopsis
부모님이 바빠 이사 후 혼자 집안을 돌아다니던 중 숨겨진 작은 문을 발견한다.
그날 밤 우연히 문을 열어 본 코렐라인은 또 다른 세계로 가게 되는데...
cine pick!
<코렐라인: 비밀의 문>은 세계 최초로 제작한 3D 입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재미있는 스토리와 긴장감 넘치는 전개, 영화의 음산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노래까지!
판의 미로와 같이 어른을 위한 공포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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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노웨어 스페셜 (Nowhere Special,2020)
개봉일 : 2021.12.29. (한국 기준)
감독 : 우베르토 파솔리니
출연 : 제임스 노턴, 다니엘 라몬트, 에일린 오하긴스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
죽음을 가장 가까이 접하는 직업을 가진 ‘존 메이’의 이야기를 다루며 삶과 죽음, 외로움과 보이지 않는 인연에 대해 풀어낸 영화 <스틸 라이프>로 유명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7년 만의 신작(개봉 날짜 기준)이 2021년의 끝, 아주 살포시 국내에 개봉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아빠 존과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의 이야기다. 존은 매일같이 다양한 모양의 창문을 닦으며,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사람들의 수많은 일상을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의 인생의 가장 큰 행복, 아들 마이클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존은 끝없이 사랑하고, 사랑하기에 그만큼 미안한 아들을 바라보며 잠시 시름을 내려놓고 웃기도 하고, 또다시 책임감 한 아름을 짊어지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의 인연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은 한없이 소중하면서도 복잡하고, 아프고,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끊어낼 수는 있지만 끝내 부정할 순 없는 단 하나의 인연이니까. <노웨어 스페셜>은 가장 힘이 될 수도 가장 큰 아픔과 죄책감이 될 수도 있는 이 인연으로 이어진 존과 마이클의 소소한 일상을 담아내며 잔잔한 슬픔과 감동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 존과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아이 마이클. 존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마이클을 보며 여러 고민에 빠진다. 순수한 어린아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또 아이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아이를 위해 어떤 것을 남기고 가야 할지. 아이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 어떤 이들에게 아이를 맡겨야 할지.. 같은 답 없이 무거운 고민들 말이다.
존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 얹어진 짐을 묵묵히 견디며 마이클을 위한 새로운 가족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현실에 놓인 마이클을 보며 항상 미안함을 느낀다. 비싸고 멋진 장난감을 사주지 못하는 집안 형편, 존이 일을 나갈 때면 엄마가 아닌 보모의 손에 맡겨져야 하는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사회통념상 그다지 자랑스러운 아버지는 아닌 것 같다는 죄책감까지. 존은 이제 부족한 아버지의 손을 떠날 마이클을 위해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주고 싶어 한다.
최선을 다하고, 모든 걸 줘도 항상 미안한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뿜어내는 아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소중한 인생의 한순간이 비치고, 그 안에서 죽음이 지나가도 사라지지 않을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주연을 맡은 연기 천재 다니엘과 제임스의 눈빛
<노웨어 스페셜>의 강점은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에도 있지만, 주연을 맡은 두 배우 제임스 노턴과 다니엘 라몬트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4살의 나이로 <노웨어 스페셜>을 통해 데뷔한 다니엘 라몬트와 따뜻하고 깊은 눈빛을 보여준 제임스 노턴 배우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따로 설명해 주지 않아도 온갖 부자 서사가 뚝딱 만들어진다.
특히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사를 읊는 다니엘을 보면 미소가 절로 나며 나의 4살 시절을.. 반성하게 된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그때쯤 나는 엄마한테 “이건 뭐야?” 정도의 질문만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진정한 ‘연기 천재’구나 싶다. 내가 결혼을 일찍 했으면 .. 저만한 아이가 있을 수도 있는.. 나이니까.. 이모를 넘어 사실상 엄마의 눈으로 흐뭇하게 지켜봤던 것 같다. 이 배우가 어떻게 성장할지 정말 정말 기대된다. 만약 <노웨어 스페셜>이 뛰어난 영화가 아니었다고 해도, 다니엘 라몬트를 발굴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말이다.
자연스러운 인생의 한순간
툭, 솔직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인생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영화이자 ‘우리 감정에 솔직하게, 오랜만에 울어보자’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부터 그렇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와 홀로 남겨질 어린아이. 그리고 ‘새 부모를 찾는다’는 포스터에 박힌 절절한 문구와 대놓고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낼 영화라며 경품으로 쓰인 두루마리 휴지까지. 누가 봐도 ‘이 영화는 슬플 것이다,’, ‘눈물 나는 영화다.’라는 느낌이 확 온다.
하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감정 없이 눈물을 쥐어짜는 영화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황을 봐, 슬프지. 울어봐!하는 식으로 절망과 슬픔을 쌓아가는 형식이 아니다. 이야기는 잔잔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간혹 고통을 느끼는 존의 모습이 나오긴 하지만, 존은 묵묵히 평소처럼 일을 하고, 마이클과 시간을 보내고, 함께 책을 읽고 케이크를 만들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공원을 거닌다.
새로운 가족이 되어줄 이들을 만나는 약속을 제외하면, 존과 마이클의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간다. 평온하고 온전하게, 사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말이다. 커다란 흔들림 없이 두 사람의 시간은 쉼 없이 흘러가고, 존과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리고 존은 이 이야기의 끝에서 마이클의 새로운 선택을 접하며 지금껏 알지 못했던 마이클의 마음을 느끼게 된다.
사실 관객들을 울리는데 어린아이와 부모의 눈물만큼 확실한 장치가 없지만 <노웨어 스페셜>은 그런 치트키 같은 장치를 전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죽음’을 마냥 이별, 마지막 같은 슬픈 의미로 풀어내지 않으며 이별보다는 죽음 앞에서도 온전할 사랑에 대해, 앞으로 더 긴 인생을 살아갈 아이의 선택에 집중한다.
나는 <노웨어 스페셜>을 보며 만들어진 관객들의 눈물엔 억지 눈물이 단 한 방울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느낀 <노웨어 스페셜>은 억지가 아닌 진실된 감정이 가득한 영화였으니까.
노웨어 스페셜 시놉시스
서른네 번째 생일을 맞은 창문 청소부 ‘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할 일이 있다. 바로 네 살짜리 아들 ‘마이클’에게 새로운 부모를 찾아주는 것. 세상에 혼자 남을 아이를 위해 ‘존’은 특별한 부모를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창문 너머로 비치는 다양한 인생의 흔적들,
그리고 존의 눈에 들어오는 다른 가족들의 순간들
창문 청소부인 존은 매일같이 여러 손님들의 창문을 닦는다. 화려한 장식품이 가득한 가게, 음식점, 아이를 키우는 잘 사는 가정집의 창문. 크기와 모양새, 달려있는 높이도 모두 다른 창문 너머엔 방주인의 인생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부족함 없이 자란 아이의 놀이방엔 장난감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존이 닦고 있는 가게 유리창 너머엔 비석 모양의 장식품이 가득하고, 그 가게 반대편엔 화목해 보이는 한 가족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존은 자신의 인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마이클은 자신과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이 해주지 못한 것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집의 자식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가끔 마이클이 던지는 “우리 엄마는 어디 있어?”라는 물음이 “나도 엄마가 있어?”라는 의미가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엄마는 어디로 외출했어?” 정도의 질문이길 바랐을 것이다. 조금 더 배워 선망받는 위치에서 일하고, 부유한 환경에서 마이클이 원하는 강아지도 키울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을 것이고, 마이클이 자라 친구들과 운동을 배울 때면 그 옆에서 유니폼을 챙겨들고 응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존의 눈에 비치는 다른 가족들의 모든 순간들이, 특별하고 아리게 다가온다. 평범하고 완전한 가족, 존은 마이클에게 그런 가족이 되어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일
이제야 4살이 된 어린 마이클은 존을 가장 좋아한다. 존의 팔뚝에 있는 타투를 따라 그리고, 함께 생일 케이크를 고르고, 존의 목에 올라타 아이스크림을 먹는 순간을 좋아하고, 장난감이 많은 놀이방이 없어도, 그저 우리가 함께하는 ‘우리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순수한 아이. 그게 마이클이다. 마이클에게 존은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유일한 가족이다.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 하나 없이, 마이클은 그저 존을 사랑한다.
마이클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는 어린아이다. 마이클은 존의 34번째 생일을 축하하며, 당연하게도 초를 1개 더 꽂을 35번째 생일이 돌아올 것이라 생각한다. 존은 마이클에게 죽음을 설명해 주기 위해 함께 동화책을 읽고, 죽은 딱정벌레를 보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죽음은 마냥 슬픈 것이 아닌, 영혼이 육체를 떠난 것뿐이라고, 떠난 것은 사라지지 않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의 주변에 남아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마이클은 조금씩 죽음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마이클뿐만이 아니라 존 또한 죽음에 대한 태도를 조금씩 바꿔간다. 영화의 초반, 존은 새로운 가족 후보들을 만나면서 아이가 아빠를 어떻게 기억했으면 하냐는 질문에 그저 “창문 청소부로요.”라고 답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어린 마이클이 부족했던 가족과 그에 대한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길 바랐지만, 영화의 후반부엔 생각을 바꾸고 마이클을 위한 편지와 자신의 물건 몇 가지, 그리고 떠나버린 아내의 장갑을 남긴다. 나의 죽음이 마이클의 괴로움과 상처가 아닌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길 바라며, 마이클이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면 우리의 아름다운 순간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존은 그렇게 초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멈추지 않고 흐를 마이클의 시간, 그리고 마이클의 선택
함께 카니발에 놀러 간 존과 마이클이 거울의 방을 지나는 장면을 보면, 거울에 비친 마이클이 존보다 더 크게 표현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존이 떠나더라도 마이클의 시간은 계속될 거란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존이 세상을 떠나도 아이의 시간은 계속될 것이고, 언젠간 존보다 더 큰 어른이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기 위해선 우선 어린 시절을 보살펴줄 새로운 가족을 만나야 하는데.. 존은 이 문제에 대해 혼자 무거운 고민을 반복한다. 아이에게 죽음을 설명하는 것조차 버거운 상황에서 홀로 중대한 결정까지 짊어진 존의 마음은 점점 조급해진다. 그러던 중, 존은 문득 ‘내가 이 아이의 결정을 대신해도 되는 걸까?’ 의문을 갖게 된다. 앞으로 새로운 가족과 살아갈 사람은 마이클이고, 마이클도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궁금증을 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인데 말이다.
강아지를 키울 수 있는 마당,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부유한 집안, 장난감 하나쯤은 쉽게 사줄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부모, 사회 통념상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두 부모가 있는 가정. 존은 이러한 조건들에 집중했지만, 마이클은 조금 달랐다. 마이클은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사탕의 수를 세나갔던, 처음으로 “아줌마는 언제 죽어요?”라고 질문했던 집을 선택한다. 그 집은 마당도 없었고, 부유한 집안도 아니었고, 안정적인 커플도 아니었지만,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아이만큼, 새로 올 아이를 사랑해 줄 수 있다’고 말하던 유일한 집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선택하는 기준은 어른의 눈으로 본 가정 환경이나 부유한 경제력도, 커다란 마당도 아닌 새로운 가정에서 살아갈 아이의 마음, 그리고 아이를 향한 어른의 사랑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존은 전혀 부족함 없는 훌륭한 아버지가 아니었을까? 마이클이 아버지와의 시간을 오래도록, 아프지 않게 아름답게 지녀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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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의 몰락으로 세워진 바빌론, 고전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이자 황금기였던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는 시기상 메이저 스튜디오*의 성립과 쇠퇴가 이루어진 1910년대 말에서 1950년대 말 중 무성영화가 사라지는 1920년대 후반을 배경으로 한다. 이 시대에는 감독과 배우들이 스튜디오별로 소속되어 이미지 관리까지 받으며 영화 제작에 참여한다. 타 스튜디오의 영화 제작에 참여하려면 스튜디오 간의 협의가 필요하며 배우를 포함한 제작진들은 스튜디오로부터 스카우트를 받기도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일종의 소속사 개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또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발전하며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서 가장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로 많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저항하기도 하고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큰 격변기를 맞이한 때이다. 이 변화는 특히 배우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데 기존에 화면에서 표정과 몸짓만으로 연기의 찬사를 받던 배우들이 목소리 또한 연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곤혹을 겪은 것이다. 이러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을 유쾌하게 풍자한 영화가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인데 당시 ‘영화로 보는 영화사’로 유명했던 영화인만큼 <바빌론>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 시절(1920~1940년대 말)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주도했던 영화사로 당시 제작, 배급, 상영 기구를 수직 통합한 5대 메이저 스튜디오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MGM, RKO, 20세기 폭스)와 상영기구를 갖지 못한 3대 마이너 스튜디오(유니버셜,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콜롬비아)로 분류
영화는 시기뿐만 아니라 등장인물 또한 실제 인물을 소재로 이용했다. 스타들의 스타인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무성영화의 대스타였으나 유성영화에 적응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스타 존 길버트(John Gilbert, 1897-1936)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결혼을 4번 했던 것부터 자신의 발성에 콤플렉스를 느꼈던 것과 전쟁로맨스 <빅 퍼레이드>(1925)로 초기에 대성공해 관객의 비웃음을 샀던 첫 토키영화는 <위대한 밤(His Glorious Night)>(1929)의 상대역 이름은 ‘캐서린’이라는 점까지 실제 배우의 많은 부분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넬리 라로이는 완벽히 매치되진 않지만 유독 눈물 연기에 능했던 클라라 보우(Clara Bow, 1905-1965)와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는 배경과 자유분방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성적학대를 일삼는 할리우드의 조롱거리 아버지가 기본적인 배경이다. 클라라 보우와 다르게 추가된 설정은 알마 루벤스와 잔는 이글스를 떠올릴 수 있다. 두 배우 모두 1920년대 유명한 배우였지만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넘어가는 시기에 심각한 약물 중독에 빠지게 된다. 지금까지 다른 장편에서 볼 없었던 디에고 칼바의 마누엘 토레스(매니)는 정확히 기존의 인물을 차용했다기보다는 <사랑은 비를 타고>의 등장인물과 맞닿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엔딩 시퀀스에서 주 배경시기였던 30년대를 뛰어 1952년에 할리우드로 돌아와 영화관에 앉아 <사랑을 비를 타고>를 보는 장면에서 앞서 매니가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에게 ‘유성영화, 유성영화’를 외치던 자신의 모습이 고스란히 영화로 재현되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이러한 설정들을 따라 스토리를 보자면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욕망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인기 스타가 되고 싶지만 끼는 있고 지속적인 스타의 자질은 부족한 넬리, 이미 스타가 되어 지속적인 스타의 삶을 원하지만 변화하는 시장에 적응하지 못하는 잭, 영화사 고위 직원이 될 만큼 사업 수완은 좋지만 사랑하는 넬리를 스타로 유지시키려는 매니가 중심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 세 인물들의 두 가지로 공통점이 있다. 애정하는 대상이 있으며 본인 스스로가 장애물이라는 점이다. 세 인물 모두 기본적으로 영화를 애정한다. 또한 앞서 적은 바와 같이 인물이 목표를 이루는 데에 있어 원인이 본인에게 있으며 그 원인은 본능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욕망과 사랑이라는 본능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이에 대해 감독은 ‘배설’을 주요 메타포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시작부터 카메라에 묻혀가며 시점샷으로 코끼리의 변을 보여주며 강조한다. 이어서 나오는 ‘배설’은 파티장에서 영화사 임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맞는 소변, 화장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브래드 피트의 뒤로 칸 안에서 거하게 나오는 방귀 소리, 고위층 파티장에서 넬리의 구토, 멕시코로 도망가는 길에 암살자를 마주한 매니의 소변으로 볼 수 있다. 코끼리의 변과 화장실의 소리가 가장 기본적인 배설욕이라면 파티장의 남성은 성욕으로 볼 수 있으며 넬리의 구토는 자신의 본능과 다르게 가식적인 부유층 앞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야 하는 역겨움과 매니는 두려움에서 오는 본능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 중에서 파티장을 주로 한 오프닝 시퀀스는 30분가량 지속된다. 하필이면 차에 코끼리를 싣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매니는 ‘할리우드’라는 세계에 신분 상승을 위한 노력과 겹쳐진다. 그리고 광란의 파티장 시퀀스가 끝나고 브래드 피트의 ‘마법과 같은 곳이야’라는 대사와 함께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영화 촬영장이 따라 나오며 영화의 타이틀을 중심으로 대칭을 만든다. 첫 번째로 두 장소 모두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있다. 파티장은 키노스코프라는 극 중 영화사의 사장이 주최하는 행사이기에 사실상 키노스코프 스튜디오의 직원들이 모인 곳이다. 연이어 나오는 촬영장은 잭 콘래드가 영화 촬영 중인 장소이기에 또한 영화 제작진들과 배우들이 등장한다. 또한 각각 죽음이 연이어 나오는데 다음날 첫 촬영을 앞두고 약물중독으로 죽음에 가깝게 기절한 미성년자 여자 배우와 카메라 운반을 담당했으나 전쟁씬 촬영 중 사고로 사망한 남자 배우이다. 또한 이들은 각각 넬리와 매니에게 할리우드에 진입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각 인물들의 사건 발단이 되는 동시에 배경 설명을 하기에 과한 시간의 분배처럼 보이지만 ‘바빌론’에 투사하는 당시 할리우드를 설명하기에는 적당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바빌론은 욕망으로 세워졌고 할리우드 또한 욕망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중요한 점은 그 욕망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이끌었으며 개인과 사회에 무엇을 남겼는가이다. 감독의 최근 전작들을 살펴보자면 <위플래쉬>(2015),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 모두 개인의 삶(본능)에 대한 고뇌를 다루었다고 볼 수 있다. <위플래쉬>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견디며 완벽한 드러머가 되기 위한 자신과의 갈등이라면 <라라랜드>에서는 LA에서 피아니스트로 배우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연인의 꿈과 사랑에서의 갈등이며, <퍼스트맨>은 좀 더 지나 첫 우주비행사로서의 도전과 이미 만들어버린 가정에서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바빌론>또한 연장선상에 놓여있지만 개인의 애정과 연관된 본능을 다루며 영화사(史)까지 확장시켜 진행했다는 점에서 관객에게는 더 심층적인 질문을, 영화 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던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세계의 수많은 대도시를 연구한 벤 윌슨은 관능과 혼란스러움이야말로 메트로폴리스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각 인물들은 영화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각자의 본능을 통해 할리우드의 일원이 된다. 영화에 대한 애정들은 영화사의 형태로 남겨졌고 계속 발전하며 변화하는 형태를 요구하는 산업에 적응하지 못한 욕망(본능)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하지만 산업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몰락과 탄생의 반복하며 발전하는 구조다. 즉 더 중요한 일, 큰 일을 하고 싶다고 한 매니와 같은 개인의 욕망들이 이루어져 개인은 몰락했지만 어쨌든 영화사(史)라는 바빌론은 세워졌다. 영화는 매니가 1952년도의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을 보며 지난날을 복기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매니의 삶(고전 할리우드)을 담아내기도 한 동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쇠퇴기(1946~1967년)의 영화기도 하다. 따라서 할리우드 시대의 끝과 함께 영화가 끝나는 셈이다. 따라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바빌론에 비유한 것은 지리적인 의미의 메트로폴리스인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시기적으로 고전 할리우드 영화 시대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바빌론>을 굳이 빗대어 표현하자면 <라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위플래쉬>라고 생각한다. 극 중 잭이 개봉한 자신의 첫 토키영화의 관객 반응을 살피러 가는 상황에서는 크게 잭의 대사가 웃기게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매니가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재연하는 잭의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 당시에는 알 수 없었지만 지나고 나서야 보이는 것처럼 연출된 두 장면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잭이 도태된 이유를 설명해 주면서 잘못된 점을 알아채지 못했던 잭의 입장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고전 할리우드의 역사, 데이미언 셔젤의 연출,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력, 스펙터클,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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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뽑은 올해 탑 10 영화
그렇게 한 해가 갔다. 올 한 해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코로나19라는 환경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낸 감독과 배우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근데 아쉬운 건 우리나라의 개봉 작품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구체적인 근거 있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뭔가 체감상 그런 느낌이다. 내년에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개봉이 연기되거나 촬영이 중단 된 작품들이 많이들 상영되길 바란다. 기준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며, 많은 이들이 이 작품들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10. <세 자매> / 이승원
문소리-김선영 배우가 청룡영화상 주조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난 문소리 배우하면 생각나는 되게 전형적으로 연기하는 이미지가 있다. 똑순인데 씩씩하게 사는 허당 역할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느낌? <메기>와 <하하하> <여배우는 오늘도>같은 작품들이 되게 한 갈래같이 느껴졌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되게 문소리 식 연기를 한 것 같으면서도 속은 곪을대로 곪은 중년 여성의 내면을 완벽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겉으로 드러낼 순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트라우마를 종교로 귀결 낼 수 없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데, 분출하는 분노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괴리를 모두 살리는 괴력을 보여준다.. 이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는 김선영 배우였는데, 엄마 연기 달인 다운 면모가 있다. 딸래미한테도 핍박받고, 남편한테도 쿠사리먹고, 온 세상이 함부러 대하는 소심한 어머니상을 손짓 하나 표정 하나로 구현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자매인 장윤주 배우의 연기나 현봉식 배우의 연기도 다 좋았지만 이 둘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코미디로서, 또 드라마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후반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읭? 스러운 선택지를 고른다는 점이나 전체적인 설정이 좀 과하다는 점은 아쉽긴 한데 보는데 큰 무리는 없을듯. 마음 속의 억눌린 무언가가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왓챠에 있음.
9. <랑종> / 반종 피산다나쿤
개인적으로 <티탄> 만큼이나 문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난 진짜 극장 뛰쳐나오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는데 반해 몇몇 분들은 재미 없었다고 하니 그 선명한 호불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페이크다큐라는 장르적인 허점이나 굳이..? 싶은 부분까지 만든건 몰입을 깨는 요소가 맞다고는 생각하나 님 역 배우의 중후반까지 끌고가는 카리스마나 촬영한 장소, 태국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가 나홍진식 염세주의의 글로벌화(?)를 이끌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간략하게 더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흔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클리셰라고 한다. 그 클리셰라고 하는 게 ‘아 또 이 짓거리 하네 뻔하네 ㅋㅋ’ 싶으면 흥미가 떨어지지만 어떤 영화에서는 그게 좋은 쪽으로 발휘가 되곤 하는데, 난 랑종이 그 예라고 생각한다. 정말 여기까지 갈 것인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며 운명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표현한 호러영화다. 아시아 공포영화 수작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넷플릭스에 있음.
8. <바쿠라우> / 클로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브라질 영화임. 한 정치인이 있다. 이 사람은 시장직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근데 또 이 인물은 반지성주의자라 책도 지식도 전부 부정한다. 이 인물이 한 마을의 지지를 얻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자, 바쿠라우라는 이 가상의 도시에 보복하고자 하는 내용을 플롯으로 담았다. 올 해 개봉했던 <레 미레자블>의 광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내 폭주하다 결국 파국으로 가는 영화였다. 나는 이 <레미레자블> 영화의 에너지가 ‘빨리 달린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바쿠라우>는 살짝 다르다. 광기에 씌인 채로 달린다. 자기 앞을 가로막는게 있으면 그걸 다 부숴가며 달리는 느낌인 것이다. 이렇게 현재 브라질이 처해있는 원주민과 개발자들간의 갈등을 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비틀어 영화화 한 작품이다. 슬래셔 호러나 스릴러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네이버에 있다.
7. <루카> / 에린코 카라로사
난 항상 왕따였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도 내 공감을 오롯이 받지 못했기도 하고. 부족한 사회성 탓에 난 항상 모난 돌이었어서 세상에게 딱 미움 받기 좋은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물론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해서 미움을 당연히 받아서는 안되는게 맞고, 왕따의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모든 축복을 비는 건 여전하지만 난 아픔에서 나아가기 보다 내가 세상을 먼저 따돌리던 쪽에 가깝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도 외로워서 그랬던 거지. 이런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그 누구에게 든든한 어깨가 될 수도 있고 푸근한 품이 될수도 있다. 이 <루카>는 든든한 품같은 이야기다. 꿈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 사이에서 세상에게 손가락질 받더라도 따뜻하게 품는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디즈니플러스에 있음.
6.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존 왓츠
블랙 위도우 - 샹치 - 이터널스로 올해 좀 심심했던 마블이 힘 좀 준 작품이다. 12월 15일 개봉 이후 스포가 사골국같이 우려졌을 것 같아 굳이 더 이야기를 쓰진 않아도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톰과 파이기가 아카데미 의식을 하지 않아도 MCU가 극장에서 준 전율과 감동을 믿는다. 그건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그에 걸맞는 훌륭한 3부작 마무리다. 현재 상영관에 걸려있다.
5.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 도이 노부히로
사람은 누구와 사랑에 빠질수도 있고 또 헤어질수도 있다. 그건 당연한 것. 근데 그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게
있는거 같다.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사람이라면 겪을 성장통과도 같은 뭐 그런 것이다. 이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또 겪을 수 밖에 없는 감정과 과정을 그린다. 누구 하나 잘못한 것 없이 사랑에 빠져 아름답게 불태운 지나간 시간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는 영화인 셈이다. 보내기 싫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품에서 떠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그게 누군가의 심각하게 상처를 준 일(데이트폭행, 바람 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별이었다면 가끔은 그들에게 고마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향기롭게 시드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박평식 평론가의 평가가 생각나네. 올 해 나온 로맨스코미디 영화중 단연 최고다. 네이버에 있음.
4. <노매드랜드> / 클로이 자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영화는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거 같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라던가, 예전에 썸타던 여자가 1년만에 유학 돌아와서 사귄다는가 하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별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지 않나. 몇몇의 바람과는 반대로 이별과 재회는 항상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이 <노매드랜드>는 이 이별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플롯이 영화같지 않은 하루로 가득찼다. 근데 영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을 이야기한다. 이별, 참 어렵다. 보낸다는 건 그 사람과 행복했던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근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야 말로 진짜 이별의 가치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보내지 않았기에 사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영원한 안녕이란 없으니까. 네이버에 있다.
3. <당신얼굴 앞에서> / 홍상수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홍상수는 영화에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같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비꼬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그 사건 이후 홍상수는 자기의 심리상태를 은연중에 투영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혼자’라는 제목을 통해 모든게 끝나고 나서의 자기와 김민희 배우의 모습을, <강변호텔>은 삶의 동기부여가 사라진 인물의 욕망 발현을, <풀잎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소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세 작품 다 ‘한 사건이 있고 나서 느낄 수 있거나 경험하고 있는 순간’ 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시간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이 <당신얼굴 앞에서>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혐오가 아닌 순수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그런 시도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이제 홍상수는 더이상 무언가가 끝나고 난 다음이 아니라 얼굴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간의 찌질함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적으로 보이는 상황에게 신뢰를 주려고 하는게 아닐까. 묘한 위로감에 감사했던 영화다. 네이버에 있다.
2. 소울 / 피트 닥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사실 세상에게 할 말이 없다. 내 동기부여의 본질을 깨달았거든. '정공'이라 사람들을 욕하는 미친 세상에서 군 문제도 공익으로 빼고 1인분 하는 것도, 토익 900점도, 수많은 경험치와 내 능력도 다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것도 몰라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멀어지는게 두려운게 요즘의 나다. 그 덕에 나한테 일어난 일도 아닌데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무례한 어떤 이를 미워하다가 오바하는게 맞는거 같아 실제로 표현하기엔 소심해지고, 어려운 현실에서 잘 개척해냈다는 확신은 있지만 왠지 인스타 좋아요 개수부터 사람들에게 비호감만 사는 것 같다는 느낌에 헤어나오질 못했던 것 같다. 소울은 이런 회의감에 대한 영화다. 과연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얻었다고 했을 때, 미래가 달라질까? 내가 친구가 많아진다고 또 돈이 많아진다고 행복해질까? 아닐수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그 다음의 순간이다. 정말 삶에서 중요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작은 순간들이 아닐 지. 삶의 동기부여를 잃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보다 색다른 접근법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디즈니 플러스에 있음.
1.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이해. 난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일까? 확신 할 수 없다. 나는 사실 이제서야 내가 원하는지 깨달은 사람인 듯 하다. 그리고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공허함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다는걸. 난 이제까지 헛걸음을 했다는 걸. 그리고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 늘 외롭고. 뭘 원하든 그걸 가져다주지 않고. 또 이게 당연한 사실인데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 또 방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 인간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고 본질적인 무언가를 꺼냄으로서 치유받는 것이 아닐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3시간동안의 운전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서 들었던 애매묘호한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올해의 영화.
번외
<해피 투게더> / 왕가위
코시국으로 인해 극장가 재개봉 메타가 불었고, 왕가위 특별전이 열리면서 다시 상영관에 걸린 작품. 헤어짐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과연 중요한게 무엇일까? 새로운 걸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들만 찾아 다른 길을 떠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 해에는 온 몸을 부딫히며 사랑해야지. 어떤 순간이든 행복한 채로 기억에 남을 수 있게끔. 올해 재개봉 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았으며 내 인생영화이기도 하다.
올해의 배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올해 4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게 사람이냐 소냐? <파워 오브 도그>로 아마 아카데미에 한발 더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올해의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스파이의 아내>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의 각본을 담당함. 대체 뭘 먹고 살아야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 것일까? 단 3편만으로도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츠, 아니 '하마구치 류스케'가 유력하니 그 클래스가 어마어마하다. 시간 나는 분들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정주행 해도 꽤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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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처럼 펼쳐지는 자백, 끊임없이 수렁에 빠진 진실.
리메이크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에 원작을 먼저 만나보고 영화 '자백'을 관람하기로 했다. 리메이크 특성상 기존 원작을 따라가려는 모습을 보이는 영화가 굉장히 많아서 기대감을 한껏 낮추고 갔다. 막상 영화를 보니 흐름의 묵직함이 몰입감을 더하고 연극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책을 보는 것처럼 페이지가 굉장히 빠르게 넘어간다. 낯선 지역의 모습이 아닌 현실에 있을 법한 모습이 영화에 담기고 원작을 해치지 않으며 자신이 그리고 싶은 이야기를 잘 풀어낸 영화 '자백'을 소개한다.
불륜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아 호텔로 향한 유민호는 그곳에서 습격을 당한다. 깨어나 보니 함께 있던 김세희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고 범인은 사라진 상태였다. 유일하게 남아있던 그는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고 그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변호사를 만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실을 말하는 듯 하지만 빈틈은 또다시 떠오르는 진실로 인해 끊임없이 벌어지며 두 개의 사건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 드러난다. 그와 연결된 그날의 진실은 함정일까 누명일까. '고통 없는 구원은 없다'라는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작용처럼 느껴진다. 결백을 주장하기 위한 일련의 고통인걸까 라는 물음을 뒤로한 채, 익숙한 장면에 반전을 주고 그 반전에 싸늘함까지 더해져 이야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영화의 분위기가 연기처럼 흩어지다가 어떤 형태로 머무른다. 그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 알듯 말듯 좁혀지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자백이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는 것일지 거짓을 숨기기 위한 거짓일지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메이크 영화를 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원작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다. 원작 '인비저블 게스트'는 이야기의 흐름과 선에 주목했다면 영화 '자백'은 감정에 주목한다. 따라서 원작을 감상하고 보아도 다른 느낌을 주기에 상당한 몰입감을 쥐어준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겠다는 진지한 고민과 생각이 곳곳에 담겨 디테일을 살리고 원작과는 다른 부분들을 살려 몰입감을 더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이야기를 통해 살아 숨 쉬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 감정이 너무 솟구친 탓에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중반부부터 흐트러지는 이야기에 몰입감이 깨진다. 연극 같은 영화의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 빈틈을 채우면서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느낌이 유독 찝찝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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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에 찾아온 낭만
현실에 찾아온 낭만
영화 <어느 멋진 아침> 리뷰
감독] 미아 한센 로브
출연] 레아 세두, 파스칼 그레고리, 멜빌 푸포, 니콜 가르시아, 카밀 르방 마르탱
시놉시스] 여덟 살 난 딸,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파리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산드라는 어느 날 오랜 친구 클레망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서 삶은 계속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찬란하게 찾아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영화 어느 멋진 아침에서 주인공 산드라의 직업이 산드라의 고단한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산드라의 직업은 통역가다. 불어를 말하면 영어로, 영어를 말한면 불어로 양쪽이 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창구를 열어주는 존재다. 현실 속에서도 산드라는 가족 사이에서 소통의 창구를 맡고 있다. 이혼한 엄마와 아버지 사이에서, 그리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아버지와 학교를 다니는 딸 사이에서, 동생과 어머니 사이에서, 그리고 아버지와 그의 제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산드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는 다른 존재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서로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녀의 인생을 대변하듯 그녀의 직업도 통역가로 설정된 것이 인상 깊었다. 통역가 역시 자신의 의견이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산드라는 본인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 혹은 대상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 우연히 클레망이 다가오게 되고 클레망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랑의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클레망과의 첫 만남에서 자신의 인생에 자신의 감정보다 가족과의 관계에 더 중심을 두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로 인해 클레망과 더욱 가까워지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낭만과 함께 맞는 어느 아침영화 어느 멋진 아침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 산드라의 의상이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산드라는 항상 청바지에 티를 입고 생활한다. 일적으로 중요할 때 정장을 입는 것을 빼고는 언제나 바지에 면티를 기본적으로 입고 있는데, 그런 그녀에게 클레망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옷차림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를 만나러 갈 때는 원색의 원피스나 치마를 입으며 현실과 다른 낭만을 즐기고 있음을 의상을 통해서 잘 보여준다. 여성으로서 클레망에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산드라의 본능적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 영화 속에서 이를 완벽하게 구분함으로써 산드라의 고단한 현실과 클레망을 통해 만난 아름다운 낭만이 더욱 대치될 수 있도록 부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 둘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정리가 끝난 클레망은 다시 갑작스럽게 산드라를 찾아온다. 그렇게 산드라는 현실 속에서 클레망을 다시 만나게 되고, 이 때 거의 처음으로 클레망을 현실 속의 산드라 모습 그 자체로 만나러 가지 않았나 싶다. 평소의 청바지를 입고 클레망을 만난 산드라는 그렇게 현실 속에서 클레망을 만나면서 낭만과 현실이 조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산드라는 자신의 딸과 사랑하는 클레망과 함께 아침을 맞이하며 영화는 마무리된다. 현실과 낭만이 지속적으로 부딪히다가 그 낭만이 현실이 되어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는 이 영화의 결말 덕분에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어느 멋진 아침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현실과 낭만이라는 이원적인 관계를 통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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