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지2024-09-19 12:16:20
취약함은 연대한다 ‘디피컬트’
영화 <디피컬트> 리뷰
블랙 프라이데이, 환경 단체가 대형 쇼핑몰을 점거하며 외친다. “1도, 2도, 3도, 오르는 기후. 소비는 반인륜적 범죄” 싼값에 물건을 사고 싶은 사람들과 소비를 막으려는 사람들은 과격하게 대치한다. 격렬한 시위 장면으로 시작하는 <디피컬트>는 기후 위기와 환경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러나 원제 ‘A difficult year’가 암시하듯 이 영화는 삶의 힘듦과 우울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환경 운동가 캑터스는 기후 우울증으로 무력감을 느낀다. 브루노와 알베르는 대출을 반복하다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 거주지도 불분명한 신세가 됐다. 브루노는 우울증으로 자살 시도까지 했고, 알베르는 공항 저임금 노동자로 일하며 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한 물건을 되팔아 근근이 돈을 마련한다. 환경 운동가와 리셀러, 전혀 다른 세계를 사는 세 사람이 환경 운동으로 엮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재미있는 것은 환경 운동과 가난이 맞닿는 지점들이다. 알베르와 브루노는 공짜 맥주와 음식에 혹해서 환경 단체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이들은 기후 위기에 코웃음 치지만, 자선 바자회가 물건을 빼돌려 되팔 수 있는 기회라는 걸 알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환경 운동에 가담한다. 환경 운동에서 떨어지는 콩고물과 캑터스에 대한 알베르의 호감, 시위 현장이 주는 묘한 흥분 등은 이들로 하여금 환경 운동에 가담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유가 된다.
빈곤과 환경 운동은 또한 같은 해법을 제시한다. 캑터스는 최소한의 소비를 실천한다. 하나의 물건을 들일 때는 하나의 물건을 버리는 식으로 자신의 한계를 유지한다. 알베르와 브루노에게 도움을 주는 경제 전문가는 물건을 사기 전에 세 번 생각해 보라고 강조한다. ‘꼭 필요한가? 정말 필요한가? 지금 당장 필요한가?’ 최소한의 소비는 환경 문제와 재정적 문제에 봉착한 개인들의 실천이자 투쟁이다.
이는 기후 위기와 빈곤이 끊임없이 달리는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브루노가 자본의 중심지인 프랑스 은행을 점거하자고 설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은행이 화석 연료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기후 재난을 가속화한다는 명목을 내세우지만, 사실 그는 채무 변제 서류에 접근하려는 속내를 갖고 있다.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환경 운동과 연결되는 의외의 상황들은 삶의 취약함이 여러 지점에서 우연히 연결됨을 보여준다. 우리의 우울이 결코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때 취약함은 연대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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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긴 춤을, 그리고 뒷모습을 기억합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애프터썬>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나는 캠코더로 우리 가족의 영상을 남기는 것을 좋아한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순간인 것을 알기에 일상 속 가족의 모습을 자주 기록하곤 한다.
처음 기록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이 영상을 다시 찾아보는 매 순간은 아마 행복할 것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캠코더 속 영상을 찾아볼 때 드는 생각은 내 예상과는 달랐다.
막 지난 추억을 되짚어보며 행복하다기 보다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 씁쓸함이 가득했고,
그 순간에는 몰랐었던 영상 속 인물의 세세한 표정, 감정들이 더 눈에 띄었고,
왠지 모르게 굳게 마음을 먹지 않으면 다시 꺼내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릿한 느낌이 들었다.
<애프터썬>은 이렇게 성인이 된 '소피(프랭키 코리오)'가 어린 시절 아빠와의 튀르키예 여행이 담긴 캠코더를 다시 꺼내보며 지난 추억을 회상해보는 영화다.
당시 어린 소피는 마냥 행복한 감정이 앞섰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소피는 그 캠코더를 보며 다른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 아빠랑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게 좋아.
비록 같은 장소에 함께 있진 않더라도
같은 태양 아래 있으니까 같이 있는 거나 다름 없잖아?
20여 년 전, 소피는 어느 여름날 아빠 캘럼(폴 메스칼)과 함께 튀르키예 여행을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빠는 소피를 찍고, 또 소피는 아빠를 찍고, 그렇게 서로를 캠코더 속에 남기곤 한다.
소피는 아빠에게 서로 다른 장소에 있어도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좋다는 말을 건넨다.
이 말을 들은 그 순간 아빠의 표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미묘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상대방(가족이든, 친구이든, 그 누구든)이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말을 들었을 때의 멍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많이 유약하고 서툰 인물이었던 캘럼은 이 순간 소피의 말에 큰 위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여러 시점의 장면들이 번갈아가면서 나온다.
20여 년 전의 튀르키예 여행 모습, 여행 당시 남겼던 캠코더 속 영상, 어른이 된 소피의 모습, 그리고 아빠가 클럽에서 춤을 추는 모습.
아빠는 긴 춤을 춘다.
추고, 추고, 또 춘다.
숨이 벅찰 것 같이 오랜 시간 동안 긴 춤을 춘다.
소피의 아빠 캘럼은 간단히 말해 성장통을 겪고 있는 사람 같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아빠'가 되었고, 딸 소피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한편으론 유약한 생각이 자꾸 들곤 한다.
캘럼이란 사람은 서툴고 불안한 감정이 자꾸 앞서는 사람이다.
하지만 소피에게는 무한한 사랑을 주는 사람이다. 소피의 앞에서는 티내지 않으며 그녀를 보듬어주고 보호해준다.
그래서 캘럼은 소피를 재운 뒤 홀로 밤바다에 잠시 뛰어들기도 하고, 소피 몰래 온몸이 떨릴 정도로 매우 서럽게 울기도 한다.
이런 슬프고 복잡한 감정을 해소하듯이 아빠는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긴 춤을 춘다.
이 장면은 최근 내가 본 영화 중에서 최고로 꼽는 장면이다.
깜빡거리면서 나오는 캘럼의 춤 장면은 내가 상영관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내 눈앞에 잔상같이 아른거렸고,
집에 가는 내내 생각났으며,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누군가 영사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계속 반복재생된다.
- 아빠한텐 뭐든지 다 말해도 되는 거 알지?
나도 다 해 본 거니까 뭐든 얘기해도 괜찮아.
-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아빠는 자신의 고민을 뒤로 한 뒤 소피에게 계속해서 딸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상기시켜준다.
이런 사랑은 20여 년이 지난 현재, 캠코더 너머에 있는 어른이 된 소피에게도 전해진다.
소피 역시 자신 나름대로의 고민이 있다.
어린 나이에서 비롯되는 고민인데, 소피 역시 이 고민을 잠시 뒤로 한 뒤 아빠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곤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의 생일날 생일축하를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적이 있다며 덤덤하게 말하는 아빠를 기억한 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아빠에게 매우 크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내 딸.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완전히 덮을만큼 환하게 웃어주는 내 딸.
이 순간 캘럼은 얼마나 행복했으며, 또 동시에 얼마나 슬펐을까.
-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건 사랑이니까.
캘럼의 클럽씬에서 Blur의 Tender라는 노래가 길게 나온다.
사랑으로부터 구원받는 순간을 기다리는 아빠의 심정을 대변하듯이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며, 이 사랑이 밀려올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노래가사가 나온다.
그리고 마침내 긴 춤을 추는 아빠를 구원하듯이 어른이 된 소피가 나타나 아빠를 안아준다.
캠코더를 통해 지난 시절의 사랑을, 그리고 숨겨져 있던 불안과 우울을 발견한 소피가 어린 시절의 아빠를 이해한다는듯이 꼭 안아준다.
- 소피 정말 사랑해.
그건 절대 잊지 마.
아빠가.
우리 부모님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무한한 사랑을 주면서도 유약한 생각이 자꾸 들곤 했을까.
자식에게 사랑을 주고, 자식에게 사랑을 받으면서도 자꾸 서툴고 불안한 생각이 들곤 했을까.
자식은 어렵다.
부모의 사랑은 어렵다.
소피와 함께 웃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소피가 잠이 들면 몰래 펑펑 우는 아빠처럼,
긴 여행을 끝내고 딸을 먼저 보낸 뒤 캠코더를 끄고 다시 긴 춤을 추러 가는 아빠처럼,
삶과 가족은 이렇게 복잡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런 얘기를 해 준다.
사랑은 우리 모두의 몫이며,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에 대한 위안이 생긴다는 것.
긴 여운과 울림을 주는 영화 <애프터썬>은 2월 1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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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매튜 본의 불완전한 자기 복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보어 전쟁 도중 아내를 잃은 '올랜도 옥스퍼드 공작(랄프 파인즈)'는 아들을 보호해달라는 아내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가급적 '콘래드(리스 딕킨슨)'를 위험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도 전 유럽을 덮친 1차 세계 대전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모든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 올랜도는 군에 자진 입대하려는 콘래드와 갈등을 빚지만 끝내 아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고, 그렇게 콘래드는 전쟁터로 향한다. 이에 옥스퍼드 공작은 아들을 지키고, 더 나아가 무의미한 희생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믿음직한 유모 '폴리(제마 아터턴)'와 집사 '숄라(자이먼 운수)'와 함께 자체 비밀 정보기관을 운영하며 러시아 황실을 조종하는 '라스푸틴(리스 이반스)'처럼 전쟁을 장기화하려는 흑막들을 처단할 불가피한 임무에 나선다.
<킹스맨>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이자 킹스맨의 기원을 다루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여러모로 기존 시리즈와 결이 다르다. 프리퀄 작품이니 만큼 시리즈의 두 주역 에그시와 해리가 모두 등장하지 않으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20세기 초가 배경이라서 기상천외한 신무기도 없다. 전반적인 분위기도 간단명료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잔혹한 액션마저 즐길 수 있게 만들 정도로 유쾌한 활극에 가까웠던 지난 시리즈와는 사뭇 대비를 이룬다. 몇몇 포인트를 제외하면 웃음을 유도하거나 B급 감성이 느껴지는 장면이 많지 않으며, 전쟁영화 혹은 정치극처럼 느껴질 만큼 시종일관 진중하다.
대신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매튜 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수작,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와 많은 부분 닮았다. 단순히 특정 시리즈의 프리퀄 작품이라는 포지션만 같은 것이 아니다.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스케일이 더 크다는 점만 제외하면 영화의 콘셉트부터 핵심적인 갈등 구도와 주제에 이르기까지 판박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우선 두 작품은 모두 대체역사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퍼스트 클래스>가 쿠바 미사일 위기에 엑스맨이 개입했다는 상상력에 기반한다면, <퍼스트 에이전트>는 1차 세계 대전의 발발과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건마다 킹스맨이 개입해 있다는 설정을 보여준다.
각 영화의 두 주인공이 폭력에 대한 대조적인 견해 차이로 인해 대립한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퍼스트 클래스>에서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는 뮤턴트라는 소수자가 생존하기 위해 폭력적인 수단도 활용하는 것이 옳은지를 놓고 논쟁을 펼치며, 이는 마치 마틴 루터 킹과 말콤 X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퍼스트 에이전트>에서는 아버지인 올랜도 옥스퍼드 공작과 아들인 콘래드가 갈등을 빚는다. 보어전쟁에 참전했던 경험으로 인해 모든 폭력과 전쟁을 혐오하게 된 평화주의자 아버지와 귀족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직위인 공작 가문의 후계자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기 위해 자진 입대하려는 아들의 충돌이 극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다. 단지 이 대립 구도가 유지된 결과 엑스맨이 창설된 것과 달리, 갈등의 종식으로 말미암아 킹스맨이 조직된 것만이 두 영화의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두 영화 간의 유사점이 필연적으로 비교를 낳고, 그 결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완성도가 저해된다는 데 있다. 우선 한 가지 사건에 집중하고 미국과 소련의 충돌이라는 명료한 세계사적 배경을 제시해 갈등 구도를 단순화하고 극의 밀도를 높일 수 있었던 <퍼스트 클래스>와 달리, <퍼스트 에이전트>는 수년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등장인물과 갈등 구도가 모두 많고 복잡해지면서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옥스퍼드 공작 부자의 갈등이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참전국인 영국, 독일, 러시아 각국의 정치 상황과 세 나라의 군주이자 사촌관계인 조지 6세, 빌헬름 2세, 니콜라이 2세의 관계성이 또 다른 갈등구도를 이룬다. 이에 더해 세 군주를 조종하려는 흑막의 이야기도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하며, 뒤늦게 참전하는 미국의 윌슨 대통령 이야기까지 묘사해야 하다 보니 영화가 좀처럼 균형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균형의 붕괴는 영화가 실존 인물들을 활용하는 방식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러시아 제국의 비선 실세였던 라스푸틴이나 실제 능력과는 별개로 미녀 스파이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마타 하리를 그저 한 차례의 액션신을 보여주기 위한 엑스트라로 소비하는 것은 영화 한 편에 담기 어려운 분량의 한계를 여실히 내보인다. 또한 사라예보 사건부터 참호전과 러시아 혁명, 치머만 전보 사건에 이르기까지 워낙 방대한 사건들을 2시간 안에 녹여내야 하다 보니 당시 국제 관계와 개별 사건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영화에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남아프리카에서 펼쳐진 보어 전쟁도 오프닝부터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진입장벽이 결코 낮지 않다.
한편 옥스퍼드 공작 부자의 갈등 구도는 공감을 살만한 힘이 부족하며, 특히 이야기적 측면에서 <킹스맨> 시리즈를 <킹스맨>답게 만드는 독특한 매력을 놓치는 듯 보인다. 실제로 옥스퍼드 공작과 콘래드의 갈등은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대립에 비해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소수자로서 생존을 위해 폭력적으로 저항할지 말 지를 둔 갈등 구조가 직설적으로 자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반면, 평화와 반전의 가치가 참전이라는 귀족의 의무와 충돌하는 것은 그만큼의 강렬함이나 절박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연출적 측면에서 기인한 문제이기도 하다. 작중 옥스퍼드 공작이 완고한 평화주의자가 된 이유는 그의 보어 전쟁 참전 당시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영화에서 짧은 회상신을 제외하면 해당 경험에 대한 설명과 묘사가 충분치 않으므로 옥스퍼드 공작의 신념이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부자간의 갈등도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또한 옥스퍼드 부자가 어디까지나 영국의 최상위 귀족이자 젠틀맨이라는 점은 영국적인 매력을 더함으로써 <킹스맨> 시리즈의 영국적인 매력을 감소시키는 아이러니함을 낳는다. 흔히 <킹스맨> 시리즈의 영국적 특징이라면 킹스맨의 어원, 아서 왕 전설에서 차용한 코드 네임, 007을 의식한 설정과 대사들, 무기로 활용되는 양복, 구두, 우산 같은 외적 특징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킹스맨>의 영국적 특성은 하층 계급이었던 에그시가 해리를 만나 귀족과 젠틀맨들의 세계에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내는 그 과정 자체에 담겨 있기도 하다. 에그시가 보여준 판타지는 아직도 왕실, 귀족과 평민 같은 계급 차이가 명백한 영국이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관객 한 명 한 명이 에그시가 되어 신분상승의 로망을 영국적인 방식으로 충족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킹스맨> 시리즈의 주요한 매력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옥스퍼드 부자가 누구보다도 영국적인 캐릭터지만 해리와 에그시의 관계처럼 로망과 판타지까지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인물은 아니기에 그들의 서사는 상대적으로 흡입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이는 <킹스맨>이 <킹스맨>답지 못한 문제를 유발한다. 그 결과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매튜 본 감독의 작품으로서는 <퍼스트 클래스>의 하위 호환 격이라는 인상을 남김과 동시에 킹스맨 시리즈로서의 정체성도 명확히 챙기지 못한다.
물론 매튜 본 감독 특유의 감각이나 <킹스맨> 시리즈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목들 덕분에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는 킬링 영화로서 최소한의 본분은 다해낸다. 예를 들어 라스푸틴과의 결투씬이나 절벽 엘리베이터 시퀀스는 역동적이고 시원하지만 동시에 잔혹한 매튜 본 특유의 액션 연출과 B급 감성이 빛을 발한다. 또한 독일군과 영국군 참호 사이에서 펼쳐지는 콘래드 전투와 결투 장면은 비교적 담백하게 묘사되어 가장 현실적으로 보이며,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정치와 무관하게 선제적으로 행동한다는 킹스맨의 창립 이념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전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적인 재치로 메우기에는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의 구멍은 예상보다 너무나도 컸고, 시리즈와 매튜 본의 이름값을 고려할 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P(Poor 형편없는)
잘못된 방향으로의 자기 복제가 낳은, 시리즈와 감독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는 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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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신의 리더십 그리고 거북선, 왜군을 박살 내다
좋은 리더는 좋은 팀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팀은 회사나 국가를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런데 좋은 리더라고 하면 여러 가지 인물상이 떠오른다. 조금은 과격하지만 결과를 이뤄내는 타입이 있는가 하면, 조용하지만 차분하게 천천히 일을 진척시키는 경우도 있다. 모든 리더가 좋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는 것처럼 좋은 리더가 되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 말은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현대로 치자면 회사에서는 팀장이나 사장일 것이고, 국가로 치자면 각 장관이나 대통령이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리더 일 것이다.
좋은 리더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역사적 인물들은 좋은 리더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그리고 세종대왕 같은 인물을 우리는 좋은 리더로 꼽는다. 한국의 역사 속 인물 중 가장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임진왜란의 한가운데에서 조선의 적은 배와 무기로 수많은 왜군을 여러 번 물리친 그는 그야말로 한국의 영웅이라고 부를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한산대첩, 명량대첩 그리고 노량해전까지 여러 번의 해상 전투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얻어낸 그가 가진 리더십은 꽤나 대단했음에 틀림없다.
한국 최고 흥행 영화의 후속 편 <한산:용의 출현>
2014년에 개봉했던 <명량>은 본격적으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영화였다. 배우 최민식의 얼굴로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인물이 가진 고뇌를 담았다. 두려움에 갇혀있는 병사들을 꺼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었던 선택들이 영화 속에 담겼고, 무엇보다 그가 사용했던 해상 전의 전략과 거북선은 스펙터클하게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클라이맥스에 신파가 너무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1.7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 영웅 이순신과 거북선을 눈으로 확인했다. 그 흥행 기록 자체가 이순신이라는 영웅이 한국 사람들에게 단순한 역사적 인물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명량>보다 앞선 시기를 다루는 <한산:용의 출현>은 한산대첩을 다루고 있다. 한산 해상 전투가 있기 전 왜군의 장수중 하나인 와키자카(변요한)가 한산도를 침략하게 되는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와키자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그만큼 이순신의 적이 얼마나 집요하고 치밀하게 그 전투를 준비했는지를 보여준다. 임진왜란이 막 시작되었을 때 왜군들은 이미 한양까지 점령하고 기세를 몰아 명나라까지 가려고 한다. 이순신(박해일)은 그를 돕는 장군들과 함께 한산도 앞바다에서 결전을 벌일 준비를 한다. 이순신은 수세에 몰린 조선군의 사기를 걱정하면서 내부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원균(손현주)을 설득하여 전투를 자신의 방식대로 끌어가기 위해 애쓴다.
영화는 초반에 왜군과 조선군의 첩보전을 통해 극적 긴장을 끌어올리면서 조선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선택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순신의 모습을 비춘다. 전작인 <명량>의 이순신에 비해 좀 더 과묵해진 모습을 보이는 그는 완전한 열세의 상황에서 왜군을 막을 최선의 방법을 고민한다. 영화 속 이순신은 주변 인물들에게 결코 감정적이고 공격적이지 않다. 전쟁의 의미를 묻는 준사(김성규)에게 '의'과 '불의'의 대결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전쟁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분명하게 정의하면서 아군들에게 싸울 명분을 선사한다. 영화 속 그의 말은 분명하고 단호하고 틀리지 않다. 그래서 더욱더 주변 인물들은 이순신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이순신의 리더십 그리고 거북선
<한산:용의 출현>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영화 속에 몇 척이 등장하지 않지만 결정적인 순간 등장하는 거북선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무척 단단해 보이고 무너질 것처럼 보이지 않는 거북선은 왜군들에게는 두려운 무기다. 이순신과 거북선이 함께 만들어내는 두려움은 왜군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공포로 퍼져나간다. 적장 와키자카가 걱정하여 두려움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았지만 그 두려움은 서서히 왜군들을 사로잡아갔다. 왜군들이 왜 그렇게 거북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영화는 마지막 해상 전투에서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순신은 수적인 열세를 그의 리더십으로 극복해나간다. 그가 가진 전략인 학익진은 바다의 성을 만드는 전략이다. 매복을 하고 있는 적을 끌어내며 전투를 벌이거나, 결정적인 순간 출정하는 거북선 등 영화의 전투 장면은 풍부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이순신이라는 리더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주변의 장수들은 좀 더 사력을 다해 전투에 임하고 각자 맡은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에는 이렇게 이순신이 가진 부드럽지만 강인한 리더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순신 역할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이번 영화에서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 이순신의 과묵한 고뇌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 같다. 그래서 박해일이라는 배우가 가진 정적인 이미지와 잘 맞게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변요한이다. 적장 와키자카 역을 맡은 그는 무시무시하고 욕망 넘치는 적장을 뛰어나게 묘사했다. 살기 넘치는 눈빛과 액션은 영화에 극적인 긴장을 불어넣고, 마지막 클라이맥스 전투에서도 전투의 통쾌함을 배가시킨다.
무시무시한 적장을 맡은 변요한의 명연기
영화를 연출한 김한민 감독은 원래 <핸드폰>이다 <최종병기 활> 같은 영화를 통해 쫄깃한 긴장감을 영화 속에 잘 불어넣었던 감독이다. 그는 <명량>의 흥행이 성공하면서 이순신 3부작을 야심 차게 만들고 있다. 이번 <한산:용의 출현>이 두 번째 이순신 영화인데, 전작인 <명량>의 단점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신파를 덜어내고 조금은 건조하게 이야기를 구성하였고, 풍부한 음악을 활용하여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의 다음 영화는 <명량> 이후의 시간대를 다루는 <노량>이다. 이순신 역으로는 배우 김윤석이 캐스팅되어 있다. 이번 <한산:용의 출현>의 완성도만큼의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이순신 3부작 모두가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영화 <한산:용의 출현>은 여름 블럭버스터로 극장에서 보기에 좋은 영화다. 한국에서 자주 보기 힘들었던 해상 전투를 제대로 구성했으며, 교과서에서나 배우던 학익진의 실제 전투 모습과 거북선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이 기대하고 있는 요소를 충족시키는 영화다. 무엇보다 이순신의 리더십이 어떤 것인지를 볼 수 있는 영화다. 리더십의 부재 속에 있는 한국의 현재 상황에서 꽤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Rabbitgumi의 영화이야기 유료 뉴스레터에도 영화 <한산:용의 출현>과 관련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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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 Spider-Man: No Way Home, 2021
작년 '코로나19'가 뺏어간 "마블"의 21년도 끝을 짓고 있습니다.
여름 <블랙 위도우>를 시작으로 가을에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과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그리고 <이터널스>까지 "창고 대방출"의 느낌도 없진 않으나 이로 확인한 건 아직도 관객들은 "마블을 원한다"였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을 장식할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은 시작부터 제대로 터트렸습니다.
개봉 하루 전까지 예매량은 75만명에 달했으며, 개봉 첫날에만 634,948명으로 이번 "코로나19"이후 개봉일 기준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그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네영카"에서 유저들이 영화관별로 준비된 굿즈들의 현황이 반나절 만에 동이 나버렸으니 대충 감이 잡히실까요?
그렇다면, 영화는 어떠했는지? -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감상을 "SCREEN X"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전작 "미스테리오"가 준비한 "악마의 편집(?)"으로 "피터 파커"는 그동안 숨겨온 정체가 밝혀지게 됩니다.
이에 자신뿐만 아니라 "네드"와 "MJ", "메이 숙모"까지 피해를 끼치자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이를 지워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하지만 뭐가 추가되는 사항에 주문은 틀어지고, 그 때문에 다른 차원에서의 악당들이 스파이더맨을 찾게 되는데...이전 스파이더맨, 극장에서 못 봤다고?
진짜 재밌는데 ㅋㅋㅋ1. 1인분인데, 2인분 같단 말이지.
이번 <노 웨이 홈>은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의 마지막에 속하는 작품입니다.
"MCU"를 전체적으로 살펴본다면, 많겠지만 솔로 타이틀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17년 <홈커밍>을 시작으로 19년 <파 프롬 홈>, 이번 21년 <노 웨이 홈>까지 생각보다 짧게만 느껴지는데요. (첫 등장한 16년 <시빌 워>를 합쳐도 7년이니...)
그래서, 늘 부족하다는 느낌이었을까요? - 이번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어딘가 빠져있다는 느낌입니다.진짜 홀로서기는 아니었나?
단적으로 '프로레슬링'을 예시로 든다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적은 신인들은 한데 묶는 "태그팀" 혹은 "매니저"를 같이 대동하곤 합니다.
이런 이유에는 서로의 부족함을 메꿈으로 '누구와 함께 있느냐?'로 다양한 에피소드와 시너지를 발산시켜려는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이전 <스파이더맨>들에게는 "MJ"와 "그웬"이라는 히로인들이 있었다면, 이번 <스파이더맨>에게는 "토니"와 "닉 퓨리" 등으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영화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피터"에게 "같이 고생을 했어도 성장이 필요한 꼬마라는 사실을 까먹는다"라고 대사를 던집니다.
이는 즉슨, 이번 <노 웨이 홈>이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를 넌지시 말하던 건 이니었을까요?2. 언더테이커에 기립박수가 나오듯이!
앞서 말했듯이 이번 <노 웨이 홈>, 역시 "스파이더맨"만으로 이끌어가는 작품은 아닙니다.
요즘 세대들은 어색하겠지만, 저와 같은 올드팬들에게는 한없이 익숙한 "옥타비우스(aka. 문어 박사님)"와 "그린 고블린"을 시작으로 "일렉트로"와 "샌드맨", 그리고 "리자드맨"까지 <어벤져스>를 처음 봤던 그 희열을 되감기 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이외에도 마지막에 "MJ"를 구하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모습이나 "글라어더"로 희생당하는 "그린 고블린"의 오마주, 여기에 각 스파이더맨들이 대결을 펼친 빌런들의 무용담까지
'왜 다들 박수가 터져 나왔는지?'를 납득이 갈 정도로 팬심을 꾹꾹 눌러 담아냅니다.근데, 이젠 톰 홀랜드가 스파이디 잖어!
이렇게 기뻐하기도 잠시, 우리는 이번 <스파이더맨>이 "톰 홀랜드"가 주인공이라는 것을 자꾸 깜빡깜빡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노 웨이 홈>의 "스파이더맨"은 어디까지나 "톰 홀랜드"이고 그 위상이 결코 깎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번 영화까지 세 번째이지만, <스파이더맨>을 꿰뚫는 교훈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에피소드는 늘 인상적입니다.
이런 이유에는 시리즈를 통해서, 쌓아올린 설명도 있겠지만 "그린 고블린"역의 "월렘 대포"의 연기가 가히 압권입니다.3. 악당들의 매력에는 차이가 많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분량은 148분으로 일반 영화와 비교해도, 굉장히 긴 시간을 가진 작품입니다.
근데, 이마저도 앞서 소개한 캐릭터들의 분량으로 부족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앞서 관객들에게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으로 완벽하게 이관된 것과 달리, 악당에서는 약간의 부족함이 느껴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린 고블린"을 제외하면, "옥타비우스"정도 인상적이지만 추후 돌아서는 모습은 현재의 관객들에게 이해가긴 어려울 겁니다. (원작를 본 팬들은 이런 이유를 알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캐릭터들도 크게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아 이런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당신의 악당에 1표를!
여기에 "SCREEN X"로 보는 액션은 그 스케일을 가늠케 하는데요.
단적인 예시로 시작과 동시에 도시의 빌딩에서 지하철까지 시원하게 활강하는 액션부터 앞서 언급한 다양한 빌런들과의 투탁거림은 이를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습니다.
특히, "샌드맨"의 모래폭풍이나 "리자드"의 추격전까지 모두 "SCREEN X"로 보여주니 이 포맷도 한 번 관람을 고민해 봐도 좋을 겁니다.
여기에 거드는 <노 웨이 홈>의 이야기에서만큼은 역대 오리지널 작품들과 견주어도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4. 소니야, 잘 키워야 해!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번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3부작"은 솔로 영화임에도 혼자서, 이끌어가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이유가 뭘까 고민도 해보았지만, 딱히 답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한 "같이 고생을 했어도 성장이 필요한 꼬마라는 사실을 까먹는다"라는 대사로 뭔가 알 거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이를 일으킨 원인만을 생각하는데, 이는 전작 <파 프롬 홈>에서도"토니의 유산"을 두고서 "미스테리오"에게 보여준 회피 행동과도 맞물려 보입니다.3번이나 우린 게 아니라 끓인 거야.
그런 점에서 보여주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라는 에피소드에 지겨움보다 "클래식"으로 느껴지는 건 저뿐인가요?
이에 영화는 슈트로 그 책임감을 보여줍니다.
이전까지 "스타크"가 만들어준 슈트에서 마지막에는 자신이 만든 슈트를 입는데, 이는 "태그팀"에서 혹은 "매니저"를 막 떼어낸 솔로 레슬러의 포효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3부작을 마지막으로 "마블"과의 협업이 끝난 그이지만, 어디선가 다음 3부작의 계약을 했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습니다.
특히, "소니"에서 준비하는 "SSU(소니 스파이더맨 유니버스)"가 막 출범했기에 "어벤져스"가 아닌 "소니"를 이끄는 그의 모습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상대로, 쿠키는 2개인데 다음 <닥터 스트레인지 인 더 멀티버스 오브 매드니스>를 위해서라도 <완디비전>과 <로키>는 꼭 챙겨 봐야겠습니다. (필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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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하루의 총합
전쟁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굉음이 터지고 피가 터지고 시체가 터지고 마음이 터지는, 뭔가 많은 것들이 팡팡 터지는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반대쪽이다. <덩케르크>도 "이것은 전쟁 영화가 아니다"라는 카피가 아니었으면 보지 않았을 테고, <1917>도 그다지 볼 마음은 없었다.
그래서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1917>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할 땐 좀 놀랐다. 자꾸 같이 보러 가자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친구 얼굴 봐서 한 번 보러 갔다. 그리고... 같이 미쳤다. 용산 아이맥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 포토티켓을 뽑아대는 우리는 누가 봐도 과몰입 오타쿠였다. 아무리 정상인인 척 리뷰를 써보려고 해도 잘 안 된다. 그래서 또 <러브레터> 때처럼 과몰입 오타쿠답게 구구절절 써보려 한다. 스포일러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영화 전체를 서술하고 있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참고해 주시길.
영화 <1917>의 수식어는 항상 "원 컨티뉴어스 숏" 이야기다. 2시간짜리 원테이크처럼 보이게 촬영했다는, 물론 당연히 2시간을 원테이크로 찍은 건 아니고 그렇게 보이게끔 잘 연결한, 즉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는. 최신 기술을 집약한 영화라는.
어마어마하긴 하다. 그렇게 찍기 위해 모든 세트장을 직접 제작하고, 그 세트장 동선에 맞춰 대사 길이까지 세밀하게 조정했다고 한다. 실제로 6개월의 리허설 끝에 찍었다니 부분적으로 연극 같은 느낌마저 든다. 자본과 기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설명에 압도되어서인지, <1917> 이야기는 평론부터 리뷰까지 기술 이야기 일색이었다.
그러나 <1917>은 기술 이야기만 하고 떠나보내기엔 너무 아깝다. 과시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 영화가 아니라 시나리오가 탄탄한 영화다. 풀어가고 싶은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기법이라 그렇게 찍은 것뿐이다.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 탁월한 연출, 감정 머리채를 잡는 음악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가 가진 장점 중 하나지 전부는 아니다. 이 모든 장점들을 모아 더없이 주제에 집중한 영화다.
영화는 노란 꽃과 흰 꽃이 섞여 산들거리는 들판에서 시작한다. 관 속의 시체 같은 자세로 누워있는 블레이크와, 나무에 적당히 기대 눈을 감은 스코필드. 블레이크를 부르며 누구 한 명 데려오라는 목소리를 듣고, 블레이크는 스코필드에게 손을 내민다.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른 채.
두 사람은 참호로 들어가 장군에게서 임무를 받는다. 적진이 후퇴했으며, 데번셔 제2연대가 후퇴한 적군을 총공격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항공사진을 보면 적군은 작전상 한 발 물러난 것뿐이라, 위기에 빠진 건 오히려 데번셔 제2연대라는 것. 적군이 통신망을 끊고 갔기 때문에 인편으로 공격 중지 명령을 전해야 한다는 것. 해당 연대의 1,600명 중에는 블레이크의 형도 있고, 블레이크는 지도를 잘 보기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것. 그리고 얻어걸린 스코필드도 함께 간다는 것.
참호를 빠져나가 허허벌판을 걸어가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스코필드는 경악한다. 그도 그럴 것이 1차 세계대전은 참호전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말 타고 창 찌르고 칼 휘두르던 전쟁은 종말을 맞았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는 것이 당시 전쟁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어깨와 등을 따라가면서 좁은 참호를 지나가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시작부터 보여주고, 짐짝처럼 참호에 몸을 기대어 죽음의 냄새를 맡는 병사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시체가 그대로 썩어 지저분해진 진흙, 시체를 파먹고 자란 큰 쥐들을 보면 적군의 공격 못지않게 비위생적인 환경 또한 1차 세계대전 당시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도 그 참호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상상 못 할 일이었다. 아직 애티를 벗지 못한 블레이크에 비하면, 솜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스코필드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겪어보고 그만큼 노련해진, 동시에 내상도 더 깊게 입은 병사로 보인다. "정말 적군이 후퇴했다면 보급품에 수류탄을 왜 줬겠냐"라고 꼼꼼히 따져보지만, 형이 위험에 처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씩씩거리고 있는 블레이크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참호를 벗어나기 전 그는 "Age before beauty," 장유유서라고 억지로 웃어 보이며 블레이크보다 앞서 미지의 위험에 발을 딛는다.
스코필드도 높은 직급은 아니지만, 무자비한 살육 현장이었다던 '솜 전투'를 경험했고, 거기서 훈장도 받았다. 목숨이 오가는 장면을 많이 보았고 또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순간순간 구체적인 두려움과 싸우고 있고, 말을 아낀다. 아직 순진한 블레이크에 비해 그가 좀 딱딱해 보일 수 있지만, 그가 참 좋은 사람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있다. 이 장면도 그랬다.
두 사람은 아군의 참호와 적군의 참호 사이 무인지대를 지나간다. 질척한 진흙에 썩어가는 시체들만이 가득한 곳. 나무와 철조망이 기이한 형태로 뒤틀려 있는 공간. 시체가 마치 지형지물처럼 늘어져 있는 이상한 광경이다. 총검을 세우고 엄폐물을 찾으며 그들은 적진의 참호로 천천히 다가간다.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말 시체를 한 번 더 뒤돌아보는 표정을 봐도, 철조망에 쉽게 걸리거나 미끄러운 진흙을 올라갈 때 손 잡아달라고 이름 부르는 걸 봐도 블레이크는 전쟁터에 있기엔 아직 너무 어린 소년이다.
스코필드는 그런 블레이크를 알게 모르게 잘 챙긴다. 철조망을 잡아주다 손을 찔려도, 그 손을 썩어가는 시체에 푹 담그게 되어도 블레이크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블레이크가 앞만 보고 가면 그 뒤에서 총으로 엄호하고 있다. 두 배우의 섬세하고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대목들이다.
정말 비어 있는, 그러나 적군이 떠난 지 오래되지는 않은 적진의 참호는 반파되어 있다. 땅굴로 들어서니 곰팡이 냄새 날 것 같은 병사 숙소가 보인다. 누군가 미처 챙기지 못한 흑백 가족사진 앞에 잠시 멈춰서는 스코필드와 침대에 앉아 방방 스프링을 튕겨보는 블레이크. 두 사람은 부비트랩을 발견한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처음부터 거슬렸던 커다란 쥐 때문에 목숨의 위기를 맞는다.
사실 둘이 출발했으니 하나는 죽거나 다치겠구나 싶긴 했다. 두 사람이 이 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단순한 플롯이면 분명 중간중간 위기를 맞고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그러면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야기일 것이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 모두가 무사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영화니까. 그럼 여기서 죽나, 하는데 블레이크의 발 빠른 대처로 스코필드는 목숨을 구하고, 첫 위기는 다행히 벗어난다.
전쟁터의 긴장감은 사람을 순식간에 옥죄었다 풀었다 한다. 사지를 벗어나고 블레이크의 농담으로 풀어지는 것 같았던 공기는 하늘을 가르는 정찰기 소리로 단숨에 다시 굳어진다. 블레이크는 때마침 나타난, 다 뭉턱뭉턱 베어졌지만 아직 꽃이 하늘거리고 있는 체리나무로 다시 분위기를 풀어본다. 5월이면 형과 함께 어머니의 과수원에서 체리를 딴다는, 아마도 가족에게 다정하고 싹싹한 둘째 아들일 그는 전장에 비현실적으로 나부끼는 꽃잎 사이를 거닐며 몇 마디 대사만으로 자신의 전사를 풍성하게 풀어놓는다.
영화가 사용한 기법 상,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로드무비 느낌을 전쟁에 버무려놓은 배경 상, 게임 스테이지를 하나씩 넘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호의 위기를 체리 꽃잎으로 마무리하고 꼭 '2단계, 버려진 농가' 같은 느낌으로 눈앞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젖소 한 마리와 우유 한 통이 있을 뿐 별스러울 건 없는 공간이었다.
퇴각하던 독일군은 협상국 군대의 식량 확보와 진로를 방해하기 위해 나무도 베고 젖소도 죽였는데, 한 마리가 비현실적으로 살아남아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한 연대가 이런 젖소를 발견했고, 암소를 연대 상징으로 삼았다고 한다.) 스코필드는 어쩐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예감은 현실이 된다.
공중전에서 패한 적기가 추락하고, 몸에 불이 붙은 독일인 파일럿을 "편히 가게 해주"려던 스코필드와, 안 된다며 물을 가져오라고 하던 블레이크. 사제가 되는 걸 고민했던 만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나이브한 선의를 봐주지 않는다. 스코필드는 자신이 폭발에 쓰러졌을 때 블레이크가 그랬듯, 칼에 찔린 블레이크를 들어올려 보려 하나 이번에는 되지 않는다. 블레이크는 결국 눈을 감는다. 힘없이 떨군 그의 손 옆에 마지막 노란 꽃 한 송이가 피어 있다.
아무나 한 사람 골라잡은, 처음부터 이 작전에 반대할 수 있었다면 반대했을 이는 그렇게 유일한 전령이 된다. 동시에 군사적인 사명뿐 아니라 친구의 유언을 건네받은 개인적인 사명까지 그의 어깨에 얹힌다.
블레이크의 시체를 움직여보려 할 때 아군이 나타난다. 여태까지 두 명에 몰입해 따라가고 있다 보니 아군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건 전쟁이고, 블레이크와 스코필드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모두가 다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적군이든, 시간이든, 죽음이든, 부상이든, 적막이든.
스코필드의 사정을 들은 스미스 대위는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며 스코필드를 사병 트럭에 태운다. 자조 섞인 농담을 주고받는 사병들과 어깨를 부딪혀 가며, 스코필드는 혼자서만 다른 곳을 멀거니 바라본다. 멀어져 가는 블레이크의 시체를, 죽음으로 넘어가는 그를 생각하며 전해야 할 편지를 틴케이스 안에 소중히 집어넣는다.
트럭을 타고 가는 길도 쉽지만은 않다. 독일군이 길을 막도록 베어놓은 나무를 치우고, 진흙탕에 빠진 차를 밀어가며 스코필드는 시간과 싸워야 하는 간절함을 드러낸다. 그를 이상히 여기며 묻는 사병들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그들의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다들 말을 아끼지만, 실패할 확률이 너무 높은 작전과 무의미하게 터덜터덜 실려가는 그들의 현실은 곧 1차 세계대전 자체의 현실이다.
무너진 다리 때문에 다른 길로 에둘러갈 사병 트럭에서 내려, 스코필드는 조심스레 무너진 다리를 건넌다. 그 앞 버려진 저택에 있는 저격수와 맞붙게 되고, 명중 확인을 위해 들어간 곳에서 저격수와 대치하며 그도 죽음 코앞까지 다녀오게 된다. 영화가 잠시 암전되는데,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면 아마도 여기서 인터미션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노골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끊어냈다. 다시 눈을 뜬 스코필드는 뒤통수에서 피를 흘리고 있고, 시계가 깨져 더 이상 시간을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어느덧 세상은 어두워져 있다.
카메라는 죽은 저격수를 넘어 창문으로 쭉 내려가고, 음악은 서서히 고조되면서, 반쯤 무너진 마을로 스코필드가 천천히 들어가는 장면. 살아있는 적군을 찾아 끝까지 말살하려고 적기가 조명탄을 쏘며 날아다니고, 조명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번씩 낮처럼 밝아지는 광경, 적기의 움직임에 따라 건물 그림자가 유유히 자라나듯 펼쳐지는 광경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으로 보인다. 보이는 것과 음악이 어우러져 가슴을 쥐어잡게 하는, 놀라운 장면이다.
평화로웠던 시절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게 만드는, 분수대와 커다란 교회가 있는 광장. (저 장면을 조명으로 만들었다니 놀랍다.) 역시 무사한 시절에 붙였을 서커스 공연 포스터. 그러나 구석에 피 묻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곳. 이 뒤틀리고 모순적인 공간에서, 그만큼이나 반대되는 상대들을 마주치게 된다. 얼굴도 나오지 않지만 금방이라도 닿을 듯 추격해 오던 독일군과, 그를 피해 들어가다가 만난 프랑스 여성과 아기.
이 영화에 나오는 단 두 명의 여성이자, 체리나무 장면 이후 처음으로 평온하게 숨 고르기를 하는 장면이다. 짤막한 프랑스어와 영어를 섞어 두 사람은 대화한다. 독일군이 아님을 설명하며 여성을 안심시키고, 여성은 스코필드의 뒤통수에서 피를 살짝 닦아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스코필드가 고개를 든 건 아기 울음소리가 났을 때였다.
그는 아기를 보고 가방에 있던 부식과, 이렇게 쓰일 줄 모르고 담아뒀던 우유까지 모두 꺼내준다. 조심스럽게 아기의 손을 어루만지고 시를 읊어주는 걸 보며, 아마도 그가 "집에 가는 게 더 괴롭다"라고 할 만큼 괴로워한 데에는 후방에 아이까지 두고 떠나온 이유가 있겠거니 느끼게 된다. 더불어 이 시는 무모해 보이지만 단단한 의지가 돋보이는,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시이기도 하다.
They went to sea in a Sieve, they did,
In a Sieve they went to sea:
In spite of all their friends could say,
On a winter’s morn, on a stormy day,
In a Sieve they went to sea!
그들은 바다로 갔네 체를 타고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모든 친구가 말려도
폭풍우 치는 한겨울 아침이었어도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
And when the Sieve turned round and round,
And every one cried, ‘You’ll all be drowned!’
They called aloud, ‘Our Sieve ain’t big,
But we don’t care a button! we don’t care a fig!
In a Sieve we’ll go to sea!’
체가 빙빙 돌고 돌아갈 때
모두가 "너희 다 익사할 거야!" 소리칠 때
그들은 외쳤네 "우리 체는 크지 않지만
신경 안 써! 하나도 신경 안 쓴다고!
체를 타고 우리는 바다로 갈 거야!"
Far and few, far and few,
Are the lands where the Jumblies live;
Their heads are green, and their hands are blue,
And they went to sea in a Sieve.
저 멀리 점점이
머리가 초록빛이고 손이 푸른빛인
점블리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체를 타고 그들은 바다로 갔네(영화에서는 1연의 처음 5행과 마지막 5행만 읽는다. 가운데 5행은 읽지 않는다.)
때마침 시계탑 종이 울리고, 시간을 가늠한 스코필드는 단꿈에서 서둘러 일어난다.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이름을 모르는 아기를 거둬 기르고 있을 만큼 인간애 있고 단단한 프랑스 여인은 스코필드를 걱정하지만 그는 고마운 마음을 유감으로 전하고 단호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독일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강에 뛰어든다.
힘이 빠진 나머지 본인이 읽(지 않)은 시 구절처럼 익사할 뻔했지만, 때마침 거짓말처럼 하얀 벚꽃 잎이 흩날리고 새 소리가 들린다. 그를 여기까지 오게 한 원동력의 큰 축인 블레이크를 떠올리며 그는 다시 한번 힘을 낸다. 아름다운 벚꽃잎과 퉁퉁 불어 터진 시체들까지 건너 그는 목숨을 건졌지만, 이미 사위는 밝아져 있다.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간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이승인 듯 저승인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장송곡을 듣는다.
그들이 데번셔 2연대 후발대라는 사실을 알고 그는 마지막 전력을 다해 뛴다. 몸을 웅크린 이들, 정신을 놓고 울음을 터뜨린 이, 동료를 붙드는 이들... 다양한 군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지나치다가, 이렇게 가서는 시간 내 닿을 수 없음을 깨닫고 참호 위로 올라서 평야를 달린다. 포탄 소리에 어깨를 움찔거리면서도, 부딪혀 넘어지면서도, 병사들과 종횡을 달리해 그는 뛰어간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가 내게로 뛰어온다. 전쟁의 내상과 외상을 모두 가진 이가, 전쟁을 막기 위해 달린다. 모두가 무의미하고 적막하게 괴로워하며 앉아있다가 우르르 뛰어가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때, 그 흐름을 끊고 달리는 사람이 된다.
영화 내내 궁금해하게 만들었던, 이전의 대사들을 통해 어쩌면 답 없는 전쟁광일 수도 있겠다 싶었던 인물 매켄지 또한 이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고 싶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희망을 품었지만 희망은 위험한 것이라며 머리를 쓸어내리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고 말한다. Last man standing.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스코필드는 고개를 든다.
자막에는 "마지막 단 한 사람까지 죽는 것"이라고 번역되었다. 매켄지의 캐릭터를 감안하면 맞는 번역이지만 사실은 중의적인 문장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 전투를 끊어낸 이가 고개를 꼿꼿하게 들어 반듯하게 서는 순간.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몰살도 있지만, 이건 아니라고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인간 그 자체도 있다.
전투를 막았다고 그의 사명을 마친 것은 아니다. 그는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유품을 건넨다. 이제 다시는 두 형제가 함께 체리를 딸 수 없겠구나, 슬퍼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블레이크의 형은 인사를 나누며 스코필드의 이름을 묻는다. 윌리엄. Thank you, Will. 고맙다는 인사를 짧게 건넨다. Will은 의지의 이름이었다. 시작부터 형에게 갈 거라고, 내가 할 거라고 단단하게 말하던 블레이크의 의지가 스코필드의 이름에도 들어있었다.
모든 사명을 마친 그는 더 이상 노란 꽃이 없는 들판에 혼자 앉는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올 때마다 열어보던, 소중해진 것을 집어넣던 틴 케이스를 열어본다. Come back to us. 꼭 우리에게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담긴 가족의 사진. 일상은 비일상이 되고, 비현실은 현실이 되고 만 전장에서 그는 잠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눈을 감는다.
이 영화는 샘 멘데스 감독의 할아버지 알프레드 멘데스를 비롯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일화에서 따와서 만들었다. 특정 실화를 모티프로 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실화의 가닥가닥을 엮어 만든 것이다. 참호 속에서 담배를 피우고 부식을 먹고 개를 쓰다듬고 서로의 상처를 싸매는 사람들의 시간, 이름도 모르는 아이를 거둬 기르고 낯선 군인의 상처에서 피를 닦아주는 사람들의 시간으로.
이들은 생각보다도 많고, 다양한 곳에 있다. 심지어 인도계와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참호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 중엔 인도 남부 출신임이 틀림없어 보이는 사람이 있었고, 스코필드가 노래를 들으며 나무에 몸을 기댈 때 그 자리에는 흑인도 있었으며, 사병 트럭에는 터번을 쓴 시크교도 병사가 등장한다. 가볍게 억양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딱히 희화화하는 경향이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에 비해 철저하게 유럽 중심이었던 1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면 영화 속 이들의 존재는 놀랍다.
(실제로 1917년은 인도 남부에 있는 하이데라바드 토후국에서 영국군에 전투기를 선물한 해다. 토후국의 왕 니잠은 엄청난 부와 탄탄한 사회를 이룬 군주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이 패권 다툼이라는 정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그 싸움에 가담하여 자신도 당당히 패권국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인도계나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은, 실제로 그들이 참전했음을 고증하는 것임인 동시에 자본의 영향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인도 최대 기업인 릴라이언스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으므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서 찾아와 뜻밖의 만남을 가진 이들이 실은 각각 고립되어 있다시피 한 것. 각자 자기의 죽음과 싸우고 있다는 것. 그게 전쟁의 무의미한 본질이다. 그러나 전쟁은 보통 큼직한 것들로만 기억된다. 솜 전투, 인천 상륙 작전, 한산도 대첩 같은 웅장한 이름들로. 수많은 전쟁 영화도 그런 순간들을 많이 담곤 했다. 일반인들의 미시사는 전쟁의 본질이 아니라 전쟁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 전쟁이 깨뜨린 일상의 대조점으로 주로 담기곤 했다.
그러나 전쟁 자체를 이루는 것은 거대한 전투와 군함, 장군보다 그냥 수많은 보통 사람들임을 이 영화는 담는다. 스코필드는 그중 한 사람이다. 참호 속 혹은 트럭 속의 다른 병사들은 블레이크와 스코필드 같은 사람들이 무수히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시계가 깨져도 잔혹하게 흘러가던 스코필드의 하루는 그런 여상한 하루하루의 총합이 전쟁임을 알려준다. 그냥 보통 좋은 사람들의 얼굴로, 그들의 하루하루의 총합으로 전쟁은 이루어진다. 스코필드의 어떤 하루는 전쟁이라는 전체를 닮은 프랙탈이었다.
* 본 콘텐츠는 브런치 선이정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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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행 피해자의 상처와 결단
씨네랩의 초대로 개봉 전 시사회로 먼저 관람하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아줌마'라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이기적이고 고집 있고 예의가 없는 촌스러운 이미지가 얼핏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사실 남성을 지칭하는 '아저씨'라는 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왠지 더 어감이 좋지 못한 건 '아줌마'라는 단어다. 여러 미디어나 사람들 사이에서 무수히 전해지는 예의 없는 아줌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현대 사회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로 만들어져 왔고 그렇게 소비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모습이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반화의 오류다. 많은 아줌마들이 그들의 자리에서 자신의 가족을 위해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다. 제 3자의 눈에 그들의 모습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보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의 삶과 공간을 지키고 있다.
만약 시장에서 일하는 어떤 아줌마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떨까.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아줌마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선뜻 쉽게 믿지는 못할 것이다. 사실 그 피해에 대한 명확한 증거나 증인이 없다면 더더욱 그런 의심은 짙어질 수밖에 없다. 생각보다 깊숙이 박혀있는 그 고정관념의 이미지는 꽤 강력하다. 분명히 피해자인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깨끗하지 않다. 그 피해자가 아줌마라서 피해 사실의 신뢰성을 의심하거나 피해를 받았음에도 그 정도는 참고 넘기라는 의견도 생겨난다. 그런 시선들 때문에 피해받은 이후 어떤 사람들은 그 피해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조차 포기하기도 한다.
시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 오복의 이야기
영화 <갈매기>는 시장에서 일하는 중년 여성에게 벌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주변에 무수하게 스쳐 지나가는 아줌마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 존재는 가까운 엄마 또는 이모와도 가깝다. 우리 주변에 아주 쉽게 볼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중년 여성 오복도 그렇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줌마다.
영화는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일로 세 딸을 낳아 기르고 이제 둘째 딸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오복(정애화)이 겪는 일을 차분히 보여준다. 둘째 딸(고서희)의 결혼식 준비에 약간은 들떠있는 모습의 그는 시장 사람들과 저녁 술자리에 참석할 정도로 시장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던 인물이다. 그가 어느 날 저녁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같은 시장 사람인 기택(김병춘)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그 사건 이후에 오복의 행동과 감정은 매우 어둡고 절망적으로 보인다. 그가 주변 사람,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 사실을 선뜻 이야기하지 못하는 모습은 안타깝게 느껴진다. 영화는 피해 이후 오복의 시선을 줄곧 보여주며 그의 뒷모습을 영상에 담는다.
영화 속 오복은 왜 자신의 피해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못할까. 아마도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자신을 향한 비난과 시선이었을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두려움과 혼란이 그에게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결정하기 어렵게 했을 것이다. 이제 나이가 든 중년인 자기 자신의 모습과 결혼을 앞두고 있는 딸에게 나쁜 영향이 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영항을 주었을 것이다. 피해 직후 오복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카메라에 그대로 잡힌다. 그의 표정과 행동을 가만히 보여준다. 그저 혼자 앓고 있는 그의 주변에 있는 가족들은 그가 그저 몸이 아프다고만 생각한다. 혼자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혼자 출혈이 난 흔적을 지우면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하는 모습에서 무력감이 느껴진다.
영화에는 성폭행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그저 잠깐의 검은 화면 전환으로 간단하게 넘어간다. 그런 잔인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그 사건 이후 오복의 표정과 행동으로 그 피해에 대해서 설명한다. 빨간 피가 묻은 속옷을 목욕탕에서 씻는 오복의 표정은 마치 감정이 없는 것처럼 텅 비어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어두운 방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하다. 그의 표정과 피 묻은 속옷을 봤을 때, 그가 누군가에게 나쁜 일을 당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영화는 끝까지 직접적이고 충격적인 이미지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여타 비슷한 종류의 영화들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오직 그 인물을 비추면서 그 사건으로 인한 파장에 집중하고 있다.
피해자 오복의 시선으로 제시되는 피해의 잔상들
오복의 모습을 통해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답답함과 상실감이 잘 담겨있다. 이를 테면 그나마 가장 가해자와 관계가 가까운 어르신에게 가서 사과를 받아달라는 요청을 하지만,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다. 가해자와 친한 이들은 오히려 오복을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 시장의 다른 사람들에게 증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러 다니면서 힘들게 부탁하는 모습에서도 그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답답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작지만 오복은 그 피해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 속 시장 사람들은 정부 혹은 지자체와 시장의 권리나 보상에 대한 투쟁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시장 사람들 간에 발생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해 그냥 덮고 넘어가길 바란다. 각자의 보상금에 영향이 있을까 봐 오복에 대한 생각보다는 자기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행동한다. 오복이 받은 심한 상처는 얼마 전까지 같은 곳을 보고 같이 투쟁했던 그 집단에서 마저 치유받지 못하고 오히려 오복은 그들에게 계속된 거절과 비난을 받는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부분 그 사건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오복의 남편(이상희)이 술에 취해 성폭행 피해를 받은 아내를 보고 좋았냐고 웅얼거리기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그렇게 오복을 외면하는 그들을 비추는 화면에선 피해자인 오복보다 그들이 더 죄인 같고 초라해 보인다.
오복이 나이 들고 보잘것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성폭행이라는 행위를 당했다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일을 무심하게 생각해버린다. 우리 주변에도 그저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아줌마인 오복과 같은 일을 겪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꼭 성폭행이 아니더라도 어떤 피해를 받았다고 해도 온전히 도움이나 위로를 받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은연중에 자리한 나이 든 여성, 아줌마라는 색안경은 사람들의 올바른 생각을 방해한다.
오복은 어린 시절 다른 형제자매의 교육을 위해 자신은 돈을 버는 것에 집중했다. 결혼 후 세 명의 딸을 낳고 그 뒷바라지를 위해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일을 했다. 날개가 있음에도 육지 근처에서만 생활하는 갈매기처럼 그는 시장과 집이라는 그만의 울타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영화의 제목인 갈매기는 오복이 살아온 삶과도 닮아있다. 영화는 사건 이후, 늘 육지 근처에서만 지내던 오복이 날개를 피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가기까지의 과정이다. 그것을 돕는 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두 딸뿐이고, 남편은 전혀 그를 돕지 못한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오복, 그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오복이 다른 시장 상인들에게 증언을 요청하려고 각 상인들의 집을 하나하나 방문하는 장면이다. 마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에서 주인공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가 자신의 직업을 되찾기 위해 동료들을 하나하나 만나서 설득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을 떠올리게 하는데, 산드라가 그랬듯 오복도 거절이라는 벽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포기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각각 찾아가 설득하는 모습은 영화의 초반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허망한 표정을 짓던 오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영화의 엔딩 타이틀이 올라가면 다양한 생각이 스치게 된다. 내 주변에 있는 아줌마들을 나는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어디선가 1인 시위를 하는 누군가를 봤을 때 나는 그 사람이 왜 그런 시위를 하는지 관심을 기울인 적이 있었던가. 피해자가 하는 말을 얼마나 신뢰했던가. 그들의 숨겨진 노력과 감정, 행동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나. 영화를 연출한 김미조 감독은 중년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가 피해자가 되었을 때 어떤 감정과 행동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어두운 주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오복이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꽤 흥미롭고 긴장감이 넘쳐 계속 집중하며 영화를 보게 만든다. 무엇보다 다양한 화두를 던지는 여성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지난 21회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 한국경쟁 대상을 공동 수상한 영화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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