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1-11-23 16:54:19
화제의 드라마, 아직도 안보셨나요?
넷플릭스 드라마 추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집콕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 이불 속에서 드라마 정주행 하고싶은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요. OTT 서비스 열풍은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등 새로운 OTT 플랫폼들의 국내 상륙으로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넷플릭스는 <오징어 게임>, <마이 네임> 공개 이후 <지옥>을 공개하여 상승세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습니다.
<오징어 게임>, <마이 네임>, <지옥> 이외에 정주행하기 좋은 넷플릭스 드라마는 어떤 작품이 있을지, 함께 보시죠!
N D.P. - 6부작


출연 : 정해인, 구교환, 김성균, 손석구
줄거리 : 탈영병들을 잡는 군무 이탈 체포조 (D.P.) 준호와 호열이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을 쫓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는 이야기
*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웹툰을 사실적으로 각색한 드라마로, 공개되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어일으키며 화제를 모은 드라마입니다.
N 인간수업 - 10부작


출연 : 김동희, 정다빈, 박주현, 남윤수, 최민수
줄거리 : 돈을 벌기 위해 죄책감없이 범죄의 길을 선택한 고등학생들이 그로 인해 돌이킬 수 없이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 10대 범죄를 다룬 스릴러 학원물로, 공개 당시 많은 사람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입니다.
N 퀸스 갬빗 - 7부작


출연 : 안야 테일러 조이, 빌 캠프, 마리엘 헬러
줄거리 : 1950년대 한 보육원, 체스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는 소녀. 점점 더 넓은 세계로 향하며, 체스 스타의 여정을 이어간다. 하지만 더 이기고 싶다면 중독부터 극복해야 한다.
* 안야 테일러 조이가 주연을 맡았고, 미니시리즈 부문 포함 에미상 11개 수상, 골든글로브 미니시리즈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작품입니다.
N 에밀리, 파리에 가다 - 10부작


출연 : 릴리 콜린스, 필립핀 르로이-뷔리우, 애슐리 박, 루카스 브라보
줄거리 : 봉주르,파리! 낭만의 도시에서 꿈의 직장을 갖게 된 에밀리. 프랑스어는 못하지만, 마케팅이라면 자신 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인생. 사랑과 우정은 여기서도 복잡하다.
*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시리즈로, <섹스 앤 더 시티>의 대런 스타가 제작을 맡았습니다. 시즌 2가 확정되었다고하니, 아직 시즌1을 안본 분들은 빠른 정주행 추천드려요!
N 보건교사 안은영 - 6부작


출연 : 정유미, 남주혁, 문소리, 유태오
줄거리 : 평범한 이름과 달리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보건고사 안은영이 새로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미스터리를 발견하고, 한문교사 홍인표와 함께 이를 해결해가는 이야기.
* 정세랑 작가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잘 다루지 않은 독특한 드라마입니다.
N 브리저튼 - 8부작


출연 : 피비 디네버, 레지 장 페이지
줄거리 : 1800년대 런던, 사교계에 첫발을 내딘 브리저튼 가문의 맏딸인 다프네가 최고의 바람둥이 공작인 사이먼과 계약 연애를 시작하며 벌어지는 아찔한 스캔들과 그 안에서 피어나는 로맨스를 담은 이야기.
* 에미상 후보에 오른 드라마로, <그레이 아나토미>의 숀다 라임스가 줄리아 퀸의 베스트 셀러 로맨스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한 시대물 드라마입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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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열하고 애잔하고 기특한 동휘
메소드연기 (Method Actiong, 2024)
치열하고 애잔하고 기특한 동휘
관람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코미디
러닝타임 : 92분
감독 : 이기혁
출연 : 이동휘, 강찬희, 윤경호, 김금순, 윤병희, 공민정
개인적인 평점 : 4 / 5
쿠키 영상 : 없음
국가 : 대한민국
주인공 동휘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하고 싶다. 단, 코미디 연기만 빼고.
<메소드연기>의 주인공 동휘는 배우다. 알계인이라는 코미디 영화로 강력한 임팩트를 남기며 데뷔한 그는 여전히 알계인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전부 코미디뿐이고 사람들은 그에게 알계인만을 기대한다.
답답해진 동휘는 정면 돌파를 선언한다. 이제 더 이상 코미디 연기를 하지 않고 메소드연기만을 할 것이라고. 동휘는 알계인 영상을 틀고 깔깔대는 탤런트 킴에게 귀싸대기를 날리고, 쌓여있는 코미디 대본들을 냉동실에 밀어 넣으며 의지를 다진다.
그런데 문제는 ‘알계인 이동휘’가 아닌 ‘메소드연기 이동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냉정한 현실을 마주한 동휘는 방안에 박혀 고민한다. 그때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러브콜이 들어오고 그가 갈망했던 정통 연기, 메소드연기를 펼칠 드라마 현장이 준비된다. 동휘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 열심히 연기를 준비하는데.. 촬영 현장은 그를 놀리듯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배우의 애환과 촬영 현장 이야기가 중심이었던 동명의 단편 영화에 집안의 막내라는 이기혁 감독의 정체성, 가족 이야기를 더해 만들어진 장편 영화 <메소드연기>는 이전보다 더욱 풍부해진 스토리를 자랑하며 영화와 연기, 인생에 대한 투덜거림과 깨달음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 선 배우 동휘와 카메라 뒤에 선 인간 동휘를 번갈아 비추며 그가 직업인과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겪는 다양한 애환과 고민을 적절한 비율로 담아낸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이동휘가 그저 스크린 너머 캐릭터가 아닌 정말 실존하는 배우이자 어느 집 막내 이동휘처럼 입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메소드연기>는 아기자기한 가족영화이자 치열한 우리의 인생을 담고 있는 영화다. 옹기종기 모여 정을 나누는 가족의 모습은 웃음과 눈물을,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는 동휘의 모습은 찡한 감동을 선사한다.
동휘는 처음엔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을 탓한다. 동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하고 싶은 연기만을 골라 하는 멋진 배우가 되고 싶다. 그는 내가 우스워지는 것 같아 코미디 연기는 하기 싫다고 힘껏 세상에 저항한다. 하지만 저항할수록 문제는 더 커지기만 하고 동휘는 다시 고민한다. 그리고 그저 묵묵히 삶을 살아가는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인생을 다시 알아간다.
시간이 지나며 어색했던 배우 동휘의 연기는 점점 진실되게 변하고 과묵한 아들 동휘는 마음에 고여있던 진심을 드러낸다.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그저 살아가야 하는 삶, 동휘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배우 이동휘, 막내아들 이동휘로서 느껴온 비통함과 슬픔을 정직히 표현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동휘 배우는 마치 그 한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막힘없이 가장 영화롭고 진실한 장면을 완성해낸다.
- 아래 내용부터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는 메소드연기가 아닌 사람에 대해 알아야만 할 수 있는 메소드연기
“코미디 연기가 아니면 무슨 연기를 하고 싶은 거죠?” 토크쇼 MC인 탤런트 킴이 묻는다. 동휘는 “메소드연기요.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요.”라고 답한다.
동휘는 메소드연기가 하고 싶다. 그것이 코미디보다는 훨씬 멋있어 보여서,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런데 막상 판이 깔리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처음 정극, 그것도 사극에 도전하게 된 동휘는 백성들과 함께 단식하는 왕을 표현하기 위해 일단 냅다 굶어본다. 하지만 열심히 굶어봐도 동휘의 연기는 그다지 뛰어나지 않고 ‘네가 나를 의심하다니, 비통하다’하는 대사엔 비통함보단 어색함이 느껴진다.
동휘는 정말 메소드연기를 하고싶었던 걸까? 나는 동휘가 진심으로 메소드연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단 코미디 연기가 싫어 그것과 가장 멀 어보이는 메소드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고 생각한다.
동휘는 자신이 코미디 연기만을 하는 우스운 배우라고 느낀다. 그래서 그는 코미디 연기를 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웃거나 만족하기보단 불편함을 느낀다. 반대로 동휘의 주변인들은 동휘의 코미디 연기와 배우 이동휘를 좋아한다.
엄마는 동휘의 알계인을 인생 영화로 꼽으며 동생 동태와 소속사 사장 철우는 동휘의 코미디 연기, 사극 연기를 모두 지지한다. 입시 실패 이후 연기를 놓은 미정은 연기를 하는 동휘를 대단하다 생각하며 부러워하고 동휘와 함께 영화를 찍었던 태민은 동휘를 미워하면서도 그를 위해 꽃다발을 들고 묘소를 찾아온다. 동휘가 좌절을 경험할 때마다 가족, 친구들은 항상 그의 곁을 지켜준다.
동휘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얼마나 좋은 배우인지, 동휘만 모른다. 이동휘를 모르는 이동휘는 이동휘 다운 연기를 하지 못하고 그저 메소드연기라는 연기 기법만을 쫓아간다.
동휘가 카메라 너머에 있는 인간 이동휘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건 그를 사랑하는 이들, 그중에서도 엄마가 큰 몫을 한다. 엄마, 형 동태와 함께 떠난 바다 여행.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던 엄마는 동휘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가장 재밌게 본 영화는 알계인이고 여기선 영화 속 캐릭터만 보였다고, 역할은 역할이고 너는 너니까 웃긴 연기를 한다고 우스워지는 게 아니라고. 이동휘는 변치 않는다고. 동휘는 이때 인간 이동휘와 배우 이동휘의 분리 지점을 찾는다. 웃긴 연기를 하더라도 인간 이동휘는 엄마의 소중한 아들이고 결코 우스운 사람이 아니다.
이후 동휘는 다시 용기를 얻고 치열하게 드라마 촬영을 이어간다. 동휘는 배우 이동휘가 가장 잘하는 코미디 연기를 최선을 다해 선보이고 인간 이동휘가 겪은 상실의 아픔을 그 위에 녹여낸다. 동휘는 이번에도 왕이 비통함을 표현하는 장면을 연기하는데, 이번에 보여주는 비통함 연기는 지난번과는 차원이 다르다. 동휘는 메소드연기를 통해 사람, 자신에 대해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와는 반대로 그는 자신을 알아가고 인정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그토록 원했던 메소드연기를 해낸다.
마지막으로 동휘는 ‘무뚝뚝한 막내아들 동휘’라는 어색한 캐릭터를 내려놓고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 한줄기를 흘리며 이별의 슬픔을 받아들인다. 동휘는 배우 이동휘를 인정하며 연기적 성장을, 막내아들 이동휘의 아픔을 인정하며 인생의 성장을 이뤄낸다.
세상은 내가 원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바라봐 줄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과 세상의 시선을 전부 내 입맛대로 바꾸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땐 세상을 탓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아가는 자세도 필요하다. 다만 내가 나를 알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혹시 모른다. 배우, 아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받아들이며 결국 인정받게 된 동휘처럼 그렇게 나를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다 보면 진짜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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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분노로 품은 실화
1968년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톰 헤이든(에디 레드메인)'이 이끄는 대학생들, '애비 호프먼(사챠 바론 코헨)'과 함께 움직이는 히피들이 시작한 반전 시위는 경찰 및 주 방위군과 대치하는 폭력 시위로 이어진다. 이를 닉슨 행정부가 반전 분위기를 잠재울 기회로 삼은 결과, 미국 법무부 장관의 특별지시를 받은 연방검사 '리처드 슐츠(조셉 고든 래빗)'는 마지못해 주요 운동가를 공모 혐의로 기소한다. 그 결과 톰, 애비, 제리와 시위에 참가한 적도 없는 흑표당원 '바비 실(야히아 압둘 마틴 2세)'을 포함해 총 7명의 운동가들은 모의죄를 저질렀다고 지목되어 재판에 넘겨진다. 이들의 변호를 맡은 '윌리엄(마크 라일런스)'은 '전직 법무부 장관(마이클 키튼)'을 증인으로 세우는 등 최선을 다하지만 이미 각본이 짜인 재판의 흐름을 뒤바꾸지는 못하고, '시카고 7인'도 톰과 애비를 중심으로 정치적 신념 차이로 인해 점점 분열되기 시작한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배급사가 파라마운트에서 넷플릭스로 변경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제목에 포함된 '트라이얼(trial)'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법정 드라마다. 특히 피고(인)의 유무죄와 사건의 진상을 가리는 수싸움에 주목하기보다는 <변호인>과 <도가니>처럼 재판받는 사건을 통해 사회의 문제와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목적의 법정 드라마다. 사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종종 진실을 알리고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겠다는 분노에만 주목해 주인공들을 지나치게 도구화하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소셜 네트워크>와 <스티브 잡스>의 각본가로 이름을 떨친 애런 소킨이 각본, 연출을 맡은 결과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위의 함정을 무사히 피한 법정 드라마이자 사회 고발 영화로 완성되었다.
베트남 전쟁 반전 운동과 흑백차별 반대 시위로 혼란했던 미국을 배경으로 한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뜨겁다. 영화는 실제 연설 장면과 시위 사진으로 문을 열면서 당시 사회적 분노에 사실성과 구체성을 더한다. 더 나아가 순전히 반전 운동의 열기를 끌어내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위를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재판을 조작하는 미국 연방 검찰과 법무부의 모습을 초반부에 배치하기도 한다. 이 대목은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전달된, 명분도 없고, 인권도 무시하며, 국민의 뜻에도 반하는 전쟁의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그들의 분노에 강력한 정당함을 안긴다. 그 결과 시카고 7인이 공통적으로 지닌 뜨겁게 불타오르는 정당한 분노에 관객들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자연히 감정 이입할 수밖에 없다.
또한 영화는 익숙하지만 아주 효과적인 검증된 방식으로 타오르는 감정선에 장작을 더한다. 검찰, 경찰, FBI가 한 몸이 되어 수많은 거짓 증언을 늘어놓으며, 판사는 변호인과 피고인들의 이의 제기는 모두 묵살한 채 철저히 연방 검찰의 편에서 재판을 진행한다. 힘겹게 찾아낸 증인의 증언도 판사의 자의적인 판단 아래에서 소멸되어 버리며, 재판 도중 인종차별도 자행된다. 이 과정에서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동력이었던 분노는 자연스럽게 권력을 향한 분노, 기득권층을 향한 분노, 정당한 제도와 법률을 지키지 않는 위악자들을 향한 분노로 확장된다. 물론 이러한 전개는 <변호인>에서도 위와 유사한 내용을 찾을 수 있듯이 분명 법정 드라마의 클리셰지만, 이번만큼은 충분히 그 효력을 발휘한다.
그러나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법정 드라마와 별개로 영화는 7명의 피고인 중 특히 톰과 애비 그리고 바비에게 집중하며 다른 맥락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에도 주목한다. 학생운동의 리더인 톰과 히피들을 이끄는 애비는 반전 운동의 지향점과 시위 방식을 두고 치열하게 싸운다. 톰이 제도 안에서의 투쟁을 주장하는 반면, 애비는 제도 자체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며 제도권 밖에서의 저항을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저항과 투쟁의 과정에서 모든 진보 세력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방법론의 아이러니로부터 비롯한 또 다른 결의 뜨거움도 함께 묘사한다.
이때 시카고 7인 중 가장 이질적이고 시위와의 관련성도 약한 바비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가장 동떨어져 있기에 서로 다른 측면의 분노를 연결하는 데 있어 역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는 재판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변호인이 없는 상황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미 중립성을 잃은 판사는 재판을 강행하면서 그의 발언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는다. 톰과 애비가 서로 싸우는 동안, 그는 재갈 물리고 손을 포박당하는 와중에도 억울함을 토로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스스로를 희생해 흑백차별이 부조리를 온몸으로 고발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문제에 분노하고 사회에 끊임없이 고함치는 것 그 자체가 변화를 위한 투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손수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결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는 7명의 피고인이 선고받은 형량과 유무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끝내 서로의 신념과 방식을 이해한 톰과 애비를 비춘다. 애비는 자신들이 왜 반전 운동을 하고, 징집에 반대하는지에 대해서, 자신들의 재판이 얼마나 불공정한 지에 대해서 피고인이자 증인으로 자격으로 재판장 안에서 주장한다. 톰은 시위대를 거리로 이끈 주역이었음이, 신념을 위해 제도와 법률을 가장 먼저 위반한 반골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톰은 7명의 피고인을 대변하는 최후 발언권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며 정당함을 잃은 사법제도에 저항한다. 마치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 <어벤져스>의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과 화해를 보는 듯한 결말은 이렇게 서로 다른 결의 분노를 하나의 이야기로 담아낸다.
애런 소킨의 각본은 이처럼 서로 다른 분노의 감정이 한 작품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데 가장 큰 힘으로 작용한다. 여태 그가 각본을 맡은 작품들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실화를 바탕으로 인물들의 양면성을 드러내는 데 능하다. 또한 긴 시간 동안 쌓여 있었던 긴 이야기의 시공간 배경을 마음껏 섞은 뒤에 특정 사건과 시점에서 빠른 템포로 전개시키며 긴장감과 반전을 조성하는 재주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소셜 네트워크>는 페이스북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의 동업자들이 마주 앉은 조정 협상 테이블 위에서 그들의 개인사와 양면성을 낱낱이 드러낸다. <스티브 잡스> 역시 신제품 발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짧은 순간의 잡스를 포착해 가족사와 대인관계 등 업적에 가려진 그의 인간적인 흠결을 가차 없이 스크린으로 불러온 바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애런 소킨은 서로 다른 배경과 개인사를 지닌 채 시카고에 모인 주인공을 재판 대기실이나 재판 준비 사무실 같은 한 테이블에 모아 놓는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통해 그는 캐릭터들의 성격, 이념, 소신 등 상이한 화학물을 한데 섞어서 터뜨려 버린다. 시위 동기나 시위 진행 등 과거 시간대의 사건을 대화 중간마다 적절히 삽입시키며 폭발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덤이다. 그 결과 주된 플롯이 법정에서 진행되는 와중에도 영화는 짧은 순간 안에 개개인의 서브플롯을 전달하고, 멋진 반전을 선보이며 사회고발적 메시지와 주제의식에 깊이를 더하는 데 성공한다. 이렇게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는 특별한 작가를 만날 때 실화가 얼마나 강력한 감정적 힘을 지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모범 사례로 남는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대와 상황, 쟁점은 달라져도 그 안에 담긴 갈등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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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서 본 것'과 '있어 보이는 것'들의 조악한 조합
어느 날의 대한민국. 진샤(판빙빙)는 인천 보안검색대에서 근무 중이다. 어느 날 초록머리의 여자(이주영)가 등장한다. 소심한 진샤. 이상한 눈빛을 보내는 초록머리 여자가 마냥 싫지는 않다. 운명처럼 이끌리는 둘. 티격태격 다투다 둘은 진샤의 집으로 간다. 초록머리 여자는 스스로를 ‘남자친구의 마약 밀수를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직장 상사에게 “초록머리 여자 이상하다”라고 알리는 진샤. 하지만 진샤의 마음은 냉담한 시선을 거부하고 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에게 끌린다. 위험한 사건까지 휘말리는 둘. 이제 둘은 눈앞에 들이닥친 상황을 돌이킬 수 없다.
당황스럽다. 이 영화의 이야기는 우연에 의존하고 있다. 진샤가 ‘어쩌다 보니’ 초록머리 여자를 만나거나, ‘하필이면 거기에’ 어떤 물건이나 누군가가 있다. 영화적 허용이라기엔 그 우연이 내포하는 바가 무엇인지 노골적으로 드러나있다. 그렇다고 로맨스/여성/범죄영화로서 장르적인 장점을 잘 취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녹야>에서 로맨스는 두 사람의 키스신 말고는 잘 느껴지지 않고, 범죄영화로 보기엔 공권력의 집행이 모호하며, 여성영화로 보기엔 노골적이고 작위적인 화법이 아쉽다. 각본이 독특하지도 않다. 이 영화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 <델마와 루이스>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렇게 수많은 단점들 중에서 빛을 반짝이는 것은 한국 도시들의 황량함이다. 인천항의 건조함이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 깔려있는 그림자들이 인물의 고립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주영 배우의 팬들에게도 이 영화를 추천하긴 어렵다. 이 배우가 갖고 있는 고유한 개성인 중성적인 매력이 톡톡 튀는 방식으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극을 산만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이주영, 김영호 배우의 연기는 연극적이면서 판빙빙은 과잉된 감정연기를 보여준다. <야구소녀>와 <메기>같은 영화에서 볼 수 있던 그녀의 매력이 영화와 어울리던 것과 정반대다. 하지만 판빙빙과 이주영이라는 신선한 조합이 영화 외적으로 충분한 이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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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의 나는 미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4:3 비율의 화면, 창 밖으로 보이는 낯선 자동차, 머리를 땋아 내린 소녀. <롱레그스>(Longlegs, 2024)는 호러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미지로 시작한다. 우두커니 서 있는 차를 향해 걸어가는 소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관객은 벌써 마음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그 사이 홱 고개를 돌리는 카메라가 점프스케어를 예고한다.
포스터의 온갖 불길한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공포와는 달리, 영화는 수사물의 형식을 띤다. 우리의 ‘파이널 걸’이 될 주인공은 FBI 요원 하커이다. 그녀는 혼자이고, 일에 몰두하고, 약간은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어머니와의 사이가 소원하다. <롱레그스>의 중심이 되는 사건은 다름 아닌 연쇄살인이다. 딸이 열 네번째 생일을 맞는 날 아버지가 가족을 몰살하고 자살하는 사건이 20년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현장에는 알 수 없는 상징들과 ‘롱레그스(longlegs)’라고 적힌 편지가 남아 있다. 장기 미제 사건에 막 투입된 여자 주인공, 끔찍한 살해 현장의 재현, 범인의 정체와 악취미를 관객에게 공개하는 이 형식은 <양들의 침묵>(Silence of the Lambs, 1991)에서 물려받은 장르적인 유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롱레그스>의 특별함은 수사 과정에 틈입하는 호러 이미지이다. 가장 독보적인매력은 오래된 이미지 슬라이드처럼 4:3 비율의 화면에 담긴 풍경이다. 어린이의 시점에서 본 낯선 차, 연쇄살인마의 꺼림칙한 언행은 마치 옛날에 찍힌 홈 비디오처럼 등장하며 이야기를 열었다가 영화 중간에 기억이나 설명의 이미지로 작용한다. 참혹한 사건 현장, 부패한 시신, 마룻바닥 아래에 숨겨진 비밀이 연이어 등장하고 테이프에 녹음된 911 신고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주인공인 하커가 사건의 실마리를 좇는 동안 불길한 이미지는 그녀의 신경을 건드리듯이 몽타주처럼 빠르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스터리는 생각보다 쉽게 풀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커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무언가 끄집어내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하는 연쇄 살인마는 순순히 체포된다. 의외의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렵게 잡은 살인마가 하커와의 심문 도중 자살을 택하고 마는 것이다. 그는 ‘헤일 사탄’을 외치면서 자신이 사라져도 범죄가 계속 될 것을 예고하고, 하커에게는 또 다른 목표가 생긴다. 이러한 흐름, 즉 20년간 숨어 있던 사탄 숭배자의 존재와 그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비밀은 단지 사건의 연보만이 아니라는 지점이 흥미롭다. 범인의 진술을 통해서, FBI의 우수한 요원인 하커의 촉, 예민한 감각과 해독 능력은 다름 아닌 그에게서 왔다는 것을 관객들은 알게 된다. 이 주술적인 힘은 하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녀 자신 안에 있었다.
지금까지 하커가 사건을 파헤치도록 하는 에너지가 롱레그스 살인마의 설계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알고 나면 영화는 약간의 깊이를 더한다. 그에게 소녀가 자라 어른이 되는 것, 가정(가부장제)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곧 타락이다. 하커가 다른 소녀들과는 달리 살아남고 성장을 ‘허락’받은 것은 딸을 살리는 대신 자신이 조력자가 되기로 한 어머니 루스의 선택 덕분이었다. 하커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희생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머릿속에 침입해서 지배하려 하고 반인륜적인 행동을 일삼았던 살인마와 연결된 셈이다. 이 지점이 바로 <롱레그스>에 드리워진 또 한 겹의 공포이다. 가정에 군림하던 권력자가 사라져도 권력은 얼마든지 작용할 수도 있다는 비웃음, 그것 때문에 완전히 분리되고 만 모녀 관계는 영화 내내 관객을 괴롭히는 음향과 이미지만큼이나 거대한 공포이다.
<롱레그스>의 결말은 의외로 희망을 남긴다. 하커는 이 사건을 자신이 끝내야만 함을 알게 되고, 끝내 연쇄살인의 고리를 끊는다. 롱레그스 살인마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소녀가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기 위해, 다른 소녀들의 성장을 허락하기 위해 단호히 파괴를 선택하는 것은 그의 설계도에 없었을 것이다. 사탄에게 경배하는 대신, 하커는 생일을 맞아 마지막 희생자가 될 예정이었던 소녀의 손을 잡고 3인 가족의 집을 나서기로 한다.
개봉 전에 공개된 스틸 만으로 엄청난 기대를 불러일으킨 <롱레그스>는 예상보다 단순한 동기, 그러니까 사탄 숭배로 모든 것이 귀결된다는 결론 때문에 다소 밋밋한 이야기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커가 본능과 직감으로 암호를 해독하고 수사를 진척시키는 과정은 해답이 실은 자신 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밝히는 중요한 이야기인 것에 비해 피상적이고, 서스펜스는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고 사그라든다. 호러와 미스터리, 추리 같은 다양한 장르 사이의 균형과 긴장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레이어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다층적인 이야기의 가능성을 제시해 두고 결국 사탄이 악의 원천이라는 결론을 내는 결정은 호러 팬들을 설득하기에는 힘이 약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롱레그스>가 올해의 공포 영화 중 하나로 꼽히기에 충분한 이유는 호러 장르의 레트로 유행 사이에서도 트라우마와 암호, 증거물의 이미지가 독보적이라는 데에 있다. 이 이미지들이 주술적인 힘이 도사리는 세계에 묘한 리얼리티를 더하면서 매력으로 작용한다. 긴장감을 끊임없이 쌓아올리는 실력 또한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롱레그스>는 이렇게 불길한 에너지로 해방을 이야기하는 호러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 본 리뷰는 하이스트레인저 씨네랩에서 초대받은 시사회 참석 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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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 속 카나리아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기 오염으로 황폐해진 2071년 서울. 사람들은 네 구역에 나뉘어 산다.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되는 최상류층 거주 구역인 코어 구역. 중상류층 거주 구역인 특별구역. 산소를 공급받아 살아가는 일반구역. 아무런 지원이 없는 난민구역. 산소를 독점한 천명 그룹과 산소를 전달하는 택배 기사 없이 이 세계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언제나 혁명은 있는 법. 난민 출신 택배기사 '5-8'(김우빈)이 속한 지하 조직 '블랙 나이트'는 천명 그룹 없는 세상을 꿈꾸며 천명그룹 대표 '류석'(송승헌)을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에 5-8은 자기 진의를 의심하는 군인 '정설아'(이솜)와 택배기사를 꿈꾸는 난민 '사월'(강유석)을 이용해 류석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택배기사> 선배의 전철을 답습하다
한국 영화 시장은 SF 불모지다. 한국 SF 영화는 특히 더 성공하기 어렵다. 팬데믹 이후로 기간을 한정해 보자. 그나마 넷플릭스 <승리호>가 한국형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 <정이>나 티빙에서 공개된 <서복>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도 실패를 맛봤다.
의아하다. 한국 SF 영화는 왜 성공하지 못하는 걸까? 이유야 많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한국 영화는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소재 자체는 흥미롭다. 달 탐사, 안드로이드, 복제 인간, 외계인, 시간 여행... 할리우드도 오랜 기간 사랑한 아이템이다.
그러나 소재나 설정은 배경에 불과하다. 판은 잘 깔아놓지만, 결국 다른 장르로 돌아선다. <고요의 바다>, <정이>, <서복>의 끝은 모두 신파다. <외계+인 1부>도 SF라고 하지만 <전우치> 속편처럼 보인다. 굳이 SF 영화를 표방하지 않아도 스토리텔링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택배기사>도 마찬가지다. 한국 SF 영화의 고질병을 답습했다. 소재는 신선하다. 택배기사가 디스토피아 세계 질서를 유지하는 영웅이라는 발상. 대기 오염이 극심한 지구에서 산소를 확보한 기업이 권력을 잡는다는 설정. 그럴듯하다. 하지만 다른 SF 영화와 비교해 보면 <택배기사>는 실패에 가깝다. 소재를 활용하는 디테일, 소재와 주제 의식의 결합은 여전히 충분치 않다. 클리셰의 향연도 참신한 소재를 끝내 가리고 만다.
디테일: <매드맥스> 대 <택배기사>
<택배기사>와 비교하기 좋은 영화로는 우선 톰 밀러의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꼽을 수 있다. 소재를 활용하는 디테일의 문제를 한눈에 볼 수 있으니까. 두 영화는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좌지우지하는 '절대 반지'가 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영화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따라서 시각매체인 영화는 이 절대 반지의 힘을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매드맥스>는 과제를 훌륭히 수행했다. 뜨거운 해와 녹초 하나 없는 메마른 사막. 배경만 봐도 목이 탄다. 거칠게 울리는 배기음은 그 자체로 갈증을 일으킨다.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임모탄 조가 물을 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일순간 엄청난 양의 물이 폭포처럼 떨어진다. 사람들은 폭포 밑에서 물을 한 방울이라도 더 담기 위해 발악한다. 그 순간 이 디스토피아 사회의 계급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덕분에 관객은 언제 어디서나 물을 절박하게 갈구하는 맥스에게 이입하기 쉽다.
<택배기사>는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배경은 있다. 한국의 봄을 닮은 지저분한 대기와 메마른 땅은 산소가 중요한 이유를 알려준다. 그러나 산소의 중요성을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직접 보여주는 장면은 없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몇 분 못 버틴다는 대사는 힘이 없다. 등장인물이 너무나도 쉽게 마스크를 벗다 보니 임팩트가 부족한 까닭이다. 그 결과 산소를 지배하는 천명의 권세도 막연하게 느껴진다. <택배기사> 속 세계에 빠져들기 어려운 이유다.
메시지: <설국열차> 대 <택배기사>
<택배기사>는 메시지도 뭉툭하다. <택배기사>의 주제의식은 <설국열차>의 그것과 유사하다. 두 작품 모두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 삼아 체제 유지에 혈안인 기득권층을 비판한다. 자연 재앙이 닥친 가운데 권력층은 물자 배급을 제한한다. 철저히 칸을 나눈다. 단단한 계급 사회를 조직해 사회를 안정시킨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이용하는 비인도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이에 비기득권층은 폭동을 일으키고, 혁명을 시도한다.
하지만 <설국열차>는 단순히 계급투쟁을 다루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자고 쉽게 말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이 작품은 혁명이 궁극적으로 실패한다는 통찰을 보여줬다. 제 아무리 성공한 혁명이라 해도, 지배계층만 바뀔 뿐 실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혁명을 일으킨 이들도 권력에 취할 테니. 월포드가 커티스에게 자리를 넘겨주듯이. 그러니 이 악순환을 끝낼 방법은 하나다. 남궁민수처럼 아예 기차에서 탈출해야 한다. 따라서 <설국열차>는 불합리한 체제 자체를 송두리째 파괴하자는 외침이었다.
<택배기사>는 <설국열차> 같은 야망도, 통찰도 없다. 비판의 칼날은 충분히 예리하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안일하다. 시리즈 후반부에 천명그룹은 무너진다. 류석은 모든 권력을 잃는다. 그러자 대한민국 정부가 힘을 잡는다. 대통령은 새로운 보금자리인 A 구역이 모든 난민에게 열려 있다고 발표한다. 류석은 악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선으로 규정된다. '권력자만 바뀌었을 뿐 체제는 그대로 아닌가' 하는 의심은 이분법적인 구도 사이에 설 수 없다. 산소와 거주 구역이 여전히 권력자의 손아귀에 있는데도. 즉, 5-8의 혁명은 새로운 권력자에게 힘을 몰아줬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풍부한 이야기를 펼칠 만한 설정은 일차원적으로 소비된다. 예를 들어 5-8은 태양을 가린 먼지가 옅어지고 햇빛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기차 밖 얼음이 녹고 추위가 약해지고 있다는 <설국열차>의 설정과 판박이다. 그런데 함의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언젠가 마스크 없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는 일반론적인 희망을 보여주는 데서 그친다. 반면에 후자는 혁명이 단순히 지배층 타도에서 멈추면 안 된다는 핵심적인 설정이다. 기차 밖에서도 살 수 있으니 기차라는 시스템 자체를 파괴해야 한다는 야망이 담겼다.
카나리아는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택배기사>는 공허하다. 어두운 배경은 다양한 영화를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다. 대기업의 음모와 계급 사회에 대한 경고는 다급하지 않다. 공허함은 클리셰가 채워 넣는다. 대기업 회장과 저항군 리더의 멘토가 막역한 친구, 동료 사이였다는 식의 익숙한 반전이 뒤따른다.
막연하고 평면적이며 예측 가능한 대립 구도 속에서는 캐릭터도 살아남기 어렵다. 카리스마 있는 히어로도, 위협적인 빌런도 없다. 그저 나쁘게 보여야 하니 나쁜 짓만 골라하는 악역을 내세운다. 실제로 류석의 행적은 기업의 수장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어리석다. 그는 폭주하다가 알아서 무너지고 혁명은 성공했다고 치켜세운다. 에피소드 6개에 긴장감이 감돌 수도 없고, 결말에 쾌감이 있을 수도 없는 이유다.
더 큰 문제도 보인다. <택배기사>의 실패가 <택배기사>만의 실패가 아닐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접한 OTT 작품 중 적지 않은 수가 최소한의 개연성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익숙하지 않은 장르를 활용하지만, 고민의 흔적이 부족하다. 현실 속 사건, 클리셰, 상징적인 장면을 짜깁기하고 이목을 끌 스타를 앞세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우려된다. <기생충>과 <오징어게임>의 성공으로 촉발된 한국 콘텐츠의 성장이 양적 성장에서 멈추는 것은 아닐까 싶다. <택배기사>가 카나리아는 아닐까 싶다. K-콘텐츠 시장이 의외로 빨리 무너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는 노랑새는 아닐까.
Dreadful 끔찍함
K 콘텐츠의 새 미션. 카나리아가 죽기 전에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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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엇갈린 심장의 박동, 하트비트 (Les amours imaginaires, 2010)
다양한 사랑의 형태에 대해 말하는 자비에 돌란. 이번에는 짝사랑인지 모를 어중간한 경계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세 인물을 카메라에 담았다. 친한 친구인 프랑시스와 마리가 우연히 알게 된 니콜라를 좋아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미를 더해 표현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과 새로운 친구로의 관심이었지만, 뒤이어 사랑이라는 단계로 나아가며 두 인물의 암묵적인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평소엔 자주 집을 들르며 가볍게 차를 마시거나, 서로의 옷을 추천해주며 소소한 것까지 챙기는 사이에서 어느새 조금씩 관계의 균열이 생긴다. 나중엔 니콜라에게 주려고 산 선물들을 서로 비교하거나, 둘이 갈 만한 식당에 미리 들어와 우연한 만남임을 가장하는 듯 관심을 받기 위해 사소한 것들로 유치한 편법을 쓰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쌍방이 아닌, 너무 일방적인 사랑이지만 이에 대응하는 니콜라의 태도 또한 두루뭉술하다. 이 모든 행동들을 다 그저 우정으로 치부해버리는 듯, 이 상황에 연연하지 않고 둘과의 만남을 즐길 뿐이다.
#솔직한 감정선과 미장센
관객의 입장에서는 상대적으로 혼란스러움을 겪는 프랑시스와 마리의 입장에 더 공감하고, 좋지 않은 끝에 도달할 것을 알지만 적극적으로 애정을 주는 이 둘에게 왠지 모를 연민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이 겪는 슬픔과 공허함이라는 경험이 우리에게 더 익숙해서가 아닐까. 영화와 같은 매체들에서 사랑은 꽤나 이상적으로 그려지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개인적인 감정 속에서, 어쩌면 가장 내밀하고 들키고 싶지 않은 속성이 바로 사랑을 함으로써 수반하는 아픔일 것이다. 짝사랑은 항상 아프고 외로우며, 그렇기에 세 인물이 함께하는 장면들은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런 모습들을 미묘한 표정 변화와 강한 원색의 빛으로 돌란은 우리가 그 순간을 오롯이 받아들이도록 의도한다. 다른 누구와 밤을 보내거나 함께 있을 때, 프랑시스와 마리는 그제야 자신의 솔직한 좌절감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린다. 이때 파랗고 빨간빛들로 그들을 비추어 날것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화보를 연상시키는 몇몇 연출들로 돌란만의 미장센을 한층 더 강화시킨다.
#구성의 변화와 결말, 원제의 의미
초반부와 중후반부에 독특한 구성이 있는데, 크게 두 챕터로 나뉜 독백 파트가 존재한다.
처음엔 사랑의 환상에 빠지게 되는 순간, 다음엔 그 환상이 걷어지고 현실을 맞이하게 되는 순간을 영화밖에 존재하는, 여러 인물들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이런 시점을 기준으로 세 인물들의 사랑의 방향은 서서히 달라진다. 영화 자체의 스토리 라인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볼 수 있어서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면은 사랑의 본질에 대한 보편적이고 어쩔 수 없이 반복되는 고리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대상이 변하는 것이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재밌게 표현한다.
<하트비트>의 원제 Les amours imaginaires, 다시 말해 ‘상상 속의 사랑’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한다. 보통 잘 깨닫지 못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 사람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씌워놓은 환상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 속에 갇힌 사랑은 결국 나에게 돌아와 박히는 아픈 가시일 뿐인 것을 간과한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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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킹스맨이 한국에서 성공한 이유 #3
환몽(幻夢) CINE 리뷰 3화_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
** 영상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 킹스맨 감독과 인물 소개 및 비화
- 킹스맨이 왜 유독 한국에서 성공했을까?
-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
- 기타 영화 관련 썰 - 일루미나티 등
- 우리가 꼽은 명장면
- 몽's 한줄평
영화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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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리 사랑이 향기로 남을 때> 메인 예고편
코 끝에서 시작되는 달콤한 사랑?! 삶에 치여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해본 남자 ‘창수’(윤시윤) 낯선 이에게 받은 향수를 뿌리자마자 여자들이 달려든다?! 가족에 치여 누굴 좋아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여자 ‘아라’(설인아) 어느 날, 매일같이 타던 버스에서 나는 향기에 두근대기 시작한다 ‘창수’에게 이끌린 ‘아라’는 영문도 모른 채 사랑에 빠지고, 서툴러도 조금씩 사랑을 키워나가던 그때! 갑작스럽게 등장한 전 애인 ‘제임스’(노상현)가 폭로한 ‘창수’의 비밀! 내가 사랑에 빠진 게, 향수 때문이라고? 2023년 2월, 마법 같은 로맨스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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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침묵의 숲> 30초 예고편
청각 장애가 있는 소년 ‘창청’은
특수 학교로 전학을 간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푼 ‘창청’은
‘베이베이’라는 소녀와 가까워지게 된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통학 버스 뒷자리에서 ‘베이베이’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을 목격하게 되고,
‘창청’은 ‘베이베이’를 구하기 위해 용기를 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