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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정2021-12-08 21:42:11

풋풋한 종이 내음 첫걸음

영화 <마이 뉴욕 다이어리> 리뷰 (2020, 필립 팔라르도 감독)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천재들이 있다. 그들의 영역은 확고하지만, 아무에게나 허락되지는 않는다. 좁은 문을 여는 이들은 강렬하다. 때론 자신을 불태워 버릴 만큼 이글거리기도 하고, 모난 정처럼 망치를 맞는 경우도 있다. 꿈꾼다고 이룰 수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이런 삶을 꿈꾸는 이도 현저히 적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감각적인 언어로 소설을 쓰는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막연하게 동경만 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꿈꾸는 작가 상도 분명 그런 파괴적 천재는 아니기가 쉽다. 보기 좋은 카페에 앉아, 멋진 도구(노트북이 됐든 만년필이 됐든 연필이 됐든)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에 가깝기가 쉽다. 겪어보기 전까지는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조차 달콤해 보인다. 이 문장은 저격이라기보다 자아비판이다. 내게도 낯설지 않은 감각이므로.

 

<마이 뉴욕 다이어리>가 시작되면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풋풋한 미소를 짓는 조안나도 그런 단계에 있다. 5개 국어를 하고 여행을 다니고 소설을 쓰는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하며 웃는다. 그리고 지금은 조안나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그의 사회생활 초년기다. 잡지에 시를 투고해 등단했고, 친구를 만나러 왔던 뉴욕에 눌러앉는다. 싸구려 아파트에서,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일자리도 구한다. 작가 에이전시에서 일하면서, 작가(이자 작가 지망생)인 자신의 정체성은 숨겨 두어야 하는 이중생활이다.

 

<마이 뉴욕 다이어리>는 뚜벅뚜벅 혼자 삶을 개척해 가는 젊은이의 성장을 담으려 했다. 해리와 샐리의 설왕설래 없이 혼자서 걷기에도 뉴욕은 아름답다는 것을, 악마도 프라다도 아닌 상사 아래서 충분히 단단한 시간을 쌓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인간의 젊은 날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풋풋한 종이 내음 안에서 따스한 톤의 색깔로 펼쳐 보인다. 다만 영화의 전개도 어쩐지 그만큼 풋풋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이 영화의 원제는 <My Salinger year>다. 여기서 샐린저는 "그 유명한" 소설가 J.D. 샐린저. 이런 "그 유명한" 이들의 작품을 안 봤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걸 안 봤다고?" 하며 놀라는데, '나만 안 본 천만 영화', '나만 안 본 베스트셀러'는 사실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나름대로 열심히 읽고 쓰며 지내온 조안나지만, 미국 십대라면 읽지 않을 수 없다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비롯해 샐린저의 책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이런 걸 말할 때는 좀 부끄러운데, 나도 그렇다.) 뉴욕에서 새로 사귄 남자친구도 "믿을 수가 없다"라고 반응하지만, 어쩌겠는가. 안 읽은 걸.

 

그런 조안나지만 문학 전공을 따라 작가 에이전시에서 일하게 되고, 맡게 된 작가가 하필 샐린저다. 보통의 작가와 달리 계약 관계를 검토하거나 출판 현황을 체크하는 업무보다, 작가의 은둔 생활을 보호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세계 곳곳에서 보내오는 팬들의 편지는 잘 검토한 뒤 갈아버리고, 정해진 양식대로 답장을 보내야 하며, 다른 시간에는 타자기로 녹취록을 풀어내는 단순 업무가 대부분이다. 정작 타자기도 칠 줄 모르고, 에이전시에서 선호하지 않는 '작가'지만, 그 사실은 잘 숨긴 채 무사히 취업에 성공한다. 그리고 가끔 샐린저와 통화할 기회가 생긴다.

 

 

시고니 위버가 분한 사장 마가렛은 이미 산전수전 다 겪고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성공한 직장인이다. 배경인 1995년 기준으로 사무실에 컴퓨터를 들이고 싶지 않다며 타자기 사용을 고수할 만큼 변화를 좋아하지 않지만, 감각은 기민하다.

 

분명한 마이 웨이를 가진 상사와, 정석대로는 가지 않지만 아이디어 반짝이는 신입이라는 클리셰. 샐린저의 팬들에게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고 싶다는 조안나는 마가렛과 의견이 부딪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게 되겠지. 상사는 신입을 키워볼 만한 좋은 젊은이로 인정하고, 신입은 상사의 연륜과 보호에서 더욱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이다. 동시에 샐린저를 통해 문학을 향해 힘찬 도약을 이루게 되겠지.

 

게다가 그 배경은 90년대의 정취가 담긴 아름다운 소품과 의상, 낭만을 가득 담은 뉴욕의 정경, 그 안에서 펼쳐지는 싱그러운 초년의 시절. 아름다운 정서를 담뿍 전달하기에 더할 나위가 없다.

 

 

그 기대는 살짝 아쉬운 선에서 충족된다. 마가렛과의 관계도 샐린저와의 관계도 또한 팽팽한 힘 없이 축 늘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유가 뭘까. 나는 조안나라는 캐릭터의 설정에는 공감했지만, 그 설정은 영화 속 언행과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로 등단했다는 점, 대학원을 중퇴하고 뉴욕으로 왔다는 점, 글을 쓰고 싶어 한다는 점을 대사로는 설명하는데, 극 중 모든 행동에선 드러나지 않는다는 느낌. 마치 내가 처음 썼던 단편 시나리오 같다. 내용을 전달해야 한다는 점에 급급해서 정작 사건으로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설정해둔 캐릭터 특성을 대사에 마구 욱여넣었던…

 

샐린저라는 작가를 맡은 에이전트임에도 러닝타임 후반부에서야 샐린저를 읽기 시작하는 인물이, 샐린저의 책에 감명을 받고 편지를 써오는 사람들에게 대체 무슨 답장을 하고 싶어 하는지? 조안나는 '진심' 어린 답장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가 보내고 싶은 진심이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글을 쓰지 못하는 자신을 괴로워한다는 설정도,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잘 아는 감정이기에 넘실넘실 다가올 뿐 영화에서 잘 보였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영화 속 인물이 꼭 실제 직장인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 조안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여줄 수도 없다. 그러나 결말까지 가는 동안 조안나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배경이 직장이고 직업적 성취에 대한 이야기라면, 어느 정도 일에서도 글에서도 보여줘야 하는 영역이 있지 않을까? 바둑 두다 낙하산 타고 대기업 들어간 장그래도 '쟤는 언제 자나?' 싶을 정도로 노력하는 모습들을 함께 담아, 가까스로 쌓은 기초 지식에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붙여 자기 자리를 확보해간다는 설정에 개연성을 확보했듯이. 그런 개연성의 노력이 없는 채로 조안나는 엉성하게 그려지다 말았다. 그럼에도 얼기설기 풀려나가는 조안나의 시간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말로 스토리를 눙쳐 버리는 수준이다.

 

 

샐린저와 마가렛에게 각각 문학 조언과 업무 조언을 들으며 성장의 양 날개를 펴는 지점에서는 다소 의구심이 일지만, 동시에 그 미숙하고 모자란 면면은 조안나라는 캐릭터의 매력이기도 하다. 미숙하고, 엉망진창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발을 떼어 보는 것. 그 시기가 아니라면 차마 가질 수 없는 마음. 많이 계산하지 않는 속내. 그래서 어쩐지 응원하고 싶어지는 단계. 그때 동경하는 삶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간다는 건 축복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 마음이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과 명확한 연관 관계가 있는지 그건 모르겠다. 다만 나는 문학과 얽힌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길 잃은 기분도, 그걸 박차고 풋내 나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할 때의 기분도. 멋진 어른을 보며 존경하기도 하지만 결국 나는 내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과 동시에,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칼을 날리고, 내가 여기 있구나, 새삼스러운 그 기분. 막연함과 외로움, 설렘. 그 자리에 함께 놓여 있는 문학.

 

 

미묘한 아쉬움을 그렇게 젊음과 문학이라는 단어가 벌충한다. 포스터 카피대로 여기는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아니라 첫 페이지니까. 그렇게 자신을 알아가고, 세상을 알아가고, 그렇게 자라날 테지. 내게 이 이야기가 멋진 성장기로 다가오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씩씩하게 발을 떼는 조안나의 첫걸음에서는 풋풋한 종이 내음이 났다.

 

*온라인 무비 매거진 씨네랩에서 시사회에 초대받아 감상하고 작성한 글입니다.

 

작성자 . 선이정

출처 . https://brunch.co.kr/@sunnyluvin/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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