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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hilarious2021-08-13 15:53:22

당신만의 숲

영화 팜스프링스 시사회 리뷰

한 아름다운 커플이 결혼을 한다. 그 결혼식의 참석자이자 약간은 얼간이같은  나일스는 사실 남의 결혼식이 열리는 그 날을 반복해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결혼식도 아니고, 자신의 친구도 아닌, 자신의 여자친구의 친구 결혼식을 어제도 보았고, 오늘도 보며, 내일도 보게 될 것이다. 무한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혀버린 것이다. 그렇게 남들에게 지나가는 하루이지만 나일스에게는 똑같이 반복될 그 하루를 사는 와중에 세라를 만나 의도치 않게 그녀를 이 타임루프 세계에 끌어들인다.

나일스와 광란의 밤을 보내다가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혀버려 그의 인생을 망친 대가로 나일스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나일스 사냥꾼 로이를 포함해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불멸의 저주에 걸린 이들은 과연 이 역경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아니, 헤쳐나갈 마음들은 있는 건가??

 

1. 병맛 코드 속 숨겨진 진지한 메시지

이 영화는 정말 웃기다.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는 병맛을 넘어 정말 통통 터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영화 속에서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나일스, 세라 그리고 로이를 보고 있자면, 하루하루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보는 것 같았다.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허우적대는 그의 모습은 큰 보상없이, 이벤트 없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흘러가는 일상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다보니, 어제 내가 저녁으로 뭘 먹었는지, 내가 지인을 만난 게 어제인지, 그제인지 잊는 나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면서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의 체념, 방황에서 비롯된 현대인들의 우울한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분명히 영화는 병맛 코드로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알 수 없는 짠함, 우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현대인들, 특히 직장인들의 삶은 큰 변화랄 것이 없다. 그저 오늘도 회사와 집을 오가며, 내일도 회사와 집을 오갈 것이고, 어제도 회사와 집을 오갔을 것이다. 그 와중에 상사에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고, 다른 친구와 비교를 하며 자괴감에 빠졌을 수도 있으며, 자신이 옳지 못한 행동을 저질러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인생 자체에서 크게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잊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난 과거에 뭘하고 살았는지 잊었어요. 기억이 잘 안나요."


 

현대인 중에서도 나일스는 이미 인생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렸는데, 다른 길을 찾아가 볼 생각조차 안하고, 체념한 사람을 상징한다. 앞으로 더 나아가볼 생각조차 포기한 사람들, 말하자면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을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였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마냥 웃고 있지만 속은 문드러진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과거에 내가 한 실수들을 바로잡을 생각도 못하고, 과거를 잊은 듯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래서였는지, 그냥 그가 처한 상황, 타임루프의 원인도 궁금해하지 않고, 그저 시니컬하게 오늘은 어떤 일을 하면서 어떻게 흘러갈지 다 보이는 결혼식 날을 보내야 할까 고민을 하면서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모습을 보인다. 누군가는 그가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으니, 현재라도 충실하게 사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타임루프 상황에서 고통받고 있으면서도 타임루프를 벗어나 볼 생각도 없이 체념하고, 안주하는 모습이 더 현실성 있다고 보여진다.

반면, 세라는 나일스와는 달리, 그녀가 처한 이 말도안되는 현실을 바꿔보려고 발버둥치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녀가 이토록 발버둥치는 이유는 그녀의 내면 속에 자리잡은 자기비하적인 감정, 자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자책감, 나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비하적 감정은 그녀를 갉아먹고 있었지만 그녀 내면 깊은 곳에 그녀도 이런 거지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반작용적 감정도 있음을 보여주며, 그녀의 부정적인 일면이 그녀의 진취적인 면모를 더 부각시킨다.

 

이 비슷한 듯 다른 두 남녀의 차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결국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려있음을 시사한다.

 

2.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영화가 진행될 수록 영화 속 캐릭터들은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각자만의 인생관을 대표하는 논리를 펼치는데, 그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나일스의 관점은


"어차피 이 타임루프 세계를 나가도 크게 대단하게 좋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이미 내가 익숙해진 세계이고, 크게 부족한 것이 없으니, 예상치 못하게 위험해질 수 있는 타임루프 밖의 세계는 이제 관심없어졌다."


라고 한다면, 세라의 관점은


"그래도 이 타임루프 세계를 벗어나면, 우리는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지 않는가, 내가 과거에 행했던 과오들을 털어내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이 똑같은 일상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한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이렇게 죄책감을 안고, 안정감을 추구하기 보다는 과거를 청산하고, 위험한 불확실성에 배팅을 해보고자 한다."


라는 것이다. 이 비슷한 듯 다른 두 남녀의 차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결국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원동력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뿐만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는 타임루프 세계관에서 살고 있는 이 두 남녀 뿐만이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은 결국 안정감 vs 도전 정신으로 압축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관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혹은 당신은 어떤 관점에 동의하는지.  나는 개인적으로 세라에 생각에 동감하는 편이다.

 

3. 당신의 어바인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으로 세라의 관점에 동의하지만 로이처럼 타임루프 세계관에서 꾸준히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아주 부정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세계라면, 나만의 안식처를 찾아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 중에서 자신이 긍정하고 살만한 이유를 찾는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괜찮은 삶일 것이다. 로이가 그러했듯이.

 

하지만 난 이게 나일스의 시니컬한 체념과는 달리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일스는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체념한 것이었다면, 로이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진행될 날들이지만 자신의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흐뭇해하고, 자신의 아내가 더 이상 나이들지 않을 수 있음을 긍정하면서 자신의 삶까지 긍정하니, 더 이상 나일스 사냥꾼 노릇을 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의 망가진 인생을 책임을 나일스에게 돌리지 않아도 될만큼 행복하게 살 만한 숨통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런 로이의 삶의 방식을 통해, 누군가는 세라처럼 쳇바퀴 같은 삶을 용기있게 나올 수 없을지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남탓을 하지 않고, 자신만의 어바인, 즉, 인생의 소확행을 찾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삶을 살아낸다면, 그 삶을 체념으로 점철된 망가진 삶이라고 누가 평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처럼 우리 모두 조금씩 우울하고,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하고, 가끔 남도 원망하면서 조금은 찌질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자신을 위로하거나 자신을 기쁘게 하는 당신만의 어바인을 찾아낸다면, 당신은 세라처럼 쳇바퀴 같은 삶을 뚫고 나갈 용기가 없음을 비관하면서 살아갈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 모두 거창한 용기 없어도 되니까 자신만의 숲을 찾아 안정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버텨내는 미학에 대해 고찰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은 당신만의 어바인이 있나요?

 

 

■     해당 영화의 시사회는 씨네 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작성자 . Anonymoushilarious

출처 . https://brunch.co.kr/@lanayoo9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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