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티2021-12-12 07:53:20
찬란한 도시에 적신 화려한 꿈은 영원히 공허하리라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리뷰
? About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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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가 라이트 감독 / 토마신 맥켄지, 안야 테일러 조이 주연
영국 / 117분 / 공포 / 19+
2021.12.01 개봉 (D+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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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Words Review
찬란한 도시에 적신 화려한 꿈은 영원히 공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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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int
<베이비 드라이버> 에드가 라이트의 귀환, 감각적이고 매혹적인 호러, 1960년대 런던의 생생한 고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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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국내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려 왔던 <라스트 나잇 인 소호>를 드디어 만났다. <베네데타>와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꼭 관람하고 싶었던 작품인데 올해 안에 국내 개봉을 해줘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감독 ‘에드가 라이트’가 바로 이전에 연출했던 <베이비 드라이버>를 몇 번이나 봤을 정도로 좋아했었기 때문에 이번 영화도 기대를 아예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연출도 연출 나름이지만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흐름을 정말 센스있게 잘 표현해줬기 때문에 이번 <라스트 나잇 인 소호>도 기존 호러 장르와는 색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은 맞았다. 고혹적이며 매혹적인, 야망에 가득찬 샌디와 1960년대의 화려한 런던의 모습들 그리고 그 사이를 적시는 번쩍이는 음악들. 꿈을 통해 서로를 만나는 앨리와 샌디의 투 샷도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사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주인공 ‘앨리’의 자아에서 오는 분열을 그리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숨어있다. 후반부에 갈수록 청불 장르에 맞지 않게 하이틴 호러물이 되는 것 같아 아쉬움도 살짝 남았지만 주제의식도 어느 정도 뼈대 있게 드러나고, 보는 재미 그리고 스토리에서 오는 기교를 느끼는 재미가 정말 컸다. 각자마다의 찬란한 꿈을 가진 샌디와 앨리가 과연 화려한 런던의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안야 테일러 조이, 아니 샌디의 다운타운 독무대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황홀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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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고 지는 것 이전에, 가슴 뛰는 것 영화 <승부>가 말하는 승부의 태도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못해 잔인하다.
세계를 제패한 조훈현은 국민적 영웅이 되었고, 신문 1면과 광고를 장식했다.그는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넘어야 할 존재이자, 누군가에게는 꿈을 꾸게 하는 우상이 되었다. 모든 것을 가진 듯한 그의 앞에, 이창호가 나타난다.'
족보도 방법도 없지만 특유의 스타일로 여러 사람 잡는 신동이라 불리는 창호는 훈현과 대결을 위해 그가 내어준 과제를 밤낮으로 고민하여 풀어낸다.
창호의 집념을 본 훈현은 그를 집으로 데려와 제자로 삼게 된다. 어린 창호는 기원의 모든 사람들을 상대하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인다.
바둑 천재는 서서히 성장하고 스승과 맞붙는 그야말로 청출어람의 면모를 보인다. 이때까지 따라온 관객들은 당연히 이창호가 조훈현을 이길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영화의 줄거리를 놓고 본다면 이름과 같이 승자와 패자의 이야기로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서사를 풀이하는 시선을 패자인 조훈현에게 부여하여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패자를 응원하게 만든다.
훈현은 어찌 보면 인간미 없는 대국 매너를 보여주기도 한다.
승리를 예감하면 다리를 털거나 노래를 부르는 등 상대를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처럼 보이기까지 하는데 승자에 위치에 오르는 것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제자와의 대국에서 패배하고 큰 충격을 받게 되는데 이후 제자의 기보를 분석하면서 자신의 실수를 알게 되지만 이를 인정하지는 않는다.
사실 이미 책으로 만들어진 훈현의 기술과 수없이 그의 대국을 분석하며 자라온 창호에게 패배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훈현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창호의 방식을 부정하며 기본을 강조하고 문법적인 이야기를 반복한다.
창호의 바둑은 최대한 파괴하지 않고 많은 것들을 가지고 오는 방식이며 이는 공격하는 성향을 가진 훈현에게는 단지 부족한 것이었지 또 다른 방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훈현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연속적인 패배 이후 바둑을 포기하려 하는 훈현. 하지만 묵묵히 자신을 응원해 주는 아내가 못난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말에 잊고 지냈던 스승을 생각한다.
스승의 가르침 아래 적힌 아직은 일등이 아니던 시절에 쓴 자신의 각오를 보며 훈현은 바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바둑은 나를 이기기 위한 싸움이다”
바둑판에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지어 나가는 것.
훈현은 훗날 이것을 제자 이창호에게 건넨다. 오직 내가 나와 싸우는 것이 바둑에서의 진정한 승리임을 깨닫고 이기는 것보다 다음을 기약한다.
패배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이야기는 영화 승부의 서사는 매력적이고 또한 지극히 판타지적이다. 주변에서 볼 법한 캐릭터지만 결코 쉽게 보기 어려운 캐릭터들을 연출적으로 탁월하게 활용한다.
특히 조우진 배우가 맡은 남기철은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언제나 패배한다.
훈현의 라이벌로 불리지만 언제나 패배하는 쪽이었고, 그의 제자 창호와의 승부마저 패배했다.
비매너로 경기를 임하는 훈현에게 분노하지만 다시 붙을 날을 위해 칼을 가는 기철은 일등과 이등을 가리는 순위권에는 들지 못한다.
승부의 세계는 단순히 잘하는 것을 넘어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남기철은 멋진 경기를 보고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야말로 바둑 그 자체를 사랑하는 인물로 나온다.
가끔은 어떻게 이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동안 진짜 사랑하는 것에 대해 잊고 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순수하게 노력하고 바둑 그 자체를 즐기는 남기철을 보여주며 진정한 승부에 대해 말해주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넷플릭스 공개 예정이던 이 작품이 극장으로 넘어가게 되며 영화의 가장 탁월한 부분인 배우의 연기를 거대한 스크린에서 보며 압도당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스크린에서 감상할 수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인 영화 <승부>가 현 극장 시장에 좋은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바란다.
고 남문철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출처 :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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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트롤 프릭 휴그랜트와 함께하는 방탈출 시간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A24. 영화사 브랜딩이라는 멋들어진 전략에 당해버린 나 역시 그들이 지금껏 보여주었던 차별화 된 작품성을 믿고 <헤레틱>을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드소마>, <유전>, <보 이즈 어프레이드>와 같은 아리 에스터 감독의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으며, <톡 투 미>, <램>, <라이트 하우스>, <킬링 디어>, <더 위치>로 거슬러 올라가는 A24의 공포 영화 계보에서는 항상 거칠지만 신선한 장르적 아이디어를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각본과 감독은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로 알려진 스콧 벡(Scott Beck)과 브라이언 우즈(Bryan Woods)가 맡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촬영 감독이 박찬욱 감독과 <친절한 금자씨>, <박쥐>, <아가씨>에서 협업한 정정훈 감독이라는 점이다. 감독의 전작을 인상 깊게 본 관객이라면 관람을 추천한다.
<헤레틱> 북미 포스터
<헤레틱> 또한 그동안의 A24식 공포영화들처럼, 첫 입부터 구미를 당기는 자극적인 설정들로 대중을 유혹한다. 모르몬교 전도를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두 10대 소녀, 팩스턴과 반스가 언뜻 평범한 가정집에 들어가고, 집주인이 아내가 만든 블루베리 파이를 가져오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책상 위에 올려진 블루베리 파이 향 초를 발견하고 만다… 이후 두 소녀에게 일어날 각종 호러적 환상들과 신앙적 갈등이 가져다줄 서스펜스를 기대하며 관객은 달아오른다. 꼼짝없이 갇힌 신실한 두 소녀와 전지전능한 주도권을 가진 집주인 리드 씨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공포영화의 클리셰. 여성 주인공의 몸부림과 지배 관계에서의 탈피 내러티브는 관객의 기대를 보장하는 흥행 요소 중 하나이다. 여성 피해자화의 스펙터클은 젠더화된 공포와 고통을 관음증적 차원에서 장르적으로 자원화하며, 공포영화의 묵은 관습처럼 자리해왔고, 이제는 장르적 특성을 대표하는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발전적인 차원의 신선한 기획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어찌 되었건 클리셰는 클리셰다.
<스크림> 시리즈의 시드니 프레스콧
다행히 <헤레틱>은 단순히 장르적 안정성만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뻔할 수 있는 장르적 특성에 종교에 대한 사색을 가미했다. 그리고 이는 영화의 전반부를 가로지르는 엄청난 양의 대사를 통해 구현된다. <헤레틱>의 전반부를 감상하며 흥미로울 만한 지점은 인물들의 대사와 대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미묘하게 변화하는 상징적 의미와 공기의 흐름을 읽는 재미에 있다. 파격적으로 변신한 휴 그렌트와 소피 대처, 클로이 이스트가 펼치는 공방에 관객들의 눈과 귀는 탁구공처럼 삼각지대를 오간다.
영화가 시작하며 팩스턴과 반스 자매가 나눈 뜬금없는 매그넘 콘돔에 대한 이야기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의구심을 시사한다. 매그넘이 사실 일반 콘돔과 똑같은 크기이자, 마케팅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불신. 그리고 지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며 실제로 큰 사이즈가 맞다고 이야기하는 믿음. 그러나 둘은 모르몬교의 신실한 신도들이기에 ‘순결의 법’에 따라 자신들의 믿음/비믿음을 검증할 길이 없다. 실제로 볼 수 없고 검증할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믿음/비믿음을 형성하는가. 약간은 불경하지만, 신에 대한 믿음 역시 이러한 질문들과 떨어질 수 없다. 벤치에 적힌 Who says size dosen’t matter? 이라는 카피는 언뜻 씬의 유머 감각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보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신성이 더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종교의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라는 현대인들에게 아직도 진리-믿음의 문제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표지판 같기도 하다. 사이즈처럼 볼 수 없는 것에, 비가시화된 욕망, 신성, 진리에 인간은 휘둘린다.
리드의 집에 들어서면서, 이 질문은 점차 심화되기 시작한다. 모르몬교가 사실은 다른 종교들의 변형인 것을 알고 있냐는 질문으로 시작한 장황한 연설은 기독교의 예수를 페르시아 신화의 미트라, 이집트 신화의 호루스(a.k.a 새대가리), 힌두교 신화의 크리슈나와 연관 지어 기묘한 공통점을 드러내고, ‘표절’과 ‘변주’로 점철된 종교의 허상성을 지적한다. 그의 연설은 모노폴리와 라디오헤드의 creep에 숨겨진 3단 변신까지 더해져 결국 종교의 비본래성, 비본질성을 폭로하는 회의와 의심으로 귀결된다. 반스가 지적한 대로 조악하고 과장된 논리의 파편에 불과함에도, 휴 그랜트의 열연과 음모론적 흥미를 등에 업고 이야기는 영화의 척추를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으로 관객을 이끌어간다. 진정한 하나의 종교는 무엇인가. 그 답을 알려주겠다는 리드 씨의 말에 두 소녀는 믿음과 불신의 문 앞으로 이끌린다. 영화의 전반부는 이렇듯 종교에 대해 인류가 갈망해왔던 현학적 질문들로 점철되어 관객의 기대감을 극도로 고조시킨다.
중후반부의 장르적 서스펜스를 넘어, 살아남은 팩스턴 자매가 얻은 답은 ‘진정한 하나의 종교이자 신은 통제’라는 것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일리 있는 해답임에도, 어쩐지 초반부에서부터 쌓아 올렸던 기대감은 충족되지 못한 채 헛헛한 마음을 남긴다. 그 헛헛한 마음을 나 몰라라 밟고 지나가는 후반부의 Predictable 한 마무리까지. 궁지에 몰린 팩스턴의 모습에서 처음 지하실을 탈출하려다 떨어뜨렸던 각목의 잔상이 연상되자 앞으로의 일들이 눈에 선히 펼쳐졌다. 클리셰로 흥(?)한 자, 클리셰로 망하리라. 결국, 수많은 공포영화 속 여주인공들처럼 반스의 기적적 도움을 얻은 팩스턴은 기지를 발휘해 저택을 탈출하고, 설경 속 나비와 함께 이교도의 일탈은 막을 내린다.
다시 돌아와, 진정한 하나의 종교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통제’라는 답을 내놓으며 종교를 구조주의적으로 해석한 돌파구는 흥미롭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특성과 사회학적 아이디어는 의미론적으로 충돌하며 그 한계를 갖게 된다. 리드가 설파한 통제는 외압과 폭력에 의한 강압적 통제라기보다는, 푸코적 의미에서의 통제에 가깝다. 즉, 리드가 주장한 통제의 본질은(자신이 통제 안에 있다는 것조차 영화의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았던 팩스턴의 경우에서처럼) 자기 통치에 의해 자유롭게 행위하는 타자들의 행위에 대한 행위 양식이라는 점에서 드러난다. 권력과 규제의 진정한 호러적 면모는 타인의 의지를 억압하고 묵살하는 힘이 아닌, 스스로 통제의 규범에 따라 행위하고자 하는 유순한 신체의 생산에서 발견된다. 리드는 결국 선택지를 통제하고 자유로운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과 같이 구조주의적 통제의 방식을 종교의 본질이라고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종교의 특성은 흡사 푸코가 주장한 판옵티콘과 같은 감시 권력의 체제와 닮아 있다.
감시가 불연속적으로 작동할지라도 감시의 효과가 지속되도록 하며, 개개인이 감시 권력을 내재화한 주체이므로 형식적으로 감시 권력이 작동할 필요가 없다는 판옵티콘의 특징은 리드의 고백으로 신앙을 가슴에 품고 스스로 신실한 신자의 주체를 생산하는 종교인의 모습과 얼핏 겹쳐 보인다. 신(권력)의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으며 감시 관계의 내면화를 행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는 냉소적 관점이다.
푸코와 판옵티콘
그러나 과연 리드의 일련의 행동들을 푸코가 주장한 비가시화된 통제성이라고 볼 수 있는가? 팩스턴과 반스라는 클리셰적 여성 캐릭터를 피해자-여성의 정체성으로 설정한 덕분에, 즉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까닭에, 관객은 두 소녀의 선택을 ‘자유롭다’라고 인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처음 두 가지 문 중 하나를 선택해 지하실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특히 이 모순이 증폭된다. 두 인물이 문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리드는 암묵적으로 강제력을 행한다. 어느 문을 선택하든 해치지 않을 거라는 말로 자유를 주었다고 하기엔, 두 인물에게 부과된 폭력을 행사할까 두려워하며 순종하는 공포영화에서의 피해자-여성의 양상은 리드가 주장한 구조주의적 통제의 의미와 조응하지 못하며 이중 축을 형성하고, 영화의 긴장감을 와해시키는 결정적 맹점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맹점으로 리드의 캐릭터는 진심으로 자신의 가설을 시험하고자 하는 종교적 믿음이나 사명이 있는 ‘이교도’라는 정체성보다, 그저 자신의 조악한 가설에 자기 위로를 구하는 사이코패스에 가까워지면서 신비주의적 아우라가 사라지고, 어쭙잖은 변명으로 자신을 포장하고자 하는 흔한 범죄자로 전락하고 만다. 때문에 구조와 통제로부터의 탈피가 우연이나 자유의지, 반스의 희생을 통한 영성의 존재로 이루어진다는 영화의 종결부는 정작 구조로부터의 탈피와 바깥에서의 사유가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 거론하지 못한 채로 힘을 잃고 마무리된다. 2시간에 달하는 영화의 흐름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긴장감이었음에도 약간이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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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얘기 <D.P>는 왜 재밌는가
군대 얘기가 재미 없는 게 아니라
흔히들 생각한다. 여자들은 남자 군대 이야기를 안 좋아한다고.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 군대에서 마티즈만 한 멧돼지를 본 얘기, 군대에서 자면서 야간행군을 한 얘기 등등. 하지만 군대의 '군'자만 들어가면 여자들이 미간을 찌푸린다는 건 어쩌면 옛날 얘기일지도 모른다.
최근 군대 이야기를 다루며 넷플릭스에서 입소문을 탄 웹 드라마 <D.P.>가 장안의 화제다. D.P. 란, Deserter(탈영병) Pursuit(뒤쫓음)의 약자로, 즉 군대 내 탈영병들을 쫓는 '군무 이탈 체포조'를 일컫는다. 군대에서 일어나 군대에서 마무리되는 이 뼛속까지 군대 얘기인 드라마를 이토록 열광하며 보는 게 남자들 뿐일까? 여자인 나도 3일 만에 이 드라마를 정주행 했으니 그런 것 같진 않다. 군대 경험과 지식이 전무한 여자들에게도 이 드라마는 미치게 재밌었다는 얘기다.
드라마는 안준호(정해인)가 육군 헌병대 D.P. 에 차출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낱개의 이야기처럼 다루되 하나로 서사로 연결하는 꼼꼼한 짜임새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짜임이 좋은 이야기였다면 이 드라마는 이렇게 지금의 '난리'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짜임새보다 이 드라마가 더 대단한 건 바로 군대에 대한 화자의 시선 때문이다.
병역의 의무를 지녔고 신체 건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곳으로 여겨지는 군대. 하지만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채 하나의 다른 세계처럼 여겨지는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드라마는 그런 시청자들을 끌고 군대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문제가 존재하고 그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당연시되고 있는지를 까발리고, 이해시키고, 설득한다. 단순히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부적응자쯤으로 여겨지던 탈영병들도, 이 드라마에 의하면 피해자에 가깝다. '얼마나 덜떨어지면 탈영하냐'가 아니라, '왜 탈영했는가'의 시선으로 그들을 쫓기 때문이다. 그렇게 드라마는 탈영병들이 겪은 군대 내 폭력과 부조리들을 하나하나 짚어내고, 이에 시청자들은 군대라는 조직이 아닌 군 병역자, 즉 '사람'을 들여다보게 된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인 줄 알았던 준호(정해인)와 호열(구교환)은 서서히 제삼자가 되고, 탈영병들이 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D.P. 가 성공적으로 탈영병을 잡는 이야기인가? 싶었다가, 정신 차려보면 탈영병의 안타까운 삶에 마음 아파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준호(정해인)에게 유달리 친절한 선임으로 등장한 석봉(조현철)이, 에피소드 5-6화에서 극을 끌고 가는 주인공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안타까움에 애가 탈 정도였다. 결국 이 드라마는 '잡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잡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것. 그들이 왜 근무지를 이탈했고, 왜 조금만 견디면 끝나는 세상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선택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그 이해를 돕기 위해 철저히 제삼자의 시선으로 시작해 탈영병의 시선으로 끝나는 드라마가 바로 <D.P>였던 셈이다.
단연 정주행을 마쳤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이 시발노무 군대'였다.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하에 선임이 후임을 구타하고 괴롭히고 인격적인 모독을 가해도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이 대한민국 군대의 부패한 성질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화가 났다.
외부와 단절된 곳에서 그들이 어떤 세상을 구축하고 유지하는지는, 누군가 고발하지 않으면 알 수없다. 사회에서는 마냥 순했던 석봉(조현철)이 선임의 오랜 괴롭힘으로 군을 이탈한 위험한 인물이 되기까지, 정말 그 체계에 적응하지 못한 석봉의 잘못만이 있을까? 드라마를 정주행 한 자라면, 아마도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석봉을 괴롭힌 개차반 선임들, 그리고 더 오래전 그들을 괴롭혔을 과거의 선임들, 수많은 방관자들, 그리고 여긴 원래 그런 곳이라는 오랜 문화. 그것들이 결국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지점이라는 걸 모두가 공감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견고히 다져진 세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으므로, 언젠가는 물을 순환하기 위해 댐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탈영을 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이제는 정말이지 돌아볼 때가 아닐는지. 상명하복이라는 이름 아래 짓밟히고 있는 인권에 대해서. 진정한 수직체계와 선임이 후임을 개처럼 여겨도 되는 것이 동일시되는 한 세상에 대해서 말이다.
<D.P.>가 휩쓸고 간 난리통에는 그리하여 사회적 숙제가 남았다. 총기난사와 자살, 탈영, 구타, 괴롭힘이라는 불명예를 끌어안은 군대가 이제는 정말 바뀌어나가기를, <D.P.>의 열혈 시청자로서 바라보는 바다.
정해인의 재발견
앗. 그리고 배우 정해인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하고 싶다.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로 인기남에 등극해, 진득한 연기보다는 광고를 많이 찍는 스타의 전철을 밟는 듯했던 그가,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것에 두 번 세 번 놀랐다. 그리고 다시 보였다. 배우 정해인이 추구하는 노선이 어떤 것인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얼굴만 말간 한 배우가 아니라, 빡빡머리로 흙바닥을 뒹굴며 연기하는 배우임을 보여준 그에게 정말이지 감동받았다. 무엇보다 그는 연기를 참 잘했다. 어린 나이에 그림자가 가득한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은, <밥 잘 사 주는 예쁜 누나>의 그저 훈훈했던 연하남과는 정말 전혀 다른 인물이었으니까. <D.P.>는, 내게 정해인을 다시 보게 해 준 작품이기도 했다. 그가 오래오래 다양하고 좋은 연기를 보여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정말 여러모로 훌륭한 드라마를 만나 반가웠다. 여자들은 더 이상 군대 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적어도 <D.P.>를 본 여자들이라면.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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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속작이 있기에 원작일 수 있던 것들
전작보다 후속작이 더 좋은 영화는 도통 찾기 어렵다. 한 영화에서 사건은 이미 마무리되고, 인물들의 정체성도 완성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완성조차 코끼리의 일부이자 하나의 시선에 불과할 뿐이지만, 어쨌거나 시선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하나로 동의할 수 있었고 그것이 작품이 완성이라 불릴 수 있던 것이다.
이런 점에서 작품의 세계를 창조하는 욕심과 세계를 연명하려는 의지는 엄연히 다른 듯하다. 이미 완성되었으니까. 선택의 폭은 줄어든다. 완성된 시선에서 벗어나 위험하게 다른 곳을 비추어보던가. 혹은 그 시선을 뚜렷이 한다거나. 물론 그럼에도 창작자에게 수많은 선택과 실험의 기회가 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든 좋고 전작보다 더 좋아지는 사례도 수도 없이 많지만, 결정적으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니. 바로 전작과의 비교다.
단순히 무엇이 낫냐는 평가가 아니다. 어떤 방향으로 작품의 세계를 발전했는지, 새로운 요소들은 세계의 본질을 홰손하지 않는지. 이전 작품에 대한 오마주를 표했는지 등. 무수한 작품의 가능성만큼 잣대도 수없이 생기고, 시리즈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그 잣대는 끝없이 올라간다. 그런 어려움을 뚫고 좋은 후속작을 만들다니. 그 어려움을 어렴풋이라도 느끼면 후속작들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무간도2>는 그중에서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간도2>는 전작의 프리퀄이다. 참신하고 날카로웠던 전작에 비하면 여러모로 파격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쇼트는 길어지고 카메라는 더 이상 역동적이지 않다. <대부>에서 느끼던 중후한 기운이 거리의 네온사인을 압도하는 듯 한편으로 공존하는. 짧은 러닝타임을 제외하면 연출 면에서 전작을 넘어 홍콩영화 대부분과 비교해도 이질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분명 이들과도 연결점이 있으니. 바로 시대와의 작별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역사는 그것의 정당성이나 비판에 대한 논의에서 벗어나 탐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선 그것의 이해관계는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완전히 해소될 수 없고, 삶의 터전과 순수함이 훼손된 채 다른 세계로 내몰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무간도2>에서 선역과 악역은 없으며 모든 인연이 꼬여있다.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지 못한, 혹은 자발적으로 머무르는 인물들이 서로를 탓하고 있다. 신분을 숨긴 채 조직에 잠입하고, 이득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영원한 고통을 뜻하는 무간지옥에 어울리는 모습, 이러한 점에서 <무간도2> 역시 홍콩영화이고, 어쩌면 더욱 처절하게 시대상을 표현했을지 모르겠다.
특정 시대상을 잘 담은 명작은 그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느낄 수 있는 여운이 있다. 기원전 시대를 살아보지 못한 건 물론 그리스에 가본 적조차 없는 사람도 고전을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나아가 역사와 사상을 공부하고, 그것을 현재의 시대로 치환해 교훈을 얻곤 한다.
시대 불문이랄까. 당시의 홍콩영화도 마찬가지이다. 복합적인 시대상을 그대로 떠안는 젊은이들이 있다. 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고, 그 속에서도 사랑은 불안하게나마 피어난다. 하지만 그 순수함만큼은 불안해질 수 없기에 항상 고뇌하고 희생을 감수한다. 무엇보다 그 영화의 끝이 행복하든 슬프든 시대의 변화를 역행할 수 없다는 진리를 끝내 이기지 못한다. <무간도2>는 이 점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촬영이나 편집 기법은 독창적이고, 되려 주제 의식을 보강했다. 전작의 당위성을 보여주고 인물들에 입체감을 더해준다. 본작의 빌런이라 할 수 있는 예영효는 그 구심점을 확실히 해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리고 엔딩은 지나간 시대에 헌사를 보내며 과거의 향수를 원동력으로 미래를 살아갈 가능성을 보여준다. 즉, '무간도'라는 강렬한 제목처럼 이전도 그다음도 인생은 시대 불문 지옥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연과 사랑이 언제나 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영화다.
흔히들 홍콩영화는 이제 끝이 나버렸다고 말을 한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두각을 드러내는 영화가 적은 것도 사실이니. 철거된 네온사인들처럼 그때의 스타들도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 하지만 나는 아직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전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시대 불문의 가치를 상기한다면. 독창성을 되찾는다면. 무엇보다 목소리를 낼 용기를 되찾는다면 홍콩영화는 다시금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무간도2>가 홍콩영화의 황금기 마지막 세대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간도 2>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속작’을 애타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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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퇴마 판타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한 건에 천만 원씩 받고 가짜 퇴마극을 펼친다고 알려진 사기꾼 퇴미사 '천박사'(강동원). 여느 때처럼 특수효과 기술자 겸 유튜버인 '인배'(이동휘)의 도움을 받아 가짜 퇴마를 펼친 그에게 귀신을 보는 눈을 지닌 ‘유경’(이솜)이 찾아온다. 거액의 수임료를 제안한 그녀의 요구는 단 하나. 자기 여동생 '유민'(박소이)에게 붙은 귀신을 떨쳐달라는 것.
이번에도 가짜 퇴마극을 준비하던 천박사. 그러나 그는 곧 다른 기운을 감지한다. 귀신을 만나면 울린다고 알려졌지만 평생 울린 적 없는 방울이 울린 것. 그와 동시에 천박사는 무당을 사냥하는 악귀 '범천'(허준호)에게 습격당한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그에게 인배와 '황사장'(김종수)은 사건에서 손을 떼자고 제안하지만, 천박사는 다른 마음을 먹는다. 그간 애써 외면한 과거를 마주하고, 당주 무당의 장손으로서 악귀와 싸우겠다고.
웹툰 실사화의 딜레마
웹툰 원작 작품을 영화나 드라마로 옮길 때 항상 같은 딜레마가 있다. 바로 '톤'이다. 웹툰은 과장되거나 비현실적인 톤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자연히 원작을 지나치게 충실하면 작위적이거나 오그라들기 십상이다. 반대로 그렇다고 원작 색채를 과하게 빼 버리면 팬덤의 불만을 산다. 웹툰 원작 작품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눈에 띄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많지 않은 이유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조감독 출신인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는 위 딜레마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후렛샤 작가의 '빙의'를 영상화한 이 작품은 철저한 선택과 집중의 미덕을 보여준다. 웹툰 느낌을 살린다는 목적을 위해 장르, 캐릭터, 볼거리에만 초점을 맞추고 질주한다. 뛰어난 작품성이나 완성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은 없다. 그리고 그 계획은 결과물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가능한 신선하게 비트는 노력
<천박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개성은 장르다. 장르 자체가 신선하지는 않다. 몇 년 사이 오컬트나 퇴마물은 대중적으로 익숙해졌다. 최근 방영된 SBS 드라마 <악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한국형 오컬트'를 표방하는 작품이 꾸준히 제작됐다. 달리 말해 마을의 서낭당을 지키는 무당인 ‘당주무당’, 충청 지역 앉은굿에서 사용하는 무구 '설경'이라는 소재만으로는 확실한 차별화가 어렵다.
대신 <천박사>는 장르 자체를 변주한다. 우선 다른 오컬트 영화에 비해 밝고 가벼운 분위기를 취한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 <곡성> 등 많은 오컬트 영화는 '신적인 요소가 실재한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지며 전반적으로 어두운 톤을 유지한다. 그에 반해 <천박사>는 초반부터 <기생충>을 패러디한 도입부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무당의 사기극 같은 코미디를 적극 활용한다.
특히 코미디는 분위기 환기 이상의 용도로 영리하게 활용된다. 웃음은 <천박사> 세계관으로의 초청장에 가깝다. 웃음 포인트를 주로 인배가 맡기 때문. 극 중 인배는 천박사, 유경, 황사장과 달리 혼자만 무속 세계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영화는 이들의 괴리감을 주로 유머의 소재로 삼는데, 관객이나 인배나 처지가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관객 입장에서는 인배만 따라가도 <천박사>의 판타지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 있다.
오컬트 영화의 일반적인 전개를 피해 가기도 한다. 퇴마물 주인공은 주로 희생자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악귀와 질긴 싸움을 펼친다. <천박사>는 다르다. 유민에게 퇴마 의식을 진행하는 천박사. 그런데 이때 악귀 범천의 선택이 흥미롭다. 그는 유민 대신 유경에게 곧장 달려든다. 또 그녀의 눈을 갖기 위해 여러 사람의 몸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천박사를 습격한다. 이 순간부터 <천박사>는 본격적으로 액션 활극을 펼쳐 보일 수 있다.
최소한의 설명
이처럼 각 장르의 장점만 모아 관객을 현혹하려면 내용을 최대한 압축해야 한다. 영화 내 설명이나 묘사가 간단하고, 빠르고, 가벼워야 한다. 진득하게 여러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상이한 장르 간의 충돌로 인해 단점만 부각될 수 있으므로. 실제로 <천박사>는 미묘한 불협화음을 알아챌 조금의 틈도 주지 않으려 한다.
핵심 소재인 설경에 대한 설명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오프닝에서 자막 한 줄로 모든 설명을 대신한다. “설경은 귀신을 협박하고 잡아 가두기 위해 경문과 문양을 한지에 조각한 부적이다.” 어떤 효과가 있고, 언제 사용해야 하고, 누가 쓸 수 있는지와 같은 자세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소재와 설정에 대한 설명도 단순하기는 매한가지다. 당주 무당의 역할, 손가락을 잘라서 만드는 주문의 정체, 범천이 무당을 사냥하는 궁극적인 목적, 칠성검에 깃든 힘...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소재이지만,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단순히 보여준다. 유경에게 신비한 눈이 있는 이유, 천박사에게 신기가 깃드는 묘사에 대한 설명도 없다.
내용 전개도 직선적이다. 천박사가 범천의 존재를 인지한 후 곧장 클라이맥스로 넘어가는 인상을 준다. 선녀 무당이라는 카메오를 활용해 '기승전결' 중 '승'을 생략하다시피 한다. 그 덕에 너무 단순한 장치들과 파훼법 같은 지점들이 여러 의구심이나 고민으로 떠오르기 전에 끝내버린다.
선택과 집중이 확실한 캐릭터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천박사> 속 인물의 서사는 복잡하다. 풀어내야 할 내용이 적지 않다. 천박사의 집안 내력, 범천의 음모, 유경과 마을 주민들의 비극이 한 데 얽혀 있다. <천박사> 속 세계에 대한 설명도 필요로 한다. 여기에 중간중간 액션까지 곁들여 주려면 98분이라는 러닝타임은 꽤 촉박해 보인다.
이 대목에서도 <천박사>는 철저힌 선택과 집중을 보여준다. 모든 플롯을 천박사 중심으로 배치하면서 분량을 조절한다. 천박사의 개인사를 풀어낼 때 범천을 도우미로 이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의 집안과 범천의 악연을 보여주면서 두 주인공의 서사를 동시에 풀어낸다. 이에 더해 천박사의 할아버지와 동생을 단순한 희생자, 피해자로 설정하면서 영화를 전반적으로 단순한 복수 서사 내에 위치시킨다.
유경의 개인사도 과감히 생략한다. 그녀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핵심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는 유경을 단순히 범천이 노리는 목적, 그 이상 그 이하로도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상황에 이리저리 휩쓸릴 뿐,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녀의 부모, 그녀와 마을 주민들의 관계, 범천이 마을 주민들을 악용한 방식 등도 퇴마 판타지다운 미스터리한 느낌을 주기 위한 배경으로 소비된다. 철저히 플롯의 도구일 따름이다.
몰입은 되지만 폭발력은 없다
초중반부까지는 <천박사>의 선택이 적중한다. 코미디, 오컬트, 판타지, 액션 모두를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다. 문제는 후반부다. 이전까지의 선택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 화려한 CG가 천박사와 범천을 감싸고, 비장한 검투씬이 등장하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다. 물론 강동원이 기본적으로 액션을 잘 소화하는 배우인 관계로 액션을 보는 재미는 있다. CG도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기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면서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지만 범천을 물리치는 과정과 결과에는 쾌감이 없다.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간과했기 때문이다. <천박사>는 전쟁이 정치의 연장선이듯이 액션도 서사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 보인다. 전쟁이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정치인의 행위라면, 액션은 인물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작가의 도구다. 즉, 서사가 쌓이지 않은 액션은 화려한 그래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천박사>는 인물의 서사를 쌓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았다. 딱 필요한 만큼의 과거사를 단편적으로 알려준다. 범천을 향한 원한이 얼마나 크고 그가 사기꾼 행세를 하며 어떻게 복수의 칼날을 갈았는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즉, 천박사가 목숨 걸고 범천을 잡는 이유는 이해해도 그에게 공감하거나 몰입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모든 서사가 집중된 주인공이 이러니, 그에게 종속된 다른 캐릭터의 매력이 살아날 일도 만무하다.
결국 강동원이 장르다
그 결과 영화가 끝나고 남는 것은 캐릭터가 아닌 배우들의 비주얼과 존개감뿐이다. 강동원은 다시 한번 스타로서의 가치를 증명했다. <전우치>, <군도: 민란의 시대>, <검은 사제들>에서 봤던 강동원의 이미지가 묘하게 한 데 합쳐져 있다. 대중적으로 인식된 배우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캐릭터에 이식한 느낌이다.
반대쪽에서는 허준호의 무게감이 인상적이다. 자칫 경쾌함 이상으로 가벼울 수 있는 분위기를 적절히 가라앉히는 데 최적화된 모습이다. 박정민과 지수, 두 카메오도 분위기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등장해서 특유의 연기력과 비주얼로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다.
결국 <천박사>는 캐릭터와 CG, 설정이 조금 독특할 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무난한 명절 영화에 그친다. 실패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의도대로 시작부터 끝까지 경쾌한 톤의 코믹 액션 오컬트 영화를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다. 계획대로 결과물이 정직하게 뽑힌 듯 보여서 비판하기도 애매하다. 단지 아쉬울 뿐이다. 한국 상업 영화 중 나름대로 신선한 시도가 엿보이는 장르 영화이기에 아쉬움은 더욱 크다.
Acceptable 무난함
화려하나 어색한 CG만큼 오묘한 끝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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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미국에 더 이상 공화당원은 없다
한국과 미국은 지구 반대편, 비행기로 반나절을 날아가야 도착할 만큼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몇 년의 시차를 두고, 두 나라 모두에서 보수 성향 정치인이 불리한 선거 결과를 받아들인 뒤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지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두 나라의 보수 정당에서는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정치인에게 절대적 지지를 보냈고, 그중 소수만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마지막 공화당원>은 바로 그 ‘소수’에 속했던 인물, 공화당의 애덤 킨징거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공화당원
The Last Republican
Summary
미 하원의원 애덤 킨징거는 1월 6일에 발생한 국회의사당 폭동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은 최초의 공화당 의원이다. 이 때문에 그는 친구와 가족, 그의 경력까지 잃었다. 극좌파 진보주의자 감독이자 코미디언인 스티브 핑크는 그와 정치적으로 반대 성향을 가진 보수주의자 애덤 킨징거가 의회에서 보낸 마지막 해를 기록하면서 그와 예상치 못한 유쾌한 우정을 쌓는다. (출처: 전주국제영화제)
Cast
감독: 스티브 핑크
왜 그는 ‘마지막’ 공화당원이 되었는가
애덤 킨징거는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공화당에 대한 오랜 애정과 관심이 그의 정치적 뿌리를 이뤘죠. 그러나 정작 그의 정치 인생을 본격적으로 촉발한 것은, 길거리에서 칼에 찔린 여성과 가해자 남성을 마주한 뜻밖의 사건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순간, 여러 선택지를 놓고 고민했다고 고백합니다. 그중에는 당연히도 외면하고 도망치는 일, 그러니까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우선시하는 선택지도 있었죠.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 있는데도 여성을 구합니다.
결정의 근간에 있었던 마음은, 나중에 돌이켜 보았을 때 후회가 남지 않을 선택, 거울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 이후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 탄핵 표결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애덤 킨징거는 설령 같은 정당 소속이라 해도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일, 정의롭지 않은 일을 묵인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그 선택이 지난 12년의 정치 경력, 여섯 번의 당선 이력을 멈출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말이죠.
여전히 공화당엔 수많은 의원이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의 제목이 <마지막 공화당원>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공화당은 탄핵에 찬성한 모든 의원을 징계했습니다. 당내에서 철저히 배척당한 킨징거 의원은 끝내 재선 도전을 포기했고, 정치권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제 더는 공화당의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공화당원’은 남아 있지 않다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마지막'이라는 결연한 단어를 조용히 꺼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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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웃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회로
1월 6일 의회 폭동 사건의 배후에 지목되었지만, 미국의 대통령은 다시 또 도널트 트럼프입니다. 우리나라는 비슷한 의혹을 해소하고자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이 탄핵되어, 곧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분열은 끝을 모르고 깊어지는데, 통합이라는 가치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던 이상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과연 공통의 가치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현재 대한민국은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들과 원만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이 불가능한 사회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서 진보 성향의 스티브 핑커 감독과 보수 성향의 인물이 나누는 대화가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끝까지 듣고, 싸우지 않고 웃으며 받아들이는 장면은 그 자체로 낯설게 다가왔죠.
결국,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분노하는 대신, 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설령 의견이 다르더라도,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화내지 않는다고 그 의견이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는데, 왜 이 당연한 진리가 이렇게 쉽게 희미해져 버린 걸까요?
그런데, 문득 '나는 그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제 앞으로 걸어옵니다. 나는 과연 트럼프 탄핵에 찬성했다는 이유로 낙태를 반대하는 애덤 킨징거 의원의 말을 들으며 웃을 수 있을까?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그러움이 사라진 것은 왜일까? 점점 격화되는 사회의 분열 때문일까? 나의 정체성을 향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자세일까? 끝없는 도돌이표 같은 물음들 속에서 마음은 씁쓸해지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걷잡을 수 없이 울적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래를 믿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인생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앞둔 애덤 킨징거 의원은 바로 그 마음으로 냉소주의와 싸우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문장 뒤에 '그래도'를 붙여 봅니다. 그래도, 세상은 결국 달라질 겁니다. 언젠가는 너그러운 웃음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습니다.
One-Liner
전 세계 곳곳에 벌어지는 정치 비극, 그 속에서 용기를 저버리지 않은 한 보수 정치인의 이야기
Schedule in JIFF
2025.05.01(목) CGV전주고사 5관 11:00
2025.05.03(토) 메가박스 전주객사 2관 10:30
2025.05.06(화) CGV전주고사 1관 17:30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 04월 30일 - 05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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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분노하게 했던 마블씬들
#마블명장면 #마블 #로키
2021. 06. 30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화났던 기억?
00:56 스타로드는 화났어
03:45 손가락 하나
05:00 버키는 내 친구
06:39 로키의 선택은?!
07:53 구독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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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앰뷸런스, 정신차린 마이클 베이 감독의 긴장감 넘치는 액션 영화
?Rabbitgumi입니다!!
파괴지왕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앰뷸런스가 개봉했습니다.
사실 아주 크게 기대받던 영화는 아니었죠.
예고편을 봤을 때, 은행을 털고 추격전을 벌이는 이야기여서 뻔하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꽤 재미있는 액션 영화였습니다.
마이클 베이 감독 특유의 액션 연출 스타일이 그대로 들어가있는데 조금은 질질 끈다거나 오버하는 장면이 줄었어요.
이야기 구성에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액션과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긴장감 만은 확실히 잡습니다.
영상과 음향이 멋집니다.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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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틱> 메인 예고편
비행기 추락 사고 이후, 북극에 조난된 ‘오버가드(매즈 미켈슨)’.
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무전을 치고, 북극의 지형을 조사하고,
송어를 잡고, 죽은 동료의 무덤에 가서 인사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추락한 헬기 속 생존자를 발견한다.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이대로 구조를 기다릴 수는 없고,
자칫 이동하면 함께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홀로 지내면서 잊고 있었던 생명의 온기.
그녀를 살리기 위해, 지도 한 장에 의지한 채 임시 기지를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 선택의 순간…
살리기 위해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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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코다> 메인 예고편
음악의 마법에 빠질 시간!
가장 조용한 세상에서 시작된 여름의 노래!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