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19 23:55:48
겨울만 되면 생각날, 이터널 션샤인.
아무리 기억을 지워도 사랑과 추억을 지울수는 없었다.
-
"오 마이 달링 오 마이 달링 클레멘타인"
어떻게든 지우려고 했던 기억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사랑으로 그들을 더 꽁꽁 묶어 놓는다.
괴로웠든 행복했든 그것마저 사랑이 였음을 시간이 지날수록 서글픔이 밀려옵니다.
그런 행동을 지켜본 조엘은 지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역부족이죠.
클레멘타인도 조엘처럼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지도를 벗어나려 했을까요?
클레멘타인이 머리색을 여러번 바꾸고 마침내 파란머리로 물들었을때조차 사랑에 다시 빠지게 된 건 여전히 그들이 사랑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뜨악스러웠던 장면은 기억을 지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타나는 비윤리적인 행태 였습니다.
의뢰인의 속옷을 훔치고 그 물건으로 그와 가까워져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대한 행동들은 '세상에 믿을사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요. 과연 온전한 기억삭제는 가능한걸까 하는 의문이 남더라고요.
Relative contents
-
- <언젠틀 오퍼레이션>이 그려낸 실화의 또 다른 얼굴
“이들은 기록에서 잊혔고, 전쟁사의 언저리에 남겨졌지만, 가이 리치는 그들을 스크린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제2차 세계대전은 수많은 전설을 남겼다. 그러나 그 거대한 전쟁의 이면에는,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작전과 익명에 가까운 요원들이 존재했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바로 그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방식의 전쟁’을 수행했던 이들, 전통적인 규율과 명예로 무장한 군인들과는 달리, 적의 뒤를 치고 선을 넘으며 임무를 완수했던 비정규 전사들의 이야기다.
‘첩보작전 실행부’, 실화에서 출발한 비범한 이야기
영화는 실존했던 비밀 작전 부대, 첩보작전 실행부(SOE, Special Operations Executive)를 바탕으로 한다. 윈스턴 처칠의 지시에 따라 조직된 이 부대는, 당시 "비신사적인 전쟁부(Ministry of Ungentlemanly Warfare)"라 불리며 공식 기록에서조차도 한발 비껴 서 있었다. 이들은 군복도 없이 나치 점령지를 누비며 파괴 공작, 기차 탈선, 항구 봉쇄, 통신 교란 등 전면전이 아닌 후방에서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전쟁법의 회색지대를 오가며, 전통적 명예 대신 실전의 효과를 앞세운 그들의 작전은 기존 전쟁 서사의 이면을 비추는 또 다른 기록이다. 영화는 이 비정규전의 실체를 장르 영화의 언어로 복원하고자 한다.
가이 리치, 실화를 장르로 번역하다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단순한 역사 재현물이 아니다. 가이 리치는 이 실화를 진중하게 다루기보다, 장르적으로 해석하고 비틀어낸다. 마치 전쟁 다큐멘터리를 액션 스릴러로 리믹스한 듯한 접근이다. 그가 펼치는 전쟁은 참혹함보다 쾌감, 무게감보다는 리듬에 가깝다. 전통적인 전쟁 영화 문법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낯설게 느낄 수 있지만, 바로 그 이질감이 영화의 개성으로 작용한다. 가이 리치 특유의 빠른 컷 전환, 교차 편집, 캐릭터 중심의 팀플레이는 영화 전체를 활력 있게 밀어붙인다. 각기 다른 기술과 성격을 지닌 요원들은 전장을 마치 범죄 스릴러의 무대처럼 활용하며, 긴장과 유머를 넘나드는 독특한 전쟁극을 구성한다.
스타일의 과잉, 서사의 희미함
그러나 문제는 이쯤에서 시작된다. 리치의 경쾌한 연출이 영화 전반에 강한 인상을 남기지만, 동시에 실화의 무게와 서사의 정서적 깊이를 밀어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들이 수행한 임무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죽음을 무릅쓴 비정규전, 때로는 비도덕적 수단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했던 현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윤리적 딜레마와 내면의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스타일리시한 액션과 캐릭터의 유쾌함에 초점을 맞춘다.
결국 등장인물들은 입체적인 인물로 성장하지 못한 채, 매력적인 설정에 머무른다. 서사의 드라마보다 캐릭터의 ‘쿨함’을 전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관객은 그들이 왜 싸우는가보다 어떻게 싸우는가에만 몰입하게 된다. 또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면 당연히 수반해야 할 역사적 책임감과 윤리적 긴장감도 다소 느슨하게 처리된다. 이는 장르적 선택으로 옹호될 수 있겠지만, 동시에 실화가 품은 복잡한 층위는 미처 도달하지 못하게 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장르적 즐거움과 역사적 진실 사이
<언젠틀 오퍼레이션>은 단지 과거를 재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그보다는 과거의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스타일리쉬하게 번역하는 영화다. 가이 리치가 다듬어낸 이 비정규전의 서사는 기존 전쟁 영화가 구축해온 영웅주의 서사에서 한발 비켜서 있으며, 더 거칠고, 더 장르적인 방식으로 전쟁의 본질을 되묻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실존 인물과 사건을 기반으로 한 만큼, 더 깊은 내러티브 설득력과 정서적 입체감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가이 리치의 다음 영화는 장르의 재미와 실화의 무게를 동시에 지탱하기 위해 필요한 균형감이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
- 디 액트 (The ACT, 2019) -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디 액트 (The ACT, 2019)
감독 : 로르 드 끌레르몽-토네르, 스티븐 피에트, 애덤 아킨, 크리스티나 최
출연 : 패트리샤 아퀘트, 조이 킹, 안나소피아 롭, 클로에 세비니, 케일럼 월디
‘끊어내지 못한 집착의 말로’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트린 충격 실화’, ‘아픈 줄로만 알았던 한 소녀의 이중생활’, “날 위해 엄마를 죽여줄래?”
<디 액트>의 홍보영상과 기본 줄거리 설명을 본다면 이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대략 짐작이 갈 것이다. ‘이중생활을 숨기고 있던 딸이 엄마를 죽이거나, 최소 죽이려고 시도 정도는 할 것이다.’라고. 몇 개의 멘트만 봐도 어느 정도 그려지는 결말을 가진 작품인데, 왜 8부나 되는 이 드라마를 몰입해서 보게 되는 걸까.
<키싱 부스>에 나왔던 그 여배우(조이 킹)가 삭발을 하고, 충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고? <디 액트>가 공개되었다는 소식과 홍보 영상들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궁금하니 1화만 한번 봐보고, 별로다 싶으면 보지 말아야겠다- 하며 1화를 재생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마지막 화까지 모두 달리고 먹먹함과 자유로움, 그 뒤에 따라오는 불쾌감과 이물감을 느끼고 있는 내가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 동화 속 공주 같은 삶을 꿈꾸는 소녀 집시 로즈 블랜처드. 오랜 시간 병치레를 해온 딸 집시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어머니 디디 블랜처드. 사춘기에 접어든 집시는 옆집 언니 레이시처럼 화장도 하고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싶지만, 디디는 집시를 걱정하며 아무것도 못 하게 한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을 향한 집시의 열망이 날로 커질 무렵, 집시는 자신이 아픈 환자가 아니고 그동안 엄마의 과잉보호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두운 비밀로 가득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집시는 홀로서기를 계획하고, 머지않아 엄마에게서 완벽히 벗어날 극단적인 방법을 찾아낸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날 위해서 우리 엄마를 죽여 줄래?”
<디 액트>의 주인공은 집시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와 엄마 디디다. 남편 없이 아픈 딸을 홀로 키워온 디디는 사랑의 집짓기 프로젝트를 통해 집시와 함께 오래 살수 있는, 진짜 우리 집을 마련하는데 성공한다. 디디는 휠체어에 앉아있는 딸 집시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집시 또한 웃으며 디디를 바라본다.
동네 사람들의 온정이 담긴 분홍색 집, 귀여운 인형이 가득한 아이의 침실, 아프지만 밝은 웃음을 가진 아이와 그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외적으론 아무 문제도 없는, 아니 오히려 많은 고난과 역경을 함께 해쳐온 ‘기특한 모녀’의 모습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를 향한 사랑은 집착으로 변하고, 집시의 세상은 엄마 디디의 ‘너를 사랑해서 그래’라는 변명으로 가득해진다.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해본 적 없었던 집시는 새로 이사 온 마을에서 이웃들을 만나며 엄마에 의해 억압당하고 있던 본능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관념적으로 분홍색과 가장 대비된다고 생각하는 파란색의 집에 살고 있는 이웃, 레이시 모녀는 집시 모녀와 다르다. 레이시는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나고, 화장을 하고, 운전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난다. 핑크색으로 도배된 집시의 집과는 반대로 레이시 모녀의 집은 파란색이며 공주 드레스, 왕관을 제외하고 ‘어른스러운’장신구를 해본 적 없는 집시와 달리 레이시는 마음대로 옷을 입고 남자친구가 준 목걸이를 목에 차고 있다. 레이시의 손길과 알록달록한 색을 가진 화장품이 집시의 얼굴을 스쳐간 날 이후로 집시는 자연스레 또래 아이들의 생활을 궁금해하고, 또 바라게 된다.
“집시에겐 저밖에 없어요.”
디디는 집시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싶어 한다. 집시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올해의 아동으로 신청하고, 있지도 않은 질환이 있다며 간식조차 먹지 못하게 하고, 사전 설명 없이 집시의 이빨을 뽑는다. ‘내 딸은 내 손안에 있어야 한다.’는 철칙이라도 있는 건지, 집시는 혼자 걸을 수도 씻을 수도 먹을 수도 없다. 휠체어에 앉아 엄마가 갈아 넣어주는 음식을 기다려야 한다.
디디는 작고 약했던 딸이 소녀를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될 무렵까지 가스라이팅을 계속한다. “너는 몸이 약하니까”, “너에겐 엄마밖에 없으니까.”, “너는 나를 사랑하니까.” “우리 사랑만 있으면 충분하지 않니?”. 그리고 그와 동시에 다른 사람들 앞에선 딸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 코스프레를 한다.
그녀는 이제 성인이 된 딸에게 의료보험 카드가 잘못됐다는 거짓말까지 치며 ‘너는 아직 어른이 아닌 내 손안에 있는 아기.’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주입한다. 매일 샤워를 위해 엄마에게 알몸을 보이고 병원을 잘 다녀온 보상으로 폭신한 인형을 선물받고, 엄마의 품 안에서 잠드는 집시는 언제까지나 디디의 아기다. 아니 아기여야만 한다. 디디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디디가 모든 걸 통제하고 집시를 속이려 해도 소녀(Girl)였던 집시가 여자(Women)가 되는 건 막을 수 없었다. 남자와 성에 대해 눈을 뜬 집시는 이제 자신을 소녀가 아닌 여자로 인식한다. 얌전하게 올려 입었던 드레스의 어깨춤을 살짝 내리고, 코스프레 행사장에서 왕자님을 만났다며 결혼을 생각한다. 너무 오래, 강하게 눌려있어서인지 집시의 욕망과 비밀은 빠르게 자라난다. 자유를 향한 갈망은 다중 인격 장애를 가진 닉을 만나면서 가속도가 붙고, 엄마를 죽이지 않는 이상 자유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집시는 닉과 함께 디디를 살해하게 된다.
1화부터 4화까지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에게 가려져 일부 보이지 않는 형태를 하고 있지만, 집시가 본격적으로 비밀을 갖기 시작하고 성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는 5화부터는 'The Act'라는 타이틀이 인물의 앞으로 나와 온전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타이틀의 변화는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향한 의지를 갖고 행동하기 시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집시와 닉이 디디를 살해한 것이 정당하다고 볼 순 없으나 디디가 집시를 평생 동안 신체적, 정신적으로 학대한 건 사실이다. 멀쩡히 걸을 수 있는 아이를 자신의 통제권 아래 놓기 위해 휠체어에 앉혔고 성욕과 식욕, 그리고 사회를 향해 보일 수 있는 당연한 호기심마저 ‘하면 안 되는것’이라고 말하며 집시의 모든 행동을 제한한다. 근데 여기서 좀 안타까운 건 디디 또한 자신과 비슷한 엄마 밑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딸에 대한 집착과 가스라이팅은 당연하게도 대물림되었고, 딸이 엄마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결말까지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디디는 엠마(디디의 엄마)가 자신의 모성애를 무시하고 몸이 약한 딸 집시를 빼앗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지속적으로 시달린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통제 아래 자란 그녀는 몸이 약한 집시를 두고 교도소에 수감된 후부터 더욱 심한 집착 증세를 보인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날 집시는 디디를 알아보지 못했고, 몸이 약해 특별히 관리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집시는 트램펄린을 타다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디디의 불안감은 점점 고조된다.
엄마가 우리 딸을 빼앗아갈지도 몰라, 몸이 약한 딸이 언제 다칠지 몰라. 이 두 가지 불안감은 디디를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디디는 집시를 휠체어에 앉히고 병든 엄마에게 내성이 생길 걸 알면서도 새로운 진통제를 쥐여준다. 그리고 디디의 집착과 폭력 아래 자라온 집시는 디디의 등에 꽂을 칼을 산다. 하지만 디디가 죽고도 집시는 디디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집시는 디디의 환영을 보고, 단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던 디디의 말처럼 아이스크림 금지 표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다. 그리고 닉은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엄마가 닉에게 먹을 것을 구해줘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모든 행동과 가치관은 디디가 남긴 흔적이었다.
엔딩 장면에서 ‘집시는 복역을 끝마치고 가정을 이룰 예정’이라고 적힌 글씨를 보자마자 나는 이 끔찍한 집착의 고리가 또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연관도 없는 내가 그 결정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그 결정이 또 다른 불행을 만드는 건 아닐까? 집시가 피해자임은 틀림없지만 어쨌든 그 집착과 폭력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말이다.
“휠체어에 갇혀있었어요.” 집시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을 갇혀있었고 엄마의 등에 칼을 꽂은 그 덕분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고, 그가 나를 구했다고 말이다. 매일같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엄마의 등에 칼을 꽂아야만 하나의 인격체,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그녀의 운명이 너무도 기구하다.
<디 액트>의 결말을 보고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싶어 여기까지 달려온 걸까?”. 사실 잘 모르겠다. 디디가 죽고 나면 속이 시원할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집시를 응원한 것도 아니다. 그저 이 폭력과 집착이 끝나기만을 바랐고, 조금 소름 끼치게도 디디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 “드디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사이다 ~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대물림의 순간, 그리고 사랑이라는 변명 아래 행해지는 지독한 폭력. 이 모든 걸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또 다른 폭력뿐이었다는 사실이 아쉽고, 안타깝고, 찝찝하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Kyung film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전도유망한 그녀의 복수극 <프라미싱 영 우먼>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포스터
프라미싱 영 우먼 (Promising Young Woman, 2020)
장르 : 미국, 범죄·스릴러 │ 감독 : 에머랄드 펜넬 │ 각본 : 에머랄드 펜넬
출연 : 캐리 멀리건(캐시), 보 번햄(라이언), 레버른 콕스(게일) 외
등급 : 15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14분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그녀는 왜 복수의 화신이 되었나
‘캐시’는 한 때 의대를 다니던 촉망받는 여성이었으나, 현재는 부모님의 집에 얹혀살며 친구의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을 딸이 대학을 중퇴하고 서른이 넘어가도록 방황만 하니, 부모는 늘 혀를 차기 바쁘다. 하지만 캐시가 성공가도가 보장될 대학을 포기하고 부모님의 눈치나 받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조용히 치러야만 하는 자신만의 과업이 있기 때문. 그건, 남자들에 대한 응징이다. 정확히는 술 취해 몸을 못 가누는 여성을 강간하려는 남자들을 향한 응징.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캐시는 매일 밤 클럽에 나가 술에 떡이 된 연기를 펼치며, 불특정 다수의 남성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백이면 백, 남성들은 캐시를 데려다주겠다며 나서고 결국엔 “우리 집 가서 술 한 잔 더 할래?”를 핑계로 손쉬운 성관계를 꿈꾼다. 여자는 취했겠다, 자신의 집에 자발적으로 따라왔겠다, 남성들은 온갖 아부를 떨어가며 캐시를 침대에 눕히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성관계를 시도하려는 순간, 캐시는 벌떡 일어나 술기운 하나 없는 얼굴로 묻는다.
“너 뭐 하는 거야?”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쉽게 용서받은 너희들을 위해
대체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궁금해질 때 즈음, 캐시의 사연이 밝혀진다. 의대를 다니던 시절, 캐시에게는 ‘니나’라는 둘도 없는 절친이 있었다. 니나는 대학 파티가 있던 날, 만취상태가 되어 남학생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했는데 심지어는 그 영상이 찍혀 돌아다니자 결국 자살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곳은 무려 의대가 아닌가. 대학 당국은 훗날 사회에 큰 이바지를 하게 될 안타까운 청년들의 삶을 지켜주고자 사건을 덮어버렸고, 결국 가해자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사회의 재목이 되었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사회가 못하면 내가 너희를 벌하겠어
캐시에게는 이런 니나의 죽음이 트라우마이자 커다란 죄의식이었다. 때문에 대학도, 자신의 전도유망한 미래도 포기한 채, ‘술 취한 여성은 강간해도 된다’는 은근한 합의 속에 살아가는 남성들을 직접 벌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자신에게 투명한 진심을 보이는 남자 ‘라이언’을 만나 잠시 주춤하기도 하지만, 나쁜 놈들과는 다르다고 여겼던 라이언 조차도 실은 니나의 죽음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캐시는 그 일을 계기로 더욱 열이 올라, 니나 사건의 결정적 가해자를 찾아 처단하기로 결심하는데. 의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앞날이 창창하다는 이유로 사회의 용서를 받았던 가해자 ‘알’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일로 누군가가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잘 살고 있었다. 심지어는 모델 출신 여자 친구와 결혼까지 앞둔 상태였는데. 어처구니가 없어진 캐시는 알의 결혼전야 총각파티에 스트리퍼로 잠입한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했지?
그러나 그 개자식을 제대로 밟아주길 바랐던 관객의 기대와는 달리, 힘에서 밀린 캐시는 역으로 알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만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었던 과업을 미처 끝내지 못한 채로. 캐시의 복수에서 간신히 살아 나왔지만 살인자가 되고 만 알은 결국 캐시의 시신을 유기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결혼식을 치른다. 자신의 숭고한 모델 여자 친구 ‘아나스탸사’와 함께. 그러나 결혼식이 끝날 무렵 경찰차가 결혼식장을 향해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온다. 자신이 죽게 될 상황까지 고려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캐시의 복수극이 끝내, 빛을 발한 것이다. 니나를 강간했으며 죽음으로 몰게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창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용서받은 강간범 알은 그렇게 7년이 지나서야 죗값을 치르게 된다. 살인 혐의까지 덧붙여서 말이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이 제목은 어디에서 왔는가
이 영화의 제목은 <프라미싱 영 우먼>, ‘전도가 유망한 젊은 여성’이라는 뜻이다. 이는 2016년에 있었던 스탠퍼드 대학의 유명한 성추문 사건에서 기인한 제목이다. 사건의 내용인즉슨, 스탠퍼드에 재학 중이던 ‘브록 터너’라는 남학생이 술에 취한 여학생을 쓰레기통 뒤로 끌고 가 세 번에 걸쳐 성폭행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초범인 데다 전도가 유망한 젊은 청년”이라는 말로 브록 터너를 두둔했다고 한다. 명문대를 졸업해 사회의 빛이 될 청년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거였다. 이 사건은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이런 망언을 남긴 판사는 결국 주민투표로 해임되었다.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갈 길은 멀고, 본질은 간단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미투 운동을 거쳐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여성의 목소리가 존중받는 시대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고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피해 여성이 ‘만취 상태’였을 때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까 네가 취하질 말았어야지. 네 발로 따라갔으니 너도 반은 책임이 있지.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은 그런 모순을 찌르는 영화다. 강간범이 제 아무리 의대를 나왔든 장학생이든 그것은 면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여성을 강간해도 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고 설파한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이자 당시 미국의 상원의장이었던 ‘조 바이든’은 스탠퍼드 성추문 사건을 통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동의 없는 섹스는 강간이다”라고. 그의 말처럼 문제의 본질은 사실 간단하고 명료한 것 아닐까. 뭐가 어떻든 간에 강간범은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잘못을 했으니까.
영화 <프라미싱 영 우먼> 스틸컷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길 바라
몸을 가누지 못하는 캐시를 슬슬 구슬려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성관계를 시도하려던 수많은 남성들을 떠올려본다. 그들은 캐시가 겁박하자 이렇게 말한다. “나 좋은 사람이야” 그러나 상대가 취약하지 않을 때만 골라서 좋은 사람이면 뭐할까. 술에 취해 의식을 잃은 니나는 강간해도 되는 여자고, 결혼상대인 아나스타샤는 존중해야 하는 여자일까. 그래도 되는 여성과 그러면 안 되는 여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님을 모든 남성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나 좋은 사람이기를 바란다. 자신의 전도유망한 미래가 안전하길 바라는 만큼.
인스타그램 @woodumi
-
- 확신이 없다고 최악은 아니다
개봉 전 시사로 먼저 관람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인생의 길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질문을 한다. 다른 사람이 물어보는 질문도 있겠지만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아침에 뭘 먹을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음료수를 먹고, 어떤 교통수단을 탈지 보다 먼 미래에 어떤 일을 할지를 계속 묻는다. 어린 시절에는 보통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를 묻는다. 그때그때 떠오르고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지만 그건 매번 바뀐다. 성장하면서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보는 관점이 바뀐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조금씩 커져간다. 10대를 거쳐 20대, 30대를 지나면서 이런 고민들은 계속 바뀌고, 또 끊어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래서 인생이 더 재미있다고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무척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도 있다.
이미 그 시기를 지난 40-50대의 사람들은 그저 지나갈 뿐이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고 말한다.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있다는 건, 그만큼 하나의 길을 결정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앞서 그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의 조언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호기심을 따라 이런저럭 경험을 하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을 수 있다. 어쩌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거치는 그 정해진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인지 순간순간 계속 생각한다. 아이를 가지고 낳는 순간에도 그 고민은 떠나지 않는다. 좀 더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은 자신들의 앞에 서있는 문제를 고민하지만 선뜻 결정하지는 못한다. 다양한 직업과 길을 선택할 수 있지만 '현실'이라는 문은 자유를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현실의 문으로 들어갈 것인지, 선택을 강요하게 만든다.
한 여자의 모습과 독백으로 시작하는 영화
한 여자가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화면 쪽을 바라보고 있다. 파티장에 있는 듯한 그녀의 얼굴은 미묘하게 고민이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주인공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다. 그 장면은 율리에가 남자 친구인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라이)이 그린 만화 콘텐츠 관련 행사에 같이 갔다가 혼자 테라스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순간이다. 영화는 그 장면 이후 율리에가 악셀을 만나기 전으로 돌려 율리에의 20대 시절로 간다. 율리에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율리에는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심리학으로 전공을 변경했다 다시 사진작가가 되기 위해 촬영을 배운다. 20대에도 계속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삶을 변경해 왔던 그의 앞에 악셀이라는 남자가 나타나고 사랑에 빠진다.
사랑은 근원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질문에서 잠시 떠나게 만든다. 달콤한 시간으로 채워진 순간들 속에는 자신이 어떤 인물이어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사랑해줄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그 짧은 달콤한 순간이 지나면 서서히 자기 자신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주변의 상황들을 둘러본다. 영화 속 악셀은 40대다. 30대인 율리에와는 다른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악셀은 자신과 율리에의 아이를 원하고 삶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자 한다. 반면에 율리에는 아직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만화가로서 확실한 직업적 기반을 가지고 있는 악셀을 보는 율리에는 묘한 질투심과 자신에 대한 불확실함을 느낀다.
영화 속에서 율리에는 타인에 의해서도 여러 번 질문을 받는다. '너는 뭐가 하고 싶은데?', '너는 아이를 낳고 싶어?'. 이런 질문들을 받는 율리에의 답은 '모르겠다'다. 영화 내내 율리에는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이 없다. 글 쓰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써보고, 사진 찍는 게 좋아 사진도 찍어본다. 하지만 어떤 것에서도 확신을 느끼지 못한다. 늘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곧 바뀐다. 그가 악셀을 떠나 에이빈드(헤르베르트 노르드룸)를 만나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악셀과의 만남에서 삶의 확신을 느끼지 못한 율리에는 마음이 더 끌리는 에이빈드와 만난다. 영화에서는 마치 뮤지컬 드라마처럼 구성된 첫 만남과 데이트 과정은 율리에의 시선을 명확히 보여준다. 화면 속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움직이지만 악셀을 비롯한 다른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언뜻 아름답게 느껴지는 순간이지만 그 속에 이별과 사랑의 시작이 뒤섞여 있다. 그 데이트의 전후에 율리에는 확신을 가지고 악셀에게 이별을 고한다. 아마도 영화에서 율리에가 가장 확신을 가지고 무언가를 이야기한 순간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확신은 있지만 여전히 '나의 미래'에 대한 확신은 없다.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원래 제목은 <세상에서 최악인 사람-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이다. 이 제목이 여러 의미로 해석이 될 수 있겠지만, 그 말 자체는 율리에가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드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국어로 만들어진 제목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영화 속 율리에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다. 확신을 가지고 무언가를 결정해서 다음 단계로 가더라도 그다음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마다 흔들리는 그의 모습에서 20-30대가 겪을 수 있는 불확실성의 늪이 보인다. 무언가를 선택해서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 더 많은 것을 경험해 보고 싶지만 깊이 있게 무언가를 해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무엇보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시종일관 괴롭힌다. 그 두려움은 죄책감을 만들고 율리에를 최악의 사람으로 느끼게 한다.
사실 율리에 뿐만 안이라 연인 관계가 되는 악셀이나 에이빈드도 자신이 하는 일과 삶에서 어떤 확신이 없다. 단지 하고자 하는 방향이 있을 뿐 그들 또한 확신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처음 전공을 선택할 때, 직장을 선택할 때, 연인을 만나 결혼을 선택할 때, 아이를 낳기로 결정할 때. 이런 선택의 순간들에 완전한 확신을 가지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사람은 흔치 않다. 영화는 율리에를 중심으로 그의 주변 연인들을 차례로 비추며 현실의 청년들이 고민하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로맨스를 중심으로 한 인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는 로맨틱한 사랑도 결국 현실 속의 고민들과 질문들에 답해가면서 선택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영상과 사랑에 빠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무척 답답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율리에의 확신 없는 모습이 답답함을 느끼게 하고 그것이 현재 우리들의 인생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현실감을 전달한다. 율리에를 연기한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는 이 영화의 연기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타기도 했다. 결국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좀 더 솔직해지고 자신만 확신이 없는 것을 알았을 때 좀 더 담담하게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이 배우의 얼굴로 무척 잘 표현되어 있다. 배우가 주는 생동감은 이 영화의 이야기가 우리 주변에서 들을 수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한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의 배우 레나테 레인스베의 생동감 있는 연기
영화의 제목처럼 율리에는 진짜 최악의 사람은 아니다. 단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확신이 없을 뿐이다. 그것 자체가 죄가 될 순 없다. 영화의 이야기를 보면서 느껴지는 건, 미래에 대한 뜨거움과 사랑의 달콤함 그리고 혼란스러움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감정들이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담겨있다. 어쩌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일들이 가장 보통의 삶이고,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모습일지 모른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 자신이 가야 할 길과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율리에를 관객들은 미워할 수 없다. 그 고민의 모습 어딘가에 우리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연출한 요아킨 트리에는 덴마크 출생의 노르웨이 감독이다. 그는 <델마>, <오슬로, 8월 31일> 같은 영화를 연출해 좋은 평가를 받았고 감각적인 연출 스타일로 관객들에게도 사랑받았다. 이번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도 감각적인 연출로 로맨스 장면에서는 사랑스러운 느낌을 전달하고 율리에의 고민에서는 인물들의 반응을 화면에 디테일하게 담아냈다.
관객 모두가 율리에가 영회 속에서 하는 결정과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경험한 것처럼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사실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렵다. 삶을 살아가면서 평생 고민하고 조금씩 방향을 바꿔나가야 한다. 율리에는 조금은 과감한 방식으로 방향을 틀어나가지만 그 모두가 결국 자아를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닐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는 그런 과정이 담겨있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구독할인 행사중입니다!
주간 뉴스레터 구독하여 읽어보세요 :)
https://rabbitgumi.stibee.com/
-
- 10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설경구, 김희애, 장동건, 수현 등 베테랑 배우들의 앙상블로 주목받은 <보통의 가족>이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습니다.
당초 10월 9일이었던 개봉 예정일을 10월 16일로 변경한 이유가 <대도시의 사랑법>, <조커: 폴리 아 되> 등 타 작품과의 경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많았는데요. 약 28만 명에 달하는 오프닝 스코어를 달성하며 좋은 선택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개봉 후 꾸준히 상위권을 지켜온 <베테랑 2>는 누적 관객 수 약 740만 명을 기록하며 여전히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 수 감소 추이가 눈에 띄고 있어, 천만 관객 돌파 여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와일드 로봇> 역시 안정적인 성적으로 3위를 유지하며 애니메이션 장르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유의 상상력과 감성적인 스토리로 가족 관객을 끌어들이며 꾸준히 관객 수를 확보하고 있어, 향후 몇 주간의 성적이 주목됩니다.
한편, 북미 박스오피스에서는 공포 스릴러 장르가 강세입니다.
국내에서도 개봉해 누적 관객 수 3만 명을 돌파한 <스마일 2>가 북미에서 1위를 기록하였고, 지난주 깜짝 1위에 올랐던 슬래셔 무비 <테리파이어 3>가 3위로 순위가 하락했지만, 여전히 좋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와일드 로봇>은 북미에서도 2위를 지키며 글로벌한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과 북미 모두 장르의 다양성이 돋보이는 박스오피스 흐름 속에서, 앞으로의 영화 시장 경쟁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
- 사랑한다고 XX! 「러브 라이즈 블리딩」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상대방을 지키겠다는 판단이자 결의'다. 사랑에 대한 그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사랑이란 일종의 자기 파괴다. '모든 이해란 오해'라는 니체의 말을 받아들였을 때도, 사랑은 일종의 자기 파괴다. 이해할 수 없는 필연적인 오해를 지키겠다는 결의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에서 '로맨틱'은 잠깐이고 지리멸렬한 갈등은 법칙이다. 성공하는 사랑 이야기는 로맨틱 '코미디'에 밖에 없다. 진짜 깊은 사랑은 서로를 파괴한다.
로즈 글래스가 연출한 「러브 라이즈 블리딩 Love Lies Bleeding」의 사랑은 어떤가. 헬스장 매니저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루’ 앞에 보디빌딩 대회 우승을 꿈꾸는 자유로운 영혼 ‘잭키’가 나타난다. 첫눈에 서로를 알아본 그들은 스테로이드(?)를 나눠 맞으며 사랑을 나누고, 잭키가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는 날에 함께 지겨운 도시를 떠나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가정폭력을 당하는 언니를 도우려던 '루'의 시도가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결국 '잭키'는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폭력을 숨기기 위해선 더 큰 폭력이 필요한 법. 피비린내 나는 그들의 사랑은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진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일단 주요 캐릭터들의 존재감이다. 여성 보디빌더 '잭키'를 연기한 케이티 오브라이언의 무게감은 말할 것 없고,'루'를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지금껏 보여준 연기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지만 지겹게 느껴지진 않았다. 약간 우스꽝스러운(변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음에도 위엄을 잃지 않는 에드 헤리스는 명불허전이다. 저런 머리를 하고 있는데도 무서운 건지, 저런 머리를 하고 있어서 무서운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강렬한 캐릭터 뒤로는 미덕과 아쉬움이 동시에 있다.
우선, 테마적인 면에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은 '힘'이다. 이 '힘'이라는 것이 가질 수 있는 양태를 다면적으로 다루었다는 것이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영화적 미덕이다. 사랑의 힘이라는 것이 발현되는 구체적인 형태와 성격은 세계의 인구수만큼 많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인 잭키를 보자.
잭키
이 영화에서 '힘'은 중요하다. 우선 '잭키'부터가 순수한 힘을 쫓는 보디빌더이다.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도망쳐 거리의 삶을 살았던 '잭키'에게 힘은 곧 생존이다. 순수한 힘을 향한 '잭키'의 집착은 영화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사격장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면접 자리에서 '잭키'는 총 같은 도구보다 육체 본연의 힘을 더 믿는다고 말한다. 체육관 앞에서 몇몇 남자들과 난투극을 벌인 후 "위험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루'에게 '잭키'는 "내가 그들을 이길 수 있어"라고 말하는데, 이는 '잭키'가 '루'에게 처음으로 정색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잭키'의 힘은 미숙하고 약하다. 그것은 버려진 두려움에서 비롯된 자기방어기제이기 때문이다. '잭키'가 격투기 선수나 역도 선수가 아닌 보디빌더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사실 보디빌딩은 '힘'을 쫓는 운동이 아니라, '미美'를 쫓는 운동이다. 실제로 보디빌딩의 번역어는 '육체미'다. 아름다운 몸(물론 여기서 '아름답다'의 기준은 근육의 크기, 강도, 균형 등이긴 하다)을 가꾸는 시합이지, 강력한 몸을 가꾸는 시합이 아닌 셈이다. 엄밀히 말해 보디빌딩은 스포츠로 분류되지도 않는다.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잭키'에게 원한 건 강한 게 아니라 강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잭키'는 시도 때도 없이 거울을 보며 자신의 근육을 관찰하고 포즈를 취하고, 누군가에게 강해 보이기 위해 불필요하게 선을 넘기도 한다(사격장 면접 씬과 헬스장 앞 난투극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믿는 기대도 어리숙하고 헛되다. 영화 속에서 묘사된 보디빌딩 대회를 보면 그다지 큰 규모도 아님을 알 수 있는데, 그런 대회에서 상을 몇 개 받는다고 인생이 크게 변할 순 없다. 감독이 어디까지 현실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애초에 훈련만큼 휴식과 영양, 값비싼 불법 약물 등이 더 중요한 보디빌딩에서 '잭키' 같은 사람이 성공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작중에서 '루'가 '잭키'에게 스테로이드를 권유했을 때 '잭키'는 매우 당혹스러워하는데, 이를 보면 그녀는 한 번도 약물을 사용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다(이때 '잭키'는 '루'에게 스스로를 내추럴*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신념이 있어서 스테로이드를 사용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다. '루'가 스테로이드를 공짜로 제공하겠다고 말하자 '잭키'는 곧바로 중독에 빠진다).
결과적으로 '터프함', '강함'에 대한 잭키의 어리숙한 집착은 그녀를 살인자로 만든다. 사실 영화 속에서 '잭키'가 살인을 할 이유는 딱히 없다. 물론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폭력성 과다, 숨기고 싶은 과거(잭키가 처음 도시에 왔을 때 일자리 알선을 위해 '루'의 형부와 원나잇을 했었다) 등이 엮여있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살인을 설명하긴 무리다.
정작 당사자인 '루' 역시 '잭키'의 개입을 원치 않았음에도 굳이 그녀를 돕겠다고 나서 살인까지 저지른 건 순전히 '잭키'의 어리광이다. 물론 그 미숙한 집착이 개인의 개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 문화 탓에 자라났다는 사실도 분명하지만.
*불법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보디빌더. 흔히 피트니스 업계에서 내추럴과 로이더는 함께 경쟁하지 않는다.
랭스턴
그에 비해 '랭스턴'(루의 아빠)이 가진 힘에의 의지는 결이 좀 다르다. 대형 사격장의 주인이자 총기 밀매 업자인 '랭스턴'은 실질적인 힘을 추구하고, 실제로 힘을 가지고 있다. '랭스턴'은 사막 한가운데 위치한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의 유력자다. 사업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깔끔하게 '처리'할 능력도 가지고 있고, 막대한 부를 축적해 공권력까지 손에 넣고 주무른다.
'랭스턴'이 가진 힘에의 의지가 어디서 비롯된 건지는 영화 속에서 드러나지 않지만, 어쨌든 영화 속 시점에서 그것은 '잭키'의 자기방어기제 단계는 넘어선지 오래로 보인다. 총을 좋아하냐는 자신의 질문에 '잭키'가 총보단 스스로의 힘을 믿는다는 엉뚱한 대답(사격장 매니저를 뽑는 자리였으니까)을 했을 때도, '랭스턴'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잭키'를 채용한다. 아마도 그것은 '잭키'가 힘에 대한 미숙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고 언젠가 자신을 위해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지 않았을까(실제로 그는 '잭키'를 '처리'의 도구로 이용한다). 거울을 보며 스스로의 근육을 구경하는 '잭키'에게 사격을 경험시키면서 "진짜 '힘'은 이런 것"이라고 위계(?)를 보여주는 장면 역시 '랭스턴'이 가진 지배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예다.
그러나 강력한 힘을 가진 '랭스턴'의 지배 욕구는 단순하지 않고, 그래서 그의 욕구 역시 불완전하다. '랭스턴'은 힘이나 돈으로 찍어누르는 1차원적인 지배를 원하지 않고, 좀 더 완결적이고 총체적인 지배, 그러니까 '완전한 장악'을 원한다. 그에게 인간이란 사무실에서 애지중지 기르는 애완용 벌레 같은 것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과거 '랭스턴'이 딸인 '루'를 자신의 사업(총기 밀매)에 끌어들이려고 한 것 같은 묘사를 생각해 보자. 보통 영화에서 성공한 갱이나 마피아들은 자식을 범죄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으려 하기 마련인데, '랭스턴'은 '루'에게 사업을 가르쳐 주고 일에 방해되는 사람을 '처리'하는 방법까지 가르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랭스턴'의 묘사로 볼 때 그에게 인력이 부족해서 '루'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랭스턴'은 '루'를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다만 그에게 사랑이란 '자아의 연장'이자 '힘의 확장'과 유사한 개념이었을 뿐이다.
'루'의 언니가 가정폭력으로 병원에 입원한 것을 계기로 '랭스턴'과 '루'는 불편한 재회를 하게 된다. 이때 '랭스턴'이 '루'를 대하는 방식은 결코 미움이나 혐오가 아니다. 미움보다는 '그냥 내 말 듣고 시키는 대로 했으면 편하게 잘 살았을 텐데 사서 고생이냐'는 전형적인 K-아버지식 태도에 가깝다. 나아가 '잭키'가 저지른 실수 탓에 '루'가 곤경에 빠졌을 때도 '랭스턴'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루'를 돕는다.
그러나 극의 후반부 결국 그의 사랑은 힘을 갖지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된다. 그의 사랑은 끝없는 자기 확장 욕구의 발현 방식이었을 뿐, '자기 파괴의 감수'까지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가 '랭스턴'의 입지를 흔들만한 비밀을 폭로하려 하자, '랭스턴'은 곧바로 돌변했다.
데이지와 베스
작중 양아치 남편 JJ로부터 끊임없이 폭행을 당하면서도 그를 떠나지 못하는 '베스(루의 언니)'와 '루'를 짝사랑하는 '데이지'가 가진 힘의 욕구는 수동적이고 퇴행적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들에게도 욕구가 있다.
'베스'는 양아치 남편에게 가정폭력 피해를 당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떠나지 못한다. 일반적인 가정 폭력 피해자들의 경우와는 다르게 '베스'는 강력한 무력과 재력을 가진 아버지가 있음에도 JJ를 떠나지 못하는데, 이는 '베스'가 가진 왜곡된 사랑 탓이다. (작중 '베스'의 이야기가 많이 다뤄지지 않지만) 심각한 폭행으로 병원에 입원한 자신을 타이르는 '루'에게 '베스'는 "너는 (자기 파괴적인) 사랑을 몰라"라며 JJ를 옹호한다. 이에 더해 '베스'는 '루'와는 달리 아버지 '랭스턴'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이어왔던 듯 묘사되는데, '베스'는 사랑이 가진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온몸으로 수용하지만(JJ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악행 역시 감내했다) 그 의미를 오해하고 있다. 나와 근본적으로 다른, 그래서 이해될 수 없는 타인을 지키겠다는 결의로서 사랑은 무비판적인 수동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은 상대를 향한 적극적인 행동 양식이다. 베스가 진정 JJ를 사랑했다면, JJ의 인격적인 성장을 위해 힘썼을 것이다. 그게 JJ를 떠나는 방식이 된다고 하더라도.
데이지의 경우는 전형적인 '왜곡된 사랑' 그 자체다. 우선 영화는 데이지의 미성숙을 도드라진 방식으로 보여준다. 다 큰 어른이지만 우유와 사탕을 입에 달고 살고, 유아적인 표정과 말투를 가졌다. 다 빠져버린 치아의 상태를 봤을 때 아마도 그녀는 마약을 남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녀는 '루'에게 대마초를 권유하기도 한다).
'데이지'는 '루'를 향한 집착에 가까운 짝사랑을 가지고, 이에 대한 '루'의 반응으로 봤을 때 그 세월도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항상 기름진 머리로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데이지는 '루'를 자신의 답답한 인생에서 탈출시켜줄 구원자처럼 여긴다. 그들이 체육관 화장실에서 처음 마주치는 장면을 보면, '데이지'를 귀찮아하는 '루'는 마치 어린아이 어르듯 돈을 건넨다. 그러자 '데이지'는 상처받은 듯 실망하지만 이윽고 돈을 보고 웃는 낯을 보이는데, 이와 같은 '데이지'의 양가적인 모습은 영화 내내 계속 반복된다. 특히 시체를 싣고 가던 '잭키'를 목격한 이후, '데이지'는 '루'의 약점을 가지고 선을 넘을 듯 말 듯 교묘하게 그것을 활용하는 태도를 보인다. '데이지'는 순수하게 '루'를 사랑하는 순애보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데이지'는 '루'를 목적으로 대하지 않는다(계속해서 '잭키'와 JJ의 자동차와의 연결고리를 묻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영화의 후반부 삶에서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던 힘(목격자의 지위)을 가지게 된 '데이지'의 행동을 보았을 때, '데이지'의 사랑은 어린아이와 같은 형태의 퇴행적인 자기애에 가까운 셈이다.
루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힘을 가지는데 성공하는 인물은 '루'다. 오직 '루'만이 주체적으로 '자기 파괴'의 결단을 내리는데 성공하기 때문이다. 우선 '루'는 영화가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랭스턴'의 악행을 스스로 거부하고 독립에 (반쯤?) 성공한 상태다. '잭키'를 먼저 발견하고, 관계를 리드하는 것도 '루'다. '잭키'를 위해 매일 계란 노른자를 분리해 주고, 스테로이드를 제공한다(비록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긴 하지만).
「러브 라이즈 블리딩」 속 주요 캐릭터들은 모두 파괴를 겪는다. '잭키'는 평생을 꿈꿨던 무대를 망치고 살인자가 됐고, '랭스턴'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군 왕국을 잃었으며, '베스'는 엉망이 된 채 JJ를 잃고 '데이지'는 배신당한 채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이 중에 타인을 위해 스스로의 선택으로 자아를 희생한 것은 '루'가 유일하다.
'루'는 평생 아버지의 악행을 혐오하며 그와 닮지 않기 위해 우악스럽게 살아왔지만, 결국 '잭키'를 위해 피를 두 번 묻힌다(엉망이 된 JJ의 시체를 숨기며 첫 번째 죄를 저지른 후 영화의 결말에 또 한 번 결정적인 죄악을 저지른다). '잭키'를 위한 '루'의 자기 파괴적 희생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요소는 바로 담배다. 작중에서 '루'는 금연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하면서도 계속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금연 교육 테이프를 들으면서도 담배를 피운다), '잭키'가 떠나고 난 후 금연을 선언하고 실제로 금연에 성공한다.
그러나 '잭키'와 함께 사막을 떠나던 중 반쯤 죽었던 '데이지'가 다시 꿈틀거리고 '루'가 이를 다시 처리(?) 하는데, 이때 결국 '루'는 '데이지'가 가지고 있던 담배를 꺼내 물어버린다. 이 장면에서 '잭키'는 세상모르고 낮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루'는 타자를 지키기 위해 (아무도 모르게) 도덕적인 자기 파괴를 감행했고, 결국 (담배처럼) 자기 자신을 갉아먹을 것이 분명한 '잭키'와의 사랑을 스스로 선택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 '랭스턴'의 저택에서 '루'와 '잭키'가 힘을 합치는 장면을 생각해 보자. '랭스턴'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잭키'의 거대화(?)다. 그러나 이 거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것, 다시 말해 '잭키'가 그토록 갈망하던 '커 보이는 것 / 강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힘(거대화)'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목숨을 걸고 '랭스턴'의 저택으로 돌아온 '루'의 용기 덕이었다.
'잭키'는 모든 것을 잃고 친동생에게 전화해 "(너무 힘드니까) 넌 사랑하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루'는 (베스와) 소리를 지르며 싸우다 가다도 "언니 사랑해!!"라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결과적으로, 힘에 대한 갈망이 가장이 없었던 '루' 만이 진짜 사랑에 도달해 '힘'을 얻었다.
카메라
「러브 라이즈 블리딩」에서 힘을 갈망하는 마지막 주체는 카메라다. 이 영화에서 '형식'은 끊임없이 저 자신을 드러낸다. '루'가 손으로 직접 막힌 체육관 변기를 뚫고 있는 매우 부담스러운 클로즈업으로 시작한 영화는 이후 땀에 젖은 육체와 의미심장한 문구들을 접사한다. 영화 중간중간에 종교화의 색채를 띤 사막 위의 생명체와 기물들을 '몽타주'하는가 하면, 폭력을 전시하듯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연극적인(극단적인) 조명 연출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다가, 종국에는 (약간?) 당혹스러운 CG까지 나아간다. 저 자신의 영화적인 스타일리시를 백분 활용하는 「러브 라이즈 블리딩」의 카메라 역시 힘에 대한 욕구(사랑)가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사랑은 어디를 향하며, 또 성공했을까?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은 (어느 영화나 다 그렇듯) 영화를 본 관객마다 다를 것인데, 나의 경우 개인적으로 반쯤은 성공했고 반쯤은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우선 개인적으로 카메라가 [내러티브 - 인물]보다 앞섰다고 보았다(앞서 언급한 클로즈업/조명/인서트들이 내러티브를 돋보이게 한다기보단 저 자신의 스타일에 더 집중한다). 이를테면 '잭키'가 스테로이드 취해 '루'를 토해내는 환상을 보는 장면 같은 겨우, '잭키'가 겪고 있는 어떤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잭키'가 자신 속에 있는 '루'를 토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야기의 맥락('루'가 '잭키'의 살인을 수습하고 있을 때다)으로 봤을 때 만약 토해내야 한다면 '루'가 '잭키'를 토해내야 하는 상황이 아닐까.
이와 같은 스타일리시의 과잉은 캐릭터와 내러티브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카메라라는 저 자신의 형식에 더 취하는 것으로 보여 아쉬웠다. 그러나 이는 A24 영화의 정체성이기도 하고, 로즈 글래스 감독의 성향이기도 해서, 사실 미덕의 문제라기보단 취향의 문제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종횡무진 활보하는 '스타일'의 수위를 조금만 더 낮췄다면 '80년대 미국 시골'이라는 배경과 '가부장제를 부시는 아웃사이더'라는 소재와 현대적인 스타일, 이 세 가지 부조화스러운 영화적 요소들이 조금 더 매력 있는 간극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예를 들어 인서트 컷들만 남기도 눈에 튀는 연출들을 배제했다가 영화의 후반부 거인화 장면이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왔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다.
-
- 전도연이 다한 "리볼버" 후기 /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 / 느린 호흡에도 긴장감 넘치는 전개 / 배우들의 찢는 연기력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리볼버"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네요~
-
-
- 넷플릭스 <브리저튼 시즌 2> 공식 예고편
의무를 따르는 것과 가슴을 따르는 것. 둘 중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사교계에 또 한 번의 스캔들이 불어온다. 《브리저튼》 시즌 2, 3월 최초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
- 영화 <엔칸토 : 마법의 세계> 30초 리뷰 예고편
"디즈니 최고의 애니메이션" 개봉하자마자 외화 예매율 1위 등극 ? [엔칸토: 마법의 세계] 지금 바로 극장에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