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1-12-20 00:14:21
시작 전이 더 재미있는, 스토브리그
야구를 좋아하지 않아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드라마를 하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뜻합니다.
이 기간에 계약 갱신이나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는데요.
가상의 팀인 재송 드림즈의 꼴지 탈출을 위한 기간,
과연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곳곳에 썩어버린 땅에 심어진 사과나무 한 그루의 영향력.
잘하지 않는 팀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분명히 힘든 일입니다.
반대로 잘하는 팀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도 분명히 힘든 일이죠.
어느 팀이든 고민거리나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팬들은 승부가 당연히 중요하고 실망하고 돌아서기도 하지만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하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건 당연합니다.
드림즈도 마찬가지였죠.
꼴찌면서 매너도 경기도 모두 지는 그런 팀이었기에 스토브리그가 굉장히 어려운 팀이 되었습니다.
곳곳에 썩은 뿌리가 심어져 있는 이 곳에 새로운 단장이 오게 되면서 많은 변화와 혼란스러움이 오지만
그럼에도 스토브리그를 드림즈는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을까요?
저도 프로축구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정말 힘들게 우승을 못하는 구단을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이야기 하는 종목은 다르지만 비슷하게 다뤄지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고
선수들의 마음가짐이 저렇다면 응원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강두기 선수)
항상 조롱을 당하고 기대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받아야 했던 제가 조금은 위로를 받았던 드라마 였습니다.
KBS에서 이런 소재를 다루고 또 멋진 드라마로 마무리까지 잘 해낸 스토브리그,
추천합니다.
연기도 연출도 각본도 모두 잘 어우러진!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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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의 상실을 위하여
* 이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 받아 참석한 영화 <로스트 도터>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많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이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모성'에 대한 착각
'모성 신화'의 역사는 유구하다. 인간이 언어를 구사한 이래, 우리는 끊임없이 '어머니'라는 존재를 아가페적 사랑의 원천으로 숭배해 왔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그를 귀애해 마지 않는 어머니의 이미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래도록 칭송 받아온 바 있다. '어머니'는 현명하고 자애로우며 자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불사할 수 있다. 사랑하는 자식만을 평생토록 바라보며 자신의 꿈마저 저버리는 자기 희생적인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에 숱하게 남아있는 이러한 '모성 신화'에 대한 숭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릿적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모성애'는 타고난 것이므로 아이를 낳기만 하면 그것은 자연스럽게 터득될 것이라고.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세상의 어느 동물인들 없으랴마는, 인간들이 오래도록 쌓아온 '모성'이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그것은 뭍 주장들과는 상반되게도, 다분히 개인의 본능과 욕망을 인위적인 방식으로 억압하고 제약함으로써 '만들어진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 사회의 '어머니'들은 단순히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만인의 인정을 받는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소리다.
올리비아 콜먼 주연의 <로스트 도터>는 이러한 모성 신화의 그림자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2. '엄마'라는 이름의 족쇄
레다는 일견 성공한 중년 여성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이탈리아어문학 교수로 일하고, 홀로 며칠씩 해변이 딸린 리조트에 휴가를 올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의 소유자다. 그의 행동과 말 하나하나는 품위있고 고상하다. 휴가를 와서까지 하루종일 육아에 시달리는 '니나'가 더 없이 여유로워 보이는 그를 부러워하며 '당신 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적하게 책이나 읽으며 휴가를 즐기는 레다와는 달리,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아이를 낳은 '니나'는 한시도 쉴 틈이 없다. 그의 귀여운 딸이 언제나 그의 곁을 맴돌기 때문이다. 남편과 남편의 가족들은 저희들끼리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에 바쁘고, 육아는 언제나 그의 몫이 되고 만다. 딸아이는 집착적으로 니나에게 매달린다. 마치 그가 제 세상의 전부라는 듯이. 제 인형에 제 엄마를 투영하고, 엄마와 꼭 같은 자리에 타투를 그리고 그를 성심껏 돌보는 딸아이의 모습은 가히 광적인 수준이다.
젊은 엄마는 눈에 띄게 지쳐 있다. 그의 그러한 모습이, 레다의 눈에 들어온다. 보지 않으면 그만일텐데, 아이의 높은 웃음 소리, 혹은 울음 소리가 자꾸만 귀에 스미고, 피로한 니나의 낯이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다.
그것은, 서로 너무나 다를 것만 같던 두 사람이 실상은 같은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레다는 니나나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엄마'가 아니다.
그는 여느 엄마들처럼 딸들을 사랑했으나 그 처참한 육아의 현장을 숭고하게 버티고 이겨낼 수 있을 만큼 견고하지는 못했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보채고 울고 떼를 썼다. 유일한 공동 양육자인 남편은 스스로의 커리어를 빌미로 모든 육아를 그에게 떠안겼다. 그 또한 꿈과 욕망이 있지만 그의 가정은 그것을 충족시키기는 커녕 도리어 박탈했다.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아이의 울음 소리는 사이렌처럼 귓가에 울렸다. 제 엄마와 다르게 일과 육아, 모두를 해내고 싶었던 그는 마침내 폭발했다.
'이상적인 어머니'의 틀을 벗어나 일탈을 감행한 것이다. 레다는 부도덕해졌다. 육아로 인해 채 완전해지지 못했던 논문은 저명한 학자와의 하룻밤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이목을 끌었다. 그는 잠시나마 육아의 현장 밖에서 자신의 욕망과 야망을 펼친다. 그것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엄마'가 아닌 '사람'인 레다는 훨씬 생기 있고 사람다웠다. 그러나 그 부정한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날, 레다는 비로소 깨닫는다. 이 집으로,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한, 자신은 그 족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또 떠나면 아이들은 네 어머니에게 맡길 거야.
레다의 남편은 말했다.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남편은 처음부터 그의 '공동' 양육자가 아니었던 것이다. 육아는 두 사람 모두에게 끔찍했을테지만, 남편은 그것을 또다른 '어머니'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고자 했다. 마치 본래 제 일이 아니었다는 것처럼.
그래서 레다는 딸들을 떠났다. 무책임해졌다. 그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을 떠나서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았다! ...라는 이야기였다면 무정할지언정 레다 개인에게는 좋은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레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사랑했고 그애들이 보고 싶었던 그는 끝내 몇 년만의 일탈 끝에 그들의 품으로 돌아갔노라고 고백한다. 그는 끝내 육아에서 해방되지 못했고 젊은날 저를 괴롭히던 육아의 단면들은 트라우마로 남아 평생토록 그를 괴롭힌다. 그렇다, 마치 채 떼어내지지 않는 혹이나 종양처럼 말이다.
이런 레다가 '엄마'라는 비슷한 처지의 니나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레다에게 '니나'는 자신의 과거의 단편과도 같다.
3. '엄마'를 훔치다
두 사람은 '니나'의 딸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가까워진다. '니나'는 딸을 찾아준 '여유로운 중년 부인'인 레다를 기꺼워하고, '실은, 엄마로 산다는 게 너무나도 지치고 괴롭'노라고, 차마 남들에게는 말하지 못한 비밀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런 그가 미처 깨닫지 못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제 눈 앞의 상대가 바로 그를 이번 휴가 내내 괴롭게 한 사건의 원흉이라는 점이리라. 니나의 딸은 아끼던 애착 인형을 잃어버려 몇 날 며칠 동안 울음을 그치지 않았는데, 그 인형을 훔쳐간 이가 바로 '레다'였던 까닭이다.
부족할 것 없는 레다가 왜 하필 아이의 인형을 훔쳤을까? 그것은 이 영화에서 '인형'은 '엄마'를 투영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레다도 딸인 '비앙카'가 어릴 적에 제가 소중히 여기던 인형을 선물한 바가 있었다. 그는 제 딸에게 말했다. '자, 내 소중한 인형이야. 이게 이제부터 네 엄마라고 생각해.'라고. 소중하게 돌보라는 뜻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몇 시간 후 인형의 꼴은 처참했다. 온 몸에 낙서가 그려져 있고 만신창이가 된 인형의 모습은 시종 아이에게 시달려 망가져 가는 레다 본인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니나의 인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니나의 딸 역시 인형에게서 제 엄마인 니나를 본다. 아이는 한시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듯 엄마를 비춰보는 인형 역시 제 품에서 떨어트려 놓지 않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를 귀애하듯 인형을 귀애한다. 인형은 망가져 간다. 레다의 인형이 그러했듯이.
레다가 인형을 훔친 것은 어쩌면 이러한 까닭에서인지도 모른다.
레다는 아이에게서 '엄마'를 빼앗고, 빗질하고, 옷을 갈아 입히고, 뱃속 깊숙이 채워진 구정물과 벌레 따위를 토해내게 한다. 그리고 아주 소중하게 찬장에 넣어두고 그것을 보살핀다. 그러나 그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는 불안해진다. 아이는 끊임없이 '엄마'를 찾아 헤메고, '엄마'는 다른 무엇(예컨대 다른 인형)으로도 대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인형은 본래 제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레다가 결국은 제 딸아이에게로 돌아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엄마는 그럼에도 엄마이기 때문에. 그 견고한 '어머니'라는 이름의 족쇄를 그럼에도 차마 끊어내지 못했으므로.
니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영화가 보여주는 그의 많은 면모는 레다의 과거와 무척 닮아 있다. 레다가 제 딸인 비앙카들에게 결국 돌아갔던 것처럼 그 역시 그 지긋지긋한 독박 육아의 세계를 차마 박차고 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부정을 저지를지라도, 부도덕을 감내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그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인간 사회에서 '엄마'가 되거나 되어야 했던 사람들의 보편적인 운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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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이 영화를 떠올리느라 리뷰를 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도 엄마의 딸이었고 나도 '비앙카'로서 엄마를 내 세계의 전부로 여기며 내 엄마가 '엄마답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기를 바랐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엄마가 내 엄마이기 때문에 내 갖은 투정과 슬픔을 당연히 감당해야하노라고, 엄마가 나를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소위 '잘못된 훈육'을 했던 일을 곱씹으며 '엄마는 그래선 안 됐어'라며 당신을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배은망덕한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변명하자면, 그것이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하고 세뇌시킨 모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성인군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었던지라 때때로 내게 성을 내기도 하고, 실수를 하거나 슬퍼하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엄마였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를 사랑했고, 그래도 당신께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레다'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자꾸만 엄마를 떠올리게 된 것은 나의 엄마 역시 '모성 신화'의 피해자면서 '엄마'로 살아간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이 글은 <로스트 도터>에 대한 분석 및 감상이자 '엄마'의 딸로서 쓰는 일종의 반성이기도 하며, 이 지독한 모성 신화의 세계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우리는 엄마에 대한 색안경을 좀 벗을 필요가 있다. 엄마는 거창한 존재가 아니다. 엄마는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어찌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인데 우리는 오래도록 이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하곤 한다.
나는 이제 엄마를 그만 애틋해 하고 싶다. 이 세상의 엄마들이 스트레스, 경력 단절 따위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들이 엄마이기 이전에 개인으로서의 욕망과 야망을 충분히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가부장 문화와 '모성 신화'가 실재하는 오늘날의 인간 사회에서 이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 일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고, 나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엄마를 꿈꿔 본다. 어제의 엄마보다는 오늘의 엄마가 더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의 엄마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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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과 비교하면 한없이 부족하고 모르고 본다면 그저 로맨스인 영화
제가 이번에 본 영화<조제>때문에 최근에 원작 소설과 일본영화<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작품을 봐왔었는데요. 이제서야 한국판 리메이크로 재탄생한 영화 <조제>를 보고 왔습니다. 아무래도 똑같은 작품을 3번 연달아 봐서 그런가 같은 내용에는 이제 무감각적으로 변하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한국판으로 재탄생한 영화<조제>는 원작들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오히려 저는 개인적으로 같은 설정으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더라면 지금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한국판 조제는 원작을 엉성하게 따라 하려다 보니 원작의 장점이 퇴색되버린 부분이 많은 작품인듯하네요. 자세한 건 리뷰로 시작하겠습니다.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집,
그곳에서 책을 읽고 상상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살고 있는 ‘조제’.
우연히 만난 그녀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 ‘영석’은 천천히,
그리고 솔직하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사랑이 설레는 한편 가슴 아픈 ‘조제’는 자신에게 찾아온 낯선 감정을 밀어내는데…
기억할 거야 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을
이번에 한국판으로 새롭게 리메이크 된 영화<조제>의 스토리는 기존 원작과 별반 다르지 않는 전개를 보여주는데요. 원작에서 츠네오의 경우에는 배우 남주혁이 영석의 이름으로 연기하고 조제는 배우 한지민이 연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스토리라인은 몇몇의 사건의 나열을 다르게 보여줄 뿐 전체적인 맥락은 별반 다르지 않는데 작중 초반 영석(남주혁)이 휠체어에서 넘어져있는 조제(한지민)를 발견하는 것을 계기로 첫 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영석은 매일 조제의 집에 찾아가서 조제에게 밥을 얻어먹으며 둘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지면서 로맨스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는 점은 원작과 똑같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1) 새로운 비주얼 - 남주혁과 한지민이 보여주는 한국판 조제
이번에 한국판으로 새롭게 탄생한 영화<조제>는 원작 소설<조제와 호랑이와 그리고 물고기들>의 작품을 토대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미 한차례 일본에서 영화화 한 적도 있는 작품이죠. 그런 점에서 보았을 때 이번에 새롭게 보여주는 영화 <조제>는 새로운 비주얼로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이긴 해요. 일단 기본적으로 배우 한지민과 남주혁의 이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배경 자체가 한국이다 보니 한국의 정서가 느껴지는 부분도 적게 남아 표현되고 있어서 원작을 알고 있는 저로서는 이러한 새로운 비주얼 만으로도 새로운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은 있었던 것 같아요.
2) 각색 아닌 각색 - 원작의 사건들을 똑같이 나열
일단 영화<조제>에 관해서 할 이야기는 많지만 가장 근본적으로 해야 될 건 바로 원작에 대한 각색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한국판으로 새롭게 리메이크된 이번 영화<조제>는 솔직히 말해서 각색이라고는 말하기 힘들 정도로 원작 영화와 흡사한 부분이 상당히 많아요. 리메이크란 점에서 조제가 다리를 쓰지 못하는 하반신 장애라는 점, 그리고 영석이 우연히 조제를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는 점 이건 기본적인 설정이니 당연히 써야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그 이외에도 원작 영화에서 가져온 내용들을 상당히 많이 가져다 써요. 심하게 말하면 거의 영화 전체적인 부분을 그대로 가져와 썼다고 해도 될 정도죠. 예전에 영화 <골든슬럼버>가 이렇게 영화를 리메이크했다가 혹평을 상당히 많이 하기도 했었죠.
이번 영화<조제>는 원작 영화의 내용들을 사건 하나하나 나열해서 그대로 배열한 느낌인데 각색 아닌 각색이라고 한 이유가 그러한 사건들에서 그저 사물을 바꾼다거나 등장인물을 바꾸는 식으로 등장할 뿐 내용적으로 새롭게 해석한 부분은 전혀 없다는 부분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에요. 원작 영화에서는 그 사건들, 그리고 상황에 따른 대사 하나가 영화의 전체적인 의미를 갖는데 그걸 그저 사건의 나열로만 사용했다는 건 확실히 영화<조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버렸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3) 사라진 의미들 - 대사, 물건 하나하나가 중요한 작품인데...
영화<조제>의 스토리는 원작 영화의 사건들을 그저 나열만 하고 있으니 조제라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 그리고 사물에 대한 의미들이 퇴색되버리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휠체어라는 장치를 어떻게 보면 조제 본인의 미숙한 마음을 표현했다는 부분이라던가 호랑이, 물고기 더 나아가 영석의 대학교 후배와 조제와의 관계 등 그런 모든 상황들이 대조되면서 영화 <조제>는 감정적인 서사가 중요한 작품이 되었는데 이번에 리메이크된 한국판 <조제>그러한 의미들이 사라지고 그저 로맨스 드라마, 신파극으로서 보이고 있는 건 조제라는 작품의 존재 의의를 없애버린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이 되네요. 가장 어이없는 부분은 호랑이와 물고기에 대한 부분인데 처음엔 왜 제목이 조제만 있을까 생각했는데 그 이유를 영화를 보고 나서야 호랑이와 물고기에 대한 부분은 한국판 <조제>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사용될 뿐이더라고요.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번 영화 조제가 기존의 원작들과 차이점을 둘려 했는지 결말에 대한 부분을 바꿨는데 이 부분은 일본 영화에서도 이미 한차례 새롭게 재해석한 부분이기 해요. 원작 소설에서는 조제와 츠네오가 끝까지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으로 결말이 나고 일본 영화에서는 츠네오가 조제에게서 도망치는 결말을 보여주죠. 이번 한국판 조제에서도 영석이 조제에게서 떠나는 건 맞지만 그 이유가 조제가 영석을 놓아준다는 느낌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조제는 이제 혼자서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는 연출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끝이 나죠. 이점만 본다면 확실히 각본의 의도가 어떤 식이었는지는 알 것 같은데 애초에 이럴 거면 영화의 전체적인 서사를 조제의 초점으로 새롭게 재해석을 했어야 했다고 봅니다.
4) 중요한 영화의 주체 - 자꾸만 바뀌어 버리는 이상한 연출
원작<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는 엄밀히 말해서 영화의 주체는 저는 남자 주인공 '츠네오'였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작중 초반부터 츠네오의 시점으로 시작해서 조제와의 모든 관계 상황들이 츠네오로서 진행이 되어서 모든 상황과 감정들이 공감하기 쉬웠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국판 영화<조제>는 그러한 영화의 전체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섬세히 연출되어 있지는 않더라고요. 작중 초반에는 영석의 시점으로 진행되다가도 가면 갈수록 조제의 시점으로 바뀌는듯하면서 다시 영석의 생각으로 돌아가고 자꾸만 이렇게 영화를 이끌어 가야 될 중요한 주체가 애매하게만 연출되고 있으니 제가 방금 말한 결말부에 대한 감정이입이 잘 공감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차라리 조제의 입장에서 오히려 조제의 성장으로만 초점을 맞췄다면 이해되지 않는 감정선이 조금 더 편했을 거예요. 당장에 영석과 조제의 갈등 부분도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의 갈등보다는 할머니로서의 갈등인데 할머니를 사용하는 방식도 그렇게 섬세하지 않다는 거에 이미 영화<조제>의 방향성은 그저 로맨스 드라마라는 거에 치중되어 있다고 봐야겠죠.
5) 그저 로맨스 신파 - 이렇게만 본다면 그나마 볼만
원작을 보지 않았다는 가정하에서 보면 그래도 나름대로 볼만한 로맨스 신파극 드라마로 그나마 볼만한 수준이었던 영화이긴 해요. 일단 우연히 만난 두 사람 그리고 여자는 다리를 쓰지 못하는 하반신 장애 이러한 설정들을 고려해보면 확실히 흥미를 끌만한 소재에 대가 그것을 연기하는 배우마저 남주혁과 한지민이니 정말 가벼운 로맨스 영화를 본다는 시점으로 본다면 볼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저는 이러한 진부한 로맨스 영화가 취향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작품을 그저 볼만한 작품으로 만들어졌다는 건 확실히 원작을 본 사람들 입장에서는 추천해드리고 싶은 작품은 절대 아니긴 하네요.
1) 배우 한지민, 남주혁
영화 <조제>가 스토리적인 면에서는 애초에 원작을 따르는 작품이기도 하고 영화 자체의 스토리도 그저 로맨스 신파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매력 없지만 그래도 그러한 스토리에서 한국 배우 한지민, 남주혁이 연기를 하고 스크린을 채워간다는 점은 어떤 이들에겐 그래도 나름의 관점 포인트이지 않을까 싶어요. 저의 경우에는 배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비중은 거의 2할 정도라서 크게 메리트는 없지만요.
2) 엔딩크레딧 노래
관점 포인트라고 하기도 머 한데 엔딩크레딧 삽입곡에 아이유 노래인 자장가가 나옵니다. 잔잔하게 영화만 보다가 갑자기 엔딩크레딧에서 아이유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영화를 너무 재미없게 봐서 그런가 아이유 노래가 그나마 위안이 되긴 하더라고요. 애초에 엔딩크레딧에 아이유 노래가 삽입된다고 이슈가 된 적도 있던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엔딩크레딧이 저는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관점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네요.
자 이제 저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원작 소설부터 영화화된 모든 작품들 보기 프로젝트가 애니메이션만 남겨두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소설도 읽고 영화도 2편이나 봐서 그런가 이제는 내용에 한해서는 감흥이 없어진 것 같긴 하네요. 그래도 이번 한국판 조제는 개인적으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드는 점도 있긴 해요. 원작을 몰랐다면 그저 로맨스 신파극으로만 리뷰를 작성했을 건데 이렇게 원작을 알고 보니 더 많은 게 보인 건 사실이니까요. 이제는 애니메이션판 조제만 남겨두고 있는데 이건 아무래도 내년 1월에 개봉을 하겠죠. 이건 이것대로 기다리고 이상 조제에 관한 리뷰를 마치겠습니다.
* 본 콘텐츠는 블로거 민케이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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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희, 침투의 미학
영화사가 시작되고 인간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무대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과거 기술적 한계로 지구란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던 이야기는 VFX의 발달로 무한한 상상력과 함께 우주로 향해갔다. 기술적으로 우주에 대한 표현은 정교해졌지만 크리스토퍼 놀란급의 과학적 열정 없이는 소소한 오류들이 발견되곤 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설명이 충분하다면 개의치 않고 영화를 즐겁게 관람한다. 사실 현실에 가까운 우주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사람은 굉장히 드물 것이다. 우리는 실제에 기반한 다큐보단 누군가에 의해 재창조된 우주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인간에게 적절한 방향성을 지닌 영화의 파급력은 빅뱅급의 위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발적인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 지금까지는 없었던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고 우리는 그곳을 탐험하기 시작한다.
조성희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세계관이란 어떤 것일까? 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일반적이진 않을지라도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는 이들이다. 일반적이지 않은 삶에 더 이질적인 존재들의 간섭이 시작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꼬여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사건건 발생하는 침투를 관대하게 용인하는 것이 조성희 감독이 추구하는 궁극의 미학이며, 이는 작품 속에서 훌륭하게 작동한다.
당연하게도 외부로부터의 침투는 일방적인 폭력이다. 누구에게나 불편한 상황이지만 조성희 감독은 특유의 접근법을 통해 부드럽지만 폭력보다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제스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가 노자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도는 없지만 때로는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부드러움이란 천진난만한 아이의 태도에서 시작된다.
<남매의 집>을 시작으로 그가 연출한 모든 작품 속에 아이들이 나오는다는 것은 가족을 강조하는 감독의 고집과 등장만으로 마음의 무장이 해제되는 마법 같은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잠복근무>에선 범인을 검거하는 살 얼음 판 위에서 철부지 아이 같은 친구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 속 아이들은 일반적인 것과 결이 다른 인물들에게 불편함을 선사하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그리고 대게 그들의 천진함이 수많은 사건들을 야기하는 방아쇠가 되며, 이는 자칫 관객에게조차 불편한 존재가 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조성희 감독은 아이들을 고집한다. 아이들의 천진함을 무기로 그의 세계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인물의 세계에 끊임없이 침투를 강행한다. 대게 침투를 받는 이들은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며, 조성희 감독은 아이들을 통해 경각심 가득한 메시지를 보낸다.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에겐 미래란 없다. 단지 과거에 갇혀 스스로 정한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때까지 아등바등거릴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아이들의 미래를 송두리째 뽑으려는 시도조차 불사한다. 쉴 틈 없이 살아가던 이들에게 아이들은 천진난만한 침투를 통해 미래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자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아이들은 순식간에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고 그 순간부터 모두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귀찮아 대답조차 않던 이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곱씹기 시작하면서 인물들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태호는 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수양딸 순이의 죽음이 부족한 돈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태호의 집착은 결국 돈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내지만 세상을 이루는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꽃님이를 잃고 만다. 드디어 순이의 시신을 수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태호는 죽은 딸의 노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몰랐던 페이지를 발견하게 되면서 행복이란 돈이 아닌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과거에 갇혀있던 태호는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꽃님이란 미래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리고 그의 변화는 아이들이란 미래를 지키는 것을 통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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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딜런 영화에서 밥 딜런이 없었다면 큰일 났을 영화
과거 한참 음악에 미쳐있던 시절, 강헌 교수님의 <전복과 반전의 순간 vol.1>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그 책을 모두 읽은 후 필자의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예술의 역사와 반전은 반항에서 시작한다."였다. 특히나 음악 같은 경우, 한 사회를 주름잡고 있던 장르가 새로운 장르로의 변혁을 거치기 위해선 반항의 역사가 항상 동반되었다. 재즈가 그랬고, 포크 음악이 그랬으며, 로큰롤이 그랬다. 재밌는 것은 그 재즈, 포크, 로큰롤도 후대 장르에게 밀릴 때에 그들이 밀어낸 방식과 동일한 방식인, 젊은 세대의 기성 세대에 대한 반항으로 밀렸다는 점이다. 작지만 울림있는 반항들은 현재의 음악사까지 이어져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렇기에 현재까지의 음악사를 반항의 역사로 칭하는 것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역사 속엔 우리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뮤지션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로, 로큰롤의 황제인 엘비스 프레슬리, 이름이 곧 역사인 비틀즈,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리고 반항의 아이콘이자 최초의 작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이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음악에 빠질 수 있었고, 작사와 포크 음악을 통해 최고의 스타텀에 올라 지금까지 그 전설을 지켜올 수 있었는지 그 연대기를 보여준다.
포크 음악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고 한다면 어쿠스틱 기타 외에 다른 악기들을 달리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직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의 음색으로만 승부를 보는 장르이기 때문에, 가수의 음색과 개성, 분위기, 리듬 그리고 가사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포크 음악을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자면 민요 음악이고, 민요라 함은 그 사회와 국가의 전통과 분위기를 담아 만들어진 음악이다. 그렇기에 포크 음악은 휘황찬란한 조명이나 무대 효과, 화려하고 볼거리가 충만한 무대 퍼포먼스로 승부하는 음악이 아니라 노래 속 감정을 함께 공유하고, 음악을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하고, 함께 비판하고, 함께 일어설 힘을 나누는 음악이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엔 영화 <위키드>과 같은 뮤지컬 영화만큼이나 음악이 굉장히 많이 존재하고, 모두 주인공인 "밥"이나 당시 포크 음악을 하는 인물들이 직접 연주하는 식으로 관객에게 제공하게 되는데, 이런 씬들 모두 연주 중인 뮤지션의 얼굴과 표정, 입에서 나오는 가사에 집중하게 하여 가사를 통해 당시의 상황과 사회적 분위기에 공감할 수 있게 하고, 당시 사회 전반에 관한 것들을 부연 설명이나 기타 소잿거리를 통해 소개하지 않고, 음악을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이 젖어들 수 있게 한다. 과연 최초의 작사 노벨 문학상다운 가사들은 오히려 전쟁이 끝난 후의 냉전시기와 인종 차별 금지 시위의 혼란한 형국의 미국을 관객에게 이해시키기 효율적이었고, 영화가 마치 가사가 없지만 가사가 들리는 한 개의 재즈 음악같은 매력을 소유하였다.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을 '친절하다', '안 친절하다'의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굳이 구분지어야 한다면 불친절하다 편에 속한다. 당대 사회적 분위기나 당대 유명 밴드와 뮤지션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밀한 소개나 묘사는 다소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관객들이 영화 속 맥락이나 상황 속에서 눈치껏 이해해가는 편이 수월한 편이며, 음악사적으로나 포크 1960년대에 기초 지식이 동반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작품일 것으로 보여졌다. 하지만 영화의 다소 불친절하다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 대한 기초 지식이 빈약한 필자에에게도 영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지장이 있지 않았고, 영화 속에서 제시하는 단서나 소재만으로도 영화 자체를 즐기는 데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화는 포크 음악이 주류 음악이 아니던 시절부터 시작한다. 이곳 저곳을 떠도는 방랑자처럼 보이는 이는 당시 포크 음악으로 유명세가 있던 "우디 거스리"를 찾았고, 병원에서 중증을 앓고 있던 "우디"는 그의 친구이자 또다른 포크 ㅇ음악 유명인 "피트"의 도움을 받아 그 방랑자와 인사하게 된다. 그 방랑자가 바로 작품의 주인공 "밥 딜런"이다. 미스터리한 그는 "우디"에게 들려주고 싶어 그의 앞에서 포크 음악을 들려주게 되고, 그가 맘에 들었던 "피트"는 그를 무대에 세웠고, 영화는 그렇게 시작한다.
"밥 딜런"은 영화 속에서 소위 '깨어있는 사람'으로 보이진 않는다. 자신에 대한 소개를 여자친구인 "실비"에게도 터놓지 않으며, 항상 어딘가 수상하고, 예술인으로서의 고뇌에 빠진 듯한 느낌을 풍기게 된다. 또한 그는 다소 사회성마저 떨어져 보인다. 작품 속 그에 대한 인물들의 직접적인 평가는 그에게 환장한 팬들의 열화와 같은 예찬이 아니면 직장 동료들의 그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적 분위기를 잘 캐치하면서 포크 음악과도 잘 어울리게 가사에 담아내는 그의 천부적인 능력과 신비주의 속 자유로워 보이는 그의 아우라는 사람들이 그를 결코 놓지 못하게 만든다. 앞서 언급했듯 영화의 초반부엔 포크 음악이 주류 음악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밥 딜런"의 등장은 포크 음악을 메인으로 만들기 충분했고, 그는 초대박 스타가 되었다. 이전 포크 가수들의 음악을 커버하는 게 아니라 본인만의 개성과 스타일이 담긴 포크 음악은 그를 성공시켜주었고, 성공을 바라던 "밥 딜런"은 찾아온 행복에 자신의 개인적 공간이 계속해서 사라지는 거 같아 갈수록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그에게 더이상 음악은 즐거움의 그것이 될 수 없었고,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은 그에게 포크 음악은 이제 어깨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일 뿐이었다. 그렇게 1965년 뉴포트 포크 패스티벌이 되었고, 반항의 아이콘 "밥 딜런"은 이름 그대로 포크 음악만을 했으면 하는 "피트"와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렉트릭 사운드를 겸비한 포크 록을 선보였고, 수 많은 관객들이 이에 대해 아유를 퍼부었다.
영화는 물론 재밌고,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음악이 너무 좋았고, 그 음악을 화면에 구사하는 방식 또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밥 딜런"이 무대를 할 때마다 관객 수가 많아지는 것을 관객이 직접 목도할 수 있게끔 보여주는 씬들도 또한 인상깊었고, 삐딱하면서 어딘가 미스테라힌 그의 신비주의가 상황이 흘러감에 따라 어떤 식으로 악화되는지 또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당시의 혼란한 미국 사회를 포크 음악으로 대동할 수 있었음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의도, 그 의도를 구현한 방법 등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영화의 종반부, "밥 딜런"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나와 "우디 거리스"를 찾아온다. 그를 쳐다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바로 우디 거리스의 <Dusty Old Dust>이다. 노래 속엔 이런 가사가 존재한다. "잘 가시게. 알게 되어서 너무도 좋았네." 이 가사를 읊조리던 "밥 딜런"은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그곳을 떠나면서 영화가 막을 내린다. 영화는 "밥 딜런"이 자신의 우상이자 음악을 시작하게 해준 자신의 우상이었던 "우디 거리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내미는 듯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장식하면서 동시에, 포크 음악을 주류로 만들었던 전설적인 뮤지션 "밥 딜런"이라는 인물이 포크 음악에서 떠나 새로운 모험,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을 조명하고,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점에서 선곡적으로나 이를 영상화하는 과정, 결과물 모두 만족스러웠던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을 완벽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완벽함에선 다소 거리감이 있어보인다고 답할 것이다. 우선 화면이 너무 어둡다는 점이 대단히 아쉬웠다. 영화적 설정, 당시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런 채도를 사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관람하는 데에 불편함이 있었고, 영화가 대부분 오후나 저녁 시간대, 어둑한 실내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본 단점은 더욱 부각되었다. 특히 소위 '아이홀'이 굉장히 짙은 티모시 샬라메가 주연이기 때문에 어둑한 영화적 배경과 합쳐져 그의 표정이나 얼굴을 보는 것이 다소 제한됐다.
더불어,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밥 딜런"이라는 인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헷갈리게 한다는 점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천재성이 부각되고, 그의 음악성을 통해 사람들이 감화되는 모습들을 통해 음악이 사회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점은 충분히 좋았지만, 영화 속 인물만이 아니라 관객마저도 "밥 딜런"이라는 인물에 대해 좀처럼 정이 갈 수 없게 제작된 거 같아 영화를 보는 내내 의문만이 남았었다. 예술가적 예민한 태도에 대해선 우리 관객들도 충분히 감안할 수 있지만,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 속 예술가적 예민성이라고 보기엔 지나쳐보이는 "밥 딜런"의 무례함과 삐딱함은 영화를 통해 그를 알아가야 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필자의 입장에서 영화가 음악계에 대한 그의 행보를 변혁과 자유로운 반항으로서 보여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반골 기질이 있는 한 음악 천재로써 보여지게 했다는 점에서 "밥 딜런"이라는 인물이라는 인물을 다소 작게 표현한 것은 아닌가 생각되었다. 혹 그러할 의도가 있었다면 이를 역전시킨다거나 아니면 그러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메시지를 내포한다거나 하는 영화적 장치도 없어보여 결론적으로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일까 헷갈렸다. 영화의 종반부를 통해 영화의 마무리를 정리하고, 그의 심정들을 음악으로서 대변하고자 하는 영화적 장치들을 만들었지만 이전 장면들에서 그에게 충분히 공감되거나 그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그의 행동에 필자가 감화되기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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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블루 자이언트' 돌비시네마 시사회 후기
블루 자이언트
23.10.18 개봉
애니메이션, 12세 관람가
일본, 120분
원작: 만화 <블루 자이언트>
출연: 야마다 유키, 마미야 쇼타로, 오카야마 아마네 등
안녕하세요 오늘은 만화책 원작의 애니메이션
'블루 자이언트' 시사회 다녀온 후기를 쓰려고 합니다!
무려 코엑스 메가박스 돌비시네마에서 관람해서 ㅎㅎ
사운드 빵빵~하게! 관람하고 왔는데요
"재즈가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밈이 떠오르게 만드는 ㅋㅋ
재즈를 소재로 한 신선한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당
“세계 최고가 될 거야, 반드시”
언제나 강가에서 홀로 색소폰을 불던 고등학생 ‘다이’는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에 도전하기 위해 도쿄로 향한다.
“실력이 안 되면 같이 안 할 거니까”
우연히 재즈 클럽에서 엄청난 연주 실력을 뽐내는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를 만나 밴드 결성을 제안하고,
“나도 드럼을 칠 수 있을까?”
‘다이’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평범한 대학생이던 ‘슌지’가
열정 가득한 초보 드러머로 합류하면서
밴드 ‘JASS 재스’가 탄생한다.
“전력을 다해 연주하자! 분명 전해질 거야”
목표는 최고의 재즈 클럽 ‘쏘 블루’!
10대의 마지막 챕터를 바친 JASS 재스의
격렬하고 치열한 연주가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영화 <블루 자이언트> 줄거리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작화, 영상미가 <슬램덩크>랑 맞먹는 수준이었어요
색소폰, 피아노, 드럼을 연주하는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역동적이라고 느껴졌고
연주 내내 주인공들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관객부터 과거 회상, 외경 등의 그림을 보여 주는데
그게 정말 환상적이더라고요... 짜임새가 좋아요
애니메이션은 일본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실사랑 비슷한 수준의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라면 분명히 실사로도 낼 수 있을 거 같은데 ㅎㅎ
나온다면 최상의 퀄리티가 아닐까 벌써부터 기대!
다만 줄거리 면에 있어서 큰 갈등이 없는 게 아쉬웠어요
다이가 도쿄로 상경해 색소폰을 부는 것부터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를 만난 것
친구인 슌지에게 드러머를 제안하는 것까지
너무 순조로운 전개고
오히려 유키노리와 슌지에게 여러 서사가 주어졌어요
특히 드럼에 대해 1도 모르던 슌지가
드럼에 관심을 갖게 되고 손이 다 까져라 연습하는 것까지
이거 너무나 주인공 서사잖아요
슌지가 주인공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너무 몰아져 있었어요 ㅠㅠ
그리고 유키노리는...
연주회 전 날 큰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손을 잃게 되죠
교통사고 장면 당시 극장 안에 사람들이 막 기겁하고
울고 하셨을 만큼 정말 안타까웠는데,,, ㅠㅠ
결국 연주회는 참여하지 못 하고
앵콜에 나와서 왼손으로라도 다같이 연주하는 게
모두의 눈물을 자아내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어요
다이에게는 가족의 서사가 조금 더 부여됐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곧 개봉하는 '블루 자이언트'!
만화로 이미 너무 잘 된 작품이라
기대하는 분들 많은 거로 아는데 ㅎㅎ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뛰어가자구용
아! 엔딩크레딧 후 쿠키 하나 있습니다
다이와 유키노리의 눈물 나는 에필로그가 나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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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가는길이 멀었던 이유
다큐멘터리_학교가는 길
감독 : 김정인
개봉일 : 2021.05.05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큐멘터리 학교가는 길 리뷰입니다.
학교가는 길은 2017년 특수학교인 서진학교가 설립하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인데요, 서진학교의 설립과정 뿐만 아니라 지역구에서 이루어지는 소외 계층에 대한 대립들,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언뜻 보면 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큐멘터리에서는 대립하는 사람들 조차도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를 담은, 다양한 시선으로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학교가는 길은 우리 주변에 정말 이런일이 일어난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편견에 대한 시선들, 배척하는 마음들이 너무나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학교가 코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2~3시간 가량을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들을 보면서 아직도 장애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겠다는 부모님들의 노력도 엿볼수 있었습니다. 장애인들을 위해서 사람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사회적 제도가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하나의 특수학교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삭발을 하고, 눈물을 흘리는지에 대해서 알고 많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 다큐멘터리의 내용이 서울시 강서구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부터 많은 역사들을 알아야 영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제가 설명하기에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 따로 찾아보시는 걸 권해드립니다!
저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감독님과,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부모님과도 만날 수 있는 GV 시간을 가졌었는데요, 거기서 감독님께서 하신 말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 자연스러운 사회의 현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합당한 현실인지 물음표를 던질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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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켓이 가지고 있던 '한(恨)'이 표출되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Rabbitgumi 입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업로드 합니다.
지난 주 개봉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볼륨3의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이미 많은 리뷰어와 관객들이 좋은 평가를 하고 있죠.
다양한 관점의 리뷰도 이미 보셨을 거에요.
저는 영화의 완성도 보다는 로켓이 가지고 있었던 감정과 그가 겪었던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영상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뉴스레터에서는 일반적인 영화 리뷰 보다는 보면서 떠올렸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정리하여 전달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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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블러드 앤 머니> 예고편
설원 속에 고립된 거액의 돈 가방,
그의 방아쇠에 거액의 운명이 달려있다!전직 해병이자 베테랑 사냥꾼 짐(톰 베린저)은 사람조차 뜸한 설산에서 야생 사슴을 사냥하며 홀로 지낸다.
어느 날 사냥을 하던 짐은 낯선 여자를 사슴으로 오인하여 쏘게 되지만 너무 당황한 나머지 죽어가는 여자를 놔둔 채 황급히 도망친다.
술집에서 카지노 무장강도단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자신이 죽인 여자가 120만 달러를 가지고 달아났던 용의자 중 한 명이란 걸 알게 되고,
죄책감과 괴로움에 빠져 잠들기 전 당시 상황을 떠올리다 사고현장에 담배꽁초를 떨어뜨린 걸 알고 더욱 혼란스런 상황으로 빠져든다.
다음날 사건 현장으로 돌아온 짐은 담배꽁초를 회수하고, 시체 옆에 놓인 돈가방까지 챙겨 나오지만 자신들이 훔친 거액을 찾기 위해 숲을 수색하던 강도단들과 마주치면서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게 된다.
무장강도단의 추격을 피하면서 총상과 추위에 생사를 넘나들지만 녹슬지 않은 사격실력과 기지를 발휘해 원샷원킬로 강도단을 한 명씩 처리하고, 돈을 갖고 탈출할 수 있는 차량까지 확보하는 짐.
그러나 그는 아픈 딸의 치료비로 고생하는 웨이트리스 데비(크리스트 헤이거)를 떠올리며 돈의 위치가 그려진 편지를 그녀 앞으로 남기고, 부상당한 몸으로 마지막 남은 강도단 두목을 처단하기 위해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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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피노키오> 메인 예고편
또 한 번 시대를 넘어 전 세대를 사로잡을 명작의 탄생? 진짜 사람이 되기 위해 떠나는 피노키오의 마법 같은 모험! 디즈니+데이에 이 모든 이야기가 여기에 디즈니+ 오리지널 영화 [피노키오] 9월 8일 단독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