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1-14 14:17:26
2021년 최고의 화제작! 영화 <티탄> 리뷰
영화 <티탄> 리뷰
영화가 시작하면 어린 알렉시아와 그녀의 아버지가 함께 자동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다.
뒷 좌석에 탄 알렉시아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이상하게 흉내내며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린다.
점점 소리가 커지자 그만 좀 하라고 소리를 지르던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다 결국 교통사고를 당한다. 결국 알렉시아는 어린 나이에 뇌에 티타늄을 심게 된다. 그날부터일까?
이 부녀가 서로에게 애정이 식어버린 것이. 영화는 이들의 전사(前史)를 보여주지는 않지만,
분명한 점은 이를 기점으로 이 부녀는 서로의 존재를 거의 모르는 척하며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관계로 살아간다.
영화는 티타늄을 장착한 소녀 알렉시아에서 금방 훌쩍 자란 성인 알렉시아(아가트 루셀)의 모습으로 넘어간다.
모터쇼장으로 보이는 어둡고 복잡한 공간에서 자동차 위에 올라타 다소 외설스러운 춤을 추는 알렉시아는 이곳에서 가장 인기 많은 댄서다.
하지만 그녀는 제 일을 열심히 할 뿐, 팬들에게나 동료들에게나 미적지근한 반응으로 일관하는 서늘한 인물이다. 마치 차가운 금속처럼.
어느 날, 그녀는 귀가 도중 사인을 요청하는 한 남성 팬을 맞닥뜨리는데, 그는 알렉시아에게 다짜고짜 자신과 만나보지 않겠냐며 부담스러운 구애를 펼진다.
그의 요구를 승낙하는 듯하던 알렉시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꽂고 다니던 금속 비녀로 순식간에 그를 죽이고 만다.
영화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살인하는 알렉시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린 여성에서 보이는 연약함이라는 편견을 짓밟듯이, 큰 체격의 남성마저도 단번에 죽음으로 내모는 그녀의 모습이 당당하게 그려진다.
작년 제74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은 그만큼 매섭고 저돌적인 기세로 젠더에 관해 고찰하고 인간의 충동을 유심히 묘사하는 작품이다.
당시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파이크 리가 가장 늦게 발표해야 할 최고상을 가장 먼저 발표하는 실수를 저지른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은
그 자체로도 화제 거리이지만 무엇보다 칸영화제의 선택이 이 파격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칸영화제 역사상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은 줄리아 뒤쿠르노가 (<피아노>의 제인 캠피온 이후로) 단 두 번째라는 사실만으로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티탄>의 스타일과 메시지는 그간 칸영화제에서 애정해온 작품들의 내력과는 사뭇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거친 미장센과 도발적인 서사, 애정을 갖기 어려운 인물들의 모습은 딱 호불호가 갈리기 쉬운 작품의 특징이었다.
특히 <티탄>은 자동차와의 성애 장면으로 개봉 전부터 이목을 모았다.
그러나 집중해야 할 것은 그 자극적인 장면보다, 그 이후 알렉시아에게 닥치는 임신이라는 상황이다.
자동차와 성관계 후 임신이라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티탄>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상식으로 고수한다.
인간이 인간 외의 다른 종, 예를 들면 동물이나 외계인과 결합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들은 꽤 있었지만, <티탄>의 상대는 금속의 자동차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로움을 유발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흔히 생각하는 ‘여성성’의 중요한 지표로 임신과 출산이라는 상태가 서사에 사용된다면, 여기서 알렉시아는 살인범 용의자로 본인의 신분이 모든 미디어에 노출되자 남성으로 위장하여 살아가길 선택한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의 코뼈를 부러뜨려 오래 전 실종된 소년 아드리앵처럼 얼굴을 바꾸고, 가슴과 배에 단단한 복대를 착용해 남성으로 패싱되는 삶을 선택한다.
이로써 자신의 아들을 드디어 찾았다고 믿게 된 아드리앵의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의 따스한 보호 아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영화가 그리는 관계는 무미건조했던 알렉시아 부녀(父女)의 삶에서 온기가 가득한 아드리앵 부자(父子)로 변모한다.
그만큼 <티탄>은 길지 않은 러닝타임 속에서도 꽤나 가득한 볼거리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고정적인 상식이나 기준으로는 설득되지 않는 남다른 방식의 인물, 관계가 등장한다.
그리하여 <티탄>은 그 거칠고 파격적인 볼거리 속에서 새로운 삶의 탄생을 축복하는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데이빗 린치, 데이빗 크로넨버그 등이 떠오르기도 하는 <티탄>의 기괴함은 올해의 가장 문제작 중 한 편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씨네랩 에디터 Hez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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