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두codu2024-12-10 16:37:40
얼룩이 온기와 구원이 되기까지
팀 밀란츠 감독 <이처럼 사소한 것들>(2024)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야적장에서 하루종일 석탄과 장작을 나르며 일하고 집에 돌아온 빌 펄롱(킬리언 머피)의 손은 까만 얼룩이 져있다. 빌은 모자와 외투를 벗어두고, 현관 바로 앞에 위치한 화장실에서 손과 얼굴에 묻은 검댕을 꼼꼼히 닦아낸 후에야 아내와 딸들이 있는 거실로 들어간다. 펄롱은 비누와 솔만 들어있는 케이스를 꺼낸 후 세면대에 받아 놓은 물이 까맣게 변하고 자신의 손은 깨끗해질 때까지 비누 거품을 내고 솔로 문지른다. 펄롱이 손을 씻는 과정을 클로즈업으로 반복해서 등장한다.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아내와 다섯 딸에게 한 점의 더러움도 묻히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좁은 현관 통로는 따뜻하고 깨끗한 거실로 들어가기 전 더러움을 닦아내는 중간 지대의 역할을 한다. 현관을 지나 거실로 이어지는 좁은 문은 닫혀 있지 않지만 집의 공간을 분리한다. 영화 속 카메라는 문틀 너머에 펄롱을 위치시키며 일정한 거리감을 조성한다.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어린 시절, 새벽에 수녀원의 석탄 창고를 들어갔을 때, 수녀원에서 겁먹은 소녀들을 볼 때 문틀 안의 펄롱이 느끼는 감정은 고독함과 고뇌다. 동명의 원작 소설에서 클레어 키건은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라는 문장으로 펄롱의 고뇌를 표현한다. 삶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감각은 보는 이의 마음을 강력하게 붙잡는다.
1920년대부터 시작하여 1990년대까지 이어진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조금이라도 타락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되는 여성을 감금하고 강제노역을 시키며 삶의 자유를 빼앗았다. 미혼모, 성매매 여성, 고아, 남자들에게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성까지 대상은 불명확하며 넓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의 여성들이 가는 감옥이었다. 아일린은 우리의 딸과 그 아이들은 다르다며 차갑게 선을 긋는다. 마을 사람들이 짐짓 눈치채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은 수녀원의 영향력이 마을 전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펄롱의 딸이 다니는 세인트마거릿 학교는 수녀원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수녀원은 펄롱의 야적장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이고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돈을 주고 있다. 감금된 여성들의 노역으로 쌓아 올려진 풍요를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장면이 있는 법이다.
선의는 언제나 옳다고 배워왔지만, 현실에서 선의를 베푸는 것은 복잡한 용기다. 누구나 모른 척 지나칠 수 있는 상황에서 선뜻 손을 내미는 일은 무언가를 무릅쓴 사람의 행동이다. 까맣고 차가운 석탄은 스스로를 태워 밝고 따뜻한 온기를 전한다.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태울 용기와 작은 불씨가 필요하다. 펄롱에게 그 부싯돌 역할이 된 인물은 수녀원에 의해 석탄 창고에 갇힌 어린 소녀 세라다. 어깨에 무거운 석탄을 둘러업고 석탄 창고 안으로 들어간 펄롱은 어둠 속에서 세라를 발견한다. 공교롭게도 미혼모였던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이름을 가진 소녀는 출산을 5개월 앞둔 채 수녀원에 의해 석탄창고에 갇혀 추위와 어둠에 떨고 있었다. 기댈 곳 없는 아이를 보호하는 일은 수녀원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가 되고 만다.
펄롱은 자주 어릴 적 기억에 휩싸인다. 주로 창과 거울을 통해 이어지는 플래시백은 펄롱의 과거와 현재를 묶어준다. 아버지가 없었던 어린 자신과 자식을 키우며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의 얼굴은 과거의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현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괜찮은 걸까?” 펄롱은 아일린에게 묻는다. 아일린은 경제 사정을 묻는 것인지, 부부의 안위를 묻는 질문인지, 자녀들의 미래를 묻는 질문인지 의아해하며 적금을 넣고 있으니 괜찮다고 답한다. 그러나 ‘우리’에는 그보다 더 넓은 의미의 가족, 나아가 공동체 전체의 안위를 포함하고 있다. 펄롱은 어린 세라에게서 자신의 어머니를 본다. 모두가 자신의 딸이자 어머니다.
펄롱은 세라에게 손을 내미는 것으로 어린 자신 역시 구원한다. 영화는 원작 소설과 달리 어린 세라의 아이를 엄마와 헤어지게 두지 않는다. 펄롱은 미시즈 윌슨이 그랬던 것처럼 세라와 그의 아이를 보호하며 한 가족을 지키게 된다. 펄롱은 세라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좁은 현관 통로에서 간단하게 손을 씻은 펄롱은 아직 얼룩이 가득한 세라의 손을 잡고 거실로 함께 들어간다. 언제나 고독함과 고뇌와 고단함의 프레임이었던 문틀 너머로 희망과 확신을 품고.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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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브 투 헤븐> 그들이 유품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그루(탕준상)'는 모든 유품에는 생전의 삶이 깃들어 있으며, 따라서 작은 흔적도 세심히 챙겨야 한다는 아버지 '정우(지진희)'의 교훈을 실천에 옮기며 아버지와 함께 유품 정리 업체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사망하고, 그루 앞에는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삼촌 '상구(이제훈)'가 법적 후견인으로 등장한다. 정식 후견인이 되기 위한 조건을 맞추기 위해 상구는 본래 직업을 숨긴 채 그루와 함께 '무브 투 헤븐'을 운영하겠다고 나서고, 이에 그루는 새롭게 만난 삼촌 상구, 평생을 함께한 절친 '나무(홍승희)와 함께 고인의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다.
의학 혹은 법정 드라마의 서사에는 두 개의 축이 존재한다. 주인공의 개인적인 서사와 환자 혹은 의뢰인(혹은 범인)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주인공들은 새로운 환자를 치료하거나 의뢰인 혹은 범인의 사건을 해결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을 깨닫거나 인생을 관통하는 교훈을 배우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 나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의 완성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새롭게 등장하고 또 퇴장하는 외부인의 이야기에 달려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는 비록 의학 드라마와 법정 드라마, 두 장르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엄연히 같은 본질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인 그루와 상구가 죽은 이들이 미처 전하지 마지막 메시지를 대신 전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만큼, 주인공들의 이야기 못지않게 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고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가고 마음이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공장에서 사고사 당한 대학생을 비추며 시작되는 드라마는 뒤이어 노모와 절연한 아들, 스토킹 피해 여성, 퇴직한 노부부, 동성애자 커플, 미국 입양아 등 각자의 사연을 간직한 다양한 죽음을 보여준다.
특히 각각의 죽음이 한국 사회에서 공론화가 된 후로도 여전히 해결이 요원한 이슈를 담고 있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더욱 흡입력이 강하고, 가슴 아프다. 당장 비정규직의 산업재해는 본래 의도에서 적잖이 후퇴한 채 통과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개정안을, 스토킹범에게 살해당한 유치원 교사는 올해 10월부터 시행될 예정이지만 가해자 처벌에 비해 피해자 보호에는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은 스토킹 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을 연상시킨다. 이에 더해 십수 년 전에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에서도 심금을 울리는 소재로 등장했지만 여전히 관심을 필요로 하는 국외 입양아 문제, 동성애 커플의 이별에 담긴 좀처럼 변하지 않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급변하는 가운데 당장 눈 앞에 닥친 노인 문제 등도 마찬가지다.
이때 작중 단편적이고 분리되어 있는 듯한 일련의 죽음들을 잘 들여다보면 하나의 공통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모두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한 기준선을 충족시키지 못한 실패자 내지는 사회가 규정한 경계에서 제외된 소외자의 삶을 공유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지난 몇십 년간 한국 사회의 거시적 목표이자 과업이었고 동시에 현재 한국 사회를 지탱해 온 두 축인 산업화와 민주화 신화에 속하지 않았던 이들의 삶을 드라마는 녹여낸다.
드라마의 시작을 맡은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 늙은 어머니를 외면한 아들의 회한,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퇴직한 후 아파트 경비원이 되어 갑질의 피해를 온몸으로 떠안은 할아버지의 말년은 산업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람을 공장 기계와 같은 도구로 여기고, 인륜보다도 눈에 보이는 현금의 가치를 우선시하고, 동등한 사람을 서열과 계급으로 나뉘어 차별하는 잘못된 인식, 가치관, 관행을 꼬집는다. 한편 다른 이들의 이야기는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성취했으나, 생활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정립되지 못한 한국 사회의 한계를 비판한다. 동성애부터 입양아, 스토킹 피해에 이르기까지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라는 이유로, 또 약하다는 이유로
한 명 한 명의 개인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수없이 차별과 피해를 경험한 가운데 과연 실질적으로 다양한 삶과 목소리가 공존할 수 있는 생활로서의 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러한 공통의 배경은 두 주인공의 삶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상구가 형과 가족을 등지고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며 사람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그는 이윤만을 바라보는, 사람을 비롯해 책정할 수 없는 가치마저도 돈과 숫자로 치환시켜온 사회와 가정이 낳은 또 한 명의 피해라고 할 수 있다. 반면에 그루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면서도 친구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당당히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간다. 동시에 입양아이면서도 아버지의 큰 사랑 속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상구와 남부럽지 않은 가족을 이루어 나간다. 이렇게 드라마는 그루의 삶을 통해 목적지향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삶을 요구하던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를 제시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무브 투 헤븐>이 말하는 메시지는 사회적 기준선에 속하지 못해 소외된 주인공 그루와 상구의 직업이 유품 정리사이기에 더욱 풍성해진다. 작중 그루와 상구가 하는 일은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들의 작업은 오염된 장소를 청결하게 탈바꿈시키는 일이다. 달리 말해 오염과 청결을 가르는 기준선을 해체하고 다시 긋는 것이 본질이다. 또한 그들은 삶과 죽음의 마지막 기준선을 지키는 이들이자, 고인의 흔적을 마지막으로 고인의 마지막 메시지를 읽어내고 전달하면서 삶과 죽음의 기준선을 일시적으로 넘을 수 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특정 경계선을 넘나들 수 있는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오염과 청결의 범주가 단지 위생의 측면이 아니라 도덕과 사회 질서, 체계의 근원을 이루었다는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그녀는 특정 영역의 경계나 기준을 상징하는 존재들, 특히 특정 존재의 오염 혹은 청결 여부는 문화적 분류와 사회 질서의 가장 기초가 된다고 파악했다. 경계 밖에 위치한 것으로 상정되는 존재들을 더럽고 오염된 것으로 간주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준선 안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사회 질서는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통합된다고 본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해 무언가 더럽고 불결하다고 인식되는 것을 정리 정돈하거나 청소하면서 청결과 더러움의 기준선의 위치를 재조정하는 것이 넓게는 사회 질서의 범주와 영역, 경계까지도 바꾸는 함의를 포함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표면적으로는 단순히 사망한 이들의 공간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루와 상구의 작업이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분위기, 인식, 제도의 변화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이들은 혈흔과 체액, 벌레와 쓰레기들로 더럽혀진 장소를 깨끗하게 만듦과 동시에 일원화된 기준선을 맞추지 못해 사회로부터 배척받고 낙오된 개개인들에게 자신들의 사정을 투영하면서 보듬어 안는다. 그렇게 상구와 그루는 주변 주민들로부터 더럽고 불결한 일을 한다고 손가락질받으면서도 그 누구보다 의뢰받은 공간을 청결의 영역으로 다시 옮겨 놓는 것에 정성껏 최선을 다한다.
사실 <무브 투 헤븐>의 구성이 의학 드라마나 법정 드라마와 유사하다는 것은 이 드라마가 아주 새롭고 기발하면서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는 못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브 투 헤븐>이 넷플릭스에서 공개 직후부터 꾸준히 좋은 반응을 얻은, 지나치기 아까울 만큼 뭉클하고 따뜻한 휴먼 드라마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유품정리사만이 경험할 수 있는 온갖 착잡한 사연들을 차분히 제시하고, 더 나아가 다양한 사람들의 진정성을 모자이크를 채워 나가듯이 전달하며 우리 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룬 단단한 이야기의 힘이다.
A(Acceptable, 무난함)
유언을 남긴 이와 유언을 들으려는 이의 진심이 한데 모여 그려낸 희망의 모자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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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
'황혼의 사무라이'는 중의적 제목이다. 주인공 이구치가 하급 사무라이로 창고지기 노릇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느라 해가 떨어지면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야 해서 '황혼'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구치가 살던 19세기 중반은 '사무라이'라는 계급이 사라지기 직전이어서 역사적으로 사무라이의 '황혼'이기도 했으며, 마지막 '사무라이'로 살았던 이구치가 관군의 총탄에 죽음으로써 계급으로의 사무라이는 '황혼'을 맞이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영화는 하급 사무라이 이구치의 막내딸, 다섯 살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토의 눈으로 본 세상이며, 회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명확하지 않지만, 이토는 다섯 살에 등장해 나중에 일흔 살의 노인으로 나온다. 그렇다면 '메이지 유신'을 중심으로 나이를 살펴보면, 이토는 1860년생으로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 70년을 더 하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1930년대가 된다.
이토의 나이가 중요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역사가 매우 빠르게 군국주의화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인데,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수십 개 막부가 사라지고, 일본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이 강화된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 종료되는 것과 동시에 조선을 침략하고, 곧바로 식민지를 확대한다. 가장 가까운 나라가 조선이었고,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도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다.
이런 일본의 침략은 유럽과 미국 강대국의 폭력 앞에 무릎 꿇은 뒤, 선진문물을 수입해 빠르게 개화하면서, 아시아에서 가장 발빠르게 최신 무기로 무장할 수 있었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이웃 나라들을 침략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지방에 남아 있던 막부의 토호세력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식민지에서 얻는 이익을 일정부분 공유하며, 일본 내부의 화합을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한 것은 '메이지 유신' 이전의 막부와 관련이 있다. 형식적으로 막부는 사라졌지만, 지방의 토호세력은 여전히 힘을 가지고 있었고, 이들은 메이지 천황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막부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어 중앙 정부 또는 지방 정부에서 권력을 가진 세력이 된다. 이들 지방 귀족들은 어쩔 수 없이 천황제에 동의하기는 했지만, 천황을 신성한 존재로 여기지는 않았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체주의 체제가 오래 이어져 오고 있었고, 정치적으로 기반이 약한 메이지 천황제에서 과거 막부의 전통, 사무라이의 신성화 등이 군대, 군인을 우상화하고, 군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군국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1860년대 초, 우나사카 막부 휘하에서 하급 사무라이로 살아가는 이구치는 막부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평시에 성의 곡식창고에서 하급 관리로 일하고 있다. 그는 매우 가난해서 한달에 50석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데, 그 돈으로는 생활이 궁핍해 퇴근하고 저녁에 새장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폐병을 앓던 아내가 사망했고,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매우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이 있다. 게다가 어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고, 어린 두 딸은 이제 열 살, 다섯 살이어서 그가 오로지 돌봐야 하는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함께 술집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지만 이구치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집안 일을 하고, 어머니도 돌봐야 하고, 아이들도 보살펴야 한다. 여기에 부업으로 새장을 만들어야 하니 그는 조금도 쉴틈이 없는 것이다.
하루는 영주가 곡식창고 시찰을 나왔는데, 이구치가 직접 보고를 하다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걸 영주에게 들키고 말았다. 다행히 영주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 다른 말을 하지 않았으나, 영주의 부하인 관료들이 더 난리를 부리고, 이구치의 집안 어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구치의 삼촌이 그날 저녁 집으로 달려와 영주 앞에서 망신 당한 사실에 대해 노발대발 하고, 자기가 점지한 지인의 딸이 있으니 재혼하라고 윽박지른다. 하지만 이구치는 어린 두 딸과 치매를 앓는 노인이 있는 집에 어떤 여자가 올 것이며, 설령 온다해도 고생만 할 뿐이니 자기는 재혼할 의사가 없노라고 말한다.
이구치는 성정이 따뜻하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는 술도 마시지 않고,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을 싫어한다. 그는 사무라이 계급이고, 그 자신 어려서 무술을 배워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먼저 칼을 빼는 일은 결코 없다. 더구나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가장 아끼는 보검은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일찌기 팔아버렸다. 그의 꿈은 농부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구치는 운명을 잘못 타고 태어난 인물이다. 그는 사무라이보다는 농부나 학자가 되는 것이 본성에 어울리게 보이는데, 사무라이에서도 하급에 머무른 것은 그가 욕심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봄이 되어 진달래가 피는 따뜻한 날, 이구치는 두 딸과 함께 들판으로 나와 나물을 뜯는다. 그때 개울에 떠내려오는 어린 아이의 시신을 보게 되고,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흉년으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나마 이구치의 가족은 근근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구치는 친구 이누마를 만난다. 이누마는 한 달 정도 오사카 막부와 쿄토의 황성을 다녀왔는데, 막부의 움직임과 황성과의 갈등이 심상치 않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마 전, 결혼했던 여동생 토모에가 이혼하고 집에 와 있다고 말한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 역시 사무라이였고, 부유한 집안이었다. 하지만 술 마시고 아내를 때리며, 학대해서 오빠 이누마가 막부에게 직접 부탁해 이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뜻밖에도 토모에가 와 있었다. 이구치는 몹시 반가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토모에 처지를 위로한다. 토모에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에, 토모에 집앞에 도착했을 때, 집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소란스러웠다. 토모에의 전 남편 코다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코다는 토모에보다 그의 오빠 이누마가 더 괘씸하다고 화를 낸다. 그러면서 이누마에게 행패를 부리고 싸우자고 덤벼드는데, 이때 이구치가 나서서 싸움을 말리고, 코다를 힘으로 제압한다. 코다는 화가 나서 이구치에게 정식으로 대결을 신청하고, 두 사람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하게 된다.
이누마는 자기 때문에 코다와 싸우게 되었으니, 자기가 나서겠다고 하지만, 이구치는 이누마의 실력으로는 코다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으므로 나서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진검이 아닌, 목검을 들고 코다와 맞선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사적 폭력이나 개인적 결투는 막부에서 금지하고 있었지만, 사무라이들은 목숨을 걸고 일대 일 승부를 겨루는 경우가 드물게 있었다.
코다는 이구치가 목검을 들고 서자 자기를 얕잡아 본다며 진검으로 달려든다. 이구치는 가볍게 코다를 제압하고, 이누마와 함께 돌아온다. 이 영화에서 사무라이가 칼을 들고 싸우는 장면은 두 번 나온다. 이구치가 코다와 싸울 때, 이때는 목검을 들었지만 사무라이의 검술이 어떤 모습인가를 짐작하는 동작이 나온다. 목검이 아니고 진검이었다면, 코다는 두세합 만에 목숨을 잃게 된다.
또 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구치와 요고 젠에몬의 결투인데, 전혀 과장하지 않은 사실주의 형식으로 사무라이가 어떻게 싸우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 사무라이의 결투는 일본 사무라이의 환상을 깨뜨리고, 막부 시대의 사무라이가 어떤 존재인가를 가감없이 드러낸다.
이구치가 집에 돌아오니 토모에가 보낸 편지가 있었고, 이구치는 토모에의 마음을 읽는다. 이후 토모에는 이구치의 두 딸 키야노와 이토의 '엄마'가 되어 생활의 중심이 된다. 어린 키야노에게 살림살이를 알려주고, 함께 놀아주며, 나들이도 하면서 엄마 역할을 해주는데, 이구치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한다.
이누마는 이구치에게 토모에의 재혼을 거론한다. 이누마도 이구치를 좋아하는 친구이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함께 소꿉놀이를 하던 동생이었으니 서로 남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진정한 벗이었다. 이누마는 부잣집 아들이지만 가난한 이구치를 차별하지 않고 친구로 어울렸고, 나이 든 지금도 변함없이 친구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누마의 인성도 훌륭하고, 토모에는 어려서부터 이구치를 좋아했었다. 다만 입으로 말하지 않았을 뿐. 그건 이구치도 마찬가지였지만, 집안이 너무 기울어져 토모에가 자기와 결혼하면 불행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 이구치는 혼인을 거절한다.
이누마는 한달 전, 에도(교토)에서 영주가 사망하는 바람에 후계자 문제로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매우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구치에게 알려준다. 이구치는 최하급 말단 사무라이여서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자기와는 직접 문제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창고관리 사무장인 쿠사카가 이구치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우나사카 가문의 고위 관료인 호리 댁으로 찾아가 명령을 하달받는다. 요고 젠에몬이 할복하지 않아 죽이러 간 무사들이 오히려 요고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으니 이구치가 가서 요고 젠에몬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이구치는 애써 변명하며 거절하지만, 호리는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라며, 말을 듣지 않으면 무사 계급을 박탈하고 번에서 내쫓겠다고 협박한다. 하는 수 없이 승락하고 돌아온 이구치는 죽음을 의식하며 마음을 정리한다.
이구치는 몸종 나오타에게 심부름을 보내, 토모에에게 와달라고 부탁한다. 나오타의 전언을 들은 토모에는 급하게 달려오고, 전투를 앞두고 몸치장을 해야 하는 이구치의 부탁을 듣고 그의 몸단장을 돕는다. 이 과정에서 이구치는 자신이 마음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털어놓는다. 토모에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어릴 때부터 늘 좋아했고, 결혼하고 싶었으며, 결혼한 이후에도 토모에를 잊지 않고 있었노라고. 지금 결투를 하러 떠나지만, 살아 돌아오면 토모에에게 청혼하겠노라고. 지난번 오빠를 통해 재혼 이야기를 들었지만,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란 토모에가 자신과 혼인하면 평생 고생만 할텐데, 그건 자신이 용납할 수 없었다고. 하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고백하노라고.
이 장면에서 이구치와 토모에의 모습은 담담하지만 깊은 슬픔을 간직하고 있어 감동으로 다가온다. 가난한 이구치와 부잣집 딸 토모에의 신분, 어릴 때부터 서로 좋아했지만 겉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감정들, 체면과 권위로 살아야 하는 사무라이와 사회 제도로 억눌린 여성의 지위와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수많은 제약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을 믿으며 조용히 살아온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을 읽게 되면서, 시대와 역사를 떠나 인간 본연의 사랑의 실체를 만나는 느낌이다.
하지만 토모에는 이미 혼담이 들어왔고, 자기도 그 혼담을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불러줘서 고맙다고 담담히 말한다. 이구치는 자기가 하면 안 되는 말을 한 것 같아 몹시 당황하면서 마침 도착한 길잡이를 따라 집을 나선다.
요고 젠에몬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사무라이다. 그를 죽이러 간 다른 사무라이들이 칼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할 정도였는데, 이구치는 내심 자신 있었지만, 그래도 긴장한다. 그는 조심스럽게 요고의 집안으로 들어간다. 마당에는 먼저 들어갔던 사무라이의 주검이 쓰러져 있고, 그 주변으로 파리들이 요란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요고는 이구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고는 이구치에게 싸우지 않겠노라고, 자기는 도망갈 것이고, 도망가도록 길을 터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요고는 자기가 살아왔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 역시 사무라이로 쇼군을 모셨으나, 그 쇼군이 다른 쇼군에게 지면서 가산이 몰수당하고, 자기 가족도 쫓겨나 낭인으로 7년을 떠돌다 어렵게 하세가와의 수하로 들어올 수 있었고, 하세가와의 은혜를 입었기에 그를 은인으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7년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아내와 딸이 병으로 죽었다는 말을 하고, 이구치 역시 자기 아내가 병으로 죽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하급 사무라이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말한다.
이구치도 아내의 병구완을 위해 명검을 팔고, 싸구려 검을 가지고 다닌다는 말을 한다. 이때 갑자기 요고가 화를 내며, 싸구려 칼로 자기를 베러 왔느냐고 소리친다. 요고의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두 사람은 결투를 하고, 이미 지쳐 있던 요고는 이구치의 칼을 맞고 죽는다. 두 사람이 싸우기 전에 나눈 대화는 하급 사무라이의 처지를 드러내는 의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의 존재가 이제 시대의 막바지에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결투에서 이기고 돌아온 이구치를 맞이하는 건 토모에였다. 토모에는 이미 집안에서 재혼 혼담이 오가고 있고, 상대도 정해졌지만, 집안의 반대를 무시하고 독단으로 이구치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후 이구치와 결혼하고 두 딸과 행복하게 살지만, 그 기간은 불과 3년이었다. 이토의 나레이션으로 이어지는 토모에와 이구치의 사연은, 이구치가 관군과의 전투에서 총에 맞아 사망하고, 토모에는 두 딸을 데리고 도쿄로 이주해 그곳에서 두 딸을 훌륭하게 키운다. 토모에가 나이 들어 숨지자, 카야노와 이토는 아버지 이구치와 어머니 토모에를 한 무덤에 모신다.
막부가 해체되고,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면서 일본은 메이지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중앙집권의 국가체제로 발전한다. 그 와중에 마지막 사무라이였던 이구치와 토모에의 애틋하고 깊은 사랑과 저물어가는 사무라이의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던 이구치의 삶을 보면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과 운명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역사는 거대한 담론으로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속에는 무수한 개인들의 삶이 담겨 있고, 한 평생이 들어 있고, 개인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다. 역사를 덩어리로만 볼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개개인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에 거울이 되는 장면을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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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러시아군의 침략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이야기!
감독:이리나 칠리크
출연: 돈바스 지역의 한 가족
시놉시스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러시아군이 쳐들어오자 그 속에서 일어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인 지구는 오렌지처럼 파랗다는 영화 맨 초반에 어느 한 가족이 나오는 장면과 함께 포격 소리가 크게 들리고 폭탄이 터지는 전장 속에서 일반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자신들의 삶을 보여준다. 트라우마로 남는 전쟁의 현장 속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난을 가거나 그 도시에 남아있기도 한다. 이 영화는 가족이 등장인물로 나오면서 전쟁에 대한 참혹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씬으로 보여준다.
러시아군이 침공한 우크라이나의 돈바스 지역에 있는 이 가족은 어린아이부터 대학 입학을 준비하고 있는 여학생까지 다양하게 나온다. 대학 장학생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목표를 이루는 장면도 나오는데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게 어머니뿐만 아니라 주위 친척들까지 입시에 성공하면 포옹을 하거나 놀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적군인 러시아군에게 맞서 싸우는 모습도 뉴스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점점 러시아에 있는 많은 미국 기업들이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푸틴은 자신들에게 경제 보복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일본,우리나라까지 천연가스를 수출하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평화를 원했던 러시아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을 무너뜨리고 독일 통일에도 기여했으며 평화를 위해 앞섰다고 한다. 하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고르바초프가 러시아를 망쳤다는 이야기를 하는 극우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뉴스에서는 전쟁이 금방 끝나지 않을 것으로 나오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다치고 피해를 입는 사례들이 들려오고 있다. 참혹한 전쟁을 경험하면서 트라우마가 일어나거나 죽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운 느낌이 많이 들기도 한다.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겹게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어서 기쁜 소식이 들려오길 바란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2022-08-27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2022-08-31 16:00 - 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5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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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사된 민주주의의 촌극과 물음
7★/10★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글입니다.
2006년. 부탄에 느닷없이 민주주의가 하사되었다. ‘쟁취’가 아닌 ‘하사’다. 부탄 국왕이 백성들을 위한 ‘선물’로 민주주의 도입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모의 선거가 진행된다. 하지만 실무를 맡은 선거 담당관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주민들에게 민주주의에 관한 체화된 개념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파란 당, 산업 발전을 강조하는 빨간 당, 보존을 강조하는 노란 당을 두고 모의 선거를 진행하는데, 노란 당이 95퍼센트를 득표한다. 노란색이 왕실의 색이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고. 그를 얻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그 대상과 함께할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그래서 상상한 미래가 현실로 도래했을 때 기꺼이 만끽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거라도 내 생활과 연결되어 있다고 상상해본 적이 없는 거라면, 그 가치는 빛을 발하기 어렵다. 부탄에서의 민주주의처럼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거는 마을에 갈등을 일으킨다. 평화롭게 지내던 한 가족이 모의 선거 때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인지를 두고 대립한다. 소수파를 지지하는 아버지와 그 자녀는 마을과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다.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최고의’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가 되레 없던 갈등을 초래한 것이다. 적어도 부탄의 시골 마을에서는, 민주주의가 평화와 행복을 파괴했다.
시골 마을의 평화로운 풍광과 정취를 배경으로 한 잔잔한 분위기와는 달리, 영화의 물음은 날카롭다. 마을에 선거를 가르치러 온 담당관들은 민주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주주의가 ‘현대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확신한다. 선진국 대다수가 민주주의를 취한다면,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라고. 서구 중심적 발전주의 사고의 발로다. 단 하나의 선형적 기준을 만들어놓고 모든 역사를 욱여넣어 특수성을 소거하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첫 번째 질문, 즉 ‘보편적이고 현대적인 민주주의는 절대선인가’라는 물음이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이 있다. 국왕이 민주주의 도입을 발표하자, 한 노승이 제자에게 총을 구해오라 시킨다. 제자는 총기 수집가 미국인과의 경쟁 끝에 마을 주민이 가진 총을 구해 노승에게 간다. 노승은 총을 들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기리며 만든 탑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옆에 파놓은 구덩이에 총을 던진다. 그 위에 탑을 쌓자고 제안한다. 민주주의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면, 이미 하사되어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증오‧고통‧갈등의 상징인 총을 땅에 묻고 그 위에 탑을 세워 새로운 깨달음의 시대를 열어가자는 제안이다.
어떻게든 총을 되찾기 위해 주변을 얼쩡거리며 골몰하던 미국인 총기 수집가는 어안이 벙벙하다. 얼결에 자유세계와 민주주의의 ‘리더’인 미국인이라며 칭송받는 그는 어떻게든 그 총을 갖기 위해 많은 돈을 썼다. 그는 돈과 물질만 있으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수집가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잠식되어 망가졌다는 현실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돈에 먹힌 민주주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가 끝내 총기를 갖는 데 실패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목적한 바를 이루는 효율적인 방법도 아니다. 대조적으로, 노승은 쟁취하지 않은 하사된 민주주의일지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만들어갈지에 따라 위대해질 수도 있다는 역설적 가능성을 상징한다.
돈에 굴복한 민주주의와 하사된 민주주의의 가능성 사이의 이 대조는 민주주의가 마주하는 날로 혼란스러워지는 작금의 현실에 소박하고 정다운 질문을 던진다. 서구 중심적, 발전주의적 시간성 비판에 민주주의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을 버무려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하는 것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다시금 상상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질문만으로 ‘자유세계’의 병든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는 나이브한 태도일 테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질문이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절망적 현실을 비추는 환상 속 거울로써의 역할 정도는 할 수 있는 질문이지는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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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달처럼 두둥실
개막작 <소나타> 리뷰감독] 바르토즈 블라쉬케Bartosz Blaschke
출연] Michał Sikorski, Malgorzata Foremniak, Lukasz Simlat
시놉시스] 조산아로 태어나 자폐 진단을 받은 그제고즈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집안에 있는 오래되고 고장난 피아노를 두드리는 것뿐이다. 그가 15세가 되던 해 생일, 그는 자신의 고립이 사실 자폐증이 아니라 청각 장애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스카진스키 교수의 도움 덕에 인공 와우를 장착한 그제고즈는 말하기, 듣기 능력과 함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피아니스트가 되어 콘서트 홀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기를 꿈꾼다.***
영화제가 시작된다. 때마침 보름달에 가까운 날이다. 제천국제영화제 하면 휘영청 달 밝고 바람 맑은 밤을 떠올리게 된다. 밤하늘이라니. 사실 마지막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본 게 언제였나 가물가물하고, 장마 소식이 있으니 오늘 밤 달이 뜰지 여부도 알 수 없지만… 날씨가 어땠든 제천의 밤이 주는 들뜬 분위기가 향긋하게 마음에 남은 탓이다.
올해 제천의 첫 밤을 여는 영화는 SONATA라는 제목을 둥글고 단선적인 필체로 띄우며 시작할 것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여서일까? 달을 닮은 글씨였다. 정직하고 투박하게, 오롯이 빛을 보내는.
달빛처럼 느린 걸음을 차분하게
영화 <소나타>는 얼마든지 뭉클하고 감동적인 톤으로 담아낼 수 있는 이야기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느린 걸음을,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곡조처럼 차분한 톤으로 옮기는 방법을 택했다. 귀여운 동요를 배우는 특수학급에 뚱하게 앉아 고립되어 있던 그제고즈가 본인의 문제가 청력 장애임을 알게 되고, 나아가 <월광 소나타>를 꿈꾸기까지… 그 길에 마법은 없다.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이 고립이 깨지긴 하는 걸까 싶은 지난한 걸음이다.
길이 쉽지 않은 대신, 영화가 메트로놈처럼 그제고즈의 속도에 관객을 맞추어 기어이 함께 걷게 만든다. 그제고즈의 ‘듣기’를 관객이 체험할 수 있게 계산된 사운드 덕분에, 그의 세상이 한 번씩 새로워질 때마다 생생하게 함께 느낄 수 있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면 그 여정에 나란히 서 있다.
그제고즈의 여정은 묵묵히 혼자 달리는 마라톤보다는 이어달리기를 닮았다. 그제고즈의 교육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는 엄마와 아빠, 그제고즈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주었던 선생님들, 우호적이지 않았던 이들의 존재까지도. 한 사람의 인생에서 바톤을 넘기듯 만나고 또 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순간 깨닫게 된다. 삶은 온전히 단단한 한 사람으로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가끔 서투르기도 하고 쉽게 지치기도 하는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임을.
선율 따라 기쁜 걸음을 다정하게
이어달리기 같은 만남과 헤어짐으로 그제고즈는 조금씩 성장한다. 물론 오랫동안 세상과 다른 속도로 걸어온 그가 템포를 맞추는 일은, 메트로놈의 박자를 따라가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같이 걷고 손을 내밀어주는 이들이 있다. 관심을 기울이고, 이름을 말해주고, 무엇보다도 정해져 있다고 믿었던 선 바깥으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신뢰와 지지를 보내주는 이들. 아니라는 가정을 한 번만 해보자는 이들. 무언가 더 나은 세상을 열고자 한다면 미지의 걸음을 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 내가 알아온 세상이 모두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이들.
바로 이런 이들과 만날 때, 거칠게 비좁아져 있던 세상이 점차로 확장되어 간다. 그렇게 그제고즈는 성장하고, 그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동시에 그제고즈를 둘러싼 주변에도 성장에 뒤따르는 기쁨과 슬픔이 있다는 점까지 세심하게 포착한다. 만남은 일방적일 수 없으므로.
사람만 만나는 것은 아니다. 그제고즈에게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은 피아노와의 만남이다. 그동안 닿지 않았던 세상이 음악의 파동으로 열린다. 감지하지 못했던 파동을 처음 느낀 이후, 세상은 이전과 다른 곳이 되고, 청각 보조 기구에 대한 만남과도 맞닿는다. 어떤 조우는 세상을 바꾸어 놓는다. 그렇게 달라진 마음은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새로운 세상에서 만나
그제고즈의 피아노처럼 어떤 음악이, 어떤 영화가, 어떤 순간이, 우리에게 그러할 것이다. 가끔 새로운 음악을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황홀해지는 순간, 무심코 본 영화가 마음에 들어와서 나를 바꿔 놓고 마는 순간. 그래서 음악을 좋아하고, 영화를 좋아한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 다정하게 새로운 힘을 건네 주니까. 내가 보고 듣고 알았던 세상 바깥으로 나를 이어주는 힘, 선명하다 생각했던 경계를 지워내고 그 바깥으로 걸음을 뗄 수 있게 이끄는 힘을.
가슴이 두근거린다. 제천에서 당신은 어떤 음악을, 어떤 영화를, 어떤 순간을 조우하게 될까? 알 수 없지만 다만 그 순간이 그제고즈와 <월광 소나타>의 만남처럼 아름답게 빛난다면 참 좋겠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본 당신이라면, 이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원인지 눈치챌 것이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이 짧은 만남이 어떤 흔적을 남길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제천을 즐기는 당신의 마음에 새로운 힘이, 달처럼 두둥실 차오르기를.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상영 시간
장소
CODE
2022-08-11 19:00
의림지무대
1
2022-08-14 17:00
CGV 제천 1관
324
2022-08-15 10:30
CGV 제천 1관
403
* 글 : 선이정
* 해당 글의 원글는 "선이정"님 브런치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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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지 없는 몸
‘젖꼭지 3차 대전’은 방송국 내 여성 몸에 관한 검열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다소 과장되게 표현함으로써 감독은 ‘블랙코미디’ 장르를 염두해두고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올해 ‘괴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린 최성은 배우가 주연을 맡았는데, (사실, 최성은 배우가 출현했다고 하여 궁금함이 컸던 영화였다) 괴물에서 보여준 연기와 정반대라 신선하면서도 어색함이 있었다.
이 영화는 다소 ‘어색하다’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소재의 무거움 때문인지, 과장되게 표현하며 그 무게를 떨치고, 최대한 유쾌하게 풀어가기 위해 힘을 많이 썼다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웃음을 자아내는 장면이 있었긴 하였으나 작위적이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중요한 이유를 말해보자면, 어떻게든 말을 하였다는 점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젖꼭지’를 마치 없다는 듯이 대하는 이 미디어, 특히나 대중과 꽤 밀접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방송계에서는 금기시 된다는 모순점이 참 기가 막힌다. 단지 성별의 구분에 따라서 여성의 신체는 성적대상화가 당연시되고, 이에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런 불합리한 인식에 부정하지 않는 것은 그 풍토를 유지시키며 힘을 가하는 것이다. 이에 영화는 ‘너희들 그러는 거 아니야’라는 식의 모습을 비춰주는 것이 대리 통쾌함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통쾌함을 선사하기 위해 다소 유쾌함을 끌어 내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유쾌함을 잘못 조절하면 되러 우스꽝스럽게 표현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말을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노브라로 인해 옷의 굴곡으로 보이는 젖꼭지의 모양, 젖꼭지라는 언어 그 자체, 여아의 젖꼭지. 여성들의 젖꼭지는 하염없이 모자이크 처리가 된다. 우리는 언제까지 가려져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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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서치2> 티저 예고편
돌아온 서스펜스, 더 진화된 추적 스릴러 이번엔 엄마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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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빅토리> 티저 예고편
빅토리적 사고 💭 세상이 멸망해도 우리는 "춤"춘다💃. 모두를 들썩이게 할 #빅토리 티저 예고편 대공개🎶 이혜리 X 박세완 X 이정하 X 조아람 🍿 [빅토리] 8월 14일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