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1-28 22:28:41
전편을 계승하며 장점을 강화시킨 속편
-<해적: 도깨비 깃발>(2022)
살아가면서 잠시 목적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그건 외부 환경 때문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문제 때문일 수도 있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냥 그대로 별다른 것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게 되기도 한다. 어떤 집단도 마찬가지다 공통의 목표를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던 집단은 모두 하나의 목표를 보고 달려갈 때 더욱 화합하며 좋은 케미를 보여준다. 그 안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은 있겠지만 그렇게 하나의 목표가 있다는 것은 큰 추진력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집단의 목표가 없어지는 순간, 그때부터 혼란이 시작된다. 구성원들이 이탈하게 될 것이고 리더의 교체 같은 조직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강력해질 것이다. 그 혼란 자체가 당장은 좋지 않겠지만 그것이 잘 수습된다면 다시 다음 목표를 설정하고 달려갈 수 있는 힘을 준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은 바다의 해적 집단과 육지의 의적 집단이 만나 하나의 목표로 달려가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에는 바다에서 난파당하고 작은 나무판자에 의지해 떠다니는 의적들이 등장한다. 의적들의 두목인 무치(강하늘)는 삶을 포기한 듯 보이는데, 죽음을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에 해적들과 만난다. 해적의 두목은 해랑(한효주)이다. 의적과 해적 두 집단은 서로 활동영역도 다르고, 목표도 다르다. 첫 만남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두 집단 모두 각자의 특정한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생존을 위해 물건이나 음식을 훔칠 대상을 찾아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이 일상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의적과 해적이 만나 벌이는 티키타카, <해적: 도깨비 깃발>
그나마 어느 정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해적들과 달리 의적들은 가진 것도 삶에 대한 의욕도 상실한 상태다. 자존심이 꽤 강해 보이는 의적 무치는 해랑과 자주 부딪히고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해적의 배안에서 두 집단이 주도권 싸움을 벌이다가 우연히 발견한 지도 한 장은 새로운 목표를 만들어준다. 보물이라는, 힘든 삶을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발견한 그들은 처음에는 그것을 독점하려 애쓰지만 이내 협력을 선택한다. 영화에선 무치와 해랑의 주도권 대결이 중반 이후까지 이어지면서 이들이 보물을 찾아가는 단계 단계마다 긴장감을 만든다.
사실 영화 속 무치는 고려 말기의 무사 출신이다. 그와 함께 의적 활동을 했던 동료들도 대부분 무사 출신으로 조선 건국 이후 버림받고 떠도는 삶을 살고 있었다. 반면 해랑과 일당들은 해적 활동을 하며 오랜 시간 함께해온 인물들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나라를 위해 일하다 배신당한 집단과 나라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그들만의 싸움을 했던 집단을 서로 엮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게 만든다. 또한 그들이 찾으려 하는 보물이 고려 말기에 누군가가 숨겨놓은 마지막 물건이라는 의미에서 이미 사라진 고려의 마지막 유산을 찾는다는 의미도 있다.
영화 속 보물을 찾는 다른 인물은 고려 말기 무사 출신인 부흥수(권상우)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부상당한 동료도 죽이고 앞으로 나가는 인물이다. 어쩌면 그렇게 목표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한축으로는 무치와 해랑의 관계 중점을 두면서 그 반대편에는 무치와 부흥수의 대립을 넣어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앞의 관계가 긍정적인 협력관계로 발전하는 반면, 뒤의 관계는 과거 청산으로서 완전한 갈등관계로 진행된다.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은 코믹 어드벤처 장르에 맞게 시종일관 유머러스하게 진행된다. 2014년에 개봉했던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후속 편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모든 캐릭터를 바꾸고 시대도 조금 다르게 설정하여 이야기를 구성했다. 코믹한 요소와 캐릭터가 적절히 들어가고, 다양한 액션 장면을 넣어 꽤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았던 전편은 이야기의 구성이나 전개에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 새롭게 개봉하게 된 <해적: 도깨비 깃발>은 과거 전편의 특징들을 그대로 가져와 계승하면서 볼거리와 CG를 좀 더 보강한 노력이 눈에 띈다.
전편과 비슷한 구도로 전개되지만, 장점이 더욱 부각된 후속 편
과거 남녀 캐릭터의 대립 관계를 그대로 무치와 해랑이 계승하고 있고, 유머를 맡았던 캐릭터 철봉(유해진)의 역할은 막이(이광수)가 이어받았다. 그래서 비슷한 느낌은 있지만 바다에서 벌어지는 액션과 육지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이 다양하게 섞여있어 조금 다른 박진감을 보여준다. 이야기의 구성과 전개는 여전히 어색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오락영화라는 특성을 감안하고 본다면 이해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등장하는 유머들도 타율이 높은 편이고, 후반부를 장식하는 볼거리들도 꽤 시원시원하게 촬영되어 있다. 특히 마지막 쓰나미를 피하는 액션 장면은 어색하지 않게 연출되어있어 꽤 큰 볼거리를 선사한다.
무치 역을 맡은 배우 강하늘은 허술해 보이지만 꽤 실력 있는 의적 두목을 연기하는데 자연스럽게 유머러스한 인물을 담아냈다. 뽀글뽀글한 머리 스타일과 그의 행동이 어우러져 유머와 액션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해랑 역할의 배우 한효주는 진지한 해적 단장 역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그가 평소에 맡았던 역할보다 더 과격한 액션을 선보이는 그의 힘 있는 액션 연기가 돋보인다. 반면 막이 역할을 맡은 배우 이광수도 그가 가진 특유의 유머를 선보이고 꽤 타율도 높다. 하지만 영화 내내 그의 캐릭터는 배신과 알 수 없는 행동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특히 영화의 후반부 펭귄과 대화하며 벌이는 장면은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지 의문이 든다. 영화의 분위기와 맞지 않게 괴상한 장면으로 느껴진다.
영화를 연출한 김정훈 감독은 과거 <탐정:더 비기닝>과 <쩨쩨한 로맨스>를 연출했던 감독이다. 모두 유머 코드가 들어가 있는 영화이고 특히 <탐정:더 비기닝>은 심각한 분위기와 캐릭터 유머 코드가 들어가 있었던 영화다. 그래서 이번에 그가 연출한 <해적:도깨비 깃발>은 그의 연출 스타일과 잘 맞는 영화였던 것 같고, 실제로 결과물도 그렇게 나쁘지 않다. 전편의 성공적인 부분을 잘 계승하면서 속편만의 매력을 잘 살려냈다.
결국 영화 속 의적과 해적은 그들만의 공통 목표를 찾아내 더 강력한 하나의 집단이 된다. 주요 캐릭터들이 겪는 일련의 과정들을 극장에서 직접 관람하면 좀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꽤 큰 규모의 한국 오락영화가 명절을 맞아 극장에서 개봉하게 되는데, 오랜만에 많은 관객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줄 만한 한국 영화가 개봉을 하게 되었다. 아무 생각 없이 유쾌하게 가족들과 즐길 수 있는 영화이기 때문에 설 명절에 흥행에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간단한 리뷰가 포함된 movielog를 제 유튜브 채널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주로 말 위주로 전달되기 때문에 라디오처럼 들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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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 도깨비 깃발>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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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빛을 경유하는 사랑의 기억
해당 리뷰는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 관람 후 작성되었습니다.
아이의 모험은 필연적으로 성장을 담보한다. <클레오의 세계>는 여섯 살 유년의 막이 내려지는 순간을 담는다. 작은 체구에 힘도 약한 클레오(루이스 모루아-팡자니)는 운동장 구름다리의 한가운데서 떨어지고 만다. 그런 클레오에게 달려와 달래주는 이는 유모 글로리아(일사 모레노 제고)다. 손바닥이 까져도 장난스레 입바람을 불어주는 글로리아가 있기에 클레오는 다시 웃을 수 있다. 애정 어린 눈빛을 주고받으며 장난치는 두 사람의 관계는 언뜻 보면 모녀지간이라 착각할 만하다. 갓난아이 시절 돌아가신 친엄마와 바쁜 업무로 밤늦게 돌아오는 일이 잦은 아빠 대신 클레오를 키운 것은 글로리아다. 양 부모를 대신해 주양육자의 자리에 있지만 글로리아에게 유모일은 노동의 일환이다.
아프리카에서 프랑스로 온 이주노동자인 글로리아에게 남은 여생을 보내고 정착해야 할 곳은 서아프리카 대서양에 위치한 고향인 카보베르데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글로리아는 “나한테 슬픈 일이 생겨”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유모와의 헤어짐은 예정돼 있었지만, 이 헤어짐은 예기치 못한 일이기에 글로리아와 클레오는 시간이 필요했다. 헤어짐을 유예하고 준비하는 시간. 글로리아의 부탁과 클레오의 심통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는 클레오에게 섬에서의 여름 방학을 허락한다.
글로리아의 집에 온 클레오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의 글로리아를 알게 된다. “신기해요. 난 글로리아와 함께한 추억밖에 없는데.” 클레오의 세계는 지금까지 글로리아로 가득했다. 글로리아의 세계에서 자신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클레오의 자각은 독립적 개체로서 분리의 시작이다. 이방인으로 글로리아의 세계에 초대된 클레오는 서아프리카의 낯선 환경과 문화 그리고 글로리아의 진짜 가족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친숙한 존재의 세계에 이방인으로 들어선 클레오는 마음의 변화를 겪는다.
양육자를 향한 아이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그것이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더라도. 글로리아의 손자 산티아고가 태어나고 모든 관심이 아기에게 쏠리자 클레오는 질투를 느낀다. 심지어는 악령에게 “아기를 죽여”달라고까지 기도한다. 당연히 클레오에게 살의가 있어서는 아니다. 글로리아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은 애정의 배타성이 공격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클레오는 곤히 낮잠에 빠진 글로리아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 4:3 비율의 화면을 가득 채우는 클로즈업은 얼굴의 눈빛과 손길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잠든 글로리아의 팔 위를 살포시 건드리는 클레오의 손길은 섬세하다. 사랑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손길이다. 이때 고요한 평화를 깨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클레오는 아기를 흔들며 다그친다. “너 때문에 글로리아가 깨잖아!” 글로리아의 보살핌에 응답하는 클레오의 사랑은 집요하고 강하다.
클레오의 내면은 피에르 엠마뉘엘-리에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된다. 시각화된 클레오의 마음은 색감과 움직임 그리고 소리의 세계다. 클레오에게 깊숙이 각인된 심상의 발현이라고 해도 좋겠다. 영화의 시작부터 등장한 분홍빛 화산섬과 글로리아의 이미지는 클레오에게 있어서 그 존재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애니메이션 이미지 속에는 언제나 글로리아가 있고 그를 통해 느끼는 기쁨과 슬픔으로 이미지는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경유한다. 심상적 이미지의 변화는 클레오의 성장과 함께 깊어진다.
글로리아와 이별을 맞이한 후 클레오는 프랑스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고 글로리아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글로리아는 클레오를 보내며 참았던 눈물을 혼자가 되어서야 쏟아낸다. 클레오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뒤를 돌아 보이지 않는 글로리아를 시선으로 쫓는다. 클레오가 보지 못한 글로리아의 눈물은 관객에게만 보인다. “서로를 떠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으나 이별의 무게는 다른 듯하다. 어둠 속에 빠진 클레오를 구해낸 것은 푸른빛의 고래다. 무모함을 감수하는 도약과 자신의 잘못에 용서를 구하는 겸허함을 배우며 아이는 홀로 서는 법을 배운다. 클레오의 유년에 글로리아가 있었기에, 글로리아의 한 시절에 클레오가 있었기에 느낄 수 있었던 사랑의 기억은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남겨지고 퇴색될 것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사랑”이라는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의 말에 기대어 이렇게 믿어도 좋겠다. 어둠이 드리워도 푸른빛의 고래는 언제고 클레오를 어둠 속에서 구해낼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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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누군가에겐 귀환, 누군가에겐 자유
대도시와 이방인들이 만들어내는 만국공통어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가 사는 도시, '뭄바이'는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이 영화는 각자의 꿈과 희망을 안고 대도시 뭄바이에서 맞딱드린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수많은 행인, 밤 늦게까지 빛을 내는 아파트와 전철 사이에서 프라바는 간호사, 아누는 인포직원, 파르바티는 요리사로 한 병원에서 일하며 의지한다. 서울을 갈망하고 이주하는 우리를 미루어보면 '대도시에서 만나는 이방인의 서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교감이 만국공통어인듯 하다.
인도의 결혼제도가 던지는 설움
결혼은 했지만 남편과 따로 사는 프라바는 그의 존재 없는 '존재감'으로 인해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 못한다. 아누는 부모님의 반대와 종교적 금기를 무릅쓰고 몰래 사랑을 나눈다. 파르바티는 남편의 죽음 이후 도시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주요인물들이 겪는 갈등은 인도의 결혼제도와 관습이 던지는 설움들이라 생각해볼만 하다. 허물뿐인 남편, 사랑을 넘어서는 종교적 배척정신, 남편이 없는 여성에 대한 대우 등...
누군가에겐 귀환, 누군가에겐 자유
보통의 주인공은 여행을 떠나고 귀환을 하는 여정에서 성장한다. 여기에 빗대 생각해보면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앙상블이 더욱 흥미롭다. 결국 고향으로 향하는 파르바티를 프라바와 아누가 배웅하는데, 파르바티의 귀환을 통해 프라바와 아누의 여행이 시작된다. 파르바티의 고향에서 남편의 환영을 마주하는 프라바, 애인과 아낌없이 사랑을 나누는 아누는 파르바티의 귀환에서 자유해진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빛'을 통해 잔상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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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이슈와 소셜 미디어 폐해를 섞은 풍자극
“안녕하세요. 한정미입니다!” 여장을 한 조정석이 이 말을 하는 순간! <파일럿>을 향한 관심도 커졌다. 한 미모(?)하는 조정석의 모습과 연기에 대한 기대뿐만 아니라, 오랜만에 만난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라는 점에서 올여름을 기다리게 만든 것. 물론, 기존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한 기시감은 여름 성수기에 이륙하려는 영화의 불안 요소! 하지만 이륙한 영화를 만나보니 기시감 미탑승! 대신 다른 요소들이 착석했다.
최고의 비행 실력 보유자, <유 퀴즈 온 더 블럭>까지 출연할 정도로 인기 고공행진 중인 항공 조종사 한정우(조정석). 하지만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 직장 술자리에서 여성 차별적 발언을 한 그는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다른 항공사에 문을 두드려봐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그를 뽑아주는 항공사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이혼까지 하고, 모아둔 돈도 다 떨어져 가는 신세. 하는 수 없이 이찬원 성지순례를 다니느라 바쁜 엄마(오민애)와 뷰티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여동생 한정미(한선화)에 집에 들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항공사에서 성 비율에 맞춰 파일럿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지원서를 낸다. 이름은 한정미, 성별은 여성, 직책은 부기장으로. 며칠 후, 1차 서류 합격 소식을 들은 그는 여동생의 도움으로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의 가짜 삶을 시작한다.
<파일럿>은 두 개의 엔진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는 여장 남자 코미디다. 잘 나가던 조종사가 말실수로 추락한 후, 여동생의 이름과 신분을 빌려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를 전한다. 일하기 위해서는 여성으로 살아야 하는데, 고초가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여자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남자 화장실에 가는 건 기본, 한정우로 살았던 말투와 기억, 행동들이 기어이 표출되고, 동기이자 워맨스를 이루는 윤슬기(이주명) 등 자신의 비밀을 숨겨가며 연명하는 한정우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에 젠더 이슈를 통한 웃음도 첨가된다. 한정미라는 여성으로 살려고 마음먹은 그가 가장 참지 못하는 건 바로 사회적 편견에 알게 모르게 여성을 비하하는 언행, 성희롱까지 당해야 하는 등 남성이었을 때는 전혀 문제기 안되었던 부분이다. 육사 후배이자 함께 비행기 운행을 해야 하는 기장 서현석(신승호)과의 에피소드는 이를 잘 그린다. 남자인지 모르고 한정미에게 추파를 던지는 상황 자체가 주는 재미는 물론, 이를 벗어나기 위해 한정우의 다소 과격한 타파 방법이 웃게 만든다. 이 터프한 모습에 더 빠져드는 서현석의 모습에 그 웃음은 배가 된다.
이런 서사적 구조와 코미디 작법은 <파일럿>만의 장점은 아니다. 영화의 원작인 스웨덴 작품 <콕핏>은 물론, <투씨>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여장 남자 코미디 계보를 잇는 작품에서 숱하게 봐왔던 부분이다. 선배 격인 영화들과의 차별화 포인트를 가져가야 하는 건 <파일럿>의 운명. 연출을 맡은 김한결 감독은 이 코미디 장르에 좀 더 깊숙이 파고드는 젠더 이슈와 캔슬컬처를 포함한 소셜미디어 폐해를 가져온다. 이는 <파일럿>의 두 번째 엔진으로서 그 역할을 다한다.
앞서 소개한 듯 영화는 남성에서 여성의 삶을 사는 한정우를 통해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고초를 투영한다. 비록 코미디라는 장치로 활용될 때도 있지만, 극이 후반부로 갈수록 단순히 휘발되는 게 아니라 묵직한 풍자 요소로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한다. 기장은 남성, 부기장은 여성으로 대변되는 직업의 성 우위, 여성을 직업의 숙련도와 포부가 아닌 외모로만 평가하는 사회적 잣대 등 반복되는 젠더 이슈는 점점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여기에 SNS로 대변되는 소셜미디어의 폐해도 중요한 역할은 한다. 핵인싸로서 살아가는 한정우의 삶은 빛 좋은 개살구다. 사회적인 지위와 면모에만 중점을 뒀기 때문에 가족도 그리고 비행기 조종을 좋아했던 자기 자신도 잊고 산다. 진짜 자신의 이름과 성을 가린 채 여성으로 변장해 살아가는 건 어쩌면 과거 진짜 한정우가 아닌 핵인싸 한정우의 삶을 지향했던 그의 과거 모습과 겹친다. 어쩌면 한정미로 살아가는 삶은 예전의 과오를 오롯이 체감하는 형벌처럼 느껴지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소셜미디어의 폐해 대상은 한정우만이 아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고 화려한 모습에만 현혹되어 반응을 보이고, 어느 순간 자신의 생각과 달라져 팔로우를 취소하고 비판하는 일반 대중의 캔슬컬처 행태도 꼬집는다. <가장 보통의 연애>를 통해 뜬소문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세태를 멜로 장르로 보여줬던 김한결 감독은 이번엔 코미디 장르로 전작과 유사한 현대인들의 행태를 꼬집는다. 이런 부분으로 인해 <파일럿>은 기존 여장 남자 코미디와의 차별화를 가져가면서도 젠더 이슈, 소셜미디어 폐해 등 현시대의 세태를 반영하는 풍자극으로서 그 소임을 다한다.
두 가지 엔진은 가열차게 움직이지만 그 균형감을 유지하는데 공을 들이다 보니 웃음의 강도와 풍자의 깊이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난기류를 만나는 것처럼, 태생적으로 지닌 풍자의 메시지가 다소 무거워 간혹 마냥 웃을 수 없는 장면들을 마주하게 되고, 이로 인해 코믹함이 계속 연결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한 번 이륙한 영화가 안전하게 착륙할 때까지 관객을 사로잡는 건 역시나 조정석이다. 이 역할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 천연덕스럽게 1인 2역을 오가며 웃음을 유발하는 건 물론, 앞서 소개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다리 역할을 말끔하게 소화한다. 웃음을 줬다가 뺐다 하는 밀당의 고수처럼,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는데, 남녀노소 누구나 이 영화를 무난히 즐길 수 있는 건 조정석의 힘이라고 본다.
극 중 한정우를 도와주는 여동생 역 한선화는 든든한 지원군이다. 현실남매 포스를 보여주면서 말 맛 제대로 살리는 티키타카 파트너로 극을 살린다. 여기에 이 남매의 엄마 김안자 역의 오민애의 연기도 뒤지지 않는다. 이찬원을 향한 덕심으로 똘똘 뭉친 중년 여성 역을 입체감 있게 그리는데, 핸드폰 받는 자세부터, 말투, 팬덤에 사로잡혀 열정을 바치는 이들의 모습 등 포인트 마다 코믹과 감정 연기를 임팩트 있게 보여줘 몇 장면 나오지 않음에도 기억에 남을 정도다.
<파일럿>은 코믹 판타지다. 설정 자체부터 말도 안 되는 웃음이 그득하다. 그렇지만 이 영화를 단순히 팝콘 무비로 소비하기엔 아쉽다. 한정우 또는 한정미를 통해 보여준 이야기가 그리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도 한정우처럼 남에게 보여주는 것만 신경 쓰다 자신을 잃어버린 채 비행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다 난기류를 만나 추락하기 전 이 영화를 보고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일단 신나고 쓰디쓰게 웃으면서!
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평점: 3.5 / 5.0
한줄평: 여장 남자 코미디로 이륙했다 사회 풍자극으로 착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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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영화를 보고 리뷰를 안 쓰면 그건 범죄지
튀르키예 여행길
아빠. 아빠가 어렸을 때 원했던 건 뭐야? 튀르키예 여행길에 오른 부녀. 부녀는 영상을 기록하려고 한다. 딸 소피는 이 캠코더를 들고 아버지 앞에 섰다. 듬직한 아버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소가 떠나가지 않았던 아버지. 다른 아빠들처럼 딸에게 한없이 다정하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딸과 아이의 어머니는 함께 사는 것 같지만 정작 부부끼리는 이혼한 듯하다. 그래도 아버지와 딸 사이에 크게 문제가 있지는 않다. 아빠가 평소에 딸에게 많은 신경을 써주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지금 앞에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 평소에 부녀관의 관계가 어쨌든 간에 둘에게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아빠와 함께라는 것이 즐거운 소피. 생글생글한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환하게 웃으며 답하는 아버지 캘럼. 그런데 뭐랄까 아버지의 눈빛이 뭔가 다른 것 같다. 너무 즐거워서 그런 걸까? 어린 소피가 뭔가 어두워 보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에는 나이가 11살이다. 그래도 이런 소피에게 왠지 캘럼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왠지 불안해 보이는 아버지. 아버지도 누군가와, 특히 소피와 함께하는 것을 그리워했던 듯하다. 아버지의 외로움이 느껴졌던 어린 소피였기에 이 여행이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래 기억에 남지 않았을까. 살짝 어두웠던 아버지를 봤던 그녀의 기억이, 소피의 낡은 캠코더에서 환하게 재생된다.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영화는 어른인 소피가 유년시절 겪었던 아버지와의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과거 시점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 과거를 떠올리는 데 있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역시 캠코더다. 캠코더를 보고 과거 기억을 떠올라는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 과거 기억을 떠올리는 영화가 됐을까? 소피라는 인물에게 아버지와의 여행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살짝 덜 임팩트 있었던 기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이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샬롯 웰스 감독이 이 영화의 소재로 자전적인 키워드를 고른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고, 그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에 대해 왜 아름다운 만큼 아쉬운 부분도 있는지를 묘사한다. 우선 왜 아름다운가? 에 대한 내용이다. 영화에 뭔가 임팩트가 쾅 찍히는 사건은 없다. 갑자기 아버지가 크게 아프다거나, 딸 소피가 위험에 처한다거나 하는 내용은 없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튀르키예 여행이 전부다. 뭔가 심심한 영화의 형식. 어떤 분들은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영화를 이렇게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기로 끝나야 아버지 캘럼의 내면 묘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또 영화에서 아버지만큼이나 중요한 인물이 딸 소피다. 딸 소피의 리액션이 현재 시점과의 대조를 이뤄서 '이 사람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조명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 기억들이 왜 특별할 수밖에 없는지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의 의미는 간단하다. 영화 전체적으로 담겨있는 것은 소피의 회한이다. 이 회한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일상적인 제스처도 알아채지 못했다'라는 아쉬움이 담겨야 한다. 이렇기 위해서 극적인 사건을 넣으면 후반부에 강조되는 영화의 내적 정서에 금이 갈 것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이 극적인 사건보다, 현재와 과거의 대비를 강조한 티가 난다. 다 보고 나서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뭐야?'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바로 아버지가 딸에게 어떤 대사를 하는 신인데, 이 대사에 방점이 찍힌 것도 형식에서 오는 강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쉽게 볼 수 없던 것에 대하여
이 영화가 가지는 비범함 중 하나는 창의성이다. 이 창의성은 기획력과도 관련이 있다. 영화의 핵심 소재는 사실 좀 아이러니하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아버지에게서 그때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다. 보지 못한 것을 본다는 것은 좀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굉장히 간단하게 이를 보여줬다.
우선 첫 번째 '볼 수 없던 것'은 아버지의 외로움이다. 영화가 어떻게 아버지의 외로움을 묘사했을까. 바로 캠코더라는 소재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캠코더는 기록에 관한 도구다. 딸 소피는 아버지와 여행하며 사소한 것도 기록에 남긴다. 영화가 만들어져서 우리 모두가 볼 수 있지만 작품 내적으로 소피는 '나 혼자만 볼 거'라서 이 영상을 찍는다. 이 영상은 종종 소피의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다. 뭐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질문도 있지만 어떤 질문은 왜 아버지 캘럼이 그런 기분에 있는가? 와도 닿아있다. 그리고 또 어쩔 때는 아버지 캘럼이 이 캠코더에 어떤 코멘트를 한다. 이 답을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쉽게 투영할 수 있다. 이 코멘트는 왜 이 지점에서 아버지의 내면을 묘사하는 장치로 느껴진다. 그리고 캠코더라는 소재가 등장하지 않은 장면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영화 도처에 깔려있는 외로움을 묘사할 때, 주위에 캠코더가 없는 캘럼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작품에서 밑줄 쳐져 있기 때문이다. 소피가 든 캠코더 앞에서 행복해 보이는 캘럼과 대비되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연출적으로 더 강조되어 있는 듯하다.
또 이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에게 표현하기 위해서 쓴 방법 중 하나는 상상력이다. 영화에서 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법한 요소들에 인물들의 내면이 서려있는 지점을 잘 묘사했다. 이는 이 요소들을 우리가 찾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이었나? 와도 닿아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영화의 최고 강점이다.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영화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뽑을 수 있는 부분은 역시 미술이다. <노매드랜드>처럼 자연 풍광을 아름답게 묘사하거나, <아바타 : 물의 길>처럼 그래픽을 바탕으로 한 미장센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애프터썬>에서 보여주는 미술은 익숙하면서도 다르다. 글쓴이는 이 <애프터썬>이 시각적으로 영화를 보여주기 위해 취한 형식을 지금 팝 음악 아티스트들이 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왠지 모르게 검정치마와 저스틴 비버가 음악을 만들며 낸 뮤직비디오에서 본 듯한 느낌을 영화 러닝타임 동안 내내 끌고 간다. 이런 감성이 최근에도 유행으로 통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뉴진스'라는 팀이 'ditto'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노래를 발표하면서 낸 뮤직비디오가 이런 느낌이었다. 물론 이 외에도 영화의 때깔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여러분이 지금 네이버에 들어가서 '애프터썬'이라 검색하며 나오는 스틸샷들이 있다. 이 스틸샷이 글쓴이 개인적으로는 튀르키예라는 지역 특성이 전부 다 들어간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 대신 주인공 부녀가 동화 같은 여행지 한 곳을 방문한 것처럼 보인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살짝 탁하지만 채도가 진한 색감이 등장했다. 또 영화를 보면서 안정적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건 비슷한 색을 효과적으로 화면 안에 반복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 제목이라고 볼 수 있는 '애프터 썬'의 장면이 있다. 어떤 행동을 딸에게 하는 아버지의 모습인데, 이는 가족 간의 유대가 끈끈한 두 사람의 내면을 묘사하는 한 가지의 방법이다. 또 후반부에 아버지의 어떤 행동이 더 두드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조명의 좋은 활용이 돋보였다.
이런 빈티지 감성을 사실 볼 만큼 봤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애프터썬>의 빈티지는 이번에도 통했다. 역시 영화는 잘 만들어야 최고다. 그런데 이 시각적으로 아날로그틱한 감성이 단순히 보기 좋으라고만 사용된 건 아닌 듯하다. 영화의 주제적인 측면과 어울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이끄는 두 가지 원동력은 기억과 기록이다. 글쓴이는 전자 기억을 이렇게 빈티지하게 연출한 것이 기억과 병치시키기 위함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억 혹은 기록이 더 사실적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덕에 기록을 꺼내고, 기록 덕에 기억이 되살아나는 인물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후반부 과거와 현재시점이 엇갈리는 연출이 그런 측면을 반영한 것 같다. 또 이 빈티지한 색감만큼이나 영화의 화면이 살짝 모호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모호한 느낌은 영화에서 비중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이 덕에 극의 긴장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 특정 대사들이 보여주는 축축함이 과연 우리에게 시각적인 상상력을 어떻게 작용하는지 생각하시고 본다면 영화의 감상이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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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깟 영생이 뭐라고
<서복>을 보고 조금 놀란 점은 두 유명 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배우들의 케미와 잘생긴 외모를 동원한 가벼운 영화라고 예상했지만, 무거운 주제와 함께 공유와 박보검의 연기가 분위기를 사로잡아 서투른 나의 예상을 깨뜨린 영화였다.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가치 있는 주제를 되새겨준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복> 네이버 스틸컷
삶과 죽음, 욕망
'서복'이라는 제목과 캐릭터 이름도 진시황 시절 불로초를 찾기 위해 떠난 신하들 중 '서복'이라는 신하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만큼 <서복>은 삶과 죽음에 대한 주제를 제목부터 드러내고 있으며, 유한한 삶에 대한 감사와 죽음에 대한 고찰, 인간의 욕심 등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생각하고 고민할 질문을 서복(박보검)을 통해 관객들에게 넌지시 전달한다. 그리고 <서복>은 인간의 욕망도 삶과 연관 지어 스토리가 진행된다. 서복을 쟁탈하기 위해 싸우는 두 집단의 전투는 영생을 얻기 위해 싸우는 인간의 욕망이 담긴 전투이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겁을 반영한다. 인간은 미래를 예견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서복>은 죽음이라는 고지 앞에 무의미한 발버둥을 치는 인간의 나약한 겁을 보여준다.
케미
<서복> 주인공 민기헌(공유)과 서복(박보검)의 케미는 가볍고 유쾌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각자가 무거운 고민과 아픔을 지니고 있고, 둘이서 그 고민을 툭툭 털며, 서로의 어깨를 슥슥 쓸어 넘긴다. 처음 어색한 사이에서 점차 마음을 내주며 의형제처럼 챙겨주는 변화는 기헌이 신체적인 회복을 목적으로 한 서복 지키기에서 서복을 통해 삶에 대한 감사와 죽음에 대한 깨우침으로 바뀌어 한 단계 성장하는 기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공유와 박보검의 유쾌한 케미를 100으로 기대한다면 50~60으로 낮추는 걸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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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이른 유턴
이 글은 영화 [파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갈 때는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사진출처: 다음 영화
각각의 영화 장르가 그렇듯 오컬트라는 장르에도 "세계관"이 존재한다. 물론 마블 영화로 대변되는 대형 히어로 프랜차이즈 영화에 비하면 세계관이라는 것 자체의 설명이 똑 부러지게 되지 않을 때가 많겠지만 말이다.
등장인물의 측면에서 봐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마블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은 투자액수에 비례하게 번쩍이는 능력으로 입을 떡 벌어지게 할 때가 많지만. 오컬트 속 주인공들의 필살기는 빠른 확인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근거리공격인 주술적인 격투(?)도 존재하지만 원거리 공격인 저주로 힘을 겨룰 때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인물들이 가진 능력이 중첩되거나, 심지어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이미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오컬트는 무려 "내공"이라는 단어 하나로 인물의(혹은 같은 능력의) 더블링을 퉁 칠 수 있다.
보통 주인공과 같은 능력을 가졌지만 더 높은 내공을 가진 고수를 찾는 것은 언제나 어렵고, 그 고수의 등장은 주인공에게는 최후의 숙적(Arch enemy)인 경우가 많으므로. 오컬트 영화의 세계관은 그 어떤 장르보다 인력난에 시달려야 한다. 또한 주인공은 마지막 대전을 겪기 위해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데, 이 내적 성장(혹은 짬바가 차는 과정)은 주인공이 반드시 한 번은 뒤통수를 맞는 반전의 형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초반부 한 시간;숨이 자꾸 멎는다
사진출처: 다음 영화
설명할 수 없는 존재들을 설득할 수 없는 방법으로 보이지 않게 싸워야 하는 모호함을 장르적 특성을 타고났기에. 영화 초반은 이 영화만이 갖고 있는 세계관을 설명하는데 일정 시간을 할애해야만 한다.
영화 [파묘]에서는 이 역할을 화림(김고은)의 초반 내레이션이 도맡는다. 어둠에 있던 것들이 빛의 경계로 슬그머니 나올 때. 그때 사람들이 자신을 찾고. 그때가 되어서야 어둠으로 그 존재들을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라고.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똑 부러지게 그어놓은 자신들의 한계 위에서. 화림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은 작두를 타기 시작한다. 자신들이 뛰어놀아야 할 고유 영역에서 가장 큰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게 할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표현을 효과음(BGM이나 배경음악보다는 효과음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을 이용해 쌓아 올리는 것도 꽤나 유효하다.
그저 점프 스케어(Jump Scare)에 집중한 크고 단말마 같은 음향이 아닌. 앉아있는 관객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손가락으로 슬쩍 목덜미를 훑는 것 같은 서늘함을 남긴다. 분명 기척을 느꼈음에도 뒤돌아 볼 수 없기에 관객은 자신의 상상력만으로 손가락의 실체를 향한 두려움의 몸집을 걷잡을 수 없이 불려 갈 수 있다.
영화의 초반 한 시간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의 긴장감으로 관객들을 괴롭힌다. 다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 인물들의 칼춤에 몇 번이고 떨어진 간이며 심장을 열심히 주워대다 보면. 그제야 겨우 가늘게 숨을 몰아 쉴 수 있는 잘 짜인 결말로 다다르게 된다. 안도하는 관객들에게 주어지는 후련함은 마치 여기까지 잘 버텼다며 쥐어주는 시원한 물처럼 소중하게 다가온다.
비로소 찾아온 안정을 느끼며 마른 목을 축여갈 때 즈음. 영화는 급작스런 유턴을 시도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 한 번의 유턴으로 인해 호불호라는 길 위에서 나머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오컬트 장르에 없는 것은?;메신저
사진출처: 다음 영화
현대적인 천재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셜록(BBC 드라마. 오이배치 출연)을 보자. 그는 모든 것의 정보를 기억하고 엮어낼 수 있는 비상한 머리와 뛰어난 관찰력을 가졌다. 그런 능력을 배가 시켜주는 소시오패스적인 기질 덕에(?) 자칫 미제로 남을 수 있는 사건을 풀어내는 데 있어서는 경찰들이 오히려 몰래 찾아올 정도다. 셜록의 이름은 그들의 입에 오르내릴지언정 공공연하게 "대놓고"부를 수는 없다. 애초에 셜록이라는 방법 자체가 "공식적인" 해결 방법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 경계는 오컬트라는 장르의 한계와도, 또한 초반에 화림이 선언한 자신들의 역할, 혹은 존재의 위치와도 완벽하게 일치한다. 장르가 "설명이 불가함"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장르 속 인물들은 조금은 억울하고, 또 조금은 찌질한 채로 살아간다. 또한 누군가에게 감히 공식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 애초에 메신저로서의 자격이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후반부의 시도는 낯설고 잘 알지 못하는"다른 나라"에서 온 존재를 엮어보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이는 영화 [곡성], 그리고 드라마 [방법]에서도 시도했던 것이기에 그다지 새로운 시도라고는 부를 수 없다.
문제는 그 시도가 어설프다는 점이다. 딱 한 번만 존재할 수 있는 오컬트 장르의 반전 장치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는 데다, 그마저도 긴장감이 사그라진 상태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뒤통수를 가격하는 힘이 그다지 크지 않아 사건의 중대함이 얼마나 큰지 별로 느낄 수 없다.
또한 전반부에는 이야기의 구심점이 사람들에게 있었으나, 후반부에서는 중심축이 사건을 설명하는 쪽으로 묘하게 이동한다. 이 덕분에 한국인의 DNA에 새겨진 일본은 적이다.라는 본능이 그대로 발동되어 버리고 만다. 덕분에 이 장르에서는 존재하면 안 되는 메신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거부감이 후반부 내내 마치 망령처럼 귓가를 맴돈다.
거 어데 도깨비입니꺼?;여기서도 내가 다 했어 임마.
사진 출처:다음 영화
전반부에서 형체가 없던 적은 후반부에 가서는 완벽하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적에 가깝게 묘사된다. 그러나 신체적으로 거대하게 묘사되는 적이 무자비한 학살을 해대는데도 형태가 흐릿한 혼령이나 날카로운 소리 한 조각보다도 무서움을 실어 나르지 못한다. 상상력이 더 이상은 쓸모없이 되어버리면서부터, 그저 화면에 보이는 존재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수동적인 감상은 초반부의 심장 롤러코스터를 겪어온 관객들에게는 그저 슬래셔 장면의 나열처럼 보일 뿐이다.
적의 속성이 바뀌면서 드러나는 첫 번째 문제점은, 유일하게 영화 속에서 오컬트적인 "전투 기술"을 갖고 있는 화림의 쓸모가 없어진다는 점이다. 화림은 후반부의 싸움에서 승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장면을 연출해내지 못한다. 완벽하게 기선제압을 당해 허둥거릴 뿐이다.
물론 언제나 영화 속 주인공이 승리의 편에 당당하게 서 있을 것이라는 법도 없다. 어쩌면 마이너 한 장르 영화의 특성상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이 낯설지 않거나 오히려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을 없애야 한다면 화림이 아닌 다른 등장인물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이 사건을 종결해야 한다.
여기서 두 번째 문제점이 드러난다.
등장인물들이 가진 능력치의 최대와 최대가 맞붙어야 하는 후반부를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데 시간을 쓰다 보니 각 인물들의 숨은 능력을 보여주거나 설명할 시간이 없어져버린다는 것이다. 화림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데다 봉길(이도현)은 병원에 누워있는 상황에서. 관객의 머릿속에서 이 사태를 끝낼 "마땅한"인물이 떠오르지 않는 것이 정상적일 것이다.
그러니 뜬금없이 상덕(최민식)이 소싯적 짬바를 발휘해서 직접 K-고스트 버스터즈가 되어버리는 장면이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가 노래방의 민족 아니랄까 봐. 끝을 앞둔 겨우 3 분 전에 갑자기 등장하는 히어로라니. 능력에 대한 빌드업이 되지 않은 영웅은 이제 마블 프랜차이즈에서도 찬밥신세가 되어버린 지 오래이기에. 상덕의 활약에 무게감이 실리지 않는 결말이 참으로 아쉽게 느껴진다.
마치면서;감독님 사랑합니다.
사진 출처:다음 영화
그렇다면 과연 이 영화는 "별로"인가.라는 질문의 답은 아니오. 에 가깝다.
한 시간 후의 그 유턴이 정말 길을 잘못 들어 원점으로 가려고 했던 시도였는지. 아니면 의도된 유턴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장르에 대한 애정이 있는 관객이기에, 아쉬움의 투덜거림이 좀 더 크게 입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한국의 오컬트 장르는. 누가 뭐라 해도 장재현 감독님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침한 곳에 숨어있던 무언가를 꺼내 경계까지 꺼내놓고, 자신만의 누울 자리를 용케 찾아 단단히 자리 잡아주신 덕분에. 좋아하는 장르의 영화를 한국 패치가 완벽히 장착된 채로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그것도 여러 번이나!!)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선택한 중반부의 유턴이 그저 조금 "이르다" 정도로 말하고 싶다.
스스로가 예상했던 바깥풍경을 못 보았기에 이질감이 들었고. 조금 기이한 기분과 낯섦 속에서 두리번거리는 바람에 이정 자체의 경이로움이 좀 줄어들었을 뿐. 목적지에 도착할 수는 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의 TMI]
1. 독일어 공부는 여전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못해먹겠네요.
2. 좀 아파서 쉬었습니다. 이제 괜찮아요.
3. 오늘 과자 한 봉지 다 먹음.
4.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파묘 #최신영화 #영화리뷰 #영화리뷰어 #장재현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브런치작가 #munalogi #네이버인플루언서 #내일은파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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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니들의 그림자에서 마블 최강의 마녀까지 간 소녀
#산돌구름 #엘리자베스올슨 #완다비전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3. 04 영상입니다.
유튜브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6jj...
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https://www.epidemicsound.com/*영상 타임라인*
00:00 어바웃올슨?!
01:03 슈퍼스타 언니들의 그림자
03:58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고 싶었던 배우
06:35 Road to 스칼렛 위치
08:42 마블의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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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질주 - 다시 돌아온 분질 패밀리! 자동차 액션의 끝까지 간다
분노의 질주 9편이 새로 개봉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제대로 된 블럭버스터 영화가 개봉한지 오래되었는데요.
오랜만에 머리를 비우고 볼 수 있는 자동차 액션이 개봉을 합니다.
도미닉이 그대로 돌아오고 주요 등장인물도 돌아옵니다.
여기에 한도 살아서 다시 등장하는데 팬들이라면 좋아하실 것 같고요.
도미닉과 친동생의 이야기가 주요 서사의 축이지만 이 시리즈는 서사 보다는 액션에 방점이 찍어져 있죠.
액션은 우주까지 날아갑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리즈여서 1편~6편의 DVD도 소장하고 있어요!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Rabbitgumi 채널 구독과 좋아요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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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리스도 디 오리진> 메인 예고편
예수의 탄생과 부활을 만나다! 폭력과 탄압으로 세상을 지배하던 로마 시대 예수는 12제자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고통받던 사람들을 사랑으로 치유한다. 위기를 느낀 로마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한다. 3일 후, 예수는 자신의 예언과 같이 부활하는데… 위대한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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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나의 직장상사는 코미디언> 메인 예고편
직장상사랑 첫 만남에 디스전 해보신 분? 여기 환상X, 환장의 짝궁이 등장했습니다. "코미디언 직장상사와 함께 일하면 재미있을 줄만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