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남규2024-03-08 14:47:09
[로봇 드림] 누구나 가지고 있을 잃어버린 추억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
로봇 드림
앞뒤 가면
영화 시작 전에 영화사 진진에서 가면을 주셨다. 가면 한 쪽은 도그가, 다른 쪽은 로봇의 얼굴이 있었다. 두 주인공이 한 몸처럼 깊은 우정을 나누는 의미가 숨어 있었다. 영화는
뉴욕을 배경으로 혼자 조용히 살아가는 주인공 ‘도그’를 비추며
시작한다. 도그는 별다른 문제 없이 매일 비슷한 하루를 보내며 살아간다. 고독과 외로움에 지칠 때, 친구 로봇을 주문하고 직접 조립한다. 세상에 처음 눈을 뜬 로봇은 도그를 따라 동네를 돌아다니며 경이로운 체험을 경험한다.
우울한 도그와 달리 영화는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색감과 아이들
동화책 같은 분위기를 품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시선으로 동네를 돌아다닐 때, 관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많이 들렸다. 워낙 많은 사람이 시사회에 모여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유독 관객들이 많이 즐거워했다. 생각해
보니 이번 작품 같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신작이 반가웠던 것 같다. 여하튼 굉장히 익숙해 반가운
곡,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가
주제가로 나올 때면 몸을 들썩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시각을 포함해 음악적인 부분까지! 영화 관계자분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서만 고민한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안정감을 가진 영화였다.
문제는
문제는 어설픈 도그가 해변으로 로봇을 데려가면서 발생한다. 물에 닿은 로봇은 일어나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 계속 누워 있는다. 여기서부터
갈라진 둘의 이야기가 별도로 진행한다. 도그는 도그대로 로봇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단, 다음 해수욕장이 열리는 6월
1일까지만. 로봇은 로봇대로 같은 자리에서 줄곧 도그를 기다린다. 단, 꿈속에서도 만날 수 없는 도그를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난 영화 줄거리, 스토리 라인을 만든 최초의 작가가 직접 겪은 일이라고
느꼈다. 여름철 휴가로 해수욕장을 갔고, 그곳에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놓고 왔던 기억을 활용한 것 같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항상
아끼고 품에 두었던 장난감이나 인형, 남들에게 별것 아닌 작은 아이템을 잃어버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어설픈 인간은 해변에서 잃어버린 것을 쉽사리 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라일리의 상상 속 친구 빙봉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에서
희미하게 변한다. 결국 남는 것은 친구와 함께한 시공간 속 따뜻했던 햇빛과 짠 내 그리고 일렁이던 공기뿐이다. 대상은 사라졌지만, 감각만이 살아 있는 아이러니함을 영화는 잘 표현한다.
엠비티아이 잠시 내려놓고
영화가 끝나고 훌쩍이는 사람, 주인공을 욕하는 사람, 어떤 부분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사람 등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거대한 여운을 체감하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나 또한 그랬다. 영화 ‘Her’의 호아킨 피닉스가 생각나기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러브, 데스, 로봇’도 보였다. 특히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제임슨 카메론 감독님은 이 영화를 보시고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궁금했다. 그만큼
SF, 판타지, 로봇,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관람하시길 추천하고 싶다. 처음에는 두 주인공에게 공감을 해야
영화가 재밌을 것이라 예측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가며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과생, 극 T인 분들도
충분히 재밌게 즐기실 것이다. 영화는 편 가르기도, 유행하는
MBTI도, 누군가의 잘잘못도 말하지 않았다. 이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과 어떤 감정, 평가를 할지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 그저 보여줄 뿐이다.
긍정적인 세 가지
영화가 재밌던 점이 세 가지 정도 있다. 첫 번째는 이 작품은 대사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말을 하지 않는다. 놀람, 행복, 즐거움 같은 탄성이 나오는 부분 말고는 전부 움직임으로 표현한다. 말로
사람을 해치는 인간 세상보다 좋아 보였다. 말을 못하니 오해 아닌 오해도 발생하고 의도에 맞지 않는
의미도 담기도 한다. 하지만 오해를 풀기 위해 더 부단히 노력하고, 새로운
의미에 반응하고 적응하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 제주도에서 제주에어 항공사를 타고 이륙할 때가 생각났다. 매번 제주에어 관계자분들이 일렬로 서서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은
비행기에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잘 가라’는 인사처럼 보인다. 당사자들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매번 ‘잘 가’라고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준다. 어떤 순간은 말보다 행동이 더 간결하고 아름다운 표현 방법인 경우가 있다.
두 번째는 도그와 로봇 둘 다 각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이다. 아마 감독님은 영화 ‘라라랜드’ 마지막
씬을 좋아하심이 틀림없을 것이다. 결말이 그렇다는 뜻이 아니다. 도그는
도그대로 로봇이 없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당연히 로봇을 잊지 않고 악몽을 꾸기도 한다. 그럼에도 새로운 인연을 내치거나 충동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 의연하게
고독한 자신의 삶을 마주한다. 그런 면에서 로봇은 도그에게 이별을 통해 더 많은 가르침을 주었는지 모른다. 방식이 어떻든 도그는 도그대로 성장하는 삶을 살아간다. 로봇도 마찬가지다. 바닷가에 홀로 누워 있는 로봇에게도 예고한 적 없는 손님들이 찾아온다. 움직일
수 없기에, 로봇은 그저 그들을 지켜볼 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이 누워있는 것뿐인 삶일지라도 로봇은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다.
세 번째는 등장인물 모두가 동물과 로봇이라는 점이다. 주인공 일행만 특별히 개와 로봇이 아니다. 아기 돼지삼형제도 있고, 공포 영화 패러디를 좋아하는 박쥐도 있고, 날름거리는 혀가 정말
미운 개미핥기도 나온다. 시사회라 그런지 아이들은 별로 오지 않았는데,
단연코 이 영화는 어린이날 개봉해도 좋았을 영화라고 생각한다. 어른 동화이기 전에 아이들이
상상하고 사고하고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좋게 만들었다. 현실에도 있음 직한 재치 있는 그림체를 가진 동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즐거웠다. 관계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를 알맞게 넣었다.
사람들은
그렇다고 특별하게 둘을 바라보지 않는다. 혼자라고 해서, 로봇과 함께 돌아다닌다고 해서 이상하게 도그와 로봇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등장하는 모든 동물은 도그를 도그로,
로봇을 로봇으로만 대할 뿐이다. 그래서 영화 초반부, 도그와
로봇이 함께 공원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인상 깊었다. 둘의 환상적인 춤을 바라보며 함께 즐거워한다. 조롱과 비난, 비판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문화적 차이가 있겠지만, 동양에서
자라 전통적인 사회 구조 속에 머물고 있는 내게는 큰 충격을 주었다. 지나친 거리감은 사회가 고독으로
좀 먹게 하지만, 꼭 ‘정’으로만
밀어 부치는 것도 필요 없었다.
영화 시사회에 초대해주신 영화사 ‘진진’과 ‘씨네랩’ 관계자분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13일 개봉 후 재밌는 이벤트를
많이 준비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죠. 그만큼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영화였습니다. 어린이날 특별 상영도 꼭 했으면 합니다.
P.S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