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수2022-02-16 10:58:15
깊은 상실 뒤에는 사실 사랑이
[리뷰] 영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한 소녀가 건널목 앞에 앉아 있다. 이윽고 전철 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올 거야.” 옆에 누가 있다는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살짝 돌리며 말하는 소녀. 옆에는 아무도 없다. 전철이 건널목에 다다랐을 때쯤 소녀는 전철을 바라보며 자신의 왼손을 쭉 펼친다. 마치 뭘 잡고 있는 것처럼. 여덟 살 이 소녀의 이름은 사야카(닛츠 치세). 사야카의 왼손에 예전에 있었던 건 반려견의 산책 줄이었다. 사야카는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난 반려견 루를 잊지 못하고 있다.
17일 개봉하는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하시모토 나오키)는 이별과 상실을 겪은 사람들을 느릿하게 그린 드라마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떠나보냈으나, 여전히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야카도 마찬가지다. 그는 루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 사야카가 우연히 만난 술집 마스터 후세(오이다 요시)도 아들 고이치로를 먼저 떠난 보내 아픔을 가지고 있다. 사야카가 고이치로가 죽었냐고 물었을 때 후세는 “안 죽었다”며 버럭 화를 낸다. 사야카도, 후세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루가, 고이치로가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 이런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던 둘은 결국 마음을 나누게 된다.
죽음과 이별, 그로 인한 상실감 등의 키워드로 풀어내는 영화이지만 사실 이 둘에게 가장 강력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사랑이다. 누군가를 마음에서 쉽게 떠나보내지 못하는 건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 상상조차 안 되는 애정의 깊이. 오죽했으면 떠난 게 사실임에도 그걸 믿지 않고 오히려 부정하려고 하는 걸까. 그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인생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여덟 살 소녀나 백발의 노인이나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 사랑.
사야카와 후세는 조금 달라진다. 자신들이 기다린다는 그 ‘무언가’를 찾으러 작은 여행을 떠나면 서다. 그곳에서 둘은 꿈을 꾸고 환상 같은 일을 겪으며 아픔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언젠가는 만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품는다.
사야카를 연기한 닛츠 치세는 2010년생으로 2014년 뮤지컬 '미스 사이공'으로 데뷔했다. 국내에서 379만 명이 본 흥행작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딸이다. 배우 아리무라 카스미가 영화에서 10년 뒤 사야카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일본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받은 동명의 단편소설이 원작.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영화 시사회 참석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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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스가 풀어줄 숙제들
#이터널스 #이터널스예고편 #마동석
2021. 05. 2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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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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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이터널스 궁금하지?
00:45 어벤져스와의 관계
02:42 아이언맨 in 인도
03:32 타노스급 뉴 빌런
04:47 타노스와의 관계
05:16 왕좌의 게임 삼각관계
06:14 이터널스가 가장 기대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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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공식 예고편
스마트하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남성' 히야마 켄타로.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며 그의 삶은 악전고투의 연속이 된다.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함께 선사하는 사회적 코미디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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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조명가게> 티저 예고편
어두운 골목 끝 가장 밝은 곳 밤이 되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어딘가 이상한, 낯선 사람들... [무빙] 강풀 원작 + 각본 12월 4일 [조명가게]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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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독일에서 날아온 유쾌한 성장 로드무비
과학을 사랑하는 주인공 울야가 자신의 발견한 운석을 맞이하러 떠나는 유쾌한 모험을 통해 어린이와 어른이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를 재미있게 풀어 담은 독일 신인 감독 바르바라 크로넨베르크의 데뷔작 영화 울야는 못말려 리뷰입니다. 바로 전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린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어린이를 듣다’라는 슬로건에 딱 알맞게 부합하는 내용과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전개가 꽤 알찬 시간을 채워주었습니다. 많은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보았는데,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문을 나섰으니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쯤 찾아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울야는 못말려 정보 줄거리
네 별을 지켜야 해
독일의 한적한 시골 도시 렘하임에 사는 천문학에 빠져있는 12살 울야는 교회의 어린이 발표에서 자신이 발견한 운석 VR-24-17-20이 곧 지구에 충돌할 것임을 예견합니다. 하지만 계시는 하느님만이 가능하다고 믿는 목사와 할머니는 발표를 중간에 자르고, 소녀의 탐구 장비와 기록을 뺏어 폐기하기로 하죠. 이에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지대에 사는 과학자 키르시프 교수의 조언을 듣고 1,257km가 떨어진 벨라루스 파츠루크로 가서 떨어지는 자신의 별을 지키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운전이 가능한 자신과 동갑내기 헨크의 학교 숙제를 제안하며 팀을 이뤄 떠나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Mission Ulja Funk
감독·각본 : 바르바라 크로넨베르크
출연진 : 로미 로우 야닌호프, 힐데가르트 슈뢰터, 요나스 외셀, 루크 페잇, 안야 슈나이더 외 다수
장르 : 모험, 가족│상영 시간 : 93분
국가 : 독일, 룩셈부르크, 폴란드│등급 : 전체 관람가
평점 : IMDB 7.0
수상 내역 : 38회 뮌헨 국제영화제(특별언급-미래상, 어린이 미디어상-여자 최우수 연기상), 19회 자그레브 영화제(어린이 심사위원상-키노키노)# 울야는 못말려 평점
모두를 변화시키는 행복하고 즐거운 여정
독일을 출발해 폴란드를 지나 벨라루스로 향하는 12살 동갑내기 친구들의 초현실적인 성장 로드 무비는 그들이 몰고 가는 영구차만큼 말도 안 되고 황당한 캐릭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유럽식 만두 피에로기를 판매하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를 만들겠다는 가진 남자, 멍청한 경찰관 한 쌍, 그리고 이들을 쫓는 버스 안을 채운 다채로운 어른들과 아이들까지 굉장히 기이하지만 재미있는 사람들로 희극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내죠. 우리가 흔히 보며 웃는 전통적인 코미디라기보다는 약간은 만화적 상상력이 투영된 연출을 시도한 감독의 의도는 대체로 성공적이고, 일반적으로 이런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사회의 종교적 위선과 다른 종류의 도덕주의자들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까지 선보입니다. 그 중심에는 울야에게 구속적인 할머니와 일부 부모들, 부패한 신부가 압력을 가하고 반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의 열정에 대한 이해심 있는 태도를 보이며 대립구조를 생성하죠.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소녀와 소년을 돕는 버스 안의 친구들은 마치 혐오스러운 어른들의 편협한 시선을 깨부수는 유머러스한 순간을 선사합니다.
이렇듯 감독의 상상력에 기반한 등장인물들이 함께 여정을 떠나며 그들의 무지, 편견, 인간성과 도덕성 등을 혼재시켜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비틀고 어린 소녀가 원하는 소망을 향한 사랑스러운 코미디를 완성시킵니다. 근거와 사실을 기초로 한 과학을 믿는 울야와 이에 맞서 보수적 종교적 믿음을 지키려 하는 나머지 마을 사람들의 대립으로, 유럽 곳곳에서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깊은 편견을 탐구하는 끊임없는 주제이기도 하죠. 그리고 여행 중에 헨크와의 관계를 통해 단순한 독립성보다 더 강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유대 관계를 구축하고 아이들의 생각과 열정, 행동 등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단순히 보수적인 고정관념을 조롱하고 비판하기보다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한 울야라는 소녀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찰지게 연기한 배우들을 통해 신선한 웃음을 전달합니다. 귀여움 넘치는 헨크와 귓가를 맴도는 OST가 기분을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줘서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자녀와 보시기를 추천드리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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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헌 감독 축구 영화 '드림'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드림
(2023.04.26 개봉)
감독: 이병헌
출연: 박서준, 아이유 등
안녕하세요!
오늘은 극한직업,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신작 축구 영화 '드림' 리뷰를 써 보려고 해요!
드림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축구 선수 홍대,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으로 나서게 된다.
열정리스 PD 소민이 다큐 제작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운동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특별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이들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드림> 줄거리
드림은 실화를 각색한 영화거든요!
실제로 2010년에 열린 홈리스 월드컵이 있었는데요
드림처럼 대회 참가에 필요한 돈이 부족해서 참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대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 축구 협회 등에서 후원받은 돈으로 겨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2019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었는데 2023년부터 다시 홈리스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병헌 감독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스물의 치호와 멜로가 체질의 진주가 생각나는데요
겉으론 멀쩡하지만 어딘가 고장나 있는... 돌I 같은 생각을 하는 캐릭터들이죠
드림에서는 소민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멜로가 체질 영화판 같단 리뷰를 남기셨는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그 이유가 모든 캐릭터들의 말투가 비슷해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본 스물,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 드림만 놓고 봐도
캐릭터들이 다 높낮이 없는 일정한 톤으로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팩폭을 말하거든요
물론 그게 웃기긴 하지만 이제는 지겹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럼에도 드림이 재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효봉, 문수 등 새로운 캐릭터를 넣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많은 캐릭터들 각각의 사연을 풀어 주는 데 애썼기 때문이고요
모두가 소민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코믹 영화였다면
사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많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동진 평론가님의 평을 보았습니다
영화보다 해설가가 해 주는 말이 더 많다였던가??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드림에서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부분은 한국팀이 1점이라도 따내는 경기 부분이잖아요?
근데 경기 씬 30분...? 정도를 외국인 해설가의 나레이션과 함께하게 되는데요
그렇다 보니 캐릭터들의 감정을 느끼진 못하겠더라고요
해설가가 말하는 상황 자체(지문)를 이해하고 있을 뿐
머리띠를 쓴 인수가 어떤 감정으로 임하고 있는가, 다리까지 다쳤던 환동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되는 거예요...
저 진짜 BGM만 깔아 줘도 우는 애인데 그냥 재미있다~뿐이지 감동적이진 않았어요
저는 이병헌 감독님의 개그 코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고편을 보고 코믹을 기대했던 것도 있는데
아무래도 실화 기반 스포츠 영화다 보니까 완전히 웃음만으론 갈 수 없겠나 보더라고요...
웃긴 건 정말 예고편으로 보는 장면이 다였고 가끔씩,, 피식거릴뿐
박장대소할 정도로 웃긴 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스포츠 영화로 최고였냐? 그건 또 아녜요
사실 스포츠 영화는 깊은 울림과 함께 여운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슬램덩크가 대표적인 예시겠죠?
저 강백호 빼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막판 1점에선 숨도 못 쉬고 진짜 눈물이 차올랐거든요
그 정도의 감동을 원하고 보는 게 스포츠 영화인데... 그렇게 보았을 땐 아쉬웠습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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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껍데기의 결말
도리언 그레이의 첫 묘사는 손때가 묻지 않은 연약함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순진무구한 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던 한 청년이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위 분석은 도리언 그레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도리언 그레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어린아이가 자아를 찾아나가는 관점과 관련 있다는 가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One and only 사랑은 없다. 당신의 착각이었을 뿐
그는 시빌 베인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시빌 베인이 연기한 캐릭터들, 그녀의 연기력, 즉, 그녀의 재능을 사랑한 것이었다. 그녀의 출중한 연기력으로 그녀가 표현해낸 줄리엣, 이모겐을 사랑한 것이다. 그녀는 도리언의 완벽한 외모에서 비롯된 그의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갈구했다면, 그는 그녀의 연기만을 사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내면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겉껍데기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난 뒤,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젊음에 대한 찬미가 담긴 초상화에 대해서 진절머리를 느끼게 된다. 시빌 베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완전무결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완벽히 그려낸 초상화가 흉측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는 그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도리언의 초상화는 그의 인생이 담겼고, 그의 영혼이 담겨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리언은 자신의 완전무결한 모습에 취해서 초상화에서 보이는 자신의 늙고, 흉측한 모습은 애초에 보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에 시빌 베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더 이상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 자신의 초상화를 다락방에 가두어 버리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이처럼 배실의 초상화는 도리언의 인생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면서 도리언의 잘생긴 외모라는 가면 아래 남들에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던 악한 모습도 포함하고 있는 어쩌면 도리안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도리언은 배실에게 페로몬을 흩뿌려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도리언에게 있어서 배실은 이성보다는 선에 기반한 감성을 더 자극하는 사람으로, 도리언의 나르시시즘을 발현시키는 것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도리언이 헨리와의 쾌락적이고, 비관주의적인 토론을 하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고, 그의 젊음을 찬미하기에만 바쁘다. 이런 배실의 탐닉적인 모습은 자신이 그린 초상화가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무너지게 된다.
또다른 등장인물,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 그레이에게 “사상적인 분신”의 역할을 한 사람으로서 배신을 도리언에게 아름다움을 고취시킨 사람이라면,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의 악한 욕망에 눈 뜨도록 이끌어준 인물이다. 바질은 선에 입각한 인물이었다면 헨리 워튼 경은 사탄과도 같은 존재이다. 도리언에게 쾌락주의적 사상을 본의 아니게 주입시키는 인물로서 정신적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망가뜨린 인물이다. 그의 상징적 이미지는 실낙원에서 선량한 아담과 이브를 고통의 세계로 이끈 뱀(serpent)의 이미지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는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는 인간의 충동적인 결정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부분으로 앞으로 도리언 그레이가 어떠한 충동적인 결정으로 크나큰 비극을 맞게 되는지에 대한 암시를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혼은 정말 몸 안에 존재하냐고 질문하는 부분은 구절은 이후 도리언 그레이가 영원한 젊음을 위해서 영혼을 파는 부분을 연상시키면서 더 이상 도리언 몸에 있지 않은 도리언 진짜 영혼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도리언의 추악한 본능을 담은 매개체는 도리언의 몸이 아니라 도리언을 그려낸 초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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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풀타임 Full Time, 2021
프랑스 / 88분
감독: 에리크 그라벨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풀타임>은 일상의 반복을 외피이자 내피로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 쥘리의 출퇴근이 이야기의 뼈대이자 전부지만, 그것이 영화가 내놓은 모든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 복잡하게 느낄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간단한 방법으로 명확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망설임 없이 표면 서사와 심층 서사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쥘리의 일상은 환경, 온도 등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다가온다. 두 서사 사이의 간격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너무나 평범해 쉽게 지나치기 쉬운 하루를 역동적인 사건으로 느끼게 하고, 그 결과 별거 아닌 것을 한순간에 마음 쓰게 만든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을 옆집 할머니에게 맡기고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쥘리가 특별한 지점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영화는 도로를 뛰고 있는 것 같은 쥘리의 거친 숨소리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꿈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알람 소리로 눈을 뜬 순간부터 쥘리는 숨 돌릴 틈 없이 움직인다.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한 뜀박질로 시작해 집에 무사히 돌아오기 위한 뜀박질로 끝나는 하루. 스펙터클한 일상을 더 완벽하게 완성하는 건 따로 있다. 시끄러운 파리의 소음만큼이나 가슴을 갑갑하게 만드는 쥘리의 문제들. 교통을 마비시킨 대규모 파업과 갚지 못한 대출 빚, 옆집 할머니의 직언, 연락 부재중인 전남편, 사랑하는 아들의 파티 준비까지, 쥘리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쳇바퀴 안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수많은 문제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는 점이다. 쥘리는 오래전부터 직장 상사 몰래 이직을 꿈꾸고 있었다. 이미 5성급 호텔에서 동료 직원들을 평가할 수 있는 고참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지만, 마케팅 회사를 더 원한다. 호텔 룸메이드 처우보다 조건이 좋은 건 당연하고, 궁극적으로 과거 잘했던 일을 늦지 않게 다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 더 좋은 조건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 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 쥘리의 강력한 동기는 호텔 룸메이드란 현실 속 직업을 위태롭게 만들기 시작한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우린 때때로 앞에 산적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일과 진짜 중요한 일을 나누곤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낼 수 없을뿐더러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부분 일의 순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여기면 될 일이니까. 난제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쥘리는 자신의 문제에 순서를 배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순서가 사실은 선택이란 단어를 감추기 위해 쓴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쥘리에게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그녀의 현실에서 선택은 사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조차 허용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건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서 하나를 포기하면 전부를 포기해야 한다. 달리는 열차에 손을 뻗어 맘에 안 드는 열차 칸을 뜯고도 기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으니까.
그녀를 둘러싼 사건들은 죄다 단기간에 확실한 답을 찾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쥘리는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하다. 익숙함에 젖어서 다른 일을 게을리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에 능숙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녀에게 익숙함은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교통 파업은 교통마비의 원인이지만 쥘리에겐 주어진 환경일 뿐이다. 자연재해와 같아서 남 탓은 불가능하다. 물론 교통마비 현상이 쥘리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하고 즉각적으로 보여주지만, 쥘리의 적대자는 아니다. 그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며 자기 자신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아이를 돌봐주는 옆집 할머니의 오지랖(주제넘은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한다. 하루는 부탁하다가 다른 날엔 할머니의 말에 동의하는 척하고 또 다른 날엔 애처롭게 애원한다.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전남편에게 매일 전화하면서 자괴감과 무력함을 느끼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그에게 전화해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면접을 보러 다니는 와중에 아들의 생일 파티를 위한 준비를 잊지 않고 카풀과 차 렌트로 출퇴근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능하게 한다. 마케팅 최종면접을 위해 그동안 쌓아놓았던 호텔 룸메이트 마일리지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내가 이렇게 몇 년간 헌신했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란 심보로 말이다. 그 일이 사실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나쁜(?) 일이다. 가능한 모든 힘을 쥐어짜고 기용할 수 있는 자신의 인적자원을 이용한 결과, 쥘리는 호텔에 출입하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잃는다. 과거 나를 위해 했던 일들이 현재 나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다.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벌이거나 난동을 피우며 해결되지 않는 화를 표출할 법한데, 그녀는 묵묵히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다. 교통마비가 끝나기를 견디는 것처럼, 옆집 할머니가 마음을 바꾸길 기다리듯이, 최종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바라듯이, 쥘리는 끝까지 자신에게 올 긍정적 신호를 기대한다. 그 모습이 너무 간절해 안쓰러워 보이지만, 상관없다. 우린 그녀를 당연하게 응원하고, 쥘리는 모두가 예상했듯 합격 소식을 들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전부인 <풀타임>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힘은 쥘리를 향한 관객의 진한 공감에 있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사실 달라지는 현실은 없다. 여전히 쥘리의 출퇴근은 난항일 거다. 아니 이젠 그 안전한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그전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봐줄 사람도 찾아야 하고, 답답한 전남편에게 똑같은 음성메시지를 남기겠지. 하지만 쥘리는 끝까지 파업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전남편과 직장 중간에 위치한 파리 외곽에서 꿋꿋하게 두 아이를 키웠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니까. 쥘리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 적당히 합리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다. 나아가 가끔은 과한 요구도 나를 위해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통 인간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이 곪아 터지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언제든 나의 현실이 될 수 있고,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해서 그 고통이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녀는 우리처럼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치열하게 사는.
단단하게 잡고 있는 것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며 더는 나오지 않는 한숨을 토해내려 애쓰는 날도 있다. 쥘리의 일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넘어지거나 고꾸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위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실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자기가 원하는 인생의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희망적인 결실까지 얻었으니 해피엔딩은 당연한 결과다. 평범함이 위대함이 되는 건 쉽다. 물론 아찔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갖게 한다. <풀타임>이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과 함께 쥘리를 달리게 한 건 그 대단함에 숨어있는 힘을 눈앞에 보여주기 위함이다.(영화 내내 들리는 소음과 어지러운 카메라 무빙도 같은 목적을 위해 달려왔다.) 따라서 첫 장면부터 관객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힘엔 조금의 다급함도, 조급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화무쌍한 현실을 견디는 나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을 전달한다. 그리고 난 그게 참 반가웠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자연스럽게 쥘리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곧 나를 위한 마음이 될 때, 마침내 영화는 그녀를 멈춰 세운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놀이기구 앞에서 새로운 출발을 앞둔 쥘리의 모습.
홀로 멈춰 있지만, 그녀는 이미 뛰고 있다.
또다시 자신이 가진 시간을 전부 다 꺼내놓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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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어린이에게서 비롯한 이토록 거대한 세계
파편들의 집/A House Made of Splinters
시몬 레렝 빌몽 감독/Denmark, Finland, Ukraine, Sweden/2022/88min
‘국제장편경쟁’ 세션
보육원에서 살아가는 아이들, 그 마음의 결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인근 어딘가의 보육원. 나는 이 영화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흔이 새겨져 있을 거라 짐작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부모의 알코올 중독과 폭력 등으로 보육원에 온 아이들은 전쟁 전부터 있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부터. 영화는 보육원의 몇몇 아이들이 그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담는다. 우정, 기대, 갈망, 희망, 슬픔, 실망……. 하나의 결로 묶어내기 어려운 여러 감정이 아이들의 얼굴에 묻어난다. 누군가는 엄마를 기다리고, 누군가는 다른 위탁가정으로 가는 친구를 떠나보내며, 누군가는 동생들과 함께 다른 보육원으로 옮기지 못해 눈물을 흘린다. 오랫동안 보육원에서 일한 선생님은 보육원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고 말한다. 문제 발생, 아이의 보육원 입소, 아이의 성장, 성장한 아이들이 삶에 지쳐 부모처럼 술을 시작, 아이 출산, 부모와 같은 문제 발생, 그들 자녀의 보육원 입소……. 비극의 패턴은 세습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카메라가 아이들의 얼굴을 향한다는 점이다. 보육원에서 그 나이에 경험하기에는 지나치게 버거워 보이는 어떤 감정들과 씨름하는 아이들의 얼굴 말이다. 이들의 얼굴이야 말로 보육원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문제에 관한 논의에서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얼굴일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
피터 위어 감독/USA/1989/128min
‘선생님 특별전: 쌤과 함께’ 섹션
교육이 서비스가 된 시대의 학교
오래전 봤던 영화를 굳이 영화제에서 다시 본 이유는, 요즘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기 위해서였다. 학교가 점수, 대학, 성공의 도구인 사회에서는 삶을 가르치려는 스승과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바보가 된다. 실제로는 그 반대인데도. 학교를 성공을 위한 서비스 기관이라 생각하니, 서비스 종사자에게 만연한 갑질이 학교로도 넘어오는 것이 아닐까. 돈을 내면 높은 사람이 되어 대접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문제고, 학교가 서비스 기관이 된 것도 문제니 ‘스승’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의 자리가 학교에 남아날 리가 없다. 차라리 ‘공무원 마인드’로 학교에 다녀야 정신이 건강해지는 사회. 비록 비극적으로 끝났을지라도, 학교와 스승이 함께 고양되는 영화 속 장면은 현실에서 이제 더는 불가능한 것일까.
꿀꿀/OINK
마샤 할버스타드 감독/Netherlands/2022/70min
‘도담도담극장’ 세션
우리 식탁 위 맛있는 ‘반찬’의 과거
한 채식주의자 가정. 과거 소지지를 만들었던 할아버지가 느닷없이 찾아오고, 손녀 밥스에게 새끼 돼지를 선물한다.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속내를 의심하지만, 밥스는 선물받은 꿀꿀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유대를 키워 나간다. 그러나 이내 할아버지의 검은 속내가 밝혀진다. 좋은 환경에서 키운 꿀꿀이를 소시지 대회에서 활용하고자 하는 것. 밥스는 친구, 가족과 함께 할아버지에게서 꿀꿀이를 지키고 채식 소시지로 대회에서 우승한다. 우리 식탁 위의 맛있는 반찬이 그전에는 무엇이었는지를 환기하는 어린이 애니메이션.
이너 차일드/Inner Child
손민영 감독/Korea/2023/95min
‘국제장편경쟁’ 세션
영구치는 새로 나지 않는다고 말하자, 소년이 눈물을 흘린다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난 주호. 영구치가 흔들리는 것 같다는 느낌에 그 자리에서 또 새 이가 자라느냐고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가 다정히 주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영구치는 다시 나지 않는다고 알려준다. 주호는 눈물을 흘린다. 유치의 자리를 영구치가 대신했듯, 리셋해버리고 싶은 상황이 자기 앞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군인 관사에 사는 주호는 동네 형 일택의 눈에 든 후 괴롭힘을 당한다. 그러나 주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주호에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 아빠가 부대장인 일택의 아빠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주호는 이 문제를 자기 혼자 해결해야 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머뭇거리다 올바르게 처신하지 못해 두 명의 친구마저 잃을 위기에 처한다.
감독은 언젠가부터 소년들의 서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이 영화를 기획했다고 한다. 소년들이 마주한 세계는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폭력에 갇힌 사회다. 영구치 이후에 새로운 이는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호는 어떤 어른으로 성장했을까. 자신을 괴롭히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풀어낼 수 없는, 감당하기 힘든 폭력의 문제를 내면에 품고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사회 속에서.
아마 글로리아/Àma Gloria
마리 아마추켈리 감독/France/2023/83min
개막작
특유의 섬세함으로 아이의 성장과 동시대 돌봄 회로의 역학을 함께 고민케 한다
클레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글로리아를 엄마처럼 따른다. 글로리아도 그런 클레오를 무척 아낀다. 그런데 글로리아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이 온다. 글로리아의 어머니는 글로리아를 대신해 그녀의 자식을 돌봐주고 있던 터였다. 이제 글로리아는 자기 자식을 돌보러 고향으로 가야만 한다. 글로리아가 떠난 후 내내 그녀를 보고 싶어 하던 클레오는 방학을 맞아 글로리아가 사는 곳으로 향한다. 글로리아는 클레오를 반가이 맞는다. 그러나 글로리아의 아들인 세자르는 클레오가 반갑지 않다. 오히려 애정 어린 말과 몸짓을 주고받는 글로리아와 클레오를 보며 소외감을 느낀다. 정작 친자인 자신은 받아본 적이 없는 엄마의 돌봄이 다른 아이에게 향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한 세자르의 기분이 좋지 않은 건 당연하다. 그러던 와중 글로리아에게 손녀가 생긴다. 이번엔 클레오가 소외감을 느낄 차례다. 글로리아의 관심을 앗아간 아기에게 질투심을 느끼는 것. 그리고 글로리아와 클레오는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더욱 다정하고 끈끈해진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돌봄 회로를 비틀어 의미를 생산한다. 부국/부자 지역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사람은 자신이 일할 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고, 빈국/빈곤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은 자녀를 양육할 돈이 필요하다. 경제력이 뒷받침되는 사람들은 이들을 고용해 돌봄 공백을 매우고, 빈국/빈곤 지역의 여성들은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정서적으로 방치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을 견뎌야만 한다. 정작 자기 노동의 종착지였던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낀다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이처럼 삭막한 돌봄 회로에서 소중한 친밀성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클레오와 글로리아가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듯이, 세자르가 클레오를 조금씩 수용해 가듯이, 클레오가 글로리아의 손녀를 향한 질투를 걷어내고 성숙해지듯이. 〈아미 글로리아〉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아이의 성장과 동시대 돌봄 회로의 역학을 함께 고민케 하는 수작이다.
플래닛 B/Planet B
피터르 반 에크 감독/Belgium, Netherlands/2023/74min
‘지‧평‧선(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선)’ 세션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과 급박한 문제의식
열세 살 친구인 보와 루카. 이들은 기후 위기 활동가다. 플라스틱 공장이 들어설 숲을 점거하고, 지금 당장 행동할 것을 촉구하며 거리의 차를 멈춰 세우며, 동료 활동가들과 치열한 논의를 전개하기도 한다. 2022년의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상영작 〈애니멀〉을 보면서도 느낀 거지만, 서구에는 기후 위기 문제에 천착하는 청소년 활동가가 참 많다. 다른 사회 운동에 비해 유독 그런 듯하다. 새로운 세대의 감수성과 급박한 문제의식이 기후 위기에 대항하는 정치와 행동을 벼려내는 데 특별한 역할을 하는 것일 테다. 머리로는 이해한다면서도 일상의 변화에는 지극히 보수적인 어른들보다 청소년 활동가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단 생각이다. 기후 위기 시대에 태어난 그들의 행동과 생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며 변화를 요구할지 기대하게 된다.
*영화 전문 웹진 〈씨네랩〉을 통해 기자로 초청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제11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9월 13일부터 9월 20일까지 진행됩니다. 영화 상영 시간표와 상영작 정보는 아래의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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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스러운 두 배우와 동력을 잃은 리메이크
내 맘은 이게 아닌데
위이잉. 회로가 굴러가고 있다. 어떤 회로? 행복회로와 연애회로. 95학번 한국대 기계공학과 복학생 김용은 현재 행복회로를 굴리고 있다. 자전거를 타고 수업 들으러 가는 용. 친구 놈이 말을 건다. "야. 너 그거 들었냐? 우리 과에 똑똑한 여자 애 들어온다는 거." 사실 학과에 신입생으로 여학생이 들어온다는 것은 '내일 일어나서 밥을 먹는다'에 준하는 흔한 이야기다. 아니 들어 올 수도 있지. 그런데 이 여학생이 다른 사람이 아닌 '서한솔'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수수한 외모. 그렇게 꾸미지 않았는 데도 한솔이의 미모는 저 멀리 있는 용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혼란스러운 세기말 1999년. 많은 것들이 바뀌기 바로 직전이었다. 두근 반 세근 반 용이의 계절도 봄으로 바뀌기 직전이다. 그렇게 설레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신나는 대학 생활. 어느 날 용은 은성이가 갖고 있는 'HAM 무전기'를 발견한다. 야. 은성아. 나 이거 써봐도 돼? 뭐라도 있으면 좋잖아? 한솔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전기를 빌리는 용. 용은 그 무전기에서 의외의 상대와 대화한다.
내 맘은 이게 아닌데. 무늬에게 사랑은 너무 어렵다. 무늬의 오랜 '남사친' 영지. 무늬는 영지를 사랑하고 있다. 21학번 대학생인 무늬. 무늬에겐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과 수다 떨 때는 떡볶이를 먹으며 노닥거리고, 인스타그램을 끄적이며 일상을 공유한다. 별 다를 바 없는 무늬의 20대. 그러나 무늬의 짝사랑 영지는 뭔가 다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 대학을 다니지 않았던 영지. 어느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 보내고 있다. 난이도가 올라가는 무늬의 사랑. 영지가 다른 친구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무늬에겐 용기가 없었다. 언제 떠날지 모르는 영지. 불안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지. 교양 과제를 위해 누군가를 인터뷰해야 하는 무늬. 집에 고물처럼 박혀있는 'HAM 무전기'의 수화기를 켠다. "씨큐. 씨큐. 혹시 들리시나요?" "네 들립니다. 제 이름은 김용이라고 합니다."
비주얼 합격
시놉시스를 4초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의 주인공은 용과 무늬다. 용은 여진구 배우가, 무늬는 조이현 배우가 맡았다. 드라마를 잘 안 보는 나. 여진구 배우의 대표작 하면 <화이>가 생각난다. 그래서 이 배우가 이렇게 좋은 배우였나? 싶었다. 일단 이 극에서 용(이)의 서사가 제일 중요하다. 전반부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찌질하면서도 풋풋한 양면성을 띄는 톤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연기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작위적인 무언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여진구 배우가 보여준 연기는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이 연기에는 굴곡이 있어야 한다. 사랑에 빠졌기에 달달하고 멋있는 듬직한 모습과 사소한 것에 일희일비하는 궁색맞음이 한 사람의 톤 안에 있어야 극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여진구 배우는 이를 이해한 듯 풍부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조이현 배우의 화보집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말하는 분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진구 배우의 팬이라면 베테랑이 된 이 배우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이에 힘입은 배인혁, 김혜윤 배우도 그 시절 티가 나는 파릇파릇한 대학생을 잘 소화했다. 특히 김혜윤 배우는 96년생으로 한국 나이 27세다. 건국대학교를 다녔다고 검색하니 나온다. 아마 이때 15학번 신입생으로 들어온 많은 남학생들의 마음을 실제로 훔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대학생 연기가 아니라 진짜 대학생 같았다.
현대 시점으로 와서, 무늬 역을 맡은 조이현 배우는 극에서 가장 빛난다. 아마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라고 글쓴이에게 묻는다면 조이현 배우의 모든 것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나머지는 하이라이트 신에 삽입된 명곡이라고 답하고 싶다) 조이현 배우가 그렇게 장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큰 화면으로 보면 조이현 배우의 비율이 더 뛰어나게 느껴진다. 또 조이현 배우가 무쌍 미녀의 대표 격 아닌가? 귀여운 외모와 더 귀여운 목소리 톤으로 사랑스러운 현대 시점의 이야기를 이 배우의 매력으로 끌고 간다. 연기도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역할로 잘 골랐다. 소심할 땐 소심하지만 인물이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씩씩한 내면을 잘 보여줬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서 볼 수 있던 남라 캐릭터의 강점을 어느 정도는 옮겨 온 듯하다. 후술하겠지만 영화에서 무늬의 감정선이 거의 이해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그러나 이 무늬에게 집중해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조이현 배우의 비주얼과 연기력 덕이다. 또 멜로드라마의 구성에서 과거 시점이 현재 시점보다 훨-씬 존재감이 세다. 대신 반대 측면에서 현재 시점이 영화가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는 부분이 있다. 여기에서도 중요할 때 감정에 힘을 빡 주는 연기로 영화를 소화한다. 이 무늬를 지원 사격하는 영지 캐릭터, 그러니까 나인우 배우의 비주얼도 좋았다. 아니 대학생활하다 보면 꼭 저런 형이 여학생들한테 인기 많았다. 그 모습을 꼼꼼하게 묘사한 성실함이 돋보였다.
좀 갑작스럽네
그렇게 두 주인공의 비주얼을 예쁘게 뽑았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 장르나 청춘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이런 게 필수 아닌가?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이야기의 흐름이다. 일단 영화는 과거 시점과 현대 시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중요한 설정은 이 두 시점에서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22년 전 과거의 대상과 무전을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과거 시점이나 현재 시점이나 이 판타지적인 소재를 받아들이는 데 심리적인 장벽이 있어야 몰입이 쉬울 것이다. 그런데 영화는 이를 묘사하다가 말았다. 서로 '당신이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냐?'라고 말하다가 갑자기 서로를 이해한다. 여기서 몰입이 어그러진다. 그럼 영화의 핵심으로 닿는 부분까지 감정 이입이 안된다는 단점이 있다.
또 이는 무늬라는 인물의 캐릭터성과도 이어진다. 무늬는 관찰자이면서도 능동적인 입장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관찰자로서는 용의 사랑을 모니터링하며 조언하는 역할을 아끼지 않는다. 이 관찰자의 관점에서 푸는 이야기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앞 문단에서 언급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용(이)에게 쏟는 감정선이 관객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게 느껴진다. 또 현재의 무늬가 갖고 있는 문제는 영지에게 어떻게 마음을 표현할 것인가? 에 대한 것이다. 이 이유가 단순히 용의 첫사랑에 같이 몰입해서 마음이 깊어졌다기엔 내면 묘사가 너무 안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이야기 비중을 좀 줄여서 무늬의 사랑에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 또 무늬가 HAM 무전기로 대화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교양과목 발표다. 이 교양과목 발표가 너무 흐지부지 마무리된다. 영화를 보는 분들 중에 분명 대학생 신분이 있을 것이다. 보다 보면 친구들은 발표를 잘하는데 무늬만 굉장히 평면적으로 발표한다. 이는 '우리 모두 다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낭만'이라는 핵심 키워드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
소소하지 않아
22년을 돌아온 리메이크다. 올해 후속작이 참 많았다. 그중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은 <탑건 : 메버릭>이다. 36년 전의 1편은 미국의 군인들에게 사기를 진작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2년의 이 <탑건 : 메버릭은>은 아날로그가 왜 사라져선 안 되는지에 대해 소리 한 방 크게 지르는 영화가 됐다. 이를 반영하는 호쾌한 액션으로 톰 크루즈의 대표작이 되었다. 36년이 걸린 이 영화. 두 영화는 차이점을 보여주며 왜 리메이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이 <동감>은 22년을 걸린 리메이크의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구체적으로 굳이 영화의 시점을 2022년과 1999년으로 설정한 이유를 찾기도 어렵다. 뭐라고 적을 것도 없이 현대 젊은이들을 관통하는 메시지가 없다. 또 과거라는 설정이 영화에서 엄청 중요했나? 그것도 아니다. 용과 한솔의 사랑이야기에서 터닝포인트가 되는 부분은 시대상과 관련이 없다. 이런 소재와 메시지가 따로 노는 현상은 자잘 자잘한 것에서 더 신경 쓰인다. 가령 무늬가 2022년 봄에 아이폰 13을 쓰는 것이나 3월에 패딩을 안 입고 다니는 것이 그렇다. 섬세한 힘이 부족해 고증에 실수가 있는 것이다. 또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거북이와 달이 있다. 이 두 소재를 통해 연출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얕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개기월식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 또 거북이라는 소재는 영화에서 연결고리를 위해 기능적으로 툭 던진 느낌이 강하다. 굳이 마음의 이동을 표현하기 위해서 거북이가 있어야 하나? 아니라고 본다. 또 수위 아저씨가 극후반부에 어떤 이미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 장면에서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조이현, 여진구 두 배우의 극후반부 퍼포먼스로 아련한 느낌을 잘 살렸다. 그런데 나레이션에 이것까지 더해지니 계속 들었던 말을 두,세번 반복하는 느낌이 강하다.
사랑스럽기만 한
영화는 사랑스럽다. 조이현, 여진구 두 사람의 캐릭터성이 통통 튀기 때문에? 맞다. 나인우, 배인혁의 훈훈한 비주얼? 김혜윤의 미모? 맞다. 영화는 이 배우들의 매력을 중심으로 사랑스러운 느낌을 잘 풍긴다. 그러나 첫사랑의 달달함이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이렇게 짝사랑과 첫사랑에 대해 다룬 영화라면 뭐랄까 나 혼자서 품고 있는 짝사랑의 상대에게 메시지라도 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무언가 동기부여가 생기지 않았다. 그냥 조이현 배우 같은 여사친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정도였다. 이는 절대 관객들이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닐 것 같다. 무슨 말이냐면. 영화가 사랑스럽긴 한데 굳이 이걸 봐야만 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영화 볼 거면 <건축학개론>을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 더 사려 깊은 연출을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영화다. 아. 이 영화와 협업한 츄, 미노이의 리메이크 곡을 지금 글 쓰면서 듣고 있다. 이 <고백>과 <습관>이 아주 잘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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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터널스가 풀어줄 숙제들
#이터널스 #이터널스예고편 #마동석
2021. 05. 2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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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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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이터널스 궁금하지?
00:45 어벤져스와의 관계
02:42 아이언맨 in 인도
03:32 타노스급 뉴 빌런
04:47 타노스와의 관계
05:16 왕좌의 게임 삼각관계
06:14 이터널스가 가장 기대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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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공식 예고편
스마트하게 성공 가도를 달리던 '남성' 히야마 켄타로. 하지만 예상치 못한 임신을 하며 그의 삶은 악전고투의 연속이 된다. 웃음과 생각할 거리를 함께 선사하는 사회적 코미디 《히야마 켄타로의 임신》,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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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조명가게> 티저 예고편
어두운 골목 끝 가장 밝은 곳 밤이 되면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 어딘가 이상한, 낯선 사람들... [무빙] 강풀 원작 + 각본 12월 4일 [조명가게] 디즈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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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독일에서 날아온 유쾌한 성장 로드무비
과학을 사랑하는 주인공 울야가 자신의 발견한 운석을 맞이하러 떠나는 유쾌한 모험을 통해 어린이와 어른이 어떻게 소통하고,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를 재미있게 풀어 담은 독일 신인 감독 바르바라 크로넨베르크의 데뷔작 영화 울야는 못말려 리뷰입니다. 바로 전 포스팅에서 소개해 드린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개막작으로 만나 볼 수 있었는데, ‘어린이를 듣다’라는 슬로건에 딱 알맞게 부합하는 내용과 이해하기 쉽고 흥미로운 전개가 꽤 알찬 시간을 채워주었습니다. 많은 어린이 관객들과 함께 보았는데, 다들 즐거운 표정으로 문을 나섰으니 기회가 되신다면 한 번쯤 찾아보시는 걸 추천드리고 싶네요.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울야는 못말려 정보 줄거리
네 별을 지켜야 해
독일의 한적한 시골 도시 렘하임에 사는 천문학에 빠져있는 12살 울야는 교회의 어린이 발표에서 자신이 발견한 운석 VR-24-17-20이 곧 지구에 충돌할 것임을 예견합니다. 하지만 계시는 하느님만이 가능하다고 믿는 목사와 할머니는 발표를 중간에 자르고, 소녀의 탐구 장비와 기록을 뺏어 폐기하기로 하죠. 이에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지대에 사는 과학자 키르시프 교수의 조언을 듣고 1,257km가 떨어진 벨라루스 파츠루크로 가서 떨어지는 자신의 별을 지키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운전이 가능한 자신과 동갑내기 헨크의 학교 숙제를 제안하며 팀을 이뤄 떠나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 Mission Ulja Funk
감독·각본 : 바르바라 크로넨베르크
출연진 : 로미 로우 야닌호프, 힐데가르트 슈뢰터, 요나스 외셀, 루크 페잇, 안야 슈나이더 외 다수
장르 : 모험, 가족│상영 시간 : 93분
국가 : 독일, 룩셈부르크, 폴란드│등급 : 전체 관람가
평점 : IMDB 7.0
수상 내역 : 38회 뮌헨 국제영화제(특별언급-미래상, 어린이 미디어상-여자 최우수 연기상), 19회 자그레브 영화제(어린이 심사위원상-키노키노)# 울야는 못말려 평점
모두를 변화시키는 행복하고 즐거운 여정
독일을 출발해 폴란드를 지나 벨라루스로 향하는 12살 동갑내기 친구들의 초현실적인 성장 로드 무비는 그들이 몰고 가는 영구차만큼 말도 안 되고 황당한 캐릭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유럽식 만두 피에로기를 판매하는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를 만들겠다는 가진 남자, 멍청한 경찰관 한 쌍, 그리고 이들을 쫓는 버스 안을 채운 다채로운 어른들과 아이들까지 굉장히 기이하지만 재미있는 사람들로 희극적인 순간들을 만들어내죠. 우리가 흔히 보며 웃는 전통적인 코미디라기보다는 약간은 만화적 상상력이 투영된 연출을 시도한 감독의 의도는 대체로 성공적이고, 일반적으로 이런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사회의 종교적 위선과 다른 종류의 도덕주의자들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까지 선보입니다. 그 중심에는 울야에게 구속적인 할머니와 일부 부모들, 부패한 신부가 압력을 가하고 반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의 열정에 대한 이해심 있는 태도를 보이며 대립구조를 생성하죠.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소녀와 소년을 돕는 버스 안의 친구들은 마치 혐오스러운 어른들의 편협한 시선을 깨부수는 유머러스한 순간을 선사합니다.
이렇듯 감독의 상상력에 기반한 등장인물들이 함께 여정을 떠나며 그들의 무지, 편견, 인간성과 도덕성 등을 혼재시켜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비틀고 어린 소녀가 원하는 소망을 향한 사랑스러운 코미디를 완성시킵니다. 근거와 사실을 기초로 한 과학을 믿는 울야와 이에 맞서 보수적 종교적 믿음을 지키려 하는 나머지 마을 사람들의 대립으로, 유럽 곳곳에서 여전히 드러나고 있는 깊은 편견을 탐구하는 끊임없는 주제이기도 하죠. 그리고 여행 중에 헨크와의 관계를 통해 단순한 독립성보다 더 강한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유대 관계를 구축하고 아이들의 생각과 열정, 행동 등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깨닫게 해줍니다. 단순히 보수적인 고정관념을 조롱하고 비판하기보다 활기찬 에너지가 가득한 울야라는 소녀를 통해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며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찰지게 연기한 배우들을 통해 신선한 웃음을 전달합니다. 귀여움 넘치는 헨크와 귓가를 맴도는 OST가 기분을 더욱 상쾌하게 만들어줘서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자녀와 보시기를 추천드리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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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병헌 감독 축구 영화 '드림'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드림
(2023.04.26 개봉)
감독: 이병헌
출연: 박서준, 아이유 등
안녕하세요!
오늘은 극한직업, 스물을 연출한 이병헌 감독의 신작 축구 영화 '드림' 리뷰를 써 보려고 해요!
드림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축구 선수 홍대, 홈리스 풋볼 월드컵 감독으로 나서게 된다.
열정리스 PD 소민이 다큐 제작으로 합류하게 되면서
운동이라고는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특별한 선수들이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이들의 도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드림> 줄거리
드림은 실화를 각색한 영화거든요!
실제로 2010년에 열린 홈리스 월드컵이 있었는데요
드림처럼 대회 참가에 필요한 돈이 부족해서 참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대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대한 축구 협회 등에서 후원받은 돈으로 겨우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네요
2019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잠시 중단되었었는데 2023년부터 다시 홈리스 월드컵이 열린다고 하니까요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병헌 감독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 뚜렷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스물의 치호와 멜로가 체질의 진주가 생각나는데요
겉으론 멀쩡하지만 어딘가 고장나 있는... 돌I 같은 생각을 하는 캐릭터들이죠
드림에서는 소민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이 멜로가 체질 영화판 같단 리뷰를 남기셨는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그 이유가 모든 캐릭터들의 말투가 비슷해서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본 스물, 극한직업, 멜로가 체질, 드림만 놓고 봐도
캐릭터들이 다 높낮이 없는 일정한 톤으로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팩폭을 말하거든요
물론 그게 웃기긴 하지만 이제는 지겹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같이 들었던 거 같아요
그럼에도 드림이 재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던 이유는 효봉, 문수 등 새로운 캐릭터를 넣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많은 캐릭터들 각각의 사연을 풀어 주는 데 애썼기 때문이고요
모두가 소민 같은 말투를 구사하는 코믹 영화였다면
사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많이 지루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동진 평론가님의 평을 보았습니다
영화보다 해설가가 해 주는 말이 더 많다였던가??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드림에서 우리가 감동받을 수 있는 부분은 한국팀이 1점이라도 따내는 경기 부분이잖아요?
근데 경기 씬 30분...? 정도를 외국인 해설가의 나레이션과 함께하게 되는데요
그렇다 보니 캐릭터들의 감정을 느끼진 못하겠더라고요
해설가가 말하는 상황 자체(지문)를 이해하고 있을 뿐
머리띠를 쓴 인수가 어떤 감정으로 임하고 있는가, 다리까지 다쳤던 환동이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등
캐릭터에 몰입이 안 되는 거예요...
저 진짜 BGM만 깔아 줘도 우는 애인데 그냥 재미있다~뿐이지 감동적이진 않았어요
저는 이병헌 감독님의 개그 코드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예고편을 보고 코믹을 기대했던 것도 있는데
아무래도 실화 기반 스포츠 영화다 보니까 완전히 웃음만으론 갈 수 없겠나 보더라고요...
웃긴 건 정말 예고편으로 보는 장면이 다였고 가끔씩,, 피식거릴뿐
박장대소할 정도로 웃긴 건 없었던 거 같아요
그렇다고 스포츠 영화로 최고였냐? 그건 또 아녜요
사실 스포츠 영화는 깊은 울림과 함께 여운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슬램덩크가 대표적인 예시겠죠?
저 강백호 빼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막판 1점에선 숨도 못 쉬고 진짜 눈물이 차올랐거든요
그 정도의 감동을 원하고 보는 게 스포츠 영화인데... 그렇게 보았을 땐 아쉬웠습니다
*스토리: ★★★★
*연출: ★★★★
*영상미: ★★
*연기: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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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껍데기의 결말
도리언 그레이의 첫 묘사는 손때가 묻지 않은 연약함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순진무구한 한 청년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세상 물정 모르던 한 청년이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로 인해 어떻게 악의 화신이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위 분석은 도리언 그레이는 주변 사람들과의 교류가 도리언 그레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어린아이가 자아를 찾아나가는 관점과 관련 있다는 가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One and only 사랑은 없다. 당신의 착각이었을 뿐
그는 시빌 베인 자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시빌 베인이 연기한 캐릭터들, 그녀의 연기력, 즉, 그녀의 재능을 사랑한 것이었다. 그녀의 출중한 연기력으로 그녀가 표현해낸 줄리엣, 이모겐을 사랑한 것이다. 그녀는 도리언의 완벽한 외모에서 비롯된 그의 아름다움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갈구했다면, 그는 그녀의 연기만을 사랑한 것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내면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겉껍데기를 사랑했다.
그녀에게 이별을 고하고 난 뒤,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가 일그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젊음에 대한 찬미가 담긴 초상화에 대해서 진절머리를 느끼게 된다. 시빌 베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인해 완전무결하고,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완벽히 그려낸 초상화가 흉측하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배실 홀 워드의 초상화는 그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도리언의 초상화는 그의 인생이 담겼고, 그의 영혼이 담겨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도리언은 자신의 완전무결한 모습에 취해서 초상화에서 보이는 자신의 늙고, 흉측한 모습은 애초에 보고 싶어 하지도 않기 때문에 시빌 베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더 이상 내면이 아름답지 않은 자신의 초상화를 다락방에 가두어 버리는 선택을 하고야 만다.
이처럼 배실의 초상화는 도리언의 인생을 기록한 것이기도 하면서 도리언의 잘생긴 외모라는 가면 아래 남들에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던 악한 모습도 포함하고 있는 어쩌면 도리안의 진실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도리언은 배실에게 페로몬을 흩뿌려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래서 도리언에게 있어서 배실은 이성보다는 선에 기반한 감성을 더 자극하는 사람으로, 도리언의 나르시시즘을 발현시키는 것에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는 도리언이 헨리와의 쾌락적이고, 비관주의적인 토론을 하는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들에 감탄하고, 그의 젊음을 찬미하기에만 바쁘다. 이런 배실의 탐닉적인 모습은 자신이 그린 초상화가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비로소 무너지게 된다.
또다른 등장인물,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 그레이에게 “사상적인 분신”의 역할을 한 사람으로서 배신을 도리언에게 아름다움을 고취시킨 사람이라면, 헨리 워튼 경은 도리언의 악한 욕망에 눈 뜨도록 이끌어준 인물이다. 바질은 선에 입각한 인물이었다면 헨리 워튼 경은 사탄과도 같은 존재이다. 도리언에게 쾌락주의적 사상을 본의 아니게 주입시키는 인물로서 정신적으로 도리언 그레이를 망가뜨린 인물이다. 그의 상징적 이미지는 실낙원에서 선량한 아담과 이브를 고통의 세계로 이끈 뱀(serpent)의 이미지와 상통한다.
그리고 그는 영혼과 육체의 상관관계는 인간의 충동적인 결정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하는 부분으로 앞으로 도리언 그레이가 어떠한 충동적인 결정으로 크나큰 비극을 맞게 되는지에 대한 암시를 보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혼은 정말 몸 안에 존재하냐고 질문하는 부분은 구절은 이후 도리언 그레이가 영원한 젊음을 위해서 영혼을 파는 부분을 연상시키면서 더 이상 도리언 몸에 있지 않은 도리언 진짜 영혼에 대해 떠올리게 한다. 도리언의 추악한 본능을 담은 매개체는 도리언의 몸이 아니라 도리언을 그려낸 초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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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풀타임 Full Time, 2021
프랑스 / 88분
감독: 에리크 그라벨
나를 위한 마음, <풀타임>
<풀타임>은 일상의 반복을 외피이자 내피로 효과적으로, 또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이혼 후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엄마, 쥘리의 출퇴근이 이야기의 뼈대이자 전부지만, 그것이 영화가 내놓은 모든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 복잡하게 느낄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굉장히 간단한 방법으로 명확한 이야기를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망설임 없이 표면 서사와 심층 서사를 능숙하게 넘나드는 쥘리의 일상은 환경, 온도 등에 따라 몸의 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처럼 다가온다. 두 서사 사이의 간격을 자기 마음대로 조절하기도 하는데, 그로 인해 너무나 평범해 쉽게 지나치기 쉬운 하루를 역동적인 사건으로 느끼게 하고, 그 결과 별거 아닌 것을 한순간에 마음 쓰게 만든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을 옆집 할머니에게 맡기고 기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쥘리가 특별한 지점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건,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영화는 도로를 뛰고 있는 것 같은 쥘리의 거친 숨소리로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 꿈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알람 소리로 눈을 뜬 순간부터 쥘리는 숨 돌릴 틈 없이 움직인다. 직장에 늦지 않기 위한 뜀박질로 시작해 집에 무사히 돌아오기 위한 뜀박질로 끝나는 하루. 스펙터클한 일상을 더 완벽하게 완성하는 건 따로 있다. 시끄러운 파리의 소음만큼이나 가슴을 갑갑하게 만드는 쥘리의 문제들. 교통을 마비시킨 대규모 파업과 갚지 못한 대출 빚, 옆집 할머니의 직언, 연락 부재중인 전남편, 사랑하는 아들의 파티 준비까지, 쥘리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쳇바퀴 안에서 바쁘게 살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발적으로 수많은 문제에 하나를 더 추가했다는 점이다. 쥘리는 오래전부터 직장 상사 몰래 이직을 꿈꾸고 있었다. 이미 5성급 호텔에서 동료 직원들을 평가할 수 있는 고참 룸메이드로 일하고 있지만, 마케팅 회사를 더 원한다. 호텔 룸메이드 처우보다 조건이 좋은 건 당연하고, 궁극적으로 과거 잘했던 일을 늦지 않게 다시 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 더 좋은 조건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 더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 쥘리의 강력한 동기는 호텔 룸메이드란 현실 속 직업을 위태롭게 만들기 시작한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우린 때때로 앞에 산적한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일과 진짜 중요한 일을 나누곤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낼 수 없을뿐더러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부분 일의 순서를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여기면 될 일이니까. 난제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쥘리는 자신의 문제에 순서를 배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순서가 사실은 선택이란 단어를 감추기 위해 쓴 용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쥘리에게 선택은 있을 수 없다. 그녀의 현실에서 선택은 사치다. 어쩔 수 없는 선택조차 허용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건들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서 하나를 포기하면 전부를 포기해야 한다. 달리는 열차에 손을 뻗어 맘에 안 드는 열차 칸을 뜯고도 기차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한참 지났으니까.
그녀를 둘러싼 사건들은 죄다 단기간에 확실한 답을 찾기 어려운 일들이었다.
쥘리는 참고 견디는 일에 익숙하다. 익숙함에 젖어서 다른 일을 게을리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에 능숙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녀에게 익숙함은 현실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교통 파업은 교통마비의 원인이지만 쥘리에겐 주어진 환경일 뿐이다. 자연재해와 같아서 남 탓은 불가능하다. 물론 교통마비 현상이 쥘리의 고통을 가장 극대화하고 즉각적으로 보여주지만, 쥘리의 적대자는 아니다. 그녀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며 자기 자신이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두 아이를 돌봐주는 옆집 할머니의 오지랖(주제넘은 말)에 성심성의껏 대답하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그녀에게 꽃다발을 선물한다. 하루는 부탁하다가 다른 날엔 할머니의 말에 동의하는 척하고 또 다른 날엔 애처롭게 애원한다. 양육비를 보내지 않는 전남편에게 매일 전화하면서 자괴감과 무력함을 느끼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그에게 전화해 음성메시지를 남긴다. 면접을 보러 다니는 와중에 아들의 생일 파티를 위한 준비를 잊지 않고 카풀과 차 렌트로 출퇴근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능하게 한다. 마케팅 최종면접을 위해 그동안 쌓아놓았던 호텔 룸메이트 마일리지도 거침없이 사용한다. 내가 이렇게 몇 년간 헌신했으면,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란 심보로 말이다. 그 일이 사실상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나쁜(?) 일이다. 가능한 모든 힘을 쥐어짜고 기용할 수 있는 자신의 인적자원을 이용한 결과, 쥘리는 호텔에 출입하지 못한 채 길거리에서 일자리를 잃는다. 과거 나를 위해 했던 일들이 현재 나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 됐다.
한 번쯤은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벌이거나 난동을 피우며 해결되지 않는 화를 표출할 법한데, 그녀는 묵묵히 벌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집중한다. 교통마비가 끝나기를 견디는 것처럼, 옆집 할머니가 마음을 바꾸길 기다리듯이, 최종면접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바라듯이, 쥘리는 끝까지 자신에게 올 긍정적 신호를 기대한다. 그 모습이 너무 간절해 안쓰러워 보이지만, 상관없다. 우린 그녀를 당연하게 응원하고, 쥘리는 모두가 예상했듯 합격 소식을 들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출퇴근이 전부인 <풀타임>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힘은 쥘리를 향한 관객의 진한 공감에 있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사실 달라지는 현실은 없다. 여전히 쥘리의 출퇴근은 난항일 거다. 아니 이젠 그 안전한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 그전보다 훨씬 빨리 일어나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아이들을 봐줄 사람도 찾아야 하고, 답답한 전남편에게 똑같은 음성메시지를 남기겠지. 하지만 쥘리는 끝까지 파업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전남편과 직장 중간에 위치한 파리 외곽에서 꿋꿋하게 두 아이를 키웠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니까. 쥘리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한다. 적당히 합리적이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사람이다. 나아가 가끔은 과한 요구도 나를 위해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보통 인간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이 곪아 터지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이 언제든 나의 현실이 될 수 있고,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해서 그 고통이 말끔하게 해결될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녀는 우리처럼 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으로, 보통의 삶을 치열하게 사는.
단단하게 잡고 있는 것들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나만 힘들고 나만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며 더는 나오지 않는 한숨을 토해내려 애쓰는 날도 있다. 쥘리의 일상이 그랬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넘어지거나 고꾸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나'를 위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현실에 맞춰 사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자기가 원하는 인생의 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희망적인 결실까지 얻었으니 해피엔딩은 당연한 결과다. 평범함이 위대함이 되는 건 쉽다. 물론 아찔하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을 용기를 갖게 한다. <풀타임>이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과 함께 쥘리를 달리게 한 건 그 대단함에 숨어있는 힘을 눈앞에 보여주기 위함이다.(영화 내내 들리는 소음과 어지러운 카메라 무빙도 같은 목적을 위해 달려왔다.) 따라서 첫 장면부터 관객의 무관심을 관심으로 바꾸는 힘엔 조금의 다급함도, 조급함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화무쌍한 현실을 견디는 나에게 작은 위로와 위안을 전달한다. 그리고 난 그게 참 반가웠다.
출처: 영화 <풀타임> 스틸컷 (다음)
자연스럽게 쥘리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곧 나를 위한 마음이 될 때, 마침내 영화는 그녀를 멈춰 세운다.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놀이기구 앞에서 새로운 출발을 앞둔 쥘리의 모습.
홀로 멈춰 있지만, 그녀는 이미 뛰고 있다.
또다시 자신이 가진 시간을 전부 다 꺼내놓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