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2-16 18:30:04
<역으로 가는 길을 알려줘> 영화 시사회 후기 - 외톨이의 유일한 친구들이 떠나간다면?
사야카에게 유일한 친구는 강아지인 루뿐이다. 둘은 넓은 들판이 있는 곳인 비밀 장소에 자주 간다. 사야카가 루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과 똑같은 외톨이라는 공통점에서 의미를 찾아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사야카는 등에 있는 심각한 피부 질환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도 왕따였고 루는 주인에게 버려진 개였다. 하지만 루가 죽게 되자 사야카는 루를 잊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날 사야카는 루와 닮은 개인 루스를 보게 되고 따라가게 된다. 사야카가 도착한 곳은 레이디버드라는 선술집이었는데 루스의 주인이 후세라는 할아버지란 것을 알게 된다. 루스가 루와 똑같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사야카와 후세는 친해진다. 사야카는 후세에게 기적과 하느님의 존재를 믿느냐라고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후세의 아들인 고이치로가 죽었는지 물어보는데...
죽는다는 게 과연 무엇일까?
만약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가 떠난다면?
하니엘의 철학적인 생각
어린아이에게 소중했던 존재들이 사라진다는 건 얼마나 큰 슬픔일까?
어린아이가 바라보는 죽음이란?
레이디버드라는 선술집을 운영하고 있는 후세는 고이치로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야뇨증으로 죽었다. 후세는 자신의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병원에 입원하기 전까지 죽은 아들에 대한 집착이 컸고 사야카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외톨이였던 사야카에게 유일한 친구란 루와 할아버지인 후세였다. 그러나 자신의 곁에 함께하던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사야카는 많이 슬퍼한다. 어린아이에게 소중했던 존재들이 사라진다는 건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필자가 이 영화를 보기에는 내 곁을 아껴주는 사람들도 언젠가 모두 떠나간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기에 삶은 유한하다. 그리고 사야카가 떠나가 버린 후세와 루를 기억하지만 되돌아올 수 없는 것을 알고 있는 어린아이의 심정이란 게 얼마나 슬펐을지 공감이 된다. 마찬가지로 후세도 죽은 자신의 아들을 돌려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야카가 루를 잃었을 때처럼 큰 상실감을 갖는다. 그렇기에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라도 소중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열차도 잡을 수 없듯이 떠나간 사람도 붙잡을 수 없다. 그래서 사야카는 어린아이지만 자신의 유일한 친구들이었던 후세와 루가 언젠가 사라진다는 것을 일찍 안 것이다.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바라본 친구들의 죽음이 이렇게나 안타까운 건지 나는 알게 되었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고 그때가 되면 나는 어린 나이에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사야카의 기분을 알게 될 것 같다.
일찍 외톨이가 되어버린 사야카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Relative contents
-
- 해명하지 않는 <그레타 툰베리>
오는 6월 17일 개봉을 앞둔 <그레타 툰베리>는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를 시작으로 해외 다수의 영화제뿐만 아니라 전주국제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구로국제어린이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들에서도 상영된 스웨덴의 15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현존하는 인물을 다룬 다큐멘터리인 만큼, 이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그레타의 모습은 어떤 부분이었을까. 2019년, 유엔 본부에서 열린 기후 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을 하며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레타 툰베리는 역대 타임지 올해의 인물 최연소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가 스웨덴의 환경운동가인 줄은 알았지만 어떤 일들을 해왔는지, 그녀의 명확한 행보는 알지 못했었다. 영화는 기후 변화 법안 마련 촉구를 위해 금요일마다 의회 앞에서 홀로 결석 시위를 하며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 For Feature)’을 외치던 평범한 소녀부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녀를 향한 반응은 갈리기 시작한다. '어떻게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니?'부터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라는 차가운 시선까지. 만약 그녀가 후자의 말대로 결석 시위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면 기후변화 대응 촉구 시위를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인 31만 명이 캐나다 몬트리올에 모이고 전 세계 106개국에서 청소년 기후 활동가들을 움직이도록 할 수 있었을까.
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영화에서 나의 눈에 가장 돋보였던 점은 그레타의 집요함과 섬세함이었다. 일정의 압박과 우호적이지 못한 여론 속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 때로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일으킬 정도로 가족들의 마음을 어렵게 만들지만 본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는 그레타의 모습에선 여느 전문가과 다름없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는 그레타를 둘러싼 논란에 해명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 그리고 그녀의 명성을 뒷받침해줄 전문성을 보여줄 뿐이다.
'유능한 환경운동가가 되려면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고 보기 싫어하는 행위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풍파를 일으키고 사람들을 열 받게 해야 되죠. 그러지 않으면 제 역할을 못하는 거예요.' 그린피스의 공동 창립자이자 시셰퍼드의 창립자인 폴 왓슨 선장의 말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한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이 다수에게 불편한 소리가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녀에 대한 이 기록물은, 환경을 생각하지 못했던 이들부터 자신만의 외침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까지 귀감이 되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그레타의 행동들이 설사 퍼포먼스라 할지라도 그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일으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생각만 많고 용기 없는 어른들보다 먼저 소리를 낸 그레타 툰베리에게 찬사를 보내며 앞으로의 행보를 응원하다.
**사진출처: 다음영화, IMDB
-
- 젊은 남성과 나이든 여성 엠마 톰슨의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
60대의 은퇴한 종교 관련 학문을 가르쳐온 낸시는 평생 규칙을 따랐고, 스스로 검열하며 살아왔다. 그런 그녀가 남편과 사별 후 어느 날 특별한 버킷리스트를 이루려 한다. 단 한 번도 섹스에 만족해 본 적 없었기에, ‘리오 그랜드’라는 젊은 남성의 퍼스널 서비스를 경험하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성장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대부분은 호텔 방 안에서 나이든 여성과 젊은 남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스펙터클한 비주얼이라던지, 서스펜스의 긴장감이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그들의 상황, 대화만으로도 묵직한 힘이 있는 영화다. 영화로 확인해야만 하는 내용을 제외하고, 그 밖에서 영화가 가진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싶다.
섹스 포지티브(Sex Positive)
남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탐구하고 당당하게 이야기 나누는 삶의 태도를 뜻하는 용어
이 영화에서 가장 주된 키워드이자 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궁금하고 해보고싶지만 누군가의 시선 그리고 스스로의 검열 속에 입 밖으로 꺼내기조차 민망하게 여겨지던 것들에 대해, 당신을 평가하는 것, 당신을 감시하는 것 모두를 내려 놓으라 말하며 관계 대신 춤과 샴페인을 권하는 리오처럼 영화는 관객에게 성적 탐구와 호기심에 대해 하나하나 이야기를 꺼내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제를 다루는 이 영화의 문법은 영상 언어로서 어떻게 작용할까?
1896년부터 2020년까지 175편 이상의 영화 클립을 분석한 니나 멘케스(Nina Menkes)는 2020년 2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섹스와 권력: 억압의 시각적 언어(Sex and Power: The Visual Language of Oppression)’라는 주제로 할리우드의 영화 기법이 여성 혐오 문화를 강화하기 위해 어떻게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는지에 대해 강연한다. 니나 멘케스의 강연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줄곧 사용되어 여성을 대상화하는 카메라 기술은 크게 5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해당 영화와 관련된 부분만 간략하게 적용하겠다)
1. 시점샷(POV)-남성 주체와 여성 대상
2. 프레이밍-신체의 일부를 부분적으로 보여주는 것
3. 카메라의 무빙-몸을 훑는 듯한 틸트, 패닝 그리고 슬로우 모션
4. 조명-3D로 비춰지는 남성과 2D 또는 판타지 조명으로 비춰지는 여성
5. 내러티브 포지션-서사의 흐름 밖 존재
사진 출처: <Brainwashed: Sex-Camera-Power> trailer
1번의 ‘시점샷' 같은 경우는 위 사진과 같이 시선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한다. 영화들은 줄곧 ‘관객-카메라-남성(행위자: Subject)-여성(대상: Object)’의 주체-대상의 시선을 고수해왔다. 또한 젊은 여성의 신체를 보여줄 때는 얼굴이 함께 나오지도 않게 가슴, 엉덩이, 다리 등 신체 일부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또한 대로는 패님, 틸트로 대상의 움직임보다는 누군가의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하다. 하지만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경우, 누군가의 몸을 누군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지 않는다. 또한 은은하고 희미한 조명이 아닌 명확하고 또렷하게 낸시와 리오를 동일하게 담아낸다. 이런 의미들에서 낸시가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 바라보는 모습을 전신으로 담은 카메라는 여성이 주체가 되어 바라보고, 현란한 조명과 촬영 기술 없이 담아냈기에 ‘영상 언어'로서 새로운 문법을 만들어내는 큰 역할을 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카메라 또한 개인의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또렷하게 바라본 덕분에 영화의 본질과 목적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그 힘을 가지고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판에서 영상 언어만큼 중요한 것도 배우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2회를 수상한 엠마 톰슨은 연기 40년 차에 처음으로 노출 연기를 한다. “할리우드 남성 관계자들은 내가 노출 연기를 하는데 이상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며 “현실 속 대부분의 여배우는 비현실적으로 말랐고, 보정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몸을 보는 건 익숙하지 않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미디어에서 진짜 몸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고 인터뷰에서 줄곧 말해온 엠마 톰슨은 이번 영화에 대해 “여성의 몸에 쏟아지는 사회의 기대 및 압박에 항상 맞서 왔다. 62 세의 나이에 옷을 벗고 촬영하는 건 힘들었지만, 자연스러운 내 몸을 보여줬다는 것은 이 영화의 성과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연기 경력에 상관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쉽지 않았을 결정에는 여성 감독과 여성 제작진으로 구성되어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장면들을 만들어냈기에 가능했을 거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 엠마 톰슨은 ”리허설을 하며 우리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내 몸과 서로의 몸에 대해 좋아하는 점, 싫어하는 점, 불안한 점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점점 편안해졌다.”라고 말했으며 감독 또한 “이야기의 본질적 특성상 노출 장면을 촬영하는 데 있어 서로 계속해서 소통하고 상의하고 실험하며 발전시켰다.”며 작업 과정에 대해 직접 말한 바 있다. 최근 많이 알려진 벡델 테스트 외에, 더 리프레임 프로젝트(The ReFrame Project)와 영화 전문 사이트인 IMDB Pro와 파트너쉽을 통해 데이터를 분석하여 제작진 중 절반 이상 여성을 고용한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수여하는 ‘리프레임 스탬프'는 이미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 그레타 거윅의 <레이디 버드>, 에머랄드 펜넬의 <프라미싱 영 우먼>등의 작품에게 제공된 바 있다.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또한 ‘리프레임 스탬프'를 획득하며 영화 산업계 전반에 걸쳐 카메라 안팎의 여성을 위한 기회를 확대하는데 큰 몫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나이든 남자와 젊은 여자를 보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나이든 여자와 젊은 남자가 함께 있는 모습에는 익숙하지 않다. 특별한 부류의 여성이 아니고, 젊고 비현실적인 몸매의 여성이 아니고, 자유롭게 성적 탐구를 할 것 같지 않은 평범한 여성에 대해 명확한 내러티브와 그에 맞는 또렷한 카메라의 시선이 함께 이루어졌기에 개인의 섹슈얼리티에 집중하고, 젠더에 대해 탐구해 가는 새로운 영상 언어의 역사를 쓰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 초청을 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
- 나이 듦과 돌봄, 상실과 사랑
매료될 수밖에 없는 낯선 언어의 음률, 따뜻함과 차가움이 공존하는 감성, 무심하면서도 함축적인 메시지. '프랑스 영화' 하면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입니다. 동시에 프랑스 영화의 고유한 느낌이 그대로 담긴 ‘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하는 묘사이기도 하죠. 특별한 스펙터클 없이 프렌치의 일상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여러 가지 메시지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어느 멋진 아침>입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어느 멋진 아침>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어느 멋진 아침>은 2023년 9월 6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어느 멋진 아침
One Fine Morning
<어느 멋진 아침>은 건강이 악화된 아버지 '게오르그'와 사춘기가 시작된 딸 '린'을 보살피는, 딸이자 엄마인 '산드라'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게오르그'는 1년 전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일할만큼 건강했으나, 지금은 혼자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프리랜서 통역가인 '산드라'는 일하다가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아버지를 챙기고 있죠. 요양원을 알아보고, 아버지의 집을 정리하고, 병문안을 가고... 예전과 다른 아버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벅차지만, 보호자로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은 끊이지 않고 이어집니다. 그러던 중 오랜 친구 '클레망'이 새로운 사랑으로 그의 일상에 스며듭니다.
⊙ ⊙ ⊙
'산드라' 역을 맡은 배우 레아 세이두는 이번에도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는 짙은 눈빛으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그의 존재가 뇌리에 박혔던 건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과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에서였는데요. 그때만 해도 설익은 청년의 풋풋한 느낌이 강했으나, 그는 어느새 아이 엄마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만큼 성숙해졌습니다. (그새 실제로 아이를 낳기도 했죠.) 아래에서 이야기하겠지만 이 작품이 나이 듦에 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라서 그런지, 저도 모르게 자꾸만 그의 예전과 지금 모습을 번갈아 떠올리게 되더군요. 오랜 시간이 지난 건 아니더라도 그때나 지금이나 레아 세이두는 참 변함없이 멋진 배우입니다.
이 작품은 삶을 구성하는 면면을 직구처럼 정직하게 묘사합니다. 그중에서도 영화가 가장 집중하는 삶의 측면은 바로 나이 듦과 돌봄입니다. 미아 한센-러브 감독은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병든 아버지 '게오르그'와 딸 '산드라'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부모의 나이 듦을 지켜보는 자식의 고통이 담담하면서도 더 아리게 다가오죠.
영화를 보면서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이석원 작가의 책 『2인조』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만 같은 기분에 더럭 겁이 나고 슬퍼지기도 하는 순간들. 결국 그런 날들이 하나둘 늘어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자식의 삶이기에, 팔순이 넘은 부모와 보내는 하루하루는 나의, 아니 모든 자식들의 마지막 화양연화다. (이석원, 『2인조』)
<어느 멋진 아침>은 바로 이러한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내가 알던 엄마가 아닌 것만 같은" 순간들을 감당하는 "자식의 삶"을 말이죠. '산드라'는 병든 아버지를 볼 때마다 괴로워합니다. 기억 속 아버지와 눈앞의 초라한 아버지는 어쩐지 같은 사람 같지가 않습니다. 병에 갇혀 끝없이 가라앉는 아버지보다 서재에 켜켜이 꽂혀있는 아버지의 책들이 오히려 진짜 아버지 같다고 느끼죠. 아직 아버지의 대소변을 직접 봐줄 자신도 없는데, 그 맘도 모르고 아버지의 병세는 빠르게 악화됩니다.
돌봄은 명백하게 주체와 객체가 나뉘는 행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당사자의 주체성이 등한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나이 듦의 당사자이자 돌봄의 객체인 '게오르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게 합니다. 요양원으로의 이송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게오르그‘에게 이송에 동의하느냐고 반복적으로 질문하던 담당관과 이게 ’동의‘가 맞느냐고 투덜거리던 '게오르그'의 모습이 저는 좀처럼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어느 멋진 아침'은 '게오르그'가 쓰려던 자서전의 이름입니다. 인간의 지혜를 연구하는 철학자였던 그는 뇌의 기능이 망가지는 병에 걸리자, 자서전에 자신의 상태를 "뜻밖의 신체 상태에 갇힌 죄수"라고 적었습니다. 나이 듦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돌봄의 주체인 자식들뿐만이 아닙니다. 돌봄의 객체인 부모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 변화에 적응해야 하죠. 병든 몸에 가둬진 부모의 영혼을 보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나이 듦의 당사자를 돌봄의 객체에서 행위의 주체로 다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 보게 되는 지점입니다.
⊙ ⊙ ⊙
이 영화는 이러한 소재를 통해 삶을 구성하는 상실과 사랑에 관해서도 말합니다. '게오르그'는 자기 자신의 상실을 겪고 있고, '산드라'는 아버지의 상실을 겪고 있습니다. ‘산드라’는 한편으로 '클레망'과의 관계에서 상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산드라'는 상실했고, 상실하는 중이며, 앞으로도 그의 삶에 상실은 계속될 겁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필히 무언가 얻은 적이 있어야만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앞의 말은 이렇게도 쓸 수 있죠. '산드라'는 사랑했고, 사랑하는 중이며, 앞으로도 그의 삶에 사랑은 계속될 거라고요.
삶은 흐릅니다. 때로는 잔잔하게 흐르고, 때로는 요동치듯 흐릅니다. <어느 멋진 아침>은 그런 ‘산드라’의 삶을 묵묵히 지켜보는 영화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볼 때, 어느 하루를 콕 집어 "참 멋진 아침이었다."라고 말할 만한 날은 흔치 않습니다. 아주 먼 훗날, 상실과 사랑이 혼재했던 지난 삶을 되돌아보면서야 비로소 "어느 멋진 아침들이었지."하고 말할 수 있는 법이죠.
Summary
여덟 살 난 딸, 투병 중인 아버지와 파리의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산드라는 어느 날 오랜 친구 클레망을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일과 가족, 사랑 사이에서 삶은 계속되고 때로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 하지만 아침은 여느 때와 같이 찬란하게 찾아온다.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미아 한센-러브
출연: 레아 세이두, 멜빌 푸포, 파스칼 그레고리 외
-
- 댓글이라는 시대의 거울
특종에 혈안이 된 기자,상진이 있다. 그는 대기업 만전이 엮인 일이라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취재를 감행한다. 하지만 그의 기사는 인터넷상에서 오보로 판명되어 그는 회사에서 축출된다. 하지만 그는 이상하리만큼 만전의 일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접근하는데, 자칭 댓글부대라고 주장하는 일명 찻탓캇이 그의 삶에 들어와 그를 휘젓고 간다. 찻탓캇은 인터넷의 댓글이란 팩트체크가 되지 않은, 누군가의 헛소리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그에게 여론을 뒤집는 검은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검은 세력의 선두에 만전이 있다는 사실과 함께.
1. 아무도 모른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물타기란 당연한 현상이다. 물타기를 해서라도 여론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는 현재의 세상은 여론이 곧 돈이고 권력이다. 그 지점을 긍정적으로 이용하는 분야가 마케팅일 테고, 부정적으로 이용하는 쪽이 댓글로 하는 여론 조작일 것이다. 인터넷 세상 속 소문은 얼굴을 대면하는 소통보다 퍼지는 속도가 빠른 데다가 짜깁기했을지언정 일말의 증거가 있기 때문에 소문의 진위 여부를 제대로 알기가 힘들다. 진짜인 것처럼 만드는 방법은 따로 있다. 사실의 진위 여부보다 진짜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이 영화는 댓글 속에서 오가는 소문이 진실로 인식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든 스킬을 다 오픈하는 영화이다. 여론을 만드는 분야에서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는 올드미디어의 기자인 상진은 인터넷 속 여론을 그저 헛소리로 치부하지만 그는 그런 헛소리 때문에 직업을 잃는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진실이 올드미디어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는 댓글 속 세상과 자신이 속해 있던 세상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 버린다. 그는 인터넷 속 만전에 대한 음모론에 빠져 헛소리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만전의 음모는 존재하는 것일까.
2. 상진의 앞날은
'완전한 진실보다 거짓이 섞인 진실이 더 진짜 같은 것처럼'
상진은 수많은 기사를 써왔지만 그가 한 팩트체크는 증거가 딱히 있었다기 보다는 사람의 증언에 기대어 기사를 썼기 때문에 조금 위험한 지점이 있었다. 사람이 하는 말은 간사하게도 바뀔 수 있었고, 그가 몸담고 있는 미디어는 진실을 파고든다는 이미지로 살아가는 업종이기에 이런 허술한 팩트체크 능력은 그에게 독이었다. 완전한 진실을 외치는 올드 미디어보다 '이거 진실인데 아니면 어쩔 수 없지'의 마인드로 올리는 인터넷 글, 댓글들은 파급력이 훨씬 세다. 오히려 그글을 접하는 상당수가 한정적인 정보만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데다가 팩트체크에 대한 대단한 의무와 책임감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찻탓캇은 얼굴을 들이밀었기에 실재로 존재하는 댓글 부대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증언 속 팹택 등의 동업자들은 정말 있는 것일까. 내 생각엔 단 한 명의 인물로서의 팹택이 있었다기 보다는 수많은 댓글러 속의 유형 중 팹택 같은 유형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댓글 속에서 의견을 내는 유형이 다 다른 만큼 소문이 퍼지기를 부추기는 유형도 있고, 한참 동조하다가 일이 잘못되면 갑자기 양심선언하는 부류도 있는 것 같다. 찡뻤킹 처럼 말이다. 여러 유형의 댓글 이용자들을 한 사람의 캐릭터로 형상화한 건 아닐까. 결국 찻탓캇, 찡뻤킹, 팹택 등은 댓글을 이용하는 사람들 모두를 대표하는 캐릭터는 아닐까.
그만큼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는 개미들은 여기저기 숨어있다는 뜻이겠지.
상진은 무슨 억하심정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만전에 대해 집착적으로 파고든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어떤 결론도 제시하지 않는다. 상진이 만전을 이겼는지, 만전에 먹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게 하기 위해 댓글러들의 방식을 이용하는 모습에서 올드미디어보다 댓글 하나의 파급력이 강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이 속해있던 올드미디어의 방식을 버렸구나 하고 느꼈다. 그렇게 되면 그가 그렇게 외치던 기자의 정체성은 사실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받는 것이 전부였던 것인가. 그리고 이제 그는 만전을 향한 독립적인 투쟁을 시작한 것인데, 찻탓캇의 얘기를 곱씹어보자면, 왜 그가 만전의 계략에 빠진 것만 같지 싶었는지 모르겠다. 만전은 왠지 상진이 이 길로 빠지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 이거 음모론인가.
이렇게 음모론은 한 개인의 마음에 바이러스처럼 자라난다. 댓글은 이런 심리를 자극하는 매개체다. 그 안에 일말의 진실이 담겨있을지 모르니 우리는 모두 자칭 탐정이 되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
-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결국 구원자의 길을 택하다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성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운이 필요하다. 그건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열심히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얻어볼 수 있는 일종의 보너스 점수 같은 것이다. 그렇게 운이 조금 따라줘야 자신이 원하는 운명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운이 들어오는 때를 알기 위해 사주나 점을 보고 기도를 한다.
그런 식으로 미래를 알게 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우리는 그렇게 좋은 시기나 불운의 시기를 듣고 해당 시기가 되면 그것에 맞추어 행동한다. 마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는 것처럼 준비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진짜 사주나 점에서 들었던 것과 같이 비슷한 결과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그냥 넘기지 못한다. 자꾸만 신경 쓰고 또 신경 쓰면서 좀 더 나은 미래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영화 <듄> 시리즈의 주인공 폴(티모시 샬라메)은 미래에 대한 환영을 본다. 꿈속에서 혹은 스파이스가 몸속으로 들어갔을 때마다 특정한 장면들을 보고 그것이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좋은 모습, 나쁜 모습이 모두 있는 그 환영은 폴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그런 미래의 비전이나 신호에 예민하다. 마치 자신들이 느끼는 혹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미래의 예언이 모두 실현될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그리는 미래의 모습에 의해 각기 다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 감정 - 폴 무앗딥 우슬 아트레이데스의 두려움
폴은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폴, 무앗딥, 우슬, 아트레이데스 같이 그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많다. 그만큼 그에게 많은 짐이 주어졌다고 볼 수 도 있다. 몰락한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복수를 하고 그 이후 다시 가문을 일으킬 때까지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척이나 많다. 게다가 그는 사막에 사는 일부 프레멘들에게 예지 된 구원자일 거라는 기대도 받는다. 그가 어렵게 살아남은 순간부터 그는 자신의 가문에게도, 프레멘들에게도 구원자가 되라는 보이지 않는 강요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꿈에서 미래를 본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결말이 찾아오는지. 미래의 모습에서 전쟁을 보고 민중들의 고통을 본다. 그건 결국 자신이 전면에 나서 복수를 하고 우주 전쟁들 벌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자신이 예지자로서, 조직의 영웅이 되어 전쟁에 참여하는 것에 굉장히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건 자신이 가져올 질병과도 같은 것이다. 그는 자신으로 인해 발생한 그 미래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일종의 질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폴은 분명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영민하고 용기가 있다. 무엇보다 모든 일에 침착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안다. 이야기 속에 폴이 등장할 때마다 그가 좋은 리더라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한다. 그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까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이다. 그런 마음과 감정을 느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가 좋은 영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그는 이야기의 후반부에 어떤 계시를 받고 전면에 나선다. 그리고 그가 예지에서 본 여러 상황들을 미리 예측하면서 자신만만하게 사람들을 전쟁 속으로 이끈다. 모든 사람들이 열광하며 그의 뒤를 따르지만, 그건 결국 파멸의 한가운데로 모두를 던져놓는 건 아니었을까? 폴이 느끼고 있던 그 두려운 상황처럼 말이다.
두 번째 감정 - 레이디 제시카의 두려움
레이디 제시카(레베카 퍼거슨)는 아들 폴을 지키려 애쓴다. 그녀는 암막에서 모든 가문을 조종하고 있는 베네 게세리트다. 베네 게세리트는 아주 오래전부터 프레멘들에게 언젠가 구원자 리싼 알가입이 나타나 모두를 구원할 거라는 소문을 퍼트렸다. 마치 종교적 믿음처럼 그것은 남부 지역의 프레멘들에게 신앙이 되었다. 그 상황 속에서 등장한 폴은 그들에게 거의 완벽한 구원자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코넨 가문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은 외지인, 그리고 사막에서 살아남을 정도의 정신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폴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고 실제로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증명하고 있었다.
레이디 제시카는 자신의 아들을 잃을 거라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두려움은 <듄> 1편에서 폴이 헬렌 모히암(샬롯 램플링)에게 능력을 시험받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제시카는 아들이 시험에 통과하지 못할까 봐 손을 벌벌 떨며 기도한다. 이 두려움은 파트 2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녀는 프레멘들이 머무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바로 프레멘들의 대모가 되기 위해 일종의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다.
그녀는 신비한 물을 마시고 어떤 비전을 본다. 죽음에서 돌아온 그녀의 모습에는 단호함이 있다. 그 단호함을 만드는 건, 자신의 아들인 폴을 살려야겠다는 위기의식이다. 아들을 진짜 예언된 영웅으로 만들지 않으면 폴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제시카는 아주 단호하게 아들에게 영웅이 되는 길을 가라고 이야기한다. 미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것이 깨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이 두려움의 큰 축을 지탱하고 있다. 폴과 제시카 모두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결국에는 그런 미래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세 번째 감정 - 챠니의 두려움
챠니(젠데이야 콜먼)는 사실 구원자 혹은 영웅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는 폴이 처음 프레멘 집단에 들어올 때부터 그를 달갑게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는 적응 능력과 노력하는 모습 그리고 믿을 수 있는 그의 행동을 보면서 조금씩 마음을 연다. 챠니는 폴에게 사랑을 느끼고 두 사람은 연인이 되지만 챠니에게 폴은 구원자가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일 뿐이다. 그가 프레멘 집단에 인정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는 폴이지만 챠니에겐 그저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폴이 가진 두려움에 대해서 챠니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을 괴롭히는 하코넨을 이겨내려면 결국 폴이 원하지 않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챠니도 승리를 위해 같이 공격을 하길 원하지만 폴이 본격적으로 신적인 구원자의 행동을 보이자 챠니는 두려움을 느낀다. 사랑하는 폴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녀의 온몸을 감싸기 시작하고 그건 반항으로 이어진다. 모든 프레멘이 폴을 구원자로 인정했지만 챠니만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영화 후반부 챠니의 눈빛은 실망감으로 가득하다. 결국 폴을 잃어버렸다는 상실감, 구원자의 신화에게 연인을 빼앗겼다는 분노. 챠니의 두려움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에 그녀는 밖으로 뛰쳐나간다. 폴의 복수가 완성되어 가는 모든 과정에서 챠니는 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다. 그건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동정심과 분노가 섞여있다. 어쩌면 챠니의 이 복잡한 감정이 앞으로 이어질 다음 이야기에서 폴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장 폴을 이해하고 또 사랑하는 챠니는 폴의 미래를 그렇게 받아들인다.
영화 <듄 파트 2>는 장엄한 스페이스 오페라다. 이번 파트 2에서 주인공 폴과 그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모두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결국 구원자의 자리에 올라서는 폴은 자신이 그 두려움을 직접 감당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만든다. 영웅이 짊어져야 할 짐이 꽤나 무겁게 느껴진다. 그의 두려움은 뛰어난 미장센과 좋은 상상력으로 구성된 세계에 그대로 담겼다. 여기에 영화음악을 담당한 한스 짐머의 웅장한 음악이 그 장엄한 분위기를 더 고조시킨다.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폴 아트레이데스는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앞으로 걸어갈 길이 그가 꿈속에서 보던 장면들이 그대로 이어질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함으로써 다른 결말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암울한 미래를 보고서도 결국 그 길을 선택한 폴의 결정을 보고 나면 그다음 이야기가 이내 궁금해진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
- 레슬리 영혼 구하기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레슬리에게>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레슬리에게>는 2023년 11월 29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레슬리에게
To Leslie
To. 레슬리 씨
안녕하세요, 레슬리 씨. 당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레슬리에게>를 보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영화의 제목 때문인지, 아니면 자꾸만 당신에게 마음이 동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영화를 감상한 이후 줄곧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이렇게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는 참으로 기구하더군요. 복권 당첨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확천금의 행운을 얻었지만, 6년 후 당신에게는 단 한 푼의 돈도 남지 않았지요. 하지만 스스로 자초한 불행이기에 마냥 기구하게 보이지만은 않았습니다. 다 타버린 담배를 끝까지 부여잡고서 마지막 한 모금을 쥐어짜내던 당신의 모습은 안쓰러웠으나, 안쓰럽지 않았어요.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만 달러라는 돈을 모두 써버린 것도 모자라 돈을 벌 생각도 없이 술만 마시는 당신의 모습은 전혀 좋게 보이지 않았죠. 게다가 6년 만에 만난 아들이 부탁한 것은 딱 하나, 술을 입에 대지 말라는 거였잖아요. 그러나 당신은 아들 친구의 돈을 훔쳐서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이러다가 제임스 씨가 당신을 떠나버리는 것은 아닐까 불안했어요. 그리고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더군요. 그렇게 당신은 유일한 생의 동아줄이었던 아들에게도 완전히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아들을 버리고 떠났던 그 마을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을 때, 당신이 짓고 있던 표정이 떠오릅니다. 부끄러워 보이지도, 주눅 들어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호전적이었죠. 돈이 있건 없건, 아들을 버렸건 아들에게 버려졌건, 고개를 빳빳이 드는 당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도 당신을 향한 나의 마음은 부정적이었습니다. 호전적인 당신의 에너지는 오직 술에서 나온 거니까요. 겉과 속이 같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뿌연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 알코올의 힘을 빌려서라도 그 자욱한 안개 속에 평생 머무르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요.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안갯속이 현실보다 더 나았다는 걸 잘 압니다. 그런데도 제 마음에는 당신을 향한 연민보다는 질책이 더 많이 차올랐습니다.
내가 당신의 아들이었더라도 나는 분명 제임스 씨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겁니다. 옳지 않은 선택을 한 당신을 떠났겠지요. 본인에게서 시작된 문제이므로, 해결도 스스로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을 겁니다. 세상 탓만 하는 것은 피해의식이라고 치부하고, 결국은 회생하지 못하겠다 생각했을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모텔 직원 스위니 씨 곁에서 당신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술의 세계로 도망치기를 멈추고, 침잠하기를 그만두고, 다시 일어서기 시작하는 당신을 보았죠. 못마땅하던 마음은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맘속으로 당신을 마냥 비난만 하고 있던 제가 못나게 느껴지더군요. 저는 왜 스위니 씨처럼 당신의 의지에 지지라는 바람을 불어넣어 줄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게다가 나는 끝까지 당신을 믿지도 못했습니다. 스위니 씨와 의기투합하여 식당을 차린 그날, 당신은 로열 씨의 품에서 술병을 몰래 꺼내 그 향을 맡았지요. 나는 당신이 그 술을 마시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러지 않았죠.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불씨가 없으면 불은 절대 붙을 수 없는 법임을 잊고 있었습니다. 스위니 씨는 분명한 지지자였지만, 레슬리 씨의 영혼을 구한 것은 바로 당신이었어요.
편협한 옳고 그름의 기준에만 사로잡혀 당신을 괜찮지 않은 사람이라 감히 판단해서 미안합니다. 나는 마음이 아픈 당신을 이해할 만큼의 아량조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당신을 믿지 못한 저는 어쩌면 당신보다 더 괜찮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답도 없는 옳고 그름만을 따지다가 못난 외골수로 늙어버릴까 문득 겁이 나네요.
"영화 같은 삶은 없다"는 로열 씨의 말을 기억하시나요? 저는 이 말에 반대표를 던집니다. 영화는 우리의 삶이고, 삶은 모두 영화지요. 영화가 있기에 저는 당신과 만났고, 당신을 만났기에 제 삶은 조금 달라질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가 사는 세상에서 또 다른 레슬리 씨를 만난다면, 꼭 당신을 떠올리겠습니다. 그때는 그를 함부로 재단하여 안개 속으로 밀어 넣기보다는 기꺼이 도움으로써 안개 밖으로 손잡고 빠져나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당신의 삶에는 때때로 안개가 스미겠지만, 그것은 금세 왔다 떠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부디 행복만 하시길.
P.S. 당신을 이 세상에 선보인 배우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에게 찬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카메라에 그의 얼굴이 담길 때마다 당신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공간을 뒤트는 부탁이지만, 꼭 들어주시길 바라봅니다.
From. 방자까
Summary
술에 빠져 수억의 복권 당첨금까지 잃은 레슬리는 몇 년 후, 사이가 틀어진 아들 제임스와 재회하지만 달라지지 못한 모습 탓에 그와 다시 멀어진다. 그런 레슬리에게서 과거를 떠올린 모텔 주인 스위니는 레슬리에게 모텔 청소부 일을 제안하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마이클 모리스
출연: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오웬 티그, 마크 마론
-
- ? 실화 서울의 봄 - 이 영화에 담긴 감정 ?
-
?안녕하세요, 레빗구미입니다. 오늘은 '서울의 봄'이라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이 영화는 1212 사태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인 사건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
? 영화는 전두광과 이태신이라는 두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감정의 격동을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전두광의 탐욕과 이태신의 분노, 그리고 국민의 허탈감까지, 이 영화는 다양한 감정을 깊이 있게 탐구합니다.
? 황정민과 정우성의 연기는 각각의 캐릭터를 더욱 돋보이게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군사반란과 그로 인한 국민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 이 영화가 갖는 감정적 가치를 느껴보고 싶으시다면, '서울의 봄'을 꼭 관람해보세요. 감독 김성수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여러분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입니다.
?️ '서울의 봄'에 담긴 감정들을 직접 경험해보세요. 영화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으시다면, 저희 채널을 구독하고 다음 리뷰를 기다려주세요! ?
-
-
- 영화 <듄: 드리프터> 티저 예고편
최강의 질주 액션!
생존을 위한 사투가 시작된다!우주를 수호하는 제미니 부대는 그레이 리더의 지휘 아래 에레보스 우주 전투에 뛰어든다.
간단한 보호 작전인 줄로만 알았던 미션은 어마어마한 대전투로 드러나고 설상가상,
제미니 부대는 모두 전멸하고 '아들러' 와 '헤이즐'의 함선은 어느 행성에 불시착하게 된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함선과 희박한 산소 그리고 그들을 추격하는 어둠의 그림자가 숨통을 조여오는데...
-
- 영화 <한여름밤의 재즈> 메인 예고편
어느 화창한 여름 날, 휴양 도시 뉴포트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그들을 반기는 낭만 가득한 여름 바다와 감미로운 재즈 선율.
루이 암스트롱, 마할리아 잭슨, 셀로니어스 몽크, 척 베리, 아니타 오데이…
해가 지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재즈 페스티벌의 막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