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3 12:56:57
[JIMFF 데일리] 같은 땅에 발붙인 마음
영화 <나의 여신> 리뷰
같은 땅에 발붙인 마음
영화 ‘나의 여신’ 리뷰
감독] 최자영
출연] 손수현, 윤선우
시놉시스] 서울의 한 사립대에서 교수 임용을 준비하는 무속연구자 이선호. 세 번 연속 교수 임용에서 탈락하자, 새로운 연구 대상을 찾아 제주도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형 문화재 소리를 듣는 여자 심방(무당) 안해리를 만난 선호는 그녀를 연구하기 위해 모영리당 소미로 들어가게 된다. 해리는 그런 선호에게 점점 마음을 연다.
***
어린 시절 비디오를 틀면 호환, 마마보다 무섭고 어쩌고저쩌고하는 인트로 영상이 나왔다. 불법 비디오를 시청하다가 비행 청소년이 될 수 있다는 경고 영상인데, 지금 보니 좀 어이없을 만큼 개연성이 없다. 아무튼 경계심을 기르는 목적의 영상이다 보니 호랑이가 나오고 무당이 옷자락을 펄럭거리는 그림이 좀 무서웠다. 그게 무당에 대한 내 첫 기억이다.
무당을 찾아가 신점을 보거나 굿을 한 적이 없음에도, 무당의 얼굴은 내게 다양하게 추가된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소화의 말간 얼굴로, 홍칼리 작가의 무당 일기 에세이 ‘신령님이 보고 계셔’로… 그리고 지금 여기, 영화 ‘나의 여신’이 있다.
‘나의 여신’ 주인공 해리는 무당이 아니라 심방으로 불린다. 제주도에서는 무당 대신 심방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이다. 심방을 따르면서 악기 연주, 제물 진설, 각종 심부름을 하는 도제를 소미라고 부른다. 내게는 생소했지만, 어감이 예쁜 말들이었다. 단어만큼이나, 그들을 담아낸 영화 또한 마음에 쏙 들어왔다.
우는 너를 다 태우는 버스가 되고 싶어
심방과 소미들은 전형적인 무당처럼 보이지 않는다. 긴 머리를 풀어 헤친 해리의 무심한 표정, 타투가 새겨진 근육질 팔로 북을 치는 ‘계석’, 새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미영’은 얼핏 멋진 오리엔탈 밴드처럼 보일 정도다. 귀신의 기척을 느끼는 것도 “스펙”이라는 말이나 비트코인 같은 단어도 거침없이 입에 올리는 “MZ세대”다. “버스가 되고 싶어 빵빵!”하고 노래 부르며 웃는 모습은 해맑기까지 하다.
한편 많은 이들이 해리가 보통 무당이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해리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도 뿜어낸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는 흰옷을 입은 해리가 바다로 걸어가는데, 단순한 행위임에도 기묘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붉은 옷을 입고 기어가며 길흉을 점치는 모습 또한 그렇다. 신과 인간의 중재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처럼 보인다.
더없이 인간 같아 보이다 또 더없이 신 같아 보이던 해리가 정말 심방, 인간과 신의 중재자 같다고 느껴졌던 건,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인 마음이 담기는 순간들이었다. 웃고 울고 만나고 헤어지고 배우고 가르치고…
인간, 신, 인간과 신의 중재자. 오묘한 경계가 모두 해리의 안에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람의 마음이고,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신의 조화일까? 보는 이마다 답이 다르겠지만, 끌어안는 존재가 신이고 안기는 존재가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리가 말갛게 웃으며 부른 노래. 나는 그 경쾌한 노래에서 해리의 경계를 읽는다. “너의 모든 슬픔의 정류장에 빼놓지 않고 정차하는, 우는 너를 다 태우는 버스가 되고 싶어!” (신승은의 노래 ‘헝’) 때로는 간절히 빌고 때로는 무너져 우는 존재인 인간, 그를 다 태워 가는 버스 같은 신. 그리고 그 버스가 되고 싶은 마음으로 정류장을 찾아다니는, 버스 기사 같은 존재인 심방을.
두 세계의 융합일까 침범일까
심방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에는, 또 한 축의 사람들이 있다. 무당을 연구해서 논문을 쓰려는 민속학자들이다. 해리와 선호의 만남은 어쩌면 종교와 세속의 대통합 같기도 하고, 잘못된 만남 같기도 하다.
정확한 근거와 문헌을 바탕으로 논문을 써야 인정받는 학술의 세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줄”이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무속의 세계. 성당에 다닌다는 윤 교수나, 굿판을 믿지도 않는 선호가 그 세계를 평가하고 재단하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이는 두 세계의 융합일까, 아니면 침범일까?고민하다 보면 우리 사는 세상이 과연 두 세계이긴 한 건지 의아하다는 생각이 따라온다.
어쩌면 이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세계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세계를 이분하는 시선이야말로, 어떤 것도 융합할 수 없는 시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애초에 융합하거나 침범할 두 세계가 존재하기는 했던 것일까? 무속의 세계는 예부터 민초의 마음 바로 곁에 있었다. 풍요를 바라는 마음, 무운을 간절히 비는 마음,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마음… 그 바로 옆에. 우주 너머 아스라이 반짝이는 마음이 아니라, 바로 여기 같은 땅에 발붙인 마음이었다.
마음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것
영화에서도 교수가 선호에게 “무당과 연애하지 마라”고 말하고, 소설 ‘태백산맥’을 봐도 그렇지만, “무당과의 관계”란 예부터 참 수많은 말에 휩싸여 있다. 거기에는 무당의 힘에 대한 동경과 공포, 금기에 대한 이중적인 욕심이 스며 있다. 금기 아래 보호받고 싶은 마음과 금기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
각양각색의 시선이 스며 있지만, 공통점은 무당을 볼 때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보기보다 능력을 갖춘 존재라는 점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이 영화 안에도 ‘유네스코 심방’이 별명일 만큼 용한 해리의 무속 능력에 초점을 두고 해리를 주목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심방이 우리에게 삶을 다해 던지는 메시지는 그렇지 않다. 심방은 예술과 위로의 영역에 서 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행위의 힘을 아는 존재들이다. 서로 나란히 서서 마음이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주하는 것. 모든 종교가 인간을 그렇게 다독이는 일을 하고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무속의 한 장면을 통해 그 마음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준다.
바로 서우젯소리 장면이다. 실제 이 영화의 자문을 맡은 제주 큰굿 무형문화재 보유자 서순실 심방까지 모두 출연하여 함께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장면으로, 최자영 감독의 표현을 빌자면 “관객에게 보내는 선물 같은” 순간이다.
서우젯소리란 제주도의 무가인데, 널리 알려지면서 여흥이나 노동요 목적의 민요로도 자리 잡았다고 한다. 굿판에서도 마지막에 모두가 함께 부르는 노래. 게다가 이 영화에서는 피아노를 얹어, 그 어디서도 들어볼 수 없는 특별한 버전으로 완성된, 화합의 노래다.
오래전 들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까지 공부에 공부를 거듭했던 최자영 감독의 시간이, 최근 출간된 에세이에 촬영을 마치고도 “왜인지 서러움을 잊을 수 없”다고 쓴 손수현 배우, 선호의 마음을 깊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던 윤선우 배우, 관광지 제주 이면에 슬픔의 역사도 있음을 말하며 눈을 빛내던 황동희 배우 등 배우들의 정성과 노력이, 영화를 만든 모든 이들의 공이 서우젯소리에서 함께 원을 그린다.
둥글게 도는 서우젯소리 장면을 보며, “너의 모든 슬픔의 정류장에 빼놓지 않고 정차하는, 우는 너를 다 태우는 버스”를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리가 부르던 노래를 끝까지 이어 불러본다. “두통은 우리 집에 두고 가 내가 이따 가서 치울게!”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시간표
‘나의 여신’
2022-08-12 19:30
메가박스 제천 3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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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14 16:30
CGV 제천 2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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