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3-07 08:41:13
<더 배트맨> 자기 자신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탐정
<더 배트맨>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지난 2년간 '알프레드(앤디 서키스)'의 조력을 받고 '제임스 고든 경위(제프리 라이트)'와 협력하며 어둠 속에서 고담시의 범법자들을 응징해 온 '배트맨/브루스 웨인(로버트 패틴슨)'. 그는 고담 시장 선거를 앞두고 수수께끼 킬러 '리들러(폴 다노)'가 연쇄 살인을 벌이기 시작하자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리들러가 남긴 단서를 쫓아 '캣우먼(조 크라비츠)', '펭귄(콜린 파렐)', '카마인 팔코네(존 터투로)'를 차례대로 만나며 증거와 정황을 파악하던 배트맨. 그러나 수사를 계속할수록 그는 모든 증거가 자신과 자신의 부모님의 가려진 과거를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처럼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는 가운데, 배트맨은 개인적인 복수와 공적인 정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팀 버튼의 <배트맨>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또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세계관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관객들과 함께 한 배트맨. 이처럼 슈퍼 히어로의 대명사로 통하는 배트맨이지만, 사실 그의 역할은 일반적인 슈퍼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과는 달랐다. 그간 배트맨 영화는 배트맨/브루스 웨인만큼이나 그의 빌런들에게 적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쏟아 왔다. 실제로 펭귄과 베인, 라스 알 굴 같은 수많은 캐릭터들은 지금도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 있으며, 특히 그의 숙적인 조커의 경우에는 단독 영화로도 흥행과 비평 양 측면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바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전까지의 배트맨 영화가 하지 않았거나 미처 못했던 일을 대신하는 맷 리브스 감독의 <더 배트맨>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조커>(2019)의 그림자가 진하게 느껴지는 가운데, 다채롭게 장르를 바꾸어가며 영웅이기 이전에 한 인간인 2년 차 배트맨의 내면과 심리를 진득하게 풀어내는 <더 배트맨>은 그야말로 독보적인 작품이기 때문이다.
탐정 영화로서 <더 배트맨>
너무나도 익숙한 배트맨이라는 캐릭터를 들여다보기 위해 <더 배트맨>이 선택한 방법은 간단하다. 배트맨 고유의 정체성, 곧 탐정이라는 정체성을 고찰하는 것이다. 애초에 DC 코믹스의 원전이라 할 수 있는 디렉티브(탐정) 코믹스에서 배트맨 탐정으로 처음 등장했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원형으로의 회귀라고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영화는 리들러의 범죄 현장으로부터 경찰들과 과학수사 요원들도 놓치는 여러 단서들을 침착하지만 신속하게 포착하고, 이를 토대로 리들러의 목적을 추리하는 배트맨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비춘다.
동시에 영화는 배트맨의 탐정 활동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그가 겪는 부작용과 피해도 공들여 묘사한다. 특히 작중 탐정 배트맨이 프로파일러에 가깝게 묘사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탐정 영화로 출발한 <더 배트맨>이 심리 스릴러를 거쳐 종국에는 히어로 영화로서 마무리될 수 있는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비 내리는 날씨와 암부가 짙은 배경을 통해 살려낸 누아르적 분위기가 이 영화의 특장점으로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초반부에 브루스 웨인은 자신이 그림자 속에 숨어 있을 거라는 범죄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자신이 바로 그림자라고 독백한다. 그 말대로 배트맨은 고담 시의 다른 경찰들과 달리 범죄자적 사고(thinking like a criminal)에 능하다. 그는 철저히 범죄자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이해하고 이용하며, 범죄자들의 특정한 욕구, 경험, 그리고 관념을 쫓을 줄 안다. 이는 돈 미첼 시장의 집을 감시하는 리들러의 시점과 캣우먼을 관찰하는 배트맨의 시점이 연출된 방식이 동일한 이유다. 그래서 고든이 풀지 못하는 리들러의 수수께끼를 오직 배트맨만이 풀고, 그만이 리들러가 숨겨놓은 힌트를 찾아내고 해석할 수 있다.
심리 스릴러로서 <더 배트맨>
하지만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당신을 들여다볼 것'이라는 <선악의 저편> 속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대로, 프로파일러인 배트맨은 악을 들여다보다 깊은 고통을 겪는다. 범죄자의 입장이 되어서 범죄자의 심리를 통해 사건을 해석할 때 프로파일러의 자아는 방향을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작중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 활동에 매진하느라 재벌이자 기업인으로서의 공적인 삶과 브루스 웨인으로서의 개인적 삶의 끈을 놓아버린다. 또 밤이 익숙해진 결과 낮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고, 또 자신의 정체가 밝혀질 까 봐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더 배트맨>은 배트맨과 다른 캐릭터 간의 '관계성'을 마치 거울처럼 활용해 탐정 영화에서 심리 스릴러로 자연스레 장르를 전환시킨다. 특히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경우, 프로파일러가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범죄자나 피해자에게 전이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영화가 브루스 웨인의 내적 갈등과 고통을 그가 쫓고 만나고 대화하는 주변인들에게 투영시켜 외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는 배트맨의 수많은 빌런과 조력자들이 한 영화 속에 빼곡히 등장해야 하는 이유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진실을 사이에 둔 채 변화하는 브루스 웨인과 팔코네의 관계, 또 그와 알프레드의 갈등과 봉합은 액션신 없이도 강렬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배트맨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의심하는 계기를 보여주는 배트맨과 리들러의 관계다. “나는 복수다”라고 되새기며 범죄자들을 제압하던 초반부의 배트맨. 그런 그 앞에 선 리들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에게 무관심했던 고담시를 향해 마치 '외로운 늑대(lone wolf)'처럼 그저 복수하는 것뿐이라고 대답한다. 그 순간 부모님의 죽음으로 인한 두려움과 복수심을 범죄자들에게 쏟아내며 해소하던 배트맨은 자신의 모습이 그가 혐오하는 범죄자들과 결코 다르지 않음을 깨닫고, 배트맨이 어떤 존재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앞에 선다. 이에 더해 그와 캣우먼과의 로맨스도 같은 맥락에 위치한다. 사적인 복수와 공적인 정의를 동일시하던 배트맨과 달리 그 둘이 완전히 항상 같지는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캣우먼 역시 배트맨으로 하여금 그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고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영웅 서사로 귀결되는 <더 배트맨>
이처럼 배트맨이 리들러의 수수께끼로부터 스스로에 대한 의심, 고민, 갈등을 마주한 순간, <더 배트맨>은 장르를 심리 스릴러에서 히어로 영화로 바꾼다. 그 질문과 고뇌에 대한 답, 곧 영웅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배트맨을 비추기 위함이다. 배트맨은 리들러와 그의 추종자들을 보면서, 또 캣우먼과 자신의 차이를 자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리들러의 수수께끼와 캣우먼의 인생사를 통해 자신의 사적 복수와 공적 정의가 같은 의미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공포의 상징이었던 배트맨은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던 분노와 복수심을 떨쳐내고, 희망의 상징으로 변모하고 또 성장한다.
그래서 홍수가 고담시를 덮치고, 시민들이 위기에 빠진 절체절명의 순간에 배트맨은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한다. 스스로를 어둠과 복수에 동일시하며 그림자 속에 머물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림자 밖으로 나와 누구보다도 먼저 시민들을 구하러 나선다. 사람들에게 손을 건네고, 어둠 속에서 조명탄에 불을 붙여 길을 인도하고, 어둠에 갇힌 이들을 환한 빛이 비치는 바깥으로 이끌어 준다. 계속해서 누군가의 발자취만 쫓던 그가 다른 이들을 위해 먼저 발자취를 남겨주며, 공포의 화신이 아닌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배트맨의 영웅 서사는 앞뒤로 신화적 표상이 가득하기에 더욱 풍성하게 느껴진다. 리들러의 살인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함께 들려준다. 이 노래의 가사가 그리스도이자 메시아인 예수의 탄생을 마리아에게 알려주는 내용임을 생각해보면, 영화의 오프닝은 리들러의 악행으로부터 배트맨이라는 영웅이 만들어질 것임을 암시하는 듯 보인다.
이는 <더 배트맨>의 묵시록적인 결말부와도 직결된다. 요한 묵시록은 일곱 번의 재앙이 일어난 후에 예수가 재림하고 신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약속한다. 그런데 마침 일곱 대의 차에서 일어난 폭발로 인해 고담시는 구약 성서의 내용과 노아를 연상케 하는 홍수에 휩싸여 버렸고, 그 순간 배트맨은 사람들을 구하며 영웅으로 성장한다. 그래서 영리한 수미상관을 보여주는 <더 배트맨> 속 영웅의 성장은 누아르 장르의 어둡고 진득한 분위기가 더해져 종교적이고 신화적인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플롯을 빛내는 영리한 연출
한편, 맷 리브스 감독의 유려하면서도 직관적인 연출은 배트맨의 각성과 성장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준다. 예를 들어 이 작품에서는 인물의 시점이 상당히 중요하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리들러의 시점에서, 배트맨의 시점에서 대상을 관찰하고 지켜보는 장면들이 상당히 많다. 이때 배트맨의 시점에 주목해보면, 그의 시야가 점점 넓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망원경이나 카메라 등의 도구를 이용해도 배트맨은 초점이 맞지 않거나 흐릿한 시야에 갇혀있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시야는 점점 뚜렷해지면서 넓어지며, 마지막 순간에 그는 가장 높고 탁 트인 공간에서 고담 시의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연출 방식이다. 우선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도 고통에 빠트릴 정도로 범인을 쫓는 일만 집착하던 한 탐정이, 자신의 한계를 깨고 영웅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담아내기에 영리하다. 또한 배트맨이 부모님의 죽음과 관련해 알 수 없는 과거에 괴로워하던 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확실한 과거를 알지 못해도 브루스 웨인이 집착과 미련을 내려놓고 순간 답답하던 시야가 넓게 트이는데, 이정면은 마치 진실을 확신하지 못해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때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또한 긴 러닝타임 때문에 느슨해지려는 찰나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액션신도 인상적이다. 특히 한 템포를 쉬고 본격적인 액션을 보여주는 예열의 미학이 돋보인다. 관객을 순간적으로 작중 범죄자 혹은 빌런의 입장에 서게 만들면서 배트맨을 마주하는 그 두려움과 공포감을 온몸으로 함께 맛보게 하여 배트맨이 왜 공포의 상징인지를 단숨에 납득시키기 때문이다. 이는 다섯 개의 액션 시퀀스 중에서 전복된 펭귄의 시점에서 배트맨을 보여주는 펭귄과의 추격전이 유독 뇌리에 각인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더 배트맨>에 단점이 없지는 않다. 일단 전반적으로 최근 트렌드와는 동 떨어진 스타일의 영화인 점이 호불호를 크게 좌우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결정적인 단점이다. 단순히 절대적인 영화의 시간이 길거나 볼거리(액션)나 스토리의 강약이 부족하기 때문은 아니다. 몇몇 캐릭터들의 서사가 과연 적합한지 의문이 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메인 빌런인 리들러의 경우 그의 범행 과정은 상당히 복잡한 데 비해 그의 동기는 상대적으로 평면적이라서 그 괴리감이 적지 않다. 배트맨의 성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인 캣우먼의 활용법 역시 그녀의 존재감과는 별개로 아쉬움이 남는다. 배트맨의 이야기와 별도로 전개되는 개인적인 서사가 다소 과한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트릴로지의 시작을 알리는 <더 배트맨>이 지나칠 수 없는 영화인 것만은 분명하다. 배트맨 영화 중에서도 유달리 이질적이고, 세계관 연계에 집중하는 근래 많은 슈퍼 히어로 영화들과 달리 묵직하고 우직하게 히어로 본연의 의미를 탐구하고 성찰하는 신선함을 선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배트맨>은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고 논쟁이 되기에 오히려 특별한, <로건>과 <조커>의 뒤를 잇는 모험적인 히어로 영화의 비장한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새로운 배트맨 케이브로의 깊고 어둡고 진득한 초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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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2023)
*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2023)
감독: 페이턴 리드
출연: 폴 러드, 에반젤린 릴리, 조나단 메이저스, 캐서린 뉴튼, 마이클 더글라스, 미셸 파이퍼
장르: SF, 액션
상영시간: 124분
개봉일: 2023.02.17
MCU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제외하고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던 페이즈4를 뒤로 하고, 어느덧 다섯 번째 페이즈에 돌입했다. 그 시작점은 어벤져스 멤버들 중 존재감이나 파워 면에서는 가장 약한 축에 속하지만 내용상의 전개에서 핵심적인 부분을 담당해 왔던 <앤트맨> 시리즈가 이어받았다. <앤트맨>의 세 번째 시리즈인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는 '앤트맨'이라는 타이틀이 가진 인지도나 파급력에 비해서는 꽤나 막중한 임무를 얻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페이즈5를 넘어 페이즈6까지 메인 빌런의 포지션을 소화할 '정복자 캉'의 첫 선을 보이는 무대임과 동시에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 <토르: 러브 앤 썬더>, <블랙팬서 : 와칸다 포에버>까지 굵직한 작품들이 연달아 혹평을 받은 상황에서 페이즈5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가야 하는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앤트맨' 시리즈는 본디 가족영화적인 측면이 강했고, 다른 마블 솔로 무비들과 비교했을 때 광활한 우주 공간을 작중 배경으로 활용한다거나 강력한 히어로나 빌런들이 등장하는 스토리와도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캐릭터들의 상황과 세계관의 흐름이 급변했고, 멀티버스의 개념이 도입된 이상 '앤트맨' 특유의 유쾌한 분위기를 끌고 나갈 수만은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는 배경을 현실이 아닌 양자영역으로 옮겼고, 스토리의 95% 이상을 할애하였기 때문에 '앤트맨'만의 아기자기하고 소박한 맛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MCU 작품에 제대로 등장한 건 처음인 양자영역이 문명과 생명체가 존재하는 공간으로 그려져 신비로운 영상미와 독특한 외형의 캐릭터들로 시선을 끌었고, 비주얼 면에서도 스케일이 커지고 훨씬 화려해졌다. 하지만, 표현만 '양자영역'을 빌려 왔을 뿐 마블이 상상력을 통해 구현한 이 시공간은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등장할 법한 또다른 행성 정도로 비춰져서 시각 효과나 미술이 참신하고 압도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야기는 전형적인 세기말 미국 가족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고 답답하게 구는 인물들,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초인적인 힘도 발휘할 수 있다는 끈끈한 가족애, 위기의 순간마다 구원해줄 누군가가 등장한다는 극적인 전개까지. 전형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구조의 스토리이고,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양자영역을 비롯한 과학 용어들이나 뒤죽박죽이 된 시간 개념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어 제아무리 MCU의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할지라도 본작을 받아들이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앤트맨과 와스프 : 퀀텀매니아> 역시 '앤트맨'이 주인공이 되어 그의 서사를 주도적으로 풀어낸다기 보다는 새로운 빌런 '정복자 캉'의 데뷔전이라는 명목에 무게중심이 실리면서 마블은 또 한 번 페이즈4의 문제점을 답습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MCU 작품들이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이유 중 하나는 각 시리즈마다 주인공이 이끄는 굵직하고 독립적인 서사가 존재한다기 보다는 새로운 히어로나 빌런, 혹은 배경이나 세계관의 설정을 투입시키는데 인기 있는 히어로를 이용하는 모양새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앤트맨' 역시 이러한 흐름을 피할 수 없었는데, 갑자기 양자영역으로 빨려들어가게 된 '앤트맨'의 가족들이 '정복자 캉'에 대항하는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앤트맨'의 서사보다는 빌런을 소개하는데 좀 더 비중을 둔 결과물이 탄생했다.
이로 인해 가장 피해를 입은 인물은 '와스프(에반젤린 릴리)'인데, 과거 감독은 '와스프'는 '앤트맨'의 사이드킥으로서 존재하는 캐릭터가 결코 아니며 '앤트맨' 시리즈는 '앤트맨'과 '와스프'가 공동 주역이 되어 함께 이끌어가는 작품이라 언급한 바가 있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는 타이틀에 이름이 들어간 주연이라는 게 무색하게 '와스프'의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심지어 '정복자 캉'과의 악연을 가진 '재닛 밴 다인(미셸 파이퍼)'과 비교하더라도 분량과 임팩트 면에서 모두 부진했다. 딸 '케이트'를 향한 '스콧 랭(폴 러드)'의 부성애가 강력한 주제의식으로 작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와스프'에게는 존재감을 발휘할 만한 신이 주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실상 작품의 진주인공 포지션을 차지해버린 '정복자 캉(조나단 메이저스)'은 제역할을 다했을까. MCU는 본작에 '정복자 캉'이 등장할 것을 예고하면서 누구보다 위험하고, 강력한 빌런임을 암시했다. 이는 예비 관객의 기대감을 높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했지만, 어벤져스 내에서도 약자로 그려졌던 '앤트맨'이 그 대단한 빌런을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긴다는 점에서 일종의 모순 같은 마케팅이었다. 애초에 다른 어벤져스 동료들도 없는 상황에 있는 '앤트맨'이 수많은 시공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어벤져스를 죽였다는 '정복자 캉'에 단독으로 대항한다는 것은 힘의 균형이 맞지 않은 싸움일테니.
'정복자 캉'의 카리스마나 위압감은 '조나단 메이저스'의 연기력으로 어느 정도 충족이 되었지만, 관객을 설득시킬만한 위력이나 무시무시함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특히 개미 군단과 'M.O.D.O.K'에 의해 리타이어 되는 결말은 그의 초라함만 부각시킬 뿐이다. 물론 그가 가진 위험적 요소가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재닛'으로 인해 양자영역 탈출에 실패한 그가 몇 년만에 문명을 건설하고 잔혹한 통치자가 되어 군림하고 있었다는 것은 고작 한 사람이 가진 힘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방증하는 장치들이다. 이는 스토리를 세세하게 짚어봐야 체감이 되는 부분이고, 기본적으로 전투신이나 지략적인 측면이 캐릭터들이 가진 힘의 크기를 가르는 통상적인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정복자 캉'을 허술하게 연출했다는 비판을 지우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유머 타율도 빈약했고, 화려한 영상미도 이전 마블 시리즈들을 압도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복자 캉'의 묘사나 '앤트맨'과 그 가족의 서사 모두 특색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페이즈4부터 지속되었던 혹평을 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앤트맨' 시리즈만의 가족적인 메시지를 꾸준히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관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와중에도 최대한 시리즈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한 노력이 엿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쿠키 영상을 통해 엄청난 떡밥을 투척하여 기대감을 높임으로써 골수팬들의 마음을 잡는데는 일부 성공했다고 본다. (두 번째 쿠키영상이 가장 재밌었다.)
두 번째 쿠키영상과 달리 첫 번째 쿠키영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정복자 캉'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지를 확실하게 보여준 장면이기는 했지만, 앞으로 그들로 인해 벌어질 사건들과 복잡할대로 복잡해진 이야기의 향방을 생각하면 머리가 절로 띵해진다. 특히 마지막을 장식한 수많은 '캉'들의 존재는...이제는 징그럽게 느껴질 정도다.
- 씨네랩 크리에이터 popofi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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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인 차별? 엿 먹으라 그래
6★/10★
아시아계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할리우드 영화로, 전 세계에서 큰 수익을 낸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의 압권은 도입부다. 돈이 썩어 나는 아시아인이 호텔 안내 직원의 인종 차별적 모욕에 그 자리에서 호텔을 사 버리는 장면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욕을 되갚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너보다 경제력이 월등함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를 인종 차별적 모욕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영화는 이후에도 서로 다른 계급의 두 아시안 남녀의 사랑을 로맨틱 코미디의 문법으로 담아낸다. 소모되다 사라져버리는 아시아인이 등장하지 않는, 무려 아시아인이 슈퍼 리치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도 적잖은 쾌감을 제공했다.
〈조이 라이드〉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의 각본을 쓴 아델 림의 첫 연출작이다. 이번에도 아시아인이 주인공이고, 도입부부터 통쾌한 장면을 선보인다. 한 아시아계 부부가 주민 대다수가 백인인 마을로 이사를 온다. 그런 그들에게 한 백인 부부가 다가온다. 그들은 아시아계 부부의 딸 롤로와 자신의 딸이 함께 놀 수 있겠냐고 묻는다. 그때 백인 부부 뒤에서 숨어 있던 아이가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백인 부부의 아시아계 입양아 오드리다. 롤로와 오드리는 곧바로 놀이터로 향하고, 롤로는 “칭챙총”거리는 백인 아이의 얼굴에 주먹을 꽂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다. 오드리는 완벽한 모범생으로 성장해 촉망받는 변호사가 되었고, 롤로는 성적인 것을 과감하게 표현하는 예술가를 지망하지만 실은 사고뭉치에 가까운 어른으로 성장했다. 물론 둘은 여전히 가까운 친구다. 그러던 중 오드리가 사업차 중국으로 가게 되어 롤로와 그녀의 사촌 데드아이가 통역을 핑계로 오드리와 동참한다. 중국에서는 오드리의 대학 시절 룸메이트이자 인기 배우인 캣도 합류한다.
넷은 오드리의 파트너 승진이 걸린 일생일대의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에 참석한다. 그런데 계약 당사자가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한다. 중국에서는 그 사람의 가족을 보고 상대를 파악한다며 며칠 후에 있을 파티에 그녀의 친모를 데려오라고 요구한 것. 오드리에게는 청천벽력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중국에서 입양되었다는 것과 생모의 사진 한 장 말고는 아무런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임원급 승진이 걸린 일인데 포기할 수는 없다.
네 사람이 오드리의 생모를 찾아 떠나는 과정은 내내 아시아 정체성은 무엇인지에 관한 유쾌하고 도발적인 물음으로 가득하다. 더불어, 이들은 모두 섹스와 K-팝 등 자기 욕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다. 자기 욕망의 방향을 아는 아시아 여성. 이들이 서로 복작거리며 만들어내는 기상천외한 웃음은 그 자체로도 즐길 만하지만 지금껏 할리우드에서 주변화되고, 제한된 채 고정된 역할만 수행해오던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를 과격하게 비튼다는 점에서도 쾌감을 자아낸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출발점을 향한 오드리와 그 친구들의 여정은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이다. 개성 강한 서로 다른 네 친구의 서사는 아시아 여성의 이미지를 하나로 환원하지 않고 다채롭게 만든다. 여러 모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코미디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영화다.
물론, 영화의 형식 측면에서 본다면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크레이지 리치 아시아〉가 그랬듯, 〈조이 라이드〉 역시 장르 문법의 전형성에는 손대지 않기 때문이다. 〈조이 라이드〉는 자기 자신을 향한 여정이라는 코미디/버디 무비의 일반적 구조를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오드리의 진짜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과 개별 주인공의 매력과 이들의 어우러짐에 대한 묘사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다. 오드리가 자신이 부정해왔던 아시아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조이 라이드〉는 가족주의, 아름다운 자연 등 서양이 동양을 오리엔탈리즘적으로 재현해온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오드리의 정체성 탐색 과정을 채운다. 이 영화가 할리우드가 아시아/인을 재현해온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코미디 영화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서양이 상상적으로 구성해온 동양의 이미지 배치를 그대로 차용했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러나 하나의 영화에 너무 많은 기대를 투영할 필요는 없다. 〈조이 라이드〉에게 아시아/인과 할리우드가 맺어온 불평등한 관계 모두를 뒤집으라고 요구하는 건 과도하다는 소리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르 범주 내에서 아시아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즐길 만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균열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는 좋은데 아시아/인 재현은 엉망이어서 양가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의 성공은 그 자체로 변화를 촉구한다. 들러리가 아닌, 행복과 고뇌를 동시에 느끼는 복합적 주체로서의 아시아인이 등장하는, ‘아시아인 차별? 엿 먹으라 그래!’라고 당차게 말하는 더 많은 할리우드 영화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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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경찰을 감시하다 | 영화 경관의 피
화려한 캐스팅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이 많은 작품이었던
영화 경관의 피!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다소 아쉬운 평점을 가지고 있는데
경찰이 경찰을 감시한다는 참신한 소재로 우리에게 다가왔던
영화 경관의 피를 살펴볼까 합니다.
기본 정보
장르 : 범죄, 드라마, 스릴러, 느와르, 액션
감독 : 이규만
각본 : 배영익
출연진 : 조진웅, 최우식, 박희순, 권율, 박명훈
개봉일 : 2022년 01월 05일
평점 : 6.87
스트리밍 : 티빙, 넷플, 왓챠, 웨이브
기획 의도
경찰의 기준이 뒤집어진다
출처불명의 막대한 후원금을 받고 고급 빌라, 명품 슈트, 외제차를 타며
범죄자들을 수사해온 광역 수사대 반장 강윤(조진웅)의 팀에
어느 날 뼛속까지 원칙주의자인 신입 경찰 민재(최우식)이 투입된다.
강윤이 특별한 수사 방식을 오픈하며 점차 가까워진 두 사람이
함께 신총 마약 사건을 수사하던 중
강윤은 민재가 자신의 뒤를 파는 두더지, 즉 언더커버 경찰임을 알게 되고
민재는 강윤을 둘러싼 숨겨진 경찰 조직의 비밀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담
영화는 일본 원작소설 경관의 피를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원래는 2020년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연기되었다.
영화의 전반적으로 음향 문제가 발생하면서 영화를 보면서도
이게 무슨 대사인지 모를 정도로 문제가 아주 많았다.
후기 및 결말
영화 경관의 피 결말을 살펴보자면
과거 경찰들이 수사비가 없어 수사비를 스폰 받아 왔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조직이 바로 연남회였다.
연남회에서는 더 이상 컨트롤이 되지 않은 박강윤을
쳐내기 위해 범죄를 뒤집어 씌우고 박강윤을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최민재는 연남회를 찾아가 그동안의 벌인 일들과 아버지 살인사건의 진실을
조건으로 협상하여 박강윤이 모든 혐의를 벗어던지며 교도소에 나오게 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여기서 시즌 2를 그려볼 수 있을 여지를 보여주기도 하면서?!
보통 언더커버는 경찰이 깡패에 속에 들어가 언더커버 활동을 한다!
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있다면, 이번 영화 경관의 피의 경우
경찰이 경찰을 감시한다는 신선한 소재로 접근하였으나
다소 아쉬운 스토리로 우리 기억 속 저기 어딘가에 묻혀있다.
한줄평 : 화려한 캐스팅에 비해 따라가지 못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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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이 기지개를 켜다 말고 갑자기 퇴근한다면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형제 페드로(에지킬 로드리게스)와 지미(데미안 살로몬)이다. 살인사건을 추적하고 있던 형제. 맨 정신으로 볼 수 없는 시체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에 경악하는 형제. 형제는 연이은 살인사건의 원인을 찾아보기로 한다. 멀리 가지 않아 도착한 결론. 마을 안에 악령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본거지로 찾아가 보기로 한다. 한 할머니의 집에 찾아간 형제. 노인은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악령에 씐 채로 썩어가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 형제는 노인의 아들 우리엘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한다. 하지만 악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퇴장하지 않는다. 금기를 어기는 사람들 때문에 서서히 봉인이 풀린다. 서서히, 그리고 잔혹한 지옥도가 형제를 기다리고 있다.
진짜 도사리고 있을 때
이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을 활용하기 위해 사용된 연출방식은 흥미로웠다. 전면에 나타나는 것은 템포조절이었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끔찍한 장면이 나타나는 데 있어 규칙이 없다. 카메라가 영화의 배경을 멀리서 찍는다. 시점쇼트로 형제의 관점이 영화의 카메라가 된다. 여기서 형제가 인식하는 대상을 보여주고 싶으면 사체를 그냥 카메라 안으로 들어오게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래에서 위로 형제와 사체를 함께 보여준다. 이게 되게 별 거 아닌 연출 같아 보이지만 이 영화가 가진 태도를 함축하고 있다. 악을 대단하지 않게 묘사한다. 그런데 제목 그대로 인물들 근처에 도사리고 있다. 시선을 위에서 아래로 돌리기만 해도 악이 드러나고 있다는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영화가 처음으로 보여주는 비극에서도 이 태도를 읽을 수 있다. 초반부에 해당하는 장면인데, 카메라에 영화의 핵심인물 중 하나 루이스와 그의 아내, 그리고 동물이 있다. 동물을 살해하려는 루이스. 아내가 루이스를 만류한다. 이유는 금기를 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위 세 문장만 읽으면 영화가 ‘루이스가 금기를 어길 것인가’에 대한 서스펜스를 만들 거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예상을 세련되게 빗겨나가며 초장부터 기선을 제압한다. 구체적으로, 루이스가 선택하는 과정이 굉장히 짧았다. 그리고 그 이후 상황을 짧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테이크를 최소한으로 잡았다. 금기를 어길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가 영화 후반부에도 이어지는데 이것에 비하면 이 과정이 굉장히 짧다. 이 연출이 후반부의 서스펜스에 있어 ‘언제부턴가 도사린 악이 우리를 덮칠지도 모른다’라는 공포감을 주기 충분했다. 또 이 장면을 촬영하는 방식도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의 핵심인 ‘선을 넘는다’라는 점에 있어 거리를 두고 대상을 포착한 것이 종반부 다다르기에 충분한 초석이 됐다.
하지 말라는 걸 하는 편
영화의 핵심 테마는 금기다. 금기라는 테마가 두 가지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다. 첫째. 플롯에서 금기를 다루고 있다. 영화가 플롯을 끌고 가는 방식은 과제를 연이어서 주는 것이다. 악령이 씐 우리델을 어떻게 처리할 지부터 시작한다. 이 우리델을 둘러싸고 있는 금기가 있다. 이 금기에 금기를 물어 서서히 영화가 이야기의 품을 넓힌다. 이것은 영화가 장르적인 문법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영화가 2부로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바꾸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을 둘러싼 형제의 개인적 일화가 특별하다. 살짝 작위적인 것 같지만 일반적인 선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밀도 있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인물은 심지어 영화 내에 다른 금기를 제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누군가의 입을 통해 금기가 제시된다. 한 가지만 빼고 말하는데, 이 인물이 그 빼먹은 하나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영화가 금기를 다룬다는 테마를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시각적으로도 영화가 금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꼼꼼했다. 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열광할 것 같으면서도 '이거 별로야' 싶은 것이 같다. 바로 폭력성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호러영화가 있다. <쏘우> 시리즈,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큐브> 같은 영화다. 이 영화(내지는 시리즈)들의 공통점. 다 큰 성인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건 할리우드 내지는 전 세계의 영화시장이 룰처럼 지킨 것이다. 사실 굳이 이 룰 외의 무언가가 필요하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윤리적으로 '굳이 아이들까지 폭력에 노출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이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이 금기를 널뛰기한다. 이게 영화의 전체적인 톤과 이질적이면 굉장히 비겁해 보이기 쉽다. 단순히 자극적인 톤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라면 감독이 미학적으로 뭘 고려했는지 전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이 영화는 후반부 폭주하는 이미지와 플롯을 보여주기 위해 전초를 잘 깔았다. 그리고 앞 문단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줄거리부터 금기를 다뤘기 때문에 소모적이지 않다. 글쓴이가 이렇게 써도 이 영화를 보고 싶은 여러분은 쉽게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외로, 나름 창의적인(?) 잔혹함을 보여준다.
변화무쌍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리듬감이다. 구체적으로 이 영화는 보여주고 싶은 것을 힘주어 보여주지 않는다. <스마일> 같은 영화가 있다고 해보자. <스마일>은 저주에 걸린 사람들을 힘 빡 줘서 보여준다. 점프 스케어를 통해 사운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기괴한 웃음으로 저주의 이미지를 강화한다. 아니면 <곡성>처럼 템포를 빠르게 전달하는 것도 호러영화의 문법과도 같았다. 이 영화는 반대다. 금기를 넘는다는 테마에 적합하게, 하지만 내내 빠르거나 느리지 않게 유효타를 적절하게 먹인다. 영화가 중후반부에서 템포가 루즈해지기 전까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끌고 갔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어디에서 자극적인 게 나타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인물들을 덮치는 것이다. 끝까지 이야기를 몰입시키는 힘이 영화의 장면을 기획하는 데 있다는 점이 '이 영화는 노작이다'라는 생각이 들기 충분하다.
편의적으로 기대다
이 영화에 대해 가장 아쉽다고 느끼는 것. 주인공이다. 주인공 페드로는 공포영화의 클리셰 그 자체인 인물이다. 다른 인물들은 금기를 넘니 마니 하는데 이 인물은 굉장히 안정적으로 편안하게 간다. 대표적으로 중반부. 이 인물이 공간을 두 번 옮긴다. 첫 번째로 공간을 옮길 때 이 인물이 누군가와 함께 동행한다. 이 일행을 구성하는 방식이 굉장히 안일하다. 이 선택은 영화의 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영리한 것이 핵심인 영화에 인물은 바보 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에. 두 번째. 이 두 번째 공간 이동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그렇게 감독이 의도했다). 변화무쌍한 리듬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 것과는 정반대로 이 장면에서 인물들에 감정이입할 토대가 빈약하다. 서서히 집중했다가 후반부의 광기로 이어져야 하는데, 중반부까지 쌓아놓은 플롯이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렇게 상투적으로 대처할 거라면 동생이 누굴 짝사랑했고, 이 인물이 현실적으로 처한 상황이 뭐인지는 아무 의미가 없다. 모티브를 내내 반복해서 보여주면 뭐 하나?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그걸 거부했는데.
또 이 영화에서 마무리 짓기 위해 마무리지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주인공의 가족과 관련된 부분이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이 주인공의 어머니는 다른 캐릭터들과는 다르게 이질적으로 행동한다. 가령 형제는 이 마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다. 어머니도 어렴풋이는 들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악마의 존재에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걸 굳이 알면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작위성을 덧붙이는 선택이었다. 뿐만 아니라 극후반부 이 인물의 행방을 보여주는 방식도 뒷심이 부족했다. 페드로가 굳이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려운데, 다른 인물들에 비해서는 인과관계가 희미해서 대충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글쓴이가 한국 영화 팬이라는 것이 조금 얄궂게도 느껴졌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특정 한국 영화에 영향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국 팬들 입장에서는 이 영화의 후반부가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 단점은 치명적이다.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분비하며 질주하던 플롯이 후반부가 되어 '에이 이거 그거 아닌가'로 끝나기 때문이다.
뭉뚱그린 악
전체적으로 흥미로웠지만 후반 마무리에서 힘이 빠졌다는 게 총평이다. 어떤 걸 생각하고 각본을 쓰고 이 영화를 위해 장르적인 문법을 어떻게 연구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그리고 그걸 위해 파격적인 수위로 폭력을 묘사한 것도 나름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후반부에 힘이 빠지다 못해 전면적으로 대치되는 선택을 해 중반부까지의 서스펜스가 얕아지는 선택지를 뒀다. 그래서 악이 도사린다는 게 설명하려다 말았다. 전지전능한 악의 존재가 중반부까지 계속 등장하다 갑자기 카메라를 반대편으로 돌렸으니 선택과 집중에 있어 실패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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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을 사랑하는 곰, 런던이 사랑하는 곰
코끝에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이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마음이 들썩거려 여행지를 찾는다,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했는데,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 아침 갑자지 뼛속으로 한기가 스미는 시기가 시작되면,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은 추위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유독 손발이 찬 편이라, 겨울이면 아침마다 양말을 두 개 신을까? 말까를 고민하는 사람이어서 겨울 여행은 상상만으로도 이가 달달 떨리는 기분이랄까? SNS에 올라오는 삿포로의 눈밭을 보며, 약간의 부러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집 밖으로 나를 꺼내어 내기엔 겨울 추위란 존재는 너무도 강력한 장벽이다. 올해도 나는 비행기티켓을 검색하는 대신, 이불 속에 들어가 OTT에서 콘텐츠 여행을 시작한다.
해리포터 시리즈 정주행을 시작으로, 눈 내린 호그와트와 론의 크리스마스 스웨터로 영국의 겨울 무드를 느끼고 나면, 파란 코트를 입은 패딩턴 2로 본격적인 ‘런던 여행’을 떠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패딩턴과 브라운가족, 그리고 ‘런던’이기 때문이다. 마치 윈저 가든 그 어딘가에 내가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영화다.
<패딩턴1 >이 아기 곰이 페루를 떠나, 패딩턴 역에서 브라운 가족을 만나고, 패딩턴이라는 이름을 얻고, 런던에서 진짜 가족을 찾는 이야기 속에서 이제 막 런던에 도착한 아기 곰의 시선으로 런던을 보여준다면, <패딩턴2>는 런던의 명소를 담은 팝업북을 주요 소재로 두고, 런던명소를 옮겨 다니며 주요 스토리가 전개되며 ‘런던’이 주인공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다.
Dear Aunt Lucy, Life in London has been better than ever. I really feel at home..
루시 숙모에게. 런던에서의 삶은 그 어떤 때보다 좋아요. 저는 집처럼 편안하답니다.
페루를 떠나 런던 윈저 가든에서 브라운 가족과 지낸 지 3년 차, 패딩턴은 곧 다가올 루시 숙모의 100번째 생일 선물을 고민하다 그루버씨의 골동품 가게에서 런던 명소 12곳이 담겨 있는 팝업북을 발견하고, 런던을 꿈꿔왔던 루시 숙모에게 선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코즐로바 부인이 만든 세상에 단 한 권뿐인 그 책의 가격은 꼬마 곰의 용돈으로 사기엔 꽤 비쌌고, 패딩턴은 책을 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발소 보조, 아쿠아리움 청소, 창문 닦기 등 열심히 아르바이트를한다. 어느덧 이제 하루만 더 일하면 팝업북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돈을 모으게 된 패딩턴은 퇴근길에 그루버씨의 골동품 가게 창문안으로 팝업북을 보는데, 그 때 마침 골동품 가게에 침입한 도둑이 팝업북을 훔쳐가게 되고, 그를 뒤 쫓던 패딩턴을 범인으로 오해한 경찰에게 체포당하고 만다.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패딩턴을 대신해, 브라운 가족은 진범을 찾는 데에 매진하는데, 이 과정에서 누군가 변장을 한 채로 팝업북에 나오는 명소를 돌아다니는 것을 알게 된다. 런던이 배경 장소가 아니라, 스토리의 중심이며, 또 다른 주인공 중의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범인이 보물 상자를 열기 위해 팝업북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가는 세인트폴 대 성당뿐 아니라, 브라운씨가 일하는 더 샤드, 패딩턴이 전화를 하는 빨간 전화박스와 그리고 범인이 탄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찾은 패딩턴역까지. 영화는 런던스러운 로케이션으로 가득 차 있다.
패딩턴에게 런던은 무슨 의미일까.
런던의 탐험가가 루시 숙모와 페스투조 삼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떠나며, 루시 숙모에게는 오랫동안 바랬던 꿈이었고, 패딩턴에게는 좋은 사람과 가족을 만나게 된 스윗홈이 되었다. 어쩌면 그들에게 런던은 아마도 가족과도 같은 ‘따뜻함’일지도 모르겠다. 패딩턴은 루시 숙모에게 그런 런던을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깝고 다정한 내 친구를 소개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런던을 선물하고 싶었던, 꼬마 곰의 순수하고 다정한 마음은 서로를 더 가까이 만들었다. 그리고 눈이 오는 어느 날. 선물처럼 찾아온 루시 숙모와 다정한 이웃들과 함께 ‘따뜻한’ 런던에서 백번째 생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Aunt Lucy said, if we're kind and polite the world will be right.
루시 고모가 말했어요. 우리가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면 세상도 올바르게 돌아갈 거라고요.
친절하고 예의 바른 다정한 런던을 만나고 싶을 때마다, 나는 패딩턴을 꺼내본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충분히 설레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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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미국/2007)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사막처럼 건조한 염세주의자의 목소리
만드는 영화마다 세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코엔 형제는 퓰리쳐상 수상작가 코맥 메카시의 동명 소설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로 영화화했다. 미국 개봉 후 평단의 찬사를 받았으며 2008년, 제80회 아카데미상 8개 부문(작품상 포함)에 노미네이트되었고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조연상)을 석권하여 화제작이 되었다.
줄거리는 르웰린 모스(조쉬 브롤린),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에드 톰 벨(토미 리 존스), 세 남자가 이끌어간다.
영화가 시작되면 황량한 사막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모스는 영양 사냥을 하고 있지만 총알은 자꾸만 빗나갈 뿐 별로 수확이 없다. 한편 보이스오버로 에드 톰 벨 보안관의 목소리가 들린다. 세상은 자꾸만 흉악하게 변해간다는 그의 느릿느릿한 사투리에는 감정이 담겨있지 않고 문장에는 수식어도 없다. 건조하다. 사막의 열기에 중요한 무엇인가가 증발해버린 듯하다.
문득 모스의 눈에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어떤 물체가 들어온다. 망원경으로 보니 자동차들이다. 날렵한 동작으로 사방을 경계하며 다가가니 멕시코인들끼리 대단한 총격전을 벌였던 모양이다. 거래에 실패한 마약더미와 저만치 떨어진 나무 아래 앉은 채로 죽어있는 사내 옆에 돈가방이 놓여있다. 실패한 하루의 사냥과 대조적으로 돈가방은 그에게 큰 행운으로 보였을 것이다.
부상을 입고 물 한 모금을 원하는 한 명의 생존자를 뒤로한 채 돈가방만 챙겨 하우스 트레일러로 돌아온 모스는 생존자를 버려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룰 수 없다. 새벽에 물 한 통을 들고 다시 현장으로 가보니 그 생존자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고 마약거래와 관계 있는 갱단이 도착해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그만 그들에게 발각되고 만 코스는 트럭을 버리고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와 아내 칼라(켈리 맥도널드)를 친정으로 보낸 뒤 자신은 돈가방과 함께 달아난다. 그런데 가방에는 추적장치가 들어있었다.
그로부터 참혹한 범행현장에서 모스의 트럭을 발견한 보안관 벨, 갱단에게 고용되어 추적장치를 따르는 청부살인업자 쉬거, 돈가방을 든 모스 등, 세 남자의 쫓고 쫓기는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스크린은 거듭되는 살인으로 지옥 같은 이미지를 담아낸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매우 문학적이다. 아마도 소설을 영화화했기 때문이겠지만 코엔 형제가 만들어낸 은유적인 영상과 배우들의 연기력에 힘입은 바도 클 것이다.
황량한 사막과, 그 사막에서 아직 숨이 붙어있는 사람을 별 망설임 없이 버리고 돌아서는 카우보이 모스는 무척 닮아있다. 불모의 사막에서 사람들이 모여사는 도시로 장면이 바뀌어도 인간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카메라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관심이나 배려 등, 사랑을 표현하는 그 무엇도 담지 않는다. 기쁨의 웃음도 감동의 눈물도 배제한다. 그대신 건물들을 훑고 지나갈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의 안전한 삶을 위해 건축한 건물들 속에서 하나, 둘, 잔인하게 죽는다.
그들의 죽음에 꼭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살인청부업자 쉬거의 의무는 그를 고용한 사람에게 돈가방을 찾아주고 가방을 훔친 모스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는 자동차가 필요해서, 그의 계획에 방해가 되어서, 혹은 그의 기분을 거슬렀다는 이유로 사람들을 죽이고 또 죽인다. 그의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것은 그가 즐겨 사용하는 무기, captive bolt pistol(혹은 cattle gun)이다. 이는 주로 가축을 도살하기 전에 고통을 덜어주고 피흘림을 막아 좋은 육질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쉬거는 짐승을 죽이는데 사용하는 무기로 사람을 죽인다. 그에게는 효과적으로 그리고 단번에 상대를 죽임으로써 유혈이 낭자한 현장을 남기지 않는 효율성이 중요할 뿐이다.
쉬거의 앞에서 그에게 득이될 거래를 제시하거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생명 부지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쉬거에게는 두 번째 기회를 용납하는 관대함이 없으며 생명을 중시하며 가치판단을 하는 도덕적 잣대도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예 마음이라는 것이 없는 듯하다. 이렇게 하비에르 바르뎀이 연기하는 쉬거라는 인물은 절대적인 악, 혹은 악마로 그려진다.
쉬거의 추격을 받는 모스에게서는 자유의지를 가졌으되 많은 선택의 가능성 사이에서 계속 실수를 저지르는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절대적으로 악하지도, 또 선하지도 않다. 다만 어쩌다가 양심과 도덕을 무시하고 욕심을 따르는 잘못된 선택을 한 후 결국 댓가로 목숨을 지불하게 된다. 베트남전에서 살아남은 용접공이기도 한 모스는 어쩌면 그를 따라붙은 쉬거라는 인간쯤이야 그가 물리칠 수 있는 만만한 상대로 오해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 대개 운명을 만만하게 보듯이 말이다.
벨은 아버지에 이어 보안관직을 맡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악을 응징하겠다는 위대한 사명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사막의 바람에 그의 열정이 어쩌면 모두 말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하루하루의 평화를 바라며 은퇴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에 불과하다. 그가 모스의 뒤를 쫓는 이유는 같은 마을 주민을 보호해야겠다는 최소한의 의무감 때문이지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벨은 그의 직업에 필요한 상식, 눈뜨고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자꾸만 악해지는 세상을 안타까워하는 도덕성,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경험으로 얻은 인생과 세상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건을 추리하는 전문가로서의 능력 등은 지녔으나 악에 맞서 싸우려는 열정과 끈기, 육체적 강인함 등은 없다. 악이란 끈질기게 싸워서 물리쳐야하는 대상인데도 말이다. 평화를 원한다고 악으로부터 피하면 피할 수록 악의 영역만 넓혀주게 될 뿐이다.
아무튼 악에 맞서 싸우기에 벨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었고 또 나이만큼 지친 것 같다. 실력에는 도덕성, 전문성, 열정, 건강 말고도 신념 및 목표를 이룰 때까지 '지치지 않는 것'도 포함되는데.
은퇴 후 벨은 아내에게 그가 꾼 두 가지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 꿈에서 벨은 보안관이었던 아버지가 그에게 준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두 번째 꿈에서 그는 아버지와 함께 눈 덮인 산에서 말을 타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머리를 숙이고 불을 든 채 벨을 지나쳐 앞서 갔다고 했다. 아마도 어둡고 추운 곳에 벨이 도착하기 전에 불을 피워놓기 위해서일 것이라는 추측을 덧붙인다.
이제 우리에게는 벨처럼, 지켜야할 어떤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채, 다가올 죽음을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코엔 형제는 어쩌면 지독한 반어법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영화의 우리말 제목은 여지를 남기지 않고 단정적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보다는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편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뜨겁고 건조한 사막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인생에 지친 벨 같은 노인들이야 점점 거세지는 악에 대항할 의지를 잃었다 하더라도, 아직 기운 있는 젊은이들에게서만큼은 악을 상대하여 이겨내려는 끈질김, 열정들을 기대라도 할 수 있도록 말이다(©2021. 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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