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5-03-10 14:57:25
3월 재개봉 영화 모음 zip.
개봉 10주년을 맞아 돌아온 <위플래쉬>, <존 윅>

3월 재개봉 소식 전해드립니다.
개봉 10주년을 맞은 <위플래쉬>, <존 윅>부터 디렉터스 컷으로 돌아온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문제작 <크래쉬: 디렉터스 컷>까지!
우에노 주리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는 <스윙 걸즈>는 현재 씨네픽 인스타그램에서 시사회 이벤트도 진행 중이니, 놓치지 마세요!
*재개봉 영화 목록 및 일정은 변경, 추가될 수 있습니다.
*극장별로 개봉영화가 상이할 수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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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러브! 러브! 러브!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경제는 내리막길이고, 이곳 저곳에서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어느 때보다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며, 조금이라도 가져야 할 행복은 온 데 간 데 사라졌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다. ‘사랑은 무신 얼어 죽을 놈의 사랑’이라 반박할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사랑, 사랑, 사랑이다. 핀란드의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신작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척박한 세상에 그나마 행복이란 꽃을 피워내는 건 사랑이라 말한다. 특유의 괴팍한 유머와 건조하리만큼 무표정한 이 커플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마트에서 일하는 안사(알마 포이스티)와 공장에서 일하는 홀라파(주시 바타넨)는 일을 마치고 동료와 함께 가라오케로 향한다. 그곳에서 이들은 서로를 눈여겨본다.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안사는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가져갔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술과 담배로 무미건조한 삶을 버티는 훌라파는 거리에서 안사를 만나고, 카페, 극장 데이트를 나누며 오랜만에 따뜻한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안사는 홀라파에게 전화번호를 적은 쪽지를 건넨다. 하지만 디테일이 부족한 이 남자는 그 쪽지를 잃어버리고, 마지막으로 헤어졌던 극장 앞을 서성인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 / 사진제공 다음 영화
의미하고 불필요한 전쟁에 시달리던 중,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주제에 관해 쓰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대한 갈망과 연대, 희망, 타인에 대한 존중, 자연, 삶과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2017년 <희망의 건너편> 이후 은퇴를 선언했던 감독은 6년 만에 자신의 말을 주워 담고, <사랑은 낙엽을 타고>를 만들었다. 6년이란 시간 동안 다사다난했던 온 세상의 일들이 노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고맙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들이 점차 잊히고, 상실되었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이 씁쓸한 감정과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겪는 고용 불안, 경제 하락 등 먹고 살기가 더 힘들고 팍팍해진 삶은 그 우울함을 배가시킨다. 유통기한을 넘긴 음식을 가져갔다고 해고당하거나(물론 가져가면 안 되는 건 맞다.), 힘든 삶을 잠시 잊고자 켜는 라디오에서 매번 음악 대신 전쟁 뉴스가 흘러나오는 건 이를 잘 보여준다. 알코올에 의존해 일을 하거나 가스통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은연중에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이들의 삶도 엿볼 수 있다. 특히 감독이 영화를 통해 집중했던 노동자들의 불안한 삶을 그렸다는 점은 극 중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표현되며 극대화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켄 로치 감독의 영화처럼 노동자들의 비루한 삶을 투영하는 사회 비판적 작품은 아니다. 앞서 소개했듯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사랑을 주제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아이러니하게도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우연한 이들의 만남, 재회, 데이트, 그리고 사랑이란 감정은 더 돋보인다. 과장이 아닌 너무나 담백해서 무색무취한 감정이라고 해도 그 오가는 정은 관객으로 하여금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돌고 돌아 비로소 재회한 이들의 첫 저녁 식사 준비 장면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멋진 데이트를 위해 식기를 고르고, 값싼 구색 갖추기용 술을 사고, 집을 청소하는 안사,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옷을 빌리고 꽃을 사는 홀라파의 모습은 여느 로맨틱 영화보다 더 설렌다. 그 설렘의 근원은 삶이란 지난한 여정을 가는 상황에서 피어난 사랑의 기적이라는 점일 것이다. 그 시간이 지나면 고된 일과 일상이 그들을 기다릴지언정 이 순간만큼은 만끽하고 싶은 그 소중함. 감독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갖고 싶어 하는 순간과 감정들의 고귀함을 스크린으로 옮긴다. 이 영화에서 그토록 노래 부르는 장면이나 음악이 나오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건 이 때문이 아닐까.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극 중 등장하는 사랑은 한 발 더 나아가 연대의 의미를 고취시킨다. 안사와 홀라파는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힘겹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의 사랑이 힘겹게 이뤄지는 과정은 곧 같은 처지에 있는 이들이 서로 이해와 공감을 하는 과정과 일치해 보인다. 이는 이들의 관계에서만 빗어지는 게 아니다. 안사와 홀라파의 직장 동료는 물론, 홀라파가 입원해 있었던 간호사에게도 이 따뜻한 기류가 전파된다. 만약 안사와 홀라파의 처지에 공감하고 이들의 사랑을 응원하는 관객들이라면 스크린을 넘어 그 의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사랑은 낙엽을 타고> 스틸 / 사진 제공 찬란
누가 뭐라 해도 <사랑은 낙엽을 타고>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영화다. 감독이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어렵게 길어온 그 소중한 감정은 냉기만이 흐르는 작금의 시대에 작은 촛불과도 같다. 올 연말, 이 영화를 마주한다면 저마다 작은 촛불을 마음속에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 사랑하자! 러브! 러브! 러브!
평점: 4.0 / 5.0
한줄평: 냉기만이 흐르는 시대에 켜진 작은 촛불
*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 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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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로움과 쓸쓸함이 있어 혼자가 아닌 우리
어. 그래. 그럴 때 있지.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에이. 그래서 영원한게 있나. 생각은 다 바뀌는거 아냐? 당연하지. 너무 걱정하지마. 나도 그게 그렇게 될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어찌됐건 다 이뤄지더라. 다 잘될테니까 신경 쓰지 마. 수화기 반대편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밝아서 다행이었다. 너 예전에 어디 아프다고 하지 않았나? 아. 지금은 괜찮다고? 다행이네. 아무튼 생각 많이 하는게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더라. 난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예전에 했던 전애인 이야기. 내 20대동안 바뀌었던 처지에 관한 이야기. 별의 별 소재로 대화가 이뤄졌다. 그래도 너 많이 발전했다. 너만한 사람이 없긴 하지. 과분한 칭찬에 멋쩍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 봐. 전화를 끊었다. 발전한 사람이라. 휴대전화 전원을 아예 끄고 책을 손에 잡았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었다. 소설 안엔 여자주인공이 나온다. 제발. 선생이 저를 서울로 데려다 주세요. 여주인공은 남주인공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 부탁을 거절한다.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렇게 부탁을 거절하고 남주인공은 안개 가득한 도시 무진을 떠난다. 소설은 안개가 가득한 도시의 모습을 묘사한다. 주인공이 떠나고 난 후는 보여주지 않는다. 소설을 끝마치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게 만약에 내 주변의 이야기로 치자. 여자주인공은 어떻게 될까? 남은 시간동안 남자주인공의 빈자리만 느끼다가 시간을 보내게 될까? 남자는 선택을 후회하진 않을까? 책 읽고 나면 늘상 하는 잡생각이었다. 사실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올라온다고 해서 원하는 인생이 짠하고 이뤄질리는 없어. 그럼에도 여주인공은 사람이기 때문에 혹시나에 기댔을거야. 여주인공이 어떻게 될 것 같느냐고? 난 책이 던지는 질문에 안개같이 막연하게 답했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어차피 남자주인공같은 사람은 이 소설책에서 한 사람밖에 없을테니까. 비슷한 상황이 떠오르면 계속 생각나겠지? 그럼 남자들에게 비슷한 말을 계속 하거나 직접 서울로 올라가거나 둘중 하나를 택할거야. 어떤 존재가 있다 없어지는 건 상대를 내 일상속에서 지워버리는게 익숙해진다는 점에서 씁쓸한 일이었다. 무진의 안개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토니 티키타니>는 부재에 관한 영화다. 러닝타임이 짧다. 1시간 30분이었다. 적당한 길이의 단편소설을 읽으면 이정도 시간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화는 이를 반영하듯 영화라기 보다 책을 읽는것처럼 진행된다. 책을 읽다보면 3인칭 전지적 작가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영화 전반에 걸쳐 들리는 나레이션은 이를 연상시키며 영상을 한장한장 넘기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해준다. 촬영한 카메라의 시선이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르다는 것도 특이점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화를 연출해서 얻는 이점은 하나 더 있다. 주인공 토니의 일생을 표현하는데에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토니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 만든 이름이다. 일본이름도 영어이름도 아니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의 처지와 비슷하게 어느곳에도 속해있지 못해 외로웠던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또래 애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였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혼자인 것에 그렇게 불만이 없었다. 타인이 보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었으며 매사가 혼자였던 삶에 한줄기 희망이 들어온다. 완벽한 이상향의 여인 에이코를 만나 사랑에 빠진 것이다. 에이코와 함께라면 늘 행복했던 토니. 외로움덕에 쓸쓸하지 않았던 인생에 처음으로 고독이란걸 느끼게 된다. 에이코가 날 떠나면 어떡하지. 이런 잡다한 고민에 속이 썩던 그는 에이코에게 청혼한다. 결국 결혼에 골인한 둘은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 뿐이었다. 너무 많은 의류를 사들인다는 생각에 아내에게 소비를 줄이자고 했던 조언이 예상치 못한 비극이 됐다. 토니는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선택할 겨를도 없이.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영화의 2/3쯤 된다. 난 영화가 말하려는 메세지가 남은 1/3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이 지점을 넘긴 영화는 아내 에이코의 부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 행동하는 토니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아내와 옷핏이 비슷한(실제 배우가 1인 2역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해서 부인이 샀던 의류를 입게 한다. 부인과 이미지가 비슷한 사람을 통해 처음 느낀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주인공. 이걸로는 택도 없음을 느낀다. 늘 혼자였을 땐 외로움을 몰랐는데 그녀가 떠나고 난 후에야 고독을 느낀 것이다. 이 이후에도 주인공과 까운 사람이 간암으로 상을 떠난다. 이 덕에 토니는 세상 아무도 찾지 않는 외톨이가 됐다. 영화는 아내의 옷장에 멍하니 있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안그래도 혼자인데, 아버지가 상하이의 어떤 감옥에서 누워있는 모습과 오버랩되어 처연하기까지 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아내와 닮은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하는 주인공 모습이 나온다. 따르릉 전화벨이 울릴 때 그녀는 옆집 아줌마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하느라 부재중이었기 때문에 통화는 실패한다. 영화는 그냥 그러고 끝난다. 완벽히 지운것도, 지우려고 노력하는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짓는다. 이 사람이 이 사건으로 성격이 이렇게 변했다는 식의 서술도 없다. 사실 이 영화의 이런 화법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그 사람같은 인연은 온 지구를 다 뒤져 찾아봐도 하나밖에 없다. 이 작품과 무슨 관련이냐? 부재로 인한 외로움에 해결책같은건 없단 걸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내 모습이 보였으니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빈자리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토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이런 나에게 또 우리에게 손을 내어준다. 우리를 일으켜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같이 쪼그려 앉아서 손을 잡아준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다. 난 이 이상의 인간이 아니구나. 나도 토니와 그렇게 별다를 바 없는 삶을 보냈구나. 몇년도 지난 일에 대해 후회하는 날이 많았다. 세상이 유달리 혹독할때도 하지 않았던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사는거다. 누군가가 떠난 빈자리를 느끼면서 말이다. 난 지금 그걸 이겨내고 있을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날 떠난다고 해서 난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둘 다 아닌것 같다. 이젠 세상 눈치 안보고 산다지만 몇명은 솔직히 멀어진다는 게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게 강박이 될때마다 나에게 되뇌인다. 감사하며 살아라. 내가 누군가에게 무언갈 받는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상대가 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를 잃을 필욘 없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을 잊어버리고 살다간 세상에 혼자만 남는다. 이게 지금의 나에게 답에 가까운 솔루션인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때는 지나간 날에 아쉬워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기에 이 영화가 좋았다. 이거 우리 모습인거 알아. 이런 메세지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감독은 공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를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원작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을 그대로 살린듯한 덤덤한 나레이션부터 앞서 언급한 '바로 옆에서 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까지. 이 영화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외로움과 쓸쓸함이란 그렇게 큰 감정이 아니라 우리 일생에서 친구처럼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도려내어 지극히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던 것도 우리 삶 속의 외로움을 돌이켜보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맞아. 외로움이라고 하는거 사실 별 것 아니다. 그 사람 사정은 그 혼자만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아직도 한참 멀었고 지나치게 어린 인생이지만 내가 느꼈던 일상이란 밑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기준을 남에게 둘때도, 여유가 생겼을때도 나는 목적지 없이 달리기만 했던 것 같다. 이건 특히 누가 나를 떠날때 심했다. 뭔가가 없다는 걸 느낄때마다 일을 벌였다. 바쁘게 살면 잊을 수 있을테지. 방구석에 앉아 누구를 만나는게 아니라면 난 이 생각에 빠져 무언가를 후회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강박증이 있는 머릿속은 지독하게 나를 붙잡아 놓아주질 않았다. 찌질한 모습 다 버렸고 내가 아니었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되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몇가지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럴때마다 매순간 드는 생각이 있다. 아. 있을때 잘할걸. 이 빈자리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채울 수 없는거구나. 어른이 된다는건 이 회한을 받아들이는 것이구나. 내 노력만으로 인간관계가 유지되지는 않는다. 뻔히 알면서도 가끔은 나는 나를 혼냈다. 괜찮아. 이 영화를 보고 드는 첫번째 생각은 그것이었다. 이 영화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은게 아닐까.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던 이유도 작품이 주는 쓸쓸한 카타르시스가 우리가 일상을 버티는 괜찮은 이유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이 세상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앞으로 예정된게 분명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게 25살의 내가 느낀 세상에 관한 모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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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AN 데일리] 유예된 항해의 빛
감독] 담가명Patrick TAM
출연] 장국영Leslie CHEUNG, 하문석Pat HA, 엽동Cecilia YIP, 탕진업Kent TONG
프로그램 노트] 홍콩의 영화평론가 스티븐 테오는 <명검>(1980)으로 데뷔한 담가명의 작품들을 두고 “홍콩 뉴웨이브 작가들 중 가장 덜 언급된 인물이지만, 서극이나 허안화 등과 비교해 가장 ‘성숙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 말했다. 더불어 “그는 동료 감독들에 비해 가장 세련되고 모던한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고도 덧붙였다. 담가명의 색깔이 가장 짙게 담겼다고 할 수 있는 <열화청춘>(1982)은 ‘왕가위의 <아비정전>의 전편’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만큼, 우리가 기억하는 장국영의 상처받은 청춘의 이미지를 앞서 보여준 영화다. ‘장국영 비긴즈’라고 불러도 될 이 영화에서 그는 ‘노마드’라는 요트를 타고 언제나 먼 곳으로의 여행을 꿈꾸는, 흔들리는 청춘의 모습을 섬세하게 연기하고 있다. 또 하나, 당시 담가명 감독의 영화가 동료 뉴웨이브 감독들의 영화와 비교해 가장 남다른 점이 바로 탁월한 프로덕션 디자인이었는데, <열화청춘> 등 여러 작품을 함께한 장숙평 미술감독은 그가 직접 발굴한 인재나 다름없다. 1980년대 모던 홍콩 영화의 진면목이 <열화청춘>에 담겼다. (주성철)
*영화 <열화청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홍콩의 여름은 덥고 습하다
영화는 덥고 습한 홍콩의 한 대금업자 집에서 시작한다. 대금업자를 찾아와 통 사정을 하는 빚쟁이에게 밉지 않게 퉁을 놓으면서도, 대금업자는 정작 ‘실무자’에게 모두 중국인이니 살살 하라고 하지 않았냐며 꾸짖는다. 우리 모두 중국인, 하다 못해 이 물건도 중국 물건… 이런 대사들은 홍콩 영화라서 의미심장하다.
같은 홍콩에,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저택도 있다. 호젓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이 있는 집. 그가 결혼을 통해 이 집에 들어오기 전의 집 주인이었을 여성, 그러니까 앳된 얼굴의 장국영이 연기하는 루이의 어머니는 라디오 DJ였다. 루이는 그 시절의 소리를 녹음해 자꾸만 듣고 있다. 소리를 죽여 놓은 텔레비전 위로, 라디오에서 베토벤 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더없이 동양적인 풍경 위로.
“동서양이 뒤섞인” 매력은 홍콩에 대한 교과서적인 표현이지만, 그 덥고 습한 여름은 단순히 동서양의 조화 뭐 그런 말로만 두루뭉술 담기지 않는다. 이 여름은 동양도 서양도 아닌, 그냥 홍콩만의 무드다. 비록 이 영화 속 청춘들은 쇼핑과 보석에 대한 구문을 익히며 일본어 회화를 열심히 배우고, 가부키 춤이나 액자 속 일본 가면 같은 문화를 즐기지만, 이들이 다른 장면에서 보여주는 홍콩 무드에 비하면 그 어설픈 흉내들은 어쩐지 조금 우스워 보인다. 홍콩만의 무드는 지켜져야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신스케를 대하는 아퐁의 입을 빌려 왜색에 일갈을 던지기도 한다.
이렇게 일본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순간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뒤섞이는 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홍콩 무드가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꼭 그래서만은 아니다. 진짜로 홍콩 무드가 더 좋아서 그렇다. 일본의 여름도 덥고 습하지만, 일본 영화나 만화 속 모습은 언제나 맑고 청량한 연둣빛이라 좀 거짓말 같은 데 비해 홍콩의 여름은 벽면의 곰팡이까지 사실적이다. 강렬한 색감, 거기 놓인 물건들, 홍콩을 담은 여름 장면들이야말로 진짜 여름 같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면면들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왜 그 시절의 홍콩 영화는 이토록 매혹적인가?
#떠나기 전에 가장 빛난다
이 영화는 감각적이다. 당연하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홍콩 영화 대다수를 맡은 미술감독 장숙평의 손이 닿았다. 왕가위에 비해 덜 알려진 이름이지만, 담가명은 홍콩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왕가위도 그의 영향을 받았으므로,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담가명 영화는 아주 낯설지만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장국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장국영인데. 아직도 우리가 그토록 사랑하는 얼굴의 앳되고 싱그러운 시절에, 그에게 유독 잘 받는 '유약하고 고독한 부자 청년' 역할이다. 소품과 옷의 색감들도 하나 같이 예뻐서 보는 즐거움이 있다.
음악과 여름, 젊음과 색깔이 사방천지에서 튀어나온다. 팍팍한 오늘날의 세상에서 보면 그것은 얼핏 여유로 비친다. 오늘날의 우리가 옛 홍콩 영화를 사랑하는 데에는 그 감각도 한 몫 할 것이다. 세상이 당장 끝난다 해도 오늘은 여름을 즐기겠다는 듯이, 마치 이 여름이 영원할 것처럼 향유하는 감각. 현실감은 조금 없어도 좋다. 실제로 토마토의 낡은 여행가방에는 화려하고 나풀나풀한 옷가지 몇과 조악한 봉제인형 정도만 들어있지만, 고작 그 정도 물건만 끌어안고도 토마토는 딱히 살아갈 걱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생각해 본다. 왜 여름과 청춘이 유독 옛 홍콩에서 빛날까? 그 세 단어 모두 시한부의 감각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얼핏 <열화청춘>의 ‘청춘’들은 흘러 넘치는 정염을 어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버스 안에서도 참지 못할 만큼 서로를 향한 사랑에 목이 마르지만, 부나방처럼 서로를 향해 자신을 온전히 던지지만, 그럴수록 스크린 밖에서는 유한을 실감할 뿐이다. 사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가족과 이웃의 방문으로 계속 호흡이 끊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쥐어 보려는 노력.
1994년작 <중경삼림>을 필두로 한 왕가위의 영화들이 1997년의 홍콩 반환을 목전에 둔 시점의 스산하고 각자 외로우며 알 수 없는 감각들로 붕 뜬 마음을 보이고 있다면, 1982년작 <열화청춘>은 그와 다른 결의 묘한 불안, 유한하기에 더욱 빛나는 순간의 감각들을 담고 있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 전, 그러니까 1970년대의 홍콩이 그랬으니까. 1990년대와는 다른 결의 묘한 불안이 깔려 있던 시기였다. 1971년, 중국의 UN 가입은 중국이 ‘중국’임을 인정받는 순간, 그러니까 대만의 ‘주권’을 밀어내는 순간이기도 했다. 99년의 할양 기간을 마치면 홍콩은 반드시 중국에게 반환되어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1970년대 홍콩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다시 요동쳤다.
1970년대가 가고 이 영화가 개봉하는 1982년은 마거릿 대처가 중국을 찾아 홍콩을 테이블에 올린, 그러나 아무 성과가 없이 결렬된 회담이 있던 해이기도 하다. 끝이라는 감각은 서서히 가까워 오는데, 아직 그 감각이 목을 턱 조이기까지는 한참 남아있을 때. 그렇다고 존재가 소진되지 않겠지만, '끝'의 이후에는 결코 지금 같지 않을 거란 예감을 목도할 때. 오후 4시 쯤의 햇살을 움켜쥐어 밤을 막아 보고 싶은 마음 같은, 그런 정염이 이 영화에 있다.
#항해는 유예된다, 그러나
루이의 방은 어쩐지 바다 같고 배 같다. 벽도, 이불도, 침대 옆의 등과 그 옆의 연필까지도 모두 짙은 푸른색이다. 심지어 루이가 잠시 냄새를 탐닉하겠다고 가져온 기름 통마저도. 텔레비전 위에는 배 모형이 놓여 있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갈 것만 같은 무드의 방이다. 급기야 루이가 보트를 푸른색 페인트로 칠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정작 영화에 나오는 배 ‘노마드’ 호에는 어쩐지 ‘배’의 감각, 그 운동성과 생기가 없다. 분명 바다에 나가 있고, 정박하고 있던 배를 바다에 풀어놓은 것이건만, 루이의 방만큼도 운동성이 없다. 루이는 이 배를 타고 아라비아에 가고 싶다고 하지만, 여기서 아라비아라는 말은 과연 유토피아, 발할라, 샹그릴라와 얼마나 다른 이름일까 싶다. 이상향은 이상향일 뿐, 항해는 유예된 채였다. 유예된 항해는 성공할 수 없다. 배의 여정은 목적지에 다다를 때야 완성되므로.
청춘들이 노마드 호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때 사랑했던 인연을 숨겨 보는 정도다. 이를 계기로 떠날 궁리도 해보지만, 항해가 유예된 동안 이미 가까워진 존재가 있다. 불시에 도적처럼 덮쳐온 자객의 존재. 극과 극은 통한다고, 난징 대학살을 벌인 일본 제국주의는 중국과 역사적으로 척을 지고 있음에도, 전체주의적이라는 점에서 중국과 아주 다른 모양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에는 아름다운 장면이 참 많았지만, 가장 꿈처럼 보였던 장면은 마지막으로 식탁을 같이 차리는 네 사람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들 같”다는 말에, “사회가 뭔데?” 거칠게 되물으며 우리가 사회라고 대답하고, 바로 이어 네 사람이 같이 식탁을 차린다. 그 모습은 정말 ‘사회’ 같다. 누가 누구에게 군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역할을 나누어 각각의 할 일을 하며 그 결과를 함께 누리는.
어쩌면 이들이 ‘아라비아’에서 차리고 싶었던 식탁, 거기서 이루고 싶은 사회도 이런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살아남은 루이와 토마토가 이런 식탁을 차릴 수 있을까. 요원해 보여 더 꿈처럼 느껴지는 이 장면을, 언젠가 미래의 다른 영화에서 기시감으로 느끼고 싶다.
2023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6/29-7/9) 상영시간표
7월 2일 11:00-12:33 메가박스 부천스타필드시티 5관 (상영코드 412)
7월 5일 20:00-21:33 부천시청 판타스틱큐브 (상영코드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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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핸섬가이즈 | 잘생긴 이유를 찾는 공포 코미디 오컬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칭 터프가이 ‘재필’(이성민)과 섹시가이 ‘상구’(이희준). 하지만 실상은 한 번 보면 겁을 먹지 않을 수 없고, 잊을 수도 없는 첫인상의 소유자들. 그들은 이사 온 첫날부터 험악한 인상 때문에 동네 경찰 ‘최 소장’(박지환)의 의심을 사지만, 그간 꿈꾸던 유럽풍 저택을 수리하며 새 출발을 고대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재필과 상구는 의도치 않은 위기에 처한다. 펜션에 놀러 왔던 대학생 '성빈'(장동주) 및 친구들과 마트에서 갈등을 빚고, 그들 중 하나인 ‘미나’(공승연)를 호수에서 구하다가 납치범으로 오해받기까지 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이사 오던 길에 죽은 걸 발견해 집 뒤 야산에 묻어준 흑염소가 오래전 봉인됐다가 탈출한 악마 '바포메트'로 밝혀진다. 그렇게 재필과 상구는 이사 첫날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마주한다.
한국 영화에 수혈된 새 피
올해에도 어김없이 들리는 말이 있다. '한국 영화의 위기'. 팬데믹이 끝난 후로 여전히 관객 수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상황이다. 천만관객을 돌파한 <파묘>와 <범죄도시4>를 제외하고 100만 관객을 넘은 한국영화는 <시민덕희>, <외계+인 2부>, <그녀가 죽었다>, <건국전쟁>까지 4개에 불과하다. 200만 명을 돌파한 작품은 없다. 중박 영화가 사라진 채 양극화가 극심해졌다.
주된 이유로는 비싼 영화값과 OTT 영향력의 확대가 꼽힌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원인이 더 있다. 그중 하나가 새로움의 부재다. <범죄도시> 같은 브랜드 파워는 갖추지 못한, 스타 배우와 익숙한 소재 및 구성으로 무장한 텐트폴 영화의 실패가 그 방증이다. 반면에 <잠>, <파묘>처럼 다소 낯선 장르나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작품은 의외로 성공했다. 즉, 흥행 공식을 반복하는 권태로움이 영화관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키운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핸섬가이즈>는 박수가 아깝지 않다. 오컬트, 코미디, 고어, 심지어 뮤지컬까지 그간 한국 영화에서 접하기 힘들었던 장르와 소재만 골라 모았다. 그러면서도 마냥 가볍지는 않은, 뼈 있는 웃음을 자아낸다. 치지 말라는 공만 때렸는데 보기 좋게 장타를 만든 셈이다. 비록 마이너 한 장르라서 당장의 흥행은 어려워도, <핸섬가이즈> 같은 도전과 실험이 이어지면 관객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낯선 맛으로 가득한 한 상
<핸섬가이즈>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은 상술했듯이 장르다. 쉽게 다루기 어려운 장르만 골랐다. 우선 눈에 띄는 장르는 오컬트다. 과거 외국인 선교사가 간신히 봉인해 둔 '바포메트'가 전해져 오던 예언대로 깨어날 때, 그를 막을 세 명의 사도 혹은 천사가 등장한다는 이야기다. 소재 자체는 <검은 사제들>과 비슷하지만, <천박사: 퇴마 연구소>처럼 무겁지는 않은 비슷한 톤 앤 매너를 보여준다는 차이가 있다.
그러면서도 오컬트 공포 영화 이상으로 놀랄만한 대목이 적지 않다. 원작인 <터커 & 데일 Vs 이블>의 색채를 빼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고어한 연출이 꽤 빈번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분쇄기에 빨려 들어가거나, 나무에 찔려 죽은 시체에 구멍이 나는 식이다. 그 앞뒤로 코믹한 연출을 더해서 충격을 상쇄하고는 있지만, 15세 이상 관람가가 맞나 싶은 수준으로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는 묘사인 것은 분명하다.
심지어 뮤지컬 영화 요소도 일부 차용했다. 상구와 미나가 같이 설거지하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처럼 '설거지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 3'이라는 테이프를 틀고 춤을 춘다. 강아지와 함께 합을 맞추기도 하고, 거실을 마치 무대 위처럼 누빈다. <킹스맨> 시리즈가 연상되는 B급 감성도 가득하다. 이처럼 <핸섬가이즈>는 한국 영화에서 실험적이라고 평가할 법한 화법만 모아둔 작품이다.
코미디라는 접착제
그런데도 <핸섬가이즈>는 난잡하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각 장르의 재미도 모두 맛볼 수 있다. 코미디가 그 원동력이다. 우선 코미디 자체의 타율이 높다. 원작을 보지 않은 이상, 클리셰를 끊임없이 비트는 웃음 포인트를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 일례로 <핸섬 가이즈>는 여름 여행을 간 친구들이 한 명씩 죽는다는 익숙한 펜션 괴담을 차용했다. 그런데 펜션 대신 서양식 주택과 기도실을 활용해 오컬트 작품으로 자연스럽게 변환한다.
주인공 클리셰도 비틀어서 유머로 활용한다. 무당이나 퇴마사 같던 재필과 상구가 사실 그저 전원생활을 꿈꾸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었다는 식이다. 작중 모든 사건이 우연한 사고라는 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장면들은 급격한 장르 전환으로 인한 어색함을 감춰주고, 통일성과 안정감을 불어넣는다. 소품을 허투루 쓰지 않는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한 번 등장한 소품은 어떤 식으로든 임팩트 있게 재등장한다. 부러진 기둥처럼.
배우들의 조합도 코미디를 역으로 강화한다. 사실 이희준, 이성민 두 주연 모두 악역이나 흑막의 이미지가 더 강한 배우다. <남산의 부장들>에서도 대통령과 경호실장으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그런 그들을 푼수 동생과 츤데레 형 조합으로 활용하면서 대중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파괴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공승연 활용법도 남다르다. 20대 초반이라 가능한 독특한 입담이 또 하나의 웃음 포인트다.
코미디에 뼈가 있다
심지어 코미디는 단순히 코미디로 끝나지 않는다. <핸섬 가이즈>를 관통하는 모티브가 편견의 역이용이기 때문. 영화는 두 주인공을 억울한 상황에 던져 놓고, 당황한 그들의 리액션을 유머 재료로 삼는다. 상구가 마트에서 넘어진 미나를 일으켜 줘도, 상민이 호수에서 실족사할 뻔한 미나를 구하고 CPR을 시도해도, 그들은 성추행범으로 오해받는다. 로드킬 당한 염소 사체를 치워도 지나가던 경찰은 그들을 살인범으로 의심한다.
특히 타인들이 유독 그들만 의심하는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들의 행동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그들의 험악한 인상과 외모가 문제다. 재필과 상구는 자신들의 외모에 대해 콤플렉스도, 자격지심도 없다. 그러나 타인들은 그들의 얼굴만 보고서 가장 안 좋은 상황만 가정한다. 오직 외모 때문에 차별받는 것은 아니지만, 오해를 살만한 상황에서는 그들의 외모가 결정적인 심증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이처럼 코미디 뒤편으로 은연중에 깔린 메시지는 두 주인공과 대학생 일행의 대비를 통해 비로소 수면 위로 떠오른다. 외견상 말끔해 보이고, 별장과 골프장을 골라 다니는 부유한 대학생들이 알고 보니 마약과 성폭력 범죄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 그 덕분에 재필과 상구가 겪는 해프닝을 보고 웃다 보면 마음이 슬며시 불편해진다. 대학생이 무고한 피해자일 것이라는 편견을 자각하게 되니까.
코미디와 오컬트의 연결고리
이에 더해 오컬트적인 전개와 코미디에 담긴 메시지가 예상외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덕분에 <핸섬가이즈>는 더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가톨릭 베이스의 퇴마물인데, 영화의 메시지가 천주교 교리와 직접 맞닿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핸섬가이즈>라는 제목도 압축적이라서 흥미롭다. 외모에 대한 편견을 기독교적인 선악관으로 전환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흔히 신약 성경의 예수는 구약 성경의 모세가 남긴 십계명 같은 율법을 단 두 조항으로 요약했다고 알려져 있다. '신을 공경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 특히 예수는 이웃 사랑을 강조한다. 소외받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자기 가족처럼 아끼라고 가르친다. 설교뿐만 아니라 실천도 한다. 죄인, 여성, 세리, 사마리아 사람, 문둥병 환자 등 당대에 사회적으로 멸시받던 이들에게 그는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핸섬가이즈>는 이를 미나를 대하는 태도와 연계해 오컬트적으로 풀어낸다. 성빈과 친구들은 미나를 철저히 무시하고 이용해 먹으려 한다. 지방 출신에 집도 가난하고 가진 것도 없다면서. 같은 맥락에서 그들은 '병조'(강기둥)를 운전기사 겸 요리사로 부려 먹는다. 재필과 상구는 다르다. 그들은 귀찮거나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먼저 선행을 베푼다. 위기에 처한 미나를 구하고 도와줄 때도, 로드킬 당한 흑염소를 매장할 때도.
미나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성빈의 외모나 재력에만 주목하고, 겉모습만 보고 재필과 상구의 호의를 의심한다. 하지만 그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며 자기 편견을 반성한다. 영화는 이러한 차이를 오컬트적으로 풀어낸다. 예수의 말대로 선행을 베푸는 재필, 상구, 미나는 바포메트를 무찌를 예언 속 천사로 밝혀진다. 그들을 무시한 성빈과 친구들은 악마를 깨울 제물이 된다. 겉모습을 이용한 유머를 단순한 코미디로만 볼 수는 없는 이유다.
반 숟가락 남은 마지막 아쉬움
다만 <핸섬가이즈>라는 실험이 완벽하지는 않다. 원작 영화를 봤거나, 장르 영화 마니아라면 매끄럽지 않은 지점이 적지 않다. 더 잔인하거나 코미디 상황에서 더 뻔뻔하게 연출했어야 할 장면이 있다고 여길 수 있으니까. 이에 더해 애써 감추고 있지만, 장르가 변환되는 지점에서 서로 다른 장르의 문법이 충돌하거나 타이밍이 다소 어색한 지점이 순간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또 원작을 리메이크하면서 한국적인 감성을 더하려고 했는데, 이 지점에서도 망설이는 듯한 지점이 있다. 일례로 박지환 배우를 경찰 역으로 캐스팅한 이상, <범죄도시> 속 '장이수'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묘사를 통해 더 강한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신부님을 등장시킬 때도 <검은 사제들>을 오마주 하는 식으로 현지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지만 이러한 단점은 크게 눈에 띄지 않을뿐더러,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슷한 장르와 전개가 반복되는 한국 영화라는 호수에 꽤 묵직한 돌멩이 하나가 던져진 거처럼 보이니까. 상업영화라는 점에서 <핸섬가이즈>라는 돌멩이는 더 용감해 보이고, 그 파란이 더욱 멀리 퍼져 나가기를 바라고 싶어지기도 한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치지 말라는 공만 골라 쳐 만들어 낸 기대 이상의 3루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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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에 또 구하러 와줘
SYNOPSIS.
무성영화 시대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스턴트맨 ‘로이’는 같은 병원에 입원한 호기심 많은 어린 소녀 ‘알렉산드리아’와 친구가 되고, 매일 다섯 무법자의 환상적인 모험 이야기를 해준다. 이야기는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면서 ‘알렉산드리아’를 신비의 세계로 데려간다.
POINT.
✔️ '우리는 모두 펩시를 마시죠' 하면서 전세계를 오가는 축구공을 담았던 옛날 광고를 아시나요? 그 광고의 감독이 전세계를 오가는 이야기를 담아온 영화를 기대하시면 됩니다. 전세계 18개국에서 촬영했다네요.
✔️ CG를 쓰지 않고 촬영한 전세계 곳곳의 아름다운 모습은 딱 지금 극장에서 보아야 합니다. "압도적인 영상미"라는 진부한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는 경험.
✔️ 두 주연 배우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리 페이스의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실제로 대본 속 상황이 사실인 줄 알고 연기했다던 카틴카 언타루의 모습.
✔️ 이야기와 영화에 바치는 헌사. 이야기 혹은 영화가 나를 "구했다"고 느낀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사랑하실 수밖에 없을 것.
끝나는 순간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영화가 있다. 여러 의미에서 이 영화도 그러하다. 장엄한 세계 곳곳의 풍광을 배경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겹겹이 펼쳐진다는 점에서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 하며 처음 볼 때와, 영화를 이미 보고 내용을 알고 볼 때 다른 감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흑백 "영화" 같은 장면들. 멈춘 듯한 풍경 속에서 슬로우가 걸린 역동적 몸짓들. 이는 타이틀 이후 병원의 장면들로 이어진다. 병원의 아이들 또한 멈춘 듯한 풍경 속에 있다. 어떤 아이는 고요하게 눈망울에 슬픔을 올리고, 어떤 아이는 악 쓰듯 우는 곳에서, 알렉산드리아만이 아이들이 고유하게 갖는 감각을 유지한 채 병원을 두루 탐험하고 있다.
그곳에서 로이와 알렉산드리아는 서로를 발견한다. 그림자가 거꾸로 맺히는 것을 보며 (언젠가 영화가 될 이야기를 찾듯) 헤매고 있던 알렉산드리아와, 그의 이름에서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로이는, 어떻게 보면 영혼이 닮아 있는 사람들이다. 어디서든 이야기를 찾아내고야 마는 사람들. 언제든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 애쓰지 않아도 이야기를 캐낼 수 있고, 상상 속에서 장엄한 풍경까지 그려낼 수 있는 사람들.
그러한 존재들이라고 해서 세상살이가 녹록하다는 보장은 없다. 로이는 이야기에 기꺼이 뛰어들었다가 상처 입고 절망한 존재다. 두 사람 모두 추락(the fall)을 경험하면서 이 병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의 추락은 단순히 신체의 추락과 부상만이 아닌, 이야기의 실패와 거기서 기인하는 영혼의 절망과도 연결되어 있다. 로이는 영화 판에서 더이상 스턴트를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사랑의 서사도 실패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아직 너무 어린 탓에 아버지와 집을 잃은 모종의 사건을 온전한 서사로 정리하지 못한 채, 조각난 상처를 어딘가에 안고 있다. 서로를 발견한 것은 어쩌면 이들 안의 추락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야기는 곧 의기투합한다. 로이는 절망으로 가는 길에 도움을 받고자, 알렉산드리아에게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준다. 이야기 속 악당, 이름부터 끔찍하다는 뜻인 오디어스(odious)는 이야기 초입에서 마치 신과 같은 속성을 갖는다. 무소부재(omni-present)하고 전지전능하다. 전심으로 가리고 막아도 뚫고 들어오며(인도인), 사람을 지배하고(오타 벵가), 법과 제도 위에 군림하며(루이지), 내밀한 소망까지도 모두 알고 있다(찰스 다윈). 더 끔찍한 것은 오디어스 본인에게 아무 유익이 없는, 나비 날개 같은 소망을 부수는 행위를 굳이 하는 자라는 점이다. 오디어스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오는 불행, 추락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은 오디어스의 뜻대로 서로를 죽고 죽이는 대신 각자의 특기를 살려 오디어스에 저항한다. 그러나 온전한 절망, 온전한 추락으로 향하겠다는 마지막 '소망'마저 좌절되면서, 로이는 자신의 절망을 이야기에 투영하고 오디어스를 향한 저항은 허무하리만큼 쉽게 끊어져 간다. 잔인한 죽음을 차례차례 목도하며, 로이는 그 죽음이 자기 차례까지 오기를 기다려 이야기를 끝내려 한다.
그때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에 뛰어든다. 로이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을 즐겁게 듣고 있었지만, 알렉산드리아도 그림자로 장난을 치고 눈을 한쪽씩 깜빡거리며 언젠가 영화가 될 것들을 일상에서 보는 존재였다. 더 이상 구하러 올 사람이 없는 이야기에 씩씩하게 뛰어든 알렉산드리아는 로이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반복해서 사랑을 말함으로써, 그리고 이야기 속 투영된 로이의 존재(She loves "you")를 명명함으로써 이야기를 구원한다.
이야기 속에서 짐승 소리를 내며 무수하게 몰려들었던 오디어스의 부하들은 물론, 신의 속성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던 오디어스 본인조차 결국 한 작은 사내가 된다. 절망은 결국 걷어낼수록 작아져 마침내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가 된다.
그렇다면 절망을 걷어내고 우리를 구하는 것은 누구인가. 해피엔딩이 없는 이야기라면 기꺼이 그 안에 뛰어들어 스스로 해피엔딩을 만들어내는 존재. 서사를 사랑해서 세상을 구하는 존재. 이야기 안에 자기를 다 던지는 존재. 설령 실패하더라도 다시 서로를 명명하여 끝내 다시 살아가게 하는 존재.
누군가에게는 영화로, 누군가에게는 영화에 전심을 다한 (스턴트 배우를 비롯한) 영화인으로, 누군가에게는 이야기로,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으로... 읽힐 그 존재. 영화 <더 폴>은 우리에게 그 존재를 데려온다. 때로는 패기 있고 멋지지만 때로는 좌절하며 쓰러져도... 괜찮다. 우리 안의 짐승 같은 절망이 나를 어둡게 덮칠 때, 기꺼이 나의 이야기에 뛰어들어 나를 구해줄 무언가(혹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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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치한 재미로 승부를 보다
이제 마블을 보려면 공부가 필요하다. 마블에 늦게 입덕한 자로서 영화 한 편 한 편이 개봉할 때마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게 토르 1, 2편을 몰아보고, 3편은 볼 시간이 없어서 위대한 유튜버 선생님들의 요약본을 보면서 복습을 하고 영화관에 찾아갔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 시놉시스"신을 죽이는 자, 신이 상대한다!"
슈퍼 히어로 시절이여, 안녕! 이너피스를 위해 자아 찾기 여정을 떠난 천둥의 신 토르. 그러나 우주의 모든 신들을 몰살하려는 신 도살자 고르의 등장으로 토르의 안식년 계획은 산산조각 나버린다. ‘토르는 새로운 위협에 맞서기 위해, 킹 발키리, 코르그, 그리고 전 여자친구 제인과 재회한다. 그녀가 묠니르를 휘두르는 마이티 토르가 되어 나타나 모두를 놀라게 한다. 이제, 팀 토르는 고르의 복수에 얽힌 미스터리를 밝히고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한 전 우주적 스케일의 모험을 시작한다.
* 해당 내용은 네이버 영화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에는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의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웃긴 영화영화 토르의 1, 2편을 보고 굉장히 진중한 컨셉에 조금 지루했었다. 3편은 요약편을 덕택에 이렇게까지 토르가 웃긴 캐릭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처음부터 끝까지 깔깔깔 웃다가 나왔다. 토르 3편에서 분위기가 확 바뀌다보니 3편을 본 사람들 중에서 그 재미가 전작만 못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나는 3편을 요약본을 본 터라 굉장히 재밌게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영화 자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소비영화로서 2시간 깔끔하게 웃으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위험에 빠진 왕국들을 구하러 다니면서 보상으로 받은 염소 2마리,,, 한국의 고라니인가 싶을 정도로 비명을 지르는데,, 아주,, 재밌었다. 비명소리로 관객을 이렇게 웃길 것이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느슨해진 영화의 유머감에 한 순간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신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의 강력한 빌런 고르. 신 도살자인 고르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바로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지면서 신 도살자로 거듭니다. 가뭄이 찾아오면서 사람들이 모두 죽어가고 자신과 딸 밖에 남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신이 섬기는 신을 만난 고르는 그 신에게서 자신은 필요 없고, 자신을 믿어주는 다른 이를 찾으면 된다는 말에 네크로소드를 가지고 신을 죽이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면서 신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백성을 져버린 신과 다르게 아스가르드 백성이 있기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토르의 믿음이 대비되면서 신은 자신을 믿어주는 백성들의 신념 속에서 피어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근데 사실 나는 무신론자여서 이러한 장면이 꼭 신에게만 적용된다기 보다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자신의 권력과 권위는 스스로의 힘이 아니라 자신을 믿고 지지하는 사람들의 신망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확장해서 받아들였다.
우상은 우상으로 남는 것이 좋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가장 놀랐던 점은 제우스가 너무 별로라는 점이다. 만화책에서 본 제우스는 저렇게 생기지 않았었다. 엄청난 위압감을 가진 신들의 신 제우스가 배불뚝이 아저씨로 나와서 순간적으로 엥?? 했던 장면이었다. 물론 외관으로 평가를 해서는 안되지만 상상했던 이미지와 너무 달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는 행동들 역시 자신들의 왕국만 지키면 되고, 다른 신들이 죽는 것에서는 상관없어하는 천하의 안하무인적인 태도를 보면서 토르는 그동안 자신이 존경하고 흠모한 제우스가 이런 존재라는 사실에 실망한다. 누구나 자신이 존경하고 본받고 싶어하는 존재들이 있지만, 정작 그들의 실제 모습을 보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상은 가까워지지 않고 자신이 상상으로 우상으로서 존재했을 때 더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모습에 친근함을 느낄 수는 있지만, 제우스처럼 자신의 왕좌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된다면 엄청난 실망감이 몰려올테니 말이다.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마블 영화치고 그리 길지 않았던 러닝타임과 빵빵 터지는 유머요소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귀여운 만두신을 볼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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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생충' 촬영장소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서울 로케이션 답사영상
? 기생충 촬영지 (로케이션) 답사영상
음... 어르신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카데미의 기운을 받으러 갔습니다!!- 로케이션ㅣ주소
1. 자하문 터널ㅣ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219
2. 돼지 쌀 슈퍼ㅣ서울 마포구 손기정로 32
3. 기택 동네 계단ㅣ서울 마포구 손기정로 6길
4. 기사식당ㅣ서울 마포구 희우정로 72
5. 스카이 피자ㅣ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6길 86
6. 올가홀푸드 방이점ㅣ서울 송파구 양재로 71길4
7. 박사장 집ㅣ서울 성북구 선잠로 8길"이 영화는 악인이 없으면서도 비극이고, 광대가 없는데도 희극이다."
- 봉준호, 텐아시아 인터뷰, 2019.05.31.- 기생충의 의의
한국 영화사 최초의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두 번째 영국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각본상 수상작, 비영어 영화 최초 SAG 미국 배우조합상 앙상블상, 그리고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영화상 수상작- 스태프
감독: 봉준호
각본: 봉준호, 한진원
윤색: 김대환
원작: 봉준호
제작투자: 이미경, 허민회
제작: 곽신애, 문양권
프로듀서: 장영환
조감독: 김성식
출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박소담, 장혜진, 이정은, 박명훈 외
촬영: 홍경표
미술: 이하준
음악: 정재일
음향: 최태영
편집: 양진모
장르: 드라마, 블랙코미디, 스릴러
제작 기간: 2018년 5월 18일 ~ 2018년 9월 19일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기생충촬영지 #봉준호수상소감 #봉준호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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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이브 <해리포터 : 호그와트 토너먼트> 예고편
해리포터 덕후들이 들으면 가슴 설렐 소식 도착. 기숙사의 명예를 건 호그와트 토너먼트. 토너먼트 참가자들은 기숙사의 명예를 걸고 해리포터 퀴즈에 도전하게 되는데.. 과연 최종 우승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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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용과 주근깨 공주> 30초 예고편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닌 '스즈'는 사고로 엄마를 잃은 후 더이상 노래할 수 없게 된다.
평범한 나날이 계속되던 중, 우연히 가상세계 U에 접속하게 된 '스즈'
그는 그곳에서 신비로운 가수 '벨'로 다시 태어나 순식간에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런데 '벨'의 대규모 콘서트가 열리는 어느 날, '용'이라 불리는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큰 상처를 안고 있는 듯한 '용'에게 신경쓰이는 '벨' 그리고 현실의 '스즈'
과연 '스즈'의 목소리는 그에게 까지 닿을 수 있을까?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질 때, 기적이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