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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2022-03-13 14:01:14

고립과 외로움에 관한 엽기적인 고찰

영화 <스위스 아미 맨> 리뷰

 

 

 

스위스 아미 맨 (Swiss Army Man, 2016)

“고립과 외로움에 관한 엽기적인 고찰”

 

 

등급 : 15세 관람가

장르 : 모험, 코미디, 드라마, 판타지

러닝타임 : 98분

감독 : 다니엘 콴, 다니엘 쉐이너트

출연 : 폴 다노, 다니엘 래드클리프,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리처드 그로스

개인적인 평점 : 3.5/5

 

 

스위스 아미 맨 줄거리

행크는 외딴 섬에 표류 중으로, 집에 돌아갈 모든 희망을 포기한 상태. 하지만 어느 날 매니라는 이름의 시체가 해변으로 떠밀려 온 후, 모든 것이 달라진다. 둘은 빠른 속도로 친구가 되고, 행크의 이상형에게로 돌아갈 대모험을 시작한다.

 

 

 

 

이 괴랄하고 감동적이며 슬프기도 한 영화를 어떻게 포장해야 할까… 오래 고민했다. 

<해리포터 시리즈>속 해리로 아주 오랜 시간을 보내며 ‘해리포터’라는 이미지에 갇혀있던 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가장 파격적인 일탈로 꼽히는 영화이자 이번에도 범상치 않은 폴 다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 그리고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B급인듯한데 왠지 감동적이고 다시 보고 싶은 영화. 허? 이게? 대체? 싶어서 헛웃음이 나다가도 어느새 스며들어 버리는 영화. <스위스 아미 맨>은 대략 이런 영화다. (아, 그리고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시체 연기를 한... 파격적인 영화로도 유명하다...)

 

 

 

<스위스 아미 맨>을 처음 봤을 때, 방구석에 앉아 혼자 몇 번의 헛웃음을 발사했다. “미치겠다…”는 말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부르륵 방귀를 뀌어대는 시체와 너무 오래 고립되어 미치기라도 한 건지 시체에게 말을 걸고 시체를 이용(?) 하기까지 하는 남자. 다르게 본다면 비위가 상하는 이 상황이 나에겐 웃기고도 슬프게 다가왔다면… 단박에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 영화의 표현법은 신박하다 못해 엽기적이다. 인류 사회에서 철저히 고립된 것으로 보이는 무인도에 떨어진 남자 행크와 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람 ‘이었던' 존재 매니. 별별 형태의 우정을 다 봐왔지만 시체와의 우정은 또 처음이다. 대체 이걸 어떻게 풀어가려고 이러는 거지?싶었는데 이걸 또 그럴싸하게 풀어내는 재치에 난 모든 걸 다 내려놨다.

 

 

 

줄거리만을 보면 이게 대체 무슨 영환가 싶겠지만 놀랍게도 <스위스 아미 맨>은 사회에서 느끼는 열등감을 피해 스스로 고립된 사람의 모습을 그린 다소 씁쓸한 영화다. ‘그냥 미친 영화’가 아니라는 거다.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찾는다면 <캐스트 어웨이>와 우리 영화 <김씨 표류기>가 있겠다. 그중에서 <김씨 표류기>와 비교를 해보자면 이렇다.

 

<김씨 표류기>는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 승근이 운수 좋게(?) 살아남아 무인도에 갇힌 채 그 안에서 또 다른 외톨이 정연과 함께 삶의 목적을 찾는 여정을 보여주고, <스위스 아미 맨>은 앞 사정은 알 수 없지만 현재 무인도로 추정되는 곳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주인공 행크가 파도에 밀려온 시체 매니를 등에 업고 다시 도시로 가기 위해 벌이는 모험을 보여준다. 두 영화의 주인공 모두 사회에서 소외된 인물이며 이들은 상처를 잔뜩 받고 ‘무인도’라는 분리된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누군가와 새로운 관계를 맺을 바엔 차라리 혼자가 되어버리는 게 편하다며 스스로 고립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대사회의 모습과 닮은 모양새다.

 

그렇게 고립된 주인공들이 아무것도 없는 무인도에서 다시 삶의 희망과 우정을 찾는 외톨이들의 여정은 희망과 씁쓸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다만 <김씨 표류기>는 희망 쪽에 가까웠다면 <스위스 아미 맨>은 씁쓸함에 좀 더 가까운 영화다. 줄거리만 보면 전혀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쓸모없는 사람

 

행크가 어떤 방법으로 무인도에 들어왔는진 확실히 나오지 않지만, 그가 무인도로 들어오게 된 이유는 확실하다. 매니와 행크의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행크는 어릴 적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고 아버지와의 사이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는 짝사랑하고 있는 대상에게 말 한번 제대로 걸지 못하고 늘 조용히 바라보기만 한다. 어디에도 진하게 속하지 않고, 어디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 사회에서 행크는 딱 이런 사람이다. 행크는 그렇게 흘러 흘러 사회와 담을 쌓고 무인도에 이른다.

 

매니가 행크에게 왜 이 물건들이 버려졌는지 이유를 묻자 그것들은 텅 비고 쓸모를 다했기 때문에 버려진 것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있다. 어쩌면 이 쓸모없어서 버려졌다는 대답은 쓰레기가 아닌 자신을 주체로 하는 답변이었을지도 모른다. 고립된 무인도에서 자살까지 결심했던걸 보면 말이다.

 

 

 

 

쓰임새가 너무 다양한 시체와의 만남

 

파도가 잔잔하게 들이치고 있는 해변가. 꾀죄죄한 몰골을 한 행크가 자살을 시도한다. 이 풍경도 이제 끝이겠구나-하며 마지막으로 바다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해변에 누워있는 한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놀라는 바람에 얼떨결에 대롱대롱 매달린 상태가 되어버린 행크는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 매니의 등장은 죽음만을 바라던 행크가 살길을 찾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행크는 자살을 위해 묶어뒀던 밧줄을 주워 매니의 몸에 감고 집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처음엔 살아있는 사람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시체인 것까지 알았는데…? 어째 이 시체는 기능이 너무 다양하다. 매니는 말도 하고, 빗물을 받아 정수기처럼 쓸 수도 있고, 무기가 되기도 하고, 건축 장비가 되기도 한다. 매니는 마치 맥가이버 칼같다. 남자들의 로망 그 자체인 만능 맥가이버 칼 말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 영화의 제목이 왜 <스위스 아미 맨>인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선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와 매니의 특징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만능 칼이라 불리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처럼 매니는 행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생존을 위한 기능들부터 자신의 상처들을 털어놓는 말벗과 의지가 되는 친구로서의 역할까지. 모든 걸 뚝딱 해내는 행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만능 칼. 그게 바로 매니다. 매니는 행크에게 생존 도구와 말벗이 되어주고 행크는 매니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알려주며 돈독한 우정을 쌓아간다.

 

 

 

사실 이 만능 시체, 매니의 존재가 너무 비현실적이지만 그저 웃음만 날뿐, 그의 존재를 부정할 수가 없었다. 또 행크가 매니를 의지하기 시작하면서 더더욱 매니의 존재가 이상한 것이 아닌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는데… 나는 이렇게 조금씩 매니의 존재에 스며들었다. <캐스트 어웨이>엔 배구공 윌슨, <김씨 표류기>엔 허수아비가 있다면 <스위스 아미 맨>엔 시체 매니가 있다. 뭐…그런 거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인정하게 됐다.

 

 

 

의외의 곳에서 얻은 위로

 

행크는 매니와 함께 모험을 하며 매니의 말에 위로를 받는다. 상황은 조금 웃기지만 행크를 위로하는 매니의 말들은 시체답지 않게… 따뜻한 구석이 있다.

 

 

 

“나도 너랑 똑같이 하면 넌 이상하지 않잖아.”

“엄마는 행크가 행복하길 바랄 텐데..”

“우린 서로가 있잖아!”

 

지칠 때마다 듣고 싶은 간단하지만 가장 강력한 위로의 말들. 행크는 매니의 위로를 등에 업고 용기를 내 세상으로 나간다. 하지만 슬프게도 잠시 그리워했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큰 관심이 없고, 짝사랑한 그녀는 연인과 아이가 있고, 다른 사람들은 매니를 그저 오래된 시체로 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행크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행크가 바란 건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함께해 주는 것뿐이었는데 그 작은 바람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희망을 잃은 행크는 겨우 돌아온 도시를 등지고 매니와 함께 바다로 향한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 도시보다 차라리 시체와 함께 바다로 돌아가겠다는 그의 선택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씁쓸해진다. 영화의 마지막엔 모두 보란 듯 매니가 방귀를 이용해(…) 넓은 바다로 떠나는 모습을 꽤나 희망차게 담아내긴 하지만, 결국 그곳에 혼자 남겨질 행크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되어 마냥 유쾌하게 느껴지진 않는 엔딩이었다.

 

생각해 보면 행크는 매니를 만나기 전까진 무인도를 탈출할 마음이 아예 없었던 것 같다. 매니에게 여러 도움을 받긴 했지만, 사실 혼자서도 탈출할 수 없을 만큼 바다와 마을의 거리가 엄청 멀거나 위험한 요소가 많지도 않았다. 행크가 적극적으로 탈출에 나선 이유는 그가 짝사랑한 새라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매니를 통해 얻은 희망과 용기가 더 큰 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묵묵히 나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해 주고 함께해 주는 친구. 이런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용기를 내어 살아가기엔 충분한데 내가 이런 친구가 되어주기도, 이런 친구를 만나기도 참 어려운 게 문제다.

 

 

 

영화의 초반만 해도 이럴 줄 몰랐다. 그냥 이마를 짚으며 하…방귀 ㅋㅋ……하며 한숨을 쉬던 내가 이렇게 이 영화에 진심으로 몰입하게 될 줄은. 분명히 호불호가 심하게, 그것도 불호가 꽤 많을듯한 영화지만 비위가 강한 편이라면, 병맛 코드를 좋아한다면,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폴 다노 두 배우를 좋아한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충분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말하는데… 방귀의 모멸감과 어이없음을 참고 넘길 참을성과 비위가 없다면 슬쩍 까치발 들고 피해 가시길 추천드린다.

작성자 . 혜경

출처 . https://blog.naver.com/hkyung769/22267129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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