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2-03-13 22:21:14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2022)
우리는 성장하면서 계속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또 도전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무척 애쓴다. 청소년 시절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바로 시험이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그리고 궁극적으로 가장 큰 목표인 수학능력시험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우리 교육 시스템 안에서 학교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많은 것을 배우는 것에 있겠지만 결국에는 좋은 시험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가장 클 것이다. 그렇게 다양한 과목을 공부하고 또 시험을 보면서 누군가는 그 결과에 만족하고 또 한걸음 나아가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실망스러운 결과를 받아 든다.
삶의 많은 것이 그 시험의 결과에 의해 좌우된다. 현실이 그렇다. 수능 시험의 결과에 따라갈 수 있는 학교가 정해지고, 학교가 정해지만 그곳에서 다시 또 다른 시험 준비에 매달린다. 그리고 그 결과가 다시 직장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삶 전체가 그것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시험에 매달리는 사람들은 한 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저 알고 있는 지식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그 ‘시험’이라는 것이 우리 전체 삶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숙학교에 다니는 수포자 지우의 이야기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수학 시험 성적 때문에 고민하는 지우(김동휘)의 이야기를 담는다. 지우는 현재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다. 과거 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홀로 남은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최대한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든 과목 중에서 수학이 그를 가로막는다. 수학 성적은 하위권이고, 그것 때문에 그의 담임 선생님(박병은)은 일반학교로 전학을 권유한다. 그때 지우는 학교의 경비원이면서 숨은 수학천재 학성(최민식)을 만난다.
영화 속 학성은 개인사에 비밀을 가지고 있다. 늘 딸기우유를 먹는 그는 어느 날 수학 문제를 풀고 있는 모습을 지우에게 들킨다. 그리고 수학을 가르쳐달라는 지우의 부탁을 결국 받아들인다. 이렇게 둘은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된다. 지우는 전형적으로 결과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반면에 학성은 과정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이렇게 두 인물을 대비시키면서 이들 간의 긴장감이 만들어진다. 이 모습은 일반적으로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교육 시스템과 그에 반하는 학성이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 학성은 그저 과정에만 충실하라고 이야기하는 걸까. 아니다. 학성이 말하는 과정은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한 밑바탕을 만드는 것이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정확한 결과를 내는 학문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 결과를 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도 중요하다. 그 문제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오는 도전정신과 희열감을 통해 숫자, 수식과 친해지는 과정이 있어야 원하는 결과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성은 결과에만 집착하는 지우를 못마땅해하고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기도 하지만, 그런 태도가 지우에게 일종의 도전정신을 심어준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천재 수학자 학성
이 영화의 악역이라고 할 수 있는 담임 선생님 근호는 전형적인 나쁜 선생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영화들에서 그동안 봐왔던 아주 전형적인 선생님의 모습이라서 좀 평면적으로 보이는 인물인데, 영화는 이 근호라는 인물을 이용해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까지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니까 학성이 풀고 있는 방정식에서 결과를 중시하는 일종의 상수로 그려진다. 워낙 학성과 지우가 중심인물이 되다 보니 주변의 다른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근호와 같이 너무 평면적으로만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탈북자인 학성과 평범한 남한 학생 지우에게 접점이 없어 보이지만 영화는 그들 사이에 어떤 유사 부자의 감정을 넣었다. 아주 대표적인 장면이 둘이 앉아 된장찌개와 계란 프라이를 먹는 장면일 것이다. 밥 위에 계란을 얹어주는 학성의 모습과 그걸 받아서 맛있게 먹는 지우의 모습에서 그 둘이 현재 결핍된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가 따뜻하게 느껴지는 건, 이 둘 사이에 만들어진 신뢰와 챙기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과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영화답게 이 두 사람의 관계가 좋은 결과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세심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학성 역을 맡은 배우 최민식은 <천문:하늘에 묻는다> 이후 오랜만에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힘을 뺀 연기로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려주며 과거의 회한과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탈북 수학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우 역을 맡은 배우 김동휘는 <탐정 홍길동:사라진 마을>과 <피터팬의 꿈> 같은 영화들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적이 있다.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는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밖으로 내지 않고 힘든 일을 안고 가려는 조금은 소심하고 체념적인 지우를 잘 표현해냈다.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최민식과 김동휘
영화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은 많은 작품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전쟁영화>라는 단편 영화로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 <소녀 x소녀>, <계몽영화> 같은 작은 영화들을 간간히 연출했었고, 가장 최근에 연출한 작품이 이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다. 이번 영화에서는 결과에만 집착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이야기하면서 그것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학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을 올바른 과정 속으로 끌어당기는 건 결국 과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깨어있는 어른의 목소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결국 결과가 많은 것을 결정한다. 그것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과정 역시 중요하다. 좋은 과정이 생략된 결과는 오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 남지 않고 증발되어 버린다. 영화 속 지우는 학성의 의도에 맞게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와 ‘희열’을 느낀다. 조금 느리지만 그가 원하는 시험 결과도 얻어낸다. 그 이후 그 학생과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건, 결국 어른들의 몫이다. 영화는 다소 극적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수학’이라는 과목의 특성을 잘 활용하여 보는 관객들에게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현실에서 쉽게 잊어버리게 되는 그 사실이 영화를 보는 내내 다시 전달된다. 무엇보다 그 모든 전달 과정이 지우와 학성의 따뜻한 관계를 통해 전달되고 있어, 영화를 다 보고 난 관객들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극장을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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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게 올림.
<위플래시, 2014>와 <라라랜드, 2016>만으로 평단과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데미언 셔젤"의 신작 <바빌론>은 어떤 영화일까? 그에게 있어 '가장 많은 제작비 8천만 달러를 썼다'는 것도 있겠지만, "청소년 관람불가"로 결정된 표현 수위랄까? 하지만, 이런 기대들과 다르게 영화 <바빌론>은 앞서 개봉한 북미에서 혹평과 함께 흥행에 실패했다. 다가오는 "아카데미"에서도 많은 부문에 후보 지명에도 실패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영화는 화려함이 극에 달하는 1920년대 미국의 한 파티장에서 사람들이 모인다. 그렇게, 짧은 인연들을 남긴 이들은 각자 "할리우드"로 들어가 그곳의 변화를 직면하게 되는데...
1. 왜, <바빌론>이어야만 했을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바빌론>은 상당히 어려운 작품이다.
이런 이유에는 1920년대 미국 사회의 분위기와 문화, 그리고 영화가 겪었던 변화의 변곡점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본다면, 주인공 "개츠비"는 금주령이 있던 시절 술을 팔아 경제적인 부호가 된 인물로 도덕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이처럼 겉은 화려할지 몰라도, 속으로 곯아가고 있는 게 이 시기 미국 사회의 전반이다!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초반 대저택 파티이다!
굉장히 부도덕한 사건이 발생하는 데에 제시하는 해결 방안으로 큰 코끼리에 이목을 집중시켜 축 늘어진 여자를 안고 나가는 것이다!
이외에도 알고도 눈을 감아주는 경찰의 비리까지 좋은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게 그때의 미국이고, <바빌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그럼에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에는 "화려함"으로 대신되는 제목 <바빌론>에 숨겨져 있다.
해당 작품에 그 어느 장면들보다 "계단"이 나와 위로 오르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들이 자주 내비쳐 "바벨탑"을 생각하게 만든다.
"구약성서"에서도 나오는 "바벨탑"은 하늘에 도달하려다가 무너져버린 건축물로 해석하기로는 "신의 권위에 도전하려는 무모함"으로 볼 수 있다. - 이는 현대 사회에서 "기술의 발전" 혹은 "문명의 고도화"로도 해석된다!2. 결국, 영화에게 보내는 편지
그런 점에서 "제임스 맥케이(토비 맥과이어 분)"과 함께 터널 아래로 내려가는 장면이 이 영화가 설명하려는 상승과 하강의 이미지가 아닐까?
앞서 약에 취해 축 늘어진 여성 또한 계단 아래로 내려갔던 것처럼 해당 장면도 내려가면 갈수록 사람으로서의 권리가 사라지는 듯한 인상을 준다.
어찌 보면, 성경에서도 태양이 비치지 않는 지하에는 온갖 나쁜 일들이 행해지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이미지가 아닐까?그렇다고 위에 올라간다 해도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자신의 피부 색깔과 성적 취향들을 숨기고 그들 사이에 숨어 있으려 한다.
어찌 보면, 1920-30년대 미국에서 가장 심했던 "인종차별"까지 언급하며 '문화적 부흥기'라고 말하기가 머쓱할 정도로 어두운 곳까지 비춘다.
하지만, 영화 <바빌론>이 관객들에게 말하고자는 하는 바는 "영화"이다.하나의 장소에서 여러 세트장을 지어 "공장"처럼 찍어내던 현장에서 하나의 스튜디오로 바뀌어가듯이 "무성"에서 "유성"까지 그 시기에 겪어나갈 영화들의 발전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사랑을 비를 타고1952>이다.
해당 작품 역시, "무성"에서 "유성"으로 넘어가는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냈으며 음향에 대한 시행착오들도 에피소드로 있다. - 캐릭터들도 본다면,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 분)"와 "라나 버몬트"의 구성이 비슷하다!3. 3줄 요약 좀...
여기에 해당 작품을 비롯하여 많은 영화들의 장면들이 쏟아져 흐르는 엔딩까지 <바빌론>이 말하려는 바는 뚜렷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기나긴 분량이 아닐까?
짧은 분량이 감독의 역량을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이번 <바빌론>의 분량은 189분으로 그가 연출해온 <위플래시2014, 106분>와 <라라랜드2016, 128분>, 그리고 <퍼스트맨2018, 141분>보다 가장 많다!점점, 분량이 많아지는 것이 '하고 싶은 말이 많다'라는 것으로 주저리주저리 말하는 것보다 핵심만 딱! 짚어준다면 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 tmi. 1 - '데이미언 셔젤'은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아이폰으로 '디에고 칼바'와 아내이자 배우 '올리비아 해밀턴'의 2시간 버전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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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에서 시작해 파멸로 끝난 한 남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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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7일 개봉을 앞둔 영화 <아네트>. 영화 <아네트>는 2021년 칸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기대가 많이 되면서도 우려했던 작품이었다 왜냐면,, 그간 칸이 선택한 작품이 나의 취향에 들어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심오했지만 정말 재밌게 봤던 작품이었다.
영화 <아네트> 시놉시스
영화 <아네트>는 예술가들의 도시 LA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와 오페라 가수 안은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둘 다 LA에서 잘나가는 배우들이었지만 결혼 후 출산을 하면서 오페라 가수 안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는 반면,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는 안의 인기에 가려 그 코미디가 먹히질 않고 집에서 딸 아네트를 돌보는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둘의 관계는 계속 악화되던 차에 안과 헨리는 요트 여행을 떠나게 되고 폭풍우가 치는 밤 요트에서 그 둘의 운명은 갈리고 만다.
*이 이후로는 영화 <아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다크한 뮤지컬 영화 속 유머를 섞어 놓다
영화 <아네트>는 굉장히 다크하다. 하지만 이러한 다크함 속에서도 중간중간 유머는 놓치지 않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영화 중간중간 안과 헨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뉴스 속보들이 나온다. 둘이 톱스타인만큼 파파라치가 많이 따라붙는다는 설정으로 정말 헐리우드에서 볼법한 폭스사의 뉴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 심각하고 다크한 이야기들 중간중간 유쾌하면서도 조금은 비판적인 둘의 관계를 짚어주는 기사들이 섹션별로 정리되고 있어 조금은 긴 러닝타임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
목각인형을 활용하다
처음 아네트가 태어났을 때 든 느낌은 ‘괴이하다’였다. 당연히 어린아이를 캐스팅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무슨 목각인형이 아기의 행세를 하고 있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당황스러움은 잠시였다. 안과 헨리를 연기한 마리온 꼬디아르와 아담 드라이버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그 목각인형을 정말 아이를 다루듯 소중하게 다루고 있어서 나마저도 저 아이가 정말 진짜 아이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연기였다.
그렇게 영화를 다 보고나서 왜 감독이 목각인형으로 아이를 연출했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능했다. 아네트는 부모에게 이용만 당한다. 아빠 헨리에게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엄마 안에게는 헨리를 향한 복수의 수단으로 아네트는 이용된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남의 조종에 의해 살아가는 어린 아네트의 모습을 목각인형으로 표현한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랑으로 시작해 파멸로 끝나다
영화 <아네트>는 안과 헨리가 서로를 너무 사랑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우리는 너무 사랑해라는 노래를 부르며 평생의 약속을 맺는다. 하지만 둘의 커리어에서 점차 차이가 나고 안은 계속해서 성공을 헨리는 계속해서 실패를 이어가면서 둘의 사이는 틀어지고 결국 그 자격지심에 빠진 헨리는 폭풍우치는 바다 속에서 안을 바다 속으로 떨어뜨린다.
그렇게 혼자 딸 아네트를 키우는 도중 아네트가 빛을 받으면 노래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헨리는 안이 지휘자와 관계를 가졌고 아네트가 그의 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결국 지휘자까지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아네트는 마지막 무대에서 아빠의 모든 죄를 밝혀버린다. 그렇게 죄값을 치르러 교도소로 들어간 헨리를 향해 면회실에서 딸 아네트는 아빠는 날 절대 사랑하면 안된다고 노래를 부름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시점이 되어서야 목각인형이 아닌 실제 사람으로 등장한 아네트. 그리고 같은 멜로디지만 사랑을 표현하던 영화의 시작과 사랑을 거부하는 영화의 마지막. 이 장면을 보면서 한 남자의 사랑이 자격지심으로 인해 파멸로 이어진 것을 여실이 보여줘서 기억에 오래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아네트>는 배우들의 연기력과 레오 카락스의 연출, 그리고 반대되는 개념으로 수미상관을 이루는 장치들도 굉장히 매력적이었던 작품이었다. 왜 칸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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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이 영화의 주제는, 음식 말고 영향력 그리고 뮤즈
줄리는 줄리아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 예민하고 불만 가득한 생활 속에서 줄리아의 자취를 따라 도전을 이어간다. 자신의 손을 붙잡고 이끌어주는 느낌에, 더욱 줄리아를 사랑하게 되고 신뢰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람은 현실의 줄리아가 아니다.
줄리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줄리아"이다.언제나 드러내지는 않았던 사실 : 저는 박은태 배우 좋아했어요.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하면, 늘 따라붙던 질문이 있다. 관객이건 전문가건 '뮤지컬을 좋아한다/직업으로 삼고 싶다'라고 하면 물었다.
"그래, 그럼 어떤 배우 가장 좋아해?"
그러면, 잠깐 대화의 흐름을 멈췄다. 내겐 좋아한다거나, 애정 한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배우가 딱 한 명 있었다. 꼭 나보다 먼저 태어난, 내 분신을 보는 것 같았다.
단순히 누가 멋져, 누가 예뻐, 어떤 콘텐츠가 좋았어라는 수식어로 설명될 대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들어줄 만한 사람인가'를 생각해보고 대답했다. 주로 가볍게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없어요."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 박은태 배우요!라는 대답을 들었다면, 당신은 나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어줬던 사람! 고마워요 :D정해진 걸 재깍재깍 하던 중고교 범생이 시절을 지나, 사관학교로의 진로 고민을 하다가 방향을 틀어 경영학과에 갔고, 뮤지컬을 했다. 여기까지가 정말 닮았다. 그래서 신기했고, 응원했고, 잘 되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내가 다른 성별로 그즈음 태어났으면 저런 행보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공연을 보고, 응원의 글을 남기곤 했다.
어느 정도로 좋아했느냐면, 동급생들이 한창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J팝을 듣고 부를 때, 나는 이 배우의 출연작 넘버를 줄줄이 꿰고 있었다. 정확히는, 이 배우로 시작해 공연판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가씨의 명대사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내가_받은_긍정적인_영향. zip
예민하고 나도 내가 어디로 튈지 모르겠던 사춘기에, 다른 엄한 데 흥미 갖지 않고 뮤지컬 넘버를 흥얼거리며 프레스콜 영상을 뒤적이게 된 건 확실히 구원. 하지만 그 후로 얼마나 공연을 보고, 돈 안 되는 공연활동을 했던가! 물론, 내 선택으로 경험한 일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고3 수험생 때는 박은태 배우(이하, 박 배우)의 모교인 대학교의 동일학과 입시 시험을 보러 갔는데, 집중이 될 리가 없었다. 이동시간을 잘못 계산해서 논술 시험 시작 5분 후에 도착했으면서도 긴장이 아니라 설렘으로 들떠있었다. "여기가 그 건물이구나, 여기 어디에 앉아 어떤 수업을 들었던 걸까?" 붙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물론, 해당 시험은 시원하게 떨어졌다. 그래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소위 "성지순례를 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도 어이없는 발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정말이었다.
내가 힘들 때, 앞서 간 어떤 사람의 일화를 보고 들으며 '그 사람도 이랬대, 그런데 결과를 냈대. 나도 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식으로 영감을, 에너지를 얻는 것은 든든하다. 앞서 간 사람의 발길을 따라간다는 상상을 하면, 편안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과연 공연 근처에라도 갈 수는 있을까 싶었지만, 진짜 전문가들 사이에 끼어 있다 보니, 인터뷰로만 접하던 때보다 좀 더 생생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공연을 업으로 삼는 전문가들을 중/고등학생 시절의 내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많이 만났는데, 박 배우를 나쁘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실하다, 겸손하다, 언제나 노력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프로 정신이 투철하다, 늘 성장하려 한다 등. 응원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애정을 받으며 잘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더 받을 수 있었다.
그리는 이미지와 실제 본인은 다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사적으로 만난 적 없는 박 배우에 대한 이미지는 공연과 인터뷰 등을 조합해낸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 점도 늘 인지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줄리는, 상상 속 줄리아의 손을 놓고 발자취 없는 길을 나설 때 이렇게 말한다.
"사랑해요, 줄리아."
나는 이제 뮤지컬을 예전만큼 자주, 많이 즐기지 않는다. 플레이리스트에 순도 100%로 뮤지컬 넘버만 채우던 예전에 비해 한 달에 뮤지컬 넘버는 몇 곡을 들을까 말까 한다. 그리고, 박 배우의 소식을 찾아보지도 않는다.
언제 내 이상적인 뮤즈의 손을 놓고 나만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마음속으로라도 영화 속 줄리처럼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행복하세요 라고 말이다.힘들었지만, 소중한 내 과거에 날 이끌어줘서 감사합니다.
본인은 전혀 모르시겠지만ㅋㅋㅋㅋ
그게 '진짜' 당신이 아닐지라도,
내게 열심과 노력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리고 꿈을 꾸는 희망의 불을 붙여주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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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주의자 킬러의 차가운 복수가 슬픈 이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암살 목표물을 감시하는 '킬러(마이클 패스밴더)'. 자는 시간도, 음식도, 심지어 심박수까지 철저히 통제하며 암살 대상을 기다리던 그는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타깃을 저격하는 데 실패한다.
처음으로 임무에 실패한 나머지 극도로 당황하며 간신히 은신처로 돌아간 킬러. 그러나 그 사이에 킬러의 '아내'(소피 샤를로치)는 보복을 당해 병원에 입원하고 만다. 이에 그는 아내를 공격한 두 명의 암살자 '짐승'(살라 베이커)과 '전문가'(틸다 스윈튼), 공격을 주도한 '변호인'(찰스 파넬)과 '의뢰인'(알리스 하워드)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는다.
즉시 여느 때처럼 냉철한 계획을 실천에 옮기는 킬러. 그러나 이번만큼은 완벽주의자 킬러도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가 그 어느 때보다 심리적으로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기 때문.
데이비드 핀처의 노르딕(?) 누아르
데이비드 핀처가 12번째 장편 영화 <더 킬러>로 3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에도 넷플릭스의 손을 잡았다. 프랑스 작가 알렉시스 놀렌트의 그래픽 노블 원작을 <세븐>의 각본가 앤드류 워커가 각색했다. 무려 20여 년 전부터 마음에 둔 작품이라 하는데, 그 의지에 상응하는 결과물이 나온 듯하다. 베니스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으며,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관객을 만났다.
<더 킬러>는 여러모로 의외의 영화다. 핀처의 첫 누아르 영화라는 점이 새삼스럽다. 낯설기도 하다. 누아르 영화치고 전체적으로 건조하다. '킬러'는 심리적으로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다. 차갑기도 하다. 킬러의 복수극을 5개 챕터로 나누어 보여줄 정도로 계획적이다. 그러다 보니 <조디악>, <나를 찾아줘>에 비해 임팩트가 약하다. 화면이 전환되는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핀처에게 기대하는 현란한 편집 솜씨도 부각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중요한 내용은 언제나 와플 사이에 감춰져 있기 마련이다. 핀처가 감정을 분출시키지 못하는 감독은 아니니, 왜 애써 감정선을 숨기려 하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건조함과 냉정함 사이의 행간을 들여다보면 핀처의 노림수는 이내 모습을 드러낸다. 답은 간단하다. 소설 같다. 비록 프랑스 작가의 원작을 영화화했지만, 마치 한 편의 북유럽 소설 같다. 더 구체적으로는 데이비드 핀처만의 노르딕 누아르에 가깝다.
관건은 암살 작전이 아닌 암살자
물론 <더 킬러>의 주인공은 탐정도 경찰도 아닌 암살자다. 북유럽도 배경이 아니다. 파리, 도미니코 공화국, 뉴욕 등 다양한 장소가 나오지만 북유럽은 없다. 그럼에도 <더 킬러>에서 노르딕 누아르의 그림자가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영화의 톤과 매너 때문이다.
우선 사건이 아닌 인물 중심이라는 특징이 눈에 띈다. 노르딕 누아르에서는 셜록 홈즈 같은 뛰어난 탐정이 없다. 평범한 경찰이 주인공이다. 형사의 한계와 고충. 경찰 시스템과 사법 제도의 한계.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거와 심리가 얽혀가면서 비로소 사건을 보여준다. <더 킬러>도 마찬가지다. 암살 작전은 중요하지 않다. 킬러가 죽이려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를 고용한 고객의 목적은 무엇인지는 구체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핵심은 암살자다. 킬러의 내레이션이 빈 공간을 차지한다. 파리에서 암살 작전을 준비하는 챕터 1이 대표적이다. 이 챕터에서는 킬러 외에 다른 목소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살인이 갖는 의미. 암살을 하기 위해 필요한 철칙과 조건들. 때로는 냉소적이고 궤변 같기도 한 그의 상념으로 가득하다. 마이클 패스밴더의 킬러를 보면서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가 떠오르는 건 우연이 아닌 셈이다. 마침 패스밴더가 영화 <스노우맨>에서 '해리 홀레'를 연기한 적도 있고.
강박증이라는 공통점
이때 킬러에게 초점을 맞추면 유달리 도드라지는 지점이 있다. 강박증이다. 그는 완벽주의자다. 표적이 묵는 호텔 방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으려 한다. 눈을 뜨자마자 표적을 관찰하기 위해 잠잘 때도 테이블 높이를 창문과 맞춰 둔다. 저격 시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항상 심박수를 체크한다. 밥도 효율적으로 먹는다. 햄버거에서 번을 빼고 단백질 위주로 영양분을 섭취한다. 목표를 위해 끝없이 기다리고, 유지하고, 인내한다.
이 강박증은 마냥 남 일이 아닌 것 같기에 흥미롭다. 업무의 강도가 높고, 비윤리적인 점만 빼면 그의 일은 일반 직장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자기 본연의 리듬 대신 일에 맞춘 일상도 낯설지 않다. 제이 그리피스가 <시계 밖의 시간>에서 지적한 대로다.
분업화된 자본주의 시스템이 확립된 후 사람들은 삶에서 자율성과 창조성을 지운채 시계와 알람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시간 맞춰 칼같이 일어나고, 자기가 세운 계획을 완벽하게 이행해야 마음이 놓이는 킬러와 현대인을 분리해 말하는 건 무의미해 보인다.
동정과 연민 끼어들지 못하는 킬러의 세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더 킬러>의 복수극은 평범하지 않다. 자기 세계의 모순을 발견했지만, 외적 가치를 이미 내면화했기에 끝내 떨쳐내지 못하는 환자의 치유기에 가깝다. 그가 외부 세계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챕터 1에서 핀처는 킬러의 시점과 청각만을 강조한다. 카메라는 그의 시점을 비추고, 음악과 소음도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울려 퍼진다. 달리 말해, 그의 세상에는 그만이 존재한다.
이를 확대하면 분리되고 고립된 사람들의 세계가 나타난다. 여러 파편이 있다. 런던에서도 파리에서도 뉴욕에서도 사람들은 선글라스를 낀 독일인 관광객에게 관심이 없다. 설령 그가 아마존을 이용해 살인 계획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 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다들 비슷비슷하게 표준화된 일상을 영위한다.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처럼.
이 세계에서는 동정과 연민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코인에 눈이 멀어 자기가 죽이려 한 킬러가 복수를 위해 찾아와도 의뢰인은 그 이유조차 짐작 못하는 사회이니까. 킬러의 내레이션이 동정과 연민보다 냉정함과 계획을 우선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가득한 이유다.
바로 이 지점에서 <더 킬러>는 더더욱 노르딕 누아르 같다. 노르딕 누아르의 특징 중 하나가 시대상의 충실한 반영이기 때문. 노르딕 누아르 작가는 사회를 고발한다. 소설 속 지명, 연도, 현장에 대한 묘사까지 무엇 하나 놓치지 않는다. 마치 거울처럼 사회상을 반영한다. 핀처도 마찬가지다. <더 킬러>를 통해 자본과 권력으로 치환될 수 없는, 인격의 존엄성 같은 고유한 영역이 존재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수의 성공이라는 비극
그러면서도 <더 킬러>는 일말의 희망을 간직한다. 수십 번 반복했던 작업인데 킬러는 자꾸 실수를 범한다. 변호사, 짐승, 전문가, 의뢰인으로 타깃을 좁혀가는 사이 살인은 공허해지고 의미 없이 흘러간다. 무엇을 위한 복수인지, 자신마저 납득하지 못할 위기를 맞는다. 그 사이로 불길이 튀어나오며 장르적 쾌감도 조금 깃든다. 줄곧 냉정하고 건조하던 영화는 온 집안을 부술 것처럼 처절한 액션 시퀀스를 선보인다.
그러면서 킬러가 바라보는 세계는 조금씩 변한다. 서서히 남의 이야기가 들리고 보인다. 특히 전문가와의 대화가 정점이다.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마주 앉은 킬러와 전문가. 전문가가 묻는다. 이 직업에서 회의를 느껴본 적이 언제냐고. 일을 하면서 언제 마지막으로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해 봤냐고. 그 순간 킬러는 흔들린다. 조각상 같던 그가 위스키를 단숨에 비워 버린다. 단답이지만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그는 자기 세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애써 외면한다. 계획대로는 아니더라도 완벽한 삶을 복구해낸다. 하지만 곱씹어 보면 복수극은 마냥 기쁘지 않다. 언제나 완벽하려는 자기 노력이 그럴 가치가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심은 언제나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킬러의 마음에 깃든 이 건조한 희망의 존재는 큰 액션이나 제스처 없이도 틸다 스윈튼의 존재감이 압도적이고, 많은 대사 없이도 패스밴더의 연기가 일품인 이유다.
핀처가 보는 현대인
어떤 면에서 극 중 킬러는 <소셜 네트워크> 속 마크 저커버그처럼 보이기도 한다. 페이스북 CEO로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을 연결하는 허브의 중심에 선 그.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는 외톨이다. 절친도, 동업자도, 심지어 변호사마저 그를 떠났다. 그는 전 여자친구에게 친구 신청을 보내고, 받지 못할 답을 처량하게 기다린다.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고립된 후에야 자기가 놓치고 산 게 뭔지 어렴풋이 깨닫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킬러의 차가움과 냉철함이 장르적 쾌감을 거쳐 쌀쌀하게 이어지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즉, 킬러는 암살자이기 이전에 비극적인 현대인의 초상을 비추는 인물이다. 언제나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는 도로 청소차나 쓰레기 수거차는 킬러와 현대인의 삶을 함축하는 듯하다. 에릭 메서슈미트 촬영 감독의 영상미, 애티커스 로스와 트렌트 레즈너의 음악과 어우러지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질서를 겨냥한 문제의식과 메시지는 스크린을 뚫고 나와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해진다.
결국 데이비드 핀처는 킬러의 일상을 장르적으로 접근하는 척하면서 하나의 거울을 가져다 놓는 셈이다. 나르시시즘 섞인 킬러의 독백와 업무 과정을 통해 화면 너머의 자기 자신을 보도록 유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곱씹어 볼 가치가 있는 <더 킬러>의 발견이 아닐까 싶다. 어떤 장르든 핀처는 영화를 잘 만든다는 증명뿐만 아니라.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핀처, 패스밴더, 스윈튼 팬 모두가 사랑에 빠져 곱씹을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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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행복이야말로
먹는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다. 뭐, 아무리 소식좌라고는 해도 좋아하는 음식은 있을 것 아닌가. 남극처럼 삶의 낙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가장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는 식욕이다. 이 이야기는 먹방을 빙자한, 한 철부지 남편의 와이프 이해하기 프로젝트를 담은 영화다. 하지만 맛있게들 먹는 모습은 덤이라고나 할까.
1. 모든 욕구가 차단된 곳, 그곳은 남극
영화를 보고 있자면, 누군 허겁지겁 먹고, 누군 천천히 먹고 각기 먹는 스타일들이 다 달라서 그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지점들이 재미있었다. 정말 각기 다른 사람들끼리 한 공간에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구나 느끼게 되면서도 각자의 밥에 집중하느라 다른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는 지점도 은근 코믹했다. 온전히 배고픔을 충족하는 사람들을 제 3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이리 재미있는 것이었나.
이전에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들 별로라고 한 적은 있는데 이렇게 아무 욕구도 충족할 수 없는 이 남극이라는 곳에서는 먹는 게 유일한 낙일 수밖에 없으니 게걸스럽게 먹는 이들도 이해가 간다. 가족도 보고 싶고, 여자친구도 보고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그저 얼음만 바라보는 삶에서 우울증 안걸리려면 맛있는 음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 가족애가 빛난
이 영화의 감동 포인트는 아무래도 주인공과 딸의 원거리 대화 장면이었다. 딸은 아버지임을 알고 대화하고 아버지는 딸과 대화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정보가 불공평한 상황을 이용해 딸이 타인인척 접근해 더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가끔은 가족이라는 존재들은 서로가 옆에 없을 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증폭되고 서로에 대한 다정한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오히려 옆에 있을 때 무뚝뚴해지는 것 같다.
무엇보다 연구대원이 아닌 자신이 불려나온 것이 의아한 아버지도, 그저 아버지와 말하고 싶어 타인인척 귀여운 질문 던지는 딸도 너무 귀엽다.
3. 남에게 밥을 해주는 행복
주인공은 그전까지 와이프에게 반찬투정이나 하는 금쪽이 남편이었다. 하지만 타의이긴 했지만 남극에서 누군가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면서 은근히 기쁨을 느끼던 그는 남극에서 돌아오자 의외로 우울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딸이 생일상차려달라는 딸의 말에 묘한 생기가 도는 것을 보니 그는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매력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무엇보다도 랍스터를 튀겨먹는 장면이 가장 명장면이다. 은근히 웃기고 계속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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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MFF 데일리] 메탈, 일상과 사회의 불안함을 극복하다
감독: 리타 바그다디 / Rita Baghdadi
출연: Lilas Mayassi, Shery Bechara, Maya Khairallah
시놉시스: 베이루트 외곽에서 활동하는 릴라스와 그녀의 스래시 메탈 밴드 멤버 셰리, 마야, 알마와 타티야나에게는 큰 꿈이 있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기대를 품고 참가한 영국의 음악 축제도 그들의 생각대로 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던 릴라스는 붕괴 직전의 레바논을 목격한다. 설상가상으로 릴라스와 동료 기타리스트 셰리의 복잡한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하고... 밴드, 국가, 꿈 모두가 위기에 처한 릴라스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사이렌' 속 레바논의 한 뉴스 앵커는 스래시 메탈 밴드, 슬레이브 투 사이렌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흔히 메탈 음악은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왜 당신들은 일상적인 소재를 가사로 다루냐고. 그러자 리더인 릴라스는 이렇게 답한다. 조부모들이 태어난 이래로 레바논은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레바논에서 사는 일상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이 문답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리타 바그다디 감독의 장편 다큐멘터리 '사이렌'이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준다.
일상에 힘을 주니 사회가 보인다
사실 '사이렌'이 단지 릴라스와 셰리를 비롯한 밴드 멤버들의 개인사만 보여주려는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은 도입부에서부터 알 수 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시위대가 거리를 점거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만큼, 이 작품에 레바논의 정치사회적 현실을 비판하려는 의도가 있음은 명백하다.
그런데 영화는 레바논의 사회적 문제점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는다. 대신 밴드 멤버들의 일상에 주목한다. 돈이 되지 않는 밴드가 영국 글래스턴베리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에 가서 유명세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이나 릴라스가 동성 연인을 두고 어머니와 벌이는 갈등이 스크린을 채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학교에서 음악 교사로도 일하는 랄라스의 모습, 앨범에 들어갈 노래의 키나 템포를 놓고 세리와 릴라스가 충돌하는 것도 그들의 일상을 장식한다.
하지만 일상 자체가 고통이라는 릴라스의 말대로, 힘을 주지 않아도 스쳐 지나가는 그들의 일상에서는 레바논의 사회적 문제가 엿보인다. 좀처럼 성공하기 힘든 메탈 밴드의 현실은 표현의 자유조차 보장될 수 없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의 사회문화적 측면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릴라스와 엄마의 말다툼도 동성애를 사회악으로 치부하는 억압적인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릴라스와 셰리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여성밴드는 대타가 없다"는 말은 여성으로서 메탈 밴드에서 활동하는 것이 얼마나 비주류적인 활동인지를 보여준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시위대 옆에서 주인공들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기에 오히려 일상과 사회가 연결되는 지점은 흥미롭다. 이러한 다양한 갈등 덕분에 '사이렌'은 다큐멘터리지만 극영화 같기도 하다.
일상과 사회를 잇는 메탈 밴드와 음악
물론 영화의 의도가 직설적으로 엿보이는 장면이 없지는 않다.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고를 다루는 대목이 그렇다. 이 사고는 레바논의 정치와 경제를 모두 혼란에 빠트린 대형 사고였고, 순전히 사고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테러인지도 아직 불명확하다. 이때 영화는 릴라스와 셰리의 갈등을 이 사건과 곧장 이어 붙인다. 그저 일상적일 수 있는 갈등이 모이고 모이다 보면 레바논의 수도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거대한 폭발처럼 커질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바로 이 지점에서 메탈 밴드와 그들의 음악이 갖는 힘이 존재감을 발휘한다. 깊어지던 릴라스와 셰리의 충돌은 진솔한 대화 이후 더 끈끈한 우정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렇게 밴드 내의 반목이 사라지자 그들이 준비하는 앨범의 트랙 리스트는 멤버 모두가 만족할 만한 명곡으로 채워진다. 밴드가 하나 되자 그들의 문제는 해결된다. 혼자라면 무서울 검고 어두운 터널도 함께 걸으면 그렇지 않듯이.
그래서 무너진 신전을 배경으로 오케스트라와 합동 공연을 펼치는 슬레이브 투 사이렌의 모습 역시 상대적으로 짧게 지나가는데도 불구하고 인상적이다. 혼란스러움과 불안함, 우울함이 가득한 일상을 극복하듯이 다양한 문제가 산적한 레바논 사회도 전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강렬한 메탈 합주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특히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를 꾸미는 슬레이브 투 사이렌이 보이는 엔딩 크레디트 덕분에 그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그들이 '사이렌의 노예'인 이유
특히 밴드 멤버들이 다름 아닌 사이렌의 노예라는 점에서 그 믿음은 더욱 특별하다. 본래 사이렌은 그리스 신화 속 등장하는 괴물이다. 상반신은 여성,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한 이들은 지중해의 한 섬에서 감미로운 노래로 선원들을 유혹해 잡아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직 오디세우스만이 돛대에 자신을 묶은 채로 사이렌의 노래를 들어 유혹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이렌과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괴물에 불과했던 사이렌의 존재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오디세우스는 기존 질서를 회복하려는 영웅이다. 그렇기에 그를 유혹해 파멸시키려는 사이렌의 존재는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려는 모든 타자를 상징한다. 동성애자나 여성 메탈 밴드 멤버,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시위대처럼. 즉, 사이렌의 노래는 그저 사회를 위협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당당히 발화하는 주체, 억압되고 무시당했지만 언제나 사회 안에 잠재되어 있던 주체의 목소리이자 힘의 가능성이다. 이것이 '사이렌'의 메탈 음악에 담긴 진짜 힘이자 의미다.
그래서 '사이렌'이라는 노래를 들려주는 영화는 제목부터 마지막 크레디트까지 한 톨도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Schedule in JIMFF
2022-08-14 20:30 CGV 제천 1관
2022-08-15 16:30 메가박스 제천 1관
2022-08-16 20:30 의림지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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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롱레그스] 끝장리뷰 | 답은 이미지와 사운드에 있다 | 클린턴과 백악관 상징 | 제목 분석 | TV, 뱀 해석 | 가족 파괴
(영화 [롱레그스](2024)는 씨네랩 측에서 제공한 시사회권으로 감상하였습니다)
[롱레그스](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이미지와 사운드
Chapter 2 클린턴과 백악관, 제목 분석, 가족 파괴
00:00 롱레그스
01:43 이미지와 사운드
03:11 TV 상징
05:01 이미지 뱀
06:13 클린턴과 백악관
07:35 제목 분석
09:58 별점 및 한 줄 평
10:15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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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매리 연쇄살인사건 범인은?! - 라떼극장 EP.14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4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차우"를 보며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보자
범죄없는 마을로 공인(?)받은 곳 삼매리에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사건을 풀기위해 형사 경찰 포수 생태연구가 등 각계 전문가(?)들이 모이지만
문제 해결은 커녕 피해만 늘어난다.
삼매리는 다시 범죄없는 마을로 거듭날수 있을까?
괴수와의 사투를 벌이는 괴작 '차우(2009)'
신형사가 건강 챙긴다면 몰래챙긴 음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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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톰과 제리>
생쥐 제리는 성대한 결혼식이 열리게 될 뉴욕의 한 고급 호텔로 이사를 오게 되고, 이벤트 플래너 카일라는 제리를 잡기 위해서 고양이 톰을 고용한다. 하지만 우당탕탕 사고뭉치들의 역대급 대소동은 카일라의 커리어는 물론 결혼식과 호텔까지도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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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즌3> 공식 예고편
괴물화의 끝이자 신인류의 시작을 비로소 맞이하게 된 세상, 괴물과 인간의 모호한 경계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들의 더 처절하고 절박해진 사투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3 7월 19일, 오직 넷플릭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