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08-26 10:18:11
8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에이리언' 시리즈 부활 시킨 <에이리언: 로물루스>
페데 알바레즈 감독이 한정된 공간에서 액션을 능숙하게 연출한 점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후반에 등장하는 에이리언 최종 보스를 충격적이고 기괴한 새로운 형태로 그려내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국내에서는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누적 관객 수 120만 명을 넘기며 1위에 올랐고, <파일럿>은 425만 명을 넘기며 2위를, <늘봄가든>은 20만 명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데드풀과 울버린>이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밀어내고 다시 1위에 올라섰습니다. 국내에서 196만 명을 기록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북미에서만 5억 8,88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데드풀과 울버린>은 <조커>를 누르고 역대 R등급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에 뒤이어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2위, <잇 엔드 위드 어스>가 3위에 올랐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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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사전]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안녕하세요! 씨네랩입니다.
다니엘스 감독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벌써 개봉 8일 차에 접어들었는데요!
멀티버스 소재로 세대 차이, 가족 관계, 친절함 등을 다루며 독특함 속에 위로와 깊은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해외 다수 매체에서 2023년을 앞두고 아카데미 예비 후보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언급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18일(화) 기준으로 3위를 차지할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럼, 화제작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사전을 살펴봐 볼까요?! ٩( ᐛ )و
먼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감상 포인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이버 영화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감상 포인트로 연출을 뽑은 관객이 27%,
연기를 뽑은 관객이 23%로 두 요소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습니다.
또한, 실관람객의 리뷰를 살펴보면 독특한 매력 속 예상치 못한 감동에 놀라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예고편만 봤을 때는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감동을 줄지 예상할 수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울고 있다는 관객들이 많았습니다. 멀티버스 소재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현재 미국 독립영화계의 가장 핫하고 트렌디한 ‘웰메이드’
제작사인 A24의 배급작이다. <미나리> <미드소마> <애프터 양> 등 여러 명작을 제작·배급하기도 했습니다.
에블린 역의 양자경, 조이 역의 스테파니 수, 그리고 아콰피나 세 배우는 영화 2021년에 개봉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함께 합을 맞춘 적이 있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 베이글. 다니엘스는 베이글은
유용하고 단순한 상징으로서, 그냥 각자가 생각하는 베이글을 가볍게 한 입 베어 물면 된다는 의미를 뜻한다고 합니다.
조부 투파키는 일종의 ‘혼돈의 대변’이기에 의상에 여러 가지 것들이 충돌하고 혼재하며 영화 내내
화려한 의상을 보여줍니다. 의상 디자이너는 조부 투파키의 일부 의상은 K-POP 의상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미국 소셜 플랫폼 레터박스에서 2022년 기준 가장 많은 팬을 가진 100편의 영화 중 6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올해 3월 개봉작으로서 가장 단기간에 팬을 확보한 영화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앤드류 가필드와 토비 맥과이어가 이 영화를 함께 관람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으며,
앤드류 가필드는 영화를 본 후 영화의 상징 중 하나인 ‘핫도그 손가락’을 착용한 채 길거리를 다니기도 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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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기에 도전하는 쾌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60대 여성 '낸시(엠마 톰슨)'. 교직에서 퇴직하고 아이들마저 성인이 되어 자신을 떠나 홀로 남게 되자 그녀는 처음이지 마지막으로 인생의 숙원이었던 버킷리스트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한다. 단 한 번도 섹스에 만족해 본 적이 없으니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과 성관계를 갖기로 한 것. 그런 그녀의 앞에 젊고 매력적이며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리오 그랜드(다릴 맥코맥)'가 나타난다. 마침내 버킷리스트가 현실이 되려는 찰나에, 긴장해서인지는 몰라도 낸시는 리오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리오도 유려하게 답하며 그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리고 대화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두 남녀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인생의 방향성을 둘러싼 고민에 직면한다.
8월 11일에 개봉하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여러모로 놀라운 영화다. 수많은 영화팬들에게 익숙한 대배우 엠마 톰슨이 처음 노출 연기에 도전한 작품이자, 성매매자들의 이야기를 양지에서 다루는 영화이기도 하고, 성을 사는 이가 중년 여성이고 파는 이가 청년 남성이라서 거듭 예상을 빗겨나가는 영화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 어떤 작품보다도 선정적이고 논란으로 가득한 영화일 것 같다고 느낌을 받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첫인상만으로 평가받기에는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를 관통하는 주제의 가치가 눈에 밟힌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성매수자와 성매매자가 네 차례에 걸쳐 만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상 밖의 사람을 만나 수십 년간 자신을 감싸고 있던 금기라는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오는 부화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목적이 단지 성적인 만남을 중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낸시와 리오의 첫 만남에서부터 두드러진다. 카메라가 리오 그랜드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낸시가 아니라, 서비스의 존재 자체에 반응하는 그녀의 모습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평생 사회의 규칙을 충실히 따른 인물이다. 은퇴한 60대 종교 교사였던 그녀는 대학원에 다니는 아들과 스페인에서 예술을 하는 딸을 하나씩 두고 있고,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자신의 오랜 커리어도 아름답게 마무리했다. 그런 그녀는 리오의 서비스를 예약하면서 두 개의 서로 다른, 그러면서도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반응을 보인다.
낸시는 우선 섹스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다. 그녀는 섹스를 불편하게 생각한다는 점을 담대하고 솔직히 드러낸다. 그간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 대신 남편의 쾌감만을 우선시했던 그녀는 경험한 상대방의 수나 다양한 체위에 대해 물어본다. 리오의 청산유수 같은 대답을 들으면서 그녀는 완벽해 보이던 자신의 삶이 사실은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녀는 리오보다 오랜 기간을 살았지만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 그래서 공허한 것들이 많다는 현실을 알게 된다. 만약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태를 그대로 두었다면 그녀를 감싸고 있던 알과 껍질들은 더 강해졌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리오 그랜드를 만나면서 낸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새롭게 눈을 뜬다. 그래서 그간 억압된 삶을 살던 그녀는 리오와의 두 번째 만남에서 크게 변하기로 결심하고, 그를 통해 새로운 섹스에 도전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녀는 리오를 궁금해한다. 낸시는 수십 년간 자신의 삶을 구성한 원칙과 신념으로 설명할 수 없는 리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더 알고 싶어 한다. 그렇기에 리오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는 용기와 결함이 동시에 느껴지고, 깨달음만큼이나 깊은 고정관념과 편견도 함께 드러난다. 낸시는 리오가 숨기려 했던 사적인 정보를 캐내고, 호텔방 밖에서도 만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고 착각하며, 당당하게 직업을 밝히며 어머니와의 관계를 회복해보라고 말한다. 정작 그녀가 모범적인 삶을 사는 아들을 지루해하고 정반대로 열정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딸을 골치 아파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그녀의 조언은 리오에게 모순적이다.
이는 모든 갈등이 끝난 뒤, 호텔방이 아닌 호텔 커피숍에서 리오를 만난 다음에야 낸시가 난생처음 오르가슴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다. 특히 리오와의 섹스가 아닌 스스로, 자신의 힘으로 오르가슴에 도달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는 마치 그녀가 섹스로 상징되는 스스로를 향한 억압을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타인에게 지닌 고정관념과 편견마저도 떨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지 섹스와 성매매를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들은 그저 트리거에 불과할 뿐, 성을 비롯한 다양한 금기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개인들이 비로소 금기를 깨고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영화는 진정으로 그려내고 싶어 하는 듯 보인다. 그렇기에 리오에게 이별을 고한 낸시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바라볼 수 있다. 단순히 섹스라는 금기에 갇혀 있지 않고, 60여 년간 살아온 자신의 삶과 자기 자신마저 되돌아보는 것이다.
낸시의 섹스 파트너인 리오 그랜드도 다르지 않다. 그는 사실 상당히 신선한 캐릭터다. 열의를 다해 감정적으로 건강한 쾌락을 주고자 하는 파트너는 스크린에서 쉽게 만나는 인물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건강한 성관계를 가져본 적이 없는 낸시에게 진정한 섹스의 의미를 알려준다. 그는 섹스, 접촉, 쾌락의 관점을 모든 소통으로 확대한다. 섹스는 언제나 대화의 일부이며 친밀감과 교감을 향한 갈망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되짚어 준다. 비록 그의 직업은 윤리적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섹스를 바라보는 리오의 시각만큼은 교과서적으로 건강하고 개방적이다. 그 덕분에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통제해야 하고 몸을 가꿔야 한다는 규칙 하에서 살던 낸시는 자신의 신체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뀐다. 사실 리오는 가족들에게 석유 회사에 다니면서 바다 밑바닥에 구멍을 뚫어 석유 탐사를 하고 있다고 말해놨는데, 이는 리오의 직업과 일맥상통하며 꽤나 섹슈얼한 알레고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그조차도 낸시와의 만남 이후 자신을 억누르고 있던 또 다른 억압과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점이다. 세대가 다르면 섹스와 쾌락에 관한 이해도 다른데, 영화는 이를 놓치지 않는다. 실제로 낸시와의 네 차례에 걸친 만남과 대화, 그리고 갈등은 그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분기점이 된다. 고등학생 시절 어머니에게 문란한 모습을 보인 후 가족과 의절하며 성적인 수치심을 겪은 바 있는 리오. 이처럼 어머니와 연관된 깊은 상처는 자기 일을 잘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쾌락을 개방적으로 탐색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오에게 낸시와의 갈등과 말다툼은 또 다른 기회가 된다. 그는 본래 자신의 과거사를 고객에게 절대 밝히지 않는다. 다름 사람과의 다양한 육체관계와 소통을 즐기면서도 그 선을 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하지만 낸시를 만난 그는 때로는 규칙을 어기며 인간적 교류를 하고, 그 과정에서 그가 낸시에게 알려주었듯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온전히 긍정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 자신의 치부라고 생각해서 완전히 단절되었던 가족과의 관계를 다시 펼치고, 리오 그랜드라는 가명 대신 그의 진짜 이름을 알아낸 낸시를 다시 만나며, 본인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한다.
이처럼 두 남녀가 진정한 자신의 몸과 마음을 깨달아가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호텔 방이라는 한 공간에서 진행되기에 더욱 흥미롭다. 기본적으로 질감이 느껴지는 푸른 카펫과 소파, 베개처럼 관능성이 느껴지는 가구들의 배치가 눈길을 끈다. 또 그 방 안에서도 나뉘어 있는 공간들의 기능도 흥미롭다. 호텔 방 안의 공간은 크게 소파, 침대, 거울, 화장실로 나눌 수 있다. 이때 소파에서는 낸시와 리오가 서로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침대에서는 모험에 나선 낸시의 과감한 도전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한편 화장실은 잠시 그들이 호텔 밖 현실을 만나는 공간이자 순간이다. 딸에게 걸려 온 전화를 낸시가 화장실에 받는 사이에 어떻게 하면 더 섹시해 보일까 하고 고민하는 리오의 짧은 고뇌를 담아낸 장면이 대표적이다. 마지막으로 거울에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마인드의 변화를 새삼 깨닫는 낸시의 사색과 해방의 쾌감이 담겨 있다.
하지만 눈길은 이내 방의 한쪽 면을 모두 차지하는 창문으로 향한다. 두 사람의 만남이 같은 공간에서 반복되더라도, 넓디넓은 창문에 담기는 조명과 풍경의 변화는 마치 외부 세계의 이야기들을 실내 공간 안으로 미묘하게 끌어들이는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첫 만남에서는 맑기 그지없었던 창문 속 날씨는 선을 넘은 낸시와 개인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리오가 다툼을 벌일 때 비로 가득하다. 이처럼 한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은 마치 낸시와 리오의 몸에 대한 비유 같기도 하다. 그들이 어떤 감정과 생각을 투사하느냐에 따라 호텔방은 대화의 공간이었다가 도전하는 공간이고, 갈등하고 싸우는 장소였다가 쾌감으로 가득한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들의 몸도 그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처럼 공간적 배경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을 보면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참으로 스마트한 영화라고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물론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그 자체로 논란일 작품이다. 소재이자 발단인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의 연장선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들을 둘러싸고 구매자가 판매자의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러나 성은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 있다. 여성의 성을 구매하는 남성과 달리 남성의 성을 구매하는 여성은 자신이 구매자이지만 판매자인 남성에게 우위를 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과 젠더 권력의 우열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는 성매매에 대한 전통적인 문제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신선하다. 사실 여성의 신체는 남성의 신체보다 자주 스크린에 전시되고 소비된다. 그런데 <굿 럭 투 유, 리오 그랜드>는 남성의 성과 신체를 판매 대상으로 삼으면서 그 문화적 서열을 역전시킨다. 덕분에 성매매를 둘러싼 옹호와 부정 사이에서 성매매를 매개로 만난 두 남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틈이 생겨난다. 물론 시작점이 성매매이기에 그 관계 자체가 호불호가 갈릴 여지가 있는 것은 여전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호불호를 이유로 눈길을 안 주기에는 금기 내지는 성역이라 여겨지는 소재를 이용해 보편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는 도전적인 스토리텔링의 맛이 찰진 것도 사실이다. 소피 하이드 감독이 데뷔작 <52번의 화요일>로 제30회 선댄스영화제 감독상과 제6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수정곰상을 받은 이유가 새삼 느껴지기도 한다.
A(Acceptable, 무난함)
발칙한 소재를 끝까지 끌고 가는 뚝심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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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말하는 것
"우리 일을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서래 (탕웨이)서래(탕웨이)의 그 말을 한 번 더 듣고 싶은 마음에 영화관을 ‘마침내’ 다시 찾았다. 두 번째 관람은 ‘역시나’ 좋았고, ‘여전히’ 아팠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거야.”
해준(박해일)의 마음에 ‘미결’인 상태로 오래도록 남고 싶어 어디론가 멀리 떠나버린 서래. 그런 서래를 찾아 파도 속을 걷던 해준의 뒷모습이 어쩐지 슬퍼보였다. 철썩..철썩 치는 파도에 해준의 옷이 마치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축축해졌을 때, 해준은 그 슬픔을 감내하기가 얼마나 괴로웠을까. 서래와 함께한 기억들이 파도와 동시에 그에게 덮쳐왔을 것이고, 그로 인한 아픈 마음은 번진 잉크처럼 지우지도 못한 채 그의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붕괴된 채로 영영 남아, 해준은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일을.
서래(탕웨이)와 해준(박해일)
‘헤어질 결심’. 나는 이 제목이 너무 좋았다. 누군가를 잊고 싶어 헤어질 결심을 한다는 것. 사랑은 결심을 하기도 전에 ‘빠져버리는 것’이기에 결심이 필요 없지만 헤어지는 데에는 결심이 필요하다. 서래는 해준과 헤어질 결심을 하기 위해 새로운 남자를 만나지만 그를 잊지 못한다. 그를 보내주지 못하고, 헤어지지 못한다. 때로는 결심이라는 것이 행동으로 이어지기 힘들고, 사랑이라는 것은 더더욱 그러니까.
서래를 관찰하며 해준은 서래가 더 궁금해졌을 것이고, 서래와 점점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되면서 의심이 관심으로, 그리고 마침내 그가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깨달았을 것이다.
해준은 서래의 거친 손을 만지며 핸드크림을 발라주고, 서래의 상처를 보고 방수밴드를 건네주고, 눈을 감은 채 서래의 향을 맡는다. 서래의 칫솔에 치약을 짜주고, 서래가 찍힌 사진을 간직하고, 비 오는 날 함께 쓰는 우산을 들어주고, 서래가 하는 말에 웃음으로 대답한다. ‘사랑해’라는 말만 내뱉지 않았을 뿐, 그는 온몸으로 서래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었다. 해준은 그렇게 차곡차곡, 서래를 향한 마음을 쌓아간다. 그렇게 해준과 서래는 ‘우리’가 된다. 결국엔 그 쌓아올린 마음이 너무 커져버려 해준은 ‘완전히 붕괴’되지만 그는 사라져버린 서래를 다시 사랑하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해준
사랑한다는 말 없이 사랑을 말하는 영화여서 더 좋았다. 언어가 그 마음을 채 담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 ‘사랑해’라는 말로도 부족한 사랑이 있고, 너무 사랑하지만 사랑한단 말을 차마 내뱉기 힘든 금지된 사랑도 있다. 그렇지만 말하지 않아도 안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어느 쪽이든 간에 그런 사랑은 ‘우리’를 붕괴시킨다.
서래를 바라보는 해준의 눈에는 진심이 묻어있고, “저 폰을 깊은 바다에 던져버려요”라는 해준의 말에는 그녀를 사랑하는 그의 마음이 담겨있다. 그들이 서로를 바라보던 모습들이 아직까지도 잊히지가 않는다. 서로를 향한 눈빛, 행동, 표정은 ‘사랑해’라는 말을 대신한다. 애써 말로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마음들을 해준과 서래, 그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선으로 탁월하게 연출해낸 박찬욱 감독님의 솜씨를 러닝타임 내내 만끽할 수 있었던 좋은 영화였다.
멀리 떠나는 서래(탕웨이)
“날 사랑한다고 말한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난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서래사랑한다는 말만 안 했을 뿐. 모든 게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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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는 그릇은 예쁘지만 정작 음식은 상해있는 느낌
피할 수 없던 공 하나
유달리 말이 없었다. 이경의 고등학교 생활.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이어폰을 끼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많았다. 오늘도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왠지 자세가 굽은 이경. 그녀가 뭔가 기가 죽은 듯한 느낌을 풍기던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어디선가 날아온 공. 땅만 보고 가던 습관이 원인이 됐다. 안경이 부서졌다. 후다닥 달려오는 수이. "괜찮아?" 수이는 운동을 꽤나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피부가 까무잡잡했던 수이. 왠지 모르게 다가오는 듬직한 카리스마에 이경이의 마음이 흔들렸다.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본 두 사람. 거짓말같이 두 주인공의 인연이 시작됐다.
미안했던 것일까. 수이는 이경이를 자주 찾아갔다. 딸기우유를 가져갔던 수이. 그렇게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간다. 뭔가 첫 만남부터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던 두 사람의 직관은 금세 사실이 됐다. 사랑에 빠진 둘. 2002년 월드컵 전후의 시간적 배경에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아슬아슬한 첫사랑을 시작하는 두 사람. 사실 둘은 너무나도 달랐다. 수이는 실업팀 축구선수를 목표로 하고 있고, 이경이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싶어 한다. 다른 길로 들어선 두 사람. 과연 둘의 사랑은 영원할 수 있을까?
소설 원작과 애니메이션
일단 영화의 가장 큰 특성 두 개는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점과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징이다. 우선 전자의 경우에 이 영화는 ‘쇼코의 미소’의 원작자 최은영 작가가 쓴 소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 최은영 작가의 작품 전부를 읽어본 건 아니지만 ‘쇼코의 미소’는 기억난다. 섬세한 필체로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는 동선을 형상화한 능력은 최은영만의 문장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영화 군데군데 이 최은영 작가의 시각화 능력이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 영화의 각색이 이 인물 간의 내면묘사를 얼마나 잘 살렸는지는 별개로 두고, 이야기의 구성이 인물의 내면묘사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서사들이 전개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영화가 아니라 소설이었다면 섬세한 문장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몇 개 있었다. 또 최은영 작가에게 직접적으로 피드백을 받았던 걸까? 아쉬운 이야기 전개와는 반대로 반짝이던 대사 몇 줄이 있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장르적인 특성 ‘애니메이션’이다. 영화는 직접 그린 작화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데 있어 시각적 쾌감을 전달하는 데 있어 모자람은 없다. 특히 영화 초반부 두 사람이 싹트는 과정에서 학교를 묘사하는 방식은 대단했다. 여름의 풍광을 보여주는데, 영화의 로맨스적 특성이 계절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왔다고 볼 수 있는 정도다. 대사의 문장력만큼이나 큰 영화의 강점이었다. 물론 후반부에 겨울을 묘사하는 방식에서도 전체적인 색감을 활용하던 것이 두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좋았다고 뽑을 수 있다.
두 사람
사실 글쓴이는 소설 원작이라는 점과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특성을 활용한 시각적 쾌감 말고 영화의 강점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장점으로 느꼈던 것 중 몇 안 되는 것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다. 여기서 왜 두 사람이 좋아하고 뭐 딜레마가 있고 가타부타 설명하는 것보다 본론만 딱 보여주는 전개는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로맨스 장르 영화에서 여운을 남겨주기 위해 이 부분을 디테일하게 묘사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핵심은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난 다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부분에 사족을 붙이면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핵심 키워드 ‘소수자와 다양성’에 영향이 갈 수도 있다. 이야기의 응집력이 딱 안 붙는 것이다. 초반부 이후 이야기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별개로 두고 이 선택은 감독이 좋은 수를 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인물 세팅에 대해 느껴지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영화는 퀴어 로맨스물이다. 퀴어 로맨스라는 장르적인 세팅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캐럴>이나 <해피 투게더> 같은 영화도 퀴어 장르로서 로맨스 걸작으로 우리의 곁에 남아있지 않나. 두 영화에서 퀴어 로맨스라는 인물 세팅이 강점을 가졌던 부분은 주인공들의 설정이다. <캐럴>에서 루니 마라와 케이트 블란쳇이 맡았던 역할은 입장차이를 보여주되 내적인 설정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특정 이미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에 집중해서 인물을 보여줬던 느낌이었다. 특히 이 <캐럴>에서 두 사람이 사랑을 확인하는 두 장면은 인물이 어떤 인간인지만 보여주고 이미지에 편승하지 않았다. <해피 투게더> 같은 경우는 보영이 약간 여성적인 느낌이 있긴 하지만 후반부까지 가면 입장이 전복된다. 이는 영화의 핵심 소재인 ‘돌아가야 할 곳’이라는 소재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연출이었다.
이 <그 여름>은 좀 진부한 이미지들에 기대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원작이 그렇다? 원작이 그런 결이라고 해도 각본가에겐 각색이라는 것이 있어서 딱히 이유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선 첫째. 수이는 운동선수다. 이경은 소심한 인물이다. 전형적으로 안경을 쓰고 더 패턴화 되어있듯이 자기 의견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경. 왠지 우리가 아는 로맨스물의 캐릭터성을 그대로 쌓아가고 있다. 수이는 여성들에게 멀리 떨어져 있던 스포츠 선수라는 점과 쇼트커트 헤어스타일로 남자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데 이경은 전형적으로 약한 인물로 묘사했다. 이게 퀴어 로맨스에서 품을 수 있는 섬세함이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너무 대놓고 성격 특성을 강조해서 상투적으로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성별만 여자로 설정하고 운동선수라는 세팅을 갖다 놓으면 여성성을 탈피하는 서사가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걸까? 두 사람의 자유로운 사랑을 보고 싶었던 관객이라면 이 부분을 아쉽게 생각할 만하다. 그리고 수이의 파트너 이경의 내면묘사 역시 평면적이라는 점이 아쉽다. 뭐랄까 이 영화가 다른 작품들과 차이점을 가질 수 있던 지점 중 하나는 이경의 감정선일 텐데 내내 영화 후반부까지 이 부분을 직접 설명하고 있어 느낌이 잘 안 산다. 이 내용도 문제지만 전달하는 방식도 아쉬웠던 것이다.
다 짜여 있는 듯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두 개는 수이와 이경의 사랑이야기이자 성소수자들에 대한 다양성 문제다. 이 중에서 영화에 배경처럼 깔려있는 연출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시선이다. 영화는 이경이가 대학을 가는 시점을 기점으로 찍고 1,2부로 이어져 있다. 이 다양성의 측면에서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한 문제는 영화의 핵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소재들을 군데군데 넣어서 이야기에 종합시킨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장면에서는 영화의 메시지를 위해서 인물들이 약간 희생된 감이 있다. 우선 1부. 어린 이경이가 누군가에게 폭언을 듣는 장면이다. 이때 이 시기에 있던 사람들이 이 단어를 실질적으로 어떻게 알고 있냐?는 차치하고 나서라도 이 장면이 주는 전달력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고등학생 시절. 두 사람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작동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눈치’는 영화에서 소모적으로 툭 던져진 느낌이 강하다. 특히 수이의 경우 역시 이경처럼 전형적인 학교생활을 겪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많은 학생들 중에 그걸 다 짚어낼 사람이 만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높을까?라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2부로 넘어간다. 2부에서는 두 사람의 공간을 바꾼다. 공간을 바꿈에 따라 두 사람이 어떤 장소를 알게 된다. 여기서 연극이 벌어진다. 이 연극의 의미가 극 중에서 비중이 적지 않다. 나름 중요하게 보여주는데, 정작 여기서 제시되는 연극의 내용이 과연 영화의 핵심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 있다. 엔딩이 약간 비슷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작 이 연극 파트가 없다고 해도 엔딩까지 가는 전개에 아~무 지장이 없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두 사람의 로맨스가 연극에서 다루는 토픽과 관련이 있을까? 아니다. 왜 이 부분이 들어갔을까? 영화에서 다루고 싶었던 것이 과연 선택과 집중을 골라 만들어진 것일까 의문점이 드는 부분이다. 후술 하겠지만 각본 상에서 어떤 인물이, 또 특정 사건이 영화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해 소모적으로 쓰이는 것이다. 이게 로맨스의 장르특성이랑 아~무 관련이 없으니 이런 이면에 깔려있는 창작자의 관점이 몰입이 안 되는 작위적인 느낌만 든다. 아쉬운 부분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아마 많은 분들이 가장 큰 단점으로 뽑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글쓴이는 이 점이 굉장히 아쉬웠다. 배우들의 연기다. 목소리 톤이 다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아지는 듯한 사운드 연출은 영화의 분위기가 축축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경이와 관련된 목소리 연기는 안 그래도 평면적인 인물 연출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빛을 잃어버린 이야기
이 영화의 장르는 로맨스다. 주인공 둘의 러브 스토리를 중심으로 품은 것이다. 영화를 보면서 글쓴이가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과연 이 영화가 사랑 영화로서 뛰어난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있을까?라는 점에서는 솔직히 전혀 이입되지 않았다. 영화의 엔딩부에 다다라서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결론 때문이다. 2부의 이야기가 내팽개쳐져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인물의 행보를 동성애라는 소수자 코드에 의존한다는 것은 그냥 변명에 가깝다. 이 영화가 성소주자들에 대한 존중과 로맨스라는 두 가지 코드 다 놓쳤다는 나의 의견도 여기서 온다. 사랑이 왔다가 떠나간 자리는 로맨스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묘사되어 왔다.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장난과 관련된 시퀀스, <이터널 선샤인>의 기억 삭제라는 소재, <팬텀 스레드>에서 습관과 사랑이라는 양면성, <박쥐>에서 ‘빨아먹어’야 이뤄지는 로맨스까지 이 부분이 로맨스 영화에서의 승부존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61분이라는 러닝타임 때문인지 그렇게 둘이 행복했다는 몰입이 쉽게 이뤄이지 않는다. 러닝타임이 짧아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있지만 군데군데 조악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우선 이경이의 외적 부분에서 남들과 다른 특성이 있다. 이거 로맨스에서 중요할까? 전~혀 중요하지 않는다. 감정선이 얕은 것이다. 오히려 이와 관련된 인물 설정이 조악하다고 느껴본 적은 있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소재 역시 마찬가지다. 이 것이 이 사랑과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책으로만 읽으면 유효타로 작동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이 관련된 부분이 진부하다고 느껴진다. 또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공간이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 공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이경이가 살던 곳이 어디인가? 에 대한 논의가 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서 이 장소에 대한 딜레마가 굳이 없어도 되지 않았을까라는 점은 아쉽다. 이 공간과 관련된 딜레마가 아니더라도 수이의 입장이 확 반전되는 사건이 있다. 여기서 벌어지는 사건의 리얼리티는 축구를 어느 정도 아는 글쓴이 입장에선 약간 갸웃거리게 되는 장면이었다. 이 폭력적인 장면이 굳이 들어가야 했을까? 영화의 기본 세팅을 깰 정도로? 이런 식의 ‘여성성이 아닌 것’에 대해 태클을 거는 사회 묘사가 한 번이 아니었다는 점은 말하는 방식의 조악함이 느껴졌다.
시도'만'좋은 것
글쓴이는 이렇게 이 <그 여름>이 장점보다 단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작품이라고 봤다. 특히 참을 수 없었던 건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인 척한다는 셈이었다. 물론 이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말에 반대 입장을 펼치고 싶지 않다. 연극에서 다뤘던 소재는 한국에서 더 심화된 채로 논의될 필요가 있고, 성소수자라고 기본권이 파괴되는 일은 많이 불합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또 여성성이라는 핑계로 사람의 역할이나 기댓값이 달라진다면 그 역시 억울하고 서러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영화가 아름다운 작화로 논쟁적인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미학적 가치가 올라가고 그럴 일은 없다. 영화는 로맨스영화로서의 귀결이 약하기 때문에 메세지적인 측면의 설득력에 영향을 끼쳤고, 반대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로맨스물로서의 장르특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완성도에 금이 갔다. 이 영화들 둘러싼 호평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은데, 글쓴이는 <해피 투게더>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캐롤> 같은 걸작들이 소수자들에 대한 친밀도를 높여놓은다는 점에서 작품이 갖고 있는 한계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단순히 그림체만 예쁘고 아름다워서 좋은 영화가 아닌 이야기의 구조로 관객들을 사로잡는 작품이 탄생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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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내 안에서 영화의 개념화는 서양, 특히 유럽과 미국의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학생 시절 영화를 제대로 전공해보자고 결심한 이후 처음 수강한 강의가 프랑스, 미국, 영국 등의 영화들로 모든 역사적 자취를 설명하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영화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존재했는지, 하다 못해 아시아 영화의 세부적인 내용조차 알 수 없었다. 그 수업을 탓할 수는 없다. 영화가 설명되는 방식이 으레 그랬으며, 눈을 돌려 관심을 가지더라도 그 범위를 벗어나는 정보는 알기 어려웠다. 서양 국가를 주제로 한 발표와 그 외 국가들에 대한 발표는 분량부터 차이가 났다. 유수한 영화제라 불리우는 국제영화제들은 모두 일부 국가들에게 집중되어 있으니 그럴 만했다.
영화를 더욱 넓고 깊게 소비하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지금의 나 또한 변함 없이 몇 국가의 작품들과 그 방식에만 익숙해져 있었고, 다양한 국가영화를 접하고 싶던 차에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만날 수 있었다. 여성감독이 여성 주연들과 함께 연출한 작품이었기에 더욱 눈이 갔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으나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을 멀리서나마 접해왔기에 영화로 만나는 인도 여성들은 어떤 모습일지 하루 빨리 알고 싶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 뭄바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에겐 해결되지 않는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
미리 말해두겠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여성영화는 아니다.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라는 문장을 보고 당신은 무엇을 떠올릴 수 있는가? 여성들이 모여서 함께 주거공간을 꾸려 나가거나, 기혼/미혼/비혼 여성들의 각 가치관들이 모여 건강한 일상을 공유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그렇다면 해당 작품을 관람하고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오히려 남성과의 연애와 결혼이 자연스럽게 스토리의 주축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 내에 만연한 종교에 따른 가치관과 여성을 억압하는 뿌리 박힌 것들에 맞서는 요소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도 여성'들에게 동일시되어야 조금 더 잘 보이는, 하지만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는 섬세한 작품임은 명확하다.
* 뭄바이를 느낄 수 있는 오프닝 시퀀스
극의 첫 장면은 누군가가 인터뷰를 하는 듯한 나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뭄바이'라는 도시에 대해서 겪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다른 목소리들이 짧게 풀어낸다. 그리고 배경은 분주히 움직이는 도시의 밤을 그대로 담아낸 샷들이 나온다. 빠르게 이동하는 차량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 가운데 수많은 빛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자동차 전조등, 조명, 기차 혹은 지하철이 뿜는 빛. 고스란히 빛을 받는 사람들은 어쩐지 지쳐보인다. 이렇다 할 주인공 없이 도시 그 자체를 담으며 꽤 긴 시간동안 이어지는 오프닝 시퀀스는 흡사 다큐멘터리 영화 같기도 하다.
그만큼 도시의 모습을 충실하게 담아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복잡한 도로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토바이의 행렬은 베트남 하노이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하노이에서 잠깐 머물렀던 적이 있다. 언어를 공부하며 영상도 제작하고자 했던, 도시를 마음껏 즐기다 떠나면 되는 여행자의 입장에서도 문득 외로움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버거운 마음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을까. 이렇게 상상만 하던 현지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게 된 느낌이었다. 눅눅한 공기와 도로의 소음, 즐비해 있는 길고 얇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가는, 도시의 오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샷들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인도 여성들의 사소한 일상 또한 상세하게 묘사된 덕분에 그들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 가는 극을 경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컸다.
** 감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
초반부가 다큐멘터리 같았다면, 중반부는 실험영화 같은 면모를 보인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프라바'와 '아누'의 일상이 리드미컬한 사운드와 함께 독특한 편집으로 표현된다. 하루종일 좁디 좁은 사무실에서 고객 응대를 하고 있는 '아누'가 종종 나누는 문자 텍스트가 자막으로 화면에 보이는 호흡은 여느 극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힙한'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장난기 서린 음악이 본능적인 호감을 자아냈다. '아누'가 단독으로 나오는 사무실 몽타주는 아주 귀엽고 익살스러운 연기가 매우 돋보인다.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는 주로 밤으로 표현되었지만 모든 걸 뒤로 하고 바닷가 마을로 모인 세 주인공의 시간들은 대부분 낮으로 구성된다. 어둠에 잡아먹힌 도시와 달리 한적한 바닷가는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차 있다. 푸른 나무들 사이로 뻗어 나가는 빛줄기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화면에 담아냈다. 그리고 마지막, 세 주인공이 모인 장면에서는 ㅡ 알게 모르게 쌓아 두었던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린 채 ㅡ 새까만 하늘과 밤바다 속에 별과 조명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비로소 그들의 주변 환경을 이루던 모든 빛이 한 데 만난 것이다.
다만, 극영화로서의 힘은 약하다. 각 등장인물의 서사는 미약하며, 접점은 모호하다. 현재진행형의 일상을 제시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 연락이 오지 않는 남편을 기억하는 '프라바'와 사랑하는 이가 있음에도 숨겨야 하는 '아누', 일평생 살아왔던 공간을 집이라고 인정 받지 못하는 '파르바티'. 각 사건들의 앞뒤상황이 제시되지 않는 만큼 그들의 감정선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다. 심지어 플롯 자체는 느리고 차분하게 진행된다. 명확한 대사보다는 주어가 분명하지 않은 비유적 표현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스토리의 흐름에 탑승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다큐멘터리 영화였다면 수작이라고 판단했을 거 같다.
*** 어둠 속 빛을 담는 여성들의 두 눈
극중 '빅 클로즈업' 샷이 자주 사용되는 특징이 눈에 띄었다. 특히 얼굴, 그리고 얼굴 중에서도 눈 주위를 중심으로 샷을 잡는다. 눈은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사물의 상을 담는다. 그리고 그 눈은 항상 빛이 있다. 주인공 자체가 빛이기에 바라보는 모든 사물들에도 자연스럽게 빛이 옮기는 건지, 눈이 향하는 모든 곳에 빛이 있었고 그대로 담아냈을 뿐인지 알 수 없다. 정확한 건, 빛은 어둠이 있기에 인식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할 수 없다고 하지만, 사실 나자신 혹은 어둠 속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빛 그 자체였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일까? 감독이 바라보는 인도, 여성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드러낼 줄 알고 그들의 우정이 존재하는 한, 그곳은 애써 빛을 상상하려 하지 않아도 애초부터 희망이 함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당 글은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되었습니다.
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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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심을 찾고 느낄 수 있다
친구하나 없이 엄마(레이첼 맥아담스)가 짜놓은 인생계획표대로만 살던 소녀(맥켄지 포이). 어느 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옆집의 괴짜 조종사 할아버지(제프 브리지스)를 만나면서 오래 전 조종사가 사막에 추락했을 때 만난, 다른 행성에서 온 어린왕자의 존재를 알게 된다. 소녀는 조종사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가면서 어린왕자가 살던 소행성 B612와 다른 세계로의 여행, 모두를 꿈꾸게 하는 가슴 벅찬 모험을 시작한다.
모모
영화를 보며 소설 책 <모모>가 불현듯 떠올랐다. 두 작품 모두 어른의 세계를 부정하고 자신만의 세계를 찾길 원하는 주인공의 소재와 둘다 판타지 형식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혹여나 <모모>를 읽어보지 못했다면 <어린 왕자>를 보고,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당신의 어린 모습을 떠오를 수 있고, 어른이 되버린 나에게 동심의 근황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왕자
이 영화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모티브를 따와 만든 영화이다. 그래서 영화의 내용도 소설의 이야기에서 새로이 추가된 캐릭터들이 사이에 들어가 영화가 진행된다. 어린왕자만의 따뜻한 성격이나 종이 냄새가 날 거 같은 기분좋은 편안한 색채는 소설에서 느껴진 몽글몽글한 느낌을 잘 표현해준다.
객관적 상관물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하면 기존의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의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문학 작품만의 표현방식 중 하나이다.
영화에서는 소설에서 등장한 '바오밥나무' ,'장미' ,'별' 등에 의미를 부여하여 소설에서 공감한 느낌을 영화에서도 이어받을 수 있게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제도 부각시켜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아성찰을 깨우칠 수 있는 시간도 만들어준다. (다시 보면 원작의 뛰어남이 묻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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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우빈 주연 넷플릭스 영화 무도실무관 / 김우빈의 멋진 액션 연기 / 감동적인 부자의 눈물 / 무도실무관이란 직업의 재발견 / 사회정의의 실현 / 성범죄 아동성범죄 불법촬영 척결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무도실무관"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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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 공식 예고편
《케이팝 데몬 헌터스》, 6월 20일 넷플릭스에서 시청하세요: https://www.netflix.com/title/81498621 케이팝 슈퍼스타 루미, 미라, 조이. 늘 매진을 기록하는 대형 스타디움 공연이 없을 땐 비밀 활동에 나서는데. 바로 악마 사냥꾼이 되어 주변에 도사리는 초자연적 위협으로부터 팬들을 지키는 것. 그런 이들 앞에 나타난 사상 최대의 적. 엄청난 매력의 라이벌 보이 그룹으로 위장한 악마들에게 맞서기 위해 루미, 미라, 조이는 힘을 합친다. 넷플릭스와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이 선보이는 작품. 강렬한 재미와 액션 가득한 케이팝 오디세이로, 새로운 오리지널 곡들로 채워진다. 그룹 트와이스의 정연, 지효, 채영이 부르는 오리지널 신곡도 삽입된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시청하세요. 6월 20일 공개,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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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채플웨이트> 메인 예고편
겁내지 마세요. 이들은 비밀이 많은 집을 물려받았을 뿐이에요. 스티븐 킹 소설 원작, 〈채플웨이트〉가 11월 24일 왓챠에 찾아옵니다. ▶︎ https://wcha.it/3FkMlf2 ?그래도 조금 겁날 수도 있으니 같이 볼 겁없는 친구 미리 섭외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