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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ofilm2022-03-27 17:06:40

벨파스트 (2021)

잿빛 도시에도 추억이 있었음을

** 영화 <벨파스트>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벨파스트 (2021)

감독: 케네스 브래너 

출연: 주드 힐, 케이트리오나 발피, 주디 덴치, 제이미 도넌, 시아란 힌즈

장르: 가족, 드라마, 코미디

러닝타임: 98분

개봉일: 2022.03.23

 

 

 



 하루아침에 평화가 깨진 마을, 인생 첫 혼돈에 빠진 소년 '버디'

 

1969년의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아이들은 거리에서 공을 차며 뛰놀고, 어른들은 춤을 추며 음악과 술을 즐기는 가족 같은 마을의 평화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 북아일랜드 내에서는 개신교도와 천주교도로 종교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고, 벨파스트에서 천주교도를 몰아내기 위한 폭동이 일어난다. 친구들과 축구를 즐기고, 좋아하는 여자 아이 옆자리에 앉기 위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던 9살 소년 '버디'의 세상은 하루 아침에 달라지기 시작한다.

 

한 차례의 폭풍우가 지나간 뒤 벨파스트에는 마을 경계에 바리케이드가 설치됐고 통금제를 시행하는 등 경비가 삼엄해졌다. '버디'의 일상은 다시 이전으로 돌아온 듯했으나 부모님의 갈등, 할아버지의 건강 악화로 조금씩 균열이 생기는 중이었다. 그렇게 가족의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버디'와 그의 가족은 소중한 추억이 담긴 벨파스트와의 작별을 두고 큰 고민에 빠진다.

 



 

 

아이의 눈으로 본, 어두운 역사의 이면

영화 '벨파스트'는 감독 '케네스 브래너'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실제로 당시 그가 거주했던 1960년대 후반 북아일랜드의 분쟁 시기를 배경으로 삼았다. 주인공인 9살 소년 '버디' '케네스 브래너'의 유년 시절이 투영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벨파스트'는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작품인만큼 '북아일랜드 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 자체를 조명하기보다는 그 시대에도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길 바랐던 소시민의 삶을 그리는데 집중한다.

 

'천주교는 나쁜 거고 개신교는 좋은 건가?' 종교를 선악구도로 구분할 줄 밖에 모르는 아이의 입장에서 벨파스트의 사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버디는 가족의 뜻대로 매주 교회에 출석하지만,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천주교와 개신교라는 양 갈래 중 어느 길로 가야 선한 것일지 고민하며 밤을 지샐 정도로 순수한 아이다. 폭도들이 슈퍼마켓의 문을 부시고, 온갖 폭력이 행해지는 긴박한 순간에도 집에 필요한 '효소 세제'를 챙기는 버디에겐 아직까지 이 비참한 현실이 직접적으로 와닿지 않는 것이다.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이 폭발하고, 사람이 다치는 격동의 시기에도 어린 아이들만큼은 누구나와 같은 시트콤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뿐이다. '버디'는 악몽 같은 상황 속에서도 꽃피웠을 어린 시절의 추억, 떠올리면 저절로 웃을 수 있는 예쁜 기억 자체를 상징한다.

  

 

 

 

거친 소재로도 따뜻함을 만든 가족 영화

 아이의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 작품인만큼 예민한 사회 문제를 다뤘음에도 사태의 심각성이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단지 격동의 시기를 살았을 뿐인 한 가정의 소박한 일상을 담은 가족 영화, 코미디 드라마 영화의 성격이 강하다. 가족들이 다 함께 영화관에서 <치티치티 뱅뱅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보며 동심에 젖어드는 장면,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이후 노래와 춤으로 슬픔을 이겨는 장면들은 앞서 마을을 뒤덮었던 분쟁의 여파를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

 

순수하고 해맑은 소년 '버디'를 연기한 아역배우 '주드 힐'의 사랑스러운 연기도 돋보이지만 힘든 시기에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버텨야 했던 엄마를 연기한 '케이트리오나 발피'의 눈부신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2주씩 집을 떠나 있는 남편(제이미 도넌) 대신 가장의 역할을 해내야 했던 고충과 부담감이 배우의 표정과 불안한 목소리로부터 고스란히 전해진다. 1960년대라는 배경 속 '어머니'라는 존재의 스테레오타입이 박혀 있지 않고, 아이를 엄격하게 훈육하면서도 가정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카리스마 있는 모습까지 비춰진 캐릭터인지라 작품 내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리고 큰 비중은 아니지만, 적은 대사와 표정만으로도 감정을 표현하는 대배우 '주디 덴치'의 연기도 큰 울림을 가져다준다.

 

 

 

떠나온 곳에 대한 그리움, 떠난 이들의 부채감

버디와 엄마는 마을이 분쟁지역이 된 와중에도 그곳을 사랑했다. 엄마에겐 몇 십년 간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는 자신의 일기장 같은 곳이었고, 버디에겐 헤어지기 싫은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깊은 감정도 혼돈과 폭력이라는 장애물을 버틸 정도로 강하지는 못했다. 결국 버디의 가족은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이후 벨파스트를 떠났고, 실제 '케네스 브래너' 감독도 고향인 벨파스트를 떠났다고 한다.

 

그렇다면 50여 년이 지나 감독이 <벨파스트>라는 영화를 연출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 마을은 가족이 이주를 택하게 만들었지만, 돌이켜보면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극에서 적어도 '버디'만큼은 벨파스트를 떠난다고 했을 때, 오열을 할 정도로 동네를 사랑하고 있었다. <벨파스트>는 곧 감독의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다. 잿빛으로만 보일 법한 혼돈의 역사 속에서도 아이는 영화를 보며 꿈을 키우고, 풋사랑의 경험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으니까. 마치 몽상 속 장면들 같은 흑백의 장면에는 그러한 그리움의 정서가 흩뿌려져 있다.

 

동시에 영화는 떠난 이들에 대한 부채감도 함께 전한다. '버디'의 가족은 운좋게 영국의 도움으로 이주를 택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벨파스트의 남아 그들의 집을 지켰다. 남편과 아들의 가족들을 모두 떠나 보낸 '버디'의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할머니는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는 말을 담담한 표정으로 고한다. 버디의 가족은 결국 떠났지만 마을 곳곳을 모두 꿰고 있을 정도로 친숙한 공간과 가족처럼 함께 지냈던 이웃을 두고 왔다는 것에 대한 부채감이 늘 뒤따랐을 것 같다. 더군다나 당시 벨파스트는 아직까지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감독은 자신의 소중한 유년 시절을 만들어주었던 마을과 그곳에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벨파스트>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이러한 감독의 메시지가 '주디 덴치'의 마지막 대사와 표정과 만나 무게 있는 여운으로 끝맺음을 완성한다.

작성자 . popofilm

출처 . https://blog.naver.com/ksy1327/222682290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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