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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wr2022-04-03 11:45:18

폭탄 앞에 선, 젊은 예술가의 초상

영화 〈틱, 틱... 붐!〉 리뷰

 

 

  식당에서 서빙을 하며 8년 동안 ‘슈퍼비아’의 대본·작곡 작업을 이어온 뮤지컬 작가 지망생 조너선 라슨은 늘 자신감에 넘친다. 재능과 패기를 가진 그는 자신의 미래가 밝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1990년, 서른을 앞둔 그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과연 ‘슈퍼비아’를 완성할 수 있을까? ‘슈퍼비아’ 제작자를 구할 수 있을까? ‘슈퍼비아’가 공연된다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의 질문이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질 때마다 견고했던 조너선의 자신감에 조금씩 균열이 난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마치 폭탄의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진다. 조너선은 과연 똑딱똑딱(tick, tick) 타이머가 도는 폭탄이 터지기(boom!) 전까지 자기 확신을 지켜내고 ‘슈퍼비아’를 완성할 수 있을까?

 

 

 

 

 

 

  〈틱,  틱... 붐!〉은 동명의 뮤지컬을 각색한 영화로, 뮤지컬 ‘렌트’ 등을 만든 실존 인물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가 주목하는 건 서른이라는 숫자다. 서른. 별다른 의미가 없는, 그저 수많은 아라비아 숫자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이 숫자가 나이에 적용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서른이라는 나이는 청춘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문턱으로 여겨지곤 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지, 수입은 얼마나 되는지, 장래성은 보장되는지 등이 평가 기준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예술가라면 기준이 조금 달라진다. 그에겐 여전히 돈과 장래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예술을 경유하는 명예‧자기만족의 부산물로서만 그렇다. 돈을 목표로 예술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예술을 하는데 돈이 따라오면 좋은 일이지만, 그에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이다.

 

 

 

  조너선이 이토록 초조한 건 이 때문이다. 그는 남들이 ‘번듯한’ 직장을 구하는 동안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그에겐 자부심이 있었다. 언젠가 수많은 사람이 열광할,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는 자부심 말이다. 그는 그 자부심으로 20대를 지나왔다. 문제는 최종 평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차일피일 미뤄왔던 냉정한 평가에 스스로를 내던질 때가 다가왔다는 것. 그리고 아직 자신이 덜 준비된 것만 같다는 것. 조너선은 미래의 제작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워크숍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아직 뮤지컬의 마지막 노래를 작곡하지 못했다. 함께 꿈을 좇던 친구는 배고픈 무명 생활에 질려 마케팅 회사에 취직해 승승장구하는 중이고, 마찬가지로 예술계에 종사하던 여자 친구도 새로운 직장을 찾아 멀리 떠나겠다고 한다. 왜 하필 이 중요한 시기에 이런 일이 연달아 벌어진단 말인가! 조너선은 미치기 일보 직전이다.

 

 

 

 

 

 

  드디어 대망의 워크숍 날. 기적적으로 영감이 떠올라 작곡은 어찌어찌 마무리했다. 영향력 있는 비평가도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워크숍에 참석했다. 지난 괴로움이 ‘대작’을 만드는 과정의 필연적 고난으로 여겨질 참이다. 워크숍을 마친 조너선은 잔뜩 부푼 기대를 품고 전화기 앞에서 대기한다. 에이전트를 통해 여러 영향력 있는 제작자들이 연락해올 것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이머 달린 폭탄은 끝내 조너선의 품에서 폭발해버린다. 조너선은 아무런 제안을 받지 못한다. 그의 에이전트가 말한다. “다음 작품을 써. 그게 작가야. 언젠가 하나 터질 때까지.” 모든 것을 새로 다시 시작하라는 말. 이 한마디가 자신의 20대를 평가하는 말이 된다면 어떤 기분일까. 패닉이다. 조너선은 다시 텅 빈 악보를 마주해야만 한다. 가늠할 수 없는 조너선의 큰 좌절감이 화면을 뚫고 전달되는 듯하다.

 

 

 

  다행히 현실의 조너선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틱, 틱... 붐!’도 호평을 받았고, ‘렌트’는 초대박을 터뜨려 ‘뮤지컬의 정의를 바꿔놓았다’고 평가될 정도로 극찬을 받았다. 다만 허망한 건, 그가 ‘렌트’ 초연 전날 밤 대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예술을 향한 그의 애타는 갈망과 이토록 허무한 비극적 삶. 조너선이 이를 미리 알았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극적인’ 요소는 조금 덜하더라도 그가 더 오랫동안 살아 자신의 성취를 만끽했으면 좋았겠다 싶다. 영화 〈틱,  틱... 붐!〉은 잔혹한 현실을 거슬러 폭탄 앞에 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다른 결말로 채색되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그가 부디 하늘에서라도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렌트’의 성공을 만끽했기를 바란다.

작성자 . rewr

출처 . https://brunch.co.kr/@cyomsc1/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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