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nymoushilarious2022-04-15 23:34:50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리뷰
춘희는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외가 식구가 사는 외삼촌 집 다락방에 얹혀살고 있다. 외삼촌네 가족이 그 집을 떠나고 한참 지난 후까지도 그 집의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외삼촌 내외, 사촌이 생색내듯 베푸는 선의에 기 한 번 제대로 못펴고 히키코모리처럼 살아간 춘희는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점점 과거의 춘희가 현재의 춘희를 신경쓰이게 한다. 과거의 춘희는 왜 계속 등장해 현재의 춘희를 흠칫거리게 하는 걸까?
1.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망각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춘희에게는 다락방의 존재만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로운 공간.
춘희는 자신의 엄마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춘희는 그 집은 삼촌 집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엄마의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가족들은 춘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객식구, 눈치를 봐야만 하는 아이로 몰아간다. 딸에게 집을 주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그 딸이 낳은 춘희는 이 가족이 사는 집에 지분을 행사할 자격은 없는 거라면서 말이다. 그들의 논리가 무엇이든 춘희는 상처를 받았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에게 그 집을 잘 지키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다른 집으로 이사갔어도 춘희는 여전히 그 집의 객식구처럼 행동한다. 눈치주는 외삼촌네 가족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다락방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춘희의 영혼은 십 몇 년동안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들 한다. 하지만 표출되지 못하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방치되어 곪아 터질 뿐이다. 춘희도 그렇다. 외삼촌 내외에게서 짐짝 취급받던 어린 시절을 잊고 살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춘희는 그저 애써 묻은 것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외면했던 상처는 잊혀진 것은 아니기에 춘희의 앞날에 꾸준히 걸림돌이 된다. 춘희는 한 번이라도 자신의 상처를 마주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정당한 사유없이 핍박하는 외삼촌 가족들에게 한 번은 소리쳤어야 했다.
2. 다한증, 춘희의 지문
춘희는 자신의 다한증을 컴플렉스 쯤으로 여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손의 땀을 더러워하던 선생님의 반응, 그리고 땀 때문에 못마땅해하던 외삼촌의 짜증 섞인 표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자신이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겨버리는 이 땀 때문에 더 구박받는 것 같아 춘희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는다. 이렇게 살거라면, 난 왜 태어난 걸까, 내가 태어난 이유도 내가 객식구가 된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걸까 싶은 자기비하적 생각이 춘희의 머리를 지배한다. 그 자기비하는 춘희의 삶의 디폴트값이 되어 춘희는 그 어디에도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장점인 손재주를 특화시킬 생각보다는 자신의 단점을 없앨 생각부터 한다.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녀가 단점을 가리기 급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손재주로 마늘 까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재능을 펼칠 만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마늘 까는 이유도 사실 다한증 수술 받고 싶어서였기에
춘희의 이런 단점 지양적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어렸을 때,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날렸던 그들만의 상식이 불러온 상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춘희가 객식구라는 것은 당연한 취급이었을지 몰라도 춘희는 평생 그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다락방에 영혼을 가둬버린다.
3. 상처받았다는 사람들에 관한 이중적 시선
영화를 보면서 가해와 피해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춘희인지 외삼촌네 가족인지. 나는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지, 또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었는지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했다. 외삼촌네 가족의 매정함이 그들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춘희의 순함은 그들이 춘희를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허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를 두고 보여준 위선은 우리네의 삶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위선이었다. 위선은 종이 단면과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삶이 팍팍했던 그들에게 춘희의 존재는 짐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매정함에 박수쳐주고 싶진 않지만 무자비하게 욕만 하기에 나도 저런 위선적인 모습이 있을 것 같아 찔린다.
상처란 주관적이라서 시각을 바꾸면 극복할 수 있다. 춘희는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어 자신의 단점인 다한증에 집착하는 바람에 자신의 손재주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촌에 매정한 말에 매몰되어 숙모의 츤데레를 주목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릴 시간에 자기자신부터 사랑하자. 남을 위해 날 가꾸지 말고, 내가 즐겁고자 나를 가꾸자. 춘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총평
영화가 자칫 루즈하고 뻔할 수 있는데 춘희의 썸남이 있어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춘희의 썸남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귀엽다. 오글거리는 건 관객이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조금만 참으시라. 광명과도 같이 개그가 찾아올 것이다.
※해당 영화 시사회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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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MZ DOCS] 함께 호흡하고, 고뇌하고,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1968년부터 1977년까지 오가와 신스케 감독은 7부작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 '산리츠카 7부작'은 <일본해방전선, 산리츠카의 여름>, <일본해방전선, 산리츠카>, <산리츠카, 제2차 강제측량 저지투쟁>, <산리츠카, 두 번째 요새의 사람들>, <산리츠카, 이와야마에 철탑이 왔다>, <산리츠카 헤타부탁>, <산리츠카 5월의 하늘>의 7편의 영화로 구성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베트남전에 더욱 효과적으로 물자를 보급하디 위해 공항을 신축하겠다 발표한다. 본래 예정지는 도쿄국제공항(현 하네다 공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치바 현의 도미사토 마을이었으나, 2500가구의 격렬한 반대로 산리츠카로 장소를 변경하였다. 일본 정부는 산리츠카는 유일하게 자민당 국회의원이 없는 지역이었고, 도시마토 마을보다 훨씬 적은 가구수를 가지고 있어 공항을 짓기 수월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곳의 주민들은 대부분 개척민들이라 마을 내의 결속력이 높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과는 달리, 산리츠카의 농민들은 매우 격렬하게 저항했다.
공항을 건설한다는 것은 단순히 집을 빼앗기는 것에서 나아가 대대로 물려받아 평생을 바친 농지를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의 일방적인 통지는 이들의 전부를 빼앗아 가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산리츠카의 농민들과 학생 운동가들은 수 년간 격렬한 저항을 했고, 처음에는 평화 시위의 형태를 띄었으나 정부의 탄압으로 시위 참가자들이 부상을 입거나 체포되자, 각목을 들고 돌을 던지는 적극적 운동으로 변화하였다.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산리츠카 7부작은 이러한 탄압과 분투의 과정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카메라의 시점은 관찰자보다는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가깝다. 함께 호흡하고, 고뇌하며, 돌을 던지고, 소리를 지른다.
이들이 간절히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은 표면상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끝 무렵 버드 아이 숏을 통해 기름진 농지와 소박한 집들의 모습을 한눈에 담는 순간, 비로소 마음으로 느끼고 막대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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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자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개봉전 시사에서 영화 관람 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살면서 가까운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다. 나의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어 전달하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가늠해 본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감정을 나누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를 이해시킨다. 어쩌면 인간은 평생 상대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조금이나마 상대방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자식을 이해하려 애쓴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기가 무엇을 원해서 우는지 이해하려 애쓰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내뱉는 말에 따라 아이가 원하는 것을 추측한다. 아이가 크면 더 이해하기가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이가 10대가 되면서는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점점 이해하기 어려워진다. 서로 대화는 적어지고 그에 따라 서로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 간다. 부모는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대화의 시간을 가지기도 어렵고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린다.
자식을 이해하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영화 <더 썬>은 부모와 자식이 서로 얼마나 이해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주인공 피터(휴 잭맨)는 전처인 케이트(로라 던)와 이혼 후 베스(바네사 커비)와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케이트가 피터의 집에 찾아와 두 사람의 아들인 니콜라스(젠 맥그라스)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엄마인 케이트와 살고 있는 니콜라스는 학교에도 가지 않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케이트는 자신이 니콜라스를 바로잡으려 애쓰다 잘 되지 않아 전남편인 피터를 찾아간 것이다.
자신을 찾아온 전아내를 보는 피터의 모습에는 당황스러움이 묻어난다. 마치 착한 아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러니까 초반에 등장한 피터와 케이트의 모습을 보면 케이트의 육아에 뭔가 문제가 있어 보이고, 피터는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피터는 자신의 집으로 아들 니콜라스를 데려와 생활하게 한다. 새로운 학교에 등록도 해주고 최선을 다해 새로운 집에 적응할 수 있도록 현재 아내인 베스를 설득하기도 한다.
피터가 아들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아버지로서 좋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모든 면에서 피터는 아들 니콜라스가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지원해 준다. 그리고 니콜라스도 그런 아버지의 노력에 따라 학교도 다시 다니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런 모습 속에서 니콜라스는 왠지 불안해 보인다. 그가 지금 정말 안정이 된 건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지를 영화는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는 이야기 내내 한편으로는 잘 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찝찝함을 준다. 그러니까 아버지 피터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무언가 해결된다는 느낌을 주지만, 니콜라스가 혼자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불확실한 느낌을 준다.
불안해 보이는 아들 옆 좋은 아버지
각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 중 가장 부정적인 일은 바로 피터와 케이트의 이혼일 것이다. 부모의 이혼을 직접적으로 겪은 아들 니콜라스도 그 과정에서 많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니콜라스는 아버지가 없을 때, 아버지와 재혼한 베스에게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을 전달하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이 아닌 제 3자의 입장에 가까운 베스에겐 그런 니콜라스의 모습에서 불안과 긴장을 느낀다. 이런 식으로 니콜라스는 아버지 피터 앞에서는 안정적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타인인 베스 앞에서는 조금씩 진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영화는 부모 피터와 케이트가 진짜 니콜라스를 이해하고 있는지 영화 내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영화는 아버지 피터를 중심인물로 내세우면서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의 위험함을 훌륭하게 화면에 담고 있다. 실제로 처음 케이트가 등장했을 때 그는 부모 노릇을 잘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아들의 입장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보호자 같이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의 후반부로 갈수록 피터의 모습은 점점 케이트와 비슷해진다. 피터가 케이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피터는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린다.
피터는 그 자신도 권위적이고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그는 더욱더 아들 니콜라스를 이해하고 지원해주려 하지만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그는 아들이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지금 어떤 감정인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자신이 맞는다고 생각한 해결방법을 니콜라스에게 강요할 뿐이다. 니콜라스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속 근원적인 상처는 하나도 치유되지 못한다.
피터는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자신이 받지 못했던 사랑을 아들에게 온전히 전달하려 애쓴다. 제 3자인 관객이 보기에 그는 다른 어떤 부모보다 좋은 아버지다. 단지 그가 전처와 사이가 멀어지고 이혼하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과거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한순간의 상처를 좋은 아버지가, 좋은 어머니가 모두 치유해 줄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의 초반 니콜라스가 피터의 집으로 가게 되는 과정에서 영화는 케이트와 니콜라스, 피터의 얼굴을 클로즈업을 통해 교차로 보여준다. 세 사람의 얼굴에 담긴 고민은 하나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의 도착점은 모두 다르다. 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깊이와 생각은 영화 내내 하나로 합쳐지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만든다.
영화 속 피터는 재혼 한 이후 갓 태어난 아들이 하나 더 있다. 그에게도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이지만 니콜라스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두 번째 아들과는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다. 너무나 좋은 아버지가 되려 노력하지만 오히려 결과는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의 비극
우리는 니콜라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처럼 느껴진다. 부모님 피터와 케이트는 니콜라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에 대한 표현도 하지만 니콜라스는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한다. 영화를 본 누군가는 그런 예측불가능한 니콜라스가 이해가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게 당장 필요한 건 부모의 사랑과 관심보다는 전문적인 치료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연출한 직전작인 <더 파더>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 <더 썬>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자식을 이해하는 것이 정말 가능한지, 사랑만으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 치유될 수 있는지를 긴장감 있게 담고 있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무척 훌륭하다. 피터 역을 맡은 휴 잭맨은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지만 의도하지 않게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게 가면서 아들을 이해할 기회를 놓쳐 무너지는 모습을 잘 표현해 냈다. 이미 무너진 어머니 케이트를 연기한 로라 던의 연기도 훌륭하고, 어떤 심리 상태인지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니콜라스 역의 젠 맥그라스의 연기가 특히 눈에 띈다.
영화 <더 썬>은 자식이 가진 트라우마를 부모가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는지 그리고 부모가 그런 자식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질문을 던진다. 부모의 입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진짜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 아이를 위한 좋은 육아가 정말 아이의 심리에 도움이 되는지 고민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지금 우리 주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던져준다는 측면에서 무척 훌륭하다.
*영화의 스틸컷은 [다음 영화]에서 가져왔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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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쏘는 족족 빗맞는 액션과 스토리
아야세 하루카가 리볼버를 잡고 적을 처단한다. 이것만으로도 기대하게 하는 <리볼버 릴리>가 베일을 벗고 그 방아쇠를 당겼다. <세상에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그 남자가 아내에게>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지며, 볼거리가 풍성하고 드라마적으로도 짜임새 있는 액션 영화를 기대했던 게 사실. 하지만 쏘는 족족 빗맞는 액션과 스토리는 이내 실망감을 안겨주고, 139분의 러닝타임은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3년 동안 57명 살해! 최고의 킬러라 자부하는 스파이 오조네 유리(아야세 하루카)는 더 이상 총을 잡지 않고 조용히 산다. 하지만 그의 평안했던 삶을 깨뜨리는 일가족 살해 사건이 발생한다. 과거 연이 있던 이와 연관된 일로 그녀는 곧장 사건의 장소로 떠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비밀 자금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타(하무라 진세이)를 만난다. 신타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유리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녀는 신타를 돕기 위해 다시 총을 들게 된다.
<리볼버 릴리>는 여성 킬러를 내세우며 스파이 액션의 재미를 주려고 노력한다. 유리는 최고의 킬러로서 접근전은 물론, 총 하나로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특히 리볼버가 주 무기인데, 극 중반 유리의 집에서 일본 육군에 대항해 벌이는 총격 장면은 그녀의 장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킬러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며, 불가능한 작전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습은 여성 히어로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더불어 과거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절대 악으로 규정짓고 이들을 향해 총격을 겨누는 모습은 그 자체로 대담하고 희열감을 준다.(한국인이라면 더 큰 쾌감을)
문제는 이런 값진 총알을 난사한다는 점이다. 일단 액션이 느리고 더디다. <존 윅> 시리즈는 아닐지언정 전설적인 킬러이자 스파이가 주인공인 이 영화의 액션은 스피디함이 떨어진다. 2~3개의 카메라로 원신 원컷 촬영을 하고, 이를 편집으로 생동감 있게 보여주려 했다는 감독의 말이 무색할 정도로 긴박감은 떨어지고 액션 구성도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나마 중반부 유리의 집에서 벌어지는 총격 장면이나 후반부 안개를 활용한 총격 장면이 기억에 남지만, 그마저도 쉽게 잊힌다. 유리를 내세운 먼치킨 액션이라는 점에서 개연성을 따로 떼어놓고 봐도 전체적인 액션 구성이 루즈한 건 지울 수 없다.
스토리 전개도 더디다. 영화는 비밀문서를 가진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다시 총을 든 킬러 유리의 이야기인데, 감독은 이들을 통해 결과 반전(反戰)을 꾀한다. 유리와 함께 뜻을 함께하는 어른들은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몸을 던진다. 특히 유리는 자기 손은 피로 더럽혀질지라도 아이들의 평화를 위해선 온전히 희생하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곳곳에 드러난다.
그러나 초반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이들의 전사를 설명하는 데 할애해 좀처럼 스토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스파이 액션 장르에 걸맞지 않게 유사 모자로 등장하는 유리와 신타, 그리고 이들의 연결고리인 킨야(토요카와 에츠시)의 관계를 풀어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요한다. 게다가 후반부 부질없는 전쟁의 의미와 목적을 상기시키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의미 없는 싸움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너무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윤리 선생님이 주입식 교육을 하는 것처럼. 후반부에는 유리의 조력자인 요시아키(하세가와 히로키)가 그 역할을 도맡아 전쟁은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직간접으로 전한다.
가장 아쉬운 건 관동대지진 1년 후 화려함이 극에 달했던 다이쇼 말기의 시대상을 너무 표면적으로만 다뤄 영화에 잘 녹아들지 않은 점이다. 관동대지진이라는 큰 사건을 경험한 일본인들은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화려함으로 감추려 하고, 군대는 이런 유약한 마음을 들키지 않고 도리어 전쟁에 목메고, 사적 욕심을 채우려는 그 의도가 잘 보이지 않는다. 미술이나 의상에 신경은 썼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친 모양새다.
그나마 영화를 끝까지 보게 하는 건 배우들의 몫이다. 그 선봉장에는 아야세 하루카가 있다. 액션에 최적화된 배우는 아니지만,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총으로 적을 처단하는 모습만 봐도 멋짐 폭발. 어떻게든 관객의 멱살을 잡고 끝까지 끌고 간다. 여기에 하세가와 히로키, 시시도 카프카, 후루카와 코토네, 시미즈 히로야, 토요카와 에츠시, 사토 지로, 아베 사다오 등 배우들도 제 역할을 다한다. (물론, 이 좋은 배우들을 적절히 활용했냐는 점에서 의문이 들지만.) 특히 극 중 유리와 함께 뜻을 같이하며 멋진 총격 액션을 선보인 나카 역에 시시도 카프카, 코토코 역에 후루카와 코토네의 연기와 이미지는 매력적! 시시도 카프카의 장총 액션은 아야세 하루카의 리볼버 액션만큼 인상깊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은 <리볼버 릴리> 무대인사를 통해 이 작품이 자신의 첫 액션영화였고, 그 자체로 도전이었다고 말했다. 아야세 하루카도 이 작품 참여가 큰 도전이었을 터. 영화 완성도를 논하기 전 이들의 도전에는 박수를 보낸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에는 쏘는 족족 명중하는 작품으로 만나길 희망한다.
사진 제공: (주)도키엔터테인먼트
평점: 2.5 /5.0
한줄평: 화려한 총알이 아까울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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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찰나의 순간
27살 나이로 2021년 첫 장편 데뷔작 ‘걸’을 통해 71회 칸에서 황금카메라상은 물론, 주목할 만한 시선 남우주연상, 퀴어종려상, 국제비평가협회상까지 4관왕을 수상하며 탁월한 감성을 지닌 차세대 감독으로 주목받은 루카스 돈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클로즈를 시사회로 감상하고 왔습니다. 작년 10월 열린 27회 부국제에서도 상영되었던 작품으로, 13살 동갑내기 두 소년의 우정을 통해 관객들이 지나온 어린 시절의 우정에 대한 그리움과 충격적인 사건의 슬픔이 이끈 성장을 이야기합니다.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점의 친밀함이라는 요소가 아주 옅게 성 소수자(LGBTQ)의 장르적 분위기도 흘리지만, 딱히 구분 짓지 않을 정도라서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 감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미리 만나본 작품의 후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친구라 거의 형제 같아”
서로가 세상의 전부였던 레오와 레미는 친구들에게 관계를 의심받기 시작한다. 이후 낯선 시선이 두려워진 레오는 레미와 거리를 두고, 홀로 남겨진 레미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고 만다. 점차 균열이 깊어져 가던 어느 날, 레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예고편│Trailer
원제: CLOSE│감독: 루카스 돈트│각본: 안젤로 티센스
출연진: 에덴 담브린, 구스타브 드 와엘 외 多
장르: 드라마│상영 시간: 104분
국가: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등급: 12세 관람가
평점: 로튼토마토 신선도 91% 팝콘 86%, IMDB 7.8
수상 내역: 58회 시카고국제영화제(실버휴고 심사위원 특별상, 골드Q휴고상-아웃룩프로그램), 45회 밀 밸리 영화제(관객상- 세계장편), 69회 시드니 영화제(작품상), 75회 칸영화제(심사위원대상)
수입·배급: 찬란│공동배급: (주)하이스트레인저│공동제공: 소지섭, 51k
개봉일: 2023년 5월 3일
“관계를 규정하는 사회에 잊혀진 다정함과 그리움”
꽃 농장으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 사는 13살 동갑내기 소년 레오와 레미는 어린 시절부터 양가 부모님까지도 허물없이 지낼 만큼 형제처럼 자란 둘도 없는 절친으로, 모든 것들 공유하며 함께 하는 사이입니다. 중학교에서도 같은 반이 되어 서로를 챙기지만 다른 이들은 둘 사이를 우정 이상으로 보며 험한 말도 서슴지 않았고, 서로가 멀어지는 불씨가 됩니다. 누구나 흔히 보낸 유년 시절의 우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사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며 보는 이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불알친구, 죽마고우로 일컬어지는 두 사람이 학교라는 사회에 들어가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규정된 무언가를 느끼며 멀어지는 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비춥니다. 서로를 의지하고 누구보다 챙겼던 이들의 순수한 우정이 정해진 잣대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들을 말입니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남성과 여성의 특정적인 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에 맞춰 변화를 맞이하는 관계는 어쩌면 관객 모두가 지나온 아주 자연스러운 시간들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항상 붙어 다니고 먼 미래의 허황된 꿈을 이야기하며, 상상만으로 그저 즐거워했던 당연한 순간들이 처음 마주한 공동체의 뒤틀린 시선과 마주하며 희미해져가는 과정입니다. 사회의 명확한 재단으로 인해 세상 둘도 없는 친밀하고 다정했던 마음을 잃어가는 안타까움은 레오와 레미의 알 수 없는 다툼으로 더욱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변화하고 선을 그어야만 성숙한 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어른이기에, 레미의 극단적 선택이 레오에게 얼마나 큰 슬픔으로 남을지 가슴이 아프고 애처롭기까지 합니다.
‘CLOSE’, 가깝거나 단절되었다는 완전히 상반된 의미를 내포한 제목처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관계와 상실, 함께 했던 수많이 이들의 그리운 기억으로 빚어지는 감정들을 파고듭니다. 꼭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건이나 주변의 시선과 편견으로 조금씩 멀어졌던 이들이 남긴 다정한 흔적의 연민과 공감을 불러오죠. 사적인 우정을 사회를 구성하는 보편적인 관계성으로 확장시키며, 상실의 아픔으로 성장하는 맑고 깊은 눈동자를 가진 어린 주인공을 집요하지만 사려 깊게 담아내면서 말입니다. 그렇기에 루카스 돈트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다정함이란, 어쩌면 그렇게 잊혀 갔던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일 거란 생각이 들었고, 신인 아역의 에덴 담브린의 빛나는 연기가 의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습니다. 영화 클로즈, 제목과 정말 딱 떨어지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
한 줄 평 : 가깝거나 단절되는 관계의 그리움으로 빚어지는 성장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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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자본 순일까?
백 투 더 퓨처 2
줄거리미래에서 돌아와서 제니퍼와 감격의 포옹을 하는 순간, 갑작스레 마티를 찾아온 브라운 박사.
박사는 그들의 자녀에게 문제가 생겼다며 빨리 미래로 가자고 한다.
왁자지껄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더니, 마티가 살던 세상이 변했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1985년을 바로잡기 위해, 마티는 다시 위험한 모험을 시작하는데...
행복은 자본 순일까?
숨은 의미 찾기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는 마티를 보고 있노라면
혈압이오른다. 하지만 어쩌겠어, 주인공이니 참아야지. 네가 그렇게 사고를 쳐야 영화가 진행이 되는 거지, 그렇지? 활발히 사고를 치고 다니는 마티 덕분에(?) 영화는 예측불허로 흘러간다.1편이 타임머신으로 역사의 흐름을 유지해서 ‘미래의 존재를 보존’하는데 주력했다면, 2편은 타임머신이 만들어낸 오류를 잡아 ‘미래의 상황을 보존’하는데 주력한다. 어쨌든 꼬여버릴 뻔한 과거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긴 하지만 말이다.
특히 2편은 1편의 빌런이기도 했던 ‘비프’의 활약으로 뒤죽박죽이 된 미래를 보여준다. 악인의 손아귀에 들어간 타임머신은 어떻게 악용되는지, 브라운 박사가 우려했던 점을 제대로 짚어낸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방영된 ‘대탈출 4’에서도 타임머신 이야기가 나왔었다. 과학자의 탐구심과 호기심의 산물이 개인 이득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는 것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서도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의 이야기가 2020년대에도 똑같이 활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에 한계가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렇다고 타임머신으로 인류문명의 발전에 힘쓴다는 이야기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이라면 타임머신이 눈앞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 번호를 외운다느니, 테슬라 주식을 산다느니, 비트코인을 넣는다느니 하는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내가 작품 속 악인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왕 살 거 부자로 살고 싶다는 인간의 욕망은 어쩌면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것일 테니까.
그럼에도 그런 생각이 든다. 돈과 행복은 비례한 것인가.
물론 부유함이 빈곤함보다 낫다는 생각에는 동의한다. 어쨌든 가난에 찌들어 사는 것보단 적당한 부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은 맞으니까. 때로 너무 많은 부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례를 보긴 하지만,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에겐 그런 이야기조차 사치처럼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부유하지 않음이 곧 불행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먹고 살만큼의 돈으로도 인생의 가치를 찾고 최선을 다해 행복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다. 이 말은 부자면 불행하고 가난해야 행복하다, 가난하면 불행하고 부자면 행복하다는 식의 극단적 비유가 아니다.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든, 내가 행복하고자 하면 얼마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는 소리다.
1편에서 느꼈던 아쉬움은 바로 이것이었다. 마티가 과거로 가기 전, 마티의 가족은 가난했다. 가난한 가족은 화목함과 거리가 멀었다. 서로를 돌보지 않으며 각자의 비전조차 없는 마티의 가족은 암울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마티가 과거에 다녀와서 다시 구성된 가족은 조금 달랐다. 화목하기 그지없었고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게 돈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부유함이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부자인 가족만이 완벽하고 완성된 형태인 것일까.
이전 리뷰에도 말했지만 마티는 가난했던 자신의 가족도 사랑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굳이 자신이 태어나길 원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애써 자신의 부모가 다시 만나도록 노력할 필요가 뭐 있겠는가? 이런 가족, 처음부터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는데.
2편 역시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지만, 1편에서 느꼈던 씁쓸함을 더 크게 느끼도록 하는 면도 있는 것 같다. 나라고 비프의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타임머신을 악용하는 것은, 부자는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지금의 나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나쁜 게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아닌 당신을 부정해가면서 부자가 되려 하지는 마라.
그것이 백 투 더 퓨처가 우리에게 던지는 말은 아닐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상상하던 2015년
감상평전에 한 번 보고 리뷰 직전에 또 봐도 여전히 질리지가 않는 영화.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 시대에 상상했던 ‘2015년’의 모습. 하늘을 떠다니는 자동차와 바퀴 없는 스케이트보드, 말 한 마디면 척척 알아서 움직이는 가전제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커지는 음식, 버튼만 누르면 젖은 옷을 말려주는 기능까지.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 과학 상상화 대회 같은 게 열리면 꼭 이런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리던 옛날 옛적 생각이 나면서 묘하게 그 시절의 향수를 느꼈달까. 우리가 상상하고 열광하고 설레며 미래를 기다리던 그 시절의 향수 말이다. 물론 2015년은커녕 2021년에도 이렇게나 불편하게 살 거라는 걸 과거의 인간들이 알면 어떨까 궁금하다. 당신들은 인간의 과학문명을 너무 과대평가했어.
아,그리고그런패션은영원히유행하지않아,유행해선안돼.따지고 보면 뻔하고 유치한 내용이다. 하지만 과거에 말했던 미래가 현재로 닥쳐오고 나니, 우리는 더 먼 미래를 꿈꾸고 상상한다. 2050년의 모습은 어떨까, 미래의 내가 과거에 써 두었던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하는 것은 유치하거나 나쁜 게 아니다. 인간의 본능이자, 어쩔 수 없는 욕구다.
그래서 이 영화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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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었다
베테랑을 본 날, 그날은 문화의 날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두 편을 봤다. 그 중에 하나가 암살이다. 암살과 베테랑은 오랫동안 걸려있어서 몇몇 사람들은 독과점 같다는 이야기도 하지만 사실 이 영화들은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특히 암살은 여운이 남는다.
여기도 믿고보는 배우들이 나온다. 베테랑에서도 만난 믿고보는 오달수, 또 믿고보는 하정우. 사실 씬 자체는 몇 컷 안 되지만 두 영화의 신스틸러.. 언제나 중요한 역할 믿고보는 진경.
암살은 쉽게 말하면 독립운동을 그리는 영화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알고 있는 독립운동이 아닌 다른 독립운동이었다.
이 영화가 나오자 마자 표절시비가 붙었다. 100억 소송이었나?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나 소설의 표절시비라 의아했다.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플롯이 얼마나 비슷한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식으로 소송을 하면, 세상에 많은 사극들은 조선왕조실록의 표절이 아닌가. 뭐 이런 얘기다. 저런 표절시비가 붙고 나서 작가는 책을 재출간했고, 아마 '암살이 표절한 책'으로 홍보를 해서 꽤 돈을 벌었을 것이다. 뉴스를 보니 영화 측에서 표절시비 책 전량회수를 요구했다고 하는 것 같다. 그래야지. 그런 악의적인 소송이라니.
여튼 독립운동을 하는, 특히 적극적으로 육체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배신과 배신이 난무하고, 깨달음이 있다.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과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과하게 밝게 행동하고, 자신이 독립운동에 관심이 없는 것처럼 모든 상황들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속사포는 마음을 짠하게 했다. 돌아와줘서 좋았으나 그 이후의 상황이 예상이 되어서 돌아오지 말지 그랬니.. 하는 안타까움도 들었다.
배우의 구멍이 없었다. 다들 연기를 잘했다. 연기를 못한다고 까이는 전지현이지만, 사실 나는 전지현이 그렇게 연기를 못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베를린에서의 그 절제된 연기는 썩 마음에 들었었다. 이번에 연기도 마찬가지 였다. 딱 그 사람. 딱 이 사람. 같았다.
암살도 임무를 마친 그들의 모습을 보여 통쾌한 마음이 들었으면 했지만, 되려 무거워졌다. 베테랑에서 느끼던 통쾌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이는 아마 우리 곁에 여전히 남아있는 친일파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이건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마지막의 이정재의 죽음은 그들의 마지막 임무완수가 아니라 이정재의 죄책감에서 나온 상상이 아닐까 싶다. 늙지 않은 모습으로 나타났던 안오균과 이정재의 죄책감의 하나인 그... 후배.
그리고 이정재가 쓰러진 그 마당은 이미 발전한 서울에서 문을 열고 나갔을 때 보이는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너른 들에 흩날리는 천들은 아무것도 없는 이정재의 마음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 그게 이정재가 혹시 자살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누군가 하정우가 죽지 않았다면? 이경영이 자살을 했다면? 이라는 의문을 남겼다. 하정우가 죽지 않았다면 너무 뻔한 사랑이야기가 되어 버렸을 것 같고, 이경영이 자살을 했다면 그들의 임무가 찜찜하게 되었을 것 같다. 그 임무를 위해 죽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어쩐지 내 마음도 찜찜했을 것 같다.
이경영의 자살은 어쩐지 '에잇 ㅅㅂ, 나는 잘못이 없어. 딸 손에 죽느니 그냥 내가 죽고 말지' 이런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았달까? 결국 딸 손에는 죽지 않았지만... 이경영의 자살은 어쩐지 좀 분하다.
사실 하정우의 죽음은 안타깝기 마련이다. 미란다호텔에서 두 사람의 조합은 정말 환상이었는데! 조금씩 엇갈린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다.
이정재는 관상에 이어서 악역인데, 의외로 악역이 잘 어울리면서 맛갈나게 소화를 한다. 특히 관상에서 부터 들려줬던 그 특유의 걸걸한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살살 긁는다. 짜증이 나게? 어쨌든 잘 소화해 냈다. 악역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 배우들과의 이야기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 하정우와 전지현의 멜로. 벌써 몇 번이나 만났지만 제대로 된 멜로를 연기하지 못한 두 사람에게 정통멜로 하나를 던져주는 것은 어떨까? 어서 물어보세요, 멜로의 떡밥을(정통멜로가 아니어도 좋아오 로멘틱코미디도 좋으니 물어주세요, 떡밥을).
아,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었다. 라는 건 씁쓸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의 승리자는 친일파라고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인물들이 묻히고, 지금에서는 국정교과서까지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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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빌런들의 어벤져스 데뷔기 / 썬더볼츠 / 볼만한데 호불호도 있음 / 어벤져스: 인사이드 아웃 버전인줄..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썬더볼츠"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이 엔드크레딧 전에 1개, 끝나고 1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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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블러드 레드 스카이> 티저 예고편
[2021년 7월 23일, 넷플릭스 공개]
의문의 병을 앓는 여자.
치료를 위해 어린 아들과 대서양을 가르는 비행기에 오른다.
목적지까지 반쯤 왔을까.
비행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점령당하고, 여인은 생존 싸움을 시작한다.
그간 어렵사리 숨겨온 어둠의 힘을 뿜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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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메인 예고편
"전엔 두 사람 둘도 없던 친구 사이 아니었나?" 예고 없이 찾아온 절교 선언? 둘도 없는 친구가 남이 되기까지 절교 선언으로 시작되는 다크 코미디 [이니셰린의 밴시] 3월 15일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