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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nymoushilarious2022-04-15 23:34:50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

영화 태어나길 잘했어 리뷰

춘희는 일찍이 엄마를 여의고 외가 식구가 사는 외삼촌 집 다락방에 얹혀살고 있다. 외삼촌네 가족이 그 집을 떠나고 한참 지난 후까지도 그 집의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렸을 때부터 외삼촌 내외, 사촌이 생색내듯 베푸는 선의에 기 한 번 제대로 못펴고 히키코모리처럼 살아간 춘희는 점차 세상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세상 밖으로 나오면 나올수록 점점 과거의 춘희가 현재의 춘희를 신경쓰이게 한다. 과거의 춘희는 왜 계속 등장해 현재의 춘희를 흠칫거리게 하는 걸까?

 

 

 

1.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망각이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춘희에게는 다락방의 존재만이 그녀에게 허락된 유일한 자유로운 공간.

 

 

 

춘희는 자신의 엄마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집에 얹혀살게 된다. 춘희는 그 집은 삼촌 집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엄마의 집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집안의 가족들은 춘희를 가족으로 생각하지 않고, 객식구, 눈치를 봐야만 하는 아이로 몰아간다. 딸에게 집을 주는 사람이 어디있냐며, 그 딸이 낳은 춘희는 이 가족이 사는 집에 지분을 행사할 자격은 없는 거라면서 말이다. 그들의 논리가 무엇이든 춘희는 상처를 받았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에게 그 집을 잘 지키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다른 집으로 이사갔어도 춘희는 여전히 그 집의 객식구처럼 행동한다. 눈치주는 외삼촌네 가족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다락방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처받은 춘희의 영혼은 십 몇 년동안 다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들 한다. 하지만 표출되지 못하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해결해주지 못한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는 시간이 갈수록 방치되어 곪아 터질 뿐이다. 춘희도 그렇다. 외삼촌 내외에게서 짐짝 취급받던 어린 시절을 잊고 살았다고 착각했지만 사실 춘희는 그저 애써 묻은 것이었다. 자신의 상처를 외면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외면했던 상처는 잊혀진 것은 아니기에 춘희의 앞날에 꾸준히 걸림돌이 된다. 춘희는 한 번이라도 자신의 상처를 마주했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을 정당한 사유없이 핍박하는 외삼촌 가족들에게 한 번은 소리쳤어야 했다.

 

 

 

2. 다한증, 춘희의 지문

 

 

 

 

춘희는 자신의 다한증을 컴플렉스 쯤으로 여긴다. 어렸을 적, 자신의 손의 땀을 더러워하던 선생님의 반응, 그리고 땀 때문에 못마땅해하던 외삼촌의 짜증 섞인 표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딜 가든 자신이 왔다갔다는 흔적을 남겨버리는 이 땀 때문에 더 구박받는 것 같아 춘희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깊은 의문을 갖는다. 이렇게 살거라면, 난 왜 태어난 걸까, 내가 태어난 이유도 내가 객식구가 된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걸까 싶은 자기비하적 생각이 춘희의 머리를 지배한다.  그 자기비하는 춘희의 삶의 디폴트값이 되어 춘희는 그 어디에도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자신의 장점인 손재주를 특화시킬 생각보다는 자신의 단점을 없앨 생각부터 한다. 자신의 손재주를 이용해 마늘 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모습이 그녀가 단점을 가리기 급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손재주로 마늘 까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재능을 펼칠 만한 일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마늘 까는 이유도 사실 다한증 수술 받고 싶어서였기에

 

 

 

 

춘희의 이런 단점 지양적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어렸을 때, 그녀의 가족들이 그녀에게 날렸던 그들만의 상식이 불러온 상처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춘희가 객식구라는 것은 당연한 취급이었을지 몰라도 춘희는 평생 그 어디에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다락방에 영혼을 가둬버린다.

 

 

 

3. 상처받았다는 사람들에 관한 이중적 시선

 

 

 

 

 

영화를 보면서 가해와 피해의 모호함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춘희인지 외삼촌네 가족인지. 나는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나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지, 또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았었는지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게 했다. 외삼촌네 가족의 매정함이 그들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 춘희의 순함은 그들이 춘희를 마구잡이로 휘두를 수 있는 허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외삼촌네 가족이 춘희를 두고 보여준 위선은 우리네의 삶에 얼마든지 있을 법한 위선이었다. 위선은 종이 단면과도 같다고 생각하는데, 삶이 팍팍했던 그들에게 춘희의 존재는 짐이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매정함에 박수쳐주고 싶진 않지만 무자비하게 욕만 하기에 나도 저런 위선적인 모습이 있을 것 같아 찔린다.

 

상처란 주관적이라서 시각을 바꾸면 극복할 수 있다. 춘희는 자신의 상처에 매몰되어 자신의 단점인 다한증에 집착하는 바람에 자신의 손재주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리고 삼촌에 매정한 말에 매몰되어 숙모의 츤데레를 주목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남이 나를 사랑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릴 시간에 자기자신부터 사랑하자. 남을  위해 날 가꾸지 말고, 내가 즐겁고자 나를 가꾸자.  춘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총평

 

 

 

영화가 자칫 루즈하고 뻔할 수 있는데 춘희의 썸남이 있어 그래도 지루하진 않았다. 춘희의 썸남이 굉장히 부담스럽고 귀엽다. 오글거리는 건 관객이 감수해야할 부분이다. 조금만 참으시라. 광명과도 같이 개그가 찾아올 것이다.

 

※해당 영화 시사회는 씨네랩의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였습니다.

 

 

작성자 . Anonymoushilarious

출처 . https://brunch.co.kr/@lanayoo91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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