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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소피2022-04-16 03:06:57

맞잡은 내 손에 흉터가 있을지라도

<태어나길 잘했어(2022)>

 

 

맞잡은 내 손에 흉터가 있을지라도, <태어나길 잘했어(2022)> 

필름소피_김희연

 

 

 

 

 

주인공 춘희는 중학생 때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외삼촌 가족이 사는 집에 얹혀살게 된다. 춘희는 괜한 혹 하나를 달게 되었다는 듯한 외삼촌과 외숙모의 티 나는 눈치와 구박, 동갑내기 사촌 유라와의 불편한 마찰을 뒤로하고 다락방 한 칸을 겨우 쓸 수 있게 된다. 좁은 계단을 오르면 있는 창문과 깔고 잘 이불 하나를 겨우 펼칠 수 있는 공간은 곧 춘희의 안식처가 된다. 난방도 되지 않아 옷을 껴입어야 하는 다락방이지만 나름 춘희가 꾸민 장식들로 채워지고 빛을 낸다. 처음엔 애정을 가지고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표현으로 다락방을 꾸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더 보다 보니 애정보단 이런 곳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의지였던 것 같다. 옆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곳에서 민달팽이 한 마리를 만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등에 껍데기를 이고 있는 달팽이가 아니라 굳이 민달팽이로 연출한 이유는 민달팽이와 춘희 모두 집이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옆에 자신과 비슷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존재만으로도 아마 춘희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민달팽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쳐다보는 메인 포스터 속 춘희의 모습이 모든 것을 거스른 채 자신만의 우주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저는 좀 쩔어있어요, 땀에춘희는 어렸을 때부터 다한증이 있어 언제나 손뿐만 아니라 발에도 땀이 흥건하다. 친척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과 미움을 사는 이유에는 춘희의 땀도 포함되어 있었다. 중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견디기 힘들었을 타인의 따가운 시선에 스스로 이것을 오점이라 생각하고 활활 타고 있는 불에 손을 가까이 대어 흉터를 남기기도 하였다. 어른이 된 춘희는 마늘을 까 사촌 오빠의 식당에 가져다 주고 받은 돈을 모아 다한증 수술을 하려 한다.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면서 보게 된 상담 센터에서 다양한 사연과 고민거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을 보게 된다.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춘희는 모임에 참석하게 되고 그곳에서 주황을 만난다.

 

 

 

 

 

 

 

 

 

주황은 어렸을 때부터 당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말을 더듬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주황에게 말을 잘한다고 말해준 유일한 인물이 바로 춘희였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계속해서 제가 춘희 씨 지켜드릴게요.’라며 마음을 표현하는 주황에게 춘희는 주황 씨,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말은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에요라고 거절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이 컸던 만큼 지켜주겠다는 주황의 말을 쉽게 받아들일 수도, 누군가에게 완전히 의지할 수도 없었던 춘희의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주황의 말이 결코 쉽게 뱉은 가벼운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황은 가정폭력을 겪은 인물로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자기 자신 하나만 지키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 주황이 춘희에게 지켜주겠다는 말을 꺼내기까지는 많은 생각과 결심을 거친 진심 어린 위로였다는 생각이 든다.

 

 

 

 

 

 

 

 

 

비 오는 날 우연히 번개를 맞게 된 춘희는 어린 시절 자신을 만나게 된다. 계속해서 눈앞에 나타나는 어린 시절의 본인을 보는 춘희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 기대지 못하고 가라앉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따뜻한 말은 따로 있었지만 항상 말은 마음과 같이 나가지 않는다. 내가 쏘아붙인 모진 말들은 결국 나에게 돌아오고 우리는 모두 흉터를 안고 살아간다. 이렇듯 맞잡은 내 두 손에 흉터가 크게 느껴질 때쯤 이 영화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 잘 커주셔서 감사하다는 최진영 감독님의 말씀에 이 영화에도 봄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씨네랩 크레이터로서 시사회 초청받아 참석하였습니다.




작성자 . 필름소피

출처 . 필름소피_김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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