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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your bunny2022-05-05 23:09:35

우연과 상상, 그리고 대화가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이야기

<우연과 상상>, 하마구치 류스케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우연과 상상> 시사회를 관람한 후 작성한 리뷰글입니다.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살다보면 내가 상상한 그대로의 일이 일어날 때도, 혹은 상상과 달리 우연하게,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일이 흘러갈 때도 있다.

영화 <우연과 상상>은 그런 일상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우연과 상상> 속의 총 3개의 이야기를 통해 '이런 일들이 일상 속에서 일어날 수 있을까? 싶은 장면들을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마도 '영화 속의 일들이 내게 일어나면 과연 어떨까?'라는 상상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는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메이코(후루카와 코토네)'와 '츠구미(현리)'가 택시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둘의 대화는 츠구미가 최근에 만난 새로운 남자를 주제로 이어진다.

메이코는 츠구미와 헤어진 뒤 어느 회사로 향한다.

이 회사는 츠구미가 이야기한 남자 '카즈아키(나카지마 아유무)'의 회사였다.

사실 카즈아키의 전여친이 메이코였던 것이다.

친구가 이야기해 준 남자가 알고보니 내 전남친이었다니. 그리고 최근에 호감 가진 남자가 내 친구의 전남친이었다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정말 마법처럼 신기한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메이코와 카즈아키는 회사에서 또 긴 이야기를 나눈다.

이 대화를 통해 아직 둘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구나, 미련이 남아 있구나, 등의 정보를 확인한다.

 

이후, 메이코와 츠구미는 카페에서 우연히 지나가는 카즈아키를 발견한다.

아직 메이코와 카즈아키의 사이를 모르는 츠구미는 카즈아키를 불러 메이코에게 소개시킨다.

이때 메이코는 상상한다.

츠구미에게 사실 카즈아키가 자기의 전남친이며, 자신은 아직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상상.

그리고 이 말을 들은 츠구미는 도망치듯이 카페를 나가고, 카즈아키도 카페를 박차고 나가서 츠구미를 붙잡으러 가는 상상.

 

이 상황들은 그저 '상상'에 불과했다.

이런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현실에서 메이코는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비켜준다.

메이코의 상상이 그녀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내심 바라는 상황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아마 메이코 개인의 심정은 많이 복잡하겠지만, 어쨌든 표면적으로는 친구 츠구미와 전남친 카즈아키 모두를 위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매력적으로 느낀 에피소드다.

메이코와 츠구미, 메이코와 카즈아키 사이에서 오고가는 대화들이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초반에 츠구미가 해주는 카즈아키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치 내 친구의 연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들어서 더 재밌게 느껴진 것 같다.

이 순간만큼은 관객이 아닌 츠구미의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문은 열어둔 채로」이다.

이 에피소드는 한 대학교에서 '세가와 교수(시부카와 키요히코)'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졸업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사키(카이 쇼마)'로 시작한다.

이때 교수실의 문을 닫으려는 사람에게 세가와 교수는 괜한 오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문을 열어두라고 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결국 졸업요건을 못 채워 제때 졸업하지 못한 사사키는 최근에 세가와 교수가 책을 내서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불만이 많은 상태이다.

사사키는 친구 '나오(모리 카츠키)'에게 미인계를 써서 그를 망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나오는 결국 사사키의 부탁대로 세가와 교수를 찾아가 그의 소설 속 다소 민망한 구절을 낭독하기 시작한다.

오직 책의 한 구절을 읽는 나오의 목소리만 들리는 이 장면은 꽤 길게 이어진다.

세가와 교수는 가만히 이 이야기를 듣는다. 이 상황에서 가장 안절부절한 사람은 관객이다.

실제로 나는 교수실의 문이 활짝 열려 있어 혹시 지나가다가 이 소리를 유심히 듣는 사람은 없는지에 대해 계속 불안해했다.

그리고 이때 나오는 교수실의 문을 닫았지만, 세가와 교수가 바로 문을 열어둔다. 혹시나 오해를 살 만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매우 조심스럽고 철저한 사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나오의 낭독을 모두 듣고 둘은 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세가와 교수는 나오의 의도와는 달리, 그녀의 낭독을 들으며 전혀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초반에는 그녀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경계하고 있었다.

 

나오는 세가와에게 사실 추문을 일으키기 위해 지금까지의 모든 대화를 녹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사실 이 상황에서 나는 세가와 교수가 크게 화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가와 교수는 그러지 않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상황들을 모두 이해한 뒤 오히려 그 녹음본을 보내줄 수 있냐고 말한다.

세가와 교수는 자신의 글을 좋은 목소리로 소리내어 읽어주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가와 교수는 나오의 고민상담을 해 준다.

결혼하고 애를 낳은 뒤 뒤늦게 대학교에 입학하여 다른 여학생들과 친하지 않고,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자신이 미움받는다고 생각하던 나오는 세가와 교수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미움받을 수 있다' 등의 담백하지만 진심 어린 말을 통해 큰 위로를 받는다.

세가와 교수에게 뜻밖의 위로와 위안을 받은 나오는 그에게 감사해하며 그의 녹음본을 퍼뜨리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세가와 교수와 나오의 긴 대화를 통해 나오는 위로를 받았고, 교수는 잘못하면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났다.

이 사실에 나도 매우 안도하던 순간, 나오가 책 낭독 파일을 이메일로 전송할 때 '세'가와를 '사'가와로 잘못 입력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결국 잘못 전송된 이메일로 녹음본이 퍼진 세가와 교수는 자취를 감추고, 나오는 이혼을 하게 된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나오는 버스에서 우연히 사사키를 만난다.

사사키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며,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우연히 이메일을 잘못 보낸 상황으로 인해 나오와 사사키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우연히 만났던 둘은 나오가 버스를 내리면서 그렇게 헤어진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우연하지만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일들이 일어나서 제3자인 관객의 입장인 내 입에선 저절로 탄식이 나오곤 했다.

나오는 교수에게서 위로를 받았고, 교수는 자신의 소설을 처음으로 소리내어 읽어준 사람을 만나는 다행스러운 일들이 일어났지만, 뜻하지 않은 오타로 인해 부정적인 상황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이 계속 상상하게끔 만든다'였다.

다른 에피소드들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더 자주 상상하곤 했다. 사사키가 나오에게 제안을 할 때는 세가와 교수가 사사키의 의도대로 오해를 받는 상상, 나오가 낭독을 할 때는 혹시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 소리를 듣지 않을까 하는 상상, 나오가 자신의 녹음 사실과 의도를 밝힐 때는 세가와 교수가 노발대발 화내지 않을까 하는 상상, 그리고 나오가 이메일을 잘못 보냈을 때는 이후 일어날 일들에 대한 상상.

 

또한, 이 에피소드는 '모든 우연이 상상한 것처럼 그리 영화 같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다시 한 번」이다.

이 에피소드는 '제론'이라는 소프트웨어 바이러스로 인해 인터넷 속 모든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상황을 알리며 시작한다.

결국 다시 '아날로그 시절'로 돌아간 세상 속에서 '나츠코(우라베 후사코)'는 우연히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동창 친구를 만난다.

나츠코와 '아야(카와이 아오바)'는 반가워하며 짧은 이야기를 나누다 함께 아야의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사실 둘은 서로가 생각하는 친구가 아니었음을 발견한다.

사실 나츠코는 아야를 자신의 첫사랑인, 많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지금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인줄 알았고, 아야는 나츠코를 예전에 함께 학교에서 피아노를 쳤던, 자신이 동경하는 친구인줄 알았던 것이다.

 

서로가 기억하는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둘은 상상을 바탕으로 한 연기를 시작한다.

나츠코와 아야는 서로를 자신이 착각했던 친구로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건네기 시작한다.

나츠코는 아야에게 자신에게는 아직 마음 속에 큰 구멍이 남아 있으며, 예전에 너를 정말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한다는 진심을 전한다.

아야는 나츠코에게 사실 너를 동경했었다는 말을 전한다.

 

둘의 이런 상상을 바탕으로 한 진심 어린 대화는 길게 이어졌고, 헤어지기 직전 서로를 꼭 안아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이 세 번째 에피소드였다.

온라인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 속에서 우연히 매우 소중했던(그리고 여전히 소중한) 친구를 발견하고,

사실 알고보니 그 사람은 내가 아는 친구가 아니었지만 서로에게 그 친구인 척 기분 좋은 연극, 즐거운 연기를 하고,

이렇게 우연히 또 다른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이런 시간들은 아마도 나츠코와 아야 둘에게 오래도록 남을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이 둘이 계속 만남을 이어갈지는 모른다.

따로 연락할 방법도 없으니 더욱 만나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찰나의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우리네 인생을 보다 따뜻하게 살아가곤 한다.

나츠코와 아야도 마찬가지 아닐까.

서로에게 건넨 진심 어린 말들을 마음 속에 간직한 채로, 이 온기를 간직한 채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긴 대화로 전개된다.

장소나 사건이 휙휙 바뀌고, 극적으로 전개되는 사건들 보다는 '인물들의 대화'에 초점을 둔 작품이다.

이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을 배로 만들어준다.

인물들의 대사를 듣다보면 관객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내가 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의 대화를 직접 듣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대화라는 파도를 통해 관객을 영화라는 바다 속으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크다.

 

<우연과 상상>은 이렇게 소소하지만 꽤나 다정하게 느껴지는 기억들을 담아낸 영화이다.

그리고 '우연'과 '상상'이라는 것은 기분 좋은 일, 그리 반갑지만은 않은 일 등 어떤 결과든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우연과 상상이 지닌 양면성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마법 같은 순간들을 꼭 영화관에서 직접 마주해보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영화관을 빠져나와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꼭! 세 번째 에피소드 속 상황을 다시금 떠올려 보길 바란다.

 

작성자 . I am your bunny

출처 . https://blog.naver.com/meyou_saline/222722113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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