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롬2023-03-13 18:54:03
아픔의 단절을 딛고 인연을 만들어가다
<스즈메의 문단속>(2023)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작품을 보는 이유는 ‘빛의 마술사’라는 그의 별명답게 신카이풍 작화를 보기 위해서다. 필자는 그렇다. 그가 항상 만든 애니메이션 작화는 왠지 모를 감동이 있다면, 스토리 면에서 그 감동을 저하시킨다. 영화는 분명 재밌었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목적을 이해하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다.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은 여타 필모그래피와 다르게 신카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뚜렷하다. 이제부터 그 의도를 파악할 예정이다.
#사진 밑으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문단속이라는 정의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 사고가 없도록 문을 잘 닫아 잠그는 일‘이라고 나온다. <스즈메의 문단속> 스토리는 ‘소타’와 ‘스즈메’가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를 막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여기서 문단속은 가시적인 면과 비가시적인 면으로 나뉜다. 스즈메가 가시적으로 보이는 문은 재해를 막고,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한다.
하지만, 스즈메 내면의 문은 대화의 단절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작용을 한다. 스즈메는 어렸을 적 사고로 돌아간 엄마를 대신에 4살 때부터 자신을 돌봐준 이모 ‘타마키’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둘 사이에 엄마와 언니라는 존재를 애써 잊어가며 살아가지만, 그 눈덩이는 커져가며 점차 둘의 대화는 붕 뜨게 된다. 하지만, 스즈메가 미미즈를 막기 위해 떠나는 여정을 통해 둘은 과거를 인정하고, 관계가 회복 및 개선된다. 이뿐만 아니다. 스즈메는 어렸을 적 엄마를 찾겠다고 길을 헤매다 우연히 저승으로 향하는 문을 넘는다. 그리고 후반부 스즈메는 과거의 자신을 만나며 어릴 적 느꼈던 엄마를 잃었던 슬픔을 공감하고, 위로한다. 단순히 표면적인 스토리의 ‘문단속’이 아닌 스즈메라는 캐릭터가 갖는 외내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한층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든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인연의 연속성을 지닌다. 비록 단절된 인연이라도 그 인연이라도 말이다. ‘인연’이라는 명사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몇 개를 꼽으며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사람과의 관계다. 스즈메가 요석이었던 다이진을 쫓고, 미미즈를 막기 위해 일본 동부지역을 도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여정 중에서 만나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다. 각자에게 도움을 주고받으며,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장면들은 인간 내면의 따뜻함과 함께 일상의 순간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어떤 사물과 관계되는 연줄이다. 영화는 인적이 드문 공간에 있는 문이 열리며 지진을 일으키는 미미즈가 등장한다. 이를 막기 위해 스즈메와 소타는 문을 닫기 위해 일종의 의식을 치르는데 과거에 있었던 장소의 분위기와 모습을 떠올리며 신의 가호를 외치며 문을 닫는다. 이때, 과거를 떠오르는 모습들은 단절되었던 인연을 잇게 만들어준다. 애초에 <스즈메의 문단속>이 12년 전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을 스토리라인에 직접적으로 대입한다. 스즈메가 문을 닫는 지역들은 실제 당시 지진으로 피해를 입었던 곳들이었고, 미미즈의 형태도 잘 보면 지구 과학 시간에 봤던 지각판 선을 연상케 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신카이 감독은 이런 아픈 사건을 스토리라인에 왜 직접적으로 대입하여 만들었을까. 어쩌면 두 번째 인연은 ‘어떤 사물’을 넘어 과거와 관계되는 연줄을 극복해 나가는 인연일 수 있다. 스즈메가 과거의 사건을 극복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영화를 본 이들도 각자가 가졌던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길 바라는 게 아닐까.
<스즈메의 문단속>은 평범한 일상과 인연의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는 동일본 지진과 같이 가슴 아픈 사건으로 없어질 뻔한 일상의 행복을 상기해 주고, 개인주의로 변화하고 있는 사회에 보여주는 인연의 감사를 보여주며, 과거를 딛고 미래를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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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를 돌아버리게 만드는 마지막 턴
일주일 전 블랙스완을 봤다.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봤던 몇몇 영화들이 있지만 블랙스완은 그중에서도 가장 지루할 틈이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처음 봤을 때보다 이번에 봤을 때 여운이 더 길게 남았는데, 심지어 영화를 본 후 집에서 백조의 호수를 계속 틀어놓고 있다 보니 클래식 음악에까지 관심이 생겨 자기 전 조금씩 듣게 되었다. 발레라는 장르 역시 잘 모르는 상태로 상대적으로 지루한 이미지가 아닌가 이상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런 선입견이 사라졌던 것 같다. (이후 스포일러)
출처: 유튜브 영화이 영화가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는 영화의 스토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블랙스완 이전이든 이후이든 예술적 성취를 위해 자신을 한없이 깎는 내용의 영화는 존재했다. 내러티브의 결이나 주제는 다를 수 있어도 아마데우스가 그러했고, 등장인물 간의 관계성이 다를 수는 있어도 위플래쉬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위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발레라는 상대적으로 생소(?)한 예술적 소재를 활용해 백조와 흑조라는 개념의 대비를 이뤄 영화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주인공 - 엄마', '주인공 - 단장', '주인공 - 라이벌', '주인공 - 주인공'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갈등 구조는 심리 스릴러라는 장르가 정말 무서운 장르였구나 다시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출처: 유튜브 영화
주인공인 니나는 작중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발레리나 출신 어머니의 과보호 속에 살다가 성인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의 백조 여왕 역으로 캐스팅된다. 온실 속 화초로 자란 그녀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완벽한 백조 연기를 펼치지만 마음속에 일말의 검은 부분도 없어 흑조 연기를 할 수가 없다. 영화 속에서의 발레단장은 저질이고 인간으로서 최악이지만 "너 자신을 버려라", "너를 가로막는 것은 너 자신뿐이다"등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예술, 완벽함의 핵심을 짚은 조언을 니나에게 한다. 조언을 듣고 흑조의 관능을 연기하기 위해 기존의 자신을 깎아가던 그녀는 비록 환각이지만 흑조의 날개를 가진 릴리를 자신의 몸속으로 흡수하는 듯한 행위를 통해 마침내 흑조로 각성하게 된다.
출처: 유튜브 영화
니나는 발레 연습에 처음으로 지각을 하고(릴리가 그러했듯이), 착한 딸을 찾는 어머니에게는 그녀는 죽었다며 반항하기도 하며 마음속을 검은색으로 칠한다. 끝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악의 최고인 살인까지 저지른 니나는 그대로 무대에 올라 백조로서도, 흑조로서도 완벽한 연기를 펼친 후 만족한다. 니나의 살인은 물론 환각을 본 후 자신을 찌른 것이었지만 환각 속에서 자신의 예술을 성취하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려 한 의지 자체는 진짜일 것이다. 성적인 타락, 부모를 상처 입히는 패륜, 마지막으로 살인까지를 저지르고 나서야 비로소 그녀는 자신을 가로막는 자신을 죽이고 완벽 그 자체로 거듭난다.
출처: 유튜브 영화
아마 이 영화에서 표현되었던 니나의 일탈은 흔히들 쓰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다'는 말에 빗댈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예술은 미쳐야 할 수 있고, 완벽에 대한 집착은 결국 자신과 타인의 파멸을 부른다는 주제를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본 후 우리는 파멸한 개인에 대한 아쉬움이나 분노보다는 마치 우리가 완벽을 성취한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낀다. 이는 우리 모두 마음속에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욕망을 영화 속에서 대리만족시켜 주는 부분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또한 이 영화가 단순히 예술을 위해 나쁜 심성을 가지게 되어 타락하는 개인에 대한 영화인가? 를 생각해보면 나는 아니라고 느낀다. 개인적으로 타락 전 니나의 삶도 이상적이고 좋은 삶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영화 속 단장 역시 니나에게 '인생을 좀 살아봐'라고 말한다. 뭐든 중용이 최고 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영화 전 시점 니나의 인생은 말을 만들어내자면 너무나 순종적이고 고지식한 '백색 타락'속에 빠져 있는 삶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영화 속에서는 극단적으로 표현되기는 했지만 '흑색 타락'을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으로서 선악이 공존하는 완벽한 상태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예술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인간 본성에 대한 영화로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유튜브 영화
I felt it. I felt perfect. I was 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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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영화 5월 공개 예정 기대작 TOP 5
벚꽃이 만개하던 4월은 지나가고, 푸릇푸릇한 5월이 다가왔습니다. 4월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낙원의 밤>,<썬더 포스>,<러브 앤 몬스터스>는 많은 인기를 받아 넷플릭스 순위권에 안정적으로 진입하였는데요. 넷플릭스가 5월에도 선물 같은 영화들을 가져왔습니다.
많은 영화들 속에서 여러분의 선택이 힘들지 않게!! 넷플릭스 공개 예정작 중 , 씨네랩이 기대되는 영화 5편을 뽑아왔습니다. 함께 보실까요?
1. 몬스터 Monster (2018) - 앤서니 맨들러
2021.05.07 공개 예정
" 도에 이은 살인 사건에 연루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재능 있고 성실한 고등학생이 억울한 누명을 쓴다. 자신의 결백과 진실을 주장하는 소년. 하지만 법정은 이미 그에 대한 심판을 끝냈다. "
<몬스터> synopsis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몬스터>는 2018년도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으며, 이후로 3년간 개봉되지 못한 영화입니다. 그 후 넷플릭스가 판권을 인수하여 글로벌 공개 예정입니다. 또한 R&B 가수 '존 레전드'가 제작을 맡아 화제가 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포스터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영화 <몬스터>는 5월 7일 공개 예정입니다.
2. 댄스 오브 41 Dance of the 41 (2020) - 다비드 파블로스
2021.05.12 공개 예정
" 동성애가 금기시되었던 멕시코에서 멕시코 대통령 딸과 결혼한 게이 의원에 대한 이야기 "
<댄스 오브 41> synopsis
영화 <댄스 오브 41>은 LGBTQ 멕시코 영화입니다. 대통령의 달과 결혼한 의원이 비밀 클럽에서 젊은 남성과 은밀한 밤을 보낸. 아무도 몰라야 할 그날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포스터부터 엄청난 압도감으로 영화 전반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영화 <댄스 오브 41>은 오는 5월 12일 공개 예정입니다.
3. O2 Oxgen (2021) - 알렉산드르 아야
2021.05.12 공개 예정
"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냉면장치안에서 눈을 뜬다. 산소가 고갈되어 가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고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기억을 되찾고자 애쓴다. "
<O2> synopsis
영화 O2는 <크롤>을 연출한 '알렉산드르 아야' 감독이 연출을 맡았고, <나우 유 씨미 : 마술 사기단>, <6언더그라운드>에 출연한 '멜라니 로랑'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공식 예고편을 본 관객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영화이다 보니 영화 <베리드>를 많이 떠올리는데요, 과연 <O2>는 긴장감과 재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요? 영화 <O2>는 오는 5월 12일 공개 예정입니다.
4. 우먼 인 윈도 The Woman In The Window (2020) - 조 라이트
2021.05.12 공개 예정
" 광장 공포증으로 집에서만 지내는 정신과 의사. 그녀는 건넛집에 이사한 가족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창문 넘어 잔혹한 범죄를 목격한다. 진실을 찾으려는 그녀의 집착. 그 끝은 어디일까"
<우먼 인 윈도> synopsis
공개되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친 영화 <우먼 인 윈도>는 2019년도 디즈니 개봉 예정 영화였으나, 결국 넷플릭스가 배급을 맡게 된 영화입니다. <우먼 인 윈도>는 '에이미 아담스','게리 올드만','줄리안 무어','안소니 마키'등 라인업이 엄청난 영화인데요. 광장 공포증을 가진 정신과 의사라는 신선한 소재를 다룬 영화 <우먼 인 윈도>는 오는 5월 14일 공개 예정입니다.
5. 내가 그 소녀들이다 I Am All Girls (2021) - 도노반 마시
2021.05.14 공개 예정
"어린 소녀들을 납치한 극악무도한 조직. 인신매매 단속반 형사가 그들을 쫓는다. 그러다 발견한 놀라운 사실. 누군가 범인들을 노리고 있다. 그들을 한 명씩 차례대로 처단하면서."
<내가 그 소녀들이다> synopsis
영화 <내가 그 소녀들이다>는 198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연루된 인신매매의 조직 사건을 다룬 실화 기반 스릴러 영화입니다. 시놉시스부터 흥미진진한 내용임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평소 범죄/스릴러 영화를 즐겨보는 분이라면 <내가 그 소녀들이다>는 취향저격 작품일 것 같습니다. 영화 <내가 그 소녀들이다>는 오는 5월 14일 공개 예정입니다.
씨네랩 에디터 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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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어쩌면, 아주 흔한 이야기
그런 때가 있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을 자연히 하게 되는 때. 뭐, 무언가에 쫓기듯 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나의 경우엔 그게 말이었고, 그 말을 듣는 엄마에겐 꽤나 청천벽력처럼 느껴졌을 거다. 단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겠지. 엄마 딸이 여자랑 사귀었다는 것, 그것도 친구인 줄 알았던 애랑.
엄마는 별말 없이 손에 쥔 화장품을 얼굴에 차분히 발랐지만, 제법 눈썰미 있는 딸에게 숨길만큼 천역덕스럽진 못했다. 침묵은 무거웠다. 엄마의 움직임이 서서히 느려졌다.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긴장되는 분위기였지만 무섭거나 두려움은 없었다. 일단 나는 헤어짐에 잔뜩 취해있었으니까.
드디어 엄마는 손을 멈췄고 툭,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네가 동성애를 했다는 거니?
응, 맞아. 짤막한 대답으로 이야기는 끝났다.
우리 엄마의 반응은 전형적이었다고 해야 할까. 몇 년이 흐른 지금, 엄마는 여전하다. 가끔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남자친구랑 있느냐고 묻고, 정말 결혼할 생각이 없냐고 묻는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웃는다. 말해봐야 피차 입만 아프다. 그냥 한 번 데려와서 진득하게 사는 거 보여주는 게 낫겠다.
<딸에 대하여> 속 '엄마' 딸, '그린'도 비슷한 생각이었을까. 물론 별 수 없는 상황이 겹쳐졌을 테지만, 내심 그런 생각이 아예 없을 것 같진 않다. 앞으로 이어 쓸 이야기는 영화 스포일러가 넘칠 테니, 주의하길 바란다.
SYNOPSIS
요양보호사인 엄마는 딸로부터 목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가진 거라곤 낡은 집 한 채가 전부인 엄마는 그럴 능력이 없다. 엄마 편의 대출도 어렵게 되자 동성 연인과 함께 엄마의 집으로 들어온 딸. 두 사람과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된 엄마는 요양원의 어르신을 돌보는 데 몰두해 보지만, 홀로 곤궁하게 늙어가는 어르신에게서 자신과 딸의 모습을 겹쳐 본다.
한 창작자가 만드는 작품을 순차적으로 살펴보면 공통된 주제의식이 또렷하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김혜진 작가도 그렇다. 그는 언제나 삶 속의 노동을 말했고, 노동이란 투쟁의 과정이기도 하다. 영화 <딸에 대하여>는 그가 지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기에 사랑, 퀴어, 가족 이전에 노동자, 그러니까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소재로 둔다.
엄마는 요양보호사다. 늙은 육신을 돌보고, 달래고, 먹이고, 재우고, 살피는 일. 나와 전혀 연고 없는 타인을 정성으로 돌본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자신이 돌보는 어르신에게 지극정성을 다한다. 일터에서 생기 넘치던 모습은 집에 돌아오는 발걸음에선 온데간데없다. 한 손에는 묵직한 수박을, 다른 한 손에는 생활품을 잔뜩 든 채 걷는 그.
티비 소리를 배경음 삼아 반 가른 수박을 퍼먹는 것. 풍족하면서 고독하다. 밤. 잠을 청하려 누워있는데 현관문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그리고 누군가와 다정하게 통화하는 딸 애의 목소리까지. 사실, 그 누군가가 어떤 존재인지 엄마는, 그러니까 '나'는 안다. 닫힌 문 너머로 작게 들려오는 소리를 애써 질끈 감으며, 그렇게 모르는 척.
엄마가 딸의 한 면을 외면하면 외면할수록 사실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온다. 마치 놀리는 것 같다. 코앞에 보이는 존재를, 정말로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무시할 수 있느냐고. 잠결에 이불을 다 걷어차는 딸아이가, 누군가의 옆에서 살결을 맞대며 곤히 잠든 모습을. 누가 봐도 커플 신발로 보이는 운동화 두 켤레를.
집에서는 불편한 동거가, 일터에서는 불편한 상황이 이어진다. 엄마가 돌보던 어르신이 센터에서 짐짝 취급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때 많은 아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사회의 본보기가 된 그가 먹고 자고 싸는 일에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 되었다. 사람들은 과거의 그를 기억하고 현재의 그를 외면하기에, 찬란한 시절을 어떻게든 현재와 연결 지으려고 수작질을 부린다.
하지만 지난 것은 이미 지나간 것. 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갖춰진 옷을 입히고 곱게 화장을 해도 지금 코앞에 있는 사람은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제 몸 가누기가 어려운 노인이다. 달달한 알사탕에 위로를 받고, 과거의 영광을 가방 보따리로 기억하는, 그런 사람.
'나'는 모르지 않는다. 아무 연고 없는 생판 남에게 품는 애정이 어떤 것인지를, 왜 그렇게까지 마음이 가는지 그 어떤 논리로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을. 하지만 사람의 아집을 꺾기는 얼마나 어렵던가. 딸아이의 연인, '레인'이 제 나름껏 예의를 지키며 다가섰다가 눈치껏 빠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에도 엄마의 태도는 늘 비슷하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딸아이와 딸아이의 연인은 서로를 낯선 이름으로 부른다. '그린'과 '레인'. 닉네임 같은 이 호칭에는 어떤 선입견도 개입하기 어렵다. 생각해 보자. '그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엇을 좋아할까? 어떻게 살아가고 싶을까? 막연한 질문 대신 좀 더 노골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몇 살일까? 여자일까 남자일까? 직업은 뭘까?
추측이 난무할 뿐 어느 하나 치우친 가능성이 없다. '레인'이라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럼 '윤지'라는 사람은 어떨까? 단박에 여자를 상상할 것이다. 주변에 아는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고 말이다. 버젓이 존재하되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게 만드는 명칭. 일상에서 벗어난 이름이 주는 안정감. 둘은 그것에 기대어 7년을 지냈다.
대학교 시간 강사와 주방 직원, 여자 둘,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따위의 환경을 그린과 레인으로 바꾸어.
둘이 짊어진 무게 자체는 무겁지만, 막상 들어보니 무겁지만은 않다. 수박은 함께 들 수 있고, 일방적으로 시끄럽게 떠드는 티비 소리가 아닌 둘의 이야기가, 대충 가른 수박을 퍼먹는 작은 소리 대신 웃음소리를 나눈다. 중간에 너무 무겁다면 짐을 바꿔 들 수도 있겠지. 쉬어가도 좋고.
물론 연인 간의 사랑이 언제나 능사라는 건 아니다. 7년을 만나고도 언제든 헤어질 수 있다. 다만, 헤어짐의 이유는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게 맞다. 외부의 개입으로 피하듯 깨어지는 건,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충분하다.
이것 말고도 딸아이, 그러니까 그린의 삶은 충분히 녹록지 않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교수를 강단에서 쫓아낸 학교에 문제를 제기하며 시위에 동참하는 중이다. 열과 성을 다하는 그 모습은 레인을 처음 엄마 집에 데려왔을 때의 당돌함과 닮았다.
공부 열심히 하던 딸 애가 제 밥벌이 생각은 않고 생판 모르는 남 일에 시위까지 나선다니. 이 광경을 본 엄마는 딸아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더 생긴다. 여기저기 상처 난 모습을 보아하니 마음이 쓰라리고, 그만큼 화가 난다. 너는 뭐가 부족하다고 그런 짓을 하느냐고.
사람은 때로 자신을 타인에게 투영해서 바라본다. 특히 엄마-딸처럼 양육자와 자식의 관계에서 흔하다.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주겠노라고, 혹은 당신이 경험해 보니 별로인 것을 내 아이에겐 절대 주지 않겠노라며. 그런데 우리네 삶은 아무리 달라봐야 크게 다르지 못하다. 오히려 닮은 만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는 것 아닌가.
어쩌면, 너무 닮아서 이해하고 싶지 않은 지경에 이르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비슷했다가는 내 삶에 이르게 될까 봐. 젊어서 다 가졌던 어르신이 노년엔 가족 하나 없이 외로운 삶을 마무리했다는 것 또한. 사실 엄마는 어르신에게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노동할 수 있었을 때 아무리 많이 가져도 훗날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내심 일종의 담보처럼 정상 가족을 꾸렸으면 하는 마음.
사람은 익숙한 것에 대해서는 안정감을 느낀다. 그리고 추측도 썩 논리적이지 못하다. 비유하자면, 동전 던지기를 해서 이번에 앞면이 나왔으면 다음엔 뒷면이 나올 거라는 '예감'을 논리로 둔갑하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으니까. 그 예감은 평소 본인이 하던 사고의 흐름과 같은 결이고 말이다.
삶은 지나기 전엔 모른다. 고로, 그린의 훗날은 알 수 없다. 레인과 여전히 함께일 수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만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다. 어떤 결과가 좋은 것일까? 지금은 알 수 없다. 당장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현재에 충실하는 것. 그린의 현재엔 레인이 있고, 레인의 현재엔 그린이 있다. 둘은 각자 노동하며 삶을 영위하고,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그러하듯.
그럼 뭐가 그렇게 다르고, 뭐를 더 이해해야 하는가.
이해를 구할 것도 이해를 할 것도 없다.
너희의 존재를 티비 소리로 애써 지우다가 잠 못 이루던 밤.
그들의 목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까무룩 잠들던 밤.
이제는 또 다른 그린과 레인을 알아보고, 존재를 존재로서 인정한 어느 낮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이야기가 너의 이야기였고, 너의 이야기가 곧 나의 이야기였다.
* 씨네랩에서 크리에이터로 초청받아 시사회 참석 후 남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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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어른들은 몰라요
경청이란 참 갖기 힘든 덕목이다. 자신있게 굿 리스너(Good listener)라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쩐지 세상은 점점 소통하기가 어려워진다. 나 역시 예전에는 내가 굿 리스너라고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저 듣고 싶은 말만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눈과 입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할 수 있지만 귀는 그렇지가 않다. 듣기 싫은 것도 불가항력적으로 들리고 만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저 청자이면서도 스스로 경청자라고 착각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번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의 주제는 '어린이를 듣다'이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를 거쳐왔다. 그러나 어린이 때 우리가 어땠는지를 쉽게 잊어버린다. 어른들은 어린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잘 믿어주지도 않는다.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마음을 표현할 언어도 많이 알지 못한다. 그때의 크고 작은 마음들은 이제 희미해졌거나, <오팔>의 주인공 오팔처럼 무의식 속 어디엔가 묻어버렸다.
마음이 아파서 그러는 건데, <침묵의 소리>
어린이에게 부모는 세상의 전부이다. 부모에게 사랑을 듬뿍 받으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고, 내가 공주 왕자가 된 것 같고, 세상에서 내가 최고인 것만 같다. 반면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의심이 드는 순간 그 세계는 서서히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홍콩 영화감독인 얀얀 막의 <침묵의 소리>에서는 그 균열을 찬찬히 보여준다. 부모가 어린이를 듣지 않을 때의 비극이다. 사실상 산전수전 다 겪은 어른의 눈으로 보면 대단한 비극이 아닐지라도 어린이에게는 세상을 잃은 것만 같은 비극일 수 있다. 세상이란 추상적인 개념이니, 세상을 잃었다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겠다.
광짜이의 부모는 학교에 불려가 담임과 상담을 받게 된다. 광짜이의 성적이 너무 많이 떨어져서이다. 성적이 떨어진 이유를 어른 셋이서 생각해 보는데, 아무래도 최근 광짜이의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일 것 같다. 어른들의 생각이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가 광짜이를 돌봐주었다. 광짜이는 우주를 알고 싶고 외계인이 궁금한,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아이이다. 할머니는 광짜이가 학교를 마치고 가면 항상 기다리고 있고, 광짜이와 우주비행사 놀이도 해주었다.
엄마는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부동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광짜이에게 신경 쓰기가 쉽지 않다. 성적에 대하여, 공부에 대하여 물어보지만 광짜이는 영 시큰둥하다. 아빠는 바쁘다. 물류회사는 주말도 없이 돌아가고, 당장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게 더 중요하다. 깊은 밤 광짜이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엄마아빠는 동생과 셋이서 다정하게도 잠들어 있다.
이제 할머니는 없고, 광짜이는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유일한 대상은 아주 어렸을 때 엄마아빠와 놀이동산에 갔다가 경품으로 받은 우주비행사 인형뿐이다.
어느 날, 광짜이가 사라진다.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연락을 받고, 광짜이의 엄마와 아빠는 광짜이를 찾아 온동네를 헤맨다. 그러다 광짜이가 우주비행사 인형에 녹음한 것을 듣게 된다.
엄마는 매일 혼내고, 아빠는 자기와 시간을 보내주지 않고, 동생은 사랑하지만 자기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하계훈련>
체육계에 비일비재하게 폭력 문제가 터진다. 늘 그래왔다는 말로, 체육계 전통이라는 말로 덮고 넘어가기에는 선수들의 고통이 너무도 컸다. 최근에는 신체폭력뿐만 아니라 성폭력도 수면위로 올라왔다. 우리나라는 폭력에 꽤 관대하여ㅡ특히 권력자의 폭력에만 관대하다. 약자의 폭력은 가차없이 형을 때리곤 한다. 정당방위도,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자가 남편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 등ㅡ 가해자는 솜방망이같은 처벌만 받는다.
여기에 미래의 야구 꿈나무 지성이가 있다. 코치에게 빠따로 맞으면서도 어떠한 항변도 하지 못하는 아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유소년선수이다.
지성은 하계훈련 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는다. 할아버지 발인 다음날은 중요한 시합이 있다. 야구 유니폼을 벗고 상복을 입은 지성은 어쩐지 자유로워 보인다. 드러누워 과자도 먹고 음악도 듣는다.
지성은 편지를 쓴다. 마치 광짜이가 우주비행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듯이, 더 이상 야구를 하고 싶지 않고, 다른 삶을 살아 보고 싶다는 지극히 평범한 바람을 담는다.
장례식에 찾아온 아버지의 친구들은 지성을 칭찬한다. 잠깐, 지성에 대한 칭찬인가? "아버지가 네 자랑을 정말 많이 했다." "너는 아버지의 희망이다"와 같은 말이 지성을 칭찬하는 말일까.
지성은 끝까지 편지를 전달할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 편지는 영 엉뚱한 타이밍에 아버지의 손에 들어가는데, 장례식장에 찾아온 코치에게 엄마가 촌지 봉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지성이 뛰어갔을 때이다. 아버지는 가만히 앉아 지성의 편지를 읽는다.
지성은 봉투를 빼앗아 부조함에 넣어버린다. 장례가 끝난 후, 아버지는 지성을 옆에 앉히고 말한다. 아빠는 열심히 살 테니까 아들도 야구 열심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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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짜이는 우주비행사 인형을 갖게 된 놀이동산에서 발견된다. 광짜이의 아빠는 광짜이에게 사랑을 말하고, 얼마나 자기가 행복한 아빠인지 말한다.
지성은 시합날 공을 대충 던지다 코치에게 뺨을 맞는다. 그 모습을 엄마아빠도 지켜 보고 있다. 지켜만 보고 있다. 지성도 그들을 본다. 그리고 공을 던진다. 그 공은 타자의 배트에 맞아 장외홈런을 치고, 저 멀리 날아가는 야구공처럼 지성도 시합장을 뛰쳐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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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존중하는 방법 중 돈도 안 들고 몸도 안 써도 되는 일이 잘 들어주는 것이다. 어른보다 몸이 작다는 이유로, 경제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어른보다 아는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말이 자주 묵살된다.
어린이가 아니게 된 지도 한참이다. 나는 이제 어른이지만, 어른들은 모른다. 아무것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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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셋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수퍼 소닉3>가 북미 3,761개 극장에서 6,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디즈니의 <무파사: 라이온 킹>을 꺾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평단과 관객들의 고른 지지로 <수퍼 소닉3>는 개봉 전 예상 오프닝 스코어였던 5,500만~6,000만 달러를 넘어섰으며 새해까지 이어질 연말 흥행작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수퍼 소닉3>는 시리즈 최저 성적으로 출발할 것으로 보였으나, 2020년 첫 번째 영화(2월 개봉, 5,800만 달러)보다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2022년 속편(3월 개봉, 시리즈 최고 7,200만 달러) 바로 아래 수준으로 개봉했습니다.
좋은 성적으로 국내 팬들에게도 기대감을 심어준 <수퍼 소닉3>는 국내에서는 오는 1월 1일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반면, <문라이트>,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의 감독 베리 젠킨스가 메가폰을 잡아 큰 화제를 모았던 디즈니의 <무파사: 라이온 킹>은 4,100개 극장에서 3,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나, 개봉 전 예상치였던 5,000만 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작비가 2억 달러 이상, 전 세계 홍보비가 약 1억 달러로 추정되는 대형 블록버스터로서는 부진한 출발이기에 흥행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한편, 국내에서도 <무파사: 라이온 킹>은 주말 관객 수 23만 명, 누적 관객 수 31만 명을 기록하며 2위를 기록했습니다. 앞서 개봉한 <모아나 2>의 개봉 첫 주말 관객 수가 100만 명에 달한 것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입니다.
1위를 차지한 <소방관>은 개봉 3주 차에도 선두를 지켰습니다. 누적 관객 수 250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은 물론이고 2024년 개봉 한국 영화 흥행 5위 안에 안착했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흥행을 이어 나가고 있는 <소방관>이 대작 한국 영화 <하얼빈>이 개봉하는 금주에도 준수한 성적을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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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WFF 데일리]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SYNOPSIS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 도경을 잃고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난 명지, 같은 사고로 동생을 잃은 지은, 단짝 친구와 이별한 해수. 남겨진 사람들은 서로를 돌보며 몸과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상실의 슬픔 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따뜻한 희망의 이야기. 김애란 작가의 동명 소설 원작.
PROGRAM NOTE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문학적 기품을 바탕으로, 언어가 중요한 영화다. 이는 설혹 원작 정보를 알지 못한 채 작품을 접한 관객일지라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바, 중심인물들부터가 글쓰기 혹은 책과 관련된다. 하지만 그들조차 좀처럼 언어화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편지라는 형식으로나마 그들이 가까스로 발화에 이르는 과정이 영화의 얼개를 이룬다. 여기에 마비 내지 부동의 자세에서 활강에 성공하기까지 점증하는 신체들의 이미지가 대구 된다. 허리께에서 시작해 몸 전체로 퍼져 나가는 발진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이처럼 일견 관념적으로도 느껴지는 이야기의 배경으로 광주와 바르샤바라는 구체적 지명과 풍경이 제시되고, 마침내 인물들의 트라우마가 발화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지난 10여년 간의 한국 상황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특정한 어느 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터, 관객과 영화 속 인물들 간의 연결이 감정이입을 넘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장소와 시대와 디에게시스의 경계를 넘어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트라우마들의 아픔을 공유한다는 감각이 뚜렷하게 환기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태양을 바라보는 인물들이 교차편집되며 서로 간 동시성이 확보되고 이를 목도하는 관객 또한 그들의 애도와 회복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 어쩌면 연대라는 것은 이렇게 생겨나는지도 모른다. [이유미]
명지(박하선)가 사는 아파트로, 두 개의 소음이 동시에 날아든다. 전화를 알리는 휴대전화의 진동 소리와, 아파트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도난 경보음. 경고음과 함께 들려온 소식은 부고를 알렸다. 경고음은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소리 또한 인생에 갑자기 날아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의 세상을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곳이 되게 한다.
남편의 생명을 삼킨 물을 욕조에 받았다가 흘려보내기도 하고, 시어머니가 챙겨주시는 반찬은 냉장고에 그냥 쌓이기만 하면서, 명지의 세계 또한 달라져 있다. 영화 초반의 이러한 장면들은 짧은 호흡으로 뚝뚝 끊긴다. 이것은 상실 이후의 일상과 닮아 있다. 긴 호흡으로 뭘 하기 어렵다. 아니, 그냥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조차 긴 호흡으로 하기가 어렵다.
아주 작은 연결고리만으로 일상이 툭툭 끊어지기 때문이다. 잔뜩 삭아버린 실처럼. 초코 아이스크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함께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던 어떤 날을 떠올리고, 테이블 모서리만 어루만져도 따뜻한 기억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화 내내 명지의 아파트 조명은 꺼져 있어, 따뜻한 빛으로 가득했던 과거와 더욱 대비된다. 불이 꺼져버린 집처럼, 영혼 어딘가의 불이 꺼진 것처럼.
조금이라도 연결고리가 적게 느껴질 곳으로, 명지를 불러낸 사촌언니의 다정한 초대를 받아 폴란드 바르샤바로 향하지만, 명지가 가는 모든 곳에 명지의 상처도 함께 갈 수밖에 없다.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날아들었던 비보처럼, 아무 이유도 없이 원인불명의 발진이 몸에 붉게 자라난다. 우리 삶에 원인불명으로 찾아오는 일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 보면 원인을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이야말로 놀라운 일 같지만, 우리는 또렷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더욱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 속에서, 가장 황홀한 꿈은 그만큼 가장 슬픈 꿈이 된다. 부재한 누군가가 등장하는 꿈은 다 그렇다. 그런 세상에서는, 잘 지내냐는 짧은 말이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다. 전화를 해보자는 별 거 아닌 말이, 작고 유쾌한 말이 폐부 깊숙한 곳을 푹 찌를 수도 있다.
이들의 세상은 지독한 상실의 아픔에 둘러싸여 있어서다. 이건 어쩌면 물에 빠지는 것과도 비슷해서, 머리칼 올올이 깊숙한 곳까지 온통 나를 적시고 도저히 숨을 쉴 수 없게끔 괴롭힌다. 도경과 지용이 떠난 세계에 남겨진 이들은, 도경과 지용의 마지막을 앗아간 것과 비슷한 고통을 계속해서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인물들은 움직인다. 모든 단어에 추억이 묻어 있고, 딱 그만큼의 슬픔이 묻어나는 세상에서도. 명지가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났듯, 지용을 잃은 지은과 해수도 자기 자리에서 힘차게 움직이려 애를 써본다. 인물들이 이처럼 상실 너머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영화의 호흡이 조금씩 길어진다. 해일처럼 밀려와 관객을 덮는다.
왜 하필 폴란드 바르샤바였으며, 왜 하필 광주였나? 죽음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은 도시. 죽음을 잘 기억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상실 이후의 삶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임을 잘 아는 사람들의 도시. 충분히 위로되지 못한 슬픔은 끝까지 그 눈을 뻣뻣하게 부릅뜨고 살아 나를 따라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아버린 사람들이, 여전히 세상의 무수한 슬픔에 시선을 보내는 곳.
그곳에서 만난 현석(김남희)과 명지 사이, 덩그러니 질문 하나가 놓인다. “그때 그 손을 놓지 않았다면 우린 지금 같이 있을까?” 현석이 명지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명지가 도경을 생각하며 던진 질문이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원인불명의 상황에서, 남겨진 이가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말 중에 이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웅덩이가 되어, 인물들이 겪은 제각각의 상실이 여기에 고인다. 그리고 거기서 이들은 만난다. 명지는 이 질문이 도경과 지용 사이에도 놓여 있었음을 깨닫는다. 놓친 손이 있지만, 또 힘차게 움직여 닿으려고 애쓰는 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편지를 통해 지은과 명지의 손이 마주한 순간, 명지도 손을 움직여 메일을 써 본다. 부치지 못해도 괜찮다. 너무 어려워도,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조금은 괜찮다. <벌새>의 영지 선생님처럼 말해 본다.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지만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다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시리가 남긴 그 새삼스러운 질문은 어쩌면, 말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끝에서, 명지는 마침내 햇빛을 마주본다. 밖에서 들어오는 흐릿한 불빛 외에는 좀처럼 밝아지는 일 없는 어둑한 집에서, 오렌지색 노을과 눈을 마주친다. 슬픔은 여전하겠지만, 명지의 아파트가 이전처럼 밝고 따뜻한 빛으로 차오르려면 한참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몸으로 마음으로 상실을 겪어내고 있는 지은도 명지도, 살아서 그 빛과 눈을 마주한다. “우리는 오렌지 태양 아래 그림자 없이 함께 춤을” 추고, “아름다웠던 그 기억에서 만나” 또 손을 뻗어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023.08.27. 16:00-17: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3관 (상영코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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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종, 기대보다 실망스러운 공포영화
랑종이 개봉했습니다.
나홍진 감독이 원안을 쓰고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서 기대가 많았던 영화였는데요.
전작인 곡성과 주제가 통하는 측면도 있어 뭔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진행되는 영화는 무당을 전면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러닝타임이 꽤 긴데 초중반에 꽤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그런데 후반부 공포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연달아 등장하면서 공포가 반감되는 단점이 보입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믿음이라는 주제에 대한 부분도 많이 옅어져 버렸어요.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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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즈니+ <삼식이 삼촌> 오프닝 예고편
"삼식이 삼촌이 누구야?" 모두가 찾던 그 이름 [삼식이 삼촌]이 5월 15일, 디즈니+에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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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화녀> 메인 예고편
"네가 누구든 기꺼이 상대해 줄게" 그녀의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폭발한다..? 2024년 가장 충격적인 미스터리 스릴러? [화녀]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