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6-07 16:11:40
지나온 과정에서 지나치지 않은 감정 속을 유영하다
영화 <매스> 리뷰
테이블에서 펼쳐지는 대화는 네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공간 자체의 긴장감과 대화가 동시에 펼쳐진다. 비극적인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마주하는 두 부모의 조우 속,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책으로도 꼭 만나고 싶은 영화, 매스를 소개한다.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야기를 듣지만 폭발하는 감정을 온전히 누르기는 힘들었다.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펼쳐지는 대화는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흐름을 유지한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더 숨 막히게 만드는 자리 배치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수많은 대사는 그들이 겪어 왔던 고통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시선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사람의 용서는 고통에 따라 끊임없이 고통받는 이들이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고통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기에 변하지 않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보이는 표정이나 시선,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감정이 더욱 극대화된다. 대사로 표현되는 감정들이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먹먹하다. 가해자의 부모이기 때문에 온전한 슬픔과 그리움을 표출할 수 없었던 가해자 부모의 표정이 떠오르며 그 감정이 커진다. 용서할 대상이 불명확한 이 상태에서 모두가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거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대화하고 또 대화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나눠야 할 것이다.
화면이 검게 변해도 빛만큼은 사라지지 않는 모습에 영화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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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제80회 골든글로브 수상작은?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매거진 '씨네랩'입니다.
한국 시간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주관하는 시상식으로 영화상,
뮤지컬, 코미디 부문과 드라마 부문으로 나누어 작품상, 감독상, 남녀 주연상 등을 시상합니다.
과연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어떤 작품들이 수상을 했는지 영화상을 중점적으로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작품상 - 드라마 | 더 파벨먼스 - 스티븐 스필버그
ⓒ 네이버 영화
제80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더 파벨먼스>가 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더 파벨먼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로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 보낸 스티븐 스필버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담았습니다.
영화는 2022년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여우주연상 - 드라마 | 타르 - 케이트 블란쳇
ⓒ 네이버 영화
올해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은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타르>는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지휘자 리디아 타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케이트 블란쳇
배우는 영화에서 리디아 타르 역을 맡아, 리디아 타르의 복잡한 내면을 연기했습니다.
남우주연상 - 드라마 | 엘비스 - 오스틴 버틀러
ⓒ 네이버 영화
올해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은 <엘비스>의 오스틴 버틀러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엘비스>는
시대를 뒤흔든 아이콘이자 전 세계가 사랑한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삶은 그린 영화입니다.
오스틴 버틀러는 엘비스와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관객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였습니다.
작품상 - 뮤지컬코미디 | 이니셰린의 밴시 - 마틴 맥도나
ⓒ 네이버 영화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은 <이니셰린의 밴시>가 수상하였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과거에 집필했던 동명의 희곡을 원작으로 합니다.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와 뉴욕비평가
협회상에서 각본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여우주연상 - 뮤지컬코미디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양자경
ⓒ 네이버 영화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여우주연상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양자경 배우가 할리우드 진출한 이래
첫 단독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수많은 멀티버스의 다양한 역을 소화해내면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남우주연상 - 뮤지컬코미디 | 이니셰린의 밴시 - 콜린 파렐
ⓒ IMDB
올해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은 <이니셰린의 밴시>의 콜린 파렐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다수의 흥행작을 보유한 배우 콜린 파렐은 여러 감정들을 섬세하고 완벽하게 표현해내며 극의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여우조연상 |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 안젤라 바셋
ⓒ 네이버 영화
올해 여우조연상은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의 안젤라 바셋 배우가 수상하였다. 트차카의
아내이자 트찰라와 슈리의 어머니인 라몬다 역을 맡은 안젤라 바셋 배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와 높은 표현력으로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남우조연상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 키 호이 콴
ⓒ 네이버 영화
올해 남우조연상은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키 호이 콴 배우가 수상하였습니다.
20년 만에 스크린을 돌아온 키 호이 콴은 영화에서 다채로운 색깔의 연기와 현란한 무술 실력을
선보이며 볼거리를 제공해주며, 웨이먼드 그 자체를 보는 것 같은 실감나는 연기를 선보였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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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분명히 톱스타였던 내가 갑자기 무명 재연배우?
안하무인의 톱스타
오빠 일어나! 누군가가 깨우는 소리에 박강은 부랴부랴 눈을 뜬다. 우리 기사 났어! 동침을 한 동료 여배우의 말에 눈이 뜨인다. 핸드폰을 키는 박강. 뉴스란에 박강의 스캔들이 대문짝 하게 걸려있다. 연말에 귀찮은 일 생겼네. 기사를 처리할 생각에 매니저부터 생각난다. 그런데 눈치 없이 박강은 매니저만 찾지 않았다. 파트너인 동료 여배우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다. "이거 너네 회사가 낸 거 아냐?" 발끈하는 동료 여배우. 집에 크게 걸려있는 박강의 초상화에 커피를 뿌리고 집 밖을 나선다.
박강의 직업은 배우다. 배우라고 하는 것은 연기를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박강은 톱스타다. 사생활은 더럽지만 연기는 곧잘 하는 박강. 한국영화대상이라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을 정도였다. 올해도 후보 지명뿐만 아니라 수상까지 성공하는 주인공. 박강은 수상소감으로 감사한 사람들에 대해 언급할 것 같다. 하지만 아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회사 식구들이나 스태프들에게 고맙다고 할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초심 잃겠다'라는, 말실수 아닌 말실수를 해 실검에 등장한다. 안하무인의 톱스타 박강. 온 세상이 우습지만 특히 더 만만한 건 친구 겸 매니저 조윤이다. 회사가 대형 에이전트는 아닌 탓에 박강의 흥망성쇠에 조윤 가족의 일상이 달려있다. 분명 연극 같이 하던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조윤은 박강이 하라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만 한다. 자기가 했던 수상소감처럼 초심을 완벽히 잃은 박강. 이런 박강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이 도착했다. 택시 하나를 탔을 뿐인데 자기가 톱스타였던 세계관에서 무명 재연배우인 세계관으로 옮겨진 것이다!
왜 지금 개봉을?
영화에서 중요한 시간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다. 이 영화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구색을 갖췄다고 느낀 것은 이 시간적 배경 덕분이다. 영화의 이야기에서 이 작품이 왜 이 시기로 잡았는지 설명하는 편이다. 일단 크리스마스가 있다는 것은 시기가 연말이라는 것이다. 연말이기 때문에 시상식이 있다. 이 시상식에서 박강이라는 인물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묘사하는 대사가 있다. 또 크리스마스 자체가 가족들이랑 보내는 시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감독이 이야기의 완결성을 잘 생각했다고도 볼 수 있다. 또 크리스마스가 예수의 탄생이라는 상징적인 의미와도 연관이 있다. 이 상징적인 의미는 후반부에 어떤 대사와 이어진다. 각본을 쓴 마대윤 감독이 이 부분을 일부러 만들었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또 영화 전체적으로 크리스마스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이야기의 터닝포인트로 활용한 부분이 몇 개 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라는 소재에 여러 키워드를 넣다 보니 좀 아쉬워지는 부분이 있다. 왜 개봉시기가 2023년 1월일까? 하는 생각이다. 2022년 12월에 <아바타 : 물의 길>이라는 자연재해가 있었기 때문일까? 그런데 글쓴이는 11월 말에도 개봉시기로 적합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새로운 인생의 탄생’이라는 관점이 극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모티브이기 때문에 1월의 개봉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올빼미>나 <육사오>처럼 장르적인 개성을 어느 정도는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후자의 영화(<육사오>)의 경우처럼 나름의 뚝심을 가질 수 있는 작품이 되지는 않았을까 생각한다. 적당히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후에 개봉하는 <유령>, <교섭>보다 더한 임팩트를 가질 수 있을 거라고는 예감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시기가 좀 아쉬운 영화가 됐다.
심심하면 만날 수 있어
영화의 소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작년 11월에 개봉했던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다. 찡한 가족드라마이자 ‘당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나요?’라고 묻는 영화. <덩케르크>처럼 미니멀하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넣을 수 있는 건 죄다 때려 박아서 내내 폭발적인 영화를 만들었다. 그 하나하나 빼곡히 넣은 소재가 영화의 주제 중 하나(‘모든 것을 경험하고 난 후의 삶’)과 이어져서 의미 없이 소모되는 것이 없었다. 이 <에브리씽~>은 이렇게 연출과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쾌감 덕분인지 많은 분들에게 호소력이 있었다. 하려고 하는 말의 방식이 신선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의 영화인들이 사골국같이 우려낸 소재다. 이제 <에브리씽~>의 연출방식이 아니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비단 <소울>만 봐도 이런 소재 영화가 재작년에도 있었다.
이 <스위치>는 이렇게 익숙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개성이 느껴졌다. 바로 영화에서 기본적인 구성이 어느 정도는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는 <올빼미>나 <육사오>와 유사한 느낌이다. <올빼미>가 대체역사물과 스릴러라는 익숙한 맛을 살렸다면 <육사오>는 그냥 순수하게 웃기는데 집중한 영화다. 이와 마찬가지로 <스위치>는 가족구성원들의 캐릭터를 잘 살렸고, 가족의 유대감을 살려 코미디로 소화하는 연출이 몇몇 보인다. 대표적으로 아내 수현 캐릭터가 박강의 행보를 설명해주는 인물처럼 보인다는 것이 그를 설명할 수 있다. 수현이 어떤 캐릭터로 설정됐느냐에 따라 박강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좋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나름 잘 구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인물이 좋은 사람이라 마음이 간다. 그런데 아쉬운 부분도 있다. 수현의 몇몇 대사는 좀 오그라든다. “이렇게 예쁜 선물을 받아서 화가 난고야?”같은 대사는 아쉽다. 이 부분은 영화의 가장 큰 단점과도 이어진다. 수현에게 비교적 올드한 연출이 집중되기 때문에 거의 주인공쯤 되는 분량인 이민정 배우 부분이 약간 숙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사 몰입에 집중이 안 되는 것이다.
다른 가족구성원으로 나오는 어머니, 아들/딸은 나름 연출로 잘 살렸다. 자녀가 되는 로이, 로하 역할은 살짝 아쉬운 박강의 감정선에서 관객을 설득하는 역할을 한다. 무슨 말이냐고? 아이들이 귀엽다. 특히 박소이 배우도 귀엽지만 그 동생으로 나온 분이 애가 이쁘다. 극 중에서 그렇게 잘생긴 아이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그냥 귀엽다. 캐릭터를 살리는 인물 설정이나 촬영방식에서 이 둘을 살리는 연출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른 캐릭터인 어머니 역은 두 인물의 차이를 보여주는 역할을 나쁘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다. 어머니가 처음 등장할 때 어떤 위치에서 나왔고, 두 번째 등장할 때 어디서 만났는지를 보다 보면 가족구성원의 위치가 박강을 설명하는 좋은 매개체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스위치>에서 신파극적인 요소를 거의 찾을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의 근거는 중 후반부쯤에 어머니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 신이 있다. 뭐 다른 분들은 글쓴이만큼 좋아하진 않겠지만 나는 이 장면이 감정적으로 찡했다. 어머니와 아들 간의 관계를 이렇게 엉엉 울지 않아도 표현할 수 있다. 좋은 연출의 예시였다.
살짝 새는 구멍
영화에서 가장 근본적인 세팅은 역시 멀티버스다. 영화에서 직접적인 '다중우주' 언급이 없긴 하지만 뭐 다른 평행세계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멀티버스를 언급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영화 자체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깊게 안 하고 지나가는 것이 좋았다. 단순히 작년만 해도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를 비롯한 다양한 영화에서 이에 대한 묘사가 나왔다. 이 이유의 연장선상에서 다중우주를 다룬 영화와 드라마는 많았다. 당연히 이를 두 번 세 번 설명하면 좀 지루하다고 느꼈을 것 같다. 영화는 이 설정을 과감히 생략하며 이야기의 선택과 집중을 강점으로 발휘시켰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가족영화적 특성'에 임팩트를 집중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집중하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살짝 보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박강이라는 인물을 곁에 둔 주변인들의 리액션이다. 영화에서 강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세계관이 바뀐 박강의 상태 묘사다. 박강은 다른 세계관에서 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당연하다. 다른 세계에서는 슈퍼스타였던 그가 서프라이즈 재연배우로 만족한다는 게 말이 쉽지 막상 내 입장이 되면 나 같아도 저렇게 행동한다. 여기에 물리적인 분량을 할당하고 인물의 서사를 쌓은 방식 자체는 코미디로서도 좋고 영화의 매끄러운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영화에서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박강의 가까운 지인들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묘사된다. 여기서 박강의 인물선은 입체적인데 주인공과 친한 인간관계의 감정선은 평면적인 쪽에 가깝다. 설정에 대한 설명 이전에 박강이 어떻게 이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으면 좋지 않았을까? 인물 서사에서 이를 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후반부의 어떤 이야기전개는 숙제를 푸는 듯이 쉭쉭 넘어간다. 수현이 좋은 사람인 것에 의존하는 셈이다.
그리고 어떤 떡밥은 영화가 강박적으로 풀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영화 전체적으로 따뜻한 가족영화적인 특성을 살렸다. 이를 위해서 떡밥을 푸는 행동은 필연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방식 중 ‘와 이건 좋았다’ 싶은 부분도 있다. 가령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라는 것,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수현이 그림을 그리는 부분은 이 부부에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소재가 된다. 박강의 가족관계에 대한 부분은 후반부까지 이야기를 나름 잘 챙겨서 이야기 서사에 굴곡을 부여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이것이 ‘강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영화의 엔딩 장면에 대한 이야기다. <헌트>의 엔딩에 대해서 써보자면, 이 작품의 끝 장면은 고윤정 배우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이정재 감독이 나중에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이랬겠구나’ 생각할 수는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반대다. 영화의 인물들이 뭘 어떻게 했는지를 너무 대놓고 다 보여준다. 만약 처음 만난 그 장면에서 끊었으면 여운이 엄청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가 지나치게 친절한 셈이다.
낡은 구석들
전체적으로 기본적인 이야기를 잘 갖춘 영화지만 나이 든 영화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권상우 배우의 상의 탈의 신 몇 개다. 영화에서 권상우 배우가 상의탈의를 한 장면이 다섯 번 정도 된다. 여기서 두~세 번 빼고는 사실상의 탈의 안 해도 된다. 특히 찜질방에서 조윤과 대화하는 신은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권상우 배우 멋있는 걸 굳이 이 영화를 통해서 알아야 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보여주는 코미디 신은 호보다 불호가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박강이 슈퍼스타인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장소에서 어떤 행동을 한다. 아 진짜 싫다. 이걸 재밌어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다. 글쓴이는 진짜 너무 싫었다. 왜 저러지? 싶었다. 이후에 박강과 어머니의 대화 신에서 느껴지는 뭉클함이 인상 깊어서 이게 더 두드러졌다.
그리고 수현이라는 캐릭터의 연출 방식도 살짝 아쉽다. 수현 캐릭터는 책임감이 있는 사람이다. 배우로서의 성과가 시원찮은 박강을 굳게 일으켜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로서도 두 아이들에게 좋은 어머니가 되어준다. 그렇다고 인물을 납작하게만 설정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인물에서 몰입이 깨지는 느낌은 대사(들)에서 나온다. ‘나 같은 예쁜 선물을 받아서 기분이 나쁜 거야?’식의 대사는 이민정 배우가 처음 등장했던 <그대 웃어요>에서나 본 대사다. 이런 대사가 이야기가 잘 전개되다가 갑자기 등장해서 좀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민정 배우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영화에 플러스가 되는 셈이다. 근데 수현이라는 캐릭터를 생각할 때 이것만 기억나는 거라면 이런 연출방식이 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직업은 배우
사실 권상우 배우에게 예술가적인 기대를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다. ‘옥상으로 따라와’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빼곤 20대 후반인 글쓴이에게도 뭔가 신선한 느낌이 없다. 저번 작품인 <히트맨>에서도 뭔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이 <스위치>에서 권상우 배우는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왠지 불쌍한 무명배우와 슈퍼스타의 간극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를 잘 연구해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극에서 굉장히 찡한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도 권상우 배우가 이렇게 감정적인 전달이 좋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하무인 톱스타가 어떻게 이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느끼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외로운 눈빛과 몸짓으로 풀어낸 것이다. 이 분이 새삼 직업이 셀럽이 아니라 배우인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 권상우 배우의 최고작 갱신에도 불구하고, 오정세 배우의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다. 이 배우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극 중 극 연기다. 이 영화 안의 드라마 연기와 영화 자체의 퍼포먼스를 비교하면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또 조윤이 톱스타가 된 세계관에서의 연기도 나름 충실했다. 대놓고 조윤을 안 챙기는 박강과는 다른 대비되는 모습을 '어떻게 하면 인물들의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지'를 연구하고 표현한 느낌이었다. 오히려 과시적으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닌 절제된 인물로 톱스타의 오만과 미덕에 대해 연기하는 좋은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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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이야기
넷플릭스에 공개된 [수리남]은 에너지가 넘치는 시리즈다. 한 번 시작하면 그 힘에 이끌려 6편을 내리 정주행 하게 만드는, 정말 오랜만에 느껴본 정주행 욕구가 든 시리즈였다. 마침 개봉된 시점이 추석 연휴 직전이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넷플릭스에서 찾아봤을 것 같다. 여기에 개봉한 영화도 <공조2> 한 편 밖에 없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에 공개를 했다.
추석이 지나고 여기저기서 여러 가지 평이 들려온다. 정말 많은 사람이 본 것 같다. 웬만해서는 이렇게 까지 이야기가 되지 않는데, [수리남]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각 배우들이 너무 잘하는 역할 혹은 그동안 해왔던 역할의 캐릭터를 맡아 기시감이 느꼈다는 평도 있었고, 이야기의 허점이 있었다고 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평가들의 반응이 이 시리즈가 '싫었다'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렇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모든 사람들이 시리즈를 보기 시작해서 명절 연휴에 모든 에피소드를 끝까지 봤다는 이야기다. 시리즈의 특성상 흥미가 느껴지지 않으면 에피소드 보기를 중단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끝까지 시청을 완료한 것 같다.
나 역시 이 시리즈를 처음 보기 시작하고 4일 정도 기간에 모두 시청을 완료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고, 하정우와 황정민이 협상을 벌일 때 연기가 무척 좋았다. 전반적으로 연기가 무척 좋은 시리즈다. 박해수와 조우진의 연기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조금 논란이 있는 건 배우 유연석의 연기다. 황정민이 맡은 전요한의 수석 변호사로 등장하는 그의 연기가 어색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무척 잘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유연석이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다. 크게 연기가 인상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던 배우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시리즈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그에게 딱 맞았던 것 같다.
일단 얄밉게 느껴지는 껄렁대는 연기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자신이 배운 사람이라는 걸 일부러 티 내는 연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기억에 그가 악역이나 껄렁한 연기를 하는 걸 잠깐이라도 본 적이 없다. 외형적으로 가지고 있는 반듯한 이미지를 깨는 이번 연기는 그가 앞으로 좀 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줬다.
하정우가 맡은 강인구는 판타지적인 인물이다. 한국에서 단란주점과 카센터를 운영하던 그가 수리남으로 가서 홍어를 수입하려다 마약 밀매범으로 감옥에 간다. 출소 이후 국정원 요원과 함께 마약 사범 전요한을 잡으로 가서 벌이는 그의 대처 능력은 무척 인상적이다. 흔들림 없이 협상을 하고 전요한의 협박을 받고 그대로 강하게 되치기를 던진다. 완전히 협상이 완료될 때까지 그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고 상대방의 바닥을 꺼내기 위해 침착하게 자신의 수를 던진다. 이런 시리즈의 모습은 실제 배우 하정우가 겪었던 보이스 피싱에 대처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배우가 피싱범에게 대하는 모습이 시리즈를 보면서 떠올랐다. 이런 점을 보면 하정우를 캐스팅한 건 아주 좋았던 것 같다.
시리즈의 악당 전요한을 맡은 황정민의 연기도 좋다. 그런데 그의 연기는 과거 <신세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 톤으로 보이는 그의 연기는 기시감이 들기는 하지만 이 시리즈 안에 무척 잘 어울린다. 아무도 믿지 않지만 주변을 잘 구슬려 자신의 사업을 진행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시리즈에 긴장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시리즈에는 수리남에서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조직 보스 첸진도 등장한다. 배우 장첸이 연기하는 이 인물도 이 이야기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첫 등장부터 그가 보여주는 위압감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후반부에 조금은 부속품처럼 소비되어 버리는 역할이지만 전요한, 강인구, 첸진이 서로 엮이고 서로를 이용하면서 벌이는 상황들이 무척 재미있게 구성되어있다.
윤종빈 감독은 <공작>, <범죄와의 전쟁> 같은 영화를 통해 긴장감 넘치는 인물 구도를 선보인 적이 있다. 여기에 꼼꼼하게 만든 미장센이나 촬영이 이번 [수리남]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시리즈를 보는 내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전개도 좋았지만 역시나 가장 좋았던 건 배우들의 연기였다.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였지만, 일반인이 첩보를 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을 설득하게 만드는 건, 결국 배우들의 연기다.
오랜만에 정주행 하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시리즈를 본 것 같다. 대부분의 시리즈는 한 편 보고 약간의 텀이 생긴다. 그런데 [수리남]은 멈추지 못하고 달려가게 만든다. 아직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넷플릭스에서 이 시리즈를 보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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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비 알고리즘] 어른들을 위한 동화
[무비 알고리즘 Movie Algorithm]:
[무비 알고리즘]에서는 다양한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본다. 너무나 달라보이는 영화들. 그것들에게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이번 무비 알고리즘의 연결고리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그리고 다룰 작품은 웨스 엔더슨, 기예르모 델토로, 팀 버튼, 헬리 셀릭이라는 네 명의 거장이 자신만의 색깔로 만들어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네 편이다. 공포와 코미디, 슬픔과 행복, 차가움과 따뜻함까지 그들의 영화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다. 지금부터 그 영화들에 담긴 연결고리를 알아보자.길을 지나다가 발견한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영화 포스터. 포스터를 본 아이는 엄마, 아빠에게 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러 가자고 조른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시작되고 스토리가 진행되자, 아이는 영화의 기괴함과 공포스러움, 그리고 잔인한 현실에 깜짝 놀라 눈물을 흘린다. 엄마, 아빠에게 영화관에서 나가자고 말하는 아이. 하지만 아이의 말을 못 들은 것인지 엄마와 아빠는 영화에 몰입했고, 그들의 눈가는 눈물로 젖어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아이들의 눈물과는 다를 것이다. 지금부터 어른들을 울린 동화 같은 이야기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나보자.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Stop-Motion Animation)’이란?
영화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전에 ‘스톱모션’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스톱모션은 애니메이션의 한 기법으로, “물체를 아주 조금씩 움직여서 매 프레임을 촬영하고 이를 영상으로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이처럼 프레임을 연결하면 물체가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듯한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스톱모션은 캐릭터를 만드는 재료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질감을 묘사하는데 용이하다. 클레이나 목재, 플라스틱, 고무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촉각적 심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실질적 대상을 만들어서 촬영하므로, 다양한 카메라 구도로 연출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고유의 아날로그적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스톱모션은 제작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들고,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기법이라 많은 제작사가 선호하는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해외의 ‘라이카 스튜디오’나 ‘아드만 스튜디오’, 국내의 ‘콤마 스튜디오’와 같이 스톱모션 기법을 고집하는 제작사들도 존재한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은 다른 기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비단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뿐 아니라 실사영화나 광고 등에서도 다양하게 사용된다. 그럼 지금까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으니, 네 편의 영화들에 대해 알아보자.
<유령신부 Corpse Bride >
- 영화: 유령신부 (2015)
- 감독: 팀 버튼, 마이크 존슨
- 출연진: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에밀리 왓슨 外
‘죽음과 삶 따윈’
어느 유럽 마을 생선 가게 졸부의 아들인 ‘빅터 (조니 뎁 分)’. 그는 신분상승을 원하는 부모님에 의해 몰락한 귀족의 딸인 ‘빅토리아 (에밀리 왓슨 分)’와 결혼을 약속한다. 서약 내용을 외우기 위해 숲속에 간 빅터는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땅 속에 있던 ‘에밀리 (헬레나 본햄 카터 分)’의 손가락 뼈에 반지를 끼우게 된다. 빅터가 자신에게 청혼했다고 생각한 에밀리는 빅터를 사후세계로 데리고 간다. 사후세계에 간 빅터는 에밀리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동정하게 된다. 그러나 빅토리아가 자꾸 생각나는 빅터. 결국, 에밀리를 속여 현실세계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빅터는 빅토리아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이때, 자신이 속은 것을 깨달은 에밀리는 빅터를 다시 사후세계로 데리고 간다.
에밀리는 빅터의 청혼이 실수였음에 좌절하는데, 그를 위로해주는 빅터로 인해 그들은 점점 가까워진다. 사라진 빅터로 인해 갑부 ‘바키스 (리처드 E. 그랜트 分)’와 결혼하게 된 빅토리아. 그 소식을 들은 빅터는 독약을 먹고 자신도 죽어 에밀리와 결혼하기로 한다. 하지만 바키스가 자신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했다는 것을 알게 된 빅토리아는 교회로 도망치고, 그 곳에서 빅터와 에밀리의 결혼식을 보게 된다. 에밀리 역시 빅토리아를 보게 되는데 그들을 위해 자신이 빅터를 놓아주기로 한다.
그 순간 빅토리아를 찾아온 바키스. 빅터와 바키스는 치열한 결투를 하게 되고, 결정적 순간 에밀리가 빅터를 구해준다. 사실 바키스는 오래전 에밀리를 죽인 장본인이었고, 다시 한번 에밀리를 모욕한다. 하지만 독약을 와인으로 착각하고 마신 바키스. 결국 악당 바키스는 유령들에게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빅터와 빅토리아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에밀리는 나비가 되어 그들의 행복을 빌며 하늘로 돌아간다.
‘산 사람보다는 죽은 사람’
팀 버튼 감독은 실사영화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발휘했지만, 그의 기괴하고 독특한 상상력은 스톱모션에서 더욱 빛났다. 그의 첫 작품이었던 <빈센트> 역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었고,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이나 <프랑켄위니>와 같이 대중과 비평가 모두를 만족시킨 훌륭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했다. 팀 버튼 감독은 이번 <유령신부>에서도 특별한 연출들을 선보였다.
유령신부에서 잘 나타나는 연출은 먼저 두 세계의 색감 대비이다. 작품의 색감을 살펴보면 현실세계와 사후세계의 색감이 너무나도 대비되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빅터에게 있어 현실은 자신이 무엇 하나 결정할 수 없는 수동적이고 억압된 공간이다. 반면 저승은 자신이 선택하고 이에 따라 온전히 행동할 수 있는 주체성과 자유가 강하게 나타나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숲이나 집과 같은 현실 속 공간은 회색이나 갈색 등 차분하고 낮은 톤의 색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에 반해 사후세계의 공간들은 청록색이나 보라색과 같이 화려한 색으로 활기차게 묘사된다.
캐릭터들 역시 마찬가지로 빅터의 부모님, 빅토리아의 부모님, 바키스와 같이 현실세계의 부정적 캐릭터들은 무채색의 색감을 가진데 반해, 에밀리와 벌레 친구, 유령들은 형형색색의 색을 가지고 있다. 특히, 에밀리가 일반적인 유령의 색인 회색이나 검정색이 아닌 파란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는 점 또한, 색감을 통해 해당 캐릭터의 성격을 의도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이처럼 유령이나 괴물 등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 오히려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모습을 부여하는 것은 팀 버튼 감독의 다른 영화인 <비틀쥬스 시리즈>나 <가위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스톱모션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하여 에밀리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의 표정 역시 세밀하게 묘사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특유의 질감을 활용해, 얼굴 근육이나 눈동자의 움직임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에밀리나 빅터, 빅토리아와 같이 길쭉하고 빼빼 마른 캐릭터들이나 해골들은 <팀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속 ‘잭 스켈링턴’과 마찬가지로 스톱모션과 만났을 때 더욱 시각적 재미를 준다. 작품 초반 사후세계에서 유령들이 에밀리의 과거를 이야기하며 춤을 추는 장면이나, 작품 후반 빅터와 바키스의 결투 장면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체형은 스톱모션으로 인해 시원시원하고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생’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놓아 줄게”라는 말은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되고, 역설적으로 들릴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내내 빅터만을 사랑했지만 그를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놓아준 에밀리. 그녀의 마음은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온전히 이해하고 느끼게 된다. 삶과 죽음이라는 비유가 너무나 극단적이라고 할지 몰라도, 사랑이나 꿈 등을 무언가가 갈라 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 속에서 너무 좌절하거나 매달리지 말자. 멍이 들 만큼 꽉 쥔 손도 조금은 놓아보면 어떨까.
<개들의 섬 Isle of Dogs >
- 영화: 개들의 섬 (2018)
- 감독: 웨스 엔더슨
- 출연진: 브라이언 크랜스턴, 에드워드 노턴, 란킨 코유 外
‘개와 인간’
가까운 미래, 일본의 한 도시 ‘메가사키’ 그곳에서는 시민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다. 그 병은 바로 ‘개 독감’ 즉, 개가 전염병의 원인이었다. 그러자 시민들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메가사키의 시장 ‘고바야시 (노무라 쿠니치 分)’는 도시의 개들을 쓰레기 섬으로 내쫓는 도그노포비아 정책을 실시한다. 하지만 고바야시의 입양아 ‘아타리 (란킨 코유)’는 아버지와 다르게 개를 사랑했고, 자신의 개 ‘스파츠 (리에브 슈러이버)’를 찾기 위해 쓰레기 섬, 일명 개들의 섬으로 향한다.
그 곳에서 아타리는 ‘치프 (브라이언 크랜스턴)’를 비롯한 개들을 만나,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아타리와 치프 일행은 스파츠가 코바야시 연구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아타리를 잡으러 로봇견과 사람들이 나타나 그들은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그 순산 스파츠가 나타나 아타리와 치프를 구해준다. 그러던 와중 처음에는 아타리에게 적대적이었던 치프가 너무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소년인 아타리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스파츠와 치프가 형제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어느덧 새로운 무리의 리더이자 아버지가 된 스파츠. 스파츠는 아타리의 경호견 자리를 치프에게 넘겨준다.
하지만 도시에서는 고바야시 시장이 쓰레기 섬의 개들의 안락사 조건으로 재선에 성공하였고 파티를 열고 있었다. 파티와 동시에 개들에게 겨눠지는 와사비가 든 총. 그 순간 아타리와 개 백신의 혈청을 가진 ‘트레이시 (그레타 거윅 分)’가 나타나고 그들은 치프에게 혈청을 주입한다. 개들을 살리자고 연설하는 아타리. 아들의 연설에 고바야시 시장은 마음을 바꾸고 안락사 계획을 취소하려 하는데, 그 순간 고바야시 시장의 집사가 공격을 하며 파티장은 아수라장이 된다. 결국, 아타리 일행은 승리하나 아타리와 스파츠는 크게 다친다. 다친 아들을 위해 자신의 신장을 이식해준 고바야시 시장. 결국 아타리는 깨어나게 되고, 메가사키의 새로운 시장이 되어 스파츠와 치프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털 하나부터 도시 전체까지’
미장센하면 뺄 수 없는 웨스 엔더슨 감독답게, 이 미장센을 위해 <개들의 섬>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통해 탄생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자체가 수많은 돈과 노동을 필요로 하지만 이번 영화는 일반적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넘어섰다. 영화를 만드는데는 2년이 넘게 걸렸는데, 대부분의 시간이 퍼펫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봉제인형)을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개들의 섬을 위해, 개 캐릭터 퍼펫 500개, 인간 캐릭터 퍼펫 500개 총 1000개의 퍼펫이 만들어졌다. 또한 캐릭터 하나당 총 다섯 가지의 사이즈가 제작되는등 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하지만 단순히 양적 노력 말고도 질적 노력 역시 병행되었다. 질적 노력의 대표적인 것이 퍼펫의 소재였다. 작품 속 개들의 털 질감을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테디베어 공장에서 사용되는 알파카 털과 메리노 양털이 사용되었으며, 인간 캐릭터의 피부 생기를 살리기 위해 반투명 수지 점토를 사용했다. 또한 실제 같은 표정을 구현하기 위해 얼굴 교체 시스템을 사용했다. 이를 통해, 신속하게 표정변화를 표현할 수 있었다.
캐릭터 말고 배경을 만드는데 있어서도 커다란 규모의 세트장을 만들었고, 진짜 도시처럼 곳곳에 쓰레기를 배치함으로써 현실감을 더했다. 또한 CG를 최대한 배제하고 아날로그 제작 방식을 통한 디테일을 중시하는 웨스 엔더슨 감독답게, 구름 하나하나 강물 하나하나까지 만들었다. 화면 속 구름은 솜으로, 강물은 샌드위치 포장지로 된 컨테이어 벨트로 만들었다. 또한 작품에 기괴함과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기 위해,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에서 사용하는 기법인 ‘On Ones (1초당 24프레임)‘가 아닌 ‘One twos (2초당 24프레임)’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
누가 봐도 웨스 엔더슨의 영화임을 알 수 있게 만드는 그의 대표적 특징, 대칭적 구도와 균형. 속도의 조절을 통해 만들어진, 정적인 표현과 동적인 표현의 오고 감. 적절한 유머와 만화를 보는 듯한 이펙트와 편집은 스톱모션의 매력을 잘 살렸으며, 작품의 재미를 극대화했다.
‘저항의 미학’
일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만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들개>나 <7인의 사무라이>를 오마주한 구도가 나오는가 하면, 일본의 다양한 문화가 아름답게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일본어가 작품 내내 등장하기도 하는 등 작품은 일본과 너무나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작품은 개봉 직후,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동양(일본)에 대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갖고 있다고 논란이 되었다. 그 이유는 작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스테이시’ 일본 사회의 비랍리적인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백인 구원자의 서사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어가 자막 없이 등장한 것도 관객의 상상의 자유와 전체적 스토리의 집중을 위해서라는 감독의 설명과는 다르게, 인종차별 논란의 불씨를 지피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과 별개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만들어낸 훌륭한 비주얼과 믿고 듣는 음악은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했다. 또한 개와 인간의 관계를 통해 파시즘과 환경파괴에 대한 경계, 다수에 대한 소수의 저항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어린 소년과 그의 개가 만든 우정, 그리고 그들이 함께하는 투쟁과 이야기는 너무나 작고 절실하기에 더욱 아름다웠다.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Guillermo Del Toro's Pinocchio >
- 영화: 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 마크 구스타프슨
- 출연진: 이완 맥그리거, 데이비드 브래들리, 그레고리 맨 外
‘가족은 만들어지는 것’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한 노인이 거대한 소나무를 깎고 있다. 노인의 이름은 ‘제페토 (데이비드 브래들리 分)’. 노인이 만든 것은 비행기 폭격으로 죽은 자신의 아들을 닮은 목각 인형, ‘피노키오 (그레고리 만 分)’였다. 피노키오를 만든 그날 밤, 제페토가 잠든 사이 숲 속의 ‘푸른 요정 (틸다 스윈튼 分)’이 피노키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고, 피노키오는 생명을 갖게 된다. 살아난 피노키오를 본 제페토는 충격을 받으나 이내 피노키오를 자신의 아들처럼 키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본 유랑극단의 ‘볼페 백작 (크리스토프 발츠 分)’은 피노키오를 이용하기 위해 데려간다. 하지만 피노키오를 다시 찾은 제페토와 볼페 백작. 그들이 싸우다가 피노키오는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는다.
그러나 불사의 몸이었던 그는 이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다. 볼페 백작의 부당한 계약서의 내용을 본 피노키오는 제페토를 위해 극단에서 일하게 된다. 점점 인기를 얻게 된 피노키오는 어느덧 총통 ‘베니토 무솔리니 (톰 케니 分)’를 위해 공연하게 되는데, 피노키오는 공연을 일부로 망친다. 결국 무솔리니의 경호원에 총에 맞아 죽은 피노키오. 이번에도 역시 피노키오는 이승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피노키오는 불사의 몸의 활용가치를 인정받아 군사훈련을 하게 되는데, 훈련 중 공습경보가 울린다. 그러나 공습에 살아남은 피노키오의 앞에 볼페 백작이 나타나고 피노키오를 죽이려고 한다. 버로 그 순간, 피노키오의 친구가 된 볼페 백작의 원숭이 ‘스파차투라 (케이트 블란쳇 分)’이 그를 구해준다.
하지만 그들은 바다로 떨어지고, 바다괴물의 뱃속에 들어온다. 거기서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 제페토와 세바스티안(이완 맥그리거 分)과 재회한다. 그리고 그들은 괴물이 재채기하는 틈에 다행히 탈출하지만, 그 순간 기뢰가 터져 모두가 위험에 빠지고 피노키오는 죽게 된다. 한시가 급한 피노키오는 제페토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생을 포기하고, 영속의 모래시계를 깨버린다. 결국, 목숨이 하나 남은 평범한 목재인형이 된 피노키오. 그는 제페토와 스파자투라, 세바스티안 모두를 구하고 목숨을 다한다.
그 모습을 본 세바스타안은 피노키오를 올바른 길로 이끌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냐며, 그를 돌려달라고 푸른 요정에게 애원한다. 푸른 요정은 그의 말을 인정하고, 세바스티안의 소원을 들어주게 되며 피노키오는 다시 살아난다. 제페토는 피노키오에게 사랑한다고, 네 모습 그대로 살아달라고, 피노키오는 제페토에게 아버지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제페토, 피노키오, 세바스티안, 스파자투라는 한 집에서 서로가 생명을 다할 때까지 살아가며 영화는 끝난다.
‘나무와 동화 ’
앞서 본 작품의 감독들 역시 자신만의 특별한 세계와 개성이 있지만, ‘기예르모 델토로’ 역시 잔혹하고 기괴하지만, 또 아름답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어찌 보면 ‘팀 버튼’ 감독과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필자는 기예르모 델토로의 세계가 팀 버튼 감독보다도 진중하고, 잔혹하며 무겁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화 내내 깔려있는 찝찝하고 불쾌한, 하지만 어딘가 따뜻한 분위기. 이번 작품에서 이 분위기를 만든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캐릭터의 질감이다. 작품의 주인공 피노키오만을 두고 보더라도 정말 나무로 만든듯한 질감이 가히 예술이다. 목각인형 특유의 질감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그 거칠고 불완전한 질감은 피노키오의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미숙하고 순수한 자아와 거기서 오는 불안감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스톱모션 특유의 연출을 통해 물리적 질감이 잘 드러났다. 또한 수많은 크리쳐 디자인을 만들어온 기예르모 델 토로답게 ‘푸른 요정’의 날개나 ‘장의사 토끼들’의 털, ‘바다 괴물’의 피부 등은 사실적이진 않지만, 기괴하고 신비로운 느낌을 잘 전달했다.
피노키오의 움직임과 카메라 움직임 역시 스톱모션의 특징과 어울러져 특유의 느낌을 만들었다. 목각인형이라는 피노키오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애니메이션 기법은 단연 스톱모션일 것이다. 사람과 다르게 유연성이 없는 딱딱한 나무처럼 걸어다니는 피노키오의 움직임은 스톱모션만이 주는 정지된 느낌과 맞물려 절묘하게 작용한다. 카메라 움직임 역시 피노키오를 위주로 다이나믹하게 따라가거나, 공습이나 바다괴물 장면처럼 위험한 상황에서는 정말 미세하게 흔들리면서 실사 영화를 보는 듯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이를 통해 작품과 캐릭터에 대한 몰입이 더욱 쉬웠다. 이 외에도, 전쟁 중인 이탈리아 마을의 모습이나 바다, 숲 등의 배경을 충실히 구현해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의 느낌을 살렸다.‘세상 끝에서 나와’
기예르모 델토로 감독은 그의 작품 <악마의 등뼈>나 <판의 미로>,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같이 전쟁이나 냉전시대의 혼란함에 판타지적 요소를 가미하곤 했다. 이번 작품 역시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전쟁 상황을 바탕으로 동화 피노키오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이다. 피노키오는 작품 내내 제페토에게 그의 죽은 아들 ‘카를로’의 대체재 느낌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고 피노키오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면서, 피노키오는 카를로가 아닌 제페토의 아들 피노키오 그 자체가 된다.
전쟁이나 인신매매, 죽음 등 비도덕적이고 고통스러워서 인간이 무력감을 느끼는 상황 속에서 피노키오뿐 아니라, 제페토 역시 성장한 것이다. 순수하지만 따뜻한 피노키오. 이제 필자도 어느덧 자라, 아이가 아닌 어른의 시점에서 피노키오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피노키오를 바라보니,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함을 가진 그가 부러워졌다. 부디 피노키오는 가슴 속 그것을 영원히 잃지 않기를 바란다.
<코렐라인: 비밀의 문 Coraline>
- 영화: 코렐라인: 비밀의 문
- 감독: 헨리 셀릭
- 출연진: 다코타 패닝. 테리 해처, 존 호지맨 外
‘꿈 속으로, 꿈 속에서’
새 집으로 이사온 ‘코렐라인 (타코타 패닝 分)’ 그녀에게 새 집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상한 이웃들에 찝찝한 풍경, 거기에 계속되는 부모님의 무관심까지. 심심한 코렐라인은 수맥 찾기 놀이를 하다 검은 고양이와 이웃집에 사는 ‘와이비 (로버트 베일리 주니어 分)’를 만나게 된다. 집에 돌아온 코렐라인은 집을 돌아다니다 막혀있는 작은 문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날 밤 어떤 쥐가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게 되고 코렐라인은 따라가게 된다. 코렐라인이 통로를 지나 들어간 곳은 ‘다른 세계’였다. 그곳에는 단추 눈을 가진 ‘다른 엄마 (태리 해처 分)’와 ‘다른 아빠 (존 호지맨 分)’가 있었고, 그들은 너무나 친절했다. 그렇게 다른 세계에 빠져버린 코렐라인은 그곳과 현실 세계를 왔다갔다하게 된다. 그러나 코렐라인에게 그 세계는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웃들과 고양이. 하지만 코렐라인은 이를 무시한다.
평소처럼 다른 세계에 있던 코렐라인. ‘다른 엄마’는 코렐라인에게 이 곳에서 살고 싶다면 눈에 단추를 달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에 두려움을 느낀 코렐라인은 얼른 잠을 자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 하지만, 눈을 뜨니 여전히 다른 세계였다. ‘다른 아빠’의 말실수로 코렐라인은 다른 세계가 ‘다른 엄마’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녀가 마녀라는 것을 알게된다. 결국 코렐라인은 탈출하려 하나, 다른 엄마가 이를 막아서고 코렐라인이 계속해서 반항하자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며 코렐라인을 거울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그 곳에서 눈과 생명을 빼앗긴 3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다른 와이비의 도움으로 겨우 현실 세계로 돌아온 코렐라인. 하지만 코렐라인의 부모님은 마녀에게 잡혀간 상태였다.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다시 다른 세계로 돌아간 코렐라인. 그녀는 자신의 눈과 부모님을 걸고, 마녀와 내기를 하게 된다. 세 개의 눈을 찾아야 하는 코렐라인. 그녀는 마녀의 방해에도 세 개의 눈을 모두 찾아낸다. 그러나 내기에 졌지만 마녀는 인정하지 않았고, 코렐라인은 마녀가 현실 세계로 돌아가는 문을 열게 유도해, 부모님과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를 오갈 수 있는 열쇠를 찾기 위해 현실세계로 찾아온 마녀의 손. 코렐라인은 다시 한번 위기에 빠지지만 와이비의 도움으로 마녀의 손을 무찌른다. 결국, 평화를 되찾은 그들. 코렐라인과 와이비 그리고 부모님과 이웃들은 함께 파티를 하고 정원을 가꾸며 영화는 끝난다.
‘이곳에만 있는 너’
‘헨리 셀릭’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물론, 위에서 만나본 3명의 감독에 비해서는 다소 생소한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가히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는 위대한 애니메이터이다.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과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의 연출을 맡기도 했으며, <코렐라인: 비밀의 숲> 말고도 2022년, 넷플릭스에 공개된 <웬델 & 와일드>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실사영화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오고가며 작품 활동을 하던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오로지 스톱모션 외길인생을 살아온 헨리 셀릭. 그가 이번 작품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요소들에 대해 알아보자.
해당 작품 역시 상당한 정성과 노력을 통해 만들어졌다. ‘다른 세계’의 환상적인 모습을 위해 많은 풀잎들을 모두 인조털로 만들거나 하나하나 색을 칠해 꾸몄으며, 40 그루의 나무를 직접 만들었다. 또한, 주인공 코렐라인 인형은 28개가 제작되었는데, 10명의 스태프가 3, 4개월의 시간 동안 1개의 인형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을 표현하기 위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최초로 합성 모발을 사용하는가 하면, 55km가 넘는 촬영장소에 52개의 무대를 만들고 그 위에 130개가 넘는 세트장을 짓는 등 대규모 촬영 구역을 만들었다.
영화 속 장소를 보면, 같은 장소라도 현실 세계와 다른 세계가 미묘한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러한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각각 다른 거대한 규모의 세트를 만들었다. 특히 작품 속, ‘보빈스키 (이완 멕쉐인 分)’의 서커스와 ‘미스 스핑크 (제니퍼 손더스’), ‘미스 포서블 (돈 프렌치)’의 뮤지컬 공연 장면을 완성시키기 위해 300명이 넘는 스텝들이 일주일간 작업하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는 74초 정도만 등장하지만 말이다. 이번 영화도 앞서 소개한 <유령신부>와 마찬가지로 두 대조적 세계를 색감을 통해 강조한다. 현실 세계와 그곳의 인물을 회색과 무채색으로, 다른 세계와 그곳의 인물을 화려한 색으로 묘사한 것이다.
또한 다른 세계에는 따뜻한 조명을 사용해 그 공간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코렐라인이 다른 세계의 숨은 진실을 알아갈수록 그곳의 전체적인 색은 안개가 낀 것처럼 탁해진다. 작품을 촬영할 때 사용된 카메라는 실사 영화에서 쓰이는 카메라였는데, 이로 인해 실사영화와 유사한 구도로 촬영이 가능했으며 극적이고 다양한 촬영기법들이 가능했다. 특히 작품 속 카메라 앵글은 어떤 상황에서, 왜곡되고 비대칭적으로 사용되어 다소 과장되고 극적인 효과를 준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와 비교되는 다른 세계의 기괴함과 모순을 드러내기 위해, 화면을 삐딱하게 잡거나, 인물의 신체를 갑자기 꺾어버리는 등 다양한 연출을 시도했다.
‘나와 우리를 찾아서’
영화는 주인공 ‘코렐라인’이 마녀로 대표되는 두려움에 맞서 싸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그녀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게 된다. 또한 환상과 현실, 거짓과 진실의 차이를 느끼며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내면에 숨은 가치를 발견한다. 마지막에 가족과 친구, 이웃들과 소박하게 파티를 하는 코렐라인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어쩌면 그녀가 사소하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녀에게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다.
혼자 있는 타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고, 사랑하는 이들을 불러모아 함께 식사를 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바라왔던 순간들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만 성장하고 진정한 나만을 찾으려고만 애쓰는 것은 어쩌면 생각보다 큰 가치를 가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나를 찾았다면, 이제는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자. 그들이 있어야 우리가, 우리가 있어야 내가 되는 것이다.
동화와 스톱모션
특유의 질감과 분위기로 특별한 느낌을 주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을 보다보면, 어른이 된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어보는 듯한 느낌이 난다. 어른의 생각과 어른의 느낌으로 동화를 보자, 단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생각과 기분이 드는 것처럼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도 그러하다. 수많은 노력의 날들이 만들어낸 두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한 편. 그 한 편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따뜻함은 동화처럼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어른들을 위한 동화와 같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4편에 대해 알아보았다. 처음과 마지막에 소개한 영화 <유령신부>와 <코렐라인: 비밀의 문>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면 ‘온더플로어’의 팟캐스트 ‘펀치 드렁크 무비’를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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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니, 태어난 이상 너희들은 다 '가여운 것들'
<가여운 것들>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벨라 벡스터(엠마 스톤)이다. 한 여자가 벼랑 끝에 서 있다. 아니 배 위에 있다. 삶의 희망을 잃은 여자. 그 배 아래로 뛰어내린다. 여자를 다시 살린 건 독거노인 과학자 갓윈 백스터(윌렘 대포)다. 얼굴이 기괴한 과학자 갓윈. 외모를 보고 성격을 판단하면 안 된다. 하지만 갓윈 박사는 어림없다. 성격마저 괴팍한 갓윈. 그에게 같이 사는 여자가 있다고 하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그건 진실이다. 다시 태어난 여자 벨라 벡스터는 뭔가 특별하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벨라. 벨라는 마치 남자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건 죽어가는 여자의 뇌에 그녀가 임신 중이었던 아이의 뇌를 이식해서 살려냈기 때문이다. 벨라는 아이의 뇌로 다시 태어났다. 이 말은 즉슨 벨라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의미와 통한다. 이런 벨라에게 남자 한 명이 접근한다. 남자는 갓윈의 제자 맥스(레미 유세프)다. 벨라를 짝사랑하는 남자 맥스. 소심하게 고백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바로 소심하게 청혼을 건넸던 벨라와 바람둥이 변호사 던컨(마크 러팔로)이 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이었다. 눈 뜨고 코 베인 맥스. 카메라는 벨라와 함께 리스본 찍고 여기저기 모험담을 펼친다.
요르고스 란티모스는 기괴함이라는 정서에 있어 도가 튼 아티스트다. 스타일적으로 '뭔가 있어 보이기 위해'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 일반적으로 '란티모스'하면 떠오르는 장면부터 이야기해 보자. 굳이 마이너 한 예술영화의 세계까지 파지 않더라도 <킬링 디어>에서 배리 키오건이 파스타를 먹는 장면 정도는 오며 가며 사람들이 봤을 클립이다. 키오건이 훌륭한 연기자라는 사실에는 여지가 없다. 연기를 잘하니까 임팩트를 남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할리우드를 주의 깊게 본 영화팬들이라면 '란티모스에게 이 장면만 있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괴함의 정점은 란티모스가 국제적으로 처음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영화 <송곳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송곳니>를 보면 신체 노출부터 시작해서 폭력묘사까지 이 세상 기괴함은 다 가져다 놨다. 갑자기 이 감독에서 봤던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이 더 떠오른다. <더 랍스터>에서 갑자기 총을 쏴서 직원을 죽이는 장면, <킬링 디어>에서 초반 심장 수술 장면, 니콜 키드먼이 맡은 안나가 길쭉하게 뻗어있는 모습이 그렇다. 이렇게 시각적으로 임팩트를 주는 방법을 아는 감독이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면에 깔려있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파스타를 징그럽게 먹는 것이나 <송곳니>에서의 가족에 대한 비유 같은 것들은 일상적인 것에서 조금 비틀어서 '인위적인 것'을 만든다는 것에 있다. 우리가 쉽게 다들 알고 있는 '불쾌한 골짜기'를 영화의 동력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최고작이라고 볼 수 있는 <킬링 디어>와 <더 랍스터>에서 영화 이야기의 형식과도 이어진다. <킬링 디어>에서 영화는 어떤 대상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듯하다. 그냥 알고도 당하라는, 전지적인 목적을 가지고 인물들과 관객들을 괴롭힌다. 실제로 카메라는 마치 누군가를 위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부감 숏(천장에서 바닥으로) 찍는 것 같고 사운드는 관객을 내내 불편하게 만든다. 그냥 일반적인 카메라와 사운드로도 이 영화가 가진 인간의 굴레를 묘사할 수 있는데 내내 이야기를 인위적으로 비튼다. <더 랍스터>도 사랑에 실패하면 동물이 된다는 설정은 곧 '사랑이 억지로 되는 일인가'라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이것 역시 인위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이것은 영화가 인간이 어떻게 사랑에 빠질까?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이다. '억지로' '근거를 들어서'사랑에 빠지지 않는 인간의 단면을 잘라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란티모스의 필모그래피를 종합해 보면 그는 인위적이라는 속성을 시각적으로, 또 플롯의 핵심으로, 장면 연출로 소화하는 아티스트라고 볼 수 있다. 이 <가여운 것들>은 그 모든 것들이 고농도로 함유되어 있는 영화다.
가령 이 영화의 미술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이 영화의 세트장과 조명, 의상 같은 시각적 요소들은 란티모스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들이다. 영화는 란티모스가 구축한 거푸집 아래에 이야기를 전개한다. 영화의 핵심을 전달하기 위해 응당 당연하게 골라야만 했던 선택지다. 그럼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무엇일까 따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글쓴이는 이 영화가 다루고 싶어 하는 핵심을 '시스템'이라고 본다. 영화는 벨라와 그녀를 둘러싼 세상을 다룬 것이다. 기득권이 지배하는 세상을 다루고 싶어 하는 영화가 그 안의 세상을 통제하지 못하면 나사가 빠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반대측면에서 질서를 깨는 인물들의 모습을 스크린 안으로 갖고 오기에도 용이할 것이다. 이 인위성에 대한 부분은 배우들이 연기하는 방식과도 이어진다. 글쓴이는 영화를 보면서 후반부를 제외하고 다들 인형의 집처럼 뚝딱거린다고 느꼈다. 이것은 전적으로 의도가 있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세상을 비판하는데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일상적인 문법으로 연기한다면 그 고지식함과 완고함이 체감이 안 될 수도 있다. 세계에 대한 인물의 대응을 자연스러움으로 표현해서 이질감을 키우는 선택지를 둔 것이다. 공간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가 기괴한 동화로 연출한 이유가 분명하다. 왜 이 영화는 일종의 성에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을까? 영화가 이 영화의 세계를 좌지우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연기의 톤으로 이 영화의 세계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보여준 것처럼 공간과 미술로도 이 영화의 핵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렇게 '세상을 움직이는 절대자의 속성이 전적으로 드러난다'는 측면에서 '뇌'가 직접적으로 등장하고, 섹스신이 적나라한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실존을 드러내는 두 소재라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굳이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인위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핵심에 닿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뇌와 섹스라는 소재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큰 차이가 느껴지는 부분이 아니다. 왜? '뇌'를 이식한 인간의 실험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새로운 생명체다. 매춘 그러니까 성관계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은 역시 생명체다. 마찬가지로 갓윈 박사의 실험체는 그 나름의 시스템을 만드는데 일조한다. 새로운 생명의 잉태는 내가 어떤 세상에 태어날지 고를 수 없다는 점에서 시스템에 일조하는 역할이 될 수도 있다. 두 소재가 이야기의 맥락에서 공통점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벨라는 두 인위적인 행위를 직접 겪는 개체이기도 하다. 영화도 이 구분선을 일부러 흐린 것이다.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시스템에 대해 표현한 부분이 보인다. 이 영화의 사운드 중 몇 음악은 거의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시그니처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광각렌즈를 활용한 촬영방식도 이 영화의 기괴하고 독특한 에너지만을 강조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시스템에 대항하는 영화가 기존의 영화 만들기 관습에 편승해서 제작된다면 뭔가 모순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촬영이나 사운드보다 이 영화에서 더 중요하게 시스템을 강조하는 것은 편집인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섹스신이 들어가는 방식은 뭔가 이상하다. 구체적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갈 때 맥스가 "나는 벨라가 무사하길 바란다"라고 말하는 장면 바로 다음으로 덩컨과 벨라의 성관계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영화 나름대로 블랙코미디를 구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다른 장면들과 비교했을 때 위 두 가지 사운드와 촬영을 활용한 것과 공통점이 있다고 봤다. 전형적인 연출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 전개에서 영화는 편집을 통해 섹스신을 느닷없이 보여주거나, "뜨거운 뜀박질"이 대사에 전면으로 나오더라도 보여주지 않는다. 기억나는 장면이 벨라가 어디 잠깐 나갔다가 들어온 후의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벨라가 덩컨에게 "우리 뜨거운 뜀박질을 해요!"라고 말한다. 그럼 이 <가여운 것들>이 이전에 수도 없는 섹스신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번에도 나오지 않을까? 싶지만 영화는 벨라가 신체를 노출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이 부분을 생략해 버린다(편집에 대한 부분은 아니지만 이후 벨라가 매춘을 하는 장면에서도 벨라가 노숙자에게 "갑자기 들어가면 안 된다"식의 대사를 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 이것은 영화가 이야기의 리듬을 섹스신을 활용해 변화를 준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기존 영화들이 유지해 온 흐름을 사운드와 편집, 촬영으로 부정한 것이다.
이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거부하는 형태는 곧 영화의 플롯과도 이어진다. 영화는 일부러 두 명의 흑인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왜? 이야기에서 벨라의 내적 성장을 이끄는 인물들이기도 하지만 이 인물들이 보여주는 행보도 영화에서 어떤 것들을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첫째. 흑인 남자는 옆에 앉아있는 백인 아줌마에게 "섹스를 안 한 지 20년 됐다니 딱하네요"라고 대놓고 면박을 준다. 글쓴이는 이 대사가 가스라이팅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후 이 흑인 남성 캐릭터가 하는 대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코멘트를 보고 이 영화가 다루고 싶어 하는 틀이 넓다는 걸 느꼈다. 영화가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다루며 정체성에 대해 다루지만 사실 이 틀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허상인가를 보여주는 건지를 암시하는 설정이라고 봤다. 이것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서 인물과 인물이 영화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 와도 관련이 있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건 '니체'에 대한 짧은 지식이었다. 니체가 인간의 몸을 조명했고 영화가 섹스를 다룸에도 이유가 있다. 하지만 가장 궁극적인 이유는 벨라 / 세상을 구분 짓는 구분선이 니체의 개체론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구성하는 데 있어 정말 중요한 건 그 세계를 이루는 요소들이 내가 알고 있는 니체의 개체론이다. '신은 죽었다'라는 문장이 여기서 근거하지 않나?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이 <가여운 것들>이 다루는 흑인 남성 캐릭터는 사실상 벨라의 세계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타락에 대해 비판하면서 '섹스 20년 동안 못한 여성을 비웃는'것이 인간이고 이 세상인 것이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흑인 여성 캐릭터도 이 니체의 사상 하에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흑인 여성 캐릭터는 벨라에게 공감한다. 바로 정서적인 유대를 나누는 듯하다. 하지만 이 인물 역시 벨라에게 성적 행동을 한다. 단순히 이 흑인 여성 캐릭터가 무슨 목적으로 벨라에게 접근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덩컨이나 매춘 노숙자들도 벨라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흑인 여성과 노숙자는 동격에 놓이는 듯하고, 이 흑인 여성 캐릭터 역시 이 영화의 세상을 이룬다고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흑인 남성 캐릭터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거시적인 개념을 건드렸다면 반대로 여성 캐릭터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유대감과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다룬 것이다. 이렇게 영화는 개체를 가지고 사회 시스템에 대해 다루는 과감한 시도를 보여줬다.
영화가 몇 소재를 인위성이라는 모티브와 함께 다뤘다는 것은 영화의 맥락과도 이어진다. 이 영화는 인위적으로 벨라의 분신을 만들어 여성 서사로서의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다. 이 영화에는 벨라의 분신들이 여럿 등장한다. 동물과 동물을 이어 붙인 형태에 대한 부분이다. 개랑 닭을 이어 붙인 모습이나, 학과 얼룩말이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여러 장면에 등장했다. 이것은 벨라부터가 여성의 몸에 남자의 뇌를 결합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런 분신들 중에 가장 중요한 건 펠리시티(마가렛 퀄리)다. 이 펠리시티가 이야기에서 큰 역할을 한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이 펠리시티는 영화의 핵심인 '시스템'을 보여주기 위해 중요하게 작동한다. 우선 돌연변이 동물들이나 펠리시티나 누가 만들었을까? 의 측면에서 그 근원을 따져야 한다. 이들을 만든 인물은 아마 갓윈으로 보인다. 갓윈은 영화 안에서 대놓고 '창조주'라 불리며 이 시스템을 만든 인물로 묘사된다. 남성 캐릭터가 세계관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었는데 그 생명체가 주인공이다라는 점은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영화는 여성 영화이기도 하다. 벨라는 세상이 규정한 여성의 정의를 온몸으로 부수며 질주하는 캐릭터라는 점은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가여운 것들>이 인위성을 여성 영화로서의 맥락을 갖추기 위해서만 사용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생명체를 만든 인물은 갓윈이고 남성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벨라는'상위 계층이 지켜야 할 윤리'에 전면으로 부딪히는 인물이다. 그럼 여성 해방 서사로 읽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성매매업자와 펠리시티, 그 옆의 하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매매업자는 여성이다. 이 캐릭터는 벨라에게 "누구와 성매매를 할지 넌 고를 수 없다"라고 말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펠리시티와 하녀는 벨라에게 "몸 파는 여자"라며 극언을 입 밖에 낸다. 심지어 하녀는 벨라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성 안의 사람들에게 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이 둘은 여성의 주체성을 방해하는 인물인 것이다. 여성의 자유를 방해하는 3의 시선을 공고히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영화를 연출하는 사람이다. 여성을 둘러싼 고압적인 시스템을 묘사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런 요소들을 영화에 넣지 않을 것 같다.
이 페미니즘 영화의 틀을 반쯤 탈피한 것은 엔딩에서 더 크게 강조된다. 엔딩을 보면 블레싱턴 장군의 몸에 동물의 뇌가 이식된다. 뭐 여성에게 고압적이었던 인물이 응당 맞이해야 할 벌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겠으나 글쓴이는 살짝 다르게 봤다. 사실상 블레싱턴 장군과 벨라는 동격이 된 것이다. 벨라가 빅토리아일 때의 이야기를 영화가 보여주지 않아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 수 없어 벨라가 훨-씬 아까운 사람이다. 하지만 이 자체만을 보면 '다른 개체의 뇌'가 이식됐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여기에 더 나아가 벨라가 유사 아버지였던 갓윈의 직업을 물려받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벨라는 새로운 생명체를 재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갓윈처럼 세계의 기득권이 될 수 있다. 또 다른 버전의 <가여운 것들>이 블레싱턴을 주인공 삼아 만들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영화가 단순히 1차원적인 페미니즘 영화라고 볼 수 있을까? 글쓴이는 아니라고 본다. 영화가 남근주의적인 시대상만 조롱하는 것이 아닌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기득권에 서는 것'이 얼마나 따분한 짓인지를 강조한 것이다. 이렇게 두 종류의 인간(남/녀)의 구분선을 흐린 선택은 벨라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을 따져봐도 다시 읽을 수 있는 맥락이다. 벨라는 자신의 몸을 팔았던 것, 그러니까 욕망에 직설적이었던 사실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인물에서 더 나아가 영화도 이런 벨라를 부정하지 않는다. 벨라가 빅토리아일 때 어떤 인물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연출부터 빅토리아보다 벨라의 편을 든 것이다. 이 연출에는 여성의 몸에 남성의 뇌가 이식된다 한들 이 사회를 이루는 시스템은 여전할 거라는 조소가 담겨있는 듯하다. 이는 가족이라는 소재로 당시 그리스의 기득권을 비판한 <송곳니>에서도 느껴졌던 서늘한 조롱이었고, '란티모스의 영화다!'라고 느낀 부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영화에 단점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친절하지 않다는 점이다. 본인이 쓴 모든 글의 내용에 대해 '영화는 그런 게 아냐!'라고 비판하는 평자가 있다면 그 나름대로 맞는 말이다. 무슨 말이냐고? 홍상수의 영화들은 이 <가여운 것들>과 저 멀리 반대편에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자연스러운 것'을 우선순위로 두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죄다 인위적인 것투성이다. 그리고 영화가 전면에 성적인 소재를 등장시키고 있어서 어떤 관점에 있어서는 '여성해방이 곧 모험이고 섹스냐'라는 비판도 합리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원작을 안 읽어서 이 문장에 확신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후반부의 각색에 대해서는 원작 팬들이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이 광범위한 이야기를 펼친 것에 비해 후반부 문제를 해결하는 규모가 좀 작은 느낌이 있다.
하지만 글쓴이는 재밌었다. 이렇게 다층적이면서 선명하게 주제를 강조한 란티모스의 역량은 현재 최고의 폼을 구가하는 예술가 다웠다. 휘황찬란한 미장센에 눈이 즐겁고 기괴한 사운드에 청각적인 쾌감까지 느끼는데 이야기가 깊기까지 하니 보는 동안 '이 아침에 극장에 오길 잘했다' 싶었다. <추락의 해부>가 청각과 시각이라는 인지체계를 활용한 각본으로 우리에게 재미를 주고 <오펜하이머>에서 핵폭탄을 플롯처럼 만든 것 그리고 <바튼 아카데미>가 이야기를 고전적으로 만든 것처럼 연출과 이야기가 딱 맞아떨어지는 섹시한 영화가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각색상은 <오펜하이머> 여우주연은 <플라워 킬링 문>의 릴리 글래드스턴, 작품상은 <오펜하이머>가 받을 것 같다. 아마 상 받아도 미술상이나 의상상이 가능성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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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부산중앙고 농구부 이야기
- 3사 멀티플렉스 중 한 곳에서 회원 시사로 미리 보고 왔습니다.시사회 티켓을 얻어 본 것을 감안해서 생각해도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재밌습니다!
아무래도 옆나라농놀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은 듭니다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에 스포츠(농구)의 결합은 굉장했습니다.
예고편을 봤을 때만해도 사투리 연기가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보다 사투리 연기 어색한 부분 없었고 몰입하는데 방해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영화는 안재홍 배우가 5할 이상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언뜻 <족구왕> 때가 생각나기도 했죠.
처음에는 어리바리한 공익근무요원에 불과했던 '강양현'이 어느새 꼴찌팀을 XX까지 올리는 농구코치로 성장하는 모습을 함께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또 안재홍 배우의 현실적인 연기가 장면들을 더 잘 만들어줬다고도 생각하구요^^ 조연 배우분들의 연기와 티키타카들도 너무 좋았습니다.
실제 농구부에 관한 이야기이니 만큼 농구 경기 장면 연출에 신경을 썼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실제 농구 경기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경기씬들이 나올 때마다 과몰입해서 볼 정도였으니까요.
캐스팅에도 신장과 체격과 같은 것을 다 고려했다고 하는데ㅠ마지막에 실제 사진과 영화 장면을 비교해 봤을 때 진짜 비슷하게 보이더라고요.
싱크로율 어마어마했어요, 특히 안재홍 배우가.. ㅋㅋㅋㅋㅋ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부산 중앙고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리바운드,
4월 5일 개봉예정이니 여유가 되면 한번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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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깡패? 때려잡으려고 '무운도장' 장풍? 단기속성 마스터 클래스 등록한 경찰? - 라떼극장 EP.12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2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아라한 장풍대작전"를 보며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보자
허약체질 경찰 상환 강도를 잡다 우연히?? 도착한 '무운도장'
그곳에서 공중부양과 장풍을 일삼는 '7선'을 만나고
도에 눈을 뜨게 되는데...
이 영화속 장면에 영감을 받아 만든 방송 프로그램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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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언프레임드> 티저 예고편
최희서 감독의 <반디>는 엄마와 함께 사는 소녀 반디의 사연을 담았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보듬는 사려 깊은 태도가 돋보인다. 손석구 감독의 <재방송>은 이모와 조카의 짧은 동행을 따라간다. 함부로 위로하는 대신 무심한 척 상대의 마음을 쓰다듬는 원숙함이 신뢰를 더한다. 박정민 감독의 <반장선거>는 초등학교 반장선거를 소재로 마치 범죄영화처럼 흥미진진한 전개를 펼친다. 아이를 동심의 대상으로 포장하지 않는 시선이 흥미롭다. 이제훈 감독의 <블루해피니스>는 취업준비생이 주식에 얽히면서 일어난 일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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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너의 조각들> 공식 예고편
당신의 삶이 전부 거짓이라면? 《빅 리틀 라이즈》와 《The Undoing》의 프로듀서들이 다시 한번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시리즈를 선보인다. 토니 콜렛과 벨라 히스코트 주연. 카린 슬로터의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