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6-07 16:11:40
지나온 과정에서 지나치지 않은 감정 속을 유영하다
영화 <매스> 리뷰
테이블에서 펼쳐지는 대화는 네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공간 자체의 긴장감과 대화가 동시에 펼쳐진다. 비극적인 사건 이후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에서 마주하는 두 부모의 조우 속,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책으로도 꼭 만나고 싶은 영화, 매스를 소개한다.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가 대화를 나누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다. 사건이 일어난 이유에 대한 이해를 위해 이야기를 듣지만 폭발하는 감정을 온전히 누르기는 힘들었다.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 감정을 배제하지 않고 펼쳐지는 대화는 날카롭다고 생각했던 흐름을 유지한다. 숨 막히는 공간에서 더 숨 막히게 만드는 자리 배치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면서 약간의 변화를 만들어내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수많은 대사는 그들이 겪어 왔던 고통과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시선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건네는 따뜻한 위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 용서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던 사람의 용서는 고통에 따라 끊임없이 고통받는 이들이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고통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기에 변하지 않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이다.
네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며 보이는 표정이나 시선, 목소리를 통해 그들의 감정이 더욱 극대화된다. 대사로 표현되는 감정들이 더 이상 만질 수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어떤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먹먹하다. 가해자의 부모이기 때문에 온전한 슬픔과 그리움을 표출할 수 없었던 가해자 부모의 표정이 떠오르며 그 감정이 커진다. 용서할 대상이 불명확한 이 상태에서 모두가 용서와 화해의 과정을 거칠 수는 없겠지만 계속 대화하고 또 대화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나눠야 할 것이다.
화면이 검게 변해도 빛만큼은 사라지지 않는 모습에 영화의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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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비판 영화 추천 '다음 소희' (feat.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다음 소희
23.02.08 개봉
드라마, 15세 관람가
한국, 138분
감독: 정주리
출연: 김시은, 배두나 등
칸 영화제 국제피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소재로 하였대요
영화관 개봉했을 때부터 너무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넷플릭스에 떠서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실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들은,
특히나 이런 가슴 아픈 이야기를 소재로 하는 것들은
재미있다 재미없다 평가하기도 망설여지더라고요
영화를 영화로만 평가해야 하는데도 괜히 마음이 약해져서 ㅠㅠ
냉정하게 말해 보자면 평타는 친 것 같습니다
실화를 소재로 삼는 작품들은 어느 정도 픽션을 가미해서
재미있게 만들거나, 더 슬프고 화나게 만들던데
'다음 소희'는 딱 이야기 자체를 보여 준 느낌이었거든요
담담하고 우악스럽지 않은 영화입니다
이제 사무직 여직원이다?"
춤을 좋아하는 씩씩한 열여덟 고등학생 소희
졸업을 앞두고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면서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막을 수 있었잖아 근데 왜 보고만 있었냐고"
오랜만에 복직한 형사 유진
사건을 조사하던 중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그 자취를 쫓는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
언젠가 마주쳤던 두 사람의 이야기
우리는 모두 그 애를 만난 적이 있다
영화 <다음 소희> 줄거리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 먼저 설명 드리자면
2017년 1월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던 학생이
인터넷, 휴대전화 계약 해지를 방어하는 'SAVE팀'에서
현장 실습생으로 일하며
우울증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는데요
현장실습 표준 협약서에 적힌 근무 시간 7시간도 지켜지지 않고
160만 5천 원이라는 월급도 지켜지지 않았대요
게다가 할당된 고객 객응대 횟수를 못 채웠다는 이유로
야근하는 일이 잦았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근무 4개월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고요
다음 소희의 줄거리도 이와 똑같습니다
추가한 게 있다면 소희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죠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춤이었던 거 같아요
춤을 추다가 형사인 유진을 만나게 된 거기도 하고요
다만 소희만 유진이 춤추는 걸 지켜봤고
유진은 소희에게 관심이 1도 없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소희의 사망에 분개하는 게 개연성에 맞나? 싶긴 했어요
유진이 세상에 관심 없는 자신을 자책했기 때문이라면
또 말이 되긴 하지만요?
저는 이런 영화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에는 차별받는 사람이 너무 많고
또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고
유일한 대기업 취업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그만두지도 못하게 하고......
집은 가난해서 소희가 그만둘 수 있는 상황도 아녔고요
그렇다면 소희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나요?
(영화 내에선) 오로지 유진뿐이었습니다
유진 역시 너무 늦게 알아 버려서 타이밍을 놓쳤지만
소희의 남자 친구인 태준에게는 자신이 힘이 되어 주죠
어른이 아이에게 꼭 보호자가 돼야 한단 건 아닙니다
그저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있는 사람들에겐 큰 힘이 될 수가 있잖아요
그리고 그 시작은......
콜센터 직원에게 막말하지 않는 것부터 아닐까요
받을 때 안녕하세요~ 끊을 때 감사합니다~ 하는 것만으로도
그 분들껜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하더라고요
다음 소희가 생기지 않도록
관심과 변화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는데
이게 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김시은 님 보니하니 오디션 때부터 봤었는데 ㅋㅋㅋ
이렇게 연기 뛰어난 배우로 성장하셨을 줄은 몰랐어요!
배두나 님 연기력은 당빠 믿고 보는 거였는데
소희 역 김시은 님이 다 이끌어 주신 영화 아닌가 싶습니다
*줄거리: 4/5점
*연출: 2/5점
*영상미: 1/5점
*OST: 1/5점
*연기: 4/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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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후의 초상화 밖으로 뛰쳐나간 여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코르사주>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이름을 날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 '엘리자베트(비키 크립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플로리안 테히트마이스터)' 황제는 인형과도 같은 황후의 역할만을 요구한다. 이에 엘리자베트는 답답한 코르사주(코르셋)를 조인 채 무거운 머리를 지탱하며 그저 우아하게 앉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마흔 살이 넘어가면서부터 그녀는 아들인 '루돌프(아론 프리즈)' 황태자의 경고도 무시한 채 여행, 불륜, 마약에 손을 대며 한 명의 여성이자 개인의 삶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2022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고, 2023년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오스트리아 공식 출품작으로 선정된 영화 <코르사주>. <코르사주>는 흔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이자 ‘시씨’라는 애칭으로 잘 알려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사실 엘리자베트 황후의 이야기는 뮤지컬 '엘리자베트(엘리자벳)'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그녀는 자유분방한 소녀였지만 황후가 되었고, 전통과 관습이 지배하는 궁정 생활을 견디기 힘들어했다. 아름다운 미모로 전 유럽 사람의 찬사를 자아냈지만, 미모를 관리하던 중 거식증에 걸리는 등 온갖 고초를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도 궁전을 벗어나 자유를 갈망한 비운의 황후였다. 마치 다이애나 스펜서의 선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코르사주> 속 엘리자베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영화는 그녀의 일대기를 그려내는 대신 '마흔이 된 황후 엘리자베트’의 변화에 주목한다. 특히 그녀가 어느 시점부터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착안해 왜 그러한 선택을 내렸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렇게 영화는 황후라는 이미지에 가려진 한 인간 엘리자베트의 얼굴을 세상에 내보인다.
영화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숨을 참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목욕을 마친 그녀는 코르사주로 허리를 동여맨다. 준비를 끝내고 황제와 함께 미술관 개장 행사에 참여한 그녀는 코르사주를 지나치게 세게 묶은 나머지 돌연 정신을 잃고 기절한다. 하지만 그 후로도 그녀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해서 아름다운 인형으로 남아야 한다. 일례로 그녀의 식단은 만찬과 연회 중에도 철저한 관리 대상이다. 그녀는 남들이 먹는 화려한 음식들에 손조차 댈 수 없다. 황후에게는 황제 옆에 서서 인형처럼 웃는 것 외에 다른 일이 없으므로, 조금이라도 인형의 외관에서 벗어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흔 살 생일을 맞이하자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진다. 황실 소속 화가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자 주치의는 여성의 평균 수명이 마흔이니 더 각별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오프닝은 엘리자베트라는 역사적 인물의 삶을 빌려 영화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는지를 명확히 암시한다. 여성에게 요구되는 '아름다움'이라는 미적 기준이 개개인을 억압하고, 삶을 피폐하게 만들며, 수동적인 존재로 격하한다고 비판한다. 이전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권리가 보장되었는데도 여전히 아름다움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지고, 엘리자베트를 구속한 악습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탈코르셋’(탈코) 운동처럼도 보인다. 사회구조적 외모 강박 혹은 여성성 강요에 저항하려는 목적으로 화장이나 긴 머리, 여성적 옷차림 등 ‘사회적 여성성’을 부정하는 시도가 엘리자베트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는 한 개인으로서 엘리자베트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선택과 황후로서 엘리자베트가 자신을 옥죄는 규범을 어기며 자유를 갈망하는 모습을 같이 위치시킨다. 그녀는 코르사주를 벗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단발로 잘라버린다. 동시에 황제의 부인이라는 지위를 거부한다. 황제에게 정부를 소개하고, 영국인 승마 선수 조지 베이나 사촌 루트비히 2세와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관계를 유지한다. 한편으로는 황후로서 참석해야 할 공무를 외면한 채 자유를 즐긴다. 또 고정된 이미지로 남아야 하는 초상화 작업은 거부하지만 자유롭게 들판을 거니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동영상 촬영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한다.
황후의 삶을 포기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엘리자베트의 노력은 그녀가 갖고 있던 또 다른 가능성 때문에 더 인상적이다. 그녀는 우울증에 시달린 자기 경험을 투사하며 정신병 치료와 정신병원 시설 개선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림을 그리는 예술적인 면모도 지녔고,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발칸반도 진출과 관련해 전황을 판단할 줄 아는 식견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만약 그녀가 미모를 가꾸는 데 열중해야 했던 시간과 노력을 다른 데에 투자했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영화의 지향점을 생각하면 꽤 의미심장한 대목이 눈에 들어온다. 영화는 황실의 모습을 비추면서도 화려한 궁전 내부를 기대보다 자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각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칙칙하고 어두운 통로들을 더 자주 비춘다. 마치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실제로는 생기가 없는 엘리자베트의 외관과 내면을 한 공간에 담기라도 한 듯이. 또 그렇기에 <코르사주>가 완성한 황후 엘리자베트의 새로운 초상도 인상적이다. 황후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채 바닷속에 몸을 던져 자유를 얻는, 비극적이면서도 엄청난 해방감을 선사하는 결말의 순간에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숨 쉬고 있는 엘리자베트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미인과 황후라는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엘리자베트의 변화를 <코르사주>가 과연 적절히 전달하는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엘리자베트라는 실존 인물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만 부각해 원하는 인물상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마리 크로이쳐 감독은 "영화적 내러티브로 전환하면서 내용과 형식적으로 많은 자유를 부여했다"면서 "이야기하거나 묘사하는 것에 있어 모든 역사적 ‘실수’는 모두 예술적 결정이었다. 나는 멋지고 깔끔한 전기 영화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코르사주>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 또한 조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선택은 그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황후라는 지위가 얼마나 부담되고 무거운 자리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엘리자베트의 고난과 시련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쇠락기에 접어든 제국이었다.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제국이 붕괴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헝가리의 요구를 일부분 받아들여 1867년에 오스트리아 황제가 곧 헝가리의 군주를 겸임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군주제 체제를 구축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나름 동등한 위치로 제국을 구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황제와 황실의 존재는 붕괴 위기에 빠진 제국을 지탱할 몇 안 되는 도구 중 하나였다. 마치 엘리자베스 2세와 영국 왕실이 영국이라는 국가와 영연방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 유지한 것과 유사한 역할을 맡아야 했다. 즉, 당시 황제와 황후, 그리고 황실은 서로 다른 민족과 국가를 하나로 묶는 상징이자 실질적 제도로서 기능해야 했다. 실제로 엘리자베트의 막내딸 발레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제국의 통합을 상징하는 공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름다운 황후의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단순히 미모를 관리하는 것 이상으로 무거운 책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나 맥락을 알 수 있는 장치는 많지 않다. 특히 오스트리아 관객이 아니기에 더욱 부족하게 느껴진다. 그 결과 엘리자베트가 겪은 여러 어려움은 그저 막연하다. 짐작하고 동조할 뿐, 설득될 수가 없다. 황후로서 역할이 얼마나 막중했는지, 그녀의 역경이 얼마나 큰지, 또 그녀의 고통이 얼마나 강한지 명확히 드러날수록 해방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큰 쾌감이 느껴질 것이고, 그녀에게 자유가 의미하는 바가 더 절실히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왜 승마를 그토록 사랑했는지, 왜 그토록 손쉽게 마약에 빠져들 수박에 없었는지 그 동기와 계기도 더 잘 설명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다음처럼 이해될 여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엘리자베트가 황후로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전자를 누릴 뿐, 후자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 배경이 어떻든 간에 작중 엘리자베트가 결국 무책임한 인물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이 약한 막내딸을 굳이 새벽에 외출시켜서 감기에 걸리게 하는 것, 그토록 엄중한 상황에서 자신의 스케줄을 마음대로 거부하는 것, 평생 여행을 다니며 황후의 역할을 회피하는 것도 마냥 동정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제목인 코르셋(코르사주)이라는 상징에 담긴 <코르사주>의 메시지는 여전히 시의적절하다. 그 메시지를 현현한 엘리자베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충분히 흥미롭다. 하지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소 부적절한 것도 사실이며, 그 결과 과연 이 영화가 원하는 대로 수용되거나 해석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결국 <코르사주>는 황후와 여성 사이에서 길 잃은 엘리자베트만큼이나 모호한 인상을 남긴 채 막을 내리고 만다.
A(Acceptable, 무난함)
평범한 여성이 되고 싶었던 황후. 실존적 불안과 치기 어린 불평 사이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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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국내에서는 <나를 찾아줘> 등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미국판 <오징어 게임>에 참여합니다.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이 드라마는 리메이크가 아닌 미국을 배경으로 한 스핀오프 시리즈로 변경되어 원작의 캐릭터들이 등장할 가능성도 있으며, 2025년 말에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초 The Playlist의 로드리고 페레즈는 핀처가 2021년부터 이 스핀오프를 구상해 왔으며, 이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 시기와 맞물린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로 인해 핀처는 <차이나타운> 프리퀄 프로젝트를 뒤로 미루고 <오징어 게임>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넷플릭스는 아직 이 프로젝트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진행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페레즈에 따르면, 지난해 핀처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드라마 <유토피아>의 작가 데니스 켈리를 영입해 각본을 맡겼으나, 켈리가 여전히 참여 중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CGV아트하우스 20주년 기획전
CGV아트하우스가 20주년을 맞아 기획전을 개최한다고 합니다.
프로그램은 연도별 한국 독립영화 화제작과 국외 예술영화 화제작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파수꾼>, <잉투기>, <우리들>, <홀리 모터스>, <문라이트> 등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들은 물론이고, 관객 수 역대 1위 작품인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시네마톡의 첫 작품인 <더 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도 상영될 예정입니다.
정식 개봉을 놓쳐서 아쉬웠던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닐까요?
한스 짐머 <듄: 파트 2>, 오스카 레이스 탈락
<라이온 킹>과 <듄>으로 두 차례의 오스카를 거머쥔 바 있는 음악감독 한스 짐머의 올해 수상은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오스카 아카데미 규정에 따르면, 후속작이나 프랜차이즈 작품의 경우 기존 음악의 20% 이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듄: 파트 2>의 경우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한스 짐머는 Variety와의 인터뷰에서 상을 위해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내러티브를 전달하고 관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듄: 파트2>의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러운 결말을 향해 테마를 확장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쓰여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차기작 화려한 배우 캐스팅
<레버넌트: 죽음으로 돌아온 자>로 오스카를 수상했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차기작에 캐스팅된 화려한 배우 라인업이 화제입니다. 톰 크루즈를 필두로 산드라 휠러, 리즈 아메드, 존 굿맨, 마이클 스털버그, 제시 플레먼스 등이 출연할 예정입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냐리투의 영화는 "세상의 가장 강력한 인물이 자신이 인류의 구세주임을 입증하려고 미친 듯이 나서지만, 자신이 촉발한 재앙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전에 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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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인트 주디(2018)> 리뷰
-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값싼 허위의식이 아닐까. 세상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당위명제에 공감하지만 열의에 가득찬 행동 하나 없이 내 생각과 유사한 영화 하나를 감상한 후 이러한 부류의 사회고발 미디어가 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막연하게 소망하는 것은. 어쩌면 <세인트 주디>를 감상하고 주변인에게 권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의 혹은 오만에 불과할 지 모르며 시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을 감소시키는 가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00%는 아닐지라도 어느 부분은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내게 묻는다. 미동조차 없었으니 위선이라 칭할수조차 없는 나의 시시한 생각과 문장은 대체 무얼까. 이 기록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영화를 감상한 후 내 나름의 후기를 적을 때마다 거창한 뜻을 품었던 적은 없으며, 이 작은 리뷰가 내게 어떤 의미겠느냐고 매번 자문했느냐면 정말이지 그랬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거듭 묻게 된다. 숀 해니시 감독의 영화 <세인트 주디>를, 영화가 최초로 개봉한 2018년이 아니라 미국이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박탈한 이후의 2022년에 감상하는 것은 나에게 독특한 경험으로 재포장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 영화는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지만, 주디 우드(미셸 모나한)이 말한 "전 세계 여자 중 3분의 2는 자기 생각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탄압받는다"는 대사가 기실 여성을 둘러싼 거의 모든 정치적 상황에 있어, 근본적으로 유사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이미지 출처: MUBI영화 밖의 이야기는 멈추고, <세인트 주디>로 돌아오자. 이 영화는 캘리포니아에서 이민법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 주디 우드가 미국에 망명하고자 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아세파 아슈와리(림 루바니)를 변호하는 과정과 그 법정 공방의 결과를 그린다. 아세파는 자신의 고향에서 소녀들을 교육하였고, 이는 탈레반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아세파는 투옥당하고, 끔찍하게 고문받는다. 믿었던 가족에게 고발당했다는 것을 알게된 그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기까지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민법은 본질적으로 국가가 외지인에게 시민권을 나누어주는 것에 대한 법인만큼 너무도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어 단순히 이상과 정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론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판사 벤튼(알프리 우다드)이 아세파를 한 명의 개인대 개인으로서 기꺼이 존경한다 말하겠노라 하였음에도 미국의 판사로서 망명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한 장면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이데아와 현실 정책의 좁혀지지 않는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그렇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배우며 평등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게랄트 휘터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는 "국적을 가진 사람만이 존엄(『존엄하게 산다는 것』 中)"하다. 미국의 시작이 이민자들의 나라였고, 아메리칸 드림을 일종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내세웠다 한들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21세기 미국은 정부측 변호사인 벤자민(커먼)은 이민귀화국이 이민세관단속국으로 개칭되었음을 주지시킨다. 미국의 시민권을 갈망하는 이들은 세관물품과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인간이 더이상 인간의 존엄을 요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그것이 아무리 부당하다 한들- 주체가 국가일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에둘러 표현될 수도 있다. 이민, 망명을 신청한 모든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 수 없으니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 기존 사회 구성원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존속 의미를 주창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나 나는 "이민정책이 그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거나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지향과 실제로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적으로 ‘소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김병록 교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법에서 최소한의 정의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 법은 진정 유의미한 것인가? 이상을 조금도 좇지 않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겠는가?이미지 출처: Sight Magazine사실, <세인트 주디(2018)>를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예술적 의미에서, 영화사적으로 대단한 족적을 남기리라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 또한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이므로 프랑수아 트뤼포가 그리 반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게 경종을 울린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했던 세계의 일면을 보여주고, 나를 돌아보게 만드므로.영화를 본 후의 감상을 쌓아 올리는 것이 유의미한 일인지 아닌지 이 시점의 나는 잘 모르겠다. 또한 이 영화 앞에서 고작 이 정도 고민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 (영화 <세인트 주디>를 모두 감상한 후 와드 알 카팁 감독의 <사마에게(2019)>를 감상하여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끈질긴 선의는 결국 희망을 현실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무의미해보이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본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 그 어떤 누구도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부터. 관용과 신의로 연대는 더 돈독해진다. 너의 일에 발벗고 나설 수 있는 나의 존재, 나의 일에 소매를 걷어부치겠다는 너의 존재가 많아질수록 개인의 삶과 사회는 풍성해진다.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너와 나의 권리가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올 수 있기를.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 해도, 인생 길은 타인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믿는다. 작은 다정과 환영이 궁극적인 화합을 위한 첫 걸음일 것이라고.그래, 한 명을 위한 일/투쟁은 결국 모두를 위한 일/투쟁이기에.★★★★참고문헌김병록 "이민정책의 법제와 헌법적 과제" 미국헌법연구 31.2 pp.1-4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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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믿음을 믿으십니까?
종교가 있는 친구에게 물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은 어떻게 생겨?" 친구는 한동안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해주었습니다. "믿으니까 그냥 믿는 거지." 분명하면서도 모호한 답변에 마음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 믿음이란 뭘까?
- 믿음은 어떻게 작동할까?
- 믿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확신할까?
- 만약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해결되지 못한 채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질문들은 '이 영화' 이후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은 <클럽 제로> 프라이빗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클럽 제로>는 2023년 1월 24일 국내 개봉 예정작입니다.
클럽 제로
Club Zero
엘리트 기숙사 학교에 새로 부임한 영양 교사 '노벡'은 아이들에게 의식적 식사를 가르치는 특별한 수업을 진행합니다. 의식적 식사는 말 그대로 의식적인 섭취를 통해 과식을 줄이고 주체적으로 음식을 먹는 식사법입니다. 어떤 아이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고, 어떤 아이는 친구 그룹에 머물기 위해 의식적 식사법을 따릅니다. 또 어떤 아이는 끝까지 거부하다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죠. 의식적 식사법을 따르게 된 배경은 각기 다르지만, 아이들은 점차 의식적 식사와 영양 교사 '노벡'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아이들이 의식적 식사를 받아들이자 '노벡'은 음식을 아예 섭취하지 않는 극단적인 식사법을 권하기 시작합니다. 올바른 믿음을 가진 몇몇 사람들만 절식의 이점을 누리며 '클럽 제로'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말이죠. 아주 적은 양의 음식만을 의식적으로 섭취하던 아이들은 결국 '클럽 제로'의 규칙에 따라 아무것도 먹지 않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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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쯤에서 '노벡'이 제시한 의식적 식사를 실천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음식을 먹기 전에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쉽니다. 눈앞의 음식에 정신을 집중하고, 최대한 천천히 음식을 섭취합니다.
적은 양의 음식을 천천히 섭취하는 것에 충분히 적응했다면, 다음 단계는 한 번에 한 가지 종류의 음식만 먹는 것입니다. 역시 음식을 먹기 전에는 심호흡하고 음식에 온전히 집중해야 합니다.
마지막 단계는 절식입니다. 음식을 먹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의식적으로 신체와 정신을 통제합니다.
글로 읽어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설득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떻게 이 식사법을 믿고 따르게 된 걸까요? '노벡'은 은밀한 전술을 통해 아이들의 믿음을 조종합니다. 처음에는 과식이 신체, 정신,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설명하며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가르침을 전합니다. 적게 먹는 것이 어떻게 몸의 자정 작용을 일으키고, 어떻게 하고자 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게 하며, 어떻게 세상을 더 지속가능하게 하는지 설명하죠.
그런데 섭식을 통한 변화를 이야기하던 '노벡'의 논점이 조금씩 섭식 그 자체로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그럴싸한 명분들은 사라지고, 섭식이 단지 관습적인 것일 뿐이라는 급진적인 주장으로 전환되죠. 평생 먹지 않고 사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냐고 묻는 아이에게는 "자신이 직접 몸으로 증명했기에 답을 찾으려 들 필요가 없다"는 말로 홀려 버립니다.
교육과 보호를 목적으로 엄격하게 통제된 공간인 엘리트 기숙사 학교에서, 선생님은 최고의 권위자입니다. 아이들은 가르침으로 포장된 조종을 피하기가 어렵죠. 일순간 '노벡'을 깊이 신뢰하게 된 아이들에게 절식은 또 하나의 이상적이며 바람직한 새로운 식사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믿음이 눈을 가린 아이들에겐 생기를 잃어가는 서로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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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 식사법을 웰니스, 자아실현, 지속가능성을 위한 식사법으로 소개한다는 면에서 '노벡'의 말은 언뜻 현혹적이기도 합니다. 이 가치들은 영화 밖 현실에서도 간헐적 단식, 미라클 모닝, 채식주의와 같은 새로운 움직임을 일으킨 촉매제니까요. 이렇듯 변화들은 으레 그래왔던 관습('하루 세 끼를 먹어야 건강하다', '잠은 충분히 자야 한다', '영양소를 고루 섭취해야 한다')과는 다른 모습을 띱니다. 과거엔 관습만을 단 하나의 진실로 여기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다양성의 시대인 요즘은 다릅니다. 오히려 관습만을 정답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배척당하기 쉽죠. 관습을 부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된 겁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급진적인 사상들은 더 자유롭게 세상 밖으로 나오죠.
그런데 만약 <클럽 제로>의 의식적 식사법처럼 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상이 '관습을 깨부수는 새로운 움직임'인 양 모습을 드러낸다면 어떨까요? 누군가 당신에게 세상을 바꾸는 바람직한 식사법이라며 의식적 식사를 제안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짜 진실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 급진적인 움직임인지, '급진'의 탈을 쓴 어불성설인지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영화를 보면서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저 관습일 뿐이라고 말하는 '클럽 제로'와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이 관습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잘못된 가설일 뿐이라고 말하는 지구 평면설 추종자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 진짜 진실이고, 이 시대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급진적인 움직임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에겐 그들의 말이 '급진'의 탈을 쓴 어불성설로 들리죠. 그러나 하지만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 보면, "지구는 둥글다!"고 말하는 제가 '클럽 제로'나 오늘날의 지구 평면설 추종자처럼 진실과 동떨어져 보이는 사상을 따르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관습을 깨부수는 움직임들이 계속해서 생겨나는 이 세상에서,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우는 이 세상에서, 진짜 진실을 쫓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과연 제가 믿고 있는 것들 중 진짜 진실은 몇 개나 될까요?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만 존재하는 진실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클럽 제로>는 누구도 진짜 진실을 알아차릴 수 없으며, 진실은 결국 나의 세계 안에서 형성된 하나의 믿음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썩은 해골물을 맛있게 꿀꺽꿀꺽 마셨다는 원효대사처럼 말이죠. 비슷하게 <클럽 제로>에서도 아이들 중 한 명인 '엘사'가 '의식이 섭식을 통제한다'는 자신만의 진실을 피력하고자 먹은 것을 게워 낸 뒤 그 토사물을 다시 섭취하는 시위를 벌입니다. '엘사'의 현실에서는 그것이 진실이기에 토사물을 다시 먹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진실은 믿음이 만드는 허상이라면, 우리는 믿음을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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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제로>는 소재도 급진적이지만, 연출도 그러합니다. 평범하게 구성해도 무방한 공간들을 형형색색의 화려한 색으로 채우고, 러닝타임 내내 신경에 거슬리는 난타음, 기계적인 줌인, 슬로우 모션 같은 촬영기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죠. 이러한 연출들로 영화는 한 편의 잔혹동화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비현실적인 기묘함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당연한 현실이었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어쩌면 그 세계 안에서 절식은 채식주의와 비슷한 수준의 급진적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끝까지 진실과 탈진실, 그리고 믿음에 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영화, <클럽 제로>였습니다.
Summary
최고급 기숙사 시설에서 학생들에게 일대일 특별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학교의 새로운 영양교사로 임명된 ‘미스 노백’.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습 능력을 키우는 ‘의식적 식사법’을 가르치는 ‘미스 노백’의 다정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수업에 아이들은 점차 빠져들게 되고 더 극단적이고 위험한 식사를 이어가는데… (출처: 씨네21)
Cast
감독: 예시카 하우스너
출연: 미아 와시코브스카, 마티유 데미, 엘자 질버스테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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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 뒤, 인류는 멸망합니다. <돈룩업(Don't Look Up)>
<돈룩업 포스터>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넷플릭스
돈 룩 업 (Don't Look Up, 2021)
장르 : 미국, 코미디 │ 감독 : 아담 맥케이 │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민디), 제니퍼 로렌스 (디비아스키),
메릴 스트립(대통령), 케이트 블란쳇(브리), 티모시 샬라메(율) 외 다수 │러닝타임 : 139분│등급 : 15세 관람가<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넷플릭스
"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한다면? "
인간이 지금처럼 지구의 실질적 주인이 되기 전, 지구의 주인은 공룡이었다. 현생 인류로 추정되는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고작 15만 년인 데에 반해 공룡은 약 1억 6천만 년 동안이나 지구에 위세를 떨친 존재였다. 그런 공룡은 별안간 멸종했다. 이에 대한 몇 가지 설들이 존재하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설은 소행성 충돌로 인한 재앙이다. 영화 <돈룩업>은 바로 이 소행성이 현시점의 지구에 충돌한다면?이라는 SF적 설정에 기반한 영화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소행성 충돌로 인재난 영화보다는, 이에 반응하고 대처하는 인류의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린 정치 블랙코미디라고 할 수 있겠다.
<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6개월 뒤, 지구의 인류는 멸망합니다 "
미시간 주립대학의 천문학과 교수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대학원생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는, 어느 날 거대한 혜성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발견의 기쁨도 잠시, 6개월 뒤 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 인류가 멸망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과학적 사실을 직면하게 되는데. 두방망이질 하는 가슴을 부여잡고 백악관으로 달려간 그들. 그러나 당장 대책을 세워줄 것으로 여겼던 예상과는 다르게 대통령은 이 문제를 장난처럼 여긴다. 외면받다시피 쫓겨난 민디와 디비아스키는 이번엔 이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로 한다.
<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혜성? 멸망? 그게 뭐죠, 먹는 건가요 "
그러나 언론 역시 그들의 생각과 다르기는 마찬가지. 불과 몇 달 뒤에 벌어질 소행성 충돌이 유명 슈퍼스타의 이별보다도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가 하면, 모두 죽을 거라는 디비아스키의 경고는 편집증 환자의 망언이 되어 국민적 놀림거리가 되고 만다. 정부와 언론이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의 뉴스에 여론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이 거대한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그러나 ‘어떻게 저러지?’ 싶은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을 닮아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몇 년째 기승을 부리는 이 시대. 이 세계적 재앙을 두고도 정치적 음모와 분열, 통제불능의 사건들이 반복됐던걸 보면 비단 영화적 전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까 말이다.
<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Look up! 과 Don’t look up! 사이에서 "
<빅쇼트>, <바이스>등의 블랙코미디로 유명한 감독 ‘아담 맥케이’식의 신랄한 풍자는, 포복절도할 만큼 웃기지만, 그만큼 우리의 허를 찌르며 어리석은 인류의 현실을 거울처럼 비춘다. 영화 속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위험성을 여러 차례 무시한 미국의 전 대통령을 꼭 닮았고, 황색 저널리즘으로 물든 언론의 태도 역시 영화 속이나 여기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뿐만인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미디어의 가볍고 얕은 정보들에 정치적으로 양분화되는 여론의 모습도 현실과 꼭 닮아있었다. 혜성이 충돌해 인류가 멸망한다는데도 “돈룩업(Don’t look up : 혜성을 쳐다보지 마)”을 외치는 세력은, “백신 안에 인류를 통제하려는 칩이 들어있다”라고 믿으며 실제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던 이들과 다르지 않아 보였으니.
<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똑똑해서 망할 슬픈 생명체여 "
인류는 과연, 지구의 전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지능적이고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종족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지구의 모든 생명체를 통틀어 치명적인 약점도 있는 것 같다. 오만, 아집, 분열과 같은 특성들. 날아오는 혜성을 어쩌지 못해 공룡이 속수무책으로 멸종했다면, 우리네 인류는 어쩌면 너무 오만해서 또는 너무 이기적이어서 멸망을 막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혜성의 궤도를 바꿀 수 있는 지능도, 이를 받쳐 줄거대 자본이 있음에도, 자충수에 빠져서 말이다.
<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영웅은 없었고, 독선만이 가득했다 "
이 영화 속에서 인류가 맞이하는 결말은 안타깝지만 매우 디스토피아적이다.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인류의 모습은 아름답지 않았다. 자본가들은 저들만 살겠다고 냉동인간이 되어 다른 행성에 갈 채비를 하고, 그렇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은 지구에서 맨 몸으로 종말을 맞이하기에. 인정하긴 싫지만 그것은 어쩌면, 난세의 영웅이 나타나 결국 지구를 구했더라는 달콤한 이야기보다 더 우리의 현실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최강 라인업에 눈 돌릴 데 없는 러닝타임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티모시 샬라메 등등. 화려한 출연진들의 등장은 이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무기이다. 너무 화려한 배우가 많은 캐스팅 아닌가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생동감 있게 느껴졌다. 디카프리오와 제니퍼는 혜성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는 과학자를, 메릴 스트립은 경박하고 우매한 대통령을, 케이트 블란쳇은 조연급에 그치지만 시청률에만 열을 올리는 가볍기 그지없는 언론인을 너무도 완벽하게 연기했으며, 티모시는 아주 적은 분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시민을 임팩트 있게 소화했다. 지구의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모습의 캐릭터를, 명배우들을 통해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돈룩업 스틸컷> 사진출처 : 네이버영화
" 이미 우리에게 닥쳐있는 멸망의 길 "
영화 저널리스트 ‘정시우’는 이 영화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혜성 충돌’을 지우고 ‘기후변화’를 넣어도 무방한 이야기라고. 맞다. 그녀의 말처럼 굳이 혜성이 아니더라도 인류의 멸망은 이미 껑충 가까이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먹고사니즘 속에 잊고 있는 이 순간에도 빙하는 녹고, 산은 불에 타고, 무분별한 어류 남획과 쓰레기 투척으로 지구는 죽어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보존의 속도보다 늘 파괴의 속도가 큰 우리니까. 근거 없는 희망찬 미래를 믿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다가오는 종말을 기적처럼 막지는 못할지언정 조금이나마 유예할 수 있다면, 마지막 남은 지혜를 쥐어짜서라도 조금 아름답고 겸허한 끝을 맞이하는 인류이기를, 염원해보는 바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 살았음을 잠시라도 감사히 여기면서 말이다.
글쓰는 우두미
인스타그램 @wood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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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감 최고! 다시 돌아온 마형사, 범죄도시2
?Rabbitgumi 입니다!
마형사가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범죄인도 때문에 베트남에 가면서 벌어지는 일인데요.
거기서 장첸보다 더한 악당을 만나게 됩니다.
이번 영화는 마형사의 액션감을 극대화하고 유머도 레벨업을 했는데요.
영화가 어땠을지 알려드릴게요! :)
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해주세요! :)
그리고 제가 매주 일요일마다 영화에세이를 전달 드리는 Rabbitgumi 영화 이야기 뉴스레터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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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메인 예고편
마블의 새로운 강력한 히어로 ‘샹치’의 탄생과 베일에 싸여 있던 전설의 미스터리 거대 조직 ‘텐 링즈’의 실체를 다룬 첫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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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레이징 파이어> 티저 예고편
강력 범죄 수사대에서 함께 믿고 일하던
베테랑 경찰 ‘장충방’과 그의 후배 ‘추강아오’.
어느 날 같은 임무를 맡은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해
한순간에 운명이 뒤바뀌게 되고
동료에서 적이 되어버린다.
서로가 서로의 표적이 된 그들은
피할 수 없는 대결을 시작하게 되는데….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