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4-10-04 15:14:35
사랑 앞에 선 사회적 약자의 환상
- <조커: 폴리 아 되>(2024)
2019년 영화 <조커>는 한 사회적 약자가 몰락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다룬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의 심리적 파탄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무관심의 상호작용을 통해 인간 내면의 절망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소외감, 무시당하는 상처, 그리고 이를 덮으려는 몸부림은 고통스러울 만큼 리얼했고, 결국 그를 비극의 주인공, 조커로 만들어 갔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이 전작의 이야기를 잇는다. 여전히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아서 플렉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가 꿈꾸는 사랑과 인정에 대한 허황된 욕망을 탐구한다. 이번 작품은 혁명의 영웅으로 떠오른 조커보다는 다시금 약자로 돌아간 아서의 이야기, 그리고 그가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만들어낸 조커라는 정체성 사이의 갈등을 다룬다.
[첫 번째 감정] 아서 플렉의 패배감
아서 플렉에게 패배감은 평생을 관통한 기본 정서였다. 그는 태어나 한 번도 사회적 인정이나 보호를 받아본 적 없었고, 언제나 비웃음과 외면의 대상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고, 이상한 순간에 웃음이 터져 나오는 증상으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소외되었다. 그는 사회적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그로 인해 여러 차례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의 패배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는 여러 번 시도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를 반복하며 점점 더 깊은 패배감에 빠져들었다. 그에게 있어 패배감은 일종의 디폴트 상태였고, 이로 인해 그는 점점 더 자신을 비하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패배감은 그가 조커로 변신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그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었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이러한 패배감이 그를 어떻게 억누르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서는 스스로 이 사회에서의 위치를 극복해내지 못한 채, 끝없이 패배감을 체화하며 살아간다. 그는 조커라는 가면을 쓰며 잠시나마 패배감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그 감정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감정] 조커의 분노
조커로 변신하는 순간, 아서는 더 이상 아서 플렉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쌓여온 패배감을 분노로 감추고,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당당함을 얻는다. 이 순간의 조커는 세상에 대한 복수심과 강한 자존감으로 무장한 채, 관객에게조차 매력적으로 비춰진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진정한 자신을 드러낸 듯한 해방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분노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 아서는 조커라는 가면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느껴왔던 모든 억압과 무시를 세상에 되돌려주고자 한다. 그는 자신의 분노를 통해 세상에 맞서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당당함을 얻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분노의 표출은 그를 더욱 위험한 존재로 만들며, 주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안긴다.
영화 속에서 할리(레이디 가가)는 아서에게 일부러 접근하여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가 사랑한 것은 조커였다. 즉, 그녀는 아서를 사랑한 것이 아닌 그의 분노와 그로 인해 얻어진 위태로운 매력을 사랑한 것이다. 영화는 조커로 변신한 아서의 모습을 뮤지컬과 같은 화려한 장면으로 표현하며 그를 영웅처럼 치켜세운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 남은 것은 다시 아서 플렉으로 돌아온 초라한 모습이다. 이 순간 관객은 아서의 현실과 그가 잠시나마 꿈꾼 조커의 허상을 동시에 보며 양가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세 번째 감정] 아서 플렉의 억울함
아서의 삶에서 억울함은 그에게 남겨진 마지막 감정이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황의 희생자라기보다는, 그저 사회적 보호의 부족으로 인해 만들어진 존재였다. 어렸을 적부터 그를 둘러싼 환경은 언제나 그를 소외시키고 억압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며, 상황에 의해 끌려 다닌다. 그의 친구조차도 아서를 무서워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눈앞에서 살인을 저지른 살인자이기 때문이다. 그 모든 건 아서 스스로 얻고자 해서 얻은게 아니며, 우연히 그에게 찾아온 삶의 굴레들이다.
아서에게 억울함은 그가 조커라는 인물로 주목받을 때조차 여전하다. 그는 조커로서의 정체성을 이용해 재판에 나서지만, 여전히 아서 플렉으로서의 자아는 조커가 얻는 주목에 불편함을 느낀다. 그는 조커로서 사람들에게 환호받아도, 아서로 남아도, 결국 그가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뿐이었다. 이러한 억울함은 그가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으로 남게 되는 현실에서 비롯된다.
이 억울함은 그의 패배감, 분노와 뒤섞여 그를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몰아넣으며 결국 그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몰락뿐임을 암시한다. 아서는 조커로서의 삶에서도, 아서 플렉으로서의 삶에서도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하며, 결국 그 억울함 속에서 파멸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 마지막 파멸의 순간에도 그는 그 억울함을 풀지 못한다. 그저 한 번 반짝했던 범죄자로 남을 뿐이다.
촬영이나 연기의 완성도는 높지만...
<조커: 폴리 아 되>는 사회적 약자가 어떻게 몰락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그 몰락의 과정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이 영화는 조커라는 악당의 서사를 다루기보다는, 아서 플렉이라는 한 사람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아서는 태어나서부터 사회적 차별과 무관심 속에서 살아왔으며, 할리의 등장은 그에게 한 줄기 희망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녀는 아서의 일생 중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녀조차도 아서가 아닌 조커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더욱 절망적으로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관객들은 조커의 환상적인 모습이 아닌 아서의 초라한 모습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는 감독이 아서의 삶을 끝까지 직시하게 함으로써 그의 서사를 마무리짓고자 했음을 보여준다. 관객까지 포함해 모두가 조커를 보고 싶어 했지만, 감독은 끝까지 아서의 현실을 강조하며 이 이야기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영화의 연출과 배우들
토드 필립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전작의 연출 스타일을 유지하면서도, 뮤지컬 장르를 도입하여 색다른 시도를 했다. 이러한 시도는 관객들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장르적 도전을 통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를 높였다. 하지만 그 뮤지컬 장르가 원래의 이야기와 잘 이어 붙지 않는다는 것은 관객들이 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되어버렸다. 촬영이나 화면이 고급스럽고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지만 그게 이야기와 잘 연결되지 않으면서 이 영화의 전반적인 완성도를 떨어뜨린다. .
배우 호아킨 피닉스는 이번 영화에서도 아서와 조커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그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레이디 가가 역시 할리 역을 통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으며, 그녀의 연기는 영화에 감정적인 깊이를 더했다.
이번 영화는 많은 관객이 기대했던 사회 변혁 이나 사회 파괴의 서사를 담고 있지 않다. 그 대신, 사회적 약자인 아서 플렉의 삶과 그가 꿈꾸는 허망한 사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우리 사회의 냉혹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완성도는 배우들의 연기, 미장센의 아름다움, 그리고 뮤지컬 장면의 독창성으로 인해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조커: 폴리 아 되>는 조커라는 인물의 화려한 외양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아서 플렉이라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깊이 있게 조명한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아서의 고통을 마주하게 하며, 그의 몰락이 결국 우리의 사회적 무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낸 괴물을 바라보게 하는 이 영화는,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4DM8_51bz-c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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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렉스 법사가 전하는 내전 경고장!
알렉스 가랜드 감독을 이제 법사라 칭해야 하나? 트럼프가 정권을 잡았다고 가정했을 때 벌어지는 일을 그린 듯한 <시빌 워 분열의 시대>가 이렇게 피부로 와닿을 줄은 몰랐다. 감독도 우리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이야 어떻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작품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으며, 큰 의미로 다가오는 건 확실하다.
대통령의 폭정에 내전 상황에 놓인 미국의 근 미래. 텍사스주와 캘리포니아주가 손을 잡은 서부군은 연방군을 압박하고, 대통령은 백악관을 은신처 삼아 두문분출한다. 이런 상황에 종군기자 리(커스틴 던스트)는 동료 조엘(와그너 모라), 선배 기자 새미(스티븐 매킨리 핸더슨)와 함께 대통령의 목이 아닌 인터뷰를 따러 간다. 여기에 리처럼 멋진 종군기자를 꿈꾸는 제시(케일리 스패니)도 동행한다.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까지 험난한 일들이 펼쳐지는 가운데, 이들은 저마다 눈과 카메라로 이 상황을 기록한다.
| 약간의 상상력을 더한 내전, 분열의 시대
영화의 원제는 ‘시빌 워(Civil War)’다. 우리나라에서 ‘분열의 시대’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번 미 대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현재 미국은 양극화 현상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그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점점 미국은 균열이 생기고, 갈라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감독이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2020년 1월 6일, 워싱턴 의회 난입 사건은 영화 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대선 결과 불복으로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이 의회에 난입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데, 이는 민주주의의 선봉장 역할을 했던 미국의 내적 위험성이 크게 부각되는 사건이었다.
알렉스 가랜드는 이런 미국의 양극화 상황을 배경으로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를 펼친다. 폭정을 일삼는 대통령 때문에 분열이 일어나는 상황, 링컨 시대 때의 남북 전쟁과 맞먹는 내전이 미국에서 일어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한 상상 실험은 그 자체로 호기심과 충격을 전한다. 그가 감독과 각색을 맡았던 <서던 리치: 소멸의 땅>만 봐도 세상이 뒤집힌 후 벌어지는 상황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감독의 재주는 SF가 아닌 전쟁을 소재로 또 한 번 펼쳐진다.| 뷰 파인더로 보이는 객관적 시각
영화의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라 사진기자다. 이들은 전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 이 상황을 지켜보며, 기록한다. 사람이 총에 맞고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손을 내미는 게 아닌 연신 셔터를 눌러야 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평정심. 그리고 이 상황을 목도하며,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을 가감없 이 전달하는 일이다. 평가는 이 결과물을 보는 사람들이 하는 것.
연방군, 서부군 어느 곳을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는 이들은 최대한 뷰파인더를 통해 지켜보고, 기록한다. 위험하지만 대통령을 만나러 가는 건 그를 잡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판단은 당연히 사람들이 하는 것이니 말이다.
감독은 객관성을 바탕으로, 네 인물의 눈과 사진을 통해 내전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소개한다. 어제는 친구였지만, 오늘은 적이 된 사람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주유소 직원, 전쟁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들, 총격전에 목숨을 잃고, 아군이진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을 공격하기에 저격한다는 매복 군인, 중립을 지키는 마을 사람들, 미국인 아니면 무조건 사살하는 이들 등 평화로운 시대에는 꿈도 못 꿀 참혹함과 시대의 불안감은 그 자체로 공포다. 만약 내전이 일어나면 이런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날 거라고 예견하는 듯 인간 군상들이 보여주는 일들은 객관성을 유지함에도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카메라라는 무기를 든 이들의 사명감
영화의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사진 기자 특히 종군 기자의 사명감과 직업 윤리 의식의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는 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종군 기자 리 밀러의 이름을 가져온 듯한 리 스미스는 관찰자로서 자세를 유지하며 다양한 전쟁에 참여했다. 제시 또한 리를 존경하고,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이 위험한 여정을 따르게 된 것. 그만큼 그녀는 종군기자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었지만, 반대로 그의 삶은 피폐해져간다. 텅 빈 눈빛으로 일관하는 무표정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마치 PTSD를 입은 군인처럼 정신적 고통이 수반된다. 그럼에도 내전이 심화되는 곳에 도착해 연신 셔터를 누른다.
도덕적 딜레마를 겪음에도 사명감으로 일하는 그녀와 기자들은 후반부 사진기를 무기 삼아 전장에 뛰어들고, 워싱턴 D.C에 도착한다. 후반부에는 그 다양한 내전 상황을 겪은 이들이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들이 해야 하는 임무를 어떻게든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들은 군인들의 무기처럼 카메라를 무기로 삼는데, 특히 수동 카메라를 갖고 다니는 제시는 총알을 장전하는 것처럼 필름을 감고, 총알을 발사하는 것처럼 셔터를 누른다. 총격을 피해 기록을 남기는 이들의 무모한 진격은 군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이 장면에서 잘 말해준다.| 전쟁 블록버스터는 아니지만...
<시빌 워: 불안의 시대>는 전쟁 블록버스터라고 말하긴 힘들다. 비견하자면 <람보> 시리즈보다는 <허트 로커>에 가깝다. 하지만 사실적인 내전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감독은 워싱턴 D.C 시가전부터 백악관 침투 작전에 이르기까지 멋진 전투 장면을 연출한다. 그동안 쟁여놓았던 건 액션 보따리를 푸는 것처럼 진짜 같은 전쟁 장면이 펼쳐진다. 빗발치는 총격이나 폭격 장면 등 비주얼만큼이나 음향에 공을 들인 모양새다.
후반부 전쟁 장면을 보기 위해 참아야 하는 시간이 긴 건 맞다. 앞에 앉은 고딩 관객이 연신 한숨을 쉬다가 후반부 전쟁 장면이 시작되면서 집중하는 뒤통수를 보여줬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 영화의 연출이 알렉스 가렌드이고, 제작이 A24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이끄는 연방군을 일망타진하는 이야기도 아니기에 초중반 지루함을 느끼는 건 관객들에게 아쉬운 부분인 건 맞다.
그럼에도 영화의 매력은 배우에 기인한다. 특히 커스틴 던스트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담은 연기를 보여준다. 공허하다 못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눈빛과 머리보다 몸이 더 빨리 움직이는 직업인의 모습, 윤리적 딜레마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카메오 격이지만 씬스틸러로서 압도하는 연기를 보여주는 제시 플레먼스의 연기도 기억에 남는다. “당신들은 어느 쪽 미국인이지?”라는 대사만으로 공포를 안기는 그의 못습은 잊히지 않는다. 이렇게 부부는 닮아가나 보다.(커스틴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는 실제 부부다.)
“전장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내가 조국에 경고를 보내는 거라 생각했어요. 전쟁을 하지 마라” 극 중 리가 뱉는 이 대사는 영화가 자국에 보내는 경고처럼 들린다. 하지만 극단적인 분열과 민주주의 문제점이 더 커지는 가운데, 트럼프가 재집권했다. 그리고 이에 질세라 우리나라도 심각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봉착했다. 과연 우리는 분열의 시대를 목도하는 것에 그칠 것인가! 아니면 우리 각자의 셔터를 눌러 이 상황을 잊지 않고 기록하며, 후대에 전할 것인가!사진 제공: 마인드 마크
평점: 3.5 / 5.0
한줄평: 잘 기억해두자. 분열 되면 이렇게 된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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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호자이지 못하는 어른들
이 영화는 터키 영화 이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추운 겨울 남자 기숙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는 남학생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 메모라는 학생이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는 체벌을 당한 그 다음날 일어나지 못한다..
메모의 친구 유수프가 그의 곁을 지키면서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선생님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선생님들과 어른들은 서로의 탓이라고 우기기만 하고 결국 마지막에 유수프가 메모를 데리고 몰래 따듯한 물로 샤워를 하러 가다가 메모가 파이프를 머리에 맞았다는것을 알고는 안심하는 듯이 끝난다.
터키 기숙학교의 폭력성을 비판하고 무책임한 어른들의 모습을 마치 다큐 처럼 영화가 흘러간다. 이 영화의 배경이 고립된 시골에다가 겨울이어서 교도소와 비슷한 이미지 였다. 영화 초반부터 계속 창문이 깨지고 문이 덜렁 거리는 등 불안한 전개를 계속 암시한다. 또한 메모를 보건실에 거의 방치 해두고 선생님들이 보건실로 들어 올 때 어른들만 보건실의 문 앞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정작 아이들은 미끄러지지 않고 제대로 걸어온다. 선생님들이 들어올 때 메모의 열을 재고 열은 안난다며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이런 장면들이 부당한 관습과 폭력성이 반복 될 것을 의미한다. 유수프가 마지막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친구가 아프다고 말 하지만 엄마 마저도 친구는 무시하라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이렇게 유수프에게 진정한 보호자는 존재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유수프만 머리만 밀려있고 똑같은 샤워실, 초반이랑 똑같이 샤워를 하며 끝이 난다.
선생님들은 메모의 병에 대한 책임을 유수프에게 떠넘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책임에 대한 벌도 유수프만 받은 것이다. 유일하게 이 학교 상황을 메모의 사건으로 고발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지만 유수프의 책임으로 돌리면서 이 악습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영화가 끝나도 영화 속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맞고 아파도 제대로된 보호 조차 받지 못한 채 살 것 같다. <보호자>라는 제목도 좋았었다. 메모의 진정한 보호자는 유수프 뿐이었다. 이 학교의 보호자인 어른들은 보호자의 의무와 책임조차 지지 않는다. 마지막 머리가 깎여 있는채로 샤워를 하고 있는 결말이 엄청 강렬했었다. 결국 잘못에 대한 죄를 받은 사람은 어린 유수프 단 한명 뿐이었다. 과연 메모가 아프게되어 병원에 실려가기 전까지 잘못한 사람은 어린 유수프 한명 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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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지 않는 울음의 세계
마트 주차장에서 시작된 에이미와 대니의 시비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간다. 도로 위 분노의 추격전은 상대방의 집과 사업장에 대한 소변 테러와 별점 테러로 이어지더니, 점차 집착에 가까운 복수로 변하고 만다. 에이미는 자수성가한 CEO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업과 가장의 역할로 지쳐있다. 계약은 뜻대로 되지 않고 자기가 산 큰 집을 누릴 시간조차 없다. 도급업자 대니 또한 가족 사업이 망한 후 다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은 실은 각자 일상에서 꾹꾹 누르며 안고 살던 시한폭탄을 우연한 기회로 서로에게 터뜨린 셈이다.
에이미와 대니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에이미는 이민자로서 살아남아야 했던 부모님의 영향 아래 많은 것을 묻어두며 살아왔다. 최대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그녀의 부모님이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에이미의 감정은 용인되지 않았고, 부정적인 경험은 오랜 시간 응어리로 남았다. 조건 없는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으므로 그녀는 늘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며 살아왔다. 에이미는 여전히 자신의 본 모습이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남편과 딸 앞에서도 편히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대니 또한 한국계 이민자 2세로서 어릴 때 겪은 인종차별로 인해 부모님과 동생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살아왔다. 그는 부모님의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효자 장남인 동시에, 동생에게 인정받고 싶어 비열한 짓을 하는 형이다. 대니의 대사처럼 ’부모가 자식에게 트라우마를 배설한다‘면, 이들의 불행과 분노는 모두 부모 세대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반면 에이미의 남편 조지는 다정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에이미의 감정에 무관심하다. 조지는 에이미의 분노 앞에서 뜬금없는 명상이나 감사 일기 따위를 권한다. 하지만 그것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에이미의 고통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아시아계 미국인 안에서도 조지와 에이미의 위치는 다르다. 조지는 선망받는 일본인 예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치열할 필요 없는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에이미가 버는 돈으로 편하게 예술 활동을 한다. 에이미는 매사 태평한 조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돈 많은 사람들만 돈이 안 중요하고, 부처가 부처가 된 것은 왕자였기 때문"이라고.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에서 정희진은 고통에 관해 말한다. 그에 따르면 고통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있으며, 비가시화 자체가 고통이다. 또한 자기 고통을 말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들어주는 이가 없고, 자신도 자기 고통을 모르기 때문인데 이는 모두 미국에서 소수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온 에이미와 대니에게 해당된다. <성난 사람들>의 1화 제목은 ‘새들은 노래하는 게 아니야 고통에 울부짖는 거지’이다. 가족과 제대로 된 소통을 못 하던 대니가 한인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대성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자기 자신의 고통을 모르는 자가, 고통을 표현할 언어가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울부짖기’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 속에 울음이 살지만’ 표현할 길 없던 이 고통은, 언어화됨으로써 치유되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의 위기 앞에 선 에이미와 대니는 속마음을 꺼내어 나누며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모를 경험을 한다. 고통을 말하고 들어주는 것은 비로소 긴 울부짖음과 분노를 끝내게 만들었다. 에이미와 조지의 관계와 에이미와 대니의 관계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비슷한 모양의 흉터를 드러낸 이들은 가족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 자신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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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랜 75(Plan 75), 2022
일본 / 드라마 / 113분
감독: 하야카와 치에
미래를 살기 위해 오늘을 죽이는 사람들, <플랜 75>
75세 이상 고령자에게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지원하는 제도, ‘플랜 75’가 국회를 통과한다.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를 대처할 방안”이란 일본 정부의 덧붙임은 “넘쳐나는 노인이 청년의 앞길을 막고 있다”며 총으로 노인들을 죽이고 자살한 한 청년의 유언과 노인들에게 오랫동안 은밀히 분노의 손가락질을 겨눴던 사람들의 속마음이 합일되어 파생된 결과다. 플랜 75는 정부의 단독 결정이 아닌 국민 과반수의 직접적이면서도 암묵적인 동의로 탄생했다. 나의 죽음을 나보다 제삼자가 먼저 논의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인데, 이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플랜 75를 전례 없는 문제 해결의 묘수로 믿는 과반수 안에 고령자가 적잖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플랜 75는 간편하다. 가족의 동의나 건강진단 결과가 신청자의 발목을 잡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과정도 일사천리로 평범하게 진행된다. 신청자의 조건은 딱 하나, 자기 의사에 의한 결정(신청)이다. 신청 후엔 다양한 정부 서비스가 제공된다. 준비금 10만 엔을 받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세하고 단호한 필수조건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정부 감시 없이 신청자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신청자를 위한 맞춤 콜센터도 운영된다. 심리상담소 역할을 하는 콜센터는 신청자의 마지막 날 전까지 함께 한다. 또한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 신청과 신청을 취소하는 일 모두 본인의 자유다. 이미 죽을 날짜를 받은 한 할머니는 플랜 75 홍보 방송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을 때만큼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그 점이 좋았다”라고. 플랜 75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미래를 지키기 위한 (저물어 가는) 세대의 숭고한 결정이란 순풍을 타고, 신청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어떤 일이든 직접 경험해봐야만 그 일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다. 여기서 판단은 결정, 선택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도 판단하고 선택하려면, 플랜 75 안에 들어가 보는 수밖에 없다. 플랜 75를 샅샅이 해부하고, 이를 투명하게 전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영화 속 인물들처럼 말이다. 서비스 대상자 ‘78세 미치’와 75세 이상 고령자들에게 신청받는 ‘시청 직원 히로무’, 신청자와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콜센터 직원 요코’ 그리고 죽은 자의 유품을 처리하는 ‘이주노동자 마리아’. 이들은 플랜 75의 뼈대가 드러난 설계도를 세상에 속 시원하게 내보인다. 그것이 자의였는지, 타의였는지는 중요치 않다. <플랜 75>에서 유일하게 강제 적용된 조치였다는 것만 알아두자.
플랜 75에 대해 고령자들의 의견은 다양하다. 인터뷰한 할머니처럼 긍정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격렬하게 부정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거리를 두고 일상을 사는 데만 집중하는 자가 있다. 78세 미치는 맨 마지막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호텔 객실 청소일을 하며 살고 있다. 미치는 삶을 긍정한다. 몇 장면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창문을 열고 떠오르는 해를 고스란히 마주하는 모습과 낙상사고를 당한 친구(이네코)로 인해 호텔에서 잘리고 모든 동료가 불만을 터트리며 떠날 때 홀로 개인 사물함 앞에 서서 정중히 감사 인사를 표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삶이지만, 외로움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소화하며 지내고 있었다. 따라서 그녀는 꿋꿋하게 구직 활동에 힘쓴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니라 일상을 지키는 생존 수단이었다. 그러나 결국, 미치 또한 플랜 75에 가입한다. 마음을 나누던 친구(이네코)의 고독사를 직접 접한 탓이고, 집이 철거될 예정인데 구직 활동을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가 고령이었기 때문이며, 결정적으로 굶주린 자신에게 시청 직원 히로무가 무료 급식(플랜 75 홍보 목적)을 건넨 탓이다. 미치는 과반수가 찬양하는 순리대로 준비금을 받고, 콜센터 직원(요코)을 배정받는다. 과반수 안에 포함된 미치를 통해, 일반화할 순 없지만 그들이 왜 자기 생을 내놓는 것에 동의했는지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하고 상담을 통해 직접 신청서를 받는 일 말고 직원 히로무에게 주어진, 특별한 다른 일은 없었다. 수천 장의 신청서를 받으면서 단 한 번도 신청서에 적히지 않은 그들의 삶의 이력을 궁금해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연락이 끊겼던 삼촌이 그의 앞에 앉아 상담도 없이 신청서를 불쑥 내민 순간 히로무의 가슴은 요동친다. 삼촌은 과거 건설업자였다. 전국을 다니며 터널과 댐을 만들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헌혈을 했다. 길거리 청소를 하는 지금도 그에게 헌혈은 일과였다. 히로무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된 느낌을 받는다. 다량의 헌혈증은 그가 나이와 상관없이 국가를 위해 일했고, 여전히 일하고 있으며 모두를 위해 행동하는 국민, 한 사람임을 의미했다. 따라서 헌혈증이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삼촌의 업적과 흔적은 세상에 고스란히 남을 게 분명했다. 그는 범법자도 악인도 아닌 평범한 본인과 같은 인간이니까. 그것은 관심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히로무는 플랜 75의 끝을 몰랐다.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자의 죽음이 무엇을 남기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그가 아는 것이라곤 플랜 75의 신청 조건뿐이었다. 히로무는 광고판에 날아드는 토마토를 맞으며, 산업 폐기물을 처리하는 회사가 플랜 75의 유골을 취급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과 기시감에 휩싸인다.
아픈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급이 센 유품정리사로 일하기 전, 이주노동자 마리아의 직업은 요양보호사였다. 과거엔 살아있는 노인들을 따뜻한 눈과 마음으로 보살폈으나 지금은 죽은 노인들의 옷을 벗기고 유류품을 수거하기 바쁘다. 현금이나 고급 시계 같은 것들을 자기 주머니에 넣으며 어차피 죽은 사람에겐 필요 없으니 이렇게 그들을 기억하자고 우기는 동료를 따라, 마리아 역시 떠난 자들의 것을 훔친다. 그리곤 어찌 됐든 본인은 ‘노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열심히 합리화한다.
콜센터 직원 요코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정 좌석에 앉아 신청자 한 명당 15분 동안 감정은 배제하고 열심히 입만 움직인다. 지나친 감정적 대처와 신청자 대면 금지만 지키면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이다. 하지만 미치와의 통화를 특별하게 느낀 요코는 만나고 싶다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준다. 그리고 미치의 한결같은 삶의 태도를 대면한 순간, 동요한다. 긴 대화를 나눠주어 고맙고 잘 지내라는, 오직 미치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엔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플랜 75의 보이지 않던 장막이 손끝에 닿는 순간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커튼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병실 침대에 눕는 히로무 삼촌과 미치. 담당 직원은 간호사 복장과 유사한 옷을 입고 두 사람에게 울렁증을 막아주는 약을 건넨다. 친절함도, 냉정함도 아닌 도통 모르겠는 직원의 미소가 미치가 보는 마지막 장면이 될 참이었다. 서서히 온몸에 힘이 빠지며 눈이 감기는 미치, 그 순간 커튼 사이로 히로무 삼촌과 눈이 마주친다. 또렷했던 그의 눈동자가 점점 흐릿해지더니 이내 툭 아래로 떨어지자, 미치는 극한의 두려움에 호흡기를 떼어내고 몸을 벌떡 일으킨다. 한발 늦게 온 히로무는 온기가 느껴지는, 그러나 더는 숨을 쉬지 않는 삼촌을 마주한다. 미치가 죽은 자들에게서 벗어날 때 히로무는 마리아의 도움으로 삼촌 시신을 빼돌린다. 마리아 또한 더는 견딜 수 없음을 깨닫고, 도망치듯 자전거를 타고 그곳을 빠져나온다.
플랜 75는 완벽한 통제와 촘촘한 계획, 그리하여 대부분 만족하는 결과를 끌어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늘어났고 고령화로 인한 사건·사고도 줄었다. 정부가 신청 조건을 65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 정도니, 플랜 75는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영화는 처음부터 플랜 75가 잘못된 방식임을 노골적으로 노출했다. 자발적이며 비강제적이고, 자유로우며 신청자를 향한 따뜻한 지원들로 채워진 플랜 75는 묘수가 아닌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악수란 사실을 말이다. <플랜 75>는 단순히 영화의 집중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년의 유언을 총소리 전에 흘린 것이 아니다. 그의 자살로 인해 시작된 플랜 75가 결국 다시 우리에게 총을 겨눌 것임을 미리 경고한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인간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계속 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그 상황을 지배한다. 동시에 앞선 목적과 같은 이유로 본인들이 만든 상황에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시한다. 플랜 75는 인간의 나약함에서 탄생한 집단적 합리화가 계속 연장되었기에 흥행에 성공했다. 신청서를 받던 히로무에서 요코를 거쳐 유품을 정리하는 마리아까지, 그 누구도 75세가 기준이 된 이유와 왜 이들만 죽어야 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본인들이 내는 세금으로 지급되는 준비금에 조건이 왜 붙지 않는지, 콜센터는 왜 대면은 금지하고 전화 서비스만 진행하는지, 진짜 이유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 돌리기를 하면서, 정작 폭탄을 미치와 같은 이들에게 넘겨버렸다. 끝까지 모르는 척하며 미치와 같은 이들을 플랜 75에 마구잡이로 집어넣었다. 과반수가 찬성했다는 명분을 앞세워 모두를 위한 결정이라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자발적으로 지배당하길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삼촌의 미래는 히로무의 미래였고, 미치의 뜀박질은 요코와 마리아가 이어받게 될 게 분명했다.
해서 영화는 타인의 일이 나의 일이 되는 순간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미치는 물론이고 세 청년, 이들을 훔쳐보는 관객까지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다. 마치 우리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이라도 되듯 고집스럽게 장막을 둘러싼 거짓과 폭력을 응시하게 했다. 플랜 75의 균열을 대놓고 보여주며 인간이, 인간을 위해 직접 설계한 집단 살인 계획을 어긋나게 했다. 죽음의 장소에서 벗어난 미치가 다시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며 미소 짓는 순간이었고 어둡기만 했던 관객의 얼굴에도 빛이 스며든 때였다. 마침내 플랜 75의 장막이 내부에서 걷힌 것이다.
출처: 영화 <플랜 75> 스틸컷(다음)
<플랜 75>는 관객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면서도 희망이 깃든 안도를 전달한다. ‘3의 법칙’이 관객에게 제대로 작용했기에 가능했다. 숫자 3은 사회 심리학 측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에서 집단으로 전환되는 기준점으로 세 명 이상이 되는 순간 개인들의 힘은 집단의 힘이 되어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감독은 처음부터 이 지점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확실하게 이용했다. 나약한 인간들의 움직임(플랜 75)이 아니라, 진짜 악수를 진짜 묘수로 바꾸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그 방법을 행하는 자가 나약한 인간인 동시에 충분히 스스로 깨닫고 변할 수 있는 인간들임을 강조했다. 플랜 75의 탄생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것처럼, 소멸도 얼마든지 실행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오직 인간(나)만이 용기를 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음을, 히로무와 요코, 마리아 그리고 미치를 통해 전달했다. 결국 우리의 현재를 바꾸고 미래를 지킬 수 있는 건, 당사자인 우리밖에 없기 때문이다.
누구도 도망치거나 외면할 수 없는 시대에서, 유일한 강제조치가 유일한 해결책이 된 이때 영화는 묻는다, 우린 대체 어떤 인간인지, 어떤 집단에 속해있으며 어떤 개인으로 살고 있는지.
아, 미래를 위해 오늘을 죽이는 인간들의 끝은 굳이 묻지 않기로 하자. 답은 ‘히로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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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 마늘 홍보영화인가? 로맨스 영화인가?
이 달달한 유치함에 웃었네요.
곱씹어 볼수록 꼬집을 것들이 난무한 영화였지만, 왜인지 그리웠던 무해한 영화가 제 마음을 녹였나 봅니다.
감동을 받으면 안 되는 희귀한 병에 걸린 여자와 중요한 순간마다 다른 일이 생겨 매번 쓴 고배를 마셔야 했던 남자의 사랑 이야기인데요.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홍수아 배우가 희귀한 감동 병을 앓는 전보영을, 오래전 박카스 CF 훈남이자 드라마에서만 얼굴을 보인 최웅 배우가 참 운이 없는, 최철기 역을 맡았습니다. 어리지도 않고 적당히 무르익은 86년생 두 동갑내기 배우는 꽤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네요.
영화는 이미 알려준 그들의 약점으로 행복함을 방해하더군요.
사랑의 힘으로 다시 꿈을 찾아 컬링을 하는 보영이는 감동을 받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적당한 불편함과 위기를 심어주었죠.. 철기는 겪어왔던 여러 불운한 일들로 인해 그간 벌이도 시원치 않은 데다, 결혼해 살아야 할 집 한 채는 남의 이야기만 같습니다.
오래전 로맨스/멜로 영화의 단골 소재인 희귀병과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이 커플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하나의 재미가 되어야겠죠. 그러나, 김우석 감독은 매우 단조롭고 쉬운 방법을 선택했네요. 운으로 해결지어진 그들의 문제 때문에 재미도, 캐릭터의 매력도 반감이 되었답니다.
관심을 모았던 희귀병에 대한 응급 처치는 의성 마늘로 해결을 했고. 집 문제 역시 이 지역 이웃의 좋은 인심으로 임시처방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의성군 홍보 영화였네요.
영화가 제작될 때. 의성군은 ‘팀 킴’을 앞세운 컬링과 마늘 홍보에 주력했는데요. 촬영 장소도 90% 이상이 의성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의성군의 <감동주의보> 사랑이 남달랐던 만큼, 영화도 의성군에게 가뜩이나 충분했던 마늘 사랑으로 화답하고요.
사실, 영화로만 보면 흠이 참 많은 작품입니다.
뻔한 이야기에 익숙한 감동이기도 하고요. 유치했지만, 저는 이런 순수한 두 청춘의 모습이 아름다웠답니다. 커플의 (마늘) 사랑보다도,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밝게 웃으며, 행복하게 사는 그들의 환한 모습에 마음이 참 따뜻했네요.
이미지 출처 : NAVER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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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ㅎ 초성 별 최고의 영화
우연히 유튜브에서 ㄱ~ㅎ 초성 별 최고의 영화를 하길래 재밌을 거 같아서 한 번 해봐요 ㅋㅋ 여러분들도 해보시면 재밌을 듯 하네용. 쭉 훑어보니까 성격상 하나만 고르기는 불가능할 거 같아서 팬심(주관)과 객관 나눠서 해봤어요.
1. ㄱ
객관: <그래비티>
-최고의 우주 영화면서 개인적으로 알폰소 쿠아론의 최고작으로도 꼽는 영화입니다. 집에서 봤는데도 정말 몰입해서 봤고, 엔딩에선 진짜 미치는 줄 알았네요 ㅋㅋ 워낙 유명해서 안 보신 분은 거의 없겠지만 혹시라도 안 보셨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ㅎㅎ
주관: <겨울왕국>
-이미 블로그에 여러 번 언급해서 몇몇 이웃님들은 아실 수도 있지만.. 전 <겨울왕국>의 미친 팬입니다 ㅋㅋㅋㅋ <겨울왕국>은 극장에서 4번인가 5번인가 봤고, <겨울왕국 2>도 2번이나 봤죠 ㅎㅎ 그래서 안 뽑을 수가 없는.. 그런 작품입니당.
2. ㄴ
객관/주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건 뭐 이견이 없을.. 정말 최고의 작품입니다. 안톤 쉬거는 많이 들어봤음에도 정말 소름 돋는 캐릭터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코엔 형제의 최고작으로 꼽지만 개인적인 의견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분들이 공감하시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3. ㄷ
객관: <데어 윌 비 블러드>
-PTA 작품 중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가장 압도적인 힘이 넘쳐흐르는 영화를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이 영화를 고를 거 같아요. 특히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가 폭발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에게 빠졌습니다 ㅋㅋ
주관: <다크 나이트>
-만약 이웃분들이 이걸 하신다면 'ㄷ' 리스트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할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그만큼 인기도 있고 작품성도 있는 대작이죠 ㅎㅎ 놀란에 빠지게 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4. ㄹ
객관/주관: <라라랜드>
-인생영화.
5. ㅁ
객관: <매그놀리아>
-진짜 곱씹어 볼수록 역작이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추천드리는 PTA 작품들 중 하나. 여담이지만 9.5점에서 만점으로 올렸습니다 ㅋㅋ
주관: <미드나잇 인 파리>
-이제 곧(아마도 데이빗 핀처 끝나고) 우디 앨런 도장 깨기 할 건데 이 영화 땜에 우디 앨런 영화가 더 기대되는 중이에요. 그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너무 좋았던..ㅎㅎ 이거 외에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메멘토> 등이 있었어요.
6. ㅂ
객관: <분노의 주먹>
-마틴 스콜세지의 또 다른 명작. 개인적으로 확 와닿는 부분은 없었지만 스콜세지 최고작 중 하나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이거랑 타란티노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랑 많이 고민했네요 ㅋㅋ
주관: <블레이드 러너 2049>
-이것도 여러 번 언급했던 제가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세계관부터 영상미 연출까지.. 진짜 안 좋아할 수가 없어요 ㅠ
7. ㅅ
객관/주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제일 좋아하는 지브리 작품. 이상하게 그리운 애니메이션입니다. 볼 때마다 괜스레 요상한 기분이 드는.. 지브리 감성의 집합체라는 생각이 드네요. <살인의 추억>, <쇼생크 탈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등 ㅅ에도 좋은 작품 많더라구요.
8. ㅇ
이건 진짜 도저히 못고르겠어서 추리고 추린 리스트만 알려드릴게요.
-<아이리시맨>, <어벤져스: 엔드게임>, <업>, <월-E>, <위플래쉬>, <이터널 선샤인>, <인사이드 르윈>, <인셉션>
9. ㅈ
객관: <조커>
-진짜 엄청난 에너지의 영화였어요. 이걸 극장에서 봤어요! ㅋㅋㅋㅋ 2019년에 좋은 영화 많았네요,,
주관: <주토피아>
-<겨울왕국>과 맞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ㅎㅎ 블로그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주토피아에 빠졌었죠.. ㅋㅋㅋ
10. ㅊ
객관/주관: <칠드런 오브 맨>
-이거 또한 역대급 영화입니다. 알폰소 쿠아론은 진짜 영화 잘 만드네요 ㅋㅋ 이 작품이랑 <천공의 성 라퓨타>랑 고민 좀 했는데, <칠드런 오브 맨>이 더 좋았습니다.
11. ㅋ
객관/주관: <킬 빌>
-이거 안 봤으면 어떡할 뻔했는지.. 진짜 상상 이상으로 재밌어서 충격 먹을 정도였던 영화였습니다. 개인적으론 1편이 오락적인 측면에선 정점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네요 ㅋㅋ
12. ㅌ
객관: <택시 드라이버>
-마틴 스콜세지 영화 중에서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때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는 정말.. 여기 나오는 소녀가 조디 포스터인지도 몰랐어요 ㅋㅋ
주관: <타이타닉>
-인생 로맨스 영화. 개인적으로 명성만 듣고 갔다가 조금 실망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로맨스 영화 많이 안 보기도 해서 걱정 좀 했는데, 그 걱정을 한 번에 날려버린 영화입니다.. 이 계기로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그리고 로맨스 영화에 좀 빠진 거 같아요 ㅋㅋ
13. ㅍ
객관: <플로리다 프로젝트>
-이것도 안 봤으면 어쩔 뻔했는지.. 강력 추천해 주신 타라님 감사합니다 ㅠㅠ
주관: <펀치 드렁크 러브>/<펄프 픽션>
-둘 중에 하나 못 고르겠습니다. 둘 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작품들이라서.. 그냥 둘 다 꼭 보세요 ㅋㅋ
14. ㅎ
객관: <헬프>
-생각보다 ㅎ이 없더라구요;; 그중에서 젤 좋았던 작품이 바로 <헬프>입니다. 좀 아쉽긴 하지만 좋은 작품이죠.
주관: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많이 등장하시는 쿠아론 감독님..ㅎㅎ 해리포터 시리즈도 너무 좋아하는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ㅋㅋ 아즈카반의 죄수 감독이 쿠아론인지 최근에 알았는데 제 취향이 확실하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네요,,
이렇게 모아보니 재밌네요. 아직 안 본 영화들도 많아서 좀 부족한 부분도 있긴 한데, 더 많이 보게 되면 고르기 힘들 거 같기도 하구요 ㅋㅋ 더 많이 보면 A-Z 리스트로도 한 번 해볼게요 :)
* 본 콘텐츠는 블로거 팬서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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