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wr2025-03-20 08:08:44
여성국극을 이어가겠다는 처연하도록 결연한 의지
영화 〈여성국극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영원하다〉
여성국극을 이어가겠다는 두 예술가의 처연할 정도로 강렬한 의지가 일렁이는 이 영화에서, 전반부의 한 장면과 후반부의 한 장면은 데칼코마니처럼 포개진다. 3세대 여성국극인 박수빈과 황지영은 여러 곳을 다니며 여성국극을 비롯해 판소리 등을 공연한다. 시설을 갖춘 공연장뿐 아니라 민속촌, 복지관, 지역 축제 등 무대는 다양하다. 종종 민망한 순간이 생긴다. 뭔가 볼거리가 있나 싶어 스윽 들어왔다가 이내 발길을 돌리는 관광객이나 축제 참여자들은 공연자를 머쓱하게 만든다. 무대를 준비하는 자와 관람하는 자 사이에 열정의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것은 두 사람의 예술 활동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의미일 터다.
두 사람의 공연장은 일본 여성가극단의 공연장과 극적인 대비를 이룬다. 2층으로 된 전용 무대를 가진 일본 여성가극단은 탄탄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이 무대를 관람한 두 사람은 무언가를 이어나가는 양국 예술가 사이의 커다란 격차에 부러움을 느낀다.
영화의 후반부는 일본 여성가극단 공연장과 비슷한 규모의 무대에 두 사람이 1세대, 2세대 여성국극 레전드를 모아 함께 공연을 올리기까지의 여정을 담아낸다. 어느 해 저무는 바닷가에 앉은 박수빈, 황지영의 모습에 더해지는 박수빈의 내레이션처럼, 사라질 위기의 여성국극을 ‘3년만 더 해보자’는 다짐을 더 길게 연장하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공연이었다.
두 사람이 연출자를 섭외하고, 여성국극 레전드 선배들을 만나고, 그들의 서로 다른 의견과 작품 해석을 어렵게 조율하고, 관객과 후원자를 모집하기 위해 접대하는 모습은 처연할 정도로 결연하다. 노래방에서 자신보다 한 세대 높은 (대부분은 남성인) 어른들과 술을 주고받고 노래를 부르며 어떻게든 공연을 성황리에 꾸리려 노력하는 박수빈의 모습이 특히 그렇다. 이 모습은 우리가 ‘예술가’를 상상할 때 쉬이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모든 예술에는 무대 위의 아우라를 가능케 하기 위한 질척거리는 현실이 있기 마련이다. 불콰한 얼굴로 맞은편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해내려는 박수빈의 모습이 강렬하게 강인시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기어이 그토록 부러워하던 일본 여성가극단의 공연장을 한국에서 여성국극으로 재연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한다. 93세 배우와 93년생 배우가 함께 무대에 올라 여성국극의 명맥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두 사람의 의지를 선배, 관객들과 함께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두 사람이 운영하는 여성국극 단체가 한 지역 예술의전당에 상주 단체로 자리 잡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영화의 결말 역시 이 연장에 있다.
1950년대 전성기를 누린 여성국극은 여성들만으로 무대를 꾸린 무대 예술로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전쟁 이후 가부장적 젠더 질서가 훼손된 틈새에서 피어난 예술로 ‘남자 같은 여자’들이 연기한 남역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영화가 보여주듯이, 오늘날 예술의전당 여성국극 오디션에서도 지원자들은 대부분 남역을 원한다). 이를테면, 2세대 레전드 이옥천이 짧은 머리로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중성적인 목소리로 이 영화에 처음 등장할 때 뿜어내는 젠더 위계를 위반하는 미학을 예술 장르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여성국극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국극은 1960년대가 되며 빠르게 인기를 잃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여성국극을 연구한 몇몇 논문이 말하듯이, '가부장적 자본주의 국가' ‘초남성주의적 발전주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여성국극 배우들과 그 팬들이 형성한 젠더 역동성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다시 남성이 주체가 되어 근대와 미래를 열어가려는 사회, 여성에게 ‘본연’의 역할로 회귀하기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여성국극이 설 자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성국극이 처음 나온 지 80여 년이 훌쩍 넘은 지금,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젠더 질서가 재편되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여성국극의 새로운 계기가 되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전통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박수빈의 포부가 새로이 펼쳐질 계기 말이다. 〈정년이〉 등으로 다시금 환기된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박수빈, 황지영의 간절함과 만나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영원한 것'보다는 조금 더 힘 있는 방식으로 여성국극을 이어갈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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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넷째 주 개봉작 소개 <킹메이커> <해적:도깨비 깃발> <원 세컨드>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
매 주 화요일!
한 주의 개봉작 중에서 여러분께 소개드리고 싶은 작품을
씨네랩이 직접 큐레이션하여 소개드리는 콘텐츠를 시작합니다!
씨네랩에서는 영화/OTT의 모~~든 콘텐츠 정보를 아주 쉽고 편리하게 제공받으실 수 있으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
그럼 씨네랩이 추천하는 1월 넷째 주의 개봉 신작을 소개하겠습니다!
1. 킹메이커
드라마 | 한국 | 123분
감독 : 변성현 | 출연 : 설경구, 이선균, 유재명, 조우진, 박인환 등
개봉 : 2022년 1월 26일 개봉
배급사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도전하는 정치인 ‘김운범’ 앞에 그와 뜻을 함께하고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열세인 상황 속에서 서창대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선거 전략을 펼치고 ‘김운범’은 선거에 연이어 승리하며,
당을 대표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올라서게 된다. 대통령 선거를 향한 본격적인 행보가 시작되고 그들은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던 중 ‘김운범’ 자택에 폭발물이 터지는 사건이 발생하고 용의자로 ‘서창대’가 지목되면서 둘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치열한 선거판, 그 중심에 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관전포인트* : 극 중 정치인 '김운범'을 연기하는 배우 설경구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드려는 야심찬 선거 전략가 '서창대'를
연기하는 배우 이선균. 국내 최고의 연기를 선사하는 두 배우를 한 작품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또한 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선거 참모였던 엄창록, 그리고 1960-70년대 드라마틱한 선거 과정을 모티브로영화적 재미와 상상력에 기초해서 창작된 실화를 바탕으로 한 픽션이니 이 부분도 염두해두시면 좋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변성현 감독의 특기인 감각적인 미쟝센입니다. 제70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호평받은<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통해 보여준 감각적이고 세련된 미장센은 이번 영화에서도 다시 한번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2. 해적: 도깨비 깃발
모험 | 한국 | 125분
감독 : 김정훈 | 출연 : 강하늘, 한효주, 이광수, 권상우, 채수빈, 세훈, 김성오 등
개봉 : 2022년 1월 26일 개봉
배급사 : 롯데엔터테인먼트
"자칭 고려 제일검인 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와 바다를 평정한 해적선의 주인 ‘해랑’(한효주).
한 배에서 운명을 함께하게 된 이들이지만 산과 바다, 태생부터 상극으로 사사건건 부딪히며 바람 잘 날 없는 항해를 이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왜구선을 소탕하던 이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왕실의 보물이 어딘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해적 인생에 다시없을 최대 규모의 보물을 찾아 위험천만한 모험에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라진 보물을 노리는 건 이들뿐만이 아니었으니!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역적 ‘부흥수’(권상우) 또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드는데...!
해적과 의적, 그리고 역적 사라진 보물! 찾는 자가 주인이다!"
*관전포인트* :
먼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과 이들을 한꺼번에 볼수 있다는 재미인 것 같습니다.의적단 두목 무치(강하늘)와 해적선 주인인 해랑(한효주)부터 해적왕을 꿈꾸는 막이(이광수) 등와 각각의 매력과 개성으로 무장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케미를 만나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사라진 왕실의 보물을 찾아 육지,바다 가릴 것 없이 활약하는 해적들의 모습,특히 그들이 선사하는 액션과 화려한 CG의 스케일은 눈과 귀를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웃음/코믹 포인트입니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해적과 의적의 케미스트리는남녀노소 할 것이 웃고 즐길 수 있는 올 설 연휴 최대의 오락물입니다.
3. 원 세컨드
드라마 | 중국 | 103분
감독 : 장이머우 | 출연 : 장역, 범위, 류 하오춘
개봉 : 2022년 1월 27일 개봉
배급사 : 찬란
"영화 시작 전 상영되는 뉴스 필름에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딸이 등장한다는 소식을 알게 된 장주성은 텅 빈 사막을 헤치고
외딴 마을의 영화관으로 향한다. 그러나 눈 앞에서 정체불명의 필름 도둑이 필름을 훔쳐 달아나 버리는 모습을 목격하고
황급히 그 뒤를 쫓아 나서는데…
딸의 모습이 담긴 시간은 단 1초, 딸을 만나기 위한 아버지의 눈물의 여정이 시작된다"
*관전포인트* : 베를린국제영화제와 베니스국제영화제, 그리고 칵국제영화제에서 모두 최고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중국의 거장감독인 장이머우 감독의 신작입니다. 오랫동안 그를 흠모해온 영화팬들에게는 아주 기분 좋은 소식일텐데요.
이번 신작은 장이머우 감독 영화 인생을 총 망라하는 영화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항상 인간 본연의, 생동하는 인간의 의지를 포착해 세계인의 공감을 얻는 작품 세계를 그려내는만큼<원 세컨드> 또한 너무나 기다려지는 작품입니다.
씨네랩이 추천하는 1월 넷째 주 개봉 신작은 여기까지입니다. :)
이번 주에도 영화로운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랩 콘텐츠는 다음 주 설 연휴에도 계속됩니다. :)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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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네트> 영화의 화려함이 가린 진실을 찾아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오페라 가수 '안(마리옹 꼬띠아르)'과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아담 드라이버)'는 첫눈에 서로에게 이끌린다. 행복한 만남을 이어가고 결혼을 약속하며 함께 인생을 노래하는 두 사람. 그러나 이미 쇼비즈니스의 스타가 되어버린 둘을 언론은 가만히 두지 않고, 끊임없이 가십으로 그들을 소비한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한 헨리는 자신의 콘서트를 망치는 등 조금씩 커리어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반면에 안은 커리어는 성공적으로 이어가지만, 헨리로 인해 결혼생활과 딸 아네트의 양육에 조금씩 부담을 느끼기 시작하고 부부 사이에는 어둠이 늘어난다. 그리고 이 어둠이 가장 짙어지는 순간 부부의 삶은 조용한 바다가 폭풍우를 만나듯 전혀 다른 국면에 진입한다.
<아네트>는 '프랑스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레오 카락스 감독이 <홀리 모터스> 이후 9년 만에 선보인 작품으로,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처음 시도된 영어 영화이자 뮤지컬 영화다. 이 작품으로 2021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는 아내와 사별한 후 딸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진 자신의 개인사를 반영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었고, 실제로 <아네트>는 그러한 바람이 적극 반영된 작품으로 보인다. 감독이 딸과 함께 직접 등장하는 영화의 오프닝부터 결말에 이르기까지 <아네트>는 헨리와 안 부부의 연애와 결혼생활과 남겨진 부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들이 심연 깊은 곳으로부터 마주해야 했던 정과 진실을 담아낸다.
그렇지만 <아네트>는 단지 한 가족의 일상을 춤과 노래로 담아낸 작품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작가주의적 경향이 뚜렷한 갑독답게, 뮤지컬 영화의 익숙한 외양과 형식을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쉽고 대중적인 길을 선택하는 대신 카락스의 뮤지컬은 간단한 이야기를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일상을 반추하게 만드는 거울로 탈바꿈시킨다. 더 나아가 영화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영화의 의도, 메시지, 수단에 대한 힌트는 작중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바로 카메라의 존재다.
예를 들어 무대 위에서 멋지게 공연을 마무리하고 극장 밖에서 만난 헨리와 안 커플은 수많은 기자들의 카메라에게 둘러싸인다. 뒤이어 카메라에 일거수일투족 포착되는 그들의 연애와 결혼은 그 자체가 하나의 해프닝, 가십이 되어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구성을 반복한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해서도,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도, 코미디언으로서의 입지가 나날이 줄어드는 헨리와 나날이 명성이 높아지는 안의 대비되는 커리어도, 그리고 그들의 휴가와 그곳에서 벌어진 사고와 어린 아네트의 놀라운 노래 실력까지도. 이 모든 것은 진실과는 무관하게 가장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방식으로 카메라에 의해 제시되고, 소비된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작중 등장한 뉴스를 시청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관객을 일치시키는 연출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이는 카메라로 인해 관객이 외면적인 것만 보고 평가하고 관찰하는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연극과 달리 영화를 보는 관객은 일방향적이다. 무대 위의 배우와 직접 상호작용할 수 있는 연극의 관객과 달리 영화 관객은 철저히 카메라에 찍히고 보이는 것만 볼뿐이다. 즉, 작중 카메라는 사실을 자극적으로 변형시키는 뉴스와 그것을 소비하는 대중이나, 영화를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관객이나 본질적으로 겉모습 뒤에 숨은 진실을 보지 않거나 못한다는 공통점을 보여주는 장치로 활용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네트>는 간단한 이야기와 달리 독특한 형식적 특징을 살려 카메라로 인해 보지 못하는 진실을 밝혀내려고 한다. 깔끔하게 완성된 세련된 뮤지컬 영화의 모습이 아닌, 거칠고 모난 모습을 통해 보기 좋은 것 너머의 진실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아네트>를 볼 때 유독 의아하고 실망스러운 대목이 눈에 띄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송스루(song-through) 뮤지컬답게 영화 속 넘버는 대부분 주인공들의 심리를 노래하는데, LA 글램락의 전설이라고도 칭해지는 밴드 ‘스파크스’가 참여한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하는 것에 비하면 노래 가사는 지나치게 일차원적이다. 수영장에서 노래하는 안이나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노래처럼 '나는 괴롭다, 슬프다, 후회한다, 기쁘다, 억울하다'와 같은 직접적인 가사만이 되풀이된다. 또한 노래를 감싸는 배경도 조악하다. 파도치는 바다를 표현한 CG나 아네트가 인형으로 등장하는 것은 한눈에 봐도 어색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기저에 진실과 본질을 왜곡하고 가리는 카메라, 곧 영화를 비판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보면 위의 단점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겉치레를 버리고 영화의 본질과 이야기의 원형에 집중시키려는 의도된 연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아네트>의 형식과 구성 전반에서 영화의 가장 원형적 형태인 고대 그리스의 연극의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두 주인공의 직업인 스탠드업 코미디언과 오페라 가수는 그리스 연극의 두 축인 희극과 비극의 조합을 연상시킨다. 영화의 시작과 끝이 마치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와 같은 형식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대한 영화에 집중하길 바란다는 도입부 코러스의 가사 역시 쇼비즈니스의 대명사가 된 뮤지컬 영화에서 화려한 춤과 노래 대신 설령 보잘것없어 보이더라도 소중한 이야기에 주목해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 나아가 이는 작중 헨리나 안이 무대 위에서 펼쳐 보이는 퍼포먼스를 가능한 실황 라이브를 보듯 현장감을 살리는 방식으로, 그리고 관객석에서 무대를 보는 구도로 연출한 이유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측면에서 아네트라는 인형의 인형극은 헨리가 아네트를 대하던 태도처럼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이야기를 보고 듣지 못하고 인물의 심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세테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어색한 CG나 과도하게 편의적인 노래 가사들도 비록 덜 다듬어지고 거칠고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아도 가장 본질에 가깝고 원형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그 결과 <아네트>는 영화가 진정으로 말하려는 이야기와 감정 그 자체보다는 단지 화려한 시각효과와 같은 기법처럼 영화 속 엔터테인먼트 영역이 점점 커지는 세태에 대한 비판으로 확장될 여지도 남긴다.
물론 뮤지컬 안에 수많은 극형식을 혼합시키고 영화에 한 편의 통일성을 불어넣지 않는 시도는 굉장히 실험적인 인상을 주며, 실제로도 상당히 난해하고 어렵다. 그래서 초현실적인 이미지, 배우의 연극적 제스처, 화려함과 어두움을 오가는 색채, 희극과 비극이 한 데 어우러지는 서사의 만남은 영화의 메시지와 의도에 공감하거나 동의하지 못할 경우 그저 괴상한 조합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시도는 분명 단순해 보였던 <아네트>의 이야기가 삼중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인상적이다. 우선 영화는 희극을 통해 관객을 죽이게 웃기려 하고 비극을 연기해 관객의 죽음을 대신 맛보게 하는 두 배우의 연애 과정과 결혼 이후의 삶을 통해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깨닫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다음으로는 이들의 삶을 보여주는 과도한 형식적 특징을 살려 그들의 삶 자체가 하나의 쇼로 만들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을 영화를 통해 훔쳐보고 있는 관객에게 혼란을 안기면서 영화의 본질과 현실을 곱씹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보다도 <아네트>는 자신을 보는 모든 이에게 인생의 진실을 일러준다. 헨리와 안 부부처럼 우리 역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내던 자신의 바람과 감정, 그리고 진실을 항상 유념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감독이 딸과 함께 직접 영화 서사에 등장하고, 주인공의 공연을 보는 관객이 뮤지컬에 함께 참여하여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는 난해하고 어려운 만큼 다양한 측면에서 깊은 여운과 생각거리를 남긴다.
A(Acceptable, 무난함)
영화의 상징과 기원의 도움을 받아 삼중의 진실을 찾아 나서다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참석한 영화 <아네트>의 시사회 관람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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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우주 공주인데 전 여자친구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레즈, 우주, 공주!
주인공 ‘사이라’는 사랑하는 애인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데…. 라는 진부한 주제를 <레즈우주공주>는 개성 넘치게 비틀며 시작한다. 전 애인 ‘키키’를 구하기 위한 클리토폴리스의 레즈비언 공주 ‘사이라’의 24시간의 우주 여정(사실은 24시간보다 조금 안되는)이라니, 개성 넘치는 우주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영화의 비틀기는 <레즈우주공주> 속 기나긴 여정의 추진력이 되며, 관객의 입꼬리를 간지럽힌다.
비틀기에서 시작된 유머는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세심하게 계획되어 있다. 그래서 <레즈우주공주>에는 비난과 혐오가 존재하지 않는다. 키키를 납치한 ‘이성애자 백인 악당들’은 특색이 없다 못해 단순한 흰색 네모로 그려진다. 물론 영화 속 ‘악당’이니 관객으로서는 화가 나는 행동들이 있긴 하지만, 희화화된 모습의 그들은 엉성하다 못해 순수(?)하다. 마블 이야기를 하면 여자가 진짜 좋아하는 줄 아는 악당을 보여주며, <레즈우주공주>는 성소수자 혐오자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성애자 백인’이라는 성소수자들과 대척점에 있는 사람들까지도 유쾌함 속에 공존하는 모습은 혐오를 이기는 것이 혐오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러나 동성연인 관계인 여성 감독 ‘엠마 허프 홉스’, ‘릴라 바르기스’의 자전적인 (성소수자라면 한번쯤은 겪어보았을) 경험들이 영화 속에 스며들어 있기에, 갑자기 등장한 실사화의 남자성기를 상징하는 모형을 깨부시는 장면에서는 어떠한 강한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
변신! 마법공주!
사이라가 마법소녀처럼 ‘라브리스’를 꺼내는 핑크핑크한 장면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마법소녀물의 변신장면이 연상되지만 주로 비춰지는 가슴이 아닌 하체 실루엣을 부각하고, 배에서 라브리스가 꺼내지는 모습은 실제로도 감독님들이 틀을 깨기 위해 의도한 부분이라고 한다.
그리고 라브리스를 꺼낸 후 사이라 머리 위의 왕관도 함께 커진다. 공주지만 배척 당하던 사이라가 라브리스와 함께 진정한 레즈비언 왕족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라브리스는 ‘자기정체성’, 왕관은 ‘자존감’을 의미하는데, 사이라의 내면이 성장하는 모습을 ‘마법소녀 변신’이라는 컨셉에 잘 스며들게 표현한 모습이 재치있게 느껴졌다. 그 외에도 부정적 자아상을 거대한 진흙인간으로 표현하는 것과, 어린시절의 트라우마가 나타나 사이라를 압도하는 모습, 정신분석 카우치 등 영화 속에 심리와 관련된 장치들이 많이 숨어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듯하다. (다만 사이라가 광장공포증이 있다는 정보는 고증 오류로 추정된다)
<레즈우주공주>는 유머와 동시에 위로도 놓치지 않았다. 사이라가 과거를 이겨내고 자신을 수용하며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많은 공감이 될 것이고, 어머니들과 키키와의 불안정 애착에서 벗어나는 모습에서는 후련함을 느낄 것이다. 꼭 자신이 성소수자가 아니라도, 연인이 없어도 상관없다. <레즈우주공주>는 레즈이자 우주에 사는 공주의 이야기도 맞지만, 그저 성장하는 존재인 사이라의 성장기이기 때문이다.
보호막이 필요 없어지는 날까지
윌로우가 케이팝이 아니라 ‘게이팝’ 아이돌 출신이라는 것과, 손재주가 좋은 사이라의 손가락만 5개라는 사실, 그리고 사이라의 몸속에서 라브리스가 나오는 위치까지 <레즈우주공주>는 허투루 그려진 것이 없다. 이성애자들이 존재하는 우주로 가기 위한 통로이자 범우주적인 호색의 유머러스한 통통 튀는 감초 역할의 보호막도 그중 하나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사이라의 시선에서) 끔찍한 것들로부터 보호한다는 의미이지만, 이면에는 그곳에서도 그들이 보호받아야 할 소수자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 존재하는 편견과 차별을 암시한다.
마냥 즐거울 것만 같은 <레즈우주공주>의 우주 속에서도 성소수자들의 보호막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이 든다. ‘사이라’의 우주에서, 그리고 ‘우리들’의 우주에서도 성소수자들을 위한 보호막이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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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니스트 / The Pianaist
/ 감상 /
_ 사실 저번에 본 피아니스트보다 이 피아니스트를 더 보고 싶어했었는데...
전쟁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준 작품인 것 같다.
내가 여태 본 전쟁영화는 대부분 군인들의 전쟁터에서의 삶을 보여준다거나,
수용소에서의 삶을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는 실제 전쟁터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갔던 한 사람의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성을 극대화 시키고 보는이로 하여금 공감을 잘 이끌어 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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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는 슈필만의 인생의 버팀목이다.
위기의 순간마다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그가 낙담하고 인생을 포기하고 싶어질때면 피아노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더이상 가라앉지 못하게 지탱해준다.
그리고, 그의 목숨을 실제로 살려주었다.
후반부에서 독일장교를 만났을 때, 만약 슈필만의 직업이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면 어떘을까?
과연 슈필만을 살려주었을까 싶다.
피아노의 선율에 녹아들어간 슈필만의 감정이 장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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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씬은 앞에서 말한 슈필만이 장교앞에서 연주했을때이다.
슈필만이 그렇게 치고 싶어했던 피아노..
그는 이게 자신의 마지막 연주라 생각하고 모든 감정을 담아 연주하였던 것 같다.
그 장면을 보고 전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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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젠펠트가 결국 슈필만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게 된다.
난 호젠펠트의 마지막에 대하여 그리 안타깝지 않다.
그가 아무리 슈필만을 도와주었어도,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집단의 우두머리 급이었으니
그거대로 대가를 치르는게 맞다고 본다.
그를 인정하는건 그 이후에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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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연기에 박수를..
난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그 특유의 우울하고 슬픈 연기가 너무 좋다.
아련하고 우울한 연기 원탑 에이드리언 브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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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th BIFF 데일리] 우리가 지옥을 탈출하는 법
DIRECTER. 코야마 타카시
CAST. 미나미 사라, 데구치 나츠키, 요시다 미츠키
SYNOPSIS.
조용한 시골 마을의 생활은 한적하다 못해 따분하기까지 하다. 히데미, 야구치, 이와쿠마, 세 여고생은 각자의 꿈을 꾸면서, 언젠가 지겨운 고향을 탈출할 궁리를 하고 있다. 래퍼를 꿈꾸는 히데미는 어느 날 예측하지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탈출을 도와줄 위험한 물건을 손에 넣게 된다. 세 여고생은 훔친 물건으로 돈을 벌어서 최대한 빨리 마을을 빠져나가자는 황당무계한 계획을 세우고, ‘올 그린스’라는 이름의 동아리를 만들어 학교 안에서 비밀스러운 일탈을 하기 시작한다.
소녀들에게 마을은 지옥이다. 가족도 학교도 그들에겐 버팀목이 아닌 감옥과 같다. 그들은 자신의 끝이 마을에서 퍼진 소문 속 한 여자의 죽음과 같지 않을까 걱정한다. 가정 폭력을 당했고, 가정에서 도망치다 뺑소니를 당했으며, 결국 자살을 선택한 여자. 심지어 그들은 여자가 차에 치이는 순간을 목격했다. 이런 그들이 원하는 바는 하나다. 마을에서 벗어나는 것. 그들은 이를 위해 커다란 일탈을 감행한다. 마리화나를 키워 한몫을 챙겨 마을을 벗어나기로 하는 것이다. 히데미는 이와쿠마, 야구치와 함께 우연히 취득한 마리화나 씨앗을 이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그들은 학교에 ‘올 그린스’라는 원예부를 꾸려 마리화나를 키우는 거대한 일탈을 시도한다.
서로에 대한 믿음 없이는 시작할 수 없는 일임에도 세 사람이 처음부터 친밀한 관계를 맺어온 것은 아니다. 너드에 가까운 히데미와 이와쿠마는 친구였다. 하지만 야구치는 달랐다. 모두에게 인기를 얻으며, 무엇이든 잘하는 그는 히데미의 시기의 대상이자 물과 기름처럼 뒤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로 서로의 삶의 진실을 목격하게 되며, 두 사람은 가까워져간다.
나아가 범죄라는 비밀이 생기자 자연스레 세 사람의 우정은 점차 자라난다. 이는 마리화나의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는 과정과 닮아있다. 범죄라는 비밀을 공유하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비밀들을 공유하며 세 사람은 진정한 친구로 거듭난다.
이 작품은 통념적인 상큼한 청춘물은 아니다. 방황하는 청춘들을 그리며 드라마적인 요소들을 배치하되, 케이퍼 무비적인 특성을 섞으며 <올 그린스>만의 장르를 창조한다. 물론 지옥 같은 삶 속에 자신들만의 탈출구를 찾고자 일탈을 일삼는 청춘들을 그리는 작품들은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딘가 한끗이 다른 울림을 준다.
유독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여느 고등학교가 그렇듯, 장래희망을 작성하는 시간이 찾아온다. 이때 이들은 자신에겐 어떤 꿈도 없다는 듯 그저 심드렁한 표정을 보인다. 그러나 오직 세 사람만이 존재하는 시간에 나누는 이야기는 다르다. 히데미는 래퍼를, 이와쿠마는 만화가를, 야구치는 영화계에서 일할 수 있기를 꿈꾼다. 서로에게만 말할 수 있는 서로의 꿈. 지옥 같은 삶은 끝나지 않았더라도, 이들에겐 탈출구가 되어주는 서로가 있다.
영화의 엔딩을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나도 모르게 이들의 모습을 보며, 눈물에 웃음이 뒤섞였다고는 말하고 싶다. 최소한 나에게 이 작품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지 않기를 나도 모르게 바랐다. 오랜만에 보석 같은 영화를 발견한 기분이다. 아마 나에게 이 작품은 청춘영화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 같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2025.09.17~09.26)]
상영일정
0920 12: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상영 코드: 213)
0922 22:0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9관 (상영 코드: 390)
0923 13:00 CGV센텀시티 4관 (상영 코드: 430)
0925 13:30 CGV센텀시티 2관 (상영코드: 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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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홀도 우주의 일부란다.
이 글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 원스](이하 에에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출처를 반드시 표시해주세요.
온 가족의 금쪽이 탈출기;돌 굴러가는 걸로 울리면 어떻게 합니까.
사진출처:다음 메인
밥 잘 먹고. 차 조심하고. 전화세 나오니까 끊자.
김창옥 선생님의 무뚝뚝한 아버지는 늘 전화 통화를 하면 저 세 마디만 한다고 했다. 처음엔 저 말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신도 세월이 지나 아버지가 되고 나니 그 말이 아버지가 전하는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오랜만에 본 딸에게 살쪘다는 돌직구를 던지는 에블린(양자경)을 보는 순간부터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에블린이 지금 딸에게 하는 말도 결국은 사랑을 전달하는 말이니까.
딸 조이도 알았을 것이다. 저 말을 가만히 해부해보면. 살이 찐 것(=변화)을 알아챌 만큼 엄마와 자신의 사이에 단절된 시간이 존재했으며. 세월의 길이만큼 농축된 그리움도 듬뿍 실은 채 던져진 직구라는 사실을.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이 버젓하게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말을 저런 식으로 내뱉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온 부모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엄마의 말은 조이의 마음에 박혀 상처를 내기에는 충분히 예리했기에. 딸은 매몰차게 엄마에게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부모에 대한 미움 때문이기보다, 이런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신이 사회에서 더 이상은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게 되어 오는 괴리감과. 과연 그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나는 대단한 인간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괴감 때문에. 우리는 절절한 부모의 사랑 고백에도 늘 매몰차게 회를 내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한다.
돌이 되어버려 그 어떤 면에서 보아도 부족해 보이는 상태라 할지라도. 부모는 그런 자식마저도 구하겠다는 태도로 절벽에서 몸을 던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도 온 우주의 에블린을 모두 모아서.
결국 엄마의 이런 태도는 모든 것을 외면하려던 조이의 마음도 녹인다. 비수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은 보고 싶은 딸이 생각날 때마다 갈아버려 예리해질 수밖에 없었던 부모님의 마음이었고, 결국 엄마의 마음이 그렇게 날카로운 모서리를 가질 때까지 힘을 가했던 건 자신이었다는 것을 조이도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포옹을 하는 장면을 쿵 하고 뭔가 부딪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은 흡사 큰 두 우주의 융합이 이뤄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제각각의 우주, 혹은 행성으로 존재했던 구성원들이 드디어 가족이라는 우주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킥, 점프대에 대해서; 가보지 못한 길;내포하고 있는 물의 의미.
사진출처:다음 메인
[인셉션]에서는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킥이라는 동작이 필요하다. [에에원]에서는 다른 우주의 나(Myself)를 현재 우주로 불러오기 위한 동작을 점프대를 찾는다고 말한다.(참고 1)
두 영화에서 모두 어딘가(물)에 뛰어든다는 개념을 살포시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방식이 정 반대에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나”의 존재를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셉션]에서의 물의 의미는 꿈속의 망령(?)을 씻어내고 하나밖에 없는 주체를 구별해내는 것(비빔면을 찬물에 헹궈서 면”만” 건져 내듯이)에 쓰이지만. [에에원]에서의 점프의 의미는 모든 우스꽝스러운 자신의 모습이 다 들어 있는 바다로의 다이빙을 뜻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도 결국 그 수영을 채우는 물방울들 중 한 방울에 불과하기에 거기 뛰어드는 게 더 자연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에블린이 현생에서 자신이 가보지 못한 수많은 길을 점프를 통해 걸어보는 모든 행동들은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것도 다른 에블린이 아닌 나, 지질한 에블린의 삶에서.(당연히 울었다)
또한 그 어떤 화려한 조명이 자신을 비추는 삶들이 존재한다 할지라도. 지금의 삶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굳건히 발을 현재의 삶에 뿌리내리는 모습은. 결국 반짝거리며 빛나는 별들도 가까이서 보면 뜨거운 가스 덩어리에 불과함을 말해준다. 모든 인생이 그러하듯 고난이나 블랙홀이 없는 삶은 어디에도 없고. 스스로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인 “지금”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삶도. 결국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스스로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인 “지금”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이 눈물을 뿌리며 파묻어 버리고 출발한 수많은 과거 행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환상”은 언제나 현생을 괴롭히는 용도로 쓰일 뿐이다.
그래 멀티버스가 별거냐;거울나라의 앨리스 모티브+베이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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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첫 장면은(혹은 인트로) 한 작품이 가진 메시지를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하다 했다.(FEAT. 이동진 평론가님) 이 영화의 가장 첫 장면은 거울 속에 비친 삶의 한 조각이고. 그 거울 속 삶이 현실의 삶으로 대변되는 순간은. 영화의 메인 메시지 중 하나를 말해주기도 한다 멀티버스에 대한 암시와 함께. 이 멀티버스를 모두 합쳐놓아야 온전한 사람 하나가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사람을 일컬어 작은 우주라고 종종 부른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그 어떤 모습의 나라고 해도(비록 손가락이 소시지라 해도!!) 모여 있어야만 우주라고 부를 수 있는 방대함이 갖춰지는 셈이고. 이를 멀티버스에 비교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베이글의 비유도 마음에 들었다. 보통 에브리씽 베이글은 가게에서 판매하는 거의 대부분의 토핑이 붙어 있는 것으로 총칭될 텐데. 가장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지만 동시에 싫어하는 것은 골라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마치 거의 모든 인간들의 우주(=삶)가 그렇듯 아쉽다고 생각하는 블랙홀 같은 부분을 뽕 빼놓고는 스스로의 인생을 말할 수 없듯이 말이다.
단지 조이의 블랙홀은 힘들었던 부분만 가득 넣어 만들었기에 유달리 검고, 씁쓸해 보이며 빨려 들면 큰일이 날 것처럼 보이는 것뿐.
우리 모두는 그 모든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이유들로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 선택이 모여 현재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 모든 가지 못했던 길이 결국은 우리의 인생에 한가득 별로(as a star)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 그렇듯. 아무리 초라한 삶이라 해도 에블린은 현재의 삶을 지키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인생에 특별히 탐나는 별이 있다 해도. 블랙홀이 있다 해도. 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며 포용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말이 거창해서 그렇지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존재하고 있는 이 제각각의 토핑이 묻은 베이글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보니. 그래 멀티버스가 뭐 별거인가 싶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마치면서
영화적인 장면들, 혹은 흐름을 봤을 때. 호불호라는 말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멀티버스, 그리고 가족애(를 비롯한 삶에 대한 애정)라는 설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대해서가 더욱 그렇다. 분명히 새롭긴 하다. 보는 내내 어떻게 이미 정해진 결말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영화가 끝으로 가 있음을 깨닫게 될 정도다.
그러나 방식이 새롭다는 말은 익숙해지기엔 조금 먼 상대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고. 그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개인적인 선호도와 맞지 않는다고 하면 영화의 재미가 반감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 혼란스러움이 내게는 자신의 삶에 있어 존재했던 수많은 가능성(성공한다라는 뜻의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로 존재하는 가능성을 의미함)의 갈래에서 고민했던 모든 순간들을 합쳐놓은 것으로 보여 어느 정도는 납득 가능했다.
한 배우는 연기하는 데 있어 손이 못나지면 안 된다는 이유로 온 가족들이 자신에게 집안일을 일체 하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투박하고 온 마디가 굵고 쭈글거리기까지 하는 양자경의 손이 더 아름답게 느껴져 몇 번이고 눈물을 흘려야 했다.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려 영화가 담은 메시지가 영화가 가진 형식보다는 더 내 마음에는 강하고 진하게 남았다. 물론 형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합격점을 줄 수 있었고.
나도 내가 살다 살다 돌 굴러가는 걸 보고 우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참고 1
매우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점프가 완료되었을 때의 모션이나 영화 속의 주제와 비교해 봤을 때 점프대라는 단어가 나에게는 곧바로 다이빙대로 인식되었음. 그래서 물속으로 다이빙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인셉션과의 비교를 한 것임.
개인적으로는 토템을 돌리는 행동도 비교해보고 싶었으나. 너무 개인적으로 느낀 것 같기도 하고, 또, 리뷰가 3부작이 될 것 같아 접음. 요새 말이 많아져서 리뷰 짧게 쓰는 게 목표임. 네. 잘 안됩니다.
[이 글의 TMI]
1. 사랑니를 뽑았고. 매우 아팠으며 현재도 아픔.
2. 후유증이 너무 심해 스테로이드성 약 먹기로.
3. 거의 뭘 먹을 수 없어서 강제 다이어트 중.
4. 내 근손실은 멀티 유니버스의 내가 뭐 알아서 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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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존재하지 않는다](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시선의 주인, 사슴과 모자, 결말해석
Chapter 2 상류와 하류, 사운드와 이미지
00:00 하마구치 류스케
01:26 시점쇼트
03:12 사슴과 모자
05:43 결말해석
08:01 상류와 하류
10:58 사운드와 이미지
12:32 별점 및 한 줄 평
12:50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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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모든](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과거와 현재
Chapter 2 공간
00:00 새벽의 모든
01:10 과거와 현재
05:49 공간, 안팎
09:43 별점 및 한 줄 평
10:00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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