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5년 차, 막내에서 시작해 이제는 촬영팀 세컨드가 되어 열심히 현장을 누비고 있는 촬영팀 형정훈님. 지난 인터뷰 이후, 7월 6일에 방영을 시작한 tvN 드라마 <감사합니다>에서 촬영팀 세컨드로 참여 중이라고 하는데요. 드라마를 보면서 괜히 더 반갑고 가깝게 느껴지더라구요.
오늘은 촬영팀을 꿈꾸는 많은 분이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를 여쭈어보았어요. 영화를 만드는 일을 꿈꾸던 학생에서 OTT 제작 현장에서 실제 작품을 만드는 것에 참여하기까지 형정훈님의 지난 시간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Q. 요즘은 독학으로 시작하는 1인 크리에이터도 많지만, 제작팀으로 촬영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영역 같아서, 꼭 촬영 혹은 영화 전공을 해야 하는지 궁금하더라구요.
A. 만약 제대로 내가 이 일에 관심이 있다, 이 일이 해보고 싶다면 전공 관련된 공부나 대학교 이런 곳에서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 이 일에 관심이 있어서 학교가 아니라 현장으로 바로 투입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전공을 거치지 않고 오시는분 중에 저보다 더 일찍 시작하고 어린 나이에 워크플로를 이해하시고 뛰어난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0에서 시작한다고 봤을 때 저는 전공을 하면서 카메라에 관해 공부하고, 직접 촬영감독으로써 앵글을 잡고 작품을 만들어 본 경험이 좋았어요. 제 말이 정답이 아닐 수 있는데, 저는 정말 많은 도움을 느껴서 전공하는 걸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Q. 사실 영화 제작에 많은 분야가 있잖아요. 그런데 특별히 ‘촬영’을 선택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A. 우선 대학교 진학할 당시에는 연출 전공이었어요. 연출 전공을 희망해서 글도 써봤는데 ‘ 아 나는 연출은 하고 싶은데 글은 못 쓰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누군가 작가가 있다면 내가 그 글을 받아서 연출하면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너무 어린 나이에 그런걸 생각했던 것조차 너무 웃겼던 것 같아요. (웃음) 제가 현장을 봤을 때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람이 촬영 감독님이었던 것 같더라구요. 연출 감독님은 배우들과 디렉팅이라던지 모든 분야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오히려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촬영 감독님이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보다 촬영이 재미있고, 작품을 할 때마다 저의 실력이성장하는 걸 보면서 촬영 감독을 꿈꿨던 것 같아요.
Q. 학교에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길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된 거네요. 그래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는 전공을 추천했군요. 시간을 거슬러 영화전공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도 궁금해요.
A. 학생 때 ‘정말 이 직업을 하고 싶다’라는 뚜렷한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공부하고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스펙도 열심히 쌓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게 없었던 거죠. 고등학교 3학년이 되니까 이제 슬슬 장래에 대해서 고민을 해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기도 한데, 그 당시에는 전공보다 ‘학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성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교가 어디 있을까 고민하는 상황이었어요. 그즈음에 인천 아시안 게임 자원봉사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기자분께 느껴지는 에너지가 좋더라구요. 그래서 ‘아,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신문방송학과를 검색해 보니까 커트라인이 너무 높은거예요. 그래서 조금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영화를 공부하는 친구가 “내신 성적 비율보다 면접 비율이 높은 영화과가 낫지 않아?”라는 말을 해서, 자연스럽게 영화과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그때는 저는 신문방송학과나 영화 영상학과나 비슷한 계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부터 영화 좋아했잖아. ‘ ‘아버지와의 추억이 어렸을 때부터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거였잖아’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나름 영화관의 에티켓을 어린 나이부터 알고 있었다는 자부심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영화라는 게 어린 나이에 멋있어 보였어요. ‘나 영화해.’ ‘나 예술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게 멋있어 보여서 그렇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웃음) 돌아보면 우연히 운 좋게 시작한 직업이 저에게 잘 맞고 행복을 느끼며 일을 해서요. 그 당시에 저에게 영화과를 제안해 준 친구에게 정말 고맙네요.
Q. 그럼, 엄청 영화가 하고 싶었던 시네필은 아니었겠네요
A. 네, 어릴 때는 시네필은 전혀 아니었어요. 그냥 아버지가 보고 싶은 영화를 따라가서 보는 정도. <해운대> <디 워> 그런 영화 있잖아요. 누구나 보는 영화들.
Q. 그럼, 영화는 대학교에 가서 많이 보게 된 건가요?
A. 대학교 입시 준비를 할 때 영화를 진짜 많이 봤고 대학교 가서는 처음에는 찍느라 바빠서 영화를 안 봤는데 찍기 시작하다 보니까 레퍼런스에 대한 중요성을 많이 느꼈기에 그 당시에는 영화를 찾아서 봤던 것 같아요.
Q. 입시 준비하면서 보는 영화나, 연출 공부에 도움이 되는 영화는 일반 관객이 봤을 때 좋은 영화랑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혹시 촬영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를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A. 어려운 질문이네요. 촬영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영화는 정말 많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봉준호 감독님의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게봤습니다. 로저 디킨스 감독의 <1917>,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버드맨> 작품도 좋은데, 저는 기술력이 좋은 영화라고 생각해요. ‘감히 제가 따라 할 수 없는 영화다’ 그런데 특히 <기생충>이 좋았던 점은 촬영이 보이지 않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와 이 영화 촬영 진짜잘했다’라고 생각이 드는 영화도 좋지만, 제가 원하는 영화는 관객들이 촬영이 보이지 않는 영화를 찍는 게 목표였거든요. <기생충>에서수많은 무빙이 있고 수많은 앵글이 바뀌는데 이 무빙들이 ‘어? 카메라가 이렇게 움직인다’가 아니라 관객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이동시켜주는 무빙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그걸 보고, 제가 많이 착안했던 것 같아요. 아,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을 컷이나 이런 게 아니라 무빙이나포커스 이동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을 이동시켜 줄 수 있는 게 좋은 촬영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홍경표 촬영 감독님 작품을 그때 찾아봤던 것 같아요.
Q. 촬영 감독이 가져야 할 덕목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제가 졸업 영화도 찍고 그 외 작품들도 찍으면서 느꼈던 건 ‘포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 는 것이었어요. 저는 포기를 잘하는 사람이 촬영을잘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항상 컷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건 맞지만 모든 현장이 그렇듯이 시간에도 쫓기고 어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본인이 계획한 게 무너져 내리는 상황이 생기는데, 그럴 때 본인이 이건 포기하면 안 된다. 이건 포기해도 된다. 라는 결정을빨리 내릴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인물에 대한 바스트샷을 찍는데, 무빙이 살짝 못 따라온 거예요. 근데 사실 찍는 사람만 보이는 정도의 실수인데 예전이었으면 ‘아, 이거 안 된다’라고 연출 감독님이나 배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 무빙이 지금 마음에 안 들었다. 한 번만 더 가자’라고 이야기했을 텐데, 연차가 쌓이면서는 전체를 조금 더 보게 된 것 같아요. 제작 시간을 고려해 보면 이 영화, 작품을 완성 시키는 게 더 우선이기 때문에 ‘이 바스트샷보다 내가 그 뒤에 힘써야 할 부분이 있으니까, 거기에 더 집중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그 컷에 대한 욕심을 포기를 했는데 나중에 편집을 붙여놓으니까 괜찮은 거예요. 그 부분을 사용하지도 않았고 그 부분을 만약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배우들의 감정을 따라가는 걸 원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집중을 하다 보니까 그게 안 보이는 거예요. ‘아, 내가 이걸 포기를 한 게 잘한것 같다’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 이후에도 포기를 하냐 안 하냐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리고 했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Q. 포기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려야 한다니, 어렵고 책임감이 따르는 선택이네요. 혹시 감독님의 MBTI는 뭔가요?
A. 대학생 때는 ENFP가 나왔었는데 졸업하고 일을 하면서 INTJ로 바뀌었어요. (웃음) 아무래도 객관적이어야 하는 시선들도 많이 필요하고, 촬영 현장에서는 항상 모든 상황에 대해 계획을 해야 하거든요. 제가 지금 모시고 있는 감독님한테도 항상 듣는 게 이런 상황이 놓였을 때연출 감독님한테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요? 라고, 말할 때, 그것 말고도 두세 가지의 대안을 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항상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래서 계획적으로 사람이 변한 게 아닌가 싶어요. (웃음)
우연히 관심을 가지게 된 일이 즐겁고 행복해서, MBTI마저 바뀌어 버린 형정훈님.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열심히 영화를 보고, 원하는 촬영 방법에 관해 공부하고 완성도 있는 작품을 위해 촬영감독으로써 해야 할 일과 책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이제 영화를 볼 때 기술적으로 잘 찍은 촬영과 관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촬영이 어떻게 다른지 눈여겨보게 될 것 같아요. 다음 주엔 실제 촬영 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들을 들어보려고 합니다. 다음 주도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