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6-30 03:45:39
[N년전 오늘의 영화] 인어 공주
영화 <인어 공주>가 궁금해?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저번 주에 처음 시작한 시리즈죠!
바로 N년 전, 오늘 개봉한 영화에 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오늘은 18년 전에 개봉한 박흥식 감독의 <인어 공주>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네이버 영화
영화 <인어 공주>는 영화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천국의 아이들>, <해어화>의 감독인 박흥식 감독의 영화입니다.
<인어 공주> 속 주인공 '조연순'은 바로 감독의 어머니 성함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나영과 연순을 연기한 전도연 배우와 진국을 연기한 박해일 배우의 풋풋한 리즈 시절의 모습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인어 공주>는 백상예술대상에서 감독상을 받았으며, 디렉터스 컷 어워즈,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대한민국 영화대상 등 유수한 영화제에서 수상하였습니다.
영화 <인어 공주>는 왓챠에서 시청할 수 있으며,
웨이브, seezn, U+모바일tv에서 대여하여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인어 공주>의 T.M.I
1. 전도연 배우의 노력
ⓒ 네이버 영화
전도연 배우는 해녀 역을 소화해 내기 위해 약 2개월간 물질을 배우며,
수중 촬영 장면에서 대역을 쓰지 않고 직접 촬영에 임했다고 합니다.
2. <인어 공주> 촬영지
ⓒ 네이버 영화
영화 <인어 공주>의 80% 이상의 장면이 바로 우도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집 한 채를 빌려 연순이 사는 집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땅콩밭을 사고, 간판을 바꿔 보건소를 우체국으로 만들고, 우체국의 내부는 노인회관으로 개조해 제작하였습니다.
3. 오해받은 전도연 배우
ⓒ 네이버 영화
전도연 배우는 촬영 기간 중 운동을 하기 위해 모자를 눌러 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나갔는데 주민들이 이를 오인해 경찰의 검문에 응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4. 박해일 배우의 노력
ⓒ 네이버 영화
배우 박해일은 영화 크랭크인 전부터 우도에 내려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자신에게서 '진국'이라는 캐릭터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5. 전도연 배우와 박흥식 감독
ⓒ 네이버 영화
박흥식 감독과 전도연 배우는 2001년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작업했고,
이후 3년이 지난 2004년 <인어 공주>에서 재회하였습니다.
<인어 공주>와 비슷한 작품
<인어 공주>와 비슷한 소재를 가진 손예진, 조승우, 조인성 주연의 영화 <클래식>.
<클래식>은 <인어 공주>와 비슷하게 엄마의 첫사랑의 이야기를 딸이 보게 되는 소재이며,
두 영화 모두 엄마와 딸 역할을 한 배우가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클래식>은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U+모바일tv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씨네랩 에디터 Hizy
Relative contents
-
- 영화 마크맨 후기 / 테이큰은 벌써 13년전 / 은퇴한 해병대의 멕시코 갱들 참교육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마크맨”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액션영화, #로드무비, #리암니슨, #마약카르텔
-
- 패스트 라이브즈 - 셀린 송 감독과 유태오 배우가 그리는 새로운 화양연화
-
12살의 어느 날, '해성'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첫 사랑, '나영'. 12년 후,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다 SNS를 통해 우연히 어린시절 첫 사랑 '해성'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한 번의 12년 후, 인연의 끈을 붙잡기 위해 용기 내어 뉴욕을 찾은 '해성'. 수많은 "만약"의 순간들이 스쳐가며, 끊어질 듯 이어져온 감정들이 다시 교차하게 되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기억일까? 인연일까?
-
- 영화 <노스페라투> 메인 예고편
"그가 오고 있어…" 100년만에 다시 깨어난 노스페라투 ⚰️ 영원한 어둠 속 '그'가 점점 다가온다!
-
- 영화 <강릉> 30초 예고편
강릉 최대 조직의 ‘길석’
평화와 의리를 중요시하며 질서 있게 살아가던 그의 앞에
강릉 최대 리조트 소유권을 노린 남자 ‘민석’이 나타난다
첫 만남부터 서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둘,
‘민석’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두 조직 사이에는 겉잡을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는데..
거친 운명 앞에 놓인 두 남자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 SF의 탈을 쓰고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블랙 코미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섬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최첨단 교도소에서 자타가 공인한 천재 과학자 '스티브(크리스 헴스워스)'는 실험에 자원한 재소자들에게 행복, 번뇌, 성욕, 복종 등의 여러 감정을 조절하는 여러 신약을 테스트한다. 자칫 비인간적일 수도 있는 이 실험은 죄수들이 주립 교도소에 갇히는 대신 자원해서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많은 자유가 그들에게 주어진 다는 사실에 의해 정당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음주 운전으로 아내와 친구를 사망에 이르게 한 죗값을 갚기 위해 실험에 자원한 '제프(마일즈 텔러)'는 프로젝트의 목적과 주체에 의문을 품는다.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약물을 주입하도록 시키는 스티브를 보면서 의구심이 피어난 것이다. 해당 실험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자 제프의 의심은 더욱 커지고, 사랑을 싹 틔워가던 '리지(저니 스몰렛)'에게 약물을 주입하라는 스티브의 명령에 그는 마침내 반발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파이더헤드>는 조지 선더스의 단편 소설 <Escape from Spdierhead>를 영상화한 작품으로, <트로: 새로운 시작>, <오블리비언>, <온리 더 브레이브>에 이어 올해 <탑건: 매버릭>까지 연출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줄거리나 예고편만 봐도 느껴지듯이 <스파이더헤드>는 과학 기술 발전의 명암 중 암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다. 비인간적 실험을 진행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해당 실험이 인류의 발전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자유 의지 박탈당한 이들이 저항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 영화를 SF 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블랙 미러>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SF 스릴러의 분위기를 풍기던 초반부가 지나가면 <스파이더헤드>는 과학 연구 윤리를 매개로 '무엇이 옳은 행위인가'에 대해 보다 일반적인 윤리적 논쟁이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각기 다른 삶의 가치를 지닌 두 인물이 있다. 우선 제약사 주인이자 실험의 기획자인 스티브는 철저한 공리주의자다. 공리주의자는 효용의 극대화를 옳은 행위라고 본다. 개개인의 행위에 깃든 본래 가치와 무관하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행위는 많이 이루어질수록 좋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한 개인의 행동이 직접 초래한 결과와 그의 간접적인 개입이 유발한 사건의 결과가 구분되지 않는다.
실제로 공리주의자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책임을 부여한다.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물론, 다른 개인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를 막지 못한 책임까지도 요구한다. 이는 개인에게 지나치게 과한 도덕적 부담을 주고, 개인을 의도와 계획을 지닌 주체로 고려하지 않으며, 그들의 정체성을 추상화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결과 공리주의자 개개인은 자신의 신념이나 판단력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대신, 효용의 극대화라는 기준을 충실히 따르며 자기 자신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킨다. 그래서 공리주의를 따르는 개인은 효용 극대화의 통로이자 수단에 불과해진다.
실제로 스티브는 실험에 자원한 모든 죄수들을 동등하게 대한다. 그들의 죄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든 간에 그들은 사회적 이익을 감소시키는 범죄를 저질렀고, 따라서 의도적인 범죄와 실수의 차이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자신들의 죗값을 씻겠다는 도덕적인 이유로 실험에 자원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이러한 그의 관점에서 보면 범죄자의 인권은 말살해도 마땅하며, 처벌 대신 승인한 인권침해 실험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이 통제를 따를 수 있게 되면 더 큰 선의와 대의를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평화와 화합이라는 가치를 전파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가 모든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심지어 사랑하는 이를 해치는 일까지 하게 만드는 약물인 B-6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다하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제프의 죄책감을 자극해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으며, 자기 자신에게도 약물을 주입한다. 그렇게 죄수들과 제프, 그리고 본인까지도 수단으로 이용한다.
반면에 제프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지극히 칸트적인 이유로 스티브의 실험에 반대한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며, 타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 법칙을 만들고 이를 지킬 자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존엄한 존재이고, 따라서 인간은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프에게 약물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다수의 효용을 극대화할 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활용하는 기제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유의지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스티브의 신념에 비해 더 직관적으로 동의하기 쉬운 제프의 서사에 영화가 의도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덧붙인다는 점이다. 영화는 제프와 리지가 범죄자들이지만 결코 나쁜 인물은 아니라고 묘사한다. 제프의 교통사고는 한순간의 치기 혹은 실수였을 뿐이고, 리지가 딸을 살해한 것 역시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 과실치사였다면서 그들의 선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 경우 본래 선한 인물인 이들의 자유의지를 핍박하는 스티브와 그의 신념을 악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제프와 리지의 과거사는 그 자체로 그들의 항변과 비판의 반례가 된다. 어찌 되었건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기로 결정한 제프의 자유의지, 한여름에 아이를 차에 태운 채 출근하기로 한 리지의 자유의지가 그들의 비극과 범죄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프의 서사에 윤리적 정당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하며, 이는 작중 선인과 악인을 명확히 구분하고 옹호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블랙 코미디로서 <스파이더헤드> 특유의 기괴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곧 제프의 입장은 직관적으로 옳다고 느껴진다. 사람을 도구로 쓰지 말라는 주장에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대한 경계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형국에서는 시의적절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메신저 때문에 메시지에 잡음이 생기다 보니, 역으로 극단적인 공리주의자인 크리스의 괴변은 더 인상적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 의해 보육원에 버려졌고 이후 단 한 번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는 스티브의 개인사가 간결하게 제시되면서 오히려 그의 광기에 설득력이 더해준다. 피실험자들 중 사망자가 나와도 그저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크리스 햄스워스의 소름 끼칠 정도 생생한 연기도 큰 몫을 해낸다. 이러한 제프와 스티브 사이의 불균형은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내기 위해 의도된 측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작자인 조지 선더스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기존의 도덕적 가치관을 포함한 여러 기준점이 뒤틀려버린 미래의 기묘함을 글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다. 약물에 취한 스티브가 마주하는 최후도 이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이는 스티브의 조수인 마크의 역할이 중요성에 비해 제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작중 스티브의 악행, 도를 넘은 광기, 극단성은 그의 논리에 내포된 자유의지의 침해라는 취약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스티브의 악행을 외부에 고발한 마크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미 논변의 정당성을 잃은 제프보다도 스티브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캐릭터다. 스티브의 연구에 자발적으로 합류했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연구를 포기하고 스스로 연구 윤리를 어긴 책임을 다하는 그는 스티브의 진정한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마크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직관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쉽사리 반박하기 어려운 스티브의 신념에서 비롯된 딜레마와 그로 인한 불쾌함이 덜 부각되고, 이는 블랙코미디로서의 매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그래서 <스파이더헤드>는 적은 인물에게만 초점을 맞춘 채 그들의 심리적인 갈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한다.
문제는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단점들을 반복한 나머지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루하다는 점이다. 특히 <오블리비언>과 유사한 문제점을 답습한 것이 눈에 띈다. <오블리비언>에서 코신스키 감독은 여러 가지 복선을 던지면서 초반부를 다소 길게 끌다가, 특정 사건을 분기점으로 후반부에 급전개를 선보인 바 있다. <스파이더헤드>도 마찬가지다. 실험 과정과 제프의 생활상을 오가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제프와 스티브의 갈등이 외면적으로 분출되는 순간 절정에 도달한다.
그런데 <스파이더헤드>의 원작이 애초에 단편이었던 관계로, 긴장감을 끌어올려야 할 초반부의 에피소드들은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면서 공허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몇 안 되는 등장인물만으로 전개되고, 화면 전환의 속도도 빠르지 않아서 매 장면마다 분량에 비해 정보량이 적은 느낌이 들다 보니 더욱 그렇다. 또한 후반부는 과하게 압축되어 주인공들의 심리적 흐름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위 문제들이 한데 모인 결과 윤리적 딜레마를 지적하는 영화의 통찰은 결코 깊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블랙 코미디로서 목표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따라서 <스파이더헤드>는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조합에 비해 알맹이가 부족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참신한 소재로 눈을 사로잡지만, 그 시선을 2시간 동안 고정시키지 못하는 수많은 넷플릭스 영화들의 전철을 그대로 따른다. 결국 <스파이더헤드>는 팝콘 무비로서, 또 조셉 코신스키 감독과 마일즈 텔러의 <탑건: 매버릭>과 크리스 햄스워스의 <토르: 러브 앤 썬더>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 그치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소재만 그럴싸한 수많은 넷플릭스 영화의 전철을 착실히 따르는 범작
-
- 시대를 노래했던 카나리아
이 글은 영화 [엘비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풍미했다는 말이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설적이라는 표현까지 들어야 했던 특유의 몸짓과, 노래실력으로 단숨에 제왕의 자리에 올라간 그였지만. 모든 아이콘들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그만의 어려움들이 있었고. 풍파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영화 [엘비스]는 그 전설의 시작에서부터 쓸쓸한 마지막 모습까지를 세 시간에 걸친 이야기로 풀어낸다. 음악 영화라는 틀에 갖혀 노래에 치중된 영화이기보다는, 가수가 아닌 엘비스의 모습과 그의 인생에 존재했던 고뇌들에 대해서도 함께 하고 있어. 드라마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신예 오스틴 버틀러의 싱크로율 높은 연기와 톰 행크스의 안정적인 연기가 합해져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으며, 다양한 화면 전환 또한 늘어질 법한 분위기를 반등시키는데 한 몫 한다.
핑크 캐딜락과 지팡이;꿈과 현실을 색으로 표현하기.
사진출처:다음 영화
엘비스의 어머니가 늘 꿈에 그리던 것은 핑크 캐딜락이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품은 아니기에 소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인생에 자괴감을 가져다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가끔 꺼내 보면 온 마음에 들어찬 퀴퀴한 현실을 한 번씩 쓸어내릴 수 있을 만큼 강한 바람 정도는 되어주는 것.
파커 대령(톰 행크스)을 만나기 전까지. 엘비스의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을 견뎌내며 걸어나가는데 꼭 필요한 지팡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저 언덕 너머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핑크 캐딜락을 향해 아주 더디지만 확실한 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들.
대령은 이미 작은 캐딜락을 가지고 있었지만. 엘비스를 처음 본 순간 이제는 새로운 버전의 차를 몰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엘비스는 그에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절대 놓아서는 안 되는 지팡이었다. 그것도 절대 부러져서도. 그렇다고 늘어나는 대령의 탐욕이 무거워 버티기 힘들다고 투덜대는 일이 없어야만 하는 고분고분한 지팡이여야만 했다.
그에 반해 늘 지팡이 같은 존재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엘비스를 지탱해 주는 것은 하나둘씩 자신과 멀어져 갔다. 캐딜락처럼 빛나는 삶을 사는 것은 누군가가 보기에는 번지르르하다못해 미끄러질 것만 같은 삶이었지만. 마음의 근간을 하나씩 잃은 엘비스의 삶은 점점 무너져내린다.
남들이 다 부러워할 것 같은 핑크 캐딜락의 삶을 살지만. 오히려 단조로운 현실에 겨우 발맞출 수 있었던 예전의 삶보다 색을 잃어 흑백으로, 혹은 빛바래지는 후반부의 엘비스를 보고 있으면. 그 반짝거림으로 자신의 초라하고 비어가는 마음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파커가 미켈란젤로가 될 수 없었던 이유;원석과 보석 사이의 딜레마
사진출처:다음 영화
세상 거의 모든 것은 원본이 개정본, 혹은 복제본 보다 가치 있다고들 말하지만. 반대가 되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원석일 것이다.
소위 말하는 빵 뜬 연예인들에게 이제서야 발굴된 보석이라거나. 이런 원석이 대체 여태 어디에 숨어 있었냐는 말을 하는 것만 봐도. 원석과 보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파커 대령은 원석에 가까웠던 엘비스를 발굴해냈고. 그 원석이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되도록 세공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덕분에 신경증 정도로 치부되어도 별말 할 수 없었을 다리(혹은 하반신)를 떠는 것조차도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로 만들어 냈다. 그렇다. 파커가 Nobody를 Somebody로 만들어준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파커는 세공 방법에 대한 지분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나 허락된 빛(Light)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했다. 마치 엘비스는 자신이 아니었으면 암흑 속에 영원히 갇혀 있었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듯이.
옹졸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엘비스의 고삐를 틀어쥔 그가. 모든 것을 무대에 쏟아낸 채 커튼 뒤에서 기진 맥진한 엘비스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에서. 문득 그가 미켈란젤로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상을 만들 때. 돌 속에 숨겨진 형상을 해방시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었던. 이미 돌 안에는 완성된 무언가가 있었고. 자신은 그저 불필요한 것을 없애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세기의 예술가 말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대령이 스스로가 그저 협잡꾼에 불과함을 깨달아서 울길 바랐다. 그렇게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채 무릎을 꿇은 저 엘비스를 사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원래 완성된 상태로 그저 현실에 가려진 상태였음을 느꼈기 때문에 울었기를 바랐다.
시대의 카나리아;노래로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하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지금은 모두 센서로 대체되었지만. 예전에는 석탄을 캘 때 발생하는 가스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가스 탐지기처럼 이용했다.
투명한 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작업을 멈추었다. 물론 이렇게 죽어가는 카나리아의 비용과 그 죽음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 어려움을 덜기 위해 나중에는 새가 활기를 잃으면 공기를 주입해 되살리는 시스템까지 갖추어져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광의 카나리아.라는 말은 다가오는 위험을 먼저 알려주는 존재를 뜻하는 말로 지금까지도 여겨지고 있다.
시대의 모든 변화 앞에 서 있었던 엘비스를 보며. 마치 그 시대의 카나리아 같다는 생각이 영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쓰러져서는 안 되는 존재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각종 약물을 투여하는 장면까지도 말이다.
어차피 모든 위험. 혹은 비난은 엘비스가 감수할 테니. 엘비스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늘 극한까지 등 떠밀어댔고. 주변에 아무도 없이 모든 위험을 피부 하나로 다 느껴야 했을 엘비스는 그저 그 두려움을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노래로 하는 것 외에 자신이 가진 수단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실제 엘비스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공연에서. 그는 더 이상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자신은 이제 한계까지 왔다고 퍼덕이면서. 환호의 박수가 아닌 애처로움의 눈물이 먼저 터졌다.
이런 나의 감상도 어떻게 보면 이미 그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같잖은 위로 같기만 했다. 만약 나 역시 그 시대에 있었다면. 그의 절규에 그저 잘한다며 손뼉을 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의 마지막 공연 모습이 계속 눈에 밟힌다.
마치면서
빠른 전개와 눈을 사로 잡는 화면들. 그리고 엘비스가 음악이라는 것에 빠져드는 것을 묘사하는 초반 10분 시퀀스는 그 누구의 마음도 뺏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또한 거의 세 시간에 달하는 런닝 타임도 잘 분배하고 조절해서 그다지 지겹다거나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물리적 시간이 주는 괴로움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이토록 괴로운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마치 [나이트 메어 앨리]를 보는 것 처럼 환각과 현실 사이에서 힘들게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엘비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황제의 뒤안길이 쓸쓸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프지만. 그가 우리에게 준 유산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 글의 TMI]
1.독일어..갑자기 너무 어려워졌어요...
2. 하지만 포기하는건 부끄러워서 못하겠음.ㅠㅠ
3.그래서 엉엉 울면서 매일 하고 있는데.
4.근데 이제 거기 복숭아랑 망고를 잔뜩 끼얹은 공부를 하고 있죠(?)
구독과 댓글, 좋아요는 초보 크리에이터에게 큰 힘이 됩니다.
-
- 밀레니엄의 환희와 청춘의 질감에 관한 인상적인 스케치
술 냄새가 난다. 담배 냄새가 난다. 땀 냄새가 난다.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냄새가 난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정액 냄새도 문득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다. 시끄럽다. 클럽 음악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내내 쿵쾅거린다. 싸우는 소리가 난다. 불평하는 소리가 난다. 서로를 원망하는 소리가 난다. 홀로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난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난다. 저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 청춘의 냄새, 청춘의 소리다. 이 지독한 냄새와 소리 속에서, 여성 청년 비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
2001년의 대만, 고등학교를 중퇴한 비키는 남자친구 하오하오와 동거 중이다. 하오하오는 ‘예술적 퇴폐’를 지향하는 남성이 갖고 있는 쓰레기 같은 전형성을 고루 갖추었다. 돈을 벌지 않고 여성의 노동에 의존한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를 훔쳐 경찰 조사를 받을지언정 결코 직접 노동하는 법은 없다. 하오하오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비키를 의심한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다는 망상이다. 자신이 노동하면 비키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하오하오는 이런 가능성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하오하오는 클럽 음악을 만들고 친구들과 술 마실 때만 생기가 돈다. 가끔 욕구가 일어 다짜고짜 비키에게 관계를 요구할 때만 다정해진다. 자기 신세의 비참함에 심취해 마약을 하고 이를 말리는 비키를 경멸한다. 그렇다. 하오하오는 자신의 자발적, 의도적 비루함을 예술가의 고난으로 오독한다. 비키의 몸과 돌봄, 노동에 극단적으로 기생하면서도 그녀에게 군림하려 든다. 치가 떨릴 만큼 익숙한 인물이다(이상의 〈날개〉를 떠올려보라).
소란 끝에 비키는 하오하오를 떨쳐낸다. 그러고는 클럽 관리자 격인 잭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잭은 책임감이 있고 점잖다. 하오하오가 갖추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는 비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떠난다. 비키는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일본에 따라간다. 잭은 그녀를 위해 숙소를 잡아주었고,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비키는 끝내 잭의 비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혼자 남는다. 잭에게는 비키와의 관계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두 남자가 떠나간 후, 비키는 그제야 홀로 선다.
비키를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왜 저런 남자들이랑 붙어 있냐’라는 책망은 그 욕망의 소유자도 적당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우리 모두는 종종 알 수 없는 동기로 이해 못 할 선택을 내린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다. 욕망과 충동의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 후과를 알맞게 갈무리하는 것이 성인의 자격이다.
불쾌한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 찬 비키의 2001년은 지극한 성장통의 시기였다. 하오하오는 비키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마다 애원하며 그녀를 붙든다. 그는 자신이 쓰레기인 것을 안다. 만에 하나 ‘예술가’로 성공하면 미련 없이 비키를 버리겠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도래하기까지는 기생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 자신을 품어줄 여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오하오는 그래서 비키에게 더더욱 매달린다. 비키는 이를 관계의 특별함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하오하오의 곁에 머물렀다. 잭은 상대적으로 비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녀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비키는 잭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닌 친밀한 타자일 뿐이다.
세상의 떠들썩한 환호와 함께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비키에게 지리멸렬한 현실의 연장에 불과했다. 오히려 모두가 희망적인 미래만을 말했기에 비키가 살아가는 현재의 형편없음이 더욱 극화되었다. 2001년 겨울, 비키는 하오하오와 잭을 거친 후에야 자신만의 뒤늦은 밀레니엄을 마주한다.
영화는 내내 명멸하듯 깜빡거리는 불빛과 뿌옇게 번진 빛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카메라에 담긴 대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것을 뒤엉켜 보이게 하는 이 이미지들은 청춘의 열악한 삶을 환기하는 시청각적, 후각적 자극과 맞물려 비키가 살아가는 현실의 혼탁함을 구체화한다. 비키가 문제적 남성들을 떨쳐내고 하얗게 눈 덮인 일본의 한 마을에서 마침내 혼자가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쌓인 하얀 눈은 어둡고 음습한 방의 뿌옇고 경계가 불분명한 혼탁한 이미지들을 단번에 무력하게 만든다. 일상적 장소에서의 이탈은 종종 시공간의 감각을 새로이 배열하여 기존의 감각을 성찰할 자원이 되어주고는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두 남자에게 연루되어 고통받던 비키는 이 극명한 빛의 대비와 일상적 시공간에서의 이탈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계기를 마련한다. 두 남자로 상징되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적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밀레니엄의 환희에 뒤늦게나마 동참하는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8월 5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8월 5주 개봉영화!
리미트 Limit , 2022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새로운 패러다임
영화 "리미트"는 아동 연쇄 유괴사건 피해자 엄마의 대역을 맡은 생활안전과 소속 경찰 '소은'이
사건을 해결하던 도중 의문의 전화를 받으면서 최악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기존의 범죄 스릴러가 사건의 타깃과 그 타깃을 추격하는 일방적인 관계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리미트"는 사건을 쫓던 중 범인이 대상을 변경하는 '타깃 스위치'라는 과감한 설정을 통해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역전되는 예측불허한 전개를 이끌어냅니다.
"리미트"는 일본 추리 소설의 대가 故 노자와 히사시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탄탄한 스토리텔링에 한국인의 감성을 더해,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에게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압도적인 서스펜스로 극장가를 사로잡을 범죄 스릴러!
추천영화 "리미트" 입니다.
-----------------------------------------------------------------------------------------------------------------------------
시맨틱 에러: 더 무비 Semantic Error , 2022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극장판
영화 "시맨틱 에러: 더 무비"는 컴공과 '아싸' 추상우의 완벽하게 짜인 일상에 에러처럼 나타난 안하무인 디자인과 '인싸' 장재영,
극과 극 청춘들의 캠퍼스 로맨스를 극장판으로 확장한 작품입니다.
"시맨틱 에러: 더 무비"는 8주 연속 왓챠 TOP 10 1위,
OTT 콘텐츠 트렌드 1위, 왓챠피디아 평점 4.5점 등 기록적인 수치를 세우며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인데요
영화 역시 일찌감치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어 예매 오픈 1분 만에 전 상영 회차가 초고속 매진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개봉을 앞두고 열린 프리미어 상영회까지 예매 오픈 직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성격부터 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다른 두 사람의 가슴 설레는 캠퍼스 로맨스!
추천영화 "시맨틱에러: 더 무비" 입니다.
-----------------------------------------------------------------------------------------------------------------------------
썬다운 SUNDOWN , 2021
봉준호 감독이 뽑은 2021년 최고의 영화
영화 "썬다운"은 한 남자의 일탈이 불러온 예측 불가능한 실존의 미스터리를 그린 작품 입니다.
멕시코 해변으로 휴가 온 부유한 영국인 '닐'의 알 수 없는 일탈이 불러온 끔찍한 사건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작으로 선정되어 전세계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칸영화제 3관왕과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워대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젊은 거장
'미셸 프랑코' 감독과 '팀 로스', '안티크라이스트','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만나 서늘한 서스펜스 미스터리를 만들 예정입니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찬사 받은 팀 로스의 연기력!
추천영화 "썬다운" 입니다.
-----------------------------------------------------------------------------------------------------------------------------
-
- 피노키오, 너는 이미 '진짜 아이'인 걸
공통점
홀로 사는 목공, 제페토 할아버지가 나무인형 '피노키오'를 만든다. 제페토는 잠들기 전, 푸른 요정에게 "피노키오를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달라"라고 소원을 빈다. 그 소원을 들은 푸른 요정은 마음씨 착한 제페토의 소원을 들어주어 피노키오를 살아 움직이게 만든다.
푸른 요정은 나무로 만든 소년인 피노키오에게 "남을 먼저 생각하고 착하고 용감한 소년이 되어야만 진짜 아이가 될 수 있다"라고 조건을 건다. 그리고 피노키오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귀뚜라미 '지미니 크리켓'이 양심이 되어 도우라고 지시한다.
제페토는 살아 움직이는 피노키오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낸다. 하지만 학교에 가던 중, 피노키오는 사기꾼 여우인 어니스트 존과 그의 부하 고양이 기디온을 만난다. 그들의 꾀임에 넘어간 피노키오는 인형극의 단장인 '스트롬불리'에게 팔려가 공연을 하게 된다. 욕심쟁이 스트롬불리는 피노키오 덕에 돈을 많이 벌자, 피노키오를 새장에 가둔다. 그 사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피노키오를 찾기 위해 제페토는 밤거리를 돌아다닌다.
피노키오는 새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하지만, 집에 돌아가던 중에 이번에는 '오락의 섬'에 끌려가게 된다. 그곳은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당나귀로 만들어 파는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피노키오는 당나귀 귀에 꼬리까지 생겼지만 가까스로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이미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찾기 위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간 상태였다. 아빠를 구하러 간 피노키오는 먼스트로라는 고래 뱃속에 제페토와 함께 갇히고 만다. 제페토와 피노키오는 고래 뱃속에 불을 피워 재채기를 하게 만들어 먼스트로가 입을 벌렸을 때 탈출한다.
아빠를 무사히 바닷가로 데려온 피노키오는 용감하고 착하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진짜 아이'가 된다.
차이점
1. 요정을 대하는 지미니 크리켓의 태도
알다시피 실사판 [피노키오]에서는 푸른 요정이 민머리의 흑인으로 나온다. 이와 다르게 애니메이션에서는 푸른 요정이 백인에 금발의 머리를 하고 있다. 별것 아닐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애니메이션과 실사판을 비교하며 볼 때 지미니 크리켓의 태도가 너무 달랐다.
백인 요정이 나왔을 때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스스로 나서서 피노키오의 양심이 되겠노라고 자처한다. 요정이 시키기도 전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하는 등 예의를 차리면 차렸지 함부로 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흑인 요정이 "이 아이의 양심이 되어 주겠니?" 하고 요청하자 칼같이 거절한다. 그러다가 요정이 갈 데 없이 떠돈다고 팩트 폭력을 날려 버리자 마지못해 알겠다고 한다.
이런 작은 디테일이 논란을 더욱 키운다고 생각한다. 세월이 많이 흐르기도 했고, 실사판을 거치며 많은 것이 각색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백인과 흑인을 대하는 곤충의 태도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온전히 똑같이 재현할 것까진 없겠지만, 적어도 우호적인 태도는 유지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푸른 요정, 어니스트 존과 기디온의 반복등장
어니스트 존과 기디온은 영화 [피노키오]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악당이다. 이 인조 사기단인 여우와 고양이는 학교에 가고 있는 피노키오를 꾀어내 극단으로 향하게 만든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이 사기단이 피노키오를 스트롬불리와 오락의 섬으로 이끄는 역할을 모두 수행하지만, 실사판에서는 처음에 딱 한 번 등장하고 만다. 애니메이션에서의 움직임을 제법 재미있게 잘 살렸는데, 극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위해 각색한 듯하다.
푸른 요정의 등장 횟수도 다르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처음 피노키오가 말을 하게 되었을 때, 피노키오가 새장에 갇혔을 때, 총 두 번 등장한다. 하지만 실사판에서는 처음 한 번 등장하고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피노키오와 제페토가 집으로 돌아갈 때 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긴 하지만) 이런 각색 덕분에 피노키오의 '모험'을 잘 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3. 피노키오가 겪는 시련
영화에서 피노키오는 끊임없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하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과 대가를 애니메이션에서는 피노키오에게 온전히 지우곤 한다. 때때로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린아이에게 가혹하다. 하지만 실사판에서는 피노키오가 선택한 일들을 아이의 책임으로 돌리기보단 나쁜 어른들과 사회의 어두운 단면 때문에 순수한 아이가 유혹의 길로 빠진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애니메이션에서 피노키오는 자신의 선택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다. 그 때문에 벌을 받는다는 느낌이다. 새장에 갇혀 푸른 요정을 만나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피노키오는 갱생 불가한 나쁜 소년처럼 보인다. 오락의 섬도 마찬가지다. 어니스트 존에 발 놀림에 꾀이긴 했지만 애니메이션에서 피노키오는 그 섬에서 노는 것을 즐긴다.
하지만 실사판에서 피노키오는 꿋꿋이 학교에 갔다가 쫓겨나고 만다. 나무 인형은 학교에 올 수 없다는 교장의 발길질과 아이들의 비웃음. 비정한 사회의 편견이 피노키오를 결국 스트롬불리의 극단으로 내몰고 만다. 또한 실사판 피노키오는 오락의 섬에서의 행동들에 거부감을 느낀다. 맥주를 마시지도, 물건을 부수지도 않는다.
그 때문인지 지미니 크리켓의 태도도 많이 변한다. '어디 한 번 나 없이 잘 해봐라!'하는 태도에서 '우리 피노키오를 내가 지켜야 해!'하는 모멘트로 말이다.
4. 파비니아의 등장
파비니아는 실사판에서만 등장하는 인물로 스트롬불리가 노예처럼 부리는 인형 조종사다. 파비니아는 등장인물 중에 유일하게 피노키오를 도우려는 선한 인물이다. 또한 인형 조종사들과 함께 스트롬불리를 감옥에 보내고 평등한 인형 가족 극장을 만드는 정의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물의 등장은 피노키오를 학교에서 쫓아내거나, 새장에 가두거나, 당나귀로 만들어 내다 파는 나쁜 어른들 속에서도 착한 어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물론 영화 자체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기에 희망과 어른에 대한 믿음을 주려는 의도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영화를 보는 어른들에게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상평
실사판 [피노키오]는 애니메이션과 전체적인 맥락과 흐름은 같지만, 중간중간 각색된 디테일들이 돋보이는 영화였다. 무엇보다 피노키오의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성장을 중요시했다는 점에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피노키오가 어린아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는 것도 장점 중 하나다. 요정에 대한 논란이 약간 아쉽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좋았다.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눈여겨보지 않으면 피노키오의 무릎 뒤의 이음새가 변하는 것을 눈치채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알고 피노키오가 '진짜 소년'으로 변했다고 생각해 조금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 이음새가 사라질 때 푸른 요정의 증표인 파란 불빛이 반짝이지 않는다.
"넌 언제까지나 나의 진짜 아들이란다. 뭐 하나도 바꿀 게 없단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그리고 널 많이 사랑한단다."
제페토는 자신을 구해준 피노키오에게 말한다. 이미 피노키오는 자신에게 진짜 아들이라고. 그리고 이 말은 피노키오가 '진짜 아이'로 변한 것이 말 그대로 '변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다른 사람에게 피노키오는 여전히 나무인형에 불과하지만, 제페토에게만큼은 진짜 아이 못지않은 소중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제페토와 함께 걸어가는 피노키오의 뒷모습은 진짜 아이처럼 보이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게 해주는 지미니 크리켓처럼, 우리는 언제나 아이들의 양심이 되어야 한다. 귓속에서 작은 목소리로 언제나 알려줄 수는 없더라도 행동을 함으로써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다.
피노키오가 나무로 만든 아이라서, 진짜 아이가 아닌 가짜 아이인 걸까? 그건 아니다. 누구든 피노키오를 진심으로 대해준다면 피노키오는 그 사람에게 '진짜 아이'가 될 수 있다.
어떤 아이든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연다. 아이를 정직하고 용감하며 남을 위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아이의 몫이 아니다.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는지는 어른들의, 우리 모두의 몫인 것이다.
-
- 비겁했기에 지킬 수 있던 이름들
<페르시아어 수업>은 한 사람이 살기 위해 순간적으로 내뱉은 거짓말로 인한 후폭풍을 겪어내는 이야기다. 영화는 시작부터 그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도 똑같이 벌어졌을 유대인에게 가해지는 형벌을 배경으로써 담담하게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풀지 않을 거라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질'은 유대인이지만 나치군에 끌려가는 과정에서 물물교환으로 우연히 얻게 된 페르시아 책을 증거로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 주장하며 목숨을 구한다. 한 장교가 페르시아어를 알려줄 페르시아인을 찾고 있다는 소식 때문에 목숨을 건사하게 된 질이 자신이 한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건 그다음 문제다.
장교도, 그를 데려온 군인들도 그가 페르시아인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 군인들은 사례품을 받기 위해 그를 데려오긴 했지만 유대인의 외모를 가진 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장교는 그에게 매일 페르시아어 수업을 들으면서도 그가 가짜인지 확인하기 위한 덫을 파둔다. 질은 장교의 앞에서 '레자'라는 이름의 완벽한 페르시아인이 되어야 한다. 페르시아어라고는 책을 받을 때 들은 '아빠'라는 단어 정도만 알기 때문에, 그는 필사적으로 가짜 페르시아어를 만들어낸다. 가까스로 전혀 다른 체계의 단어 조합을 만들어야 할 상황에 처할 때, 인간이라면 당연히 한계를 체감하게 되기 마련이다. 기록을 남길 수 없는 환경에서 질이 써오던 입으로 외우고 머리로 기억하는 방법은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이때 질의 눈앞에 펼쳐지는 묘수는 질에게 주어지던 우연 혹은 행운의 연속으로 보이면서, 영화의 마지막을 생각한다면 필연처럼도 느껴진다. 어느 군인이 제 할 일을 하지 못해 못마땅해하던 코흐가 질에게 맡기는 '수감자 명단 작성' 업무를 질이 보란 듯이 해내는 것은 질이 유대인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상징적으로 느껴지는 면도 있다. 군인들은 장교에게 특별 대우를 받는 그가 못마땅해 함정을 파고 그가 거기에 빠지길 여러 차례 기다리지만, 질은 그들이 만든 난관들을 위태롭고도 무사히 통과하며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그곳, 수용소에서 계속해서 살아남는 것에는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을 거쳐가는 유대인들은 목숨을 잃고, 수용소는 그런 그들이 거쳐가는 경유지 중 일부다. 질은 이들과 같은 처지에 처해 있지만 가짜 페르시아어 수업을 하며 목숨을 부지하는 자신을 점점 부끄럽게 생각한다. 핍박의 체제를 만든 사람들을 원망하고, 그런 체제가 유지되는 현실을 한탄할 여유는 수용소 안에서 존재할 수 없다. 계속되는 유대인들의 죽음을 보기만 할 수밖에 없는 질이 가지는 감정은 반복되는 분노와 허탈감이다.
페르시아어 수업과 함께 질과 코흐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질은 더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영화에는 둘 사이의 미묘한 유대가 우정과도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여럿 존재하는데, 그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영화는 결국 두 사람 사이에는 넘지 못할 벽이 있음을 질의 울분에 찬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 자신도 떳떳하지 못하고, 코흐는 더 비겁한 사람이라는 그의 말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백이면서, 코흐가 애써 보지 않던 현실을 보게 만들며 그를 찔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비겁했던 사람과 그보다 더 비겁했던 사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서'라는 말은 살지 못한 자들의 눈에는 변명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건들을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겪어냈고, 다른 이유는 그 시작에 있지 않았다. 외웠던 수많은 단어들도,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는 순간의 거짓말도,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행동들도 마찬가지다. 이것들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질 때, 아마도 당신은 2,8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충격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끄럽고 비겁했던 자가 자신을 위해 행했던 일이 모두를 위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목도하면서. 무엇보다도 그가 '살아있기에' 증명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더해져 영화의 마지막은 더욱 진한 여운을 남길 것이다.
*씨네랩으로부터 초대받아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영화 마크맨 후기 / 테이큰은 벌써 13년전 / 은퇴한 해병대의 멕시코 갱들 참교육
영화직관하는 남자 영직남의 “마크맨”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없습니다~#액션영화, #로드무비, #리암니슨, #마약카르텔
-
- 패스트 라이브즈 - 셀린 송 감독과 유태오 배우가 그리는 새로운 화양연화
-
12살의 어느 날, '해성'의 인생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첫 사랑, '나영'. 12년 후, '나영'은 뉴욕에서 작가의 꿈을 안고 살아가다 SNS를 통해 우연히 어린시절 첫 사랑 '해성'이 자신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 한 번의 12년 후, 인연의 끈을 붙잡기 위해 용기 내어 뉴욕을 찾은 '해성'. 수많은 "만약"의 순간들이 스쳐가며, 끊어질 듯 이어져온 감정들이 다시 교차하게 되는데… 우리는 서로에게 기억일까? 인연일까?
-
- 영화 <노스페라투> 메인 예고편
"그가 오고 있어…" 100년만에 다시 깨어난 노스페라투 ⚰️ 영원한 어둠 속 '그'가 점점 다가온다!
-
- 영화 <강릉> 30초 예고편
강릉 최대 조직의 ‘길석’
평화와 의리를 중요시하며 질서 있게 살아가던 그의 앞에
강릉 최대 리조트 소유권을 노린 남자 ‘민석’이 나타난다
첫 만남부터 서늘한 분위기가 감도는 둘,
‘민석’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두 조직 사이에는 겉잡을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는데..
거친 운명 앞에 놓인 두 남자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 SF의 탈을 쓰고 윤리적 딜레마를 다루는 블랙 코미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섬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최첨단 교도소에서 자타가 공인한 천재 과학자 '스티브(크리스 헴스워스)'는 실험에 자원한 재소자들에게 행복, 번뇌, 성욕, 복종 등의 여러 감정을 조절하는 여러 신약을 테스트한다. 자칫 비인간적일 수도 있는 이 실험은 죄수들이 주립 교도소에 갇히는 대신 자원해서 참여했다는 점, 그리고 상대적으로 많은 자유가 그들에게 주어진 다는 사실에 의해 정당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음주 운전으로 아내와 친구를 사망에 이르게 한 죗값을 갚기 위해 실험에 자원한 '제프(마일즈 텔러)'는 프로젝트의 목적과 주체에 의문을 품는다.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약물을 주입하도록 시키는 스티브를 보면서 의구심이 피어난 것이다. 해당 실험에서 사망자가 발생하자 제프의 의심은 더욱 커지고, 사랑을 싹 틔워가던 '리지(저니 스몰렛)'에게 약물을 주입하라는 스티브의 명령에 그는 마침내 반발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스파이더헤드>는 조지 선더스의 단편 소설 <Escape from Spdierhead>를 영상화한 작품으로, <트로: 새로운 시작>, <오블리비언>, <온리 더 브레이브>에 이어 올해 <탑건: 매버릭>까지 연출한 조셉 코신스키 감독의 작품이다. 줄거리나 예고편만 봐도 느껴지듯이 <스파이더헤드>는 과학 기술 발전의 명암 중 암을 집중적으로 묘사하는 영화다. 비인간적 실험을 진행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해당 실험이 인류의 발전을 위한 필요악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자유 의지 박탈당한 이들이 저항하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 영화를 SF 작품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인다. <블랙 미러>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SF 스릴러의 분위기를 풍기던 초반부가 지나가면 <스파이더헤드>는 과학 연구 윤리를 매개로 '무엇이 옳은 행위인가'에 대해 보다 일반적인 윤리적 논쟁이 벌어지는 블랙 코미디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각기 다른 삶의 가치를 지닌 두 인물이 있다. 우선 제약사 주인이자 실험의 기획자인 스티브는 철저한 공리주의자다. 공리주의자는 효용의 극대화를 옳은 행위라고 본다. 개개인의 행위에 깃든 본래 가치와 무관하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를 낳는 행위는 많이 이루어질수록 좋다는 것이다.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한 개인의 행동이 직접 초래한 결과와 그의 간접적인 개입이 유발한 사건의 결과가 구분되지 않는다.
실제로 공리주의자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책임을 부여한다. 본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물론, 다른 개인이 초래한 부정적 결과를 막지 못한 책임까지도 요구한다. 이는 개인에게 지나치게 과한 도덕적 부담을 주고, 개인을 의도와 계획을 지닌 주체로 고려하지 않으며, 그들의 정체성을 추상화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 결과 공리주의자 개개인은 자신의 신념이나 판단력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대신, 효용의 극대화라는 기준을 충실히 따르며 자기 자신을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킨다. 그래서 공리주의를 따르는 개인은 효용 극대화의 통로이자 수단에 불과해진다.
실제로 스티브는 실험에 자원한 모든 죄수들을 동등하게 대한다. 그들의 죄가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든 간에 그들은 사회적 이익을 감소시키는 범죄를 저질렀고, 따라서 의도적인 범죄와 실수의 차이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자신들의 죗값을 씻겠다는 도덕적인 이유로 실험에 자원했다는 사실만이 중요하다. 이러한 그의 관점에서 보면 범죄자의 인권은 말살해도 마땅하며, 처벌 대신 승인한 인권침해 실험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람이 통제를 따를 수 있게 되면 더 큰 선의와 대의를 추구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평화와 화합이라는 가치를 전파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가 모든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심지어 사랑하는 이를 해치는 일까지 하게 만드는 약물인 B-6을 개발하는 데 총력을 다하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제프의 죄책감을 자극해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으며, 자기 자신에게도 약물을 주입한다. 그렇게 죄수들과 제프, 그리고 본인까지도 수단으로 이용한다.
반면에 제프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지극히 칸트적인 이유로 스티브의 실험에 반대한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며, 타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윤리 법칙을 만들고 이를 지킬 자유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존엄한 존재이고, 따라서 인간은 수단으로 사용되면 안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제프에게 약물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다. 사회적 맥락에서 다수의 효용을 극대화할 목적을 위해 인간을 도구로 활용하는 기제이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자유의지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스티브의 신념에 비해 더 직관적으로 동의하기 쉬운 제프의 서사에 영화가 의도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덧붙인다는 점이다. 영화는 제프와 리지가 범죄자들이지만 결코 나쁜 인물은 아니라고 묘사한다. 제프의 교통사고는 한순간의 치기 혹은 실수였을 뿐이고, 리지가 딸을 살해한 것 역시 의도적인 살인이 아니라 과실치사였다면서 그들의 선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 경우 본래 선한 인물인 이들의 자유의지를 핍박하는 스티브와 그의 신념을 악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제프와 리지의 과거사는 그 자체로 그들의 항변과 비판의 반례가 된다. 어찌 되었건 술에 취한 채 운전을 하기로 결정한 제프의 자유의지, 한여름에 아이를 차에 태운 채 출근하기로 한 리지의 자유의지가 그들의 비극과 범죄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프의 서사에 윤리적 정당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하며, 이는 작중 선인과 악인을 명확히 구분하고 옹호하거나 비난할 수 없는 아이러니를 낳는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블랙 코미디로서 <스파이더헤드> 특유의 기괴하고 암울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곧 제프의 입장은 직관적으로 옳다고 느껴진다. 사람을 도구로 쓰지 말라는 주장에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과학 기술의 급격한 발달에 대한 경계심이 나날이 높아지는 형국에서는 시의적절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메신저 때문에 메시지에 잡음이 생기다 보니, 역으로 극단적인 공리주의자인 크리스의 괴변은 더 인상적이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 의해 보육원에 버려졌고 이후 단 한 번도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는 스티브의 개인사가 간결하게 제시되면서 오히려 그의 광기에 설득력이 더해준다. 피실험자들 중 사망자가 나와도 그저 웃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크리스 햄스워스의 소름 끼칠 정도 생생한 연기도 큰 몫을 해낸다. 이러한 제프와 스티브 사이의 불균형은 영화의 분위기를 살려내기 위해 의도된 측면처럼 보이기도 한다. 원작자인 조지 선더스가 자본주의 세상에서 기존의 도덕적 가치관을 포함한 여러 기준점이 뒤틀려버린 미래의 기묘함을 글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기 때문이다. 약물에 취한 스티브가 마주하는 최후도 이러한 분위기를 극대화한다.
이는 스티브의 조수인 마크의 역할이 중요성에 비해 제한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작중 스티브의 악행, 도를 넘은 광기, 극단성은 그의 논리에 내포된 자유의지의 침해라는 취약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스티브의 악행을 외부에 고발한 마크는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미 논변의 정당성을 잃은 제프보다도 스티브와 첨예한 대립각을 세울 수 있는 캐릭터다. 스티브의 연구에 자발적으로 합류했기 때문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연구를 포기하고 스스로 연구 윤리를 어긴 책임을 다하는 그는 스티브의 진정한 안티테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마크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조될 경우 직관적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쉽사리 반박하기 어려운 스티브의 신념에서 비롯된 딜레마와 그로 인한 불쾌함이 덜 부각되고, 이는 블랙코미디로서의 매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그래서 <스파이더헤드>는 적은 인물에게만 초점을 맞춘 채 그들의 심리적인 갈등을 부각하는 데 집중한다.
문제는 조셉 코신스키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줬던 단점들을 반복한 나머지 영화가 전반적으로 지루하다는 점이다. 특히 <오블리비언>과 유사한 문제점을 답습한 것이 눈에 띈다. <오블리비언>에서 코신스키 감독은 여러 가지 복선을 던지면서 초반부를 다소 길게 끌다가, 특정 사건을 분기점으로 후반부에 급전개를 선보인 바 있다. <스파이더헤드>도 마찬가지다. 실험 과정과 제프의 생활상을 오가면서 서서히 긴장감을 끌어올리고, 제프와 스티브의 갈등이 외면적으로 분출되는 순간 절정에 도달한다.
그런데 <스파이더헤드>의 원작이 애초에 단편이었던 관계로, 긴장감을 끌어올려야 할 초반부의 에피소드들은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면서 공허하다. 한정된 공간에서 몇 안 되는 등장인물만으로 전개되고, 화면 전환의 속도도 빠르지 않아서 매 장면마다 분량에 비해 정보량이 적은 느낌이 들다 보니 더욱 그렇다. 또한 후반부는 과하게 압축되어 주인공들의 심리적 흐름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한다. 위 문제들이 한데 모인 결과 윤리적 딜레마를 지적하는 영화의 통찰은 결코 깊이 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블랙 코미디로서 목표 달성에 실패한 셈이다.
따라서 <스파이더헤드>는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제작진과 배우들의 조합에 비해 알맹이가 부족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참신한 소재로 눈을 사로잡지만, 그 시선을 2시간 동안 고정시키지 못하는 수많은 넷플릭스 영화들의 전철을 그대로 따른다. 결국 <스파이더헤드>는 팝콘 무비로서, 또 조셉 코신스키 감독과 마일즈 텔러의 <탑건: 매버릭>과 크리스 햄스워스의 <토르: 러브 앤 썬더> 사이를 잇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데 그치고 만다.
P(Poor, 형편없음)
소재만 그럴싸한 수많은 넷플릭스 영화의 전철을 착실히 따르는 범작
-
- 시대를 노래했던 카나리아
이 글은 영화 [엘비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를 풍미했다는 말이 엘비스 프레슬리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외설적이라는 표현까지 들어야 했던 특유의 몸짓과, 노래실력으로 단숨에 제왕의 자리에 올라간 그였지만. 모든 아이콘들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그만의 어려움들이 있었고. 풍파를 겪으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영화 [엘비스]는 그 전설의 시작에서부터 쓸쓸한 마지막 모습까지를 세 시간에 걸친 이야기로 풀어낸다. 음악 영화라는 틀에 갖혀 노래에 치중된 영화이기보다는, 가수가 아닌 엘비스의 모습과 그의 인생에 존재했던 고뇌들에 대해서도 함께 하고 있어. 드라마적인 재미도 놓치지 않았다.
신예 오스틴 버틀러의 싱크로율 높은 연기와 톰 행크스의 안정적인 연기가 합해져 긴 러닝타임이 지루하지 않으며, 다양한 화면 전환 또한 늘어질 법한 분위기를 반등시키는데 한 몫 한다.
핑크 캐딜락과 지팡이;꿈과 현실을 색으로 표현하기.
사진출처:다음 영화
엘비스의 어머니가 늘 꿈에 그리던 것은 핑크 캐딜락이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 필수품은 아니기에 소유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인생에 자괴감을 가져다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가끔 꺼내 보면 온 마음에 들어찬 퀴퀴한 현실을 한 번씩 쓸어내릴 수 있을 만큼 강한 바람 정도는 되어주는 것.
파커 대령(톰 행크스)을 만나기 전까지. 엘비스의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인생을 견뎌내며 걸어나가는데 꼭 필요한 지팡이가 되어주고 있었다. 저 언덕 너머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핑크 캐딜락을 향해 아주 더디지만 확실한 걸음을 내딛는 데 있어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존재들.
대령은 이미 작은 캐딜락을 가지고 있었지만. 엘비스를 처음 본 순간 이제는 새로운 버전의 차를 몰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완벽한 착각이었다. 엘비스는 그에겐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절대 놓아서는 안 되는 지팡이었다. 그것도 절대 부러져서도. 그렇다고 늘어나는 대령의 탐욕이 무거워 버티기 힘들다고 투덜대는 일이 없어야만 하는 고분고분한 지팡이여야만 했다.
그에 반해 늘 지팡이 같은 존재의 삶을 살아야 했던 엘비스를 지탱해 주는 것은 하나둘씩 자신과 멀어져 갔다. 캐딜락처럼 빛나는 삶을 사는 것은 누군가가 보기에는 번지르르하다못해 미끄러질 것만 같은 삶이었지만. 마음의 근간을 하나씩 잃은 엘비스의 삶은 점점 무너져내린다.
남들이 다 부러워할 것 같은 핑크 캐딜락의 삶을 살지만. 오히려 단조로운 현실에 겨우 발맞출 수 있었던 예전의 삶보다 색을 잃어 흑백으로, 혹은 빛바래지는 후반부의 엘비스를 보고 있으면. 그 반짝거림으로 자신의 초라하고 비어가는 마음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파커가 미켈란젤로가 될 수 없었던 이유;원석과 보석 사이의 딜레마
사진출처:다음 영화
세상 거의 모든 것은 원본이 개정본, 혹은 복제본 보다 가치 있다고들 말하지만. 반대가 되는 경우가 드물게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원석일 것이다.
소위 말하는 빵 뜬 연예인들에게 이제서야 발굴된 보석이라거나. 이런 원석이 대체 여태 어디에 숨어 있었냐는 말을 하는 것만 봐도. 원석과 보석 사이에 존재하는 가치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파커 대령은 원석에 가까웠던 엘비스를 발굴해냈고. 그 원석이 가장 빛나는 보석이 되도록 세공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덕분에 신경증 정도로 치부되어도 별말 할 수 없었을 다리(혹은 하반신)를 떠는 것조차도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로 만들어 냈다. 그렇다. 파커가 Nobody를 Somebody로 만들어준 것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파커는 세공 방법에 대한 지분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나 허락된 빛(Light)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했다. 마치 엘비스는 자신이 아니었으면 암흑 속에 영원히 갇혀 있었어야 한다고 말하려는 듯이.
옹졸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엘비스의 고삐를 틀어쥔 그가. 모든 것을 무대에 쏟아낸 채 커튼 뒤에서 기진 맥진한 엘비스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장면에서. 문득 그가 미켈란젤로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각상을 만들 때. 돌 속에 숨겨진 형상을 해방시키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믿었던. 이미 돌 안에는 완성된 무언가가 있었고. 자신은 그저 불필요한 것을 없애주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세기의 예술가 말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대령이 스스로가 그저 협잡꾼에 불과함을 깨달아서 울길 바랐다. 그렇게 유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채 무릎을 꿇은 저 엘비스를 사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에. 원래 완성된 상태로 그저 현실에 가려진 상태였음을 느꼈기 때문에 울었기를 바랐다.
시대의 카나리아;노래로 할 수 없는 말을 대신하다.
사진출처:다음 영화
지금은 모두 센서로 대체되었지만. 예전에는 석탄을 캘 때 발생하는 가스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가스 탐지기처럼 이용했다.
투명한 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픽픽 쓰러지는 것을 보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작업을 멈추었다. 물론 이렇게 죽어가는 카나리아의 비용과 그 죽음을 지켜만 보아야 하는 어려움을 덜기 위해 나중에는 새가 활기를 잃으면 공기를 주입해 되살리는 시스템까지 갖추어져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광의 카나리아.라는 말은 다가오는 위험을 먼저 알려주는 존재를 뜻하는 말로 지금까지도 여겨지고 있다.
시대의 모든 변화 앞에 서 있었던 엘비스를 보며. 마치 그 시대의 카나리아 같다는 생각이 영화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쓰러져서는 안 되는 존재를 다시 살려내기 위해 각종 약물을 투여하는 장면까지도 말이다.
어차피 모든 위험. 혹은 비난은 엘비스가 감수할 테니. 엘비스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그를 늘 극한까지 등 떠밀어댔고. 주변에 아무도 없이 모든 위험을 피부 하나로 다 느껴야 했을 엘비스는 그저 그 두려움을 노래할 수밖에 없었다. 말할 수 없는 이야기는 노래로 하는 것 외에 자신이 가진 수단은 없었을테니 말이다.
실제 엘비스가 숨을 거두기 전 마지막 공연에서. 그는 더 이상 노래하고 있는 것이 아닌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자신은 이제 한계까지 왔다고 퍼덕이면서. 환호의 박수가 아닌 애처로움의 눈물이 먼저 터졌다.
이런 나의 감상도 어떻게 보면 이미 그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같잖은 위로 같기만 했다. 만약 나 역시 그 시대에 있었다면. 그의 절규에 그저 잘한다며 손뼉을 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의 마지막 공연 모습이 계속 눈에 밟힌다.
마치면서
빠른 전개와 눈을 사로 잡는 화면들. 그리고 엘비스가 음악이라는 것에 빠져드는 것을 묘사하는 초반 10분 시퀀스는 그 누구의 마음도 뺏을 수 있을 만큼 강렬하다. 또한 거의 세 시간에 달하는 런닝 타임도 잘 분배하고 조절해서 그다지 지겹다거나 영화를 감상하는데 있어 물리적 시간이 주는 괴로움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이토록 괴로운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다. 마치 [나이트 메어 앨리]를 보는 것 처럼 환각과 현실 사이에서 힘들게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엘비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황제의 뒤안길이 쓸쓸하게 느껴져 마음이 아프지만. 그가 우리에게 준 유산이 얼마나 대단한 것임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이 글의 TMI]
1.독일어..갑자기 너무 어려워졌어요...
2. 하지만 포기하는건 부끄러워서 못하겠음.ㅠㅠ
3.그래서 엉엉 울면서 매일 하고 있는데.
4.근데 이제 거기 복숭아랑 망고를 잔뜩 끼얹은 공부를 하고 있죠(?)
구독과 댓글, 좋아요는 초보 크리에이터에게 큰 힘이 됩니다.
-
- 밀레니엄의 환희와 청춘의 질감에 관한 인상적인 스케치
술 냄새가 난다. 담배 냄새가 난다. 땀 냄새가 난다. 정돈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에서 날 법한 냄새가 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마약 냄새가 난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정액 냄새도 문득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것 같다. 시끄럽다. 클럽 음악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내내 쿵쾅거린다. 싸우는 소리가 난다. 불평하는 소리가 난다. 서로를 원망하는 소리가 난다. 홀로 신세를 한탄하는 소리가 난다.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난다. 저주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 청춘의 냄새, 청춘의 소리다. 이 지독한 냄새와 소리 속에서, 여성 청년 비키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한다.
2001년의 대만, 고등학교를 중퇴한 비키는 남자친구 하오하오와 동거 중이다. 하오하오는 ‘예술적 퇴폐’를 지향하는 남성이 갖고 있는 쓰레기 같은 전형성을 고루 갖추었다. 돈을 벌지 않고 여성의 노동에 의존한다. 아버지의 롤렉스 시계를 훔쳐 경찰 조사를 받을지언정 결코 직접 노동하는 법은 없다. 하오하오는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의 월세를 마련하기 위해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비키를 의심한다. 그녀가 바람을 피운다는 망상이다. 자신이 노동하면 비키가 다른 곳에서 일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고상한’ 하오하오는 이런 가능성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하오하오는 클럽 음악을 만들고 친구들과 술 마실 때만 생기가 돈다. 가끔 욕구가 일어 다짜고짜 비키에게 관계를 요구할 때만 다정해진다. 자기 신세의 비참함에 심취해 마약을 하고 이를 말리는 비키를 경멸한다. 그렇다. 하오하오는 자신의 자발적, 의도적 비루함을 예술가의 고난으로 오독한다. 비키의 몸과 돌봄, 노동에 극단적으로 기생하면서도 그녀에게 군림하려 든다. 치가 떨릴 만큼 익숙한 인물이다(이상의 〈날개〉를 떠올려보라).
소란 끝에 비키는 하오하오를 떨쳐낸다. 그러고는 클럽 관리자 격인 잭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잭은 책임감이 있고 점잖다. 하오하오가 갖추지 못한 것을 가졌다. 그는 비키에게 안정감을 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으로 떠난다. 비키는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 일본에 따라간다. 잭은 그녀를 위해 숙소를 잡아주었고, 편지를 남겼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비키는 끝내 잭의 비밀에 다가가지 못한 채 혼자 남는다. 잭에게는 비키와의 관계보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고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하다. 두 남자가 떠나간 후, 비키는 그제야 홀로 선다.
비키를 비난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도대체 왜 저런 남자들이랑 붙어 있냐’라는 책망은 그 욕망의 소유자도 적당한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물음이다. 우리 모두는 종종 알 수 없는 동기로 이해 못 할 선택을 내린다. 문제는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혼란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지다. 욕망과 충동의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 그 후과를 알맞게 갈무리하는 것이 성인의 자격이다.
불쾌한 냄새와 소음으로 가득 찬 비키의 2001년은 지극한 성장통의 시기였다. 하오하오는 비키가 자신을 떠나려 할 때마다 애원하며 그녀를 붙든다. 그는 자신이 쓰레기인 것을 안다. 만에 하나 ‘예술가’로 성공하면 미련 없이 비키를 버리겠지만, 그 희박한 가능성이 현실로 도래하기까지는 기생할 상대가 필요하다. 그런 자신을 품어줄 여자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하오하오는 그래서 비키에게 더더욱 매달린다. 비키는 이를 관계의 특별함으로 착각했다. 그래서 하오하오의 곁에 머물렀다. 잭은 상대적으로 비키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그녀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지는 않는다. 비키는 잭에게 사랑의 대상이 아닌 친밀한 타자일 뿐이다.
세상의 떠들썩한 환호와 함께 맞이한 새로운 밀레니엄은 비키에게 지리멸렬한 현실의 연장에 불과했다. 오히려 모두가 희망적인 미래만을 말했기에 비키가 살아가는 현재의 형편없음이 더욱 극화되었다. 2001년 겨울, 비키는 하오하오와 잭을 거친 후에야 자신만의 뒤늦은 밀레니엄을 마주한다.
영화는 내내 명멸하듯 깜빡거리는 불빛과 뿌옇게 번진 빛의 이미지로 가득하다. 카메라에 담긴 대상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많은 것을 뒤엉켜 보이게 하는 이 이미지들은 청춘의 열악한 삶을 환기하는 시청각적, 후각적 자극과 맞물려 비키가 살아가는 현실의 혼탁함을 구체화한다. 비키가 문제적 남성들을 떨쳐내고 하얗게 눈 덮인 일본의 한 마을에서 마침내 혼자가 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쌓인 하얀 눈은 어둡고 음습한 방의 뿌옇고 경계가 불분명한 혼탁한 이미지들을 단번에 무력하게 만든다. 일상적 장소에서의 이탈은 종종 시공간의 감각을 새로이 배열하여 기존의 감각을 성찰할 자원이 되어주고는 한다. 자기 자신의 욕망으로 두 남자에게 연루되어 고통받던 비키는 이 극명한 빛의 대비와 일상적 시공간에서의 이탈을 통해 자신을 객관화할 계기를 마련한다. 두 남자로 상징되는 벗어날 수 없는 폭력적 수수께끼를 뒤로하고 밀레니엄의 환희에 뒤늦게나마 동참하는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
- 8월 5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8월 5주 개봉영화!
리미트 Limit , 2022
한국형 범죄 스릴러의 새로운 패러다임
영화 "리미트"는 아동 연쇄 유괴사건 피해자 엄마의 대역을 맡은 생활안전과 소속 경찰 '소은'이
사건을 해결하던 도중 의문의 전화를 받으면서 최악의 위기에 빠지게 되는 범죄 스릴러입니다.
기존의 범죄 스릴러가 사건의 타깃과 그 타깃을 추격하는 일방적인 관계를 그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리미트"는 사건을 쫓던 중 범인이 대상을 변경하는 '타깃 스위치'라는 과감한 설정을 통해 순식간에 모든 상황이 역전되는 예측불허한 전개를 이끌어냅니다.
"리미트"는 일본 추리 소설의 대가 故 노자와 히사시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탄탄한 스토리텔링에 한국인의 감성을 더해,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에게 완벽한 몰입감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압도적인 서스펜스로 극장가를 사로잡을 범죄 스릴러!
추천영화 "리미트" 입니다.
-----------------------------------------------------------------------------------------------------------------------------
시맨틱 에러: 더 무비 Semantic Error , 2022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 '시맨틱 에러'의 극장판
영화 "시맨틱 에러: 더 무비"는 컴공과 '아싸' 추상우의 완벽하게 짜인 일상에 에러처럼 나타난 안하무인 디자인과 '인싸' 장재영,
극과 극 청춘들의 캠퍼스 로맨스를 극장판으로 확장한 작품입니다.
"시맨틱 에러: 더 무비"는 8주 연속 왓챠 TOP 10 1위,
OTT 콘텐츠 트렌드 1위, 왓챠피디아 평점 4.5점 등 기록적인 수치를 세우며 폭발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왓챠 오리지널 드라마인데요
영화 역시 일찌감치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어 예매 오픈 1분 만에 전 상영 회차가 초고속 매진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개봉을 앞두고 열린 프리미어 상영회까지 예매 오픈 직후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성격부터 스타일까지 완벽하게 다른 두 사람의 가슴 설레는 캠퍼스 로맨스!
추천영화 "시맨틱에러: 더 무비" 입니다.
-----------------------------------------------------------------------------------------------------------------------------
썬다운 SUNDOWN , 2021
봉준호 감독이 뽑은 2021년 최고의 영화
영화 "썬다운"은 한 남자의 일탈이 불러온 예측 불가능한 실존의 미스터리를 그린 작품 입니다.
멕시코 해변으로 휴가 온 부유한 영국인 '닐'의 알 수 없는 일탈이 불러온 끔찍한 사건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화로,
202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작으로 선정되어 전세계 평단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칸영화제 3관왕과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워대상을 수상한 멕시코의 젊은 거장
'미셸 프랑코' 감독과 '팀 로스', '안티크라이스트','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만나 서늘한 서스펜스 미스터리를 만들 예정입니다.
엄청난 흡입력으로 찬사 받은 팀 로스의 연기력!
추천영화 "썬다운"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