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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의 영화2025-09-25 08:54:23

설득되지 못한 감정에 대하여 「사랑의 탄생」

영화 「사랑의 탄생」 리뷰

 

 

 

 

그래서.. 그들은 왜 슬픈 걸까?

 

 

 

「사랑의 탄생」의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감정은 의문이다. 토종 한국인이지만 인종은 흑인인 세오와 레즈비언 소라. 그들은 스스로의 ‘소수자’성에 잔뜩 취해버린 게 아닐까. 그들의 슬픔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당위적이다. 그들에겐 감정이 ‘영화’로서 성립하기 위한 필수조건인 ‘보편성’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세오

 

 

 

비록 우리가 모두 흑인은 아니지만, (그 감정이 정합적이기만 하다면)세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다. 우리 모두 각자의 개인사 속에선 나름의 소수자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세오의 슬픔은 관객을 설득하지 못한다. 일단 영화의 가장 중요한 오브제라고 할 수 있는 캐리어부터가 그렇다. 생의 마지막을 결심한 어린 청년인 세오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루이비똥 캐리어와 조르지오 알마니 정장을 구입해 마지막 여정에 오르는데, 세오가 왜 캐리어와 정장이 필요했는지부터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마지막이니까 좋은 것을 가져보고 싶었다’고 하기엔 캐리어는 지나치게 구체적인 항목이지 않은가?

 

 

 

또, 애당초 작중 세오는 검은 피부색 탓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극단적인 빈곤으로 내몰린 것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세오'를 연기한 한현민 배우의 외양을 보라. 극의 초반부 세오가 처음 정장을 입고 지하철에 등장했을 때, 모델 출신인 그의 기럭지는 생에 처음 고급 옷을 입어본 가난한 청년의 그것이 이미 아니다. 당장에라도 한남동 명품 갤러리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생긴 흑인 모델을 '피부색' 때문에 낮잡아볼 사람이 있을까?

 

 

물론, 출생에 관련된 미스터리가 세오의 결핍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작중에선 정면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다른 피부색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사람인) '소라'도 알고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세오의 가족들은 밑도 끝도 없이 세오를 배척해버린다. 이에 더해 피에 대한 진실을 묻고자 찾아간 어머니의 유일한 친구는 '사랑해서 낳았으면 그만이지'라고 말하는데, 과연 이 말이 세오를 치유할 수 있을만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인지도 의문이다. 결국 세오가 궁금한 건 어머니가 자신을 사랑했는지 아닌지의 문제가 아니지 않는가?

 

 

 

소라

 

 

소라의 사연도 사실은 조금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극의 중심인물이 세오인 탓에 이야기의 디테일을 더할 분량이 부족했겠지만, 한 달 살이를 위해 내려간 지방에서 느닷없이 운명의 상대를 만나고, 사랑에 빠졌는데 하필 상대방의 집안이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이고(다시 말하지만 소라는 레즈비언이다), 집안의 반대를 이기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럴 바엔 그냥 서울로 도망쳐 소라와 함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정이지 않을까?

 

 

또, 세오의 여정에 함께하고 고급 캐리어를 받기로 나름의 계약(?)을 맺은 소라가 갑자기 스스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세오에게 "나도 갈 곳이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무리가 있는 전개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극의 중반부 놀이공원의 바이올리니스트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외

 

 

연출적인 면에서 보았을 때 인상적인 몇몇 장면들도 분명히 있다. 이를테면 소라와 함께 찾아간 청소의 시골방에서 별무늬 젖소를 만나는 장면, 새벽에 푸른빛이 임재하듯 세오에게 들이치는 장면... '토종 한국인 부부 사이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흑인'이라는 세오의 설정 자체도 단순하지 않고 입체적이다(시나리오 단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이런 좋은 장면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버무려지지 못한 건 영화의 모든 구성들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목적이 돼버렸다고 할까. "자, 이제부터 울어라!"라고 외치는 사람 앞에서 공명할 사람은 없다.

 

 

상처를 무기처럼 휘두르는 것은 빈곤한 감정이다. 하물며 '남의 상처'라면 말해 무엇하랴. 소수 집단이 느끼는 '마이너 필링'은 사랑의 탄생을 위한 도구가 아니다. 결핍이 도구가 될 때, 치유의 실마리는 사라져 버린다.

 

작성자 . 먼지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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