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Choice Movie2022-07-04 16:29:35
7월 1주 최신 개봉영화
최신 개봉영화
2022년 7월 1주 개봉영화!
토르: 러브앤썬더 Thor: Love and Thunder , 2022
토르! 네 번째 솔로 무비!
영화 "토르: 러브 앤 썬더"는 천둥의 신 '토르'가 '킹 발키리', '코르그', 그리고 '마이티 토르'로 거듭난
전 여자친구 '제인'과 팀을 이뤄, 신 도살자 '고르'의 우주적 위협에 맞서는 이야기입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함께 우주로 떠나며 그 이후 행보에 궁금증을 자아냈던
토르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의 이야기가 "토르: 러브 앤 썬더"에서 드디어 공개됩니다.
천둥의 신 '토르'를 비롯해 강력한 NEW 히어로 '마이티 토르', 뉴 아스가르드의 왕 '킹 발키리', 우정과 의리의 검투사 '코르그',
그리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멤버들이 총출동하죠
마블 역사상 최고의 빌런으로 주목 받고 있는 신 도살자 '고르'의 등장에 맞서
'팀 토르'로 뭉친 MCU 대표 히어로들의 역대급 액션 스펙터클로 기대감을 높이고 있습니다.
강력한 NEW 히어로 '마이티 토르'에 나탈리 포트만,
이름만으로도 기대를 높이는 크리스찬 베일은 신 도살자 '고르' 역,
러셀 크로우가 올림푸스의 왕 제우스 역으로 활약하고
전작 '토르: 라그나로크'에서 처음 등장해 유쾌한 매력으로 눈도장을 찍었던 '코르그' 역의 타이카 와이티티가
'연극 배우 로키' 역으로 깜짝 등장해 놀라움을 선사했던 맷 데이먼까지 출연해
다채로운 캐릭터의 등장으로 스크린을 풍성하게 채울 예정입니다.
전 우주를 누비는 역대급 스케일 속에서 짜릿한 액션은 물론 다채로운 세계관까지 담아낸
"토르: 러브앤썬더"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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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BIFF가 주목한 영화로운 한국영화
10월 9일, 영화의전당 시네마운틴 6층 아주담담 라운지에서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마지막 '아주담담' 세션이 열렸습니다. '아주담담'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여러 작품을 소개하고, 게스트와 직접 소통하는 자리입니다. 이날은 차한비 모더레이터의 진행으로 '한국영화의 오늘 : 비전' 섹션에 오른 세 편의 영화에 관한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
Merely Known as Something Else
첫 번째로 소개된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시간과 차원이 교차하는 다면적 구성이 인상적인 조희영 감독의 작품입니다. 아주담담 라운지를 찾은 조희영 감독와 정보람, 정회린, 류세일 배우는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을 만나 기쁘고 영광스럽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조희영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대해 "'인주', '유정', '수진'이 각기 다른 연유로 '정호'와 얽히는 이야기이며, 제목을 생각하면서 관람하면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를 느끼실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지>는 영화를 감상하기 전부터 관객의 궁금증을 야기하는 독특한 제목을 갖고 있는데요. 조희영 감독은 평소 시나리오를 쓰던 도중이나 시나리오를 마무리한 후에 제목을 정하지만, 이번엔 이례적으로 제목을 처음부터 정해놓고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만큼 제목에 영화 전체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죠.
어차피 모든 것들은 다른 것으로 알려질 뿐이니, 이 작품도 영화가 끝난 이후 관객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여서 각기 다른 것으로 완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제목을 지었어요. (조희영 감독)
배우들 역시 시나리오를 받을 때부터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궁금증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요. 정회린 배우는 "각 인물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제목처럼 서로 다른 영화로 느껴질 것"이라며 영화를 더 재밌게 즐기는 방법을 소개했고, 류세일 배우는 "인생은 역할놀이 같아서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라진다는 생각을 해 온 터라, 이 작품의 제목을 보고 무조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제목에 대한 인상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이 영화가 개봉하는 날, 여러분도 감독과 배우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이 영화의 제목에 담긴 매력을 느껴보셨으면 좋겠네요.
봄밤
Spring Night
<푸른 강은 흘러라>에 이어 14년 만에 새로운 장편으로 돌아온 강미자 감독이 두 번째로 아주담담 라운지 무대에 올랐습니다. 강미자 감독은 영화제에 온 것이 "꿈에 본 내 고향에 있는 느낌"이라며, 자신을 기다려준 관객들에게 감사를 전했습니다.
그간 영화 편집 강사로 활동해 온 강미자 감독은 우연히 권여선 작가의 단편소설 『봄밤』을 읽고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안 좋은 일이 있지 않아도 아픔이라는 감정이 내 안에 켜켜이 쌓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아픔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 소설을 영화의 언어로 표현해 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제작 배경을 밝혔습니다.
알코올 중독자 '영경' 역의 한예리 배우와 류머티즘 환자 '수환' 역의 김설진 배우를 향한 애정 어린 찬사도 이어졌습니다. 전작 <푸른 강은 흘러라>에서 주연으로 활약한 한예리 배우는 이번에도 강미자 감독과 함께했는데요. 강미자 감독은 처음부터 한예리 배우를 떠올리며 시나리오를 준비했다며, "소설에서 느꼈던 '영경'을 연기로 표현할 수 있는 단 한 분의 배우가 한예리 배우였다"고 전했습니다. 분장 등의 도움 없이 체중 감량을 통해 아픔과 고통을 표현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었는데도 한예리 배우는 흔쾌히 함께해 주었죠.
김설진 배우는 한예리 배우의 추천으로 이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강미자 감독은 "몸을 잘 쓰기로 유명한 두 배우와 함께한 덕분에 시나리오에서 글로도 표현해 내지 못한 '영경'과 '수환'의 감정을 영화에 온전히 담길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봄밤>은 최소한의 장치만을 사용해 이 영화만의 올곧은 리듬을 만들어 가는 영화입니다. 강미자 감독은 이러한 방식의 영화를 구성한 이유를 묻는 차한비 모더레이터의 질문에 "저희 영화는 투박한 편"이라고 낮추면서도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 고민 끝에 카메라를 절대로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결단으로 <봄밤>은 대중적인 서사나 표현 밖에 있으면서도 관객 내면의 깊은 감정을 건드리는 섬세한 영화로 완성될 수 있었죠.
두 인물은 사회적인 관습 밖에 있는데도 자기의 삶을 온전히 버텨낼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도 버텨내는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에 화면의 중앙에 배치함으로써 당당하게 존재하게끔 해주고 싶었어요. (강미자 감독)
파편
Fragment
아주담담 세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게스트는 <파편>의 김성윤 감독과 오자훈 배우였습니다. <파편>은 살인 사건 이후 남겨진 가해자와 피해자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파편>의 타이틀 디자인이 인쇄된 팀복을 입고 나타난 오자훈 배우에게서는 영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절로 느껴졌죠. 세 번의 상영이 모두 끝난 뒤 무대에 오른 두 사람은 후련해하면서도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성윤 감독은 영화가 촉발하길 바랐던 메시지에 많은 관객이 공감해 주어 감사하다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남겨진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를 다들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랐는데, GV 때 이 질문을 해주시는 분이 계셨다"며, "그 이후의 삶은 현실의 우리들이 써내려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감독이자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의 소망을 덧붙였죠.
살인자 아버지를 둔 '준강' 역을 맡은 오자훈 배우는 300:1의 경쟁률을 뚫은 캐스팅 비하인드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오자훈 배우는 "세 번의 오디션을 거치면서 영화가 어떤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 더 깊이 이해하게 됐고, 책임감을 가지고 '준강'이를 뚜렷하게 표현해야겠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긴장과 불안이 계속되는 촬영이다 보니 아이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연출자로서는 이야기가 제대로 완성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성윤 감독)
김성윤 감독은 세션을 끝마치며 <파편>과는 또 다른 결의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다양한 스타일의 영화를 사랑한다는 그는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 놓을 때마다 그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감독이 되고 싶다"며 뜨거운 포부를 전했습니다.
⊙ ⊙ ⊙세 편의 작품, 일곱 명의 게스트와 함께한 '아주담담' 세션은 영화를 향한 따뜻한 애정으로 가득했습니다. 영화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열정,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들이었습니다. 이토록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라면 '극장은 영원하다(Theater is never dead)'는 외침도 아주 오래도록 유효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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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그보다 늦게 태어난 것은 행운이었다
7★/10★
영화만큼이나, 때로는 영화보다 더 유명한 영화 음악(혹은 음악 감독)이 있다. 영화를 본 후 누가 연출했는지보다 음악 감독이 누구인지가 궁금해질 때도 있다. 그리고 엔리오 마리꼬네야 말로, 이 두 사례의 가장 적합한 예다.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는 2020년 타계한 전 세계적인 영화 음악가 엔리오 마리꼬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고백하자면,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해 2017년까지 엔리오가 음악 작업을 한 영화 중 내가 본 것은 〈시네마 천국〉, 〈헤이트풀 8〉 두어 편에 불과하다. 내겐 곱씹다 보면 여운을 자아내는 그와의 추억이 없다. 그러나 156분의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현대 영화 음악이 그에게 빚진 것이 너무나도 많고, 우리가 익숙하게 소비해온 음악이 그의 성과라는 점을 새로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되고 싶었던 엔리오는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권유로 음악을 시작했다. 이후 현대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고프레도 페트라시에게 작곡을 배웠다. 엔리오가 ‘순수 음악’의 테두리 아에서 음악을 배웠다는 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장점은 탄탄하고 체계적인 기본기를 바탕으로 영화 음악을 작업해 다채로운 작업물을 내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단점은 동료들이 엔리오의 영화 음악 작곡을 하찮게 대했다는 것이다. 영화 음악은 순수 음악보다 한참 격이 떨어지는 장르로 여겨졌다. 엔리오가 동료들에게서 고립된 이유다. 더불어 그는 늘 예술적 정체성과 ‘순수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배신자’, ‘매춘’, ‘천박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순수 음악계 출신으로 이와 같은 시선을 어느 정도 내면화할 수밖에 없었던 엔리오는 오랜 세월 이 문제로 괴로워했다.
그러나 동시에 영화 음악 쪽에서는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영화 음악은 천편일률적인 배경 연주곡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엔리오는 전통적인 사운드에 실험적인 요소를 결합해 영화 음악을 별 의미 없는 부가 요소로 취급하는 현실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캔 소리, 첨벙거리는 소리, 휘파람 등을 음악에 더해 독특하고도 매력적인 사운드를 만들었고, 영화는 그 덕에 더 큰 몰입감을 가질 수 있었다.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에는 그가 작업한 영화 음악과 해당 음악이 사용된 장면이 여럿 소개된다. 본 적도 없는 영화의 짧은 장면이, 마찬가지로 짧은 음악과 함께 소개될 뿐인데도 배우의 감정과 영화의 분위기가 생생히 느껴졌다. 엔리오의 음악이 화면 속 여러 요소와 만나 극적인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미처 영화 음악인지 몰랐던, 귀에 익숙한 곡도 꽤 많다. 엔리오의 작업이 얼마나 큰 문화적 파급력을 지녔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그의 음반은 전 세계에서 7,000만장, 한국에서는 200만 장 이상 팔렸다고 한다).
작업한 영화마다 자신의 인장을 새긴 엔리오. 엔리오는 이내 영화 음악계의 스타가 되었다. 보통 음악 감독이 영화를 먼저 보고 그에 맞는 음악을 작업하는 데 반해, 엔리오의 음악을 먼저 들은 몇몇 감독은 자신이 미처 알아보지 못한 요소를 그로부터 찾아내 이를 보완하는 연출을 하기도 했다. “영화 음악은 감독의 역량 바깥에 있다”, “곡 자체가 의미가 있어야 영화에 기여할 수 있다”라는 엔리오의 말에서 자기 일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프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늘 혁신의 전위이기를 멈추지 않은 엔리오. 그의 이런 면모가 ‘영화 음악에 관한 영화’를 가능케 한다. 때로는 관객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누군가는 장인정신을 발휘해 영화에 기여하고 있고, 〈엔리오: 더 마에스트로〉가 입증하듯 이런 헌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가 된다. 영화를 아끼는 동시대 관객이 이 위대한 장인보다 뒤늦게 태어나 그가 이뤄놓은 것들을 누리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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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가씨>, 미안해 하진 않을게
*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처음 아가씨를 봤을 때는 숙희와 히데코가 남았고, 오랜만에 다시 보니 코우즈키와 백작이 남는다. 처음엔 자유를 찾은 모습에 함께 설레고 들떴다면, 이번엔 그 자유를 빼앗은 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그렇다. 백작은 막판에 순진하면 불법이라는 업계 불문율을 어겨서 불행을 자초한 순정 사기꾼이라 치자. 코우즈키는 히데코의 이모부다. 가족끼리 왜 그러지? 가족끼리 이럴 수 있나? 아니, 가족이니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에게 취미를 물으면 독서와 책 수집이라 할 텐데, 혹여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제목을 묻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가장 아끼는 책을 나열해보자. <채찍은 말한다>, <도마뱀 가죽>, <타락한 속옷 판매원들>, <백합의 바다>, <장의사의 침실>. 제목부터 스멀스멀 느껴진다. 그렇다. 책을 좋아한다는 게 19금 문학이었다. 천일야화처럼 읽고 수집하고,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고 판매한다. 낭독회는 혼자만의 취미가 아니라 엄연한 사업이다. 수집한 책에 삽화가 2D였다면, 그는 낭독회에서 이를 3D로 구현한다. 가족의 일원을 연기도 전달력도 좋은 '낭독 전문 배우'로 양성했다. 처음엔 아내를 시켰고 아내가 세상을 뜨자 처조카인 히데코에게 그 역할을 맡겼다. 아내는 자살한 것도 아니었다. 도망치려던 그녀의 마지막은 코우즈키와 지하실이 알고 있다.죽은 아내도, 히데코도 좋아서 낭독을 시작했을 리 없다. 코우즈키가 그 책이 그렇게 좋아서 햇볕도 들지 않도록 어두컴컴하게 만들고, 집은 쓸데없이 크기도 남다르게 만들어서 도망치기 전에 붙잡혀 갇히는 게 더 빠르다. 지하실에 있는 다양한 신체 부위나 특이한 도구들은 그가 이미 상상에서 그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짐작할 수 있게 한다. 혓바닥은 붓끝의 먹물이 스며들어 검디검다. 그 정도 열정이라면 2차 창작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가 작품을 외우기만 했을까? 낭독회에 올린 책 중에 자신이 쓴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저 멀리 프랑스에서 책을 들여올 돈이 필요해 히데코와 정혼하고, 스스로를 더러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노인이라고 말할 정도면, 참으로 대단한 인물일세.
코우즈키의 세계관은 이분법적이다. 그에게 조선은 추하고 일본은 아름답다. 아름다운 건 잔인하지만 조선은 무르고, 흐리고, 둔하기 때문이란다. 일본과 영국은 좋아하고 조선은 싫어하는 건 힘의 양상 때문이다. 역관이던 그가 성공한 건 일본이 흥하자 힘이 강한 편에 섰기 때문이다. 금광 채굴권을 비롯해서 전에는 상상하지 못할 부를 얻었다. 그의 취향대로 일본과 영국을 섞은 저택을 지었다. 하지만 사는 것과 입는 것만 바뀌는 것으론 부족하다. 그는 이렇게 가진 힘을 유지하고 싶었기에 아예 조선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일본 사람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애를 쓴다. 결국 조선인 아내를 버리고 일본인 아내와 결혼했다.물론 여전히 그 집의 실질적인 운영은 여전히 조선 사람들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조선의 아내는 그의 충실한 집사이자 정부처럼 지내고, 집안의 모든 음식은 조선인 시종들이 만들어준다. 그들은 믿을 수 있나? 조선은 추하다면서 그 조선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곁에 두고 쓸 정도는 되는 것인가. 여름에 냉면을 버리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아직 완전히 일본인이 되진 못한 모양이다. 암만, 여름엔 냉면이지.
그의 처음이 궁금하다. 어떤 계기로 19금 책을 수집하고 낭독을 하기로 했을까. 같은 것을 보고도 상상은 다르니, 그 상상을 나눠보는 게 재밌다고 했다. 19금 문학을 즐기고 수집하는 건, 문제라고 보기 힘들다. 낭독회도 크게 보면, 자신과 비슷한 취향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는 비공식 소규모 행사다.문제가 되는 건 자신만의 취향과 사업을 위해 가족을 끌어들였다는 점이다. 전처였던 조선인 아내는 의외로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전 남편을 나리 마님이라고 부르고, 스스로 사사키라고 부르고, 일본인 아내나 히데코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소소하게 즐기고, 낭독회에서 무대 효과와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낭독회에 출연하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욕심으로 이어진 가족, 일본인 아내와 히데코는 19금 문학 낭독을 강요받았다. 원하는 대로 느낌을 살려 낭독하지 않으면 숨 막히는 체벌이 이어졌고, 도망치고 싶어도 깊은 서재에 무지의 경계선인 뱀을 두고 철창 앞에서 가로막히는 자괴감을 반복적으로 느껴야만 했다. 말대답을 하거나 분노를 표현하면 정신병원에 가두겠다는 협박을 받았다. 땅속에 묻어버리거나, 개처럼 목줄을 하게 한다는 말에 사시나무처럼 떨던 히데코의 이모는 이미 경험이 있는 듯했다. 어린 히데코는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 중에 이모부만 좋아하는 책을 이모부만 좋아하는 방식으로 낭독하는 것만 배웠다. 무슨 훈육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느 남자를 봐도 돌 같이 느끼고, 심지어 싫어하게 되었다. 그놈의 낭독이 뭐길래. 이모부는 후견인이라는 명목으로 그녀를 조종했다.
숙희는 처음에 히데코를 두고 가엾고도 가엾다 했지만, 가장 가엾은 사람은 코우즈키가 아닐까. 히데코, 숙희, 백작, 코우즈키 모두 가짜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하지만 세 명은 서로 속이고 속임을 당하면서 각자 생각하고 있는 상대방이 가짜라는 걸 깨달았다. 백작을 사랑했어야 할 히데코는 숙희에게 빠져들었고, 히데코가 백작과 사랑에 빠지게 도와주기로 했던 숙희는 히데코에게 반했다. 히데코와 사랑에 빠지는 척만 할 예정이던 백작은, 오히려 막판에 히데코를 정말로 사랑하게 되었다. 히데코는 숙희를 어리숙하고 순진한 도둑의 딸로만 알았지만, 진심으로 자기를 걱정하고 족쇄처럼 묶여있던 낭독 책을 찢어발기고 물에 적시는 박력이 있었다. 숙희도 히데코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으로 알았건만, 웬걸, 다년간의 19금 문학 낭독으로 다져진 연기력과 탁월한 배경지식에 놀라고 말았다. 백작은 남자에게 물새처럼 차가운 히데코임에도, 낭독회에서 공작부인 줄리에트로 연기한 모습과 그녀의 솔직한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
그러나 코우즈키가 마음을 빼앗긴 가짜는 현실이 아니라 상상이고, 사람이 아닌 이야기다. 사람은 오해를 풀고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만, 이야기 속의 상상은 환상만 더해간다. 장르적 특성상 그에겐 모든 여자는 섹스라는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 누군가를 어떻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를 떠올리게 되는데 비해 코우즈키는 19금 소설의 인물로만 떠올린다. 자신의 전처인 사사키가 백작과 잠자리를 하고도 남는다고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 땐, 함께 한 시간이 있는데 그리 생각하는 게 신기하다. 어느 남자든 가리지 않고 좋아할 거였으면, 애당초 당신 곁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낭독하지 않는 히데코 역시 새로운 이야기 속에 '어떤 년'일 뿐이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나 의심이 된다면 백작에게 묻던 그의 질문을 기억해보자. '히데코가 어떤 년인가? 부드럽던가? 조여오던가? 주름은 많이 접혔던가? 충분히 젖었던가? 애액의 점도와 탁도는? 저항하던가? 아니면 침을 뱉으면서 혐오스러워하던가? 어서 해달라고 애원하던가? ' 백작이 자신의 아내인 히데코와의 초야를 어떻게 떠벌이고 다니냐고 호통을 치거나 말거나 새로운 이야기 <처조카의 초야>에 푹 빠져있었다. 정신 차리게, 코우즈키. 히데코는 당신의 처조카야. 당신의 죽은 아내의 죽은 언니의 유일하게 살아있는 딸이라고.
세상에서 책을 제일 좋아하는 부유하신 코우즈키 나리 마님. 일본인 귀족인 척했던 제주도 출신 백작과 하룻강아지 같은 하녀 숙희 덕분에 썩 즐겁지 못하다. 아끼던 책들은 처참히 망가졌고, 낭독을 맛깔나게 해 줄 배우도 없다. 히데코가 재산을 다 찾아갔으니 새로운 책을 사거나 관리할 경제적인 여유도 없어졌다. 함께 이야기를 들은 신사들 역시 아쉬움이 완연할 것이다. 그들은 상상에 푹 빠져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을 하곤 했다. 얼마나 짜릿했을지 몰라도 우리가 보는 그들은 낭독이 울려 퍼지는 서재에서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때때로 주먹을 불끈 쥐거나 숨을 들이켜거나, 모자로 다리 사이를 가릴 뿐이다. 우리는 그들의 상상을 짐작할 뿐이고,
히데코와 숙희는 백작에게 '사기꾼이 사랑을 하나?'라고 물었지만 사기꾼이라고 왜 사랑을 하지 못하겠나. 거짓 속에서 진심이 더 명확하게 드러날 수 있는데. 그리고 둘이 할 소리는 아닌 게, 사람 속이고 이용하는 게 사기꾼이니 그녀들도 백작과 다를 바 없다. 차이가 있다면 이들의 작전은 성공했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들이 하는 게 사랑이라면, 백작이 하는 것도 사랑이다. 코우즈키의 사랑이 픽션이라면, 세 사람이 한 사랑은 팩션쯤 될 것이다.코우즈키는 가장 좋아하던 책 5권에 맞춰 백작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고, 손에 구멍을 뚫고, 성기를 자르려 했다. 히데코와 숙희가 코우즈키의 집에 붙잡혀 왔다면 어땠을까. 히데코의 이모를 죽이고 벚꽃나무에 매달았듯이, 그 둘도 괴롭히고 벚꽃나무에 매달거나, 낭독을 할 정도로만 살려두고 온몸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추호도 몰랐다. 아름다움이 잔인하고, 무르고 흐리고 둔한 게 추하다고 말하던 그가, 푸른 수은 연기를 이상하게 아름답다고 느끼면서, 무르고 흐리고 둔해지면서, 지하실에서 눈을 감게 될 줄 말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잔인하고 추하게 죽음을 맞이한 셈이다. 그것도 히데코의 초야 이야기를 들으려고 안달이 나서, 자기 손으로 직접 백작의 입에 수은이 담긴 담배에 불을 붙여준 것 때문에. 심지어 그가 좋아하던 이야기를 그는 늘 감상하는 입장이었지만, 그 역시 이렇게 <아가씨>라는 이야기에 담길 줄 알았을까. 안타깝지만 미안한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가 볼모로 잡았던 가족들의 삶을 생각하면, 스스로 불러온 결말은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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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멸이 예정된 두 모성의 사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너리스 타르가르옌이 태어나기 172년 전, 칠왕국의 왕 '비세리스 타르가르옌(패디 콘시딘)'은 아들이 태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왕비 '아엠마 아린(시안 브루크)'는 출산 중에 사망하고, 갓 태어난 아들도 곧이어 세상을 뜬다. 이에 비세리스는 야망 가득한 다혈질 동생 '다에몬(맷 스미스)'의 반발을 무시한 채 유일한 딸 '라에니라(에마 다시)'를 후계자로 임명하고, 가문의 비밀인 '약속된 왕자'에 관한 '얼음과 불의 노래'를 들려준다. 몇 년 뒤, 비세리스는 라에니라의 소꿉친구이자 절친이었던 '알리센트 하이타워(올리비아 쿡)'와 재혼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왕의 장남 '아에곤 2세(톰 글린-카니)'가 태어난다. 이에 칠왕국은 왕의 공인을 받은 후계자이자 장녀인 라에니라를 지지하는 '흑색파'와 왕의 적자이자 장남인 아에곤 2세를 지지하는 '녹색파'로 분열된다. 이렇게 왕국과 대륙의 운명을 건 거대한 전쟁 '용들의 춤'이 발발한다.
HBO 오리지널 드라마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성황리에 첫 시즌을 마쳤다. 8월 21일에 공개된 첫 화는 당일 북미 시청률만 천만 명에 육박했고, 마지막 회는 9천만 명이 시청했다. 전작인 <왕좌의 게임>의 각 시즌 피날레 시청률을 압도하는 엄청난 흥행이었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실망을 안긴 <왕좌의 게임> 때문에 기대감이 낮았기에 더욱 놀라운 결과다. 비슷한 시기에 공개된 판타지 드라마 <반지의 제왕: 힘이 반지>를 압도한 건 덤이다. 그 원동력은 흥미롭게도 꽤나 고전적이다. 예정된 파멸을 향해 나아가는 두 주인공의 비극, 특히 두 여성의 운명적인 비극이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왕과 왕자가 아닌 공주와 왕비의 이야기, <하우스 오브 드래곤>
<하우스 오브 드래곤>에는 <왕좌의 게임> 못지않게 수많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주인공 감으로 손색없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도 눈에 띄는 주인공을 꼽으라면 당연히 라에니라 타르가르옌과 알리센트 하이타워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세계의 질서와 관습에 도전하는 여성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 파멸하는 여성의 서사시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왕좌의 게임> 버전 <선덕여왕>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라에니라와 알리센트는 주위에 가득한 수많은 남성 사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여성적인 리더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이들의 리더십은 그 남자들이 칠왕국을 분열과 붕괴로 이끌 획책을 꾸미고 있기에 더욱 인상적이다. 우선 라에니라의 옆에는 다에몬이 있다. 선왕인 비세리스 1세의 동생이고, 라에니라의 숙부이자 남편인 다에몬 타르가르옌은 용의 불같은 성질로 악명이 높다. 형의 서거 직후 공인된 후계자인 라에니라의 왕위를 녹색파가 찬탈했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즉각적인 선전포고와 수도를 향한 포위 공격을 주장한다.
한편 알리센트의 옆에는 아버지이자 왕의 수관인 '오토 하이타워(리스 이판)'가 있다. 그는 왕비인 알리센트 몰래 그녀의 장남이자 자신의 외손자인 아에곤을 왕위에 올릴 공작을 꾸민다. 또 후계 구도에 필연적인 위협이 될 라에니라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여성의 리더십을 부각하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두 여성은 각자의 진영에서 가장 이성적인 리더로서 상황을 통제한다. 누구보다도 객관적으로 정세를 읽고, 마지막까지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라에니라는 왕이 후계자에게만 직접 알려주는 왕가의 비밀을 무기 삼아 다에몬의 폭주를 제지한다. 왕의 동생이자 후계자의 부군인 다에몬은 라에니라 못지않게 철왕좌에 가까운 인물이다. 하지만 라에니라는 다가올 겨울과 약속된 왕자에 대한 '얼음과 불의 노래'의 존재를 다에몬이 모른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주도권을 빼앗아 온다. 아무리 혈연적으로 왕좌에 가깝다 하더라도, 왕의 자격이 그에게 없음을 일깨운다.
항상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던 알리센트도 녹색파와 흑색파의 전면전이 눈앞에 다가오자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다. 행방이 묘연했던 아에곤을 오토보다 먼저 찾아내 그의 음모를 좌절시킨다. 타르가르옌 왕가의 가장 큰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알레니스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타협안을 제시한다. 라에니라가 목숨을 건 정적이 되어 버린 순간에도 어릴 적 둘도 없는 친구였던 추억을 상기시키며 마지막까지 전쟁을 피해보려고 애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 권력 투쟁일 수 있었던 두 절친의 대립에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유다.
여성 리더십이 실패한 이유, 모성애
아이러니하게도 분쟁을 막아보려는 필사적인 여성적 리더십은 피비린내 나는 왕위 쟁탈전의 서막을 알리고 만다. 그들의 통솔력이 그 자체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그들이 딛고 서 있는 발판의 근본적인 한계까지는 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모성애라는 왕비와 공주의 공통분모가 왕국을 절반으로 쪼갤 전쟁을 유발하는 결정적 원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알리센트는 라에니라가 공인된 후계자로서 왕위를 계승한다면 자신이 낳은 아들들이 모두 정치적 이유로 죽거나 탄압받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라에니라에게는 이미 아들들이 있으니, 왕위 계승 구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 라에니라가 배다른 동생들을 숙청한다고 해도 놀랍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무조건 왕좌를 가져와야 한다.
라에니라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이미 자신의 아들들이 사생아라는 소문이 돌고 있어서 정치적으로 위협을 느끼던 그녀는 아에곤이 왕이 될 경우 곧장 숙청될 수 있다는 위협을 직감한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능한 전쟁을 피하려고 애쓴다. 심지어 녹색파가 왕의 소협의회와 수도를 모두 장악하고, 아에곤을 일방적으로 왕위에 올린 후에도. 그녀는 가급적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지지 세력을 규합한 후 계승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할 뿐이다. 하지만 사절로 떠났던 차남 루케리스가 녹색파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결국 다음 시즌에서 본격화될 흑색파와 녹색파의 전면전을 예고하고 만다. 다혈질인 다에몬의 충동까지 이성적으로 자제시키는 데 성공했던 그녀였지만, 결국 그녀의 이성도 모성애를 통제하는 데는 실패하고 만다.
중요한 건 모성애가 결국 혈육에 대한 애착을 의미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모성애는 끝내 라에니라와 알리센트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문제다. 모성애는 결국 피로서 이어지는 관계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데, 그들이 패망하는 근본적인 원인 바로 혈연이기 때문이다.
피에만 의존하는 이들의 사투
라에니라 개인은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왕가의 일원이자 정치인으로서 라에니라는 그렇지 않다. 그녀의 힘은 온전히 피에서 비롯된다. 장녀이자 공인된 후계자라는 명분을 제외하면 그녀에게 왕의 자격은 없다. 칠왕국에서 가장 힘이 강한 가문 중 하나인 발레리온 가문을 포섭하는 데 성공한 것도 타르가르옌과 발레리온 가문 간의 혈연관계에 기댄 바가 크다. 그녀가 다에몬의 폭주를 막을 수 있었던 이유인 '얼음과 불의 노래'도 존재 자체로 핏줄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왕에 걸맞은 통치력, 지도력, 정치력을 보여준 것도 아니다. 그러니 다른 대가문을 포섭할 때도 그녀는 혈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아버지의 권위로 만들어낸 과거의 맹세를 상기시켜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내려 한다. 혼인을 통한 동맹이라는 녹색파의 열매에 비하면 결코 매력적인 제안이라고 할 수 없다.
알리센트도 핏줄에 얽매어 상황에 끌려다닌다. 초반부에는 아버지 오토의 졸에 불과해 보인다. 그녀는 아버지의 명령에 충실한 딸이 되기 위해 아내와 사별한 비세리스 1세에게 접근한다. 한 번도 원한 적은 없지만 왕을 유혹해 왕비가 되고, 끝내 새로운 후계자가 될 왕자들을 낳는다. 알리센트는 왕가의 외척이 되어 자신의 피를 받은 왕을 만들고자 하는 오토의 도구에 불과하다. 또 비세리스 1세가 죽은 뒤 오토의 공작을 저지한 후에도 다르지 않다. 라에니스가 지적했듯이, 그녀는 핏줄 때문에 다시 주도자가 될 기회를 놓친다. 경쟁자를 제거하고 장남인 아에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결국 알리센트는 훌륭한 딸이자 엄마였을지는 몰라도 자신을 둘러싼 외적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라에니라와 알리센트는 '왕좌의 게임'에서 처절하게 실패할 수밖에 없다. 게임의 규칙은 두 개다. 왕좌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또 왕에게서 후계자로 넘어가야 한다. 라에니라는 후자에는 해당되더라도 전자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의 능력이나 힘 대신 아버지로부터 받은 피의 권위에 의존해 왕좌를 요구한다. 알리센트도 마찬가지다. 아에곤은 전자에는 해당되나 후자의 조건에는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하나의 이유만을 앞세워 또 다른 정당성을 확보한 정적을 제거하려 한다. 완전히 다른 판에서 새로운 규칙을 내세워야 할 이들이 누구보다도 혈통이라는 기존 규칙을 따르기에 급급하다. 결국 이 굴레를 끊어내지 못하는 이상 두 여자는 원작대로 대부분의 아이를 잃고 죽거나 죽을 때까지 유폐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내 자신들을 파괴할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마치 그리스 비극을 보는 듯하다.
왕실의 비극을 보여주는 방식 역시 인상적이다. <왕좌의 게임>의 후반부 시즌에서 '하드홈 전투', '서자들의 전투', 바엘로르 대성소 폭파 장면 등을 연출한 바 있는 미겔 서포크닉 수석 감독의 역량이 온전히 발휘된 듯 보인다. 우선 설명이 아닌 묘사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두드러진다. <왕좌의 게임>과는 다른 시대적 환경과 인물 및 가문들의 관계를 내레이션 등을 활용해 읊지 않는다. 라에니라, 다에몬, 비세리스 1세에 집중하여 그들의 상호작용 안에서 타르가르옌 가문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 기회가 나면 새 가지를 내어 하이타워 가문과 벨라리온 가문 등 다른 캐릭터들의 서사도 하나하나 덧붙여 간다.
이로 인해 사실 자칫 호흡이 느려지거나 템포가 끊길 수도 있었다. 다만 애초에 왕실의 비극을 다루는 작품이다 보니 시대극다운 웅장함과 결연함, 비극으로 향하는 인물들의 우수를 세밀하게 담는 게 실보다 득이 클 것이라 판단한 듯 보인다. 또 단점을 상쇄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성과를 거두면서 우려는 기우에 그친다. 드래곤의 존재가 대표적이다. 타르가르옌 왕조의 전성기답게 수많은 드래곤이 개성적인 외양을 뽐내며 시선을 사로잡는다. 액션 시퀀스나 협상 장면 등 적재적소에 등장하여 순간적으로 극의 흐름을 휘어잡기도 한다. 징검돌 군도 전쟁과 같은 이벤트도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면서 정치극에 부족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 시즌 2는 이미 제작이 확정됐다. 다음 시즌의 과제는 적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 다음 시즌에서는 스타크 가문의 크레간 스타크를 비롯한 더 많은 캐릭터, 더 많은 전투 시퀀스와 액션씬이 등장해야 한다. 주인공들의 감정선도 한층 더 복잡해지고 깊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시즌 1의 완성도를 보았을 때, <하우스 오브 드래곤>은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왕좌의 게임>의 전철을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다. 시대적 흐름을 담으려는 야심과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한 우수가 뒤섞인 웅장하고 결연한 사극 판타지를 거부할 팬들은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E(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시대적 변화를 담으려는 야심과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한 우수의 만남. 이보다 완벽한 출발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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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ICFF 데일리] 들어는 봤나, 인간을 창조한 코요테의 이야기
Summary
송유관 공사로 조상의 땅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아메리카 대륙의 아이들. 아름다운 대지에 얽힌 코요테와 인간의 창조와 욕망, 파괴와 조화의 이야기를 되살려낸다. (출처: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Cast
감독: 아론 가우더
한국인에게는 가수 이름으로 더 익숙한 동물 코요테(Coyote)는 늑대와 개를 조금씩 닮은 육식 동물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코요틀(Coyotl)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날 코요테가 되었다고 하죠. 그래서인지 아메리카 원주민의 구전설화 속에는 코요테가 자주 등장합니다.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 <코요테는 네 개의 영혼을 가졌다>도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코요테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말하기를, 최초의 인간을 만든 창조주가 글쎄... 바로 이 코요테랍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이 품고 있는 신비한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에서 만난 이 작품, 어린이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세계를 펼쳐주고, 어른들에겐 깊은 울림과 생각거리를 전하는 <코요테는 네 개의 영혼을 가졌다>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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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는 네 개의 영혼을 가졌다>는 조상의 땅을 지키려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외화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신비로운 창조 설화를 내화로 하는 액자식 구성의 영화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창조 설화는 실로 신비롭습니다. 태초의 세계에는 진흙으로 피조물을 만드는 노인, 일명 '창조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땅, 나무, 강, 동물 등 이 세계를 구성하는 물질들을 만들어 나갔죠. '창조자'가 꿈꾸는 세상은 아름답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역시 아름다워야 마땅한 그의 꿈속에 영악한 '코요테'가 나타납니다. ‘코요테’의 네 개의 영혼이 꿈속의 평화를 깨자 '창조주'는 그를 꿈 밖의 현실 세계로 쫓아내 버립니다.
'코요테'는 '창조자'의 손끝에서 탄생한 다른 피조물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냥과 육식의 욕망을 추구하고, 그 결과로 최초의 살상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죠. 육식의 대상이 필요했던 그는 '창조주'의 진흙을 훔쳐다가 생명체까지 만들어 냅니다. '창조자'가 만든 피조물과 달리, '코요테'의 것은 어쩐지 미숙하고 어설픈 형상입니다. 다른 동물들처럼 털도 없고, 발톱도 없죠. 맘대로 생명체를 창조한 사고뭉치 ‘코요테’에게 진노한 '창조주'는 어떻게든 그들을 책임지라고 명합니다. 털과 발톱 없이 미숙하게 태어나는 생명체. 그렇습니다, '코요테'가 창조한 것은 바로 최초의 인간이었습니다.
인간을 만드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도 '코요테'는 '창조주'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계속해서 세상에 없던 개념과 감정들을 만듭니다. 네 개의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가면서 말이죠. 그렇게 세상에는 사냥, 육식, 살상, 도난, 유혈, 죽음, 파괴, 한기 등의 개념이 생겨납니다. 안전하게 살아가던 생명체들은 이러한 개념들을 피해 자신을 스스로 돌보는 형태로 진화하게 되죠. 그렇게 이 세상을 이루는 대자연과 생명체가 만들어졌다고 영화는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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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가 신비로운 이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창조 설화와 그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간은 아담이고,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가 탄생하는 창세기의 설화 말입니다. <코요테는 네 개의 영혼을 가졌다>에서도 창세기의 창조 설화에 해당하는 인류가 나오기는 합니다. 다만, ‘코요테'가 최초의 인간을 만들기 전에 얼기설기 만들어 생명력을 채 갖지 못한 채 바다에 버려진 진흙 덩어리가 다른 대륙으로 떠밀려 가 아담이 되었다고 설명하죠.
아아, 정말 흥미롭고 색다른 관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곰이 사람이 된 단군신화가 있듯이 서양에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가 있는 거라고, 그것을 유일한 진실처럼 여겨왔습니다. 창조 설화에 권력의 주도권을 잡은 지배자의 논리가 스며들 수 있다는 사실을 그만 놓치고 있었죠. 만물의 근원인 하나님을 백인으로 형상화하는 것에도 그저 막연한 의문만 품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진실은 다층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이것만이 진실이라고 단언한다면, 그것은 절대 진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죠. 대중문화, 특히 어린이들이 많이 보는 애니메이션 제작자들은 이러한 진실의 다층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코요테는 네 개의 영혼을 가졌다>를 만든 아론 가우더 감독도 아메리카 원주민의 창조 설화를 다룬 애니메이션 작품이 전무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죠. (그는 <포카혼타스>를 아메리카 원주민을 제대로 다룬 애니메이션이라고 보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많은 작품이 창세기를 모티브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데, 아메리카 원주민의 창조 설화를 모티브 삼아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 작품은 그러한 면에서 영화사의 대단하고 훌륭한 발자취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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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요테는 네 개의 영혼을 가졌다>는 관객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도처에 숨김없이 내걸고 있습니다. '창조주'와 '코요테'가 만든 세계는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곳입니다. 생명체들은 하나의 원을 이루고, 그들의 근본은 대초원에 있습니다. 말썽꾸러기 '코요테'의 횡포로 인해 사냥, 육식, 살상, 도난, 유혈, 죽음, 파괴, 한기 등의 개념이 생겨났지만, 작용-반작용이라는 우주의 법칙에 따라 순환, 탄생, 온기, 책임감, 규칙, 동반자 등의 개념도 같이 생겨났죠. 영화는 이처럼 대자연과 생명체가 공존하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원주민을 미개하다고 여기고, 시혜적 태도로 바라보는 경향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도 과연 그들을 미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운 좋게 공유하고 있는 세상에서, 거대한 그물의 한 가닥으로 살아갈 뿐이라는 인식은 오늘날의 진보적인 환경운동가들의 외침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쩌면 시혜를 받아야 할 쪽은 황폐한 공사장에서 스마트폰을 들고 선글라스를 끼고 에어팟으로 통화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릅니다.
⊙ ⊙ ⊙
<코요테는 네 개의 영혼을 가졌다>는 이야기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작화와 애니메이션의 평면적 특징을 활용한 연출도 감각적이라 보는 맛까지 출중한 영화입니다. 어른과 어린이 모두 충분히 즐기며 볼 작품이죠.
영화관에도 자리를 채운 몇몇 어린이들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접한다면, 영원하지 않은 지구의 수명을 조금이나마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으로 자라지 않을까요? 거대한 자연 속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어른으로 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살아갈 이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른인 우리가 먼저 그런 마음을 가져야만 하겠습니다.
Schedule in SICFF
2023.09.17(일) 롯데시네마 은평 4관 17:30
2023.09.18(월) 롯데시네마 은평 7관 19:00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기간: 09월 13일 - 0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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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사없이 전달하는 영화 8선
대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한 영화들은 시각적 이미지, 음악, 그리고 분위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며, 화면 속 구도와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탐미할 수 있습니다.
또한 대사가 없기에 배우들의 미세한 표정과 몸짓에 더 집중하게 되며, 그들의 내면까지 깊이 들여다볼 수 있죠.
대사가 없는 영화 8선 같이 보시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퍼펙트데이즈
트라이브
덩케르크
피아노
올 이즈 로스트
제리
위대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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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5주 최신 개봉영화(고스트 버스터즈 라이즈, 라스트 나잇 인 소호, 베네데타, 킬링 카인드, 태일이)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11월 4주차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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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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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끝장리뷰 | 정치적 태도 | 기자라는 직업윤리 | 로드무비 해석 | 가족의 붕괴 | 카메오 출연 이유
[시빌 워: 분열의 시대](2024)에 대한 헐거운 리뷰
Chapter 1 정치적 태도
Chapter 2 직업윤리, 가족의 붕괴
00:00 A24 최초?!
00:50 알렉스 가랜드
03:06 정치적 태도
05:40 카메오 출연 이유
07:44 직업 윤리
10:49 가족의 붕괴
11:55 별점 및 한 줄 평
12:13 다음 리뷰 예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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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승부> 공식 예고편
"실전에선 기세가 8할이야" 매 순간 사활을 건 그들의 이야기 3월, 레전드X레전드 조합으로 극장에서 '승부' 본다 [승부] 공식 예고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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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3000년의 기다림> 메인 예고편
"Make a Wish" 신비로운 비주얼, 매혹적인 미장센! 사랑, 모험, 드라마, 로맨틱..? [3000년의 기다림] 메인 예고편 전격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