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7-15 10:35:56
무질서에 기우는 정의의 병폐 속 무기력한 개인
영화 <뉴 오더> 리뷰
끔찍한 비명과 혼란스러움이 가득한 바깥과는 달리 고급 저택에서는 호화로운 결혼 파티를 펼치고 있다. 녹색과 빨간색으로 점점 물들고 있는 세상은 내부에 신호를 주지만 그저 불안의 기우일 뿐이라고 넘긴다. 한편 유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마리안느는 유모를 돕기 위해 집으로 향한다. 마리안느가 나간 사이 들이닥친 시위대는 집 안의 곳곳을 무너뜨리기 시작하고 믿었던 집안의 피고용인들이 합세해 혼란과 피바람이 몰아친다. 이유 없는 폭력의 시위에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영화의 모든 장면에서 참혹한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절망 속에서 또다시 절망을 바라보며 새 질서를 거듭한다. 하지만 새 질서를 가져올수록 부패와 부조리함이 반복될 뿐, 더욱 혼란에 빠지며 폭력과 희생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수많은 혼란 속에서도 다른 계급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이는 마리안과 마르타 모자뿐이다.

영화의 무자비한 폭력에 어떤 사회에서도 공평함을 발견할 수 없는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체제 변환 이후의 모습이 아닌 파국 이후의 새 질서를 그리면서 최악을 생각했지만, 그 보다 더 최악인 순간에서 끊임없이 총구를 머리에 들이대고 배신과 폭력의 연속은 체제 변환의 전쟁일 뿐이다. 무채색과 유채색의 대비는 또 다른 대비를 불러와 거꾸로 비치는 제목이 머지않은 미래를 비추듯 관객을 비춘다. 부패가 청산되고 갈등이 해소되는 대신 “오직 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볼 수 있다.” 이 말과 함께 그저 이름뿐인 전쟁 같은 새 질서가 펼쳐진다.
*멕시코의 국기는 초록색, 하얀색, 빨간색 그리고 가운데엔 멕시코의 국장이 그려져 있다. 초록색은 독립과 대지, 하얀색은 순결과 통일, 빨간색은 백인과 인디오, 메스티소 등 인종의 통합과 국가 독립을 위해 바친 희생을 상징한다고 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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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고한 수많은 이름 모를 '안중근'의 역사는 아직도 살아 움직인다
▷영화 : 하얼빈(HARBIN), 2024
▷평점 : ★★★☆
▷한줄평 : 어둠 속에 불을 밝힌 수많은 ‘안중근’의 역사는 다시 훨훨 타오르고 있다
영화 <하얼빈>은 '영웅' 안중근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고뇌에 찬 '인간' 안중근과 그와 함께 목숨을 바친 동료 독립군에 대해 서사한다.
왜 그는 그토록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려고 목숨을 건 투사가 되었던 것일까?
어쩌면 안중근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당시 수많은 이름 모를 또 다른 ‘안중근’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영웅주의를 배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름 아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또 한 명의 ‘안중근’ 아니던가.
매서운 겨울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광활한 두만강을 홀로 건너는 안중근, 그는 ’길을 잃었다’고 말한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1908년 함경북도 신아산 전투에서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만국공법에 따라 동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풀어 주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해 그 일본군의 역습에 독립군은 궤멸되고 안중근은 간신히 목숨을 건지게 된다. 여기서 그의 깊은 고뇌는 시작된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길을 잃었습니다. 나의 믿음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이 희생되었으니 더는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고 죽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내 목숨은 죽은 동지들의 것이라는 것을.
나는 죽은 동지들의 목숨을 대신하여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알았습니다.” 안중근(현빈)/하얼빈
1년이 지난 1909년 블라디보스토크,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와 협상을 위해 하얼빈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접한 독립군들은 하나둘씩 안가로 모여든다.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경계하는 독립군 동료들 앞에 안중근은 약지를 잘라 자신의 결기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여기에 이창섭(이동욱), 우덕순(박정민), 김상현(조우진), 공부인(전여빈), 최재형(유재명) 등의 독립군들은 ‘늙은 늑대’를 처단하기 위해 힘을 보탠다.
그러나, 모두가 같은 생각일 수가 없다. 굳은 신념으로 갖는 난관을 극복하고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는 이도 있지만,
밀정으로 배신하는 동료가 있기도 하고, 지지부진하기만 한 독립운동을 포기하고 마적단 두목이 된 사람도 있다.
“김형, 독립이 되겠소?” 우덕순(박정민)
“일본의 역사로 남으면 아무도 우리를 기억하지 못할 거요.” 김상현(조우진)
그 이후 영화는 하얼빈에서의 거사를 완성하기까지 7일간 벌어지는 여정을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밀정을 이용해 턱밑까지 추격해 오는 일본군과 이를 방어하기 위한 독립군의 치열한 수 싸움은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한다.
그 과정에서 말을 타고 광활한 만주 벌판을 달리는 장면, 작은 창에 드리우는 빛에 의존하여 골방에 모여 거사를 논의하는 장면, 폭약을 실은 마차를 방패 삼아 일본군과 총격 다툼을 하는 장면, 하얼빈역을 향해 달리는 기차 안에서의 긴장감 흐르는 추격 장면 등 군더더기 없이 절제된 비장감과 영상미를 스크린에 꽉 채워 보여준다.
영화 <하얼빈> 스틸컷
드디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하얼빈의 거사에서 영화는 정점에 이른다. 그러나, 예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대사나 장치를 동원하지 않는다.
마지막 안중근의 독백을 폭발시키기 위해 극도로 감정 노출을 자제하는 듯하다. 그러기에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가슴에 꽂혀 날아든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 앞에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아니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내년에 다시 도전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그렇게 해서 기어이 앞에 나가고,
뒤에 나가고, 급히 나가고, 더디 나가고,
미리 준비하고 뒷일도 준비하고 모든 것을 준비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안중근(현빈)/하얼빈
그렇게 영화 <하얼빈>은 오늘의 '안중근'을 소환해내고 있다.
어떤 역사가는 1945년 우리나라의 독립은 미완이라고 말한다. 처단되지 않은 친일파가 그렇고, 분단된 조국의 현실이 그러하다.
그리고, 2025년 암울한 오늘의 현실이 더욱 그러하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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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팜 스프링스> -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팜 스프링스 (Palm Springs, 2020)
개봉일 : 2021.08.19 (한국 기준)
감독 : 맥스 바바코우
출연 : 앤디 샘버그, 크리스틴 밀리오티, J.K.시몬스, 피터 갤러거, 메레디스 하그너
‘무의미한 오늘 속에서 찾은 가장 값진 의미’
아마도 올여름, 가장 재기 발랄한 로코물이 아닐까 싶은 영화 <팜 스프링스>.
'타임 루프 로맨스'라는 소재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소재다. 타임 루프 로맨스의 원조 <사랑의 블랙홀>과 많은 이들이 인생 영화로 꼽는 <어바웃 타임>, <이프 온리>같은 타임 루프 로맨스 영화들이 파스텔 핑크와 같은 색감이라면 <팜 스프링스>는 핫핑크 빛이다. 마냥 얌전하지만은 않은 거침없고 유쾌한 로맨스랄까. 통통 튀는 영화의 색과 무해한 농담들이 정말 매력적이다. 그리고 내일이 없다는 듯 여러 모험에 도전하며 마음을 나누는 세라와 나일스의 모습과 이들이 던지는 농담은 보는 이에게 대리 만족과 가벼운 웃음을 선사한다. 거기에 시원한 풀장 배경과 청량한 색감이 더해져 그들의 파티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듯한 흥겨움은 덤으로 따라온다.
인생 최고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결혼식 날에 갇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날을 살아가고 있는 나일스에게 누군가의 결혼식 날은 더 이상 특별한 날이 아니다. 날이 갈수록 능글능글한 말솜씨와 사람들에게 대처하는 방법은 늘어가지만 잠에서 깨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보니 그는 점차 오늘의 소중함을 잊게 된다. 나일스에게 오늘은 그저 똑같고 의미 없는 반복일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당연하게 오늘도 역시 어제와 같은 하루일 거라 생각했는데, 사소한 실수로 인해 오늘이 조금 달라진다. 시간이 흐른 건 아니고, 나일스의 하루에 세라가 들어온 것이다. 어쩌다 보니 갇혀버린 같은 시간 속에서 나일스와 세라는 어제의 오늘과는 다른 특별한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하루를 기억해 주는 유일한 사람, 무의미한 오늘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사람. '영원히 반복될 오늘에 갇히더라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일스는 오늘을 기대하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는 "이 사람들은 어차피 내일이면 잊을 거야!"라고 외치며 지금껏 해본 적 없는 귀여운 일탈과 과감한 장난을 반복한다. 두렵고 신경쓰이는 게 많았던 현실을 벗어나 모든 걸 예상할 수 있는 '오늘'에 갇히다니.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해가 될 것도 없고, 모든 게 내 손안에 있는 편안함이 나름 나쁘지 않다. 불안감과 위험 따위가 없는 시간들은 이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하지만, 이내 결국 사라질 것이 뻔한 오늘에 대한 무력감을 몰고 온다. 당장 무서울 것이 없으니 반복돼도 괜찮겠다 싶었던 하루가 무의미한 것이 되자 이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두려움을 외면하며 영원히 함께 갇혀있어도 괜찮을 것만 같은 사랑을 이대로 지키고 싶은 남자 나일스와 미뤄뒀던 두려움을 다시 마주하며 내 삶을 찾고 싶어 하는 여자 세라. 다른 목표를 갖고 있지만, 그럼에도 닮아있는 운명 같은 두 사람은 이 사랑을, 내 삶을 지켜낼 수 있을까?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하루에서 만난 내 삶의 가장 큰 의미가 된 당신. 이 로맨스의 끝엔 오늘이 있을지 내일이 있을지 궁금하다면 <팜 스프링스>를 추천한다.
팜 스프링스 시놉시스
“오늘은 어제고, 내일도 오늘이에요…”
인생 최고의 날로 기억될 멋진 결혼식이 열리는 팜스프링스의 리조트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자 나일스에게 오늘은 100만 번째(?) 결혼식일 뿐이다.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세라가 나일스의 세상에 개입하면서
똑같았던 하루는 늘 특별한 오늘(!)이 되는데…
진짜 내일 없이 사는, 두 남녀의 썸머 코믹 로맨스가 시작된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오늘 기분 어때요?”
“오늘, 내일, 어제 다 똑같죠.”
몇 번째인지 기억도 안 나는 탈라와 에이브의 결혼식 날. 홀로 결혼식 날에 갇힌 나일스에게 어제, 오늘, 내일은 모두 똑같은 날이다. 나일스는 같은 날을 살아가며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어디서 왔는지와 같은 정보들을 모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의 상황극을 즐긴다.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여친 두고 바람피우기, 동성의 인물들 꼬셔보기, 결혼식 방해하기까지.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수많은 일탈들은 처음엔 즐거움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루하고 무의미한 행위로 변한다. 거기에 점점 더 사라져가는 ‘나 자신’에 대한 기억들. 나일스는 타임루프 속에서 나를 잃고 조금씩 지쳐간다.
몇 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라와의 하루를 시도하던 날 밤, 세라가 나일스를 따라 타임 루프에 들어온다. 신부 탈라의 언니인 세라는 결혼식에서도 온갖 눈치를 보고 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다. 실패한 결혼과 순간의 판단 미스로 저질러버린 신랑 에이브와의 하룻밤. 이 행복한 결혼식에서 죄책감과 눈치에 맘 편하게 웃지 못하고 술을 잔뜩 들이켜고 있던 세라에게 타임 루프는 안전한 도피처다. 세라도 역시 나일스처럼 처음엔 어떤 사고를 쳐도 깔끔하게 사라져버릴 오늘을 마음껏 즐긴다. 오늘의 실수를 책임질 내일이 없으니 사고도 마음껏 쳐보고 이런 일 저런 일에 뛰어들어본다. 그리고 어딘가 나와 닮은 나일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나일스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쳤다는 걸 알 게된 후 나일스와 거리를 두고 형체 없이 반복되는 하루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오늘의 내 실수와 어제의 후회를 책임질 필요 없는 타임 루프는 분명 안전한 도피처다. 실수에 대한 책임도 그에 대한 죄책감도 어차피 내일이면 없는 일이 될 하루. 하지만 다른 이들은 오늘 나의 실수를 기억하지 못한다 해도 타임 루프에 갇힌 나는 나의 실수와 후회를 기억한다. (그래서인지 나일스는 타임 루프 속에서도 타인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한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실수와 후회이기에 그것을 꼭 되돌릴 필요는 없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의 실수를 되돌리거나 변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내일이, 새로운 기회가 오지 않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내 인생을 되찾아야겠어요"
우리는 보통 지난 실수와 후회를 떠올리며 다시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어제보다 한 뼘 더 성장한다. 하지만 타임 루프 속에선 이러한 성장을 이뤄야 할 이유도 이룰만한 기회도 없다. 세라는 타임 루프에 빠진 후 매일 아침 에이브의 침실에서 눈을 뜬다. 세라는 처음엔 그저 타임 루프가 선사하는 자유를 즐기기 바빴지만 나일스의 거짓말을 듣게 된 후 타임 루프를 방패 삼아 거짓말을 하거나 실수를 모르는체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현실로 돌아가면 분명 전처럼 눈치 보는 날이 반복될 테고, 어쩌면 결혼식 전날에 저질러버린 실수를 책임져야 할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무의미한 하루를 반복하는 것 대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한 뼘 더 성장하는 방향을 선택한다.
나일스는 이제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현실로 돌아가길 두려워한다. 세라가 동굴을 폭파시켜 현실로 돌아갈 거라 말하자 나일스는 “당신과 남고싶어요.” “여기 남아줘요.”라고 말하며 세라를 붙잡지만 세라는 단호하게 자신의 인생을 되찾겠다며 자리를 뜬다. 나일스는 세라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했음을 깨닫고 함께 현실로 돌아갈 용기를 낸다. 혼자 무의미한 오늘에 남아 현재에 안주하며 사느니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을 살아가는 것. 그게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자네만의 안식처를 찾아봐."
어쩌면 우리는 항상 길을 잃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걸지도 모른다. 내일은커녕 당장 몇 시간 뒤에 일어날 일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거창한 비유를 내려놓고 가볍게 말하자면 오늘 먹으려고 결정해둔 저녁 메뉴가 갑자기 품절이 되는 것과 같은 예상치 못한 변화가 생긴다면 또다시 고민을 반복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타임 루프 속에서 겪는 오늘은 모든 게 다 예상되는 정해진 일들의 연속이지만 진짜 인생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툭하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된다. 나일스와 세라 역시 인생의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나일스는 정해진 길과 결과가 있는 타임 루프를 ‘나만의 안식처’라고 느끼며 타임 루프를 벗어나길 꺼리지만 내일을 향해 나아가는 세라를 보며 다시 삶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그리고 세라의 존재가 진정한 오늘의 의미이자 안식처임을 알게 된다.
내일이 오지 않는다는 건 결국 새로운 기회와 조금 더 발전할 나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타임 루프는 그저 반복되는 나의 실수를 가볍게 외면해도 괜찮다는 특권일 뿐, 달라진 나와 또 다른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배경은 아니다. 시간은 의미 없이 낭비되고 있고 무의미에 갇힌 사람은 변하지 않는 오늘처럼 변하지 않는 삶을 산다.
변화도 의미도 없는 타임 루프 속에서 만난 최고의 인연은 서로에게 내일을 꿈꾸게 될 동력이 된다. 무의미한 하루 속에서 발견한 가장 의미 있는 그를 바라보며 두 사람은 조금 더 나아갈 우리를 궁금해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내일’은 꼭 맞이해야 할, 가장 필요한 존재로 변한다. 내일을 맞이하게 되면 무의미한 시간을 반복할 때보다 걱정도, 부딪혀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것도 어마 무시하게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다면 적어도 지루하고 힘들진 않겠지-싶다. 더 아름다워질 우리의 내일과 한 발자국 나아갈 나를 상상하며 내딘 내일을 향한 한 걸음엔 용기와 사랑, 믿음이 가득하다.
*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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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현장에 뛰어든 한 용감한 예술가가 남긴 위대한 유산
▷한줄평 : 한 장의 사진이 역사를 뒤흔든 순간, 리 밀러는 더 이상 뮤즈가 아닌 증언자가 되었다.
▷평점 : ★★★
▷영화 :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LEE), 2025.9월
※ 본 글은 씨네랩(http://cinelab.co.kr) 초청 시사회 참석 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진은 빛과 시간을 기록한다. 조리개를 열어 공간을 재단하고, 셔터 스피드를 설정하여 시간을 채집한다.
그렇게 탄생한 사진은 공간에 시간을 더한 4차원적 결과물을 2차원 평면으로 단순화하고 응축시킨다.
그리고 어떤 시공간 속 사진가의 경험과 감정을 담아낸다.
따라서 사진은 ‘의도된 기록’이다. 우리가 어떤 사진 앞에서 강렬한 울림을 느낀다면, 이미 그 의도에 설득당한 것이다.
여기 두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어떤 의도가 보이는가?
사진 <히틀러 욕조 안의 리 밀러> / Lee Miller(왼쪽)와 David Scherman(오른쪽) 독일 뮌헨의 아돌프 히틀러 집 욕조안에서 (1945년 4월 30일)1945년 4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히틀러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한 리 밀러(케이트 윈슬렛)와 그의 동료 데이비드 셔먼(앤디 샘버그)은
다하우(Dachau) 강제 수용소의 해방 현장을 취재한 직후 히틀러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그곳에서 밀러는 진흙투성이의 군화를 매트위에 벗어놓고 나체 조각상과 히틀러 초상화 아래에서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식을 사진 속에 담아낸다.
히틀러의 은밀한 사생활의 공간이었던 욕조 안에서 ‘총통의 세상은 이제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 사진의 의도는 ‘굴욕감’이다. 이 도발적인 사진은 나치의 몰락을 가장 극적으로 상징하는 이미지로 역사에 기록된다.
“나는 히틀러의 집에서 사진을 찍었고, 히틀러의 침대에서 잠을 푹 잤습니다.
심지어 다하우의 흙을 히틀러의 욕조에서 씻어내기도 했습니다.” / 리 밀러이 한 장의 사진은 그녀의 삶 전체를 설명한다.
모델과 뮤즈로서 살아왔던 리 밀러가 어떻게 대담한 2차 세계대전의 사진작가가 되었을까?
모델, 뮤즈, 배우, 아티스트에서 종군기자로, ‘찍히는 삶’에서 ‘기록하는 삶’으로
리 밀러(1907~1977)는 1907년 미국에서 태어나, 1927년 보그(Vogue)의 커버 모델로 데뷔해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만 레이, 피카소의 뮤즈로 활동하며 예술계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리 밀러(Lee Miller)의 모델로서 활동시절의 사진들(좌) 리 밀러의 ‘피크닉’(1937년) 사진 / (우)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스틸컷
“난 사진 찍는 게 더 좋아요. 찍히는 것보다.”
그녀는 모델이 아닌 사진가로서, 타인의 시선에 포획된 삶이 아니라 스스로 기록하는 삶을 선택했다. 보그 소속 종군기자로서 카메라를 들고 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는 바로 이 전환점을 따라가며, 그녀의 시선이 포착한 전쟁의 참상과 상흔을 담담히 그려낸다.
(위) 리 밀러의 종군기자 시절 사진 / (아래) 영화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스틸컷
전쟁을 기록한 리 밀러의 카메라, 역사의 증언이 되다
밀러는 처음에는 간호사, 여성 군인, 폐허가 된 건물을 담으며 전쟁의 흔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곧 “왜 여성은 최전방에 갈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국 1944년 총탄이 오가는 최전선에 뛰어들어 여성이라는 한계와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는 여성 특유의 시선으로 역사를 기록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시작한 그녀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역사의 증언이 된다.
네이팜탄 첫 투하,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리 해방, 알자스 전투, 그리고 1944년 독일 부켄발트와 다하우 강제수용소의 참혹한 장면까지.
그녀는 과거 초현실주의 아티스트의 경험을 살려 파괴와 죽음의 이미지와 동시에 그 속에서 스치듯 드러나는 삶과 아름다움을 함께 포착해냈다.
생 말로에서 찍은 <부츠와 탄약>(1944년)은 육체가 사라진 자리에 뼈처럼 놓여 있는 탄약의 모습은 전쟁의 잔혹함을,
종전 후 다하우에서 찍은<운하에 떠오른 죽은 SS경비병>(1945년)은 학살의 공포와 그 주변의 평화로운 풍경이 강렬하게 대비를 이룬다.
리 밀러의 대표 사진들 : <부츠와 탄약>(1944년), <운하에 떠오른 죽은 SS경비병>(1945년), <방화 마스크를 쓴 여인들>(1941년), <전쟁 복장>(1942년),
<보조 영토 서비스 탐조등 조작원>(1943년), <텐트 수술실>(1944년), <재판 받는 독일 부역자>(1944년),, <라이프치히 시장의 딸의 자살>(1945년),
<폐허가 된 빈 오페라 하우스에서 ‘나비 부인’을 부르는 오페라 가수>(1945년)
그녀와 셔먼이 함께 촬영한 다하우 해방 직후의 사진들은 1945년 <보그> 6월호에 'Believe it(믿어라)’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밀러는 런던에 있는 편집자 오드리(안드레아 라이즈보로)에게 사진을 보내면서도 게재될 확신이 없었기에
이것이 사실임을 믿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I IMPLORE YOU TO BELIEVE THIS IS TRUE!)라는 메모를 함께 남겼다.
1945년 <보그> 6월호 ‘Believe It’과 다하우 수용소 사진들 / 출처 : VOGUEARCHIVE https://archive.vogue.com/article/1945/6/believe-it
남겨진 상처, 그리나 드러난 값진 유산
그러나 리 밀러는 생전에 자신의 사진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1977년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 앤소니가 다락방에서 6만 장에 달하는 사진과 필름을 발견하면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의 작품을 정리해 아카이브를 만들고, 책으로 출간하며 그 유산을 세상과 나눴다.
영화는 아들 앤소니(조시 오코너)가 리 밀러와 인터뷰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앤소니는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어머니가 겪었던 전쟁의 참상과 상흔을 마주한다.
폐허가 된 건물 속에서 굶주림과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한 소녀의 눈빛이 전하던 ‘생명에의 갈구’는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전쟁의 잔상이다.
전쟁터에서 누구보다 용감하고 대담해 보였던 그녀는, 이제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알코올 중독에 시달려왔다.
이제서야 앤소니는 어머니의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한 여성이 발휘한 예술가적 용기는 어느 누구도 쉽게 남길 수 없는 위대한 기록을 만들어냈다 것도 알게 되었다.
리 밀러의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역사의 가장 어두운 순간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언한 위대한 유산이었다
[참고자료]
1. The National WWII Museum https://www.nationalww2museum.org/war/articles/lee-miller-witness-concentration-camps-and-fall-third-reich
2. ARTBOOK https://www.artbook.com/blog-featured-image-lee-miller-hitlers-bathtub.html
3. VOGUEARCHIVE https://archive.vogue.com/article/1945/6/believe-it
4. LEE MILLER ARCHIVES https://www.leemiller.co.uk
5. 히틀러의 욕조에서https://www.vintag.es/2020/10/lee-miller-david-scherman.html
6. Lee Miller의 사진집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gallery/2023/sep/12/surrealism-and-war-the-life-of-lee-miller-in-pictures
영화 < 리 밀러: 카메라를 든 여자> 포스터
202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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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내 세상이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다시 시작하자
우리 다시 시작하자. 그의 말에 아휘는 늘 새롭게 기대하는 것이 있었다. 빌어먹을 인연이었다. 그리고 그 인연은 현재 진행형이다. 홍콩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왔다. 그것도 무려 아르헨티나로. 둘이 함께 이과수 폭포를 가기로 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둘은 다퉜다. 길 잘못 들어왔나. 일단 두 사람의 길은 어긋났다. 매일같이 싸우는 두 사람. 이번에도 다투고 있다. 오늘의 주제는 ‘왜 버스를 타지 않았나’라는 것이다. 운전하고 가던 차가 고장 났다. 거리에 멈춰 선 두 사람. 둘은 이번에도 서로에게 이별을 고한다.
어찌저찌 다운타운으로 내려온 두 사람. 아휘는 가게 앞에서 소소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갑자기 아휘가 일하던 장소로 쓱 지나가던 보영. 괜히 나타난 보영의 존재. 서로를 인지한다. 퇴근하고 집에 도착했다. 전화를 받은 아휘의 집주인. 보영이 전화를 걸었다. 잠깐 봐서 얘기하자는 보영의 말에 아휘는 쏜살같이 달려간다. 문을 두드리는 아휘. 그동안 쌓아놨던 울분을 터트리듯 보영에게 소리 지른다. 보영과 함께했던 시간이 아깝다고 말하는 아휘. 그런 아휘에게 가볍게 입 맞추며 ‘이제 가’라고 말하는 보영. 서로 만나기만 하면 불행해지는 것 같다.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까.
왕가위의 영상언어
영화를 보고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지점은 정서를 구현하는 촬영이다. 왕가위의 페르소나 중 하나인 크리스토퍼 도일은 영화에서 핸드헬드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인물의 정서를 드러내는 촬영법을 구사한다. 왕가위의 영화들이 그렇지만 이 사람 작품세계의 핵심은 역시 정서의 힘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인물의 서사를 영화의 스타일에 맞추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이 왕가위의 작품 세계에서 품고 있는 이야기들은 좀 간단한 구석이 있다. 두 사람의 잊을 수 없는 며칠간의 로맨스(<화양연화>) 자기혐오에 가득 찬 남자의 말로(<아비정전>) 흩어지고 만나는 두 남녀(<중경삼림>) 등 마틴 맥도나나 박찬욱처럼 이야기의 구조로 자기만의 인장을 새긴 사람은 아니다(이는 <2046>이란 영화에서 특히 그랬다). 그 대신 왕가위는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감성을 각자의 배우가 맞게 화음을 이룬다는 점에서 다른 감독들과의 차이점을 보인다. 비단 이 영화만 해도 고독과 미련이라는 감정을 양조위와 장국영은 다르게 연기하는 것 같다. 아휘의 고독은 사랑했기 때문에 찾아올 수밖에 없는 고독이다. 나도 모르는 내가 나온다는 것이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장국영이 연기했던 보영은 <아비정전>에서 볼 수 있었던 캐릭터와 살짝 다르다. 그냥 막가파 같지만 후반부의 인물 묘사를 보면 확실히 공통점은 있다. 그러나 마음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아휘와는 다른 지점이다. 이 지점은 후반부에 가서 영화가 처연 해지는 포인트가 된다. 또 두 사람의 고독이 맞물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 영화에서 가장 좋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은 왕가위 특유의 색감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아르헨티나의 습함을 구현하는 색감이 많이 쓰였다. 물론 이 색감은 영화에서 영화의 분위기만 보여주려고 쓰인 건 아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색감을 하나의 톤으로, 그것도 일관성 있게 뺐다는 점이 극찬할만한 건 당연하다. 그것 말고도 영화가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지점은 영화를 본 많은 분들에게 인상 깊게 남을 것이다. 이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가는 지점'은 두 사람의 사랑을 더 진진하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어느 인물에게 이 대사가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 꼼꼼히 본다면 색감을 활용한 연출방법 중에 이런 것도 있구나 싶으실 것이다. 그리고 영화의 엔딩 색감 연출과 ost 삽입은 어마어마하다. 이 부분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의 감상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피 투게더
영화의 이야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한 연인이 싸우고 헤어지고 하는 것을 반복하는 게 영화의 주요 줄거리다. 심지어 어떤 인물들은 기존의 왕가위 영화를 반복한 것처럼 보인다. 가령 아휘와 보영의 관계는 사실 <아비정전>에서 수리첸과 아비의 관계에서 봤던 듯하다. 또 <화양연화>에서 형식과 화법을 갖고 온 듯한 느낌도 있다. 전자는 엔딩과 관련된 부분이라 생략한다. 후자의 경우에서 영화에서 <타락천사>같이 화려한 연출법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렇다(또 그렇다고 해서 왕가위 고유의 스타일이 아예 없지는 않은 듯하다). 하지만 이 영화의 줄거리가 왕가위 세계에서 기록할만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영화가 지칭하는 '해피 투게더' 현재와 미래이기 때문이다.
왕가위의 세계관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의 특성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은 과거다. 인물들은 과거에 붙박여있다. 가령 <2046>에서 양조위 배우가 주연을 맡은 캐릭터만 봐도 그렇다. 또 <중경삼림> 2부에서 역시 양조위 배우가 맡은 주인공 역할도 전 연인을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화양연화>는 그냥 제목부터 과거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반대다. 과거에 있던 일들이 영향이 있긴 하지만 여기에 붙박여있는 인물은 아니다. 오히려 '다시 시작하자'라는 말로 새롭게 시작하는 연인이 중심이 되는 작품이다. 대신 영화는 징그러울 정도로 두 사람의 현재를 묘사한다. 둘은 이상한 소재로 말다툼도 하고, 별것도 아닌 것에 화내며 짜증 낸다. 둘은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으로 '해피 투게더'와 '춘광사설'이 붙은 이유는 이 현재를 묘사하는 방식에 있다. 둘의 헤어짐과 만남이 왜 '해피'일까? 이건 여러분이 극장에서 확인하시길 바란다. 영화를 보고 왜 이 시간이 나에게 행복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 작품을 걸작으로 만드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기존 왕가위의 영화와는 다른 접근법을 보여주는 것이다.'과거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일들을 지금 현재에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가 되는 것이다. 이는 영화 후반부 기차라는 탈 것이 등장하는 것도 그 근거가 된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 사람에게 필요한 건 정말 무엇인지 반문하는 셈이다.
홍콩 반환
이 영화의 리뷰를 쓴다고 했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당시 홍콩의 시대상이다. 글쓴이는 이 <해피 투게더>를 볼 때 이게 그렇게 중요할까? 싶지만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왕가위 감독이 실제로 언급한 부분이 있으니 이 글에 담지 않을 수 없겠다. 1997년 당시 홍콩은 많이 불안정했다. 많은 분들이 미국이나 캐나다로 가는 여권을 구하려고 했다. 그중 가장 비참했던 건 영국 영주권이 있던(반환 이전의) 분들이 홍콩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영국 영주권이 있던 분들은 자기의 나라가 없어진 셈이다. 왕가위 감독은 '이 풍경을 다뤄야 할 것 같아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핵심으로 작동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이런 시대상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인다.
IMAGINE ME AND YOU
지난 4월 1일은 장국영의 20주기였다. 그 덕에 <패왕별희>와 <해피 투게더>가 지금 재개봉 상영관이 열렸다고 한다. 글쓴이는 제주 사람이라 특정 기업 영화관을 갈 수 없다. 그래서 그냥 방구석에서 모바일 환경으로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얼마나 많은 분들이 볼지는 모르지만 글쓴이는 이 작품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다. 글쓴이처럼 20대 중반을 넘어가면 미완으로 남은 사랑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랬으면 달랐을까. 내가 사과했으면 바뀌었을까. 내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영화는 그 '혹시'에 대해 대답한다. 최근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분들이라면 유달리 영화가 아프게 들릴 것이다. 그리고 엔딩을 보고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야지' 싶으셨으면 좋겠다. 이 엔딩에 관련한 부분이 당시 홍콩의 시대상과 관련이 있다는 인터뷰도 있긴 있지만 여러분에게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 듯하다.
장국영 배우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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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좋아하는 가수로 주저 없이 스다 마사키를 말하던 때가 있었다. 장발, 넥타이, 통기타를 들고 목소리를 긁어가며 부르는 ‘사요나라 엘러지’ 영상을 족히 50번은 본 듯하다. 그의 노래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그에 대해서 알기 싫었던 마음이 있었다. 노래에 대한 감상이 그 가수의 사생활이나 성격으로 인해 영향을 받아 변질되는 것이 싫었다. 그가 배우로 더 유명하다는 사실은 곧 죽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치 오늘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의 주인공 키누(아리무라 카스미)처럼 말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내 감정을 덮지 마. 어젯밤의 여운 속에 있고 싶단 말이야.” 우연히 지하철 첫 차를 기다리며 가까워진 무기(스다 마사키)의 집에서 돌아온 후 키누가 한 생각이다.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가수를 좋아하고, 내가 읽고 싶었던 소설을 이미 그가 읽고 있다. 너무나도 닮은 그들은 서로를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었다. ‘전철을 탄다’라는 말 대신 ‘전철 속에서 흔들린다’라는 말을 쓰는 무기를, 평생을 의문스러워 한 가위바위보의 규칙을 똑같은 이유로 이상하다 여기는 키누를 말이다. ‘운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연스레 그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 일. 무기와 키누의 첫 만남이었다. 21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될 수 있는 나이에 만난 그들은 싱그러운 사랑을 나눈다.
비록 지하철역에서 30분 동안 걸어가야 하지만, 강이 한눈에 보이는 작은 빌라에서 같이 살게 된 그들은 20대 중반을 함께 마주한다.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덩그러니 놓이게 되어도, 울고 있는 나의 앞에 슬리퍼를 신고라도 달려와 줄 당신이 있기에 그래도 괜찮은 날들이 이어진다. 인생의 목표가 ‘키누와의 현상 유지’였던 무기. 그러나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나선 후, 그의 다짐은 어딘가 어긋나게 된다. 재미없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은 키누와, 인생은 책임이라는 무기. 서로가 점점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만 느끼고 있다는 생각에 키누는 점점 메말라간다.
끝내 헤어짐을 택한 그들은 함께 골랐던 커튼을 정리하고 가구를 옮기며 차근차근 서로의 흔적을 덜어낸다. 그 과정이 너무 아프지만은 않은 이유는, 매 순간 서로를 후회 없이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남김없이 모든 것을 다 준 이들은 뒤돌아보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별하고,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들의 미래를 약속하며 축하를 받기도 한다. 어떤 것이 좋은 결말이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알 수 없다고 얘기하고 싶다. 촘촘하게 얽혀있는 서로를 인생에서 분리해 내기란 당연하게 어려운 일이고, 함께했던 일상에서 혼자로 돌아가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의 젊음을 함께 나눴던 이가 있다는 것, 함께한 시간들이 나의 궤적이 되는 것 역시 값진 일일 것이다.
“시작이란 건 끝의 시작. 만남은 항상 이별을 내재하고 있고 연애는 파티처럼 언젠가는 끝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가져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면서 그 애달픔을 즐길 수밖에 없다.” 주인공 키누가 즐겨보던 블로그의 한 문장이다. 살아있는 꽃은 꺾는 순간 그 생명을 잃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며 시들어간다. 메말라 버릴 미래를 그리며 안타까워하기에는 그 당장 눈앞에 놓인 싱싱함은 너무나도 아름다울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언젠가 사그라들 줄 알면서도 영원함을 바라게 되는 사랑이 있기를, 찾아오기를, 있었기를 바란다.
Editor. I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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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은 흐르지만,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내면을 뒤흔든다
영화 <하얼빈>이 개봉된 후 극장가와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관객은 이 작품을 ‘엄숙하게 다시 써 내려간 독립운동의 한 페이지’라고 평하고, 또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만들면서도 담담하게 흘러가는 독특한 분위기’에 주목한다. 개봉을 기다려온 사람들 중에는 앞서 안중근을 다룬 여러 작품을 기억하는 이도 있고, 이제 막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그의 역사적 역할을 자세히 접하는 이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언제 이런 순간이 다시 와도 우리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곱씹으며 극장을 나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무겁고도 절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영화 속에서 안중근(현빈 분)과 독립 투사들은 러시아와 만주가 뒤섞인 복잡다단한 국경 지대, 그중에서도 하얼빈을 활동 무대로 삼는다. 시대는 1909년.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이미 조선 땅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과 동지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필사의 싸움을 이어간다. 그들은 하얼빈의 얼어붙은 기차역, 어둡고 취약한 뒷골목을 거점 삼아, 비밀리에 정보를 교환하고 작전을 짜낸다. 눈 내리는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 고국으로부터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거대한 제국의 압박은 점점 더 거칠게 이들을 죄어 온다.
그러나 영화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처절한 현실을 단순히 영웅적 의지로만 채우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당위는 분명하지만, 눈앞의 죽음을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주변을 살펴보면 배신과 협잡이 난무하며,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노선을 주장하는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하얼빈>은 ‘독립 투쟁’의 표면 뒤에 묻혀 있는 수많은 난관과 엇갈린 이해관계, 인간적인 번민을 담담하게 그려낸다.독립 투사들의 인간적 번민
이렇듯 실제 역사적 사건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향해 치닫는 과정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 안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거기서 관객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과, ‘한 사람의 인간 안중근’이 겪는 작고 숨 막히는 고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이런 부분에서 <하얼빈>이 이전에 안중근을 다뤘던 영화 <영웅>과 <도마 안중근>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영화 <영웅>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틱한 감정선에 강점을 두어,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결연한 의지와 함께 감동을 자아내는 노래들로 극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반면 <도마 안중근>은 안중근의 재판 과정과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품고 있던 신념, 그리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부각해, 그가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신앙적·윤리적 갈등을 깊게 파고들었다. 완성도를 떠나 이런 시도들은 '안중근' 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시도들이었다.
이에 비해 <하얼빈>의 안중근은 묵묵하고, 동시에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안중근이 태생부터 ‘결단력으로 가득한 의인’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처절한 현실 속에서 “과연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며 심리적 갈등을 겪는 존재로 나타난다. 스스로가 택한 길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길에 따라붙는 죽음의 그림자와 가족, 동지들의 희생,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옥죄인다. <하얼빈>의 안중근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영웅서사로만 보면 희생과 결단이 낭만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내가 정말 이 모든 걸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안중근의 심리적 고민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가 비추는 장면들을 보면, 먼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길’이라는 명분 안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직시하게 된다.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이토록 거대한 상대를 저격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 혹은 일이 성공한 뒤에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자유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시대일까 하는 걱정 또한 안중근의 머릿속에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부의 신념,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겹치며, 그는 스스로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이러한 심리를 매우 건조하고 진지한 톤으로 그려내며, 관객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라고.
안중근의 인간적 고민들
안중근이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현실을 매우 또렷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 순간 실패와 죽음을 예견하는 일이다. 배후 세력이 든든히 버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지를 안전하게 마련할 방법도 없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국은 더욱 식민지화되어 간다. 반역자나 스파이의 위협도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너무나도 불리하고 암울한 환경에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그를 고뇌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가 만일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알을 꽂는다면, 적어도 전 세계에 조선을 도살장에서 끌려가는 짐승 취급하지 말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토는 일본 제국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침략 정책의 주체였으므로, 그를 제거한다는 행동이 동아시아의 정세에 어떤 충격을 불러올 수 있는지 안중근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즉, ‘나라가 망할지언정, 우리 민족의 끈질긴 투쟁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에게는 존재했다. 이는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나와 동시대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왜 다시 안중근을 떠올려야 할까.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안중근의 행위는 단순히 ‘역사적 의거’가 아니라, 억압받는 개인과 국가가 저항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치열한 대립 구도를 안고 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 속에서, 때로는 법과 원칙이 무너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쥐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한다.
계엄령이나 내란과 같은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할 정도로 정세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100여 년 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안중근의 ‘간절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총성은 단순한 살상 행위가 아닌, 더 넓고 깊은 맥락에서 ‘정의를 외치는 나팔소리’였고, 그 울림은 우리 사회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독립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암시를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내비친다. 역사적으로도 알고 있듯, 안중근 이후로도 독립운동은 수많은 형태로 전개되었다. 만주 벌판을 누비는 무장투쟁 세력부터 해외 각지의 외교 활동까지, 일제강점기 내내 ‘해방’을 꿈꾸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로 그 끈질긴 의지를 오늘의 관객에게도 전해주면서, <하얼빈>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힘들다고 해서, 혹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 서선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이러한 격려는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도 분명히 힘이 된다.
영화에서 보이는 현실의 정치상황
물론 <하얼빈>은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느리고, 말 그대로 ‘건조한 듯 진지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일부 관객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투 장면이나 의거 장면에서 극적인 음악과 연출을 더해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우민호 감독은 이를 절제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 덕분에 영화 전체가 허황된 영웅주의에 기댄다기보다는, ‘정말 그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고민했겠구나’라는 현실감을 심어준다. 관객에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그 인내 끝에 오는 묵직한 감동이야말로 <하얼빈>이 가진 특별한 강점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안중근을 맡은 현빈의 연기는 서사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말없이 굳센’ 동시에 ‘내면의 흔들림이 분명한’ 상태로 끌고 간다. 대사를 통해 감정을 일거에 폭발시키기보다는, 상황과 상황 사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다짐을 되뇌는 듯한 미묘한 눈빛 변화로 캐릭터의 심리를 전달한다. 동지로 나오는 조우진, 유지태, 전광렬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거창한 애국심을 노래하기보다, 항시 떠나는 자들의 슬픔을 눈빛으로만 보여주고, 은밀한 접선을 기다리는 초조함을 낮은 목소리로만 드러낸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웅장한 역사극 한 편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세기를 뛰어넘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우민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 역시 이런 연기에 잘 어우러진다. 그는 이미 <내부자들>, <마약왕>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번 <하얼빈>에서는 더욱 절제되고 묵묵하게, 시대의 풍경을 탁하게 그려내면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다. 때로는 극적인 클로즈업 대신 인물들을 배경에 작게 배치한 채, 눈 쌓인 하얼빈 거리나 기차역 풍경과 함께 묘사함으로써 시대적 고독과 혹독함을 배가시킨다. 덕분에 영화의 미장센이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서늘한 느낌을 전달한다.
결국, 지금 계엄과 내란의 기운이 감돈다는 뉴스가 흘러나올 정도로 정치적 혼돈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얼빈>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온전한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했다. 그 정신을 잊은 채, 그저 분열과 힘겨루기에 빠져 있다면, 과연 우리는 100년 전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인가.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안중근의 망설임, 결단, 그리고 최후의 총성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혹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이 작품이 단지 ‘역사 재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유효한 독립군의 정신, 잃지 말아야 할 자유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가 진정한 <하얼빈>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치적 혼돈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이 시점에 더없이 소중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몇몇 관객에게는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마음 한구석에 새겨야 할 작품이다. 어쩌면 그것이 <하얼빈>이 우리에게 주는 ‘차분하지만 강력한 울림’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이 영화를 지루하다고만 치부하기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너무나도 절실한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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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4」 시리즈 속 모든 상징과 철학 뽀개기 #01 | 매트릭스 인문학 리뷰 | 매트릭스 리저렉션 리뷰 | 매트릭스4 리뷰 | 매트릭스4 해석 | 매트릭스 리저렉션 해석 |
?《매트릭스4 리저렉션》(2021) 영화리뷰 / 매트릭스4 리저렉션 리뷰
《매트릭스 1~3》 인문학 결말포함 영화리뷰 #1
*후속영상
#2 [현실은 진짜일까?] https://youtu.be/wfvqm5HBRb0
#3 [빨간 옷의 여자] https://youtu.be/X_fQcoytk70
#4 [오라클은 악마다?] https://youtu.be/fLgWf7NWkn8
#5 [스미스는 왜 졌을까] https://youtu.be/Uas0KZDCQec
- 매트릭스1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댄 크라치올로, 캐롤 휴스, 리차드 미리쉬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외
제작사: 실버 픽처스,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아츠 엔터테인먼트, 그라우쵸 II 필름 파트너쉽
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엔터테인먼트
개봉일: 미국 1999년 3월 31일, 대한민국 1999년 5월 15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6300만 달러 ~ 6500만 달러
상영 시간: 136분
북미 박스오피스: $171,479,930 (1999년 9월 23일), 월드 박스오피스 $463,517,383 (2003년 3월 10일)
상영 등급: 12세 관람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38분
북미 박스오피스: $281,576,461 (2003년 10월 30일)
월드 박스오피스: $742,128,461 (2011년 11월 25일)
- 매트릭스3 레볼루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각본/원작: 워쇼스키 형제
제작: 조엘 실버, 비키 포플웰, 스티브 리처즈, 필 우스터하우스
음악: 돈 데이비스
촬영: 빌 포프
편집: 자크 스탠버그
출연: 키아누 리브스, 로렌스 피시번, 캐리앤 모스, 휴고 위빙, 글로리아 포스터, 제이다 핀켓 스미스, 해럴드 페리노, 모니카 벨루치, 랑베르 윌슨, 지나 토레스, 랜들 덕 김, 예성
제작사: 미국 빌리지 로드쇼 픽처스, 미국 실버 픽처스, NPV 엔터테인먼트, 하이네켄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호주 로드 쇼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개봉일: 미국 국기 2003년 5월 15일, 대한민국 국기 2003년 5월 22일, 호주 국기 2003년 5월 16일
화면비: 2.39 : 1
제작비: 1억 5,000만 달러
상영 시간: 129분
북미 박스오피스: $139,313,948 (2004년 2월 26일)
월드 박스오피스: $427,343,298 (2004년 3월 28일)
- 매트릭스4 리저렉션 영화정보
장르: SF, 액션
감독: 라나 워쇼스키
각본: 라나 워쇼스키, 알렉산드르 하몬, 데이비드 미첼[1]
제작: 라나 워쇼스키
음악: 조니 클라이맥, 톰 티크베어
촬영: 존 톨
출연: 키아누 리브스, 캐리앤 모스 외
제작사/배급사: 미국 워너 브라더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미국 2021년 12월 22일, 한국 12월 22일
화면비: 2.39:1
상영 시간: 140분
간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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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벤져스 1편 삭제씬 총정리
#산돌구름 #어벤져스1 #삭제씬
"마블쟁이는 산돌구름에게 폰트를 지원 받았습니다"2021. 04. 08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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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쟁이 인스타그램: @marvel_jeng2* 영상에 사용된 모든 음악은 Epidemicsound 의 정식 라이센스 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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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 인트로
00:34 마리아 힐 & 오프닝
01:35 외로운 캡틴
03:35 캡틴과 웨이트리스
04:37 경찰 비하인드
05:23 앤트맨 힌트
06:09 너무 오랜만에 찾아왔어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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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분노의 질주> 4D 공식 예고편
영원히 기억될 질주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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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산 : 용의 출현> 15초 예고편
절대적 수세 위기의 조선을 구해낸 위대한 성웅 '이순신'의 전략과 패기! [한산: 용의 출현] 7월 27일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