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BBITGUMI2025-01-12 13:25:02
시간은 흐르지만, 기억은 여전히 우리의 내면을 뒤흔든다
-<하얼빈>(2024)






영화 <하얼빈>이 개봉된 후 극장가와 온라인 커뮤니티 곳곳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어떤 관객은 이 작품을 ‘엄숙하게 다시 써 내려간 독립운동의 한 페이지’라고 평하고, 또 누군가는 ‘감정적으로 울컥하게 만들면서도 담담하게 흘러가는 독특한 분위기’에 주목한다. 개봉을 기다려온 사람들 중에는 앞서 안중근을 다룬 여러 작품을 기억하는 이도 있고, 이제 막 안중근이라는 인물과 그의 역사적 역할을 자세히 접하는 이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이 공통적으로 ‘언제 이런 순간이 다시 와도 우리는 과연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곱씹으며 극장을 나선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하얼빈>은 단순한 역사극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무겁고도 절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영화 속에서 안중근(현빈 분)과 독립 투사들은 러시아와 만주가 뒤섞인 복잡다단한 국경 지대, 그중에서도 하얼빈을 활동 무대로 삼는다. 시대는 1909년. 대한제국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질 만큼 이미 조선 땅은 일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중근과 동지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필사의 싸움을 이어간다. 그들은 하얼빈의 얼어붙은 기차역, 어둡고 취약한 뒷골목을 거점 삼아, 비밀리에 정보를 교환하고 작전을 짜낸다. 눈 내리는 겨울, 혹독한 추위 속에서 고국으로부터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고, 거대한 제국의 압박은 점점 더 거칠게 이들을 죄어 온다.
그러나 영화는 안중근과 동지들의 처절한 현실을 단순히 영웅적 의지로만 채우지 않는다. 필사적으로 맞서야 한다는 당위는 분명하지만, 눈앞의 죽음을 피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주변을 살펴보면 배신과 협잡이 난무하며,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노선을 주장하는 갈등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하얼빈>은 ‘독립 투쟁’의 표면 뒤에 묻혀 있는 수많은 난관과 엇갈린 이해관계, 인간적인 번민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독립 투사들의 인간적 번민
이렇듯 실제 역사적 사건인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향해 치닫는 과정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 안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거기서 관객은 ‘나라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과, ‘한 사람의 인간 안중근’이 겪는 작고 숨 막히는 고민 사이에서 끊임없이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부분에서 <하얼빈>이 이전에 안중근을 다뤘던 영화 <영웅>과 <도마 안중근>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롭다. 영화 <영웅>은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틱한 감정선에 강점을 두어,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결연한 의지와 함께 감동을 자아내는 노래들로 극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반면 <도마 안중근>은 안중근의 재판 과정과 그가 가톨릭 신자로서 품고 있던 신념, 그리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부각해, 그가 총을 들 수밖에 없었던 신앙적·윤리적 갈등을 깊게 파고들었다. 완성도를 떠나 이런 시도들은 '안중근' 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려는 시도들이었다.
이에 비해 <하얼빈>의 안중근은 묵묵하고, 동시에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는 안중근이 태생부터 ‘결단력으로 가득한 의인’으로 그려지기보다는, 처절한 현실 속에서 “과연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며 심리적 갈등을 겪는 존재로 나타난다. 스스로가 택한 길에 한 치의 후회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길에 따라붙는 죽음의 그림자와 가족, 동지들의 희생, 그리고 실패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옥죄인다. <하얼빈>의 안중근은 그래서 더욱 현실적인 감정을 이끌어낸다. 영웅서사로만 보면 희생과 결단이 낭만적으로 비칠 수 있지만, 정작 당사자는 ‘내가 정말 이 모든 걸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안중근의 심리적 고민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가 비추는 장면들을 보면, 먼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길’이라는 명분 안에 어떤 감정이 담겨 있는지를 직시하게 된다. 독립운동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두려움과 슬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믿지만, 이토록 거대한 상대를 저격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 혹은 일이 성공한 뒤에 남아 있는 것은 과연 자유일까,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의 시대일까 하는 걱정 또한 안중근의 머릿속에 찾아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내부의 신념,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겹치며, 그는 스스로를 극한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영화는 이러한 심리를 매우 건조하고 진지한 톤으로 그려내며, 관객에게도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인가?’ 라고.

안중근의 인간적 고민들
안중근이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가 현실을 매우 또렷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매 순간 실패와 죽음을 예견하는 일이다. 배후 세력이 든든히 버티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근거지를 안전하게 마련할 방법도 없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조국은 더욱 식민지화되어 간다. 반역자나 스파이의 위협도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너무나도 불리하고 암울한 환경에서도,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점이 그를 고뇌하게 만든다.
동시에, 그가 만일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알을 꽂는다면, 적어도 전 세계에 조선을 도살장에서 끌려가는 짐승 취급하지 말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토는 일본 제국의 상징적인 인물이자 침략 정책의 주체였으므로, 그를 제거한다는 행동이 동아시아의 정세에 어떤 충격을 불러올 수 있는지 안중근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즉, ‘나라가 망할지언정, 우리 민족의 끈질긴 투쟁을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에게는 존재했다. 이는 단순한 애국심 이상의, ‘나와 동시대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왜 다시 안중근을 떠올려야 할까. 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안중근의 행위는 단순히 ‘역사적 의거’가 아니라, 억압받는 개인과 국가가 저항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치열한 대립 구도를 안고 있다. 서로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 속에서, 때로는 법과 원칙이 무너지고, 부당한 방법으로 권력을 쥐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기도 한다.
계엄령이나 내란과 같은 단어가 뉴스 헤드라인에 등장할 정도로 정세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고 가정해보자.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100여 년 전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안중근의 ‘간절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의 총성은 단순한 살상 행위가 아닌, 더 넓고 깊은 맥락에서 ‘정의를 외치는 나팔소리’였고, 그 울림은 우리 사회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점검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독립군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은 잔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져내리는 듯 보이지만,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암시를 영화는 마지막 장면까지 내비친다. 역사적으로도 알고 있듯, 안중근 이후로도 독립운동은 수많은 형태로 전개되었다. 만주 벌판을 누비는 무장투쟁 세력부터 해외 각지의 외교 활동까지, 일제강점기 내내 ‘해방’을 꿈꾸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바로 그 끈질긴 의지를 오늘의 관객에게도 전해주면서, <하얼빈>은 우리에게 묵직한 메시지를 남긴다. ‘힘들다고 해서, 혹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춰 서선 안 된다. 어떤 형태로든 계속 나아가는 것이 우리의 길이다.’ 이러한 격려는 지금을 사는 이들에게도 분명히 힘이 된다.
영화에서 보이는 현실의 정치상황
물론 <하얼빈>은 이야기의 전개가 다소 느리고, 말 그대로 ‘건조한 듯 진지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일부 관객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전투 장면이나 의거 장면에서 극적인 음악과 연출을 더해 감정선을 폭발시키는 방법도 있지만, 우민호 감독은 이를 절제하고 차분하게 상황을 쌓아 올리는 방식을 택했다. 이 덕분에 영화 전체가 허황된 영웅주의에 기댄다기보다는, ‘정말 그 시대에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고민했겠구나’라는 현실감을 심어준다. 관객에게는 인내심을 요구하지만, 그 인내 끝에 오는 묵직한 감동이야말로 <하얼빈>이 가진 특별한 강점이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큰 몫을 한다. 안중근을 맡은 현빈의 연기는 서사를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는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말없이 굳센’ 동시에 ‘내면의 흔들림이 분명한’ 상태로 끌고 간다. 대사를 통해 감정을 일거에 폭발시키기보다는, 상황과 상황 사이에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 다짐을 되뇌는 듯한 미묘한 눈빛 변화로 캐릭터의 심리를 전달한다. 동지로 나오는 조우진, 유지태, 전광렬 등 중견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거창한 애국심을 노래하기보다, 항시 떠나는 자들의 슬픔을 눈빛으로만 보여주고, 은밀한 접선을 기다리는 초조함을 낮은 목소리로만 드러낸다.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면, 그저 웅장한 역사극 한 편을 본 것이 아니라, 한 세기를 뛰어넘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를 듣고 나온 듯한 느낌이 든다.
우민호 감독의 연출 스타일 역시 이런 연기에 잘 어우러진다. 그는 이미 <내부자들>, <마약왕> 등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방식을 선호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번 <하얼빈>에서는 더욱 절제되고 묵묵하게, 시대의 풍경을 탁하게 그려내면서도 인물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다. 때로는 극적인 클로즈업 대신 인물들을 배경에 작게 배치한 채, 눈 쌓인 하얼빈 거리나 기차역 풍경과 함께 묘사함으로써 시대적 고독과 혹독함을 배가시킨다. 덕분에 영화의 미장센이 매우 사실적이며, 동시에 서늘한 느낌을 전달한다.
결국, 지금 계엄과 내란의 기운이 감돈다는 뉴스가 흘러나올 정도로 정치적 혼돈이 이어지고 있는 이 시대에, <하얼빈>은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온전한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투쟁했다. 그 정신을 잊은 채, 그저 분열과 힘겨루기에 빠져 있다면, 과연 우리는 100년 전 독립투사들의 발자취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인가.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지는 안중근의 망설임, 결단, 그리고 최후의 총성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도 끈질기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 혹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우리는 이 작품이 단지 ‘역사 재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지금 여기’에서 여전히 유효한 독립군의 정신, 잃지 말아야 할 자유와 인간의 존엄,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용기가 진정한 <하얼빈>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 메시지는 한국인들에게 특별한 공감대를 형성하며, 정치적 혼돈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쉬운 이 시점에 더없이 소중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몇몇 관객에게는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마음 한구석에 새겨야 할 작품이다. 어쩌면 그것이 <하얼빈>이 우리에게 주는 ‘차분하지만 강력한 울림’의 진짜 의미가 아닐까. 이 영화를 지루하다고만 치부하기에는, 지금 우리의 현실에 너무나도 절실한 목소리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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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 글로브 수상 트로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골든 글로브 수상 트로피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지난 2월 28일(북미 기준), 화면 속 일시적인 끊김과 어색한 수상 소감으로 가득한 밤 아래, 사챠 바론 코헨과 정이삭 그리고 클리오 자오 등 많은 감독들이 골든 글로브를 수상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수상자가 호명되고, 무대까지 긴 걸음을 걸어가 트로피를 수상하는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상식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수상자들은 언제쯤 주최 측인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이하 HFPA)로부터 트로피를 수여받을 수 있을까?
출처 : GoldenGlobes
이에 관해 HFPA의 대변인은, 수상자 전원에게 연락해 “코로나 예방 수칙에 문제가 없도록 하여 트로피를 안전하게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전했다. 또한, 영화 배우와 제작자들에게 전달될 골든 글로브 트로피는 이름 각인 작업이 진행중이다. HFPA는 “COVID-19 전염병을 둘러싼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있고 가능한 모든 일을 신속하게 완료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일부 수상팀은 트로피와 관련하여 이메일로 문의를 했지만 여전히 답장이나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창작 예술 에미상(Creative Arts Emmy Awards)은 작년 9월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됐는데, 수상자들 중 몇 명은 몇 주가 지나서야 트로피를 받았으며 심지어는 2021년 1월이 되어서도 받지 못했다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출처 : BBC
수상자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장소인 비버리 힐튼(Beverly Hilton) 호텔 무대에 서서 가족, 친구 그리고 홍보 담당자에게 감사를 전하는 모습은, 그들 사이에 개인적인 친분만 있는 것이 아닌 문화적으로도 관련이 있을 수 있어 많은 영화 팬들이 유튜브를 통해 재감상을 하기도 한다.
바론 코헨은 수상 소감에서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HFPA에 감사드립니다.(Thank you to the all-white Hollywood Foreign Press)”고 말하며, HFPA 회원 중에 흑인이 없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시상식을 앞두고 LA타임즈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 투표권을 갖는 87명의 현역 HEPA 회원 중 흑인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보도하며 문제가 된 논란이 다시 한번 부각되기도 했으나, 잠옷 차림으로 시상식에 참가한 조디 포스터의 모습 등 여태껏 보지 못한 장면들은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재감상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출처 : Los Angeles Times
이번 골든 글로브 시상식을 진행하고 HFPA 측에서 트로피를 전달하는 방식은, 아직 진행되지 않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미국 배우 종합상(SAG),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Critics Choice Awards) 그리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OSCAR)과 에미상(Emmy Awards)에게 있어 많은 영감을 주었을 테니, 우리는 앞으로 더 흥미로워질 시상식들을 즐기기만 하면 되지 않을까?
씨네랩 에디터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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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더 파더> : 그는 엉켜 버린 기억 앞에 서서 울었다
더 파더 (The Father, 2020)
* 본 리뷰는 영화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과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를 기다린 가장 큰 이유는 배우 때문이었습니다. 84세의 노장이지만 아직도 건재하며 모든 배역마다 완전한 그 역할 자체가 되는 안소니 홉킨스의 출연이기에 다른 때와는 다르게 영화 내용을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배우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으나 사전 정보가 많지 않았던 영화 내용에는 기대하지 못한 적잖은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충격입니다.) 장르는 분명 드라마인데 스릴러와 공포를 넘나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나서 머릿속이 얼얼한 기분은 “곡성”이후로 오랜만이었습니다.
런던에 살고 있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는 자신의 자부심처럼 느껴지는 집에서 혼자 노년의 나날들을 보냅니다. 그의 딸인 “앤”(올리비아 콜맨)은 주기적으로 그를 찾아오고 돌보아줍니다. 그러나 그녀는 새로운 사람과의 시작을 위해 곧 파리로 떠나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뜻밖의 이야기에 안소니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기억은 점점 더 엉켜서 무엇이 현실인지 알 수 없어져 갑니다. 딸은 어느 시점엔 간병인의 얼굴로 등장하고, 아버지를 떠나서 파리로 간다고 이야기한 적 없다고도 말합니다. 간병인의 얼굴은 세상을 떠난 둘째 딸 루시와 매우 닮아 있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다른 모습의 간병인으로 등장합니다. 커져가는 기억의 오류들 속에서 진짜를 찾기 위해 안소니는 기억을 바로 세우고 싶지만 그것은 그에겐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 이 영화의 장르는 스릴러와 공포인가
안소니에게는 언제가 아침이고 언제가 밤인지 모르는 날들이 계속됩니다. 영화의 소재인 “치매”는 우리에게 익숙한 그 병의 증상을 매우 세밀하고 감각적으로 전달합니다. 안소니에게 그가 알던 딸, 딸의 남편, 간병인은 다른 사람의 얼굴로 등장하기도 하고 알고 있던 인지하던 사실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게 되며 그는 매우 혼란스러움에 빠져가게 되죠. 트루먼 쇼, 예능에서 많이 보았던 몰래카메라를 연상하게 하는 해프닝들이 모여 그에게 굉장한 당혹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그가 인지할 수 없는 시간들과 사실들이 반복되는 것을 바라보는 게 어렵게만 느껴집니다. 마주하기 싫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 해야 하듯 스크린 속 안소니의 모습을 애써 지켜보면서 저 역시 시공간 감각을 상실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느낌들이 이 영화의 장르를 드라마가 아닌 심리스릴러로 느껴지게 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관객은 등장인물들의 옷, 씬마다 바뀌는 안소니의 아파트의 구조, 가구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무엇이 진실인지를 쫒아가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영화가 엔딩에 다다를 때까지 안소니에게 실제 일어난 일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감독인 플로리안 젤러감독은 이런 관객의 경험을 유도했다고 합니다. 관객이 모든 방향감각을 상실한 채 진실과 진실이 아닌 것을 생각하는 경험을 체험하길 원했다고 하죠. 또 이런 것들을 통해 여러 영화에서 치매를 다루는 방식이 아닌 색다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길 바라는 의도가 정확히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치매는 내가 겪어온 모든 시간을 엉겨버리게 만듭니다. 기억하는 사실이 달라질 때마다 그는 유난히 자신의 손목시계에 집착합니다. 엉겨버린 시간과 진짜 있었던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그의 현재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 어느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 생각하고 있겠죠). 자신에게 있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진짜가 무엇인지 찾으려는 그의 고군분투를 시계를 통해 어림짐작할 수 있고, 이는 영화를 함축하는 가장 적합한 장치가 됩니다.
▶ 이 영화의 장르는 결국 드라마였다
반복되는 장면들에서 “대체 이게 뭐지?”라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최대치로 느끼다가, 마침내 마지막에 도달하여 이 모든 일의 대부분이 그저 치매 걸린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사실이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 영화의 장르는 공포에서 드라마로 옷을 바꿔 입습니다. 요양병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마치 아기의 모습을 한 안소니의 모습에서 진실 찾기의 긴장이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쓸쓸한 노년을 맞이한 한 사람의 드라마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 시점이 돼서야 편안하게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안타까움과 연민의 감정들이 폭풍처럼 밀려옵니다. 그리고 이건 어쩌면 먼 훗날 나의 모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도 합니다. 나의 모든 잎들이 사라지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찬란하게 꽃 피웠을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의 마무리가 너무나도 가혹하고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영화 배역의 이름과 동일한 이름의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는 안소니 그 자체였습니다. 맡는 배역마다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배우입니다. 그리고 그 점에 있어서 나이 차이는 확연하지만 전 이병헌 배우가 늘 떠오릅니다. 이병헌 배우도 맡은 배역 모두 그 사람처럼 소화해내니까요. 그리고 소재가 소재인만큼 만일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역할을 맡는다면 누가 적합할지 떠올려보았는데 연기백 단의 이순재 배우, 박건형 배우가 떠올랐습니다.
<더 파더>는 감독이 직접 쓴 희곡 “더 파더”가 연극 이후 호평을 통해 영화로 재탄생된 작품입니다. “치매”라는 병을 소재로 차용할 때 주변인들이 환자를 연민과 사랑으로 바라보는 그간의 접근방식과는 다르게 당사자가 겪게 될 혼란과 공포에 맞춘 색다른 각본과 연출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이런 각본, 연출, 배우의 3박자가 고루 갖추어져서 개봉 전부터 전 세계 영화제에서 노미네이트 되었고, 다가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각색상, 미술상, 편집상의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이 쓰여진 이후 4/26 기준으로 아카데미에서 각색상과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영화 가뭄이 이어지는 날들 속에서 믿고 보는 배우들의 명품 연기와 작품성이 곁들여 저 완성미가 돋보이는 그런 영화의 부재들을 <더 파더>가 채워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출처 : <더 파더> 스틸 컷
* 본 콘텐츠는 블로거 그린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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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내부를 관조하기에도 벅찼던 <지금 우리 학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흘러가던 효산고등학교의 일상. '온조(박지후)', '청산(윤찬영)', '남라(조이현)', '수혁(로몬)'이 복잡한 애정전선을 형성하는 사이, 은지는 늘 그랬듯이 '귀남(유인수)'과 그 패거리에게 가혹하게 괴롭힘 당한다. 그러나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병찬의 과학 실험실에 감금되었던 '현주(정이서)'가 풀려나면서 효산고등학교의 일상은 파괴된다. 한 번 번지기 시작한 좀비 떼는 삽시간에 학교와 효산 시를 점령해 나가기 시작하고, 가까스로 좀비들의 공격을 피해 교실로 되돌아온 온조와 청산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좀비들로부터 안전해질 수 있는 방안을 찾는다. 그러나 '나연(이유미)'을 필두로 좀비보다 무서운 의심과 편견이 교실 내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간신히 되찾은 안전마저 사라지기 시작한다.
좀비물은 기본적으로 사회비판적 요소를 갖는 장르다. 좀비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들의 천태만상을 묘사하며 인간 본성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군상의 원인을 잘못된 사회적 시스템에서 찾아 비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각각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좀비 영화, 드라마라 할 수 있는 <부산행>과 <킹덤> 역시 좀비의 출현 원인을 사회적 모순으로부터 포착한다. <부산행>은 주인공 석우(공유)가 다니는 증권회사가 수익에만 집착해 되살린 부실기업이 좀비 바이러스를 만들었다는 진실을 통해 성장 중심 사회를 비판했고, <킹덤>은 <아신전>을 통해 조선이라는 국가의 모순이 어떻게 좀비 아포칼립스로 되돌아왔는지를 묘사한다.
특히 좀비에 대한 설정이 어느 정도 확립된 이상 좀비에 관한 드라마 파트의 중요도는 더욱 크다. 바이러스 형태로 전파되고, 소리에 민감하며 인육을 탐닉하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는 식으로 최근 좀비 영화의 트렌드는 수렴해 가고 있다. 따라서 아주 새롭거나 획기적인 볼거리를 보여줄 수 없다면, 좀비물은 감정적 측면에서 관객 혹은 시청자를 흡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동명의 웹툰 원작을 영상화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안타깝게도 잠재력을 온전히 꽃 피우지 못한 유망주라고 할 수 있다. 학교라는 장소와 배경, 환경에 좀비물을 접합한 발상과 착안 자체는 (원작 웹툰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흥미롭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방법이 과하고 올드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학교와 좀비를 결합해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학교라는 공간 자체의 구조를 활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학교라는 공간 안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좀비와 인간의 싸움에 대입하는 것이다. 우선 드라마는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일상적 풍경의 모습을 전환시켜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처절한 싸움을 만들어 낸다. 도서관, 과학실, 음악실, 강당 등 학교의 시설들을 이용해 펼쳐 보이는 액션은 <부산행>에서 KTX 속 액션신을 보는 듯 신선하게 다가온다. 초반 급식실에서의 대규모 감염이나 중반 이후 나오는 도서실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것은 한국 고등학교의 보편적인 구조를 활용한 연출이다. 현재까지도 한국의 많은 학교는 넓은 운동장과 그 주위를 ㄱ자 내지는 ㄷ자로 감싸는 직사각형 건물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 외부와 내부를 이어주는 문은 극히 드물며, 문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에 울타리나 담벼락으로 둘러쳐진 형태를 띤다. 쉽게 말해서 한국의 고등학교는 근본적으로 군대 건물이나 교도소 건물과 다르지 않다. 즉 탈출하기에 가장 어려운 형태를 띠는 건축물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학교 내에 출연한 좀비는 탈출할 수 있는 경로가 제한된 학생들과 교직원들을 부지불식간에 습격할 수 있고, 이러한 연출은 좀비물로서 상당히 효과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학교 내부의 구조가 본질적으로 판옵티콘이라는 사실 역시 엄청난 공포감을 자아내는 데 기여한다. 판옵티콘은 감시자가 고개만 돌려도 모든 수형자들의 방을 볼 수 있는 구조의 감옥이다. 한쪽 벽면에 쏠려 있고, 복도 쪽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교실로 가득한 학교는 복도에서 학생들을 감시하기에 최적화된 구조인 것이다. 이는 학교 내부에서 교실에 숨는 데 성공하더라도 언제든 들킬 수 있다는 급박함을 자아내며, 창문과 학교 외벽을 이용하는 등의 다채로운 액션을 가능케 한다.
또한 판옵티콘 형태의 학교 건물은 액션을 단순한 볼거리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액션에 담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판옵티콘 구조는 수형자가 언제 어디서든 감시당할 수 있다는 의식을 갖게 만들고,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감시하게 만든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첫 에피소드에서 학생들이 핸드폰을 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출하는 범주 내에서 꼼수를 부리는 것, 학교과 학생들이 구조의 최우선 대상이 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가운데 학생들이 학교를 탈출할지 말 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따라서 학생들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학교 내에서 펼쳐지는 드라마 속 액션은 몇십 년째 변하지 않는 구시대적이고 근대적인 교육관에 기반한 학교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저항이자 사투로 볼 수 있다. 단지 그 형태가 좀비와의 싸움일 뿐이다.
더 나아가 학교라는 건축물을 활용한 메시지는 학교라는 공간 속 학생들의 드라마와 더해지면서 그 강도가 더해지기도 한다. 학교는 지식 전달의 현장일 뿐만 아니라 사회화의 공간이기도 한데, <지금 우리 학교는> 속 좀비와 인간의 사투는 집단 괴롭힘을 비롯한 학생들 간의 갈등 및 충돌과 연계되어 과연 현재 우리 학교가 그 기능을 적절히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작중 좀비 바이러스가 단순한 재난, 혹은 우연한 재앙이 아니라 왕따 피해자로부터 발생한 것만 보더라도 이 작품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다. 또 일행 중 누군가가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경계심과 의심의 근간에 기초생활수급자의 준말인 '기생수'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편견과 차별 심리가 깔려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학교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아이를 낳아야 하는 '희수'도 유사한 맥락에서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때 드라마는 학교의 사회화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와 지식 전달이 더 강조되는 세태를 함께 지적한다. 그 중심에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으나 좀비가 되지는 않은 이른바 '절비(절반만 좀비)' 은지, 귀남, 남라가 있다. 작중 좀비 바이러스는 사람들의 두려움으로부터 배양되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들은 좀비보다도 학교 자체에 더 큰 두려움을 지녔기에 좀비가 되지 않는다. 집단 괴롭힘의 피해자인 은지는 좀비들보다도 자신의 치부가 주위에 전파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또 좀비가 된 다른 학생들을 내려다볼 때 이번에도 자신은 따돌림을 당했다면서 좀비보다도 자신의 처지를 자조한다. 가해자인 귀남도 출몰하는 좀비보다 자신이 다른 일진들의 장기짝이나 다름없다는 열등감이 노출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남라도 좀비보다 학교라는 공간을 더 싫어한다. 전교 1등이고 반장이지만 정작 같은 반 학생들과 소통할 줄도 모르는 남라에게 좀비는 오히려 친구를 만들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드라마는 좀비를 이용해 좀비보다 더 끔찍할 수도 있는 학교 시스템을 역설적으로 비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가까스로 학교를 탈출한 주인공들이 향하는 곳이 폐교도소에 마련된 임시 수용 시설인 것은 아이러니함을 배가한다. 좀비 떼보다도 끔찍한 학교라는 현실로부터 벗어난 주인공들이 다시금 학교와 다를 것 없는 공간에 갇히는 비극의 물레바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결말의 모닥불에 담긴 메시지는 더욱 분명해진다. 수용소를 벗어나 폐허가 된 학교로 다시 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학교라는 공간과 제도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다만 그 학교가 통제받고 감시당하고 사회로부터 묘하게 방치되며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좀비 아포칼립스 같은 학교여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효산고등학교 옥상에 피워진 모닥불에는 진정으로 친구를 만들고 서로를 이해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달라는 외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학교는>이 보여주고자 하고, 들려주고자 하는 학교 제도에 대한 다양하고도 중요한 목소리는 단발적인 아이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느껴진다. 드라마가 학교라는 염불보다 사회 풍자라는 잿밥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좀비물은 사회 비판과 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이미 학교과 교육이라는 사회 시스템을 주된 타깃으로 설정한 상황에서 굳이 학교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들까지 스토리텔링에 끌어들이는 것은 그리 영리한 선택은 아니라고 보이는 것이다. 근래 재난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렉카 유튜버나 개인방송 이야기를 삽입한 것이나 사회 지도층의 모순, 왜곡된 개신교 및 님비현상을 비판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물론 그 덕분에 전형적이고 진부한 캐릭터 클리셰를 파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로 장점이 될 수는 있다. 자신의 잇속을 챙기면서도 진짜 시민을 생각하는 정치인,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하는 결정에 죄책감을 느끼는 군인처럼 기능적으로 소비되지 않는 입체적인 캐릭터는 분명 극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이는 각 부분을 조각으로 쪼개 볼 때의 장점일 수는 있어도, 전체적으로는 분량 및 비중 배분의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총 12개인 에피소드 개수를 절반 내지는 2/3 수준으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외에 아무리 고등학교가 배경이라고 해도 로맨스의 비중이 크고 삽입되는 타이밍이 다소 뜬금없게 느껴지는 점, 비록 해외에서는 한국 콘텐츠의 특징이자 신선한 점이라 평가받는 대목이라 해도 거의 매 회차마다 신파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것 역시 완주를 힘들게 만든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의 2022년 한국 콘텐츠 중 첫 스타트를 끊은 작품이자, <부산행>과 <킹덤>에서 촉발된 한국형 좀비물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실제로 설 연휴 직전에 공개된 후 플릭스 패트롤(FlixPatrol) 월드 랭킹에서 TV 쇼 부문 1위를 차지하는 등 뛰어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다만 확실하게 갈리는 장단점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 학교는>의 성공에 있어서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한 작품의 내용 및 결과물의 역할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P(Poor 형편없는)
선택과 집중의 실패. 학교 안에만 집중했으면 그래도 유의미할 뻔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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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튼토마토 지수 95%! 올 여름 최강 로코 기대작 <팜 스프링스>
골든글로브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2개 부문 후보에 오름과 동시에 로튼토마토 지수 95%의 타임루프 로맨틱코미디 영화 <팜 스프링스>가 8월 19일 개봉을 확정했다.
개봉 확정과 동시에 공개된 티저 포스터는 여름을 겨냥한 코믹 로맨스 영화답게 시원한 느낌이 물씬 느껴진다. 수영장에서 한껏 오늘을 즐기고 있는 주인공 '나일스'(앤디 샘버그)의 모습이 부러움을 사는 가운데, "일단 봐, 재미있으니까!"라는 매체 리뷰가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영화 <팜 스프링스>는 눈 뜨면 하상 똑같은 하루가 시작되는 타임루프 세계관에 갇힌 남녀의 오늘만 사는 썸머 코믹 로맨스다. 지난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2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에서는 베스트 코미디 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미국 인기 TV 시리즈 '브룩클린 나인 나인'으로 국내에서도 팬덤을 지닌 배우 앤디 샘버그를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약을 하고 있는 크리싄 밀리오티, <위플래쉬>의 플래쳐 교수로 유명한 J.K. 시몬스가 악독한 추격자 캐릭터로 출연해 올여름 재미있고 신박한 타임루프 코믹 로맨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영화의 주연이자 제작자인 앤디 샘버그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앤디 샘버그는 미국을 대표하는 코미디언이라 불릴 정도로 다방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매년 인기가 상승하고 있는 엔터테이너로, ‘브룩클린 나인 나인’ 시리즈의 ‘제이크’ 역으로 유명하다. 제7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몬스터 호텔>, <아기배달부 스토크> 등의 주연 더빙을 맡으며 성우로서의 능력 또한 유감없이 발휘했다. 코미디,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던 앤디 샘버그가 타임루프 코믹 로맨스 <팜 스프링스>에서는 오늘만 사는 남자 ‘나일스’ 역을 맡아 올여름 대한민국을 무한 재미의 늪으로 빠트릴 예정이다. 특유의 유쾌하면서도 뻔뻔한 연기로 ‘나일스’ 역을 200% 소화한 앤디 샘버그는 <팜 스프링스>의 프로듀서로도 참여해 연출에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안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는 멋진 결혼식을 열리는 팜 스프링스의 어느 리조트에서 항상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세상에 갇히게 된 남녀의 예측불가 코믹 로맨스를 그리고 있다.
말 그대로 ‘내일 없이, 오늘만 사는’ 삶을 살게 된 주인공들의 하루가 어떤 재미를 안길지,
오는 8월, 막강한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무한 타임루프 로코 <팜 스프링스>에서 함께 확인해보자.
씨네랩 에디터 J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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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만 성장하는 성장영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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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잘 짓는 것은 정말 어렵다. 어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내용은 잊혀도 제목만은 끈질긴 생명력을 가져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제목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셀링 포인트가 될 것이다.
서두에 밝히자면, 이 영화는 제목만 좋았다.
<태어나길 잘했어>는 다한증이 있는 박춘희의 성장 이야기다. 박춘희를 위한, 박춘희에 의한, 박춘희만의 이야기. 박춘희의 주변인물과 배경과 사건들은 파편처럼 흩어져 저 멀리로 사라지고, 광활한 우주에 박춘희 혼자 남겨진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너무 많은 어려움들
춘희는 중학생 때 부모가 죽는 바람에 외삼촌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다. 왜 죽었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데, 아무튼 부모가 죽어 혼자 남겨진 춘희는 외삼촌 부부와 외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그 누구도 춘희를 환영하지 않고, 여분의 방이 있는데도 굳이 다락방을 내어준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지만 방금 부모상을 치른 아이에게 참으로 불친절한 외삼촌네 가족이다.
설상가상으로 춘희에게는 다한증까지 있다. 다한증 때문에 친구를 사귀기도 어렵다. 하필이면 학교에서 폴카댄스를 춰야 하는 상황인데, 손을 잡고 춤을 출 파트너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선생조차 불쾌해 한다. 명상센터에서 '저는 쩔어 있어요, 땀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춘희. 땀은 인생의 모든 고난과 역경에 쩔어있는 춘희의 메타포이자 상징이다.
춘희는 어른이 된 이후 외삼촌네 식구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혼자 산다. 외삼촌네 식구들은 고등학생이 된 춘희만 내버려두고 새 아파트로 이사가버렸기 때문이다. 춘희는 혼자 살아도 조그만 다락방에서 지내고, 다한증을 수술할 돈을 모으기 위해 매일 마늘을 깐다. 끼니도 오직 컵라면뿐이다.
중학생 정도의 아이에게 조실부모도 엄청난 충격일 테니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사실 조실부모와 눈칫밥 먹는 것, 이후 버려진 집에서 버려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왜 굳이 다한증까지 설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혹은 다한증 하나로도 충분하다. 부모를 잃거나 잃지 않거나, 평범한 가정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다한증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풀어나갈 만한 이야기이다. 달리 말하면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렇게까지 입체적이지 않다. 춘희는 그저 딱한 아이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보장시스템이 있는 나라이고, 생활고로 힘들 때는 각 동 주민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런 핍진한 이야기는 차치하자. 이 영화는 불쌍한 춘희 이야기이니까.
춘희와 NPC들
외삼촌네 딸, 춘희의 외사촌 유라는 춘희를 너무 싫어한다. 유라는 충분히 춘희를 싫어할 만하다. 그러지 않아도 예민한 사춘기에 갑자기 사촌이 우리집에서 살게 된다니. 더군다나 같은 학교이기까지. 영화에서 보여지는 유라는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다. 여자들은 원수의 자식에게도 생리대는 빌려준다는데, 생리대를 가져가는 춘희를 도둑년이라고 욕하는 개인적인 악행에서 나아가 수학여행에 술을 챙겨가고 담배를 피우는 불량학생이기까지. 춘희를 선량한 희생자로 만들기 위해 유라가 꼭 못되처먹은 아이가 되어야 했나?
유라의 오빠이자 춘희의 사촌오빠는 식당을 운영한다. 춘희는 그 식당에서 쓸 마늘을 까주고 3만 원씩 받는다. 그 오빠란 사람은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했다. "혁명에도 실패하고 사랑에도 실패"했다며 술 마시고 징징거린다. 도대체 왜 학생운동을 했는지 이유도 명분도 없고, 왜 하필 춘희에게 마늘까는 일을 주는지 모를 일이며(홀서빙직을 제안하기는 하지만), 왜 이혼위기에 처했는지 모를 일이다. 오빠를 설명하는 일련의 사실들은 그의 캐릭터를 형성하지 못한다. 혹시 춘희가 마늘을 까는 알바를 하기 위해 오빠가 있어야 했나?
춘희와 잠깐 사랑에 빠지는 주황이라는 캐릭터를 보자. 스토리상 남자주인공에 가깝다. 주황은 말을 더듬는데, 어릴 때 폭력적인 아버지 때문에 말을 더듬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까진 좋다.
그런데 주황의 역할은 춘희를 갑자기 사랑하고, 춘희가 돈이 없으니 돈 주겠다고 말하고, 춘희에게 차이는 것뿐이다. 춘희에게 잠깐의 행복을 맛보게 하기 위해 굳이 말을 더듬는 남자가 있어야 했나?
가장 골때리는 인물은 노숙자이다. 단순한 도식으로 보았을 때 집이 없다는 점에서 노숙자는 춘희보다 불쌍하다. 춘희는 집에 가는 길에 여자 노숙자를 발견하고, 노숙자가 맨발인 걸 보고 사촌오빠에게 받은 마사이족 신발을 준다.
이 노숙자는 총 세 번 등장한다. 춘희가 신발기부를 하기 위해 등장, 번개맞은 춘희를 살려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마사이족 명언도 아닌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해주기 위해 등장. 춘희에게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경험을 하게 만들기 위해 노숙자가 나와야 했나? 굳이 마사이족 신발이었어야 했나?
그 외 외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기타 등등 모든 영화 속 인물들은 춘희의 성장을 돕기 위한 NPC에 불과하다. 심지어 춘희에게 꽤 중요한 인물이었던 외할머니의 죽음도 외숙모의 입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진다. 그때 춘희가 문상을 갔는지, 울었는지, 절망에 빠졌는지, 무감정했는지 궁금하다. 외할머니는 유일한 춘희 편이었으니까.
갑자기 들이닥친 이방인에게 부모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유라의 불안, 혁명도, 사랑도, 이도저도 해내지 못한 사촌오빠의 좌절감, 비록 말을 더듬지만 처음으로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해주는 것을 경험하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될 주황의 성장, 춘희가 선물해준 신발을 신고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나가게 될 노숙자의 변화는 춘희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이 영화는 오직 춘희의 성장만을 위해 전개된다. 반대로 말하자면 춘희 외에는 그 누구도 성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세계는 전혀 넓어지지 않고 오직 춘희의 자아만 부풀어오른다.
내면의 상처받은 아이 만나기
다시 말하지만 춘희는 '불쌍한' 사람이다. 어린 시절에 조실부모와 천대와 왕따 등등을 모조리 경험했다. 작은 다락방에 갇혀 살았던 춘희는 어른이 되어도 전혀 성장하지 못하고 다락방 같은 안전기지에 갇힌다.
그런 춘희가 우연히 책을 기부하려다 명상센터를 알게 되고 거기에서 주황을 만나 타인과 관계를 맺어보고, 사기도 당해보고, 자기보다 불쌍한 사람을 도움으로써 춘희는 조금씩 성장한다.
이야기 초반에 춘희는 번개를 맞고 쓰러진다. 우리는 번개를 맞은 춘희의 앞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게 되는데, 그 변화란 어린 춘희의 등장이다.
1.조실부모한 고아 / 2.다한증 / 3.눈칫밥 먹는 더부살이 / 4.매일 컵라면 먹기 / 5.평생 마늘까기 / 이 정도의 설정도 너무 많은데, 6.번개맞기 / 7.어린 춘희 만나기가 추가된다.
어린 춘희를 등장시키기 위해 번개를 때리는 게 뜬금없지만, 아무튼간 어린 춘희를 만난다는 것은 위로받지 못했던 내면의 어린아이와 마주하는 일이다. 차마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던 그 시절의 불쌍하고 어린 나를 어른인 내가 안아주는 것,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앞으로 나가가는 것. 그러므로 너는 쓸모없는 아이가 아니라 태어나길 잘한 아이라는 것. 그것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이다.
결국 춘희는 그 집을 떠난다. 자발적으로 떠났으면 좋았으련만, 사촌오빠가 투룸 정도 얻을 수 있는 돈이라며 봉투를 내밀고, 사촌오빠에게 갑자기 왜 그랬냐고 화를 내며, 라면이 아닌 고기를 사먹고 나서 이사간다. 이사를 가도 여전히 마늘을 깐다.
어른 춘희가 몇 살이나 되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춘희는 이제 다락방이라는 안전기지와 상처받은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영화에서는 보여주지도, 다루지도 않더라도 외삼촌네 식구나 주황, 노숙자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곳에서 성장하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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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다 보려고 한다. 다른 작품들이 좋더라도 이 작품을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들의 영화들 중에서도 절망적인 영화들이 한두 편씩은 있으니까.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직면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분명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똑바로 바라보는 건 너무 무섭고,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상처받을 것 같다. 상처받은 어린이는 마음 속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다 별안간 툭 튀어나온다. 우리에게 번개가 떨어질 일은 극히 드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처투성이 불쌍한 어린이를 잘 위로하고 달래주어서 마음 속 감옥에서 풀어주는 수밖에.
반드시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춘희에게 떨어진 번개처럼,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태어나길 잘했다.
* 씨네랩으로부터 초청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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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비정전 / Days Of Being Wild
/ 줄거리 /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며, 여러여자에게 마음을 주고 다니는 아비.
매표소에서 일하는 '수리진'에게 1960년 4월 16일 3시 1분 전
당신과 함께한 나를 당신은 평생 잊지 못할것이라고 말하며 떠난다.
그리고, 그 말대로 수리진은 아비를 잊지 못하게 된다.
이후 아비는 또다른 여인인 '루루'를 만나게 되고,
그를 사랑하게 된 루루 또한 아비에게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말도 없이 떠나버린 아비.
결국 루루는 아비를 찾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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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낀점 /
왓챠에서 봤을때 아비정전 밑에
'재밌게 본 아이다호와 비슷해요'
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 말에 혹해서 보게 되었다.
근데 영화를 다 본 내가 느끼기엔 아이다호와 딱히 비슷한 점이
없는 것 같았다.
굳이 찾자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는점?
그리고 단지 그 시절의 불장난이라는점?
이정도인것 같다.
내가 느끼는 마음의 상처의 크기는 아이다호의 상처가 더 큰것 같다.
거기서는 스콧이 계속 확신에 찬 말들과 사랑을 주었으니까.
이 영화에서의 '아비'는
좋게 말하면, 어릴적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사랑의 마음을 온전히 주는 방법을 모르는
안타까운 인물.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냥 남 마음가지고 장난치는 쓰레기이다.
그 얼굴을 하고 그런 멘트를 치면 안넘어갈 여자가 몇이나 될까?
내가 볼 땐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난 아비 자신이 자신의 장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그것을 이용하는게 아니꼽게 보였고,
이런 생각이 아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수그러뜨린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목적은
주인공의 상황을 보여주고 관객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게 아닌
'사랑'이라는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감정과 스토리보다는
사랑이라는 것에 집중하게 되었다.
자신을 잊지 못할거라고 말하며 수리진을 떠난 아비.
그런 아비를 좋아하는 수리진과의 대화를 잊지 못하는 경찰.
다른여자가 아비에게 버림 받은 상황을 보고서도 아비를 사랑하는 루루.
자신의 친구에게 매달리고, 자신을 매몰차게 걷어차는 루루를 좋아하는 아비친구.
누군가에게는 잊혀진 내가
누군가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사람일 수 있다.
사랑이란 그런 것 같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사랑이다.
화살이 엇나가는게 사랑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감정이 잔인하다는 것을 안다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가혹하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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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짧은 순간에 겪은 일을
가장 길게 기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
그리고 난 경찰관의 사랑법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가장 젠틀한 방법이었던 것 같다.
+
마지막에 나오는 양조위씬이 진짜 레전드이다.
(속편의 주인공이 양조위라서 끝나기 2분전에 등장시켰는데
아비정전의 폭망으로 2편이 엎어지면서
그냥 갑자기 등장한 양조위가 되어 버렸다나...)
++ 그래서 그 후편의 느낌으로 찍은게 '화양연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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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흥신소-라떼극장] "아침엔 도시락 대신 교양을 먹어야지..."
영화 흥신소 - 라떼극장 EP.10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영화 "품행제로"에서 소중한 추억을 떠올려보자품행이 바닥인 문덕고 캡짱 중필
교내 불법사업과 청춘사업에 매진하는 동안
캡짱의 자리를 위협하는 라이벌이 등장하는데...세운상가 옥상에서 구매한 빨간비디오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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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 위도우, 가족의 의미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퇴장! 안녕!
블랙위도우가 지난 주 개봉했어요.
나탸사 로마노프의 마지막 영화인데요. 옐레나 라는 동생이 등장하고 엄마와 아빠까지 등장을 하죠.
사실은 어린 시절 3년 동안 같이 보냈던 가짜 가족입니다.
그들과의 인연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영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나타샤는 어벤져스 멤버들과 사이가 틀어진 상황이죠.
그래서 나타샤가 생각하는 가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라가는 영화에요.
꽤 멋진 액션 장면들이 있구요. 격투 액션이 적은게 아쉽긴 하지만..자세한 리뷰는 영상을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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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필사의 추격> 2차 예고편
찾았다❗ 올여름 최고의 더위 사냥☀️ 💫노답 빌런들의 대환장 추격전 #필사의추격 2차 예고편 공개❗ 여기가 바로 코믹&액션 맛집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