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로진2022-07-26 11:20:22
우영우와 탑건이 대박을 친 이 여름에
영화 <레인맨> 리뷰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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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여름, 대박을 친 두 작품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영화 <탑건:매버릭>을 빼놓을 수 없다.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은 블록버스터는 대박행 티켓이겠으나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생소하다.
우영우의 등장 이후로 자폐 스펙트럼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진 듯하다. 얼마 전까지 자폐 스펙트럼, 자폐증이 관심을 끌 때는 자폐증을 가진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길에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많은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한 번도 없다고 대답하겠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무척 흔하다. 국내 발병율은 2% 정도라는데, 50명 중에 1명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말이다. 우리가 무작위로 만나는 50명의 사람 중 1명은 자폐증인데, 왜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을까. 그 사람들은 세상 밖에 안 나오기 때문이라는 걸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는 거리에 장애인이 없는 나라이다. 심지어 장애인들이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시위를 해야 하고, 그 시위에 동조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나라이다.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시위하는 전장연 소속 장애인들은 비난받고, 드라마에 나오는 우영우는 신드롬을 일으키는 것이 제법 모순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나라에는 나의 이동동선을 방해하지 않고, 내 눈에 띄지 않으면서 착하고 불쌍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대상화되고 물화되어 집밖에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존재. 드라마 속 권민우는 우영우 때문에 자기가 피해를 본다 생각하니 우영우를 공격한다.
그러므로 우영우는 이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존재의 등장이 아니라 어딘가에 숨어있는 50명 중 1명이 수면 위로 나온 것일 테다. 모두가 우영우에게 봄날의 햇살 같은 최수연 또는 회전문을 통과하기 위해 왈츠 스텝을 맞춰주는 이준호가 되면 좋겠지만, 나도 내가 '권모술수 권민우'가 아니라고 보장하지 못하겠다.
<레인맨>의 주인공 찰리 배빗 역시 비슷했던 것 같다. 평소 사이가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교류도 전혀 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긴 3백만 달러의 유산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하게 되자, 3백만 달러를 물려받은 사람을 찾게 된다. 바로 정신병원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형이, 아버지의 유산 3백만 달러를 몽땅 받게 되었는데 심지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기까지 하다니. 형 레이먼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형이 하는 말은 대부분 '1루수가 누구야'라는 콩트의 대사인데, 두 명이서 하는 말을 혼자서 끝없이 중얼거린다.
찰리는 형 몫으로 남겨진 유산을 반 나눠가질 생각으로 형을 데리고 LA로 간다. 형의 담당의에게 알리긴 했지만 몰래 데리고 나가는 것이니 납치에 가깝겠다. 찰리는 자동차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사정이 영 좋지 못하다. 3백만 달러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쉬운대로 반이라도 있으면 숨통이 좀 트이는 상황이다. 그러니 형을 데려가 유산 상속에 대한 법정 다툼으로 자기 몫을 찾겠다는 생각이다.
찰리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자폐증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거의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재산인 뷰익을 타고(정원의 장미도 유산으로 받긴 했다), 찰리와 레이먼드는 긴 여정을 떠난다. 비행기를 탔더라면 좋았겠지만 모든 비행기 사건사고를 외우는 레이 때문에 비행기도 타지 못한다.
좁은 차와 모텔 안에서 레이먼드는 끝없이 '1루수가 누구야'를 중얼거리고, 규칙에 너무나 민감하고, 소리에도 너무너무 예민하다. 그렇다고 찰리와 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몇 시에는 TV쇼를 봐야 하고 몇 시에는 불을 끄고 무슨 요일에는 무엇을 먹고. 모든 게 정해져 있다. 팬케이크를 먹을 때 메이플 시럽이 미리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지 않으면 레이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찰리도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다. 말이 통하지도 않고 대화도 안 된다. 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아무것도 바뀌지도 않고 사람들은 레이를 보며 수군거린다.
구박데기 같지만, 사실 레이에게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 우영우가 법전을 통째로 외우는 것과 같이, 숫자를 외우고 계산하는 데는 천재인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이쑤시개가 246개라는 것을 단번에 알고, 복잡한 곱셈도 바로바로 출력된다.
돈 때문에 자폐증 형을 납치할 정도로 돈에 환장한 찰리의 머릿속에 전광석화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길로 찰리는 레이를 데리고 라스베이거스로 간다. 라스베이거스는 해가 지지 않는 곳이다. 도박장의 화려한 불빛들은 사람들에게 최면을 거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레이의 눈은 손바닥만한 이동식 TV에 고정되어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차 안에서도, 레이는 레이만의 세계에서 산다.
레이는 6벌의 카드를 모두 외워 찰리에게 큰 돈을 안겨준다. 마음에 드는 여자도 만난다. 권민우가 우영우에게 "우영우 변호사는 그런 거 모르나?"라고 물으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보는 것처럼, 찰리를 비롯한 사람들은 레이가 여자에게 호감을 느낄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레이도 똑같은 사람이기에 이성에게 호감을 느끼기도 한다.
찰리는 레이와 여행(?)을 하며, 레이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고 알아간다. 사실 찰리는 자기 속얘기를 타인에게 털어놓는 사람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아버지의 장례식 때, 에피소드 하나를 얘기하며 애인이 무서울 때 어떻게 했냐고 묻자 '무서울 때는 레인맨이 와서 노래를 불러줬다'고 했다. 레인맨은 찰리의 상상 친구.
어느 날, 찰리가 목욕을 하려고 욕조에 물을 받자 레이는 발작을 일으킨다. 아기가 뜨거운 물에 덴다는 이유였다. 찰리는 물에 안 데였다며 레이를 안심시키다 깨닫는다. 모두가 형의 존재를 비밀에 부친 게 아니라, 레이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무서울 때마다 노래를 불러준 사람은 상상 친구 레인맨이 아니라 형이었다. 레이는 찰리를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는 판단 하에 월브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돈에만 환장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못하는, 사람들을 이용할 생각뿐인 찰리는 괜찮은 이웃인가. 레이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만이 위험한가.
형제는 함께 지내며 서로를(정확히는 찰리가 레이를. 레이는 찰리에게 관심이 없다) 알아간다. 찰리는 이제 돈보다는 형과 같이 지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 형은 치료가 필요하고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케이마트에서 파는 팬티를 입어야 한다고 몇날며칠 난리 브루스를 추는 레이에게 찰리는 "케이마트는 구려"라고 화를 냈다. 의사와 함께 월브룩으로 돌아가게 된 레이에게 의사가 케이마트에 가자고 하니, 레이는 대답한다. "케이마트는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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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헤어진다. 이제 약간의 소통이 되는 것만 같던 마법같은 순간에 헤어진다. 농담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레이가 책에서 보고 외워버린 "1루수가 누구야" 콩트도 비디오테이프로 준비했는데, 형제는 헤어져야 한다.
기차를 탄 레이는 단 한 번도 찰리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 결코 무지한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찰리는 외로워지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가족은 외롭다는 우영우 아빠의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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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만의 연기와 톰 크루즈의 미모가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해준다. 한스 짐머의 음악과 1980년대 미국의 레트로한 영상미는 덤이다.
<레인맨>은 특수아상담을 연구하고 책도 쓰신 모 교수님 강의에서 추천받았던 영화이다. 교수님은 영화 속 레이의 모습이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과 꽤 비슷하다고 했다. <탑건>과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대박을 친 이 여름에, <레인맨>을 조심스럽게 영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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