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8-12 16:12:26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았던 두 남자의 총구.
영화 헌트 <리뷰>
1980년의 시대적 배경과 첩보물, 그리고 이정재 감독이 감독으로서의 첫 연출을 보인다고 하는데 영화관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방면에서 많이 다뤄졌지만, 독재 시대의 첩보물은 한국 영화에 있어서 그렇게 흔치 않은 소재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게 느껴졌다. 우리의 역사가 겪어온 시대에 어떠한 방식으로 영화를 표현해낼지를 중점으로 박평호와 김정도가 겨누고 있는 총구의 방향에 집중하면서 보았다. 영화만큼이나 훌륭한 배우들이 각자의 자리에 서서 역할을 다해주니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묵직함에 매력을 더하고 영화가 선보이는 액션은 지루할 틈도 없이 생생하게 벌어짐으로써 몰입감을 더한다. 앞으로의 이정재 감독을 기대하게 만든다.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외부로는 남북 대치의 상황, 내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시위로 인해 왠지 모를 불안감은 안기부에도 스며든다. 나라를 위해서라면 타인의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은 이 상황은 조직 내부에도 언제든지 칼을 들이댈 수 있다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사냥’이 시작되면서 먼저 스파이를 찾아내기 위한 두 남자의 맹렬한 암투가 시작된다. 내부를 분열로 이끌며 이리저리 휩쓸고 다니는 스파이와 대통령을 지키기 위한 안기부, 그 중심의 박평호와 김정도의 위치가 문득 궁금해진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두 남자는 ‘사냥’이 진행될수록 더 수상해진다. 서로를 ‘동림’으로 만듦과 동시에 그 수상함에 파고드는 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자신의 결백함을 공고히 하려 한다. 매서운 눈빛과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끈질긴 추적 앞에 나타나는 같은 목표는 무자비한 진실 앞의 신념을 내려놓게 했다. 이들의 목적은 다르지만, 목표는 같았던 사냥은 성공할 수 있을지 빼곡하게 수 놓인 이야기들을 곱씹어가며 긴장감을 더한다. 모두를 통제의 대상으로 놓은 만큼 의심의 꼬리는 한없이 길어지는 모습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자리가 아니다 보니 누군가를 간첩으로 몰아 다수의 적이 되는 것이 국가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편리한 방법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폭력의 시대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수많은 시민의 모습이 스쳐 지나가고 그 모습들이 결국엔 다시 돌아오는 모습이 허무하기도 했지만 당연한 결과임을 말한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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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즉흥 연주, 스윙걸즈
때론 가장 우연한 순간이 우리의 삶을 바꾼다. 일본 영화 <스윙걸즈>는 단순한 선택이 어떻게 열정이 되고, 결국 한 사람 그리고 모두를 변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일본 시골 마을의 여고생들이 엉겁결에 빅밴드 재즈를 시작하면서 펼쳐진다. 여름방학, 수학 보충 수업을 피하려던 토모코와 친구들은 급식 배달을 맡게 되고, 예상치 못한 사고로 기존 밴드 멤버들이 빠지면서 얼떨결에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한 재즈였지만, 점차 리듬에 빠져들며 그들만의 소리가 만들어진다.
단순한 호기심이 동기가 되고, 동기가 쌓여 몰입이 되고, 결국 ‘더 잘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든다. 주인공들은 재능이 넘치는 천재들이 아니다. 실수하고, 좌절하고, 악기를 제대로 살 돈조차 없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쳐 진짜 밴드가 되어간다.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며 실수를 웃어넘기고, 허름한 창고에서 땀을 흘리며 연주를 맞춰가고, 돈이 없어도 어떻게든 악기를 구하는 장면들은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정을 그대로 담아낸다.
우리는 음악을 듣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나 직접 연주할 수 있고, 스윙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빅밴드 재즈를 사랑하지만 한 번도 무대에 서지 못했던 수학 선생님, 처음엔 재즈가 뭔지도 몰랐지만 점점 빠져든 주인공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까지, 모두가 ‘스윙’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찬란하고 순수해서 더욱 여운이 남았다.
한 여름의 햇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때묻지 않은 감성과 마음들이 한 데 모여 빅밴드를 이룰 때의 그 리듬감과 흥겨움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스윙걸즈>는 특별하다. 재즈를 몰라도,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시작하는 것’, 그리고 ‘즐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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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를 털고 능숙하게 벼려 밝힌 영화라는 여명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 2021 | 스티븐 스필버그 | 156분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주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동쪽으로는 허드슨강과 리버사이드파크, 서쪽으로는 센트럴파크를 옆에 낀 뉴욕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Upper West Side에는 미국 역사의 곡절이 담겨있다. 식민지의 역사로부터 19세기 후반 산업화 시기 노동 계급의 거처, 20세기 전쟁의 풍파로부터 생존을 담보하기 위해, 혹은 생활고를 피해 희망을 찾고자 정착한 이민자의 터전으로 발전한 이곳은, 도시 재개발로 자본과 사람이 유입해 문화와 예술이 발흥하는 뉴욕을 대표하는 부촌이 되었다. 지금의 멀끔하고 반듯한 건물과 거리, 햇볕을 쬐고자 바깥에 나온 느긋한 시민의 쉼터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약 60여 년 전 도시 재개발로 링컨 센터 건설을 위한 첫 삽을 막 뜬 그때 삶을 일궈 온 사람들은 떠나야 할 날만을 기다려야 했다.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백인 하층 노동 계급 지역 할렘 Harlem과 중남미 이민자의 거리 산 후안 힐 San Juan Hill을 배경으로 생존과 반목을 넘은 두 사람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았다.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뮤지컬을 영화화한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1961년 동명의 작품은 뮤지컬 영화의 고전으로 찬사를 받아왔다. 이 영화를 무려 스티븐 스필버그가 리메이크한다는 소식에 영화 애호가들은 기대와 (주로는) 우려가 엇갈렸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영화감독 중 한 사람이 만들어 낼 첫 뮤지컬 장르라는 관심과 함께, 우리는 이미 상업적 성공을 거둔 이 오래된 이야기를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시 선보일 것인가에 관한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감독에게는 잘 돼야 본전, 망치면 원작을 경험한 관객의 실망만 커질 수 있다는 부담이 컸으리라. 그렇지만 노련한 거장은 결국 고전의 향수와 창작자의 정체성, 그리고 현재의 시선에서 영화 매체에 마침맞은 재구성을 이루어냈다.
셰익스피어의 오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프로 5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파벌 간의 갈등 속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주제인 이 뮤지컬은 레너드 번스타인의 음악과 제롬 로빈스(제리 라비노비츠)의 안무가 결합해 지금까지도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다만 1960년대 당시의 기술력이나 연출을 고려하더라도, 원작의 배우와 무대, 소품이라는 세트피스가 완벽하게 합일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유명한 오프닝 씬이나 체육관의 댄스파티 속 뮤지컬 넘버와 안무의 조화는 지금 보아도 훌륭한 장면이지만, 비교적 정적인 카메라 시선과 배우들의 대사 처리 등 뮤지컬 실황에 영화적 기법을 첨가한, 60년대 무성영화와 유성영화의 과도기적 흐름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극과 영화의 차이가 시각 매체로써 특히 공간의 무한한 변화 가능성 유무에 있다고 한다면 2021년 영화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라는 한 지구地區를 통째로 배경 삼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America〉는 도시 전체를 무대 삼아 거리를 누비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연기가 포인트인 〈Gee, Officer Krupke〉에서는 경찰서의 소품들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준다. 거기에 〈Cool〉에서의 부서진 폐건물을 중심으로 ‘토니’(안셀 엘고트)와 ‘리프’(마이크 파이스트), 제트파 사이의 갈등과 신경전, 체육관에서의 댄스파티 등 뮤지컬 넘버를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일조한 카메라 워킹도 빼놓을 수 없다. 촬영감독 야누시 카민스키는 발레와 라틴댄스 기반의 춤의 역동성을 부각한다. 공들인 정교한 합과 역동적인 집단 군무가 스크린 앞 관객에게 화려하고 멋진 장면으로 선보일 수 있게 된 이유다. 관객은 현실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을 날 선 갈등과 비극을 춤과 노래를 통해 어느 정도 희석된 버전의 모습으로 친숙하게 받아들인다.
영화는 음악만큼이나 조명을 사용하는 방식에서도 극적 상황을 조성하는 장치로 적절하게 사용한다. 체육관 뒤편에서 토니와 마리아(레이철 지글러)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 건너편 틈 사이로 빛이 스며오는 장면이나 (개인적으로는 원작의 장면이 사랑에 빠진 몽롱한 분위기를 더 살렸다고 생각하지만) 제트파와 샤크파의 패싸움이 벌어지는 소금창고 양편으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움직이며 겹치면서 발생하는 명암의 대비로 두 파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장면을 연출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원작이 주차장의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을 조명 삼아 펼쳐지는 발레 대결이라면 리메이크된 작품에서는 훨씬 실감 나는 대전이 벌어진다. 지금은 박물관이 된 오래된 성당에서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동안 모자이크 사이로 비치는 아름다운 빛이나, 밤과 낮이 교차하며 달라지는 빛의 분위기도 눈여겨보게 된다. 연출을 위한 소품의 적절한 사용도 눈에 띈다. 앞서 제트파가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퀀스에서 주변 소품을 활용한 앙상블은 재기 발랄하며 맹랑한 캐릭터에 잘 들어맞는다. 토니가 싸움을 말리러 갔지만 결국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즈)를 죽인 후 마리아의 방 창문으로 들어와 바람에 날리는 커튼 사이의 장막을 사이에 둔 만남이나, 사랑을 위해 토니를 감싸주는 마리아에게 분노하는 아니타(아리아나 데보스)와의 듀엣에서 집에 걸어 둔 천으로 흔들리는 마리아의 감정을 표현하는 등의 장면들은 원작과 비교하는 흥미로운 지점이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리메이크작을 관람하기 전 관객은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뮤지컬을 어떤 방식의 영화로 만들 것인가.이고, 두 번째는 이 오래된 서사를 21세기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이다. 링컨 센터 공사를 위해 곳곳이 헐린 50년대의 맨해튼에서는 불안한 젊은이들의 방황과 분노가 담겨있다. 오히려 원작의 멀끔한 세트보다 이 불안한 10대들의 감정이 잘 드러나도록 설계한 2021년의 영화는 기존의 원작을 유지하면서도 작금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며 원작에 담긴 불쾌한 지점, 혹은 지나쳤던 지점을 부각하고 교정하는 방식으로 차별화를 한다. 시나리오와 노래에는 십 대 청소년의 일탈과 사회 갈등, 이민자 사회의 대립과 빈곤, 재개발 문제가 담겨있다. 그러나 당대 인식의 기반에 깔린 인종 차별과 여성 혐오 등의 문제는 상대적으로 갈등의 중심부에 두지는 않는다. 영화는 그 원형을 일부 유지한 채 스코어의 가사들을 윤색함과 동시에 넘버를 일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신선한 효과를 준다. 감독은 원작에서 지나쳤던 미국 사회(이지만 사실 모든 사회에 통용될)에 고착된 차별과 갈등을 이야기의 모티프나 브릿지로 만들어 시의성을 높인다. 원작에서는 ‘우리의 미국’에 들어온 이민자 집단을 별종 혹은 외부 집단으로 설정해 그들의 유입으로 두 파벌의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현재의 갈등이 발생한 원인으로 지목한다. 경찰을 비롯한 어른들조차 백인 소년들의 편에 서서 이민자들을 향해 차별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러나 리메이크작에서는 맨해튼이라는 지역의 역사의 흐름에서 자본에 밀려 탈락한 백인 하층 노동자 집단과 중남미 이민자 집단이라는 두 비주류 집단 간의 반목과 대립을 명시한다. 경찰로 상징되는 기존의 기득권 엘리트 집단의 눈에는 두 파벌 모두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전히 미국 정치 지형에 대입할 수 있는 상황을 명확히 설정했음은 스페인어에 따로 자막을 붙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영어가 제1 언어인 미국이나. 두 언어에 익숙지 않아 그들의 자막 설정을 따라가야 하는 한국의 관객 관점에서 불친절할 수 있겠으나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그만큼 확고히 보여주는 설정도 없다. 이는 영어를 쓰도록 강제하는 주류 사회 분위기에 편입하려는 당시 이민자들의 노력을 보여주면서도 역설적으로 그들의 언어가 다문화 국가인 미국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표식과도 같다.
주인공인 토니와 마리아를 중심에 두면 영화는 대립적인 집단 간 젊은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하지만, 청소년들의 일탈을 대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들을 외곽으로 내모는 사회에 눈을 돌린다면 또 다른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사실상 복지서비스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가 젊은이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내모는가에 관한 이야기로 본다면 이들의 파국에 사회와 기성세대의 책임은 없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여기서 두 파벌의 중립지대인 가게(약국)의 주인인 ‘독’을 대신해 원작에는 없던 인물인 ‘발렌티나’(리타 모레노)를 추가한 점은 익숙하며 낡아 버린 서사에 새로운 결을 터 주는 탁월한 역할을 한다. 발렌티나는 이 이야기에 나오는 몇 안 되는 어른 캐릭터이자 아직 어린 청년들의 치기와 감정의 골을 봉합하고 화해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설정상 독과 사별한 부인이며 유대인이자 코카시안과 결혼한 푸에르토리코인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그에게 복합적인 감정선과 서사를 부여한다. 인종과 문화 등 다층적인 차별과 분노가 폭발하는 공간에서 발렌티나는 인종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온전히 위치하기 어려운 인물을 연기한다. 배신자 소리를 듣기까지 하는 아픔에도 이 이야기 속 유일한 ‘어른’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지점은 발렌티나가 1961년 원작에서 아니타 역할을 맡았던 리타 모레노라는 사실이다. 영화는 원작 속 아니타의 넘버였던 〈Somewhere〉를 사실상 원곡자인 발렌티나에게 넘겨준다. 그렇게 이 넘버는 61년 작품의 아니타의 감정과는 다른, 한 노인이 끝내 안온한 삶을 바랐으나 여전히 이루지 못한 현실을 향한 회한의 노래이자, 분열로 극한 대립을 벌이는 현대 사회를 향한 기약을 알 수 없는, 하지만 이뤄야 하는 목표의식으로 변한다. 또한 여기서 그는 하나의 배역을 넘어 원작과의 가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영화의 테두리를 넘어 확장된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니타는 제트파에게 마리아의 전언을 일러주려 발렌티나의 약국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한다. 원작은 이 상황을 극화된 리듬과 안무를 부여해 단지 서사의 변곡점 역할로 넘어갔지만, 정황상 아니타가 강간을 당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야 할 독은 상황을 종결시키며 충동적인 청년들의 철없는 행동으로 넘어간다. 폭력의 피해자인 아니타에게 누구도 사과와 위로는 없었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과거의 악몽이 그때의 아니타이자, 지금 발렌티나의 눈앞에 재현된다. 영화는 과거 리드미컬한 연출로 재현된 끔찍한 장면을 다시 보여주면서도 상황의 극화 없이 정확히 직시하는 연출로 기이하며 끔찍하게 느낄 수 있도록 보여준다. 그래서 관객에게 지금의 상황이 명백한 범죄라는 사실을 각인시킨다. 또한 원작과 달리 제트파와 함께 있던 백인 여성들이 성폭력의 현장에서 함께 아니타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남성들에 의해 쫓겨나는 장면은 이 사건이 단순한 인종 혐오가 아닌 더 큰 차별적 관념에서 비롯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상황을 발견한 발렌티나는 제트파를 제재하고 아니타를 내보낸 뒤 범죄를 저지른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노려보며 “너희들을 어릴 때부터 보아왔고,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기억한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장면은 결국 60년 전 어린 아니타가 노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때의 사건과 가해자들을 기억하며, 자신은 그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사실을 일갈하는 장면이다. 그는 60년 전 그 날에 갇힌 피해자에서,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여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다. 젊은 남성들을 단호히 ‘강간범’이라고 호명하며 여성폭력의 피해자이자 생존자를 대변하는 어른으로서 말이다.
그밖에도 영화는 원작의 애니바디(아이리스 메나스)를 피상적인 톰보이 캐릭터에서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로 설정해 제노포비아와 함께 성소수자 혐오로부터 집단 내에서 인정받는 서사를 부여한다. 처음에는 배제된 소수자에서 결국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애니바디는 모든 상황을 관찰하고 사건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제트파가 마련한 권총이 치노(조쉬 안드레스 리베라)로 이어져 발생하는 결말에 비중을 두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논쟁인 총기 규제 문제를 다루는 모습도 보인다. 허가받지 않은 자의 미숙한 총기 사용으로 노출되는 범죄의 양상은 작품 중후반에 꽤 자세히 다뤄진다.
관객은 공연과 영화의 차이를 알고,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감독이 만드는 뮤지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거기에 감독은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소수자성과 대립에 주목하며 기존의 작품 속에 감춰있던 이야기를 발굴했다. 사랑과 생존 중 더 중요한 것을 묻는 발렌티나의 질문에 토니는 사랑을 택한다. 그러나 존엄한 삶의 소중함은 사랑과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끝내 알지 못한 채 영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그러나 남겨진 자들의 몫은 존재하고, 삶은 여전히 지속한다. 서로 같은 달빛 아래 다른 마음으로 밤이 오기를 바랐던 이들은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 모두가 각자의 길을 떠나는 원작의 마지막에 2021년의 영화는 엔딩 크레딧에 남겨진 자들의 삶을 위로하듯 새벽이 밝아 오는 맨해튼의 도시를 보여준다. 비극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을 붙드는 한 빛은 찾아온다는 사실. 어쩌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인생 사십여 년 동안 한결같이 말하던 이 명제를 살아남은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기에, 그는 여러 우려를 감수하고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넣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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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이트 클럽> - ‘세계의 끝에서 끈덕지게 주먹을 뻗다’
파이트 클럽 (Fight Club)
개봉일 : 1999.11.13 (한국 기준)
감독 : 데이빗 핀처
출연 :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헬레나 본햄 카터, 미트 로프, 자레드 레토
‘세계의 끝에서 끈덕지게 주먹을 뻗다’
1999년, 새로운 숫자 2로 시작되는 2000년이 도래하기 직전, 세기말에 발표된 영화 <파이트 클럽>. ‘반항’과 ‘주먹’이 하나의 멋으로 통하던 그 시절의 감성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 영화엔 세기말 감성과 그 시절의 멋, 그리고 새롭게 시작되는 천년에 대한 기대와 그에 대한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실제로 2000년을 앞둔 시기에 ‘2000년이 오면 지구가 멸망할 거다’라는 식의 괴담이 떠돌았다고도 하니.. 새로 다가올 시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 사람들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고 산업은 점점 빠르고 거대하게 발전한다. 우후죽순 생겨난 공장들은 정해진 틀에 찍어낸 물건들을 빠른 속도로 사람들에게 공급했고, 그것은 새로운 문화가 되어 우리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파이트 클럽>은 이런 획일화된 사회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한 남자가 입안에 고인 피를 뱉어내며 끈덕지게 주먹을 휘두르고 있는 영화다.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물건들과 똑같은 구조로 지어지는 아파트. 그리고 비슷하게 생긴 빌딩 숲 안에서 똑같은 컴퓨터를 바라보며 주어진 일을 해내는 하루.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에 딱 어울리는 하루다. 자동차 리잭 심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주인공 ‘잭’은 나름 괜찮은 수준의 월급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그는 열심히 모은 월급으로 번듯한 아파트를 샀고, 고급 가구들을 사 모으며 자신의 집을 채워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잭은 언제부턴가 이유 모를 답답함을 느낀다. 특별할 것 없는, 부드럽다 못해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하루의 끝엔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던 잭의 앞에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야생동물 같은 매력을 가진 ‘테일러 더든’이 나타난다. 누군가와 싸우기보단 피하기를 선택하던 잭과는 상극인 마음가짐을 가진 남자. 피하기보단 주먹 한 번을 휘둘러봐야 나를 알게 된다고 말하는 남자. 잭은 테일러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주먹다짐을 하며 엄청난 해방감을 느낀다. 사회에선 금기 또는 피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행동을 통해 느끼는 쾌감. 그것은 한 남자의 일상을 확실하게 뒤엎어버린다.
정해진 사회 규칙에 반항하고 싶은 날. 그런 날을 한 번쯤은 겪어보지 않았는가. 큰 건 아니더라도 에스컬레이터 거꾸로 오르기라든가.. 정해진 출근시간이 아닌 더 여유로운 시간에 유유히 출근하기라든가! 가끔 세상에 반항하고 싶어질 때, 중2병을 겪던 그때처럼 욕망을 주체할 수 없을 때 <파이트 클럽>을 추천한다. 리즈시절의 빵오빠 비주얼을 감상하며 괜히 나도 그처럼 쿨하고 야성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보는 것도 나름 좋은 감상법이 될지도 모른다.
파이트 클럽 시놉시스
비싼 가구들로 집 안을 채우지만 삶에 강한 공허함을 느끼는 자동차 리잭 심사관 ‘잭’.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거친 남자 ‘테일러 더든’과의 우연한 만남으로 본능이 이끄는 대로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어느 날, “싸워봐야 네 자신을 알게 된다”라는 테일러 더든의 말에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잭. 두 사람은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파이트 클럽’이라는 비밀 조직을 결성하고, 폭력으로 세상에 저항하는 거대한 집단이 형성된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커진 ‘파이트 클럽’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가 변질되고, 잭과 테일러 더든 사이의 갈등도 점차 깊어져 가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두 복사본의 복사본의 복사본 같다.”
똑같은 외관과 구조로 지어진 아파트. 똑같이 생긴 티비속에서 흘러나오는 똑같이 생긴 보급형 가구에 대한 광고. 잭은 가구 광고를 보고 있는 자신을 “이케아 제품으로 보금자리를 꾸미는 노예 대열에 합류했다.”고 표현한다. 똑같이 굴러가는 사회 속에서 자연스레 정해진 표준에 맞추기 위해 일을 하고, 집을 사고 집을 꾸민다. 하지만 잭은 공허함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공허함 뒤에는 괴로운 불면증과 무기력함이 뒤따른다.
잭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병으로 인해 진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의 위로 모임에 참석한다. 잘빠진 가구가 아닌 커다란 사람의 품에 안겨 눈물을 토해내는 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았다. 매일같이 쏟아지는 위로에 중독된 잭은 여러 모임을 전전했고, 그곳에서 또 다른 거짓말쟁이 말라 싱어를 만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고, 죽지 않는 것이 비극이라 외치며 도로를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이상한 여자. 만약 그녀를 지금이 아닌 다른 시간대에 만났다면 위로 모임을 나누는 사이가 아닌 아름다운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었을까-하고 잠시 생각해보지만, 눈앞에 서 있는 까만 머리의 여자를 다시 보니 그건 절대 아닌 것 같다. 말라 싱어는 강하게 잭의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말라 싱어보다 더 흥미로운 존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잭이 테일러 더든을 만난 건 높은 하늘 위였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잭의 옆인 비상구 좌석에 앉아 안전카드를 읽고 있는 남자는 비상구 좌석 승객이 맡게 되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다며 표정을 구긴다. 뒤이어 테일러는 남들은 모두 따르겠다고 말하는 안전 수칙이 알고 보면 위험을 순응하게 만드는 규칙이라며 이상하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순응하는 것들을 다시 들춰내 의심하는 사람이라니. 잭은 그런 테일러를 매우 흥미롭게 바라본다. 비행기에서 잠시 만나는 일회용 친구치고는 꽤나 흥미로운 남자였다.
“소유물에 지배당하지 말라”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한 잭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소중한 그의 아파트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홀린 듯 테일러에게 전화를 건다. 테일러는 흔쾌히 잭과 술 한 잔을 하고,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도 된다고 말한다. 그 후 잭은 테일러를 따라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일탈을 하나씩 경험해나간다. 사회적 규범, 정상적인 범주, 남들과 같은 삶을 의미하는 잭의 아파트가 불에 타던 날, 잭은 테일러와 함께 틀을 벗어나게 된다.
테일러는 이렇게 말한다. 아파트와 고급 가구들은 소유물이고, 소유물은 사람을 지배한다고. 그는 있는 그대로 흘러가는 영사기 속 릴 테이프를 가만두지 못했고, 정해진 코스대로 흘러가는 고급 호텔의 음식에 테러를 저지른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다수에 의해 기본이라 정해진 것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따르지 않는 인물이다.
“싸우고 나선 모든 것의 소리가 작아지고, 모든걸 감당할 수 있게 된다.”
쾌감이 사람의 원초적 본능이란 것, 무의식중에 남들과 다른 것을 원한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파이트 클럽’은 싸우면서 쾌감을 느끼고, 사회에서 규제한 금기를 어기며 색다른 클럽활동으로 추앙받는다. 잭과 테일러는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안정적인 것이 아닌 쾌감과 특별함이란 사실을 모아 ‘파이트 클럽’이라는 이름을 만들게 된다.파이트 클럽의 위치는 식당 밑 지하. 활동 시간은 손님들이 모두 나간 후 늦은 시간이다. 다른 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 땅밑에서 뒤늦게 열리는 파이트 클럽은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자 나의 밑바닥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테일러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잭의 손에 흉터를 남기며 “모든 걸 잃었을 때만 모든 걸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잭은 테일러가 남긴 상처를 통해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게 된다.
잭은 지원자들을 받아 군대를 양성하고 대혼돈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테일러와 잭이 동일 인물이란 것이 밝혀지기 전엔 ‘(상상 속)테일러의 군대’라고 표현되지만, 애초에 잭(진짜 테일러)이 소집한 군대다.) 잭은 지원자들에게 여러 가지의 테러 계획을 하달하며 도시를 휘저어 놓다가 고환암 환자 모임에서 만난 짝꿍 밥을 잃고 충격을 받는다. 큰 덩치로 잭을 폭 감싸 안아주던 눈물 동지의 죽음은 테일러를 만나기 전에 존재했던 본성을 불러온다. 잭은 뒤늦게 경찰서에 계획을 자수하러 가지만, 대혼돈 프로젝트 팀원에게 목숨을 위협받고, 자신이 테일러 더든이라는 혼란함만 안은 채 경찰서를 빠져나온다.
“우린 같은 사람이니까.”
잭과 테일러는 같은 사람이다. 테일러는 삶을 바꾸고 싶어 하던 잭이 찾아낸 탈출구였고, 그 사실을 인지하게 된 순간 영화의 릴이 교체되듯 한순간에 대혼돈 프로젝트의 주인공이 바뀌어버린다. 집에 불을 지른 것도, 말라와 사랑을 나눈 것도, 군대를 소집한 것도, 파이트 클럽을 만든 것도 모두 잭, 진짜 테일러 더든이었다. 영화 초반엔 잭이 테일러와 처음으로 주먹질을 하며 아드레날린을 느낀 것으로 표현되지만, 그것 또한 잭이 홀로 벌인 싸움이었다. 잭이 지부장의 사무실에 들어가 지부장에게 폭력을 당한 것처럼 혼자 싸움을 연출해내던 장면은 이 반전을 위한 복선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눈뜨고 있어.”
잭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테일러의 모습이 환영이란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진짜 테일러는 자신이라는 것도. 잭은 테일러의 존재를 없애기 위해 자신에게 총을 발사한다. 건물은 계획대로 폭파되고, 잭은 말라와 손을 잡는다. 잭은 자신이 누군지, 어떠한 욕망으로 가상의 테일러 더든을 만들어냈는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깨닫게 된다.
정해진 사회규범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진짜 테일러 더든(잭)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의 거친 테일러 더든을 만들고, 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파이트 클럽을 만든다. 가상의 테일러 더든이 존재하고 ‘잭’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는 처음엔 테일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그의 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파이트 클럽 회원들 사이에서 ‘테일러 더든’이라는 이름이 전설처럼 떠돌기 시작하자 “나도 파이트 클럽의 창시자인데..”라며 자신도 절반쯤의 공이 있음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이것은 더 이상 잭(진짜 테일러)이 가상의 테일러 더든에 기대는 것이 아닌 본체 자체의 삶을 바꾸고 싶다는 욕망이 커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잭은 대혼돈 프로젝트의 계획을 말해주지 않는 테일러에게 섭섭함을 나타내고, 이내 테일러가 집에서 사라진다. 더 이상 가상의 테일러 더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잭의 욕망이 커졌기 때문이다.
잭, 아니 진짜 테일러 더든은 자신이 가진 자아 중 한 가지인 ‘평범한 회사원 테일러 더든’의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현실의 권태가 정점을 찍은 순간 숨겨놔야만 했던 자아 ‘파이트 클럽의 창시자가 될 테일러 더든’을 불러온다. 왜 이런 모습을 숨겨야 했냐고 묻는다면, 현 사회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고급스러운 물건을 사며 행복을 느껴야 하고,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다수가 정한 평범함에 물들어야만 했던 남자의 공허함이 끌어낸 또 다른 자아는 자신의 고통을 명확하게 비추는 거울이 된다. 건물이 무너지고 도시에 잠깐의 혼란이 찾아온다 해서 견고하게 조직된 사회가 흔들릴 거란 보장은 없다. 하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완전한 해방감을 누릴 수 있었다면 테일러의 ‘대혼돈 프로젝트’는 성공한 것이라 봐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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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둘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안녕하세요! 영화/OTT 전문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일요일에 비가 오더니 오늘은 바람이 많이 차네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 들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어요 :)
그럼 오늘은 지난 주말 동안의 박스오피스 분석 결과를 공유해 드리겠습니다.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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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말 박스오피스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개봉 첫 주말 올해 개봉작 중 최고의 주말 스코어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2위 역시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차지하며 극장가의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슬램덩크는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장기 흥행을 이어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대 국내에서 개봉한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위에 오른 데 이어 400만 관객 돌파까지 이뤄내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사이 한국영화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간신히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던 <대외비>는 이번 주말 3위로 순위가 떨어졌고, 김주환 감독의 <멍뭉이>, 권혁재 감독의 <카운트>는 각각 박스오피스 5위와 9위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관객 수 역시 한참 뒤처지고 있어 이번 주말 동안 세 편의 한국영화의 관객 수를 모두 합쳐도 <스즈메의 문단속>의 관객 수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이에 따라 다가오는 15일에 개봉하는 신작 한국영화 <소울메이트>가 과연 극장가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을지,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1. <스즈메의 문단속>(⬆︎8)
지난 수요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이 주말 관객 수 69만 4251명을 기록하며 개봉 첫날부터 5일 연속으로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2023년 개봉 영화 중 최고 주말 스코어 기록으로,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의 59만 228명, <교섭>의 30만 9315명을 넘어선 수치입니다. 3월 13일 오전 7시를 기준으로 실시간 예매율은 33.4%로, 예매율 1위의 자리 또한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박스오피스 1위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감독인 신카이 마코토가 직접 집필한 동명의 소설의 판매 역시 크게 늘었다는 소식입니다. 소설은 영화에 소개되지 않은 캐릭터의 감정과 더 정밀한 세계관의 묘사, 감독이 작품을 창작하며 느낀 감정과 창작 동기 등까지 수록되어 있어 인기몰이 중이며, 최근 알라딘에서 베스트셀러 종합 7위, 예스24 종합 11위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스즈메의 문단속>은 오는 22일부터 4D 특별 포맷 상영을 확정해 전국 CGV 4DX관, 롯데시네마 슈퍼 4D관에서 만나볼 수 있으며, 바람, 진동, 섬광, 모션 등의 다채로운 효과를 활용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할 예정입니다.
2. <더 퍼스트 슬램덩크>(⬆︎1)
지난주 박스오피스 3위로 떨어졌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대외비>를 누르고 이번 주말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습니다. 주말 관객 수는 9만 9592명에 그쳤지만 누적 관객 수가 드디어 400만을 돌파해 2023년 개봉작 중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운 영화에 등극했습니다.
3. <대외비>(⬇︎2)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던 한국 영화 <대외비>는 두 계단 떨어진 3위에 머물렀습니다. 관객 수는 9만 7050명으로 지난주보다 무려 62.2% 감소한 수치이며, 누적 관객 수는 총 68만 8468명을 기록해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3월 2주 차 박스오피스 예측 이벤트
씨네픽의 이번 주 143회 예측 이벤트는 <스즈메의 문단속>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이벤트입니다. 씨네픽 참가자분들이 예측해 주신 박스오피스 순위 예측 결과는 어땠는지 다 같이 확인해 볼 텐데요, 먼저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제공하는 <스즈메의 문단속>의 실제 관람객의 성별/나이별 관람 추이를 보겠습니다.
남성 65%, 여성 35%로 남성이 여성보다 거의 2배 가까이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연령대 별로는 20대가 가장 많이 관람하였고, 그 뒤를 30대, 40대, 10대, 50대가 차례로 이어갔습니다.
한 주 동안 씨네픽 이벤트의 참가자분들 중 <스즈메의 문단속> 주말 관객 스코어에 가장 근접한 예측치를 보인 것은 17-19세 여성(562,137명)이었으며, 전체 정답자 비율은 (오차범위 +-10,000) 0.7%를 기록하였습니다. 더불어, <스즈메의 문단속> 주말 스코어 예측 이벤트에 참여한 20/30대 참가자 수와 남녀 비율은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4.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 (⬇︎2)
개봉 주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 2위를 기록했던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 마을로>는 두 계단 내려와 박스오피스 4위를 기록했습니다. 주말 관객 수는 7만 8785명, 누적 관객 수는 총 44만 4837명을 기록한 한편, 지난 토요일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네즈코'의 성우 키토 아카리와 프로듀서 타카하시 유마가 참석한 월드 투어 행사가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5. <멍뭉이> (⬆︎2)
김주환 감독의 영화 <멍뭉이>는 주말 관객 2만 5181명, 누적 관객 14만 7611명으로 박스오피스 순위 5위를 기록하였습니다. 한편, 주연을 맡은 배우 유연석은 지난 일요일 'TV동물농장'에 출연해 경기도의 한 유기견 보호소를 찾아 150여 마리의 개들을 돌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는데요, 유연석은 2021년 국내 최대 유기견 보호소인 애린원이 철거할 때 그곳에서 방치됐던 개들 중 하나인 리타를 입양해 함께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니다.
북미 주말 박스 오피스
작년에 개봉한 5편의 성공으로 1년 만에 후속 편으로 돌아온 공포영화 <스크림 6>가 록키 시리즈 최고 오프닝을 기록하며 지난주 1위를 기록했던 <크리드 3>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크리드 3>는 주말 매출액 2717만 3천 달러를 기록하며 2위로 떨어졌습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제작진과 샘 레이미의 합작에 더불어 아담 드라이버의 신작으로 이목을 끌었던 <65>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3위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겼고,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역시 4위로 떨어지며 부진한 성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뒤이어 엘리자베스 뱅크스 감독의 <코카인 베어>가 주말 매출액 620만 달러로 5위를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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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박스오피스 TOP 5>
1. <스크림 6> 4,450만 달러 (누적 4,450만 달러)
2. <크리드 3> 2,713만 달러 (누적 1억 135만 달러)
3. <65> 1230만 달러 (누적 1230만 달러)
4. <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 7천만 달러 (누적 1억 9797만 달러)
5. <코카인 베어> 620만 달러 (누적 5166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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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픽의 3월 둘째 주 박스오피스 분석 콘텐츠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주도 건강한 한 주가 되기를 바라며 씨네픽은 다음 주 월요일 이 시간에
또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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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영화', 그 틀 밖의 작품
- 지인에게 이 영화를 추천했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쓱 검색해보더니, "동물 나오는 영화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리고 서부 영화도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척 봐도 서부 영화 같고, 게다가 제목이 <퍼스트 카우>인 이 영화는 놀랍게도 그런 영화가 아닙니다.반신반의하는 제 지인을 위해, 그리고 혹시나 같은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는 여러분을 위해, 오늘 이 영화를 한 번 본격적으로 영업해보겠습니다.※ 10월 28일(목)에 진행된 <퍼스트 카우>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퍼스트 카우>는 2021년 11월 4일 국내 개봉했습니다.퍼스트 카우First Cow<퍼스트 카우>의 배경은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입니다. 미국이 기회의 땅으로 불렸던 때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서부 시대입니다. 그럼 이 영화도 결국 ‘서부 영화’ 아닌가요? ‘서부 영화’는 맞지만, ‘서부 영화’가 아니라고 해야 정확하겠습니다. 시대적 배경은 서부 시대가 맞지만, 장르로서는 서부 영화가 아니거든요.몰아치는 액션과 시끄러운 총소리로 버무려진 개척 정신과 약육강식. 영화의 한 장르로서 ‘서부 영화’는 이러한 전형성을 갖습니다. 화끈한 총격전은 필수, 매력적인 액션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총탄을 갈겨도 서부 영화는 그저 통쾌하기만 할 뿐, 유쾌하지는 않습니다. 개척 정신이라는 명목 하에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어쨌든 서로 죽고 죽이는, 살인과 폭력의 스토리니까요.그런데 <퍼스트 카우>는 유쾌합니다. 이 서부 영화는 그저 ‘서부 개척 시대의 두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소젖 서리를 하는 이야기’거든요. 총은 고사하고, 피 한 방울도 나오지 않습니다. 개척 시대에 소젖 서리라니, 영화의 줄거리를 텍스트로 옮겨놓으니 이 영화의 유쾌함이 더욱더 돋보이는 것 같습니다.주인공 ‘쿠키’와 ‘킹 루’는 총을 잡는 대신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고, 그 빵을 팔아 돈을 법니다. 여느 서부 영화와 다를 바 없이 남성들이 주인공이지만, 이들은 어느 서부 영화에서도 본 적이 없는 남성들입니다. ‘쿠키’는 유대인, ‘킹 루’는 중국인입니다. 유대인과 동양인은 2세기가 흐른 지금도 여전히 비주류의 상징이죠. ‘킹 루’는 사업가적인 기질을 발휘해 총 대신 머리를 굴리며 개척 시대를 살아내는 인물이고, ‘쿠키’는 괴롭힘을 당하는 무리 내 약자이면서도 거처에 들꽃을 꺾어 꽂아둘 만큼 섬세한 성정을 가진 인물입니다. 이들은 싸움이 벌어져도 총을 들고 맞서기보다 그 자리를 조심스레 벗어나기를 택하곤 합니다. 개척 시대의 전형적인 남성성과는 거리가 먼 캐릭터들이죠. 총잡이들의 세상에서 총잡이로 살아가지 않는 비주류의 인물들. 이 영화가 서부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유쾌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영화는 꽤 오랜 시간을 할애해 두 인물의 특징과 성격을 느긋하게 설명합니다. 서부 시대를 살아가는 두 비주류의 이야기를 관객이 낯설어하지 않도록 말이죠. 당연히 서부 영화인 줄 알고 보러 왔는데, 총소리 한 번 듣지 못하고 극장을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한 발 정도의 총소리는 있었을지도 모릅니다만, 이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이 영화는 잔잔하게 흘러갑니다.주류의 역사만을 그려온 서부 영화에 등장한 비주류의 이야기. 낯섦은 유쾌함으로 바뀌고, 유쾌함은 곧 깨달음이 됩니다. 내가 주류의 그늘에 가려진 비주류의 이야기를 또 놓치고 있었구나. 훌륭한 영화 한 편 덕분에 오늘도 제 시야가 한층 더 넓어졌습니다.⊙ ⊙ ⊙가끔 영화를 감상하다 보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도통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분명 되게 좋은 영화 같은데, 도대체 하려는 말이 뭐지? 관객에게 해석을 맡기는 건가? 나만 이해를 못 한 건가?’ 하며 혼란에 빠지곤 하죠. 하지만 걱정 마세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정말 친절하거든요. 시작부터 작품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상냥하게 알려줍니다. 바로 이 인용문을 통해서요.The bird a nest, the spider a web,man friendship.새에게는 둥지, 거미에게는 거미줄,인간에게는 우정.윌리엄 블레이크가 쓴 ‘지옥의 격언(Proverbs of Hell)’의 한 구절입니다. 영화는 이 시를 인용하며 우리가 풀어놓을 스토리가 다름 아닌 ‘우정’에 관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퍼스트 카우>는 나란히 누워 숨진 두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는 친절한 길잡이 덕분에 쉽게 유추할 수 있죠. 저 시신 2구가 우정을 나눈 친구일 것이며, 남은 러닝타임 동안 그것을 설명하리라는 걸요. 아무래도 앞서 소개해드렸던 영화 줄거리를 조금 보충해야겠습니다. 이 작품은 ‘서부 개척 시대의 두 남자가 돈을 벌기 위해 의기투합하여 소젖 서리를 하며 우유보다 진한 우정을 쌓는 이야기’입니다.왜 그런 것 있지 않습니까. ‘우연한 계기로 친구가 된 두 사람이 어떠한 사건(대부분 오해)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진다. 이후 끊임없이 대립하던 두 사람은 갑자기 위기의 상황에 놓이고, 어느 한 사람이 모종의 희생(목숨에 위협이 갈 정도로 심각하지만, 절대 죽지 않는다)을 통해 요란하게 우정을 증명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보고 이런 영화겠거니, 지레짐작한 것이 사실입니다.그러나 ‘쿠키’와 ‘킹 루’의 우정은 요란스러움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들은 참으로 차분하게 우정을 쌓아갑니다. ‘쿠키’는 위기에 빠진 ‘킹 루’를 구해주고, ‘킹 루’는 나중에 다시 만난 ‘쿠키’에게 거처를 제공하는 배려를 베풉니다. 그들은 개척 시대의 한복판에서 노닥노닥 서로의 고향과 각자의 꿈에 관한 대화를 나눕니다. 그저 고향에서 먹던 우유 넣은 빵이 먹고 싶을 뿐인 ‘쿠키’와 그렇게 만든 빵을 팔면 돈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킹 루’.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의기투합하여 마을에 하나뿐인 소젖을 훔칩니다. 훔친 우유로 만든 빵이라는 사실을 들켜 쫓기는 와중에도 둘의 우정은 탄탄합니다. 사소한 오해도, 야비한 배신도 없습니다. 이들의 우정은 그렇게 변곡점 하나 없이 끝까지 무탈하게 흘러가죠.흔하디흔한 배신, 탐욕, 오해가 없는 우정 이야기가 어찌나 낯설던지. 저도 모르게 세속에 너무 물들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꼭 배신한 상대를 용서해야만, 탐욕을 억눌러야만, 오해를 풀어내야만 진정한 친구가 되는 건 아니죠. 진정성 있는 교감, 우정의 전제조건은 그것 하나면 충분합니다.⊙ ⊙ ⊙시사회장에서 제 옆자리에 앉아계시던 분은 자신이 예상했던 서부 영화가 아니었는지, 소젖 서리를 시작하기도 전에 극장을 나가시더군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 영화야말로 ‘서부 영화’라는 타이틀이 아깝지 않은 작품인데 말이죠. 장르의 전형성을 비트는 역작은 그것만으로 충분히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과연 의구심을 품던 분들께 제 영업이 제대로 먹혔을지 궁금하네요. 혹시 이 리뷰를 읽으시고 영화를 감상하고픈 마음이 드셨다면, 영화 감상 후 댓글에 여러분의 느낀 점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참, 어느새 낯설어져 버린 35mm의 필름의 투박한 종횡비에 적응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것도 또 한 가지 묘미랍니다.Summary19세기 서부 개척 시대, 사냥꾼들의 식량을 담당하는 쿠키는 표적이 되어 쫓기는 킹 루를 구해준다. 몇 년 후 정착한 마을에서 재회한 이들은 마을의 유일한 젖소의 우유를 훔쳐 빵을 만들어 돈을 벌기로 하는데… “우리에게는 지금이 기회야” (출처: 씨네21)Cast감독: 켈리 라이카트 존출연: 존 마가로, 오리온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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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니 데이 인 뉴욕(A Rainy Day in New York/ 2018/ 미국)
(이미지 출처: 네이버이미지)
<뉴욕, 뉴욕>
개츠비와 애슐리는미국 뉴욕주 북부에 위치한 인문학의 명문, "야들리대학교" 캠퍼스 커플이다. 둘은 학교신문사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만났다. 야들리대학교를 좋아하는 개츠비의 어머니는 자신처럼 아들이 훌륭한 문학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뿐 아니라 피아노를 가르쳤고 뉴욕의 모모한 미술관에는 꼭 가도록 챙기면서 예술적 소양을 길러주었다.
개츠비는 문학가로 이름을 떨친 어머니가 속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가을마다 맨해튼의 집에서 파티를 열며 두 아들들이 꼭 참석하기를 원하나 순종적인 형과 달리 애슐리는 어머니의 '허세 가득한 버젓함'이 싫어 파티를 피할 궁리만 한다.
어머니의 파티가 열리는 주말, 애슐리는 예술 영화감독 롤란 폴라드를 뉴욕 맨해튼에서 인터뷰할 기회를 얻는다. 진작에 주말을 뉴욕에서 지내며 애슐리에게 여러 명소들을 구경시켜주고 싶었던 개츠비는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며 함께 보내게 될 특별한 주말에 마음이 설렌다.
그러나 뉴욕에 도착하여 애슐리가 롤란 감독을 만나게 되자마자 일은 걷잡을 수 없이 꼬이기 시작한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평가에 매우 엄격한 롤란. 그의 신작은 애슐리가 보기에 훌륭하지만 롤란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다. 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고 우울했던 그는 인터뷰 도중에 사라지고 만다. 시나리오 작가 테드에게 남겨진 애슐리는 어쩌다 테드 아내의 불륜 사건에 휘말려 개츠비와의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만다. 아내로부터 불륜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되어 옥신각신하던 테드는 롤란이 있을 만한 곳의 주소를 애슐리에게 건네며 택시를 태워 보낸다.
주소대로 영화 스튜디오로 찾아간 애슐리. 간발의 차이로 롤란은 놓치고 그대신 매력적인 배우 프란시스코를 만난다.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며 애슐리에게 접근한다. 프란시스코와 함께 있던 애슐리는 파파라치들에게 노출되어 방송을 타게 된다.
프란시스코가 초대한 영화인들 파티에 간 애슐리. 그 자리에서 롤란과 테드, 프란시스코 등 세 사람 모두와 어울리며 애슐리는 꿋꿋이 인터뷰를 이어간다.
한편 애슐리와 함께 지내려고 세웠던 계획이 모두 무너지자 개츠비는 맨해튼을 거닐며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난다. 뒷담화 킹 트롤러는 의대에 다닌다고 했고 영화학교에 진학한 조쉬는 길에서 학교 영화를 촬영 중이었다. 배우 구하기가 여의치 않아 이웃 친구들을 동원하여 만드는 영화에는 고교시절 개츠비의 여자친구였던 에이미의 동생, 챈이 출연 중이었다. 챈은 언니와 개츠비가 사귈 때 여느 남학생들과 많이 달랐던 개츠비를 몰래 좋아했었던 후배. 남자 배우가 궁했던 차에 급하게 캐스팅된 개츠비는 몇 번의 NG 끝에 화끈한 키스 장면까지 해치운 뒤 챈과 헤어져 형의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엄마에게 자신이 뉴욕에 왔음을 비밀로 해달라고 약속하고 형 대신 포커게임을 하기로 한다.
비가 세차게 내려 택시를 잡은 개츠비와 거의 동시에 같은 차에 오른 챈은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동행한다. 챈은 의상디자인을 공부하는데 그림 속 옛날 인물들의 의상에 관심이 많았던 것.
그런데 미술관에서 개츠비는 파티에 참석하려고 뉴욕에 온 삼촌 부부와 정면으로 마주치고 말아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전화로 애슐리와 함께 파티에 가겠다고 알린다.
형대신 포커게임을 한 개츠비는, 언제나처럼 또 이겨서 수 만불을 손에 쥔다.
애슐리가 프란시스코와 함께 있는 장면을 TV로 보고 낙심한 개츠비는 애초에 그녀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던 칼라일호텔의 바에 들러 혼자 술을 마신다. 그러다가 에스코트 서비스를 하는 금발 미녀를 만나 거금을 주고 어머니의 파티에서 애슐리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집을 찾은 개츠비. 그의 어머니는 한눈에 금발의 미녀가 창녀임을 알아채고 내보낸다. 그리고 개츠비를 불러 가족의 비밀을 알려주는데 개츠비는 충격을 받는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반감에서 놓여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문 닫을 시간에 칼라일 바를 다시 찾아 피아노를 치는 개츠비 앞에 비에 흠뻑 젖은 애슐리가 나타난다. 그렇게 토요일은 둘의 계획과 관계없이 전혀 로맨틱하지 않게 날아가고 말았다. 일요일 아침, 센트럴파크에서 애슐리의 원대로 마차를 타던 개츠비는 느닷없이 무언가 깨달은 듯, 특종 기사를 쓰게 되어 의기양양한 애슐리에게 돈을 쥐어주고 자기는 뉴욕에 남겠으니 혼자 학교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둘이 헤어지자 다시 비가 내리며 뉴욕은 안개 속으로 잠긴다.
노래하는 시계탑 아래에서 저녁 6시에 낭만적인 생각에 잠겨 서성이는 개츠비 앞에 그의 마음이 닿아있는 한 여성이 나타난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비내리는 뉴욕의 아름다움을 여실히 스크린에 담은 우디 앨런 스타일 영화이다. 우디 앨런의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배우들이 히스테리컬하게 쏟아내는 대사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대사는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하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보이는 롤란은 애슐리가 그의 감정을 편하게 해주기를, 테드는 그녀가 그를 이해하고 그에게 영감을 줄 뮤즈가 되기를, 프란시스코는 육체적으로 그에게 쾌락을 주기를 매우 솔직하게 요구한다.
챈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애슐리의 형은 약혼자에 대한 불만을, 애슐리 어머니는 가족의 비밀을 태연하게 애슐리에게 알린다.
영화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그가 싫어하는 것은 명확하게 안다.) 또 당당하게 주장하지도 못하며 우물쭈물하는 것은 애슐리 뿐이다.
애슐리는 학교신문 기자 일이나 문학 공부에는 시큰둥하고 오히려 승률이나 내기, 포커 게임과 술집에서 연주될 법한 피아노곡 연주에 매우 능하다. 그가 흠뻑 빠져 있던 애슐리가 그와의 연애보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성공에 열심을 내는 것에는 그러려니 할 뿐이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폭탄 같은 고백에 비로소 그는 문학과 별로 맞지 않으며 어머니 같은 야망도 없는 자기 자신에게 눈을 뜬다. 그리고 같은 예술적 소양을 지니고 있고 유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챈에게 마음이 향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당하면 우리는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엄청난 충격을 준 대상을 원망하며 자기 연민에 함몰되고 말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딛고 일어설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할 형편을 맞는다.
애슐리의 선택은 후자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별로 힘들이지도 않고 그런 결정을 한 애슐리는 어쩌면 그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혹은 보이는 이상으로 강한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있다가 잠깐 돌아와 보낸 주말 동안 그는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된 후 그 깨달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부쩍 성장한 것 같다.
이 영화의 볼 거리는
첫째, 뉴욕이다. 불안과 신경증적인 고민이라는 성장통이 비와 안개에 젖은 아름다운 뉴욕에서 일어나고 잦아든다.
둘째, 호화 캐스팅이다. 캐릭터를 스크린 위에 살아나게 하는 그들의 연기가 빛난다.
셋째, 배경 음악이다. 비와 잘 어울리는 풍성한 재즈 선율은 모든 것의 첨단인 뉴욕이 매우 올드하게, 감성적으로 다가오게 만든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아들과 어머니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강한 유대감을 보이는 유대문화이다. 모계사회처럼 어머니를 중심으로 움직여지는 가정과 자녀교육이 우리문화와 비슷하여 흥미롭다. 영국인에게 직접 들었는데 영국의 전통에 따르면 아들은 어머니보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더 돈독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요즘 긴 장마로 매일 만나게 되는 비가 지루하거나 귀찮지 않게 느껴진다. 오히려 무언가를, 깨달음이나 신선한 만남을 기대하게 만든다. 역시 노장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았다(©2020.최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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