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4-10-11 16:56:53
비로소 만나게 될 수많은 '이균'
디아스포라 영화 7선

최근 방영된 요리 경연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에 출연한 '에드워드 리' 셰프가 화제였죠.
"나에게는 한국 이름도 있어요.
우리 부모가 지어준 이름, 나의 한국 이름은 '균'입니다.
그래서 이 요리는 이 균이 만들었어요"
에드워드 리 그리고 이균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미쳐 몰랐던 수많은 '이 균'을 이제는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디아스포라'는 특정 민족이나 문화적 집단이 원래의 고향을 떠나 흩어져 사는 현상을 말합니다.
과거 전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신의 문화를 지켜온 유대인의 삶을 지칭하였으나,
현재는 다양한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집단을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친숙한 디아스포라 영화로는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있습니다.
그럼 또 다른 '이 균'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볼까요?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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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도, 나도 이 청춘들일 수 있다
청춘의 방황은 보이지 않는 어떠한 벽을 깨부숨으로써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브레이킹 아이스>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얼음은 물이 될 수도 있고, 다시 얼음이 될 수도 있다. 온도에 따른 변화다. 그렇지만 녹음으로써 '변태'한 물은 언제든지 다시 얼어붙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그 가능성을 철폐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려면 부수어야 한다. 얼음이 녹는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마침내 부숴야 깨어날 수 있을 것이며 그 흔적인 조각들의 형체를 치워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얼어붙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거해야 한다. 그것이 <브레이킹 아이스>가 전하는 메시지다.
청춘은 꿈을 꾼다. 그렇게 마음속에 꿈의 웅덩이를 둔다. 하지만 인생에 예측불가한 사건사고들은 항상 존재하는 법. 나나(주동우)는 어렸을 적 꿈꾸던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꿈을 부상이라는 한 순간의 일로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꿈의 웅덩이가 얼어붙는다. 한때 피겨 선수를 꿈꾸며 그 위를 유영했던 빙판이, 마음속에 남아 새로운 마음의 흐름을 멈추게 만든다.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 꿈과의 이별은 사람을 영원히 그 안에 가둔다. 작별할 각오가 생겨나기 전까지 영원히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나나는 연길에서 여행 가이드로서 돈벌이를 하면서도 애써 마주하려 하지 않는 마음의 빙판을 갖고 살게 된다. 한때 함께하던 동료, 친구, 심지어는 가족과도 멀리한 채로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산다. 그것은 일종의 도피일 것이다. 혹은 도피하지 못해 선택한 '무모함'일 것이다. 얼음 안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행동이다.
샤오(굴초소)는 연길에서 친척의 가게 일을 도우며 지낸다. 스스로 빙판 아래에 가두고 그 안에서 방황하는 나나의 곁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얼어붙은 청춘의 시간에서 방황하는 것은 나나뿐만이 아니리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는 가게 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샤오도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형태를 가두고 있는 셈이다. 나 자신을 얼음으로만 존재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고 사는 샤오에게는, 자신이 물이 될 수 있음은 예상 불가능한 일이며 감히 꿈꿀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 된다.
샤오는 나나에게서도 자신의 존재 이유와 그 가능성을 엿보지 못한다. 허나 그 일말의 희망을 나나에게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곁에서 나나의 얼음을 깨는 과정을 곁에서 지키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렇기에 나나에게 불러준 노래가 그 의의를 가진다. 나나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빙판 아래의 자신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과정으로서.
그런 점에서 샤오는 나나를 짝사랑하는 관계성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나에게서 친구 그 이상의 관계를 약속받지는 못한다. 짝사랑이라는 관계가 변할 수 있는 계기가 어쩌면 샤오를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려면 나나가 샤오와의 관계를 어떻게 긍정하는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그것이 샤오가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오펑(류호연)은 그렇기에 이 삼각관계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나나와 잠자리를 가질 정도로 샤오보다 나나와의 관계에서 더 깊은 위치를 취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하오펑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나나의 관계성이 연길에서의 목적이 아니다. 하오펑은 상하이에서 일을 하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연길에 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하오펑이 연길이라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징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이 단군신화의 골지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내용인 단군신화는 짐슴이던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 위해 긴 시간동안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오펑 또한 어릴 적부터 부모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공부에만 매진해야 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결국 그 노력은 보상으로서 하오펑에게 되돌아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목적을 잃어버린 과정만 남은 하오펑이 우울증을 앓고 삶을 포기하려는 자세를 가진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납득된다. 그렇기에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선 그가 우연히 마주한 단군신화를 직접 마주하는, 그 상징인 곰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주인공들의 방황을 공간화한 것이 플롯의 주 배경이 되는 연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인이라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에 모호한, 그렇다고 한국인이라고 보기에도 모호한 존재가 '조선족'이다. 중국과 한국의 경계에 서있지만 연길이라는 공간에서는 그 장벽이 마침내 허물어진다. 그곳에서는 그 모호한 조선족이라는 존재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자신들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기에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결혼식 장면은 상징적이다. 한국과 중국의 혼재가 그 결혼식에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주인공들이 연길을 본능적으로 찾아들어가게 된 것은 어쩌면 그 각자의 방황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인 것일 수도 있다. 민족의 모호성이 그 특유의 형태를 찾을 수 있게 된 곳이 연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북한과의 경계를 나누는 국경이 등장하는 이유 또한 있을 것이다.
나나는 집에서 신발을 벗지 않는다. 동양권에서 실내는 신발을 벗는 곳이다. 바깥과 안을 경계짓는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는 것이 정론이다. 그렇기에 바깥에서 신었던 신발을 집에서도 신고 있다는 것은 그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나나가 애써 자신이 피겨 선수를 꿈꾸던 과거를 놓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그 모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게 된다.
그 모호한 집의 경계를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두 남자의 태도도 인상적이다. 그런 나나의 방황을 지금 당장 해결할 것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 주인공은 서로의 방황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자체를 공감하고 있다. 서로를 어떠한 해결해야 할 것으로 바라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것은 해결되어야 할 것임도 사실이다. 해결의 실마리는 우연 속에서 찾아질 것이라는 그들의 믿음도 자연스레 형태를 갖춘다. '무모한' 서점에서의 놀이가 하오펑의 방황을 찾게 할 어떠한 계기가 되어주었고, 그 계기를 통한 '깨어짐'은 다른 인물들의 방황도 깨부술 수 있는 연쇄 작용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들이 서로를 계몽시켜야 할 목적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그저 함께 이 모호한 시기를 이겨낼 것이라는 일종의 동료로서 바라본 것의 효용이다.
그래서 한때 뭉쳐진 삼각관계는 곰을 마주한 순간 이후로 순식간에 해체된다. 그 곰은 하오펑의 모호함을 분명하게 만들어주는 상징이었을 것이며, 곰이 나나의 아픔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봐준 것은 나나의 모호성까지 해결해낸다. 자기 자신의 방황을 깨어나야 할 것으로 인지한 나나는 마침내 샤오가 스스로의 짝사랑을 놓을 수 있게끔 하기에 이른다. 방황의 빙판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는 과정이 순식간에 발생한다. 그렇게 그들은 연길에서 마주한 그들 저마다의 빙판 아래 모습들을 마주하고 극복한다. 방황을 깨고 육지로 올라온다. 그렇게 <브레이킹 아이스>의 메시지가 결론에 다다른다. 비로소 방황의 빙판이 깨어질 때, 내면에 숨어있던 자아를 마주할 때 진정한 성장의 서사가 영화의 수면 위에 올라선다.
* 이 글은 씨네랩 크리에이터 자격으로 시사회에 다녀온 뒤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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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겐 아니야, 굿모닝 에브리원
희망이라는 씨앗이 절망의 땅에 심어질때.
그렇지 않은듯 하다가 희망이 스며들어 변화의 땅을 일궈낸다.
'데이브레이크'는 저와 같아요
가능성을 믿어줄 사람이 필요하죠
아무도 안된다고 끊임없이 절망으로 뒤덮일때도,
끊임없이 가능성을 믿어주며 자신을 희망의 길로 올려놓습니다.
그렇게 포기하고 있던 마이크가 전혀 다른 행동을 했을때도 마이크와 칼린 사이에서 등이 터졌을때도 변함없이 웃고 또 올라오죠.
마이크가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것을 포기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것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렵고 비참한 일이였을텐데 베키를 위해 요리를 하며 "계란이 뽀송뽀송하죠" 모습은 웃음을 짓게 했습니다.
베키 풀러의 그 웃는 모습과 활발한 모습들은 힘든 이 시기에 위로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보다 베키풀러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더 좋았던 영화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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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너와 내가 만나 우리가 되는 순간.
이 무더운 여름조차 싱그러운 분위기로 새겨주어 본격 여름이 그리워지는 영화인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를 소개하려고 한다. 세대와 세대를 잇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따뜻한 영화는 2년이 넘은 지금도 바래지지 않은 채 색을 유지하고 따뜻함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은 정말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지만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환갑을 맞은 정연은 일본에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딸을 만나러 일본에 간다. 비가 무수같이 떨어지는 날, 딸이 아닌 손녀인 안이 마중 나와 있다. 일면식도 없던 손녀와 택시를 타고 딸의 집으로 향하는 차 안은 정적 그 자체다. 손녀 안은 한마디 말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통화를 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정연이 집을 돌아본다. 그 모습을 보던 안은 밖으로 나가자고 말하고 정연은 안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긴 외출을 하고 돌아와 우연히 손녀의 휴대폰을 보게 된다. 두 사람은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갈 곳을 잃어버리다가 한 대상을 찾아 언제 끝날지 모를 원망을 자신을 상처 내면서 까지 쏟아붓는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져드는 원망이라는 마음은 누군가가 되짚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리고 그 감정을 깨닫고, 인정하는 순간 왠지 모를 미안함과 민망함이 몰려오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나의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서로를 이해할 수 없고 다가갈 수도 없다. 의외의 지점에서 겹치는 두 사람은 서로의 언어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눈빛, 몸짓, 그 외의 비언어적인 요소를 통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아픔을 공유한다. 부정적인 상황에서도 이루어지지만, 긍정적인 상황에서도 이루어져서 서로의 마음을 잘 두드릴 수 있었다. 타인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 좀 늦어도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는 모습이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든다. 짧게만 느껴지는 영화의 여운은 끊어지지 않을 두 사람의 관계를 통해 안이 서울로 왔을 때, 서로 어떤 표정으로 다시 만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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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뽑은 올해 탑 10 영화
그렇게 한 해가 갔다. 올 한 해 좋은 작품들이 정말 많았다. 코로나19라는 환경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작품을 낸 감독과 배우분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근데 아쉬운 건 우리나라의 개봉 작품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구체적인 근거 있냐?라고 물으면 할 말이 없긴 한데, 뭔가 체감상 그런 느낌이다. 내년에는 코로나19가 종식되어 개봉이 연기되거나 촬영이 중단 된 작품들이 많이들 상영되길 바란다. 기준은 전적으로 내 생각이며, 많은 이들이 이 작품들을 봤으면 하는 마음에 글을 쓴다.
10. <세 자매> / 이승원
문소리-김선영 배우가 청룡영화상 주조연상을 수상한 영화다. 난 문소리 배우하면 생각나는 되게 전형적으로 연기하는 이미지가 있다. 똑순인데 씩씩하게 사는 허당 역할이 머릿속에 제일 먼저 들어오는 느낌? <메기>와 <하하하> <여배우는 오늘도>같은 작품들이 되게 한 갈래같이 느껴졌다. 근데 이 영화에서는 되게 문소리 식 연기를 한 것 같으면서도 속은 곪을대로 곪은 중년 여성의 내면을 완벽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겉으로 드러낼 순 없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있는 트라우마를 종교로 귀결 낼 수 없는 인물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데, 분출하는 분노와 어머니로서의 역할 괴리를 모두 살리는 괴력을 보여준다.. 이에 못지 않은 카리스마는 김선영 배우였는데, 엄마 연기 달인 다운 면모가 있다. 딸래미한테도 핍박받고, 남편한테도 쿠사리먹고, 온 세상이 함부러 대하는 소심한 어머니상을 손짓 하나 표정 하나로 구현하는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자매인 장윤주 배우의 연기나 현봉식 배우의 연기도 다 좋았지만 이 둘의 연기 앙상블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나는 코미디로서, 또 드라마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후반부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 읭? 스러운 선택지를 고른다는 점이나 전체적인 설정이 좀 과하다는 점은 아쉽긴 한데 보는데 큰 무리는 없을듯. 마음 속의 억눌린 무언가가 있는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왓챠에 있음.
9. <랑종> / 반종 피산다나쿤
개인적으로 <티탄> 만큼이나 문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난 진짜 극장 뛰쳐나오고 싶을 정도로 무서웠는데 반해 몇몇 분들은 재미 없었다고 하니 그 선명한 호불호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페이크다큐라는 장르적인 허점이나 굳이..? 싶은 부분까지 만든건 몰입을 깨는 요소가 맞다고는 생각하나 님 역 배우의 중후반까지 끌고가는 카리스마나 촬영한 장소, 태국 특유의 스산한 분위기가 나홍진식 염세주의의 글로벌화(?)를 이끌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간략하게 더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은 우리가 영화를 볼 때, 흔한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클리셰라고 한다. 그 클리셰라고 하는 게 ‘아 또 이 짓거리 하네 뻔하네 ㅋㅋ’ 싶으면 흥미가 떨어지지만 어떤 영화에서는 그게 좋은 쪽으로 발휘가 되곤 하는데, 난 랑종이 그 예라고 생각한다. 정말 여기까지 갈 것인가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며 운명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표현한 호러영화다. 아시아 공포영화 수작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넷플릭스에 있음.
8. <바쿠라우> / 클로버 멘돈사 필로, 줄리아노 도르넬레스
브라질 영화임. 한 정치인이 있다. 이 사람은 시장직에 도전하는 사람이다. 근데 또 이 인물은 반지성주의자라 책도 지식도 전부 부정한다. 이 인물이 한 마을의 지지를 얻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자, 바쿠라우라는 이 가상의 도시에 보복하고자 하는 내용을 플롯으로 담았다. 올 해 개봉했던 <레 미레자블>의 광기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내 폭주하다 결국 파국으로 가는 영화였다. 나는 이 <레미레자블> 영화의 에너지가 ‘빨리 달린다’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바쿠라우>는 살짝 다르다. 광기에 씌인 채로 달린다. 자기 앞을 가로막는게 있으면 그걸 다 부숴가며 달리는 느낌인 것이다. 이렇게 현재 브라질이 처해있는 원주민과 개발자들간의 갈등을 이 폭발적인 에너지로 비틀어 영화화 한 작품이다. 슬래셔 호러나 스릴러물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 네이버에 있다.
7. <루카> / 에린코 카라로사
난 항상 왕따였던 것 같다. 부모님에게도 내 공감을 오롯이 받지 못했기도 하고. 부족한 사회성 탓에 난 항상 모난 돌이었어서 세상에게 딱 미움 받기 좋은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물론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해서 미움을 당연히 받아서는 안되는게 맞고, 왕따의 아픔이 있는 이들에게 모든 축복을 비는 건 여전하지만 난 아픔에서 나아가기 보다 내가 세상을 먼저 따돌리던 쪽에 가깝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더 특별한 사람이 되어 공부하고 노력하는 것도 외로워서 그랬던 거지. 이런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그 누구에게 든든한 어깨가 될 수도 있고 푸근한 품이 될수도 있다. 이 <루카>는 든든한 품같은 이야기다. 꿈을 위해 도전하고, 실패하고 그 사이에서 세상에게 손가락질 받더라도 따뜻하게 품는 인생이란 얼마나 멋진 일인지를 보여주는 듯한 영화다. 디즈니플러스에 있음.
6.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 존 왓츠
블랙 위도우 - 샹치 - 이터널스로 올해 좀 심심했던 마블이 힘 좀 준 작품이다. 12월 15일 개봉 이후 스포가 사골국같이 우려졌을 것 같아 굳이 더 이야기를 쓰진 않아도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톰과 파이기가 아카데미 의식을 하지 않아도 MCU가 극장에서 준 전율과 감동을 믿는다. 그건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이 작품은 그에 걸맞는 훌륭한 3부작 마무리다. 현재 상영관에 걸려있다.
5.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 / 도이 노부히로
사람은 누구와 사랑에 빠질수도 있고 또 헤어질수도 있다. 그건 당연한 것. 근데 그것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게
있는거 같다.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사람이라면 겪을 성장통과도 같은 뭐 그런 것이다. 이 <꽃다발같은 사랑을 했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겪어야 할, 또 겪을 수 밖에 없는 감정과 과정을 그린다. 누구 하나 잘못한 것 없이 사랑에 빠져 아름답게 불태운 지나간 시간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하는 영화인 셈이다. 보내기 싫지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품에서 떠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그게 누군가의 심각하게 상처를 준 일(데이트폭행, 바람 등)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이별이었다면 가끔은 그들에게 고마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향기롭게 시드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박평식 평론가의 평가가 생각나네. 올 해 나온 로맨스코미디 영화중 단연 최고다. 네이버에 있음.
4. <노매드랜드> / 클로이 자오
사람들이 영화를 보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영화는 영화같은 일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거 같다.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라던가, 예전에 썸타던 여자가 1년만에 유학 돌아와서 사귄다는가 하는 이야기는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것 같다. 이별이라고 하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지 않나. 몇몇의 바람과는 반대로 이별과 재회는 항상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이 <노매드랜드>는 이 이별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플롯이 영화같지 않은 하루로 가득찼다. 근데 영화는 불가능에 가까운 바람을 이야기한다. 이별, 참 어렵다. 보낸다는 건 그 사람과 행복했던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을 성장하게 한다. 근데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야 말로 진짜 이별의 가치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보내지 않았기에 사실 헤어진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다. 영원한 안녕이란 없으니까. 네이버에 있다.
3. <당신얼굴 앞에서> / 홍상수
이동진 평론가의 말처럼 홍상수는 영화에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같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을 비꼬는 작품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그 사건 이후 홍상수는 자기의 심리상태를 은연중에 투영한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혼자’라는 제목을 통해 모든게 끝나고 나서의 자기와 김민희 배우의 모습을, <강변호텔>은 삶의 동기부여가 사라진 인물의 욕망 발현을, <풀잎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작을 소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렸다. 세 작품 다 ‘한 사건이 있고 나서 느낄 수 있거나 경험하고 있는 순간’ 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시간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 같다. 이 <당신얼굴 앞에서>는 이런 태도에서 벗어나 자기혐오가 아닌 순수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려 하는, 그런 시도를 그렸다고 생각한다. 이제 홍상수는 더이상 무언가가 끝나고 난 다음이 아니라 얼굴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인간의 찌질함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적으로 보이는 상황에게 신뢰를 주려고 하는게 아닐까. 묘한 위로감에 감사했던 영화다. 네이버에 있다.
2. 소울 / 피트 닥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난 사실 세상에게 할 말이 없다. 내 동기부여의 본질을 깨달았거든. '정공'이라 사람들을 욕하는 미친 세상에서 군 문제도 공익으로 빼고 1인분 하는 것도, 토익 900점도, 수많은 경험치와 내 능력도 다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였다. 사랑을 주는 법도 받는것도 몰라서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멀어지는게 두려운게 요즘의 나다. 그 덕에 나한테 일어난 일도 아닌데 내 주위의 누군가에게 무례한 어떤 이를 미워하다가 오바하는게 맞는거 같아 실제로 표현하기엔 소심해지고, 어려운 현실에서 잘 개척해냈다는 확신은 있지만 왠지 인스타 좋아요 개수부터 사람들에게 비호감만 사는 것 같다는 느낌에 헤어나오질 못했던 것 같다. 소울은 이런 회의감에 대한 영화다. 과연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얻었다고 했을 때, 미래가 달라질까? 내가 친구가 많아진다고 또 돈이 많아진다고 행복해질까? 아닐수도 있다. 사실 중요한 건 그 다음의 순간이다. 정말 삶에서 중요한 건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작은 순간들이 아닐 지. 삶의 동기부여를 잃은 이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보다 색다른 접근법을 가졌다고 확신한다. 디즈니 플러스에 있음.
1.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이해. 난 그 사람을 이해 할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나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일까? 확신 할 수 없다. 나는 사실 이제서야 내가 원하는지 깨달은 사람인 듯 하다. 그리고 사실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공허함은 영원히 치유될 수 없다는걸. 난 이제까지 헛걸음을 했다는 걸. 그리고 그게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 늘 외롭고. 뭘 원하든 그걸 가져다주지 않고. 또 이게 당연한 사실인데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 또 방황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위에 인간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고 본질적인 무언가를 꺼냄으로서 치유받는 것이 아닐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 3시간동안의 운전길을 통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이 끝나고 나서 들었던 애매묘호한 기분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올해의 영화.
번외
<해피 투게더> / 왕가위
코시국으로 인해 극장가 재개봉 메타가 불었고, 왕가위 특별전이 열리면서 다시 상영관에 걸린 작품. 헤어짐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과연 중요한게 무엇일까? 새로운 걸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들만 찾아 다른 길을 떠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새 해에는 온 몸을 부딫히며 사랑해야지. 어떤 순간이든 행복한 채로 기억에 남을 수 있게끔. 올해 재개봉 한 작품들 중에서 가장 좋았으며 내 인생영화이기도 하다.
올해의 배우 : 베네딕트 컴버배치
올해 4편의 영화에 주인공으로 나왔다. 이게 사람이냐 소냐? <파워 오브 도그>로 아마 아카데미에 한발 더 다가갔다고 생각한다.
올해의 감독 : 하마구치 류스케
<스파이의 아내>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의 각본을 담당함. 대체 뭘 먹고 살아야 이런 작품들을 만드는 것일까? 단 3편만으로도 포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츠, 아니 '하마구치 류스케'가 유력하니 그 클래스가 어마어마하다. 시간 나는 분들은 이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정주행 해도 꽤나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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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끊어내지 못한 과거
지금의 나는 어떤 것들로 만들어진 걸까.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것들은 DNA라는 틀을 따라 계속 이어져온 것이어서 무척이나 분명하다. 하지만 그 외에 우리는 꽤 많은 것에 영향을 받는다. 집안 환경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도 이어져 내려오면서 조금씩 그 당시 상황에 맞게 변화한다. 그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오는 모든 것들 속에 작게나마 변하는 것들이 있다.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함께 지금의 나라는 존재를 만든다.
이 모든 연결고리의 시작은 결국 과거다. 과거의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역사를 우리는 평상시에 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도 결국엔 영향을 받으면서 현재를 만들어간다. 우린 미래에 내가 어떤 결과를 받게 될지를 궁금해하며 살아가지만, 가끔씩은 과거를 돌아보기도 한다. 조상의 역사를 찾아보고 그것을 통해 내가 다르게 갈 방향이 어떤 쪽인지를 생각해 본다. 때론 점집이나 무당을 찾아 현재 좋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 보고 미래를 가늠해보기도 한다.
영화 <파묘>는 젊은 무당 화림(김고은)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다. 화림은 그의 일을 돕는 봉길(이도현)과 함께 기이한 병이 대물림 되고 있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 가족에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3대째 이어내려오고 있는데, 무당인 화림은 이 병이 조상의 묫자리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이 가족에게 찾아온 기이한 병은 이 집안의 미래를 막고 있는 병이면서 과거와의 연결고리를 끊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결국 이 과거를 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집안의 장손은 네 사람을 고용해 파묘를 하려고 한다.
첫 번째 감정 - 화림의 두려움
화림은 무당의 관점에서 본능적으로 이 모든 문제가 묫자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이건 그의 몸에서 느끼는 본능적인 감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실제로 묫자리의 위치는 무척 좋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 화림은 관객이 가장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인물이다. 묫자리뿐만 아니라 초자연적인 존재까지 감지할 수 있는 화림은 이 영화 안에서 만큼은 초능력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내내 초자연적인 것들을 감지해 내고 그걸 다른 인물들에게 설명해 나간다.
여러 인물들 중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화림은 사실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존재의 힘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초반에는 자신만만하게 굿을 하고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하며 다른 인물들을 이끌어나간다. 하지만 좀 더 강한 존재가 등장했을 때, 그는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가 두려움에 풀썩 주저앉는 순간, 그걸 보는 다른 인물들과 관객들은 두려움을 넘어서 공포를 느낀다. 달리 대항할 방법이 없어 보이는 엄청난 존재가 화림의 두려움 때문에 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사실 젊은 무당인 화림을 겉으로 보기엔 무서워하는 것이 없고 자유분방해 보이지만 그도 두려워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화림이라는 인물이 만들어내는 공포스러운 점이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 과거의 존재다. 이미 육체가 없는 과거가 만들어내는 공포 속에서 화림은 자신의 미래마저 잡아먹어버릴 듯한 힘을 느낀다. 이 영화가 이야기 전반부에 감추고 있는 과거는 미래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청산되지 않았던 것들이다. 화림은 그런 청산되지 않았던 과거에 짓눌린 두려움을 느낀다. 그는 나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무당의 옷을 입고 칼춤을 춘다.
두 번째 감정 - 영근의 체념
무당 화림이 파묘를 위해 찾는 인물은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다. 그중에서 영근은 아주 평범한 장의사다. 죽은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무덤에 묻히거나 화장하는 순간까지 그는 덤덤하게 자신의 일을 해왔던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평범한 인물인 영근은 풍수나 불가사의한 일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다. 그저 돈벌이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들었다. 풍수사 상덕도 마찬가지지만, 상덕은 적어도 풍수지리라는 지식을 공부하고 배운 경험이 있다. 하지만 영근은 그야말로 평범한 관찰자의 입장이 된다.
영근은 큰 능력이 없지만 화림, 상덕, 봉길과 함께 파묘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그 모든 과정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고 빨리 상황이 마무리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후반부 엄청난 존재가 등장하는 것을 본 이후 영근은 빨리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그에게는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빠르게 그 상황을 체념해 버린다.
그의 체념은 과거를 끊어내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들지 않는다. 누군가가 다치고 힘든 상황에 놓여서야 움직이는 영근은 끝까지 그에게 찾아온 과거와 적극적으로 싸우기보다는 그저 옆의 사람을 돕는데만 급급해있다. 그는 비록 모든 상황을 체념했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저버리진 않았다. 끝까지 과거를 끊어내려는 사람들 옆에 서서 작은 힘이나마 돕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근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던 일반 국민들을 대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체념은 했지만, 돕는 걸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감정 - 상덕의 집념
상덕은 이 영화에서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캐릭터다. 그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의 말들은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왠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고, 한 편으론 그의 말에 신뢰가 가는 느낌도 있다. 아마도 그가 그 일을 하는 껄렁하고 대충 하는 듯한 태도가 그런 느낌을 주는데 이야기 내내 상덕은 이런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선 무당 화림의 말을 더 신뢰하게 되고, 상덕의 말이나 입장은 한 번 걸러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공포스러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이후 이 존재와 과거에 대해서 제대로 파헤치는 건 상덕이다. 이 이야기에서 그의 역할이기도 한데,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진짜 과거 모습을 알고 싶은 호기심을 느낀다.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는 걸 느끼면서 상덕의 집념은 점점 더 커진다. 특히나 영화의 말미 그의 집념이 폭발하듯 몰아치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의 집념이 폭발하는 그 순간은 바로 나쁜 과거를 청산하고 끊어내는 순간이다. 그래서 꽤나 통쾌하게 느껴진다. 마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몰랐던 과거를 찾아내고 그 당시의 잘못된 무언가를 벌하고 끊어내는 느낌을 준다. 그런 의미에서 상덕의 집념은 무당 화림의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과거 청산의 힘이다. 그가 힘껏 과거를 내리칠 때 모든 것이 바로잡히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영화 <파묘>는 우리 모두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는 영화다. 오컬트 장르로 시작한 영화는 중반부 이후 그 장르를 공포로 완전히 바꾼다. 이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리지만 꽤나 쉽게 설명하고 묘사하고 있는 공포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만든다. 좀 더 쉽고 대중적으로 역사적인 문제들을 엮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에 끝까지 몰입하게 만든다. 특히나 공포스러운 과거와 그것을 끊어내는 과정을 보면서 아직 청산하지 못한 과거의 유산들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영화의 스틸컷은 [왓챠]에서 다운로드하였으며, 저작권은 영화사에 있습니다.
https://www.notion.so/Rabbitgumi-s-links-abbcc49e7c484d2aa727b6f4ccdb9e03?pvs=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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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여운 것들 | 섹스라는 잉크로 새로 쓴 프랑켄슈타인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지녔지만 사고방식이 다소 비뚤어진 과학자 '갓윈 백스터'(윌렘 대포). 그는 자기가 실험을 통해 새로이 되살려낸 피조물 '벨라 백스터'(엠마 스톤)를 키우고 관찰하느라 여념이 없다. 갓윈의 보살핌 속에서 말과 에티켓을 배우고, 갓윈의 조수 '맥스'(라미 유세프)와 약혼하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벨라. 그러나 그녀 마음 한 편에서는 집 밖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날, 벨라는 약혼을 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변호사 '던컨'(마크 러팔로)을 만난다. 벨라에게 첫눈에 반한 그는 함께 리스본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고, 그와의 섹스가 마음에 든 벨라는 갓윈과 맥스의 반대를 무릅쓰고 집을 나선다. 자기가 아는 것과는 많이 다른 세상과 사람을 마주한 벨라. 그렇게 그녀는 모험을 통해 한 인간으로, 한 여성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새 시대의 새로운 '프랑켄슈타인', <가여운 것들>
'프랑켄슈타인'. 이 이름을 들으면 흔히 유니버설의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을 떠올린다. 그런데 평평한 머리와 목에 볼트를 박은 거인은 사실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다. 메리 셸리의 원작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기가 만든 창조물에게 복수당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프랑켄슈타인이라고 알려진 괴물에게는 이름이 따로 없다. 그저 '피조물'이라고 불린다.
괴물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일까?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는 사실 또한 종종 간과된다. 그는 혐오스러운 외모 때문에 창조주로부터 버려졌고, 사회적으로도 배척받았다. 그는 자기가 타인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했으며, 비뚤어진 정체성은 그의 복수로 이어졌다. 정당화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악행이 약간의 안타까움마저 자아내는 이유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도 같은 궁금증이 있었던 모양이다. '피조물의 외모가 흉하지 않았거나, 창조자가 피조물을 외면하지 않았거나, 세상이 피조물을 다르게 받아들였다면?' 알라스데어 그레이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상화한 <가여운 것들>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란티모스 감독은 여성과 섹스라는 잉크로 자기만의 새로운 '프랑켄슈타인'을 써내려 갔다.
두 피조물의 분기점
자연히 <가여운 것들>은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과 벨라 백스터 간의 차이점에 주목한다. 먼저 두 창조주가 피조물을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띈다. 프랑켄슈타인은 혐오스러운 외모를 견디지 못하고 자기가 만든 피조물을 버렸다. 아내를 만들어주면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조용히 살겠다는 피조물의 요구도 끝내 거절했다.
벨라의 창조주는 다르다. 갓윈은 그녀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다. 그는 그녀에게 언어와 에티켓을 알려줬고, 전담 가정부 '프림 부인'(비키 페퍼바인)도 붙여줬다. 벨라에게 유일한 취미도 알려줬다. 일반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벨라는 갓윈과 함께 시체를 해부하곤 했다. 집을 떠난 후에도 벨라가 시체 해부 참관을 즐길 정도로. 또 갓윈은 직접 남편감을 찾아 벨라의 약혼도 주선했다.
또 다른 차이는 그들의 외모다. 외모는 그들이 전혀 다른 세상을 마주한 결정적인 원인이다. 인간보다 시체에 가까웠던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그 때문에 그는 자기 의도와는 무관하게 적대적인 세계를 경험해야 했다. 반면에 아름다운 여성인 벨라에게는 세상이 호의적이다. 그녀가 괴상한 실험의 소산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겪지 않은 존재라는 걸 눈치챈 사람도 스르륵 사랑에 빠질 정도다.
모든 아이는 부모를 떠난다
<가여운 것들>은 두 차이점을 도화지 삼아 괴물로 변하는 대신 인간으로 변해가는 새로운 피조물, 벨라의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 그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자식의 성장 서사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를 되찾는 여성의 이야기다.
우선 영화는 갓윈의 보살핌에 담긴 이중적인 면모를 번갈아 보여주며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고찰한다. 갓윈이 자기 피조물을 아끼고, 애정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애정은 마냥 순수하지 않았다. 자기 피조물인 벨라의 성장과정을 바로 옆에서 관찰하겠다는 목적도 있었기 때문. 따라서 그의 보살핌은 통제에 가까웠다.
방식은 여러 가지였다. 창문을 잠가서 벨라가 못 나가게 하고, 외출을 하더라도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았다. 맥스와의 약혼을 주선해 벨라를 평생 관찰하려 했으며, 벨라가 던컨과 함께 리스본 여행을 떠나려 하자 극렬히 반대한다. 벨라가 끝내 집을 나가자 그녀보다 순종적인 새 피조물을 만들어 그녀를 대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갓윈의 노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그가 딸을 통제하려 발버둥 칠수록, 딸은 그의 손아귀를 빨리 벗어난다. 자기에게 호의를 표하는 바깥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연다. 바로 이 지점은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격언을 상기시킨다. 즉, <가여운 것들>은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을 풀어내려 한다.
누가 '가여운 것들'인가
이는 벨라가 목격하고, 파악한 세상이 갓윈의 세계와는 정반대인 이유다.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파리를 거치는 기이한 세계 여행 끝에 벨라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 누구도 그저 악하거나 선하지는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은 각자의 시점에 따라 여러 맥락 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는 것.
집으로 돌아온 벨라가 갓윈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렇다. 죽기 직전인 갓윈과 재회한 벨라. 그녀는 자기 몸과 뱃속의 아이를 마음대로 이용한 갓윈의 실험에 분노한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를 사랑한 과거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한다. 이는 자기 세상과 렌즈 안에 사람을 가두려고 하던 갓윈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이 지점에서 제목이 복수형인 이유도 유추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실험체로 살아야 하는 벨라가 가엽다. 하지만 끝에 이르러서는 갓윈도 가엽다.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자신을 실험체로 사용했다는 언급을 고려하면, 그는 사랑을 받아본 기억이 없는 인물이다. 달리 말해 그는 죽을 때까지 벨라처럼 살아볼 기회를 전혀 갖지 못했다. 이렇게 보면 <가여운 것들>은 누구라도 일생 중 한 순간에는 '가여운 것들'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자유와 섹스의 상관관계
이에 더해 벨라의 성장 서사에서는 여성주의 메시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가 바깥세상에서 얽히는 대부분의 인물이 남성이고, 그들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9세기의 가부장적인 분위기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던컨과 '알피'(크리스토퍼 애봇)가 대표적이다. 둘은 전혀 다른 성격, 직업, 사회적 지위를 지녔다. 그러나 공통점은 확실하다. 그들은 벨라를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그녀의 일부만을 소유하고 이용하려 든다.
던컨은 벨라와의 섹스만을 탐닉했다. 그녀의 정신적 성장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벨라가 읽는 책을 바다에 버리기도 하고, 그녀가 몸을 팔아 돈을 마련하겠다고 하니 불같이 화를 낸다. 알피 역시 벨라의 외모와 사회적 지위만을 탐했을 뿐, 그녀를 한 인격체로 대하지는 않았다. 그의 비인간적이고 속물적인 태도는 벨라가 만들어진 시작점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영화를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로써 제시한다. 억압 앞에서 낙담하는 대신, 타인과 연대로 극복하는 동화를 쓴 셈이다. 일례로 그녀만을 기다린 약혼자 맥스는 다른 남자와는 달리 벨라의 주체성을 존중한다. 그녀가 던컨과 외도를 떠나고, 매음굴에서 일해도 그녀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는다. 크루즈와 매음굴에서 만난 친구 '스위니'(캐스린 헌터)와 '펠리시티'(마가렛 퀄리)도 벨라의 버팀목이 된다.
그 연장선상에서 <가여운 것들>에는 독특한 일면이 있다. 터부시되기 쉬운 대상인 섹스를 스토리텔링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특히 섹스의 본질에 주목했다. 성욕은 인간의 3대 욕구 중 유일하게 타인과의 관계를 필요로 한다. 즉, 원할 때마다 이뤄지는 벨라의 섹스는 그 자체로 억압적인 남성과의 관계 안에서 여성의 자유와 주체성을 점진적으로 되찾는 행위나 다름없다. 이는 성적인 엄숙주의가 강조되던 빅토리아 시대가 배경기에 더 의미심장하다. 높은 노출 수위에도 불구하고 외설적이라는 인상이 강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기괴함 속에 숨은 역사
란티모스 감독다운 삐딱하고 자극적인 스타일 덕분에 벨라의 서사는 더 눈길을 끈다. 흑백과 컬러의 전환이 대표적이다. 란티모스는 초반부를 흑백으로만 보여주다가, 벨라가 여행을 떠나고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스크린을 색칠한다. 그렇게 벨라의 변화는 시각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뒷받침된다.
빅토리아 시대를 재현하되, 당시의 분위기는 거부하는 세트 프로덕션도 인상적이다. 극 중 런던 타운하우스, 파리 광장, 유람선, 리스본 거리는 모두 세트다. 바다, 태양, 노을도 세트와 인공조명으로 만들어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시대극에서 느껴지는 고전미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비틀린 건물 사이로 비행선이 돌아다니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피어난다. 그 덕분에 당대의 엄숙주의는 자연히 모습을 감춘다.
의상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벨라는 프림 부인이 골라주는 헐렁하고 편한 옷만 입는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는 몸에 딱 맞는 드레스를 입기 시작한다. 이때 의상의 의미는 직관을 따르지 않는다. 불편해 보이는 드레스일수록 오히려 벨라 본인이 섹스에 눈을 뜨고 세상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골라 입는 옷이기 때문. 편한 옷과 불편한 옷의 속뜻을 맞바꾸면서 눈도 즐겁게 만든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가여운 것들>은 호불호가 필연적인 영화다. 란티모스 감독의 스타일은 본래도 강한 매력과 불쾌함을 동시에 지녔기 때문. 누군가에게는 장점인 대목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부 단점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섹스를 바라보고 묘사하는 영화의 관점에 대해 반응이 엇갈릴 가능성도 적지는 않다.
다만 모두가 동의할 만한 대목도 있다. 벨라로 분한 엠마 스톤의 연기 덕분에 2시간 21분은 결코 아깝지 않다. 그녀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특히 뇌 이식 수술 직후 엠마 스톤과 영화 말미에 책을 읽는 엠마 스톤의 표정 차이가 압권이다.
Exceeds Expectations 기대 이상
이 시대의 프랑켄슈타인과 피조물에게 필요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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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나는 누가 책임져?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최우식 주연 영화 거인입니다.
너무 좋은 영화라 더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usic
Levity – Johny Grimes#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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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이런 좀비 영화는 없었다! /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일본 저예산 좀비 영화 / 충격적인 반전과 재미 / 배꼽 빠짐 주의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 후기입니다.
어찌보면 쿠키영상이 전부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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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악마의 다이어리> 예고편
어느 날 밤 오우자 판자를 가지고 놀다가 악마의 공격을 받은 레베카 클락슨.
사람들은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할 것이고, 또는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일주일동안 자신의 웹캠에 비디오 일기 형식으로 그녀의 경험을 기록한다.
고조되는 일련의 사건들, 그림자처럼 보이는 인물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며 점점 소름이 끼치기 시작한다.
초자연적인 움직임이 격렬해지고, 레베카는 마침내 악이 그녀의 몸을 점령할 때까지 악마적인 힘에 의해 반복적으로 공격을 받는다.
레베카는 악마를 물리치고 영혼을 보호할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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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챠 <사막의 왕> 티저 예고편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있어. 바로 평범한 삶이야.” 왓챠 오리지널 시리즈 〈사막의 왕〉 티저 예고편 공개! 〈D.P.〉 김보통 작가와 왓챠의 만남! 〈사막의 왕〉은 12월 16일 왓챠에서 공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