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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자까2022-08-15 00:28:57

[JIMFF 데일리] 자기만의 길을 가요, 짐짓 꾸며내지 말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제경쟁 섹션 <포저>

포저
Poser



Cast
감독: 오리 세게프, 노아 딕슨
출연: 실비 믹스, 바비 키튼 외

Synopsis
존재감 없는 ‘레넌 게이츠’는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의 인디 음악계에 합류하고 싶어 한다. 그녀는 자신이 동경하는 음악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야망을 발견하는데, 자신감과 재능이 넘치는 ‘바비 키튼’과 급속도로 친해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 낸다. ‘바비’는 ‘레넌’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찾을 것을 권유하고 ‘레넌’은 곧 집착의 길로 들어선다. (출처: 제천국제음악영화제)

Review
혹시 좋아하는 인디 뮤직이 있으신가요? 인디 뮤직은 음반 제작을 비롯해 유통, 홍보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해내는 뮤지션의 음악을 말합니다. 인디 뮤지션들은 음반 제작사의 도움 없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개척자입니다. 음악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인디 뮤직은 음악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죠. 

인디 뮤직에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자신 있게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레넌'의 이야기를 담은 픽션 영화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르의 인디 뮤직에 집중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스릴러적 감각에 젖어 들고 마는 매력적인 작품이죠.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영화제의 꽃’으로 불리는 경쟁 섹션에 이름을 올린 영화 <포저>입니다.

⊙ ⊙ ⊙

짐짓 꾸며내는 사람, 포저(Poser)의 이야기

<포저>는 인디 뮤지션이 되고픈 ‘레넌'의 그릇된 욕망을 8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내는 영화입니다. ‘레넌'은 언제 어디서든 핸드폰 녹음기로 세상의 소리를 수집하는 인물입니다. 지역 인디 뮤지션을 소개하는 팟캐스트를 제작하며 음악계에 속하기를 간절히 소망하죠. 하지만 공연장 안 ‘레넌'의 모습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마냥 불편해 보입니다. 그녀는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음악을 신나게 즐길 만큼 배짱이 좋지도 않고, 존재감마저도 미약한 사람이거든요. 팟캐스트에 인디 뮤지션의 시크릿 공연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려놓고도, 정작 그녀는 공연장에 들어가는 방법조차 알지 못합니다. 인디 뮤직계에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발을 들이지 못한 ‘레넌’이 할 수 있는 일은 동경하는 뮤지션과 비슷하게 화장하고, 그 표정과 제스처를 따라 해보는 것뿐이죠. 

팟캐스트를 제작하며 여러 인디 뮤지션을 인터뷰하던 ‘레넌'은 우연히 동경하던 뮤지션 ‘바비'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뮤지션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선보이죠. 그 자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녀는 ‘바비'와 친분을 쌓고, 음반 제작까지 권유받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상과 음악계로부터 인정 받은 ‘레넌’의 노래는 그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레넌'은 짐짓 꾸며내는 사람, 포저(Poser)였거든요. 

인터뷰에서 들은 뮤지션의 음악을 그대로 베껴 부르고, 물고기를 싫어한다는 ‘바비'의 말에 이름까지 붙여 키우던 물고기를 변기에 흘려보내며, ‘바비'와 한 팀인 ‘Z 울프'가 가면을 벗지 않고 활동하자 자신과 밤을 보내는 남성에게도 가면을 씌우는 ‘레넌'. 음악계에 속하기를 갈망했던 그녀는 다른 음악인의 정체성을 자신의 것인 양 꾸며냄으로써 그 안에 들어갑니다. 빼앗은 노래, 빼앗은 정체성으로 사람들에게 음악적 인정을 받기 시작한 ‘레넌’은 결국 모방에 대한 집착을 억제하지 못하죠. 

⊙ ⊙ ⊙

창작의 필요 조건, 모방 아닌 오리지널리티

모방은 창작의 모체이고, 영감은 창작의 자극제입니다. 명성이 자자한 예술가들도 모방과 영감의 가치를 힘주어 이야기하곤 하죠. 그러나 모방과 창작의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모방은 손쉽게 절도가 됩니다. 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은 이러한 이유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철학을 밝힌 바 있죠. 오늘날은 ‘레넌'처럼 소리를 수집하거나 인터뷰에 나서지 않아도 뛰어난 예술가의 훌륭한 창작물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세상입니다. 달리 말하면 포저가 되기 쉬운 세상이기도 하죠. 꾸준히 자기 창작물을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다면, 동경심에 시작한 모방일지라도 쉬이 표절로 변하고 맙니다. 

<포저>의 주제 의식은 ‘레넌'에게 가장 맛있는 감자 칩은 반으로 접힌 감차 칩이라는 예찬을 펼치는 한 남성의 입을 통해 전해집니다. 반으로 접힌 감자 칩 맛을 흉내 내려고 감자 칩 두 개를 겹쳐 먹어도, 반으로 접힌 감자 칩의 맛은 흉내 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예찬론인데요.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창작은 절대 모방에서 비롯될 수 없습니다. 창작의 핵심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니까요. 

영화를 끝까지 보면, 소리를 수집하고 인디 뮤지션을 인터뷰하는 ‘레넌’의 행동이 실은 ‘예술성 절도'를 위한 수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까지 드는데요. 그녀는 몰랐겠지만, 사실 ‘레넌’에게도 오리지널리티는 있었습니다. 디지털로 녹음한 소리를 굳이 테이프로 재녹음하는 아날로그 마니아라는 정체성 말입니다. 만약 소리를 정직하게 담으려는 열정을 오리지널리티로 살려 음악을 했더라면, 그녀는 언젠가 음악계에 당당히 발을 들일 수 있었을 겁니다. 종국엔 정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음악계에 진출해 버렸지만요.

그런데도 자꾸만 피어오르는 그녀를 향한 연민은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으로서 소속과 인정의 욕구가 얼마나 강렬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소속감은 그 집단이 보내는 인정에서 옵니다. 뮤지션들이 인정해주는 음악을 만들면 뮤지션으로 인정받고, 작가들이 인정하는 글을 쓰면 작가로 인정받죠. 소속감과 인정 모두 창작의 필요 조건은 아니지만, 한 걸음 더 전진할 수 있는 확실한 힘이 됩니다. 하지만 <포저>는 창작자라면 한 번쯤 겪는 유혹의 순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예술의 가치가 소속과 인정, 모방 따위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확신, 그것이 창작의 진정한 필요 조건입니다. 

⊙ ⊙ ⊙

인디 뮤직의 세계를 흥미롭게 조명한 <포저>는 인디 뮤직에 대한 두 감독의 애정과 열정 없이는 탄생할 수 없었던 작품입니다. 인디 뮤지션들을 인터뷰하는 ‘레넌' 덕분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데요. 영화 속 뮤지션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퀴어 데스 팝, 익스페리멘탈 팝, 인디 포크, 얼터니티브, 폐차장 디스코까지, 상영 시간 내내 다양한 인디 뮤직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놀라운 사실은 영화에 등장하는 뮤지션 대부분이 실제 인디 뮤지션이라는 점입니다. ‘레넌’이 훔친 노래의 주인인 인디밴드 WYD와 동경의 대상 ‘바비’도 극 중 이름과 같은 활동명의 인디 뮤지션이죠.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지켜보면 짧게나마 그들의 실제 공연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답니다. 음악을 짐짓 꾸며내는 포저가 되지 않기 위한 두 감독의 현명한 선택이었으리라 짐작해봅니다.

Schedule in JIMFF
2022.08.12(금) 메가박스 제천 2관 17:00
2022.08.14(토) CGV 제천 2관 10:00

작성자 . 방자까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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