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Choice Movie2022-08-16 13:15:36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
8월 3주 최신 개봉영화!
2022년 8월 3주 개봉영화!
놉
NOPE , 2022
영화 "놉"은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미스터리하고 기묘한 현상을 그린 작픔으로
북미 개봉과 동시에 폭발적인 입소문을 자랑하며 박스오피스 1위 달성했습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것’에 대한 공포심과 호기심!
은 올여름 그가 전할 메시지와 함께 관객들을 새로운 장르의 세계로 강렬하게 흡입 시킬 예정입니다
다니엘 칼루야가 '겟 아웃' 이후로 조던 필 감독과 다시 함께했는데요
그가 맡은 OJ 헤이우드는 말수는 적지만 기품 있는 행동을 하며 영화의 정신적인 중심을 맡습니다
또한 '미나리', '버닝'의 스티븐 연도 이번 작품에 함께했습니다
그가 맡은 '리키 주프 박'은 어린 시절 할리우드에서 아역 스타로 유명세를 얻고
지금은 자신이 출연한 작품의 본인 캐릭터 이름을 딴 ‘주피터 파크’를 운영하고 있는걸로 나옵니다
전 세계가 주목한 조던 필 유니버스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 더 커진 스케일!
다양한 해석과 해설로 영화 세계를 뒤덮는
추천영화 "놉" 입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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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넷째 주 주말 박스오피스 분석 with 씨네픽
페데 알바레즈 감독이 한정된 공간에서 액션을 능숙하게 연출한 점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후반에 등장하는 에이리언 최종 보스를 충격적이고 기괴한 새로운 형태로 그려내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평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말 동안 국내에서는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누적 관객 수 120만 명을 넘기며 1위에 올랐고, <파일럿>은 425만 명을 넘기며 2위를, <늘봄가든>은 20만 명을 기록하며 3위에 올랐습니다.
한편, 북미에서는 <데드풀과 울버린>이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밀어내고 다시 1위에 올라섰습니다. 국내에서 196만 명을 기록한 <데드풀과 울버린>은 북미에서만 5억 8,88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이로써 <데드풀과 울버린>은 <조커>를 누르고 역대 R등급 최고 흥행작 반열에 올랐습니다.
<데드풀과 울버린>에 뒤이어 <에이리언: 로물루스>가 2위, <잇 엔드 위드 어스>가 3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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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 본 리뷰에는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플레이그라운드 Playground, 2021
벨기에 / 드라마 / 72분
감독: 로라 완델
가혹하게 친절한, <플레이그라운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기 자신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할 때, 우린 그 끝에서 말살된 인간성을 발견한다.
그 이후 우리가 경험하는 건, 지독한 폭력과 끝나지 않는 후유증의 활기.
과연 도구란 무엇을 의미할까. 인간에게 도구란 무엇일까. 언제부터 우린 서로를 쓸모 있는 물건으로만 인식하게 되었을까. 도구화되어버린 인간은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올 수 없을까? 인간이 인간을 도구로 만들어버리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또 뭘까. 결국 우린 죽을 때까지 서로를 짓밟고 살아가지 않으면 살 수 없을까? 하나의 질문엔 답이 아닌 수백 개의 질문이 따라온다.
하지만, 우린 매번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듣는다.
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니 확신을 목도한 적이 있다.
바로 앞에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몇 번을 입으로 소리 내며 따라 했지만, 결코 믿기지 않은 대답.
동시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해버린 대답.
'본능'.
살아남기 위한 본능, 존재의 증명을 위한 본능, 심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한 본능 같은, 모든 본능.
<플레이그라운드>는 인간이 가진 폭발적인 본능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직 아이들의 세계를 통해.
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일곱 살 노라는 학교 정문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오빠, 아벨은 불안해하는 동생에게 쉬는 시간마다 꼭 놀아주겠다 약속한다. 그러나 노라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계속 뒤를 바라보며 아빠에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다시 날 데려가 달라는 간절한 신호를 보낸다.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 노라의 불안한 눈빛. <플레이그라운드>는 어른을 대변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등교하는 딸을 조마조마하게, 한편으론 대견스럽게 보는 아빠의 얼굴 대신 아이의 패색 짙은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을 때부터, 영화는 가혹하게 친절하기로 마음먹는다.
중심에는 아이들의 세계가 있다.아이러니한 건 그들의 세상이 사실상 모든 어른이 겪었던 '과거'란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나의 아이가 겪었던 현재가 나의 과거였다는 것도 알아차리지 않으면서, '나는 그랬었다'란 과거의 향수를 들먹인다. "누구나 다 그런 시절이 있어."라고 말이다.
쉬는 시간, 전교생이 뛰어노는 운동장으로 노라가 첫 발을 뗀다. 운동장 구석에서 친구들과 있는 아벨을 찾지만, 오빠는 노라를 어떻게든 멀리 떨어트리려 애쓴다."여기 오지 마 전학생 패고 있어, 여기 있으면 너도 맞아."
툭- "점심 뭐 먹을래?" 같은 말투로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말하며 노라를 밀어내는 아벨. 하지만 노라는 이미 얼굴도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한 일진에게 목이 잡힌 채 고통스러워한다. 아벨은 자신의 동생이라며 일진을 말리지만, 포식자는 결코 예외를 두지 않는다. 이 공간에서 왕은 자신이며, 따라서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없음을 명확히 전달한다. 결국 아벨은 노라를 구하기 위해 일진에게 주먹을 휘두르다, 땅바닥으로 고꾸라진다. 일진은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자신이 사자인 게 당연하다는 듯,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되는 게 순리라는 듯 아벨을 사냥감으로 설정한다.
감히 권력자의 업무를 방해한 죄로 아벨은 포식자의 무리에서 추방된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노라는 일진들의 새로운 타깃이 된 아벨을 어떻게든 구하려 애쓴다. 선생님께 일진들이 오빠를 괴롭힌다고 열심히 소리치지만, 아벨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낯선 환경 속에서 마음 편히 친구도 사귀지 못해서 속 시끄러운데, 거기에 오빠는 아빠에게 괜히 심각해진다며, 사실을 숨길 것을 주문한다. 노라는 오빠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고갤 말없이 끄덕인다. 침묵,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진실. 아벨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는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고, 노라는 아직 그 본능이 주는 공포와 무력감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오빠는 이미 자신이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지 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아이들에게서 시작돼 끝난다는 현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일진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 일진의 유희를 위한 도구로 자신이 쓸모없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역할. 어른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서가 아니라, 어떠한 방식으로도 효과적이지 않을 거란 확신. 그 확신을 본능적으로 느껴버린 자신의 직감.
아벨의 침묵인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반면 노라에게 학교는 새로운 세계다. 온전히 안정적이고 안전한 가족이란 '울타리'에서 나와 처음 맞이하는 사회. 우린 사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와는 다른 '타인'을 만난다. 타인의 언어와 행동에 충격을 받기도 하고,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반대로 뿌듯함을 얻기도 한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을 온몸으로 받아낸 후엔 반드시 한 번은 사회적인 관점으로 가족을 의심한다. 전에는 늘 완벽하고 좋았던 나의 울타리가 어딘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인간은 성장과 후퇴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신발끈을 묶는 법을 모르고, 매일 엄마가 아닌 아빠가 학교 앞에 서 있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노라처럼 말이다.
변기에 머리가 처박혀 고통스러워하는 오빠를 무력하게 보고만 있어야 하는 노라. 아이는 잠깐의 생각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파도에 힘들어한다.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아벨의 발버둥과 비웃는 친구들의 눈빛도 더는 견딜 수 없다. 결국 노라는 등교를 거부하는 오빠를 억지로 학교 안으로 밀어 넣는 아빠에게 오빠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진실을 고백한다. 나름 노라에겐 최선의 방법이었다.
아빠가 움직이면 지금까지 걱정했던 일들이 다 사라질 거라 믿는 아이의 순수한 맹목에서 나오는 마음.
그러나 집 안에서 느꼈던 당연한 것들은 집 밖을 나오는 순간 먼지로 사라져 버리는 법이다. 노라는 내 세상의 중심에 서서 고민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줬던 아빠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란 진실을 마주해야 한다.
아벨은 일진들을 자신을 앞에 세워놓고 사과를 강요하는 아빠의 대처에 얼어붙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이니 무섭게 소리치고, 따끔하게 혼을 내면 착한 아이가 되어 내 아들과 친구가 되진 못해도, 다신 괴롭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아빠의 허망을 눈앞에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어린 아들보다 더 순진하고 무능력한 아빠의 문제 해결 방식은 사건을 더 잔인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만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플레이그라운드> 속 어른들의 대처엔 전부 그러한 망상이 숨어있다. 어른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스스로를 격려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자위하고, 앞으로의 일은 다 괜찮을 거라 착각한다. 울타리 밖으로 나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정체도 알 수 없는 괴물에게 쫓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원래 그래'란 태도를 고집할 수 있는 이유도 전부 여기에 있다. 시간이 해결해줄 거란 얄팍한 믿음 아래 정작 자신의 아들은 오줌싸개와 쓰레기로, 딸은 더러운 오빠의 동생으로 또 함께 놀기 싫은 애가 된 것도 당연히 몰랐겠지.
어른이 되면, 진짜 문제를 모르는 척 등가죽에 숨길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내 의지로 꺼내지 않으면 절대 어둠 속에서 고갤 내밀 일이 없는 그런, 본능, 심보."문제 해결했어, 또 그러면 말해."
"오빠한테 문제가 좀 생겼어, 하지만 아빠가 오셨으니 괜찮아."
"누구든 도움받고 싶은 대로만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 같아."
"넷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모두 노력하는 거지?"
"그럼 이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악수해."
"그 일을 막을 수 있었으면 막았을 거야."학교란 작은 공간이 세상을 배우는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 해서 진짜 아이들의 세계를 모를까? 아니, 우린 다 알고 있다. 단지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는 거지. 최대한 긍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또 연마했기에 가능한 거다. <플레이그라운드>는 이 지점을 꼬집는다. 카메라의 시선이 노라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를 보호하고 도와줘야 할 어른들이 세상을 초월한 말을 내뱉을 때도 화면 속엔 항상 아이들의 불안한 낯빛뿐이다.
정말 좋게 생각한다고 좋아지는 비극이 있나? (솔직히 그런 비극은 한 번도 본 적 없으면서.)
처음부터 그들의 말이 가진, 겹겹이 쌓인 시간의 층을 이제 막 무리에 들어간 아이들이 어떻게 알까.
노라의 아빠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시간이 아니다. 시간의 내성이란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들이 직접 겪어야 할 현재를 함께 해아 한다. 부단히 아프면서 또 후회하면서 세상을 사는 법을 배우는 일이, 정작 아이였던 자신에게도 무척 힘든 일이었다는 걸 인정하면 더 좋고. 본래 인간이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수다. 눈앞에 있는 벽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는 후배에게, 선배가 해야 할 가장 좋은 위로법이 "나도 그랬어, 아니 너보다 더 최악이었지."인 것처럼 말이다.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도 공감과 해결책을 받아보지 못한 노라는 모래사장에서 죽음을 생각한다.
재미있게 모래를 만지며 장난치는 친구들 사이에서 떠도는 괴소문에 몰입한다. 자신이 앉아있는 모래 아래에 얼마나 많은 시체가 잠들어 있을까. 운동장이 거대한 무덤이 되어버린 순간, 아이는 묘비 하나 없는 공동묘지에서 두려움보다 더한 공포를 느낀다. 뛰어놀기 좋고 떠들기 좋았던 광활한 땅엔 어떻게든 벗어날 수 없는 폐쇄성이 깃들여져 있었다. 오빠의 사건을 두고 "가끔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는 일도 있거든"라며 뻔한 변명을 반복하는 선생님처럼, 아벨보다 어린 노라에게 계속 오빠를 위해 전부 다 말해달라는 아빠처럼.노라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친구의 생일 파티에도 초대받지 못하자 꾹 참았던 감정을 오빠에게 터트린다. 친구의 초대장을 찢어버리면서 다시 외톨이가 되고, 친구들 앞에선 오빠를 옆에 두고 "내 오빠 아니야."라고 선언한다. 동생의 말 한마디에 아벨은 아무 말하지 못하고 고갤 숙인다. 죄인처럼, 다신 웃을 수 없는 형벌을 받은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노라에게 주어진 선택은 아벨 밖에 없었다. 아벨이 자신과 유일하게 놀아준 친구(이스마엘)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그것은 애석하게도 본능이었다.
아이가 먼저 배운 게, 옆 사람과 함께 사는 법이 아니라 인간을 도구화하는 방식이라니.
노라는 아벨에게 화를 내며 자신의 죄책감과 실망을 해소하려 하고, 아벨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나가기 위해 친구를 모래 구덩이에 넣는다. 일진이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기 위해 아벨을 괴롭혔듯, 아이들은 제각각의 본능을 무기 삼아 남을 옭아맨다. 누구도 나서서 알려주지 않았던 행동들을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일어나 걷듯이 자연스럽게 혼자 습득한 것이다. 정작 어른들이 원했던 것은 이게 아니었을 텐데.출처: 영화 <플레이그라운드> 스틸컷 (다음)
아벨은 자신을 말리는 노라에게 날카롭게 묻는다. 다시 내가 맞는 게 좋냐고. 차라리 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낮지 않냐고, 나의 폭력이 이 거지 같은 상황을 잊게 해 준다고, 나쁘고 좋고를 떠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노라는 아벨의 변화가 전부 자기 탓인 것 같아 죄책감에 시달린다. 단숨에 오빠를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만든 장본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왜 노라가 그런 프레임에 갇혀야 할까.
더구나 오빠는 이스마엘을 괴롭히면서 자신을 자해하고 있다. 본인 스스로 느끼지 못할 뿐이지.
마지막까지 어른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뚜렷하게 드러나는 건, 일련의 사건들을 전부 지나갈 과거로 치부하는 그들의 행보다. 결국 아벨을 막아선 건 동생 노라였다.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폭력 세계에 아이인, 노라가 선택한 건 두려움에 터져 나온 호소와 몸을 던진 애원이었다. 아벨은 이스마엘을 모래 구덩이 안으로 넣으려는 자신을 막는 노라를 밀어내려 하지만, 제발 이러지 말라는 동생의 외침에 마침내 멈춰 선다. 이윽고 자신을 꽉 안고 있는 노라를 안으며 억눌렀던, 참아야만 했던 참담한 슬픔을 토해낸다.
아벨 역시 이 현실이 노라만큼이나 버겁고 두려웠을 테니까. 돌고 도는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하고 휩쓸려가 버렸던 오빠의 손을 잡아끈 노라의 용기가 <플레이그라운드>의 정점을 찍는 동시에 마지막을 장식한다.<플레이그라운드> 메인 포스터
살아남기 위한 본능은 필요하다. 존재의 증명을 위한 것도, 내가 살아있게 하는 것도 당연히 삶을 사는 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폭력을 실수로 포장하곤 한다.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본능을 당연한 특권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고 또다시 이용하려 애쓰는 것을 자연현상처럼 여긴다. 자연재해로 얼렁뚱땅 넘겨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나도 많다.
<플레이그라운드>가 보여준 노라의 용기는 인간의 본능을 가치 있게 활용한 결과이다.
우리가 계속 추구하고 바라보고, 따라가야 하는 본능. 나를 위해 남을 도구화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일이란 걸 먼저 아는 본능. 그것은 습득이 가능하다. 그러니 분명히 가치 있는 일이지.
학교폭력에 무감각한 어른들의 모습도 영화가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겠지만, 인간으로서 인간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게 만드는 것이 제일 귀중한 메시지가 아닐까.결말이 주는 씁쓸함은 폭력의 고리를 끊은 주체가 어른이 아닌 아이란 점이다.
다행스럽단 느낌은 결국 노라가 해줬단 마침표의 영향이다.
하지만 <플레이그라운드>가 끝까지 남긴 건 불편함이다. 우리가 조금의 희망을 발견했다며 안도하고 '그래 다 끝났다' 생각한 순간을 예상하고 기다렸기 때문이다.
가혹하게 친절한 건, 아벨의 침묵을 이해한 것처럼 다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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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이 오지 않는 저택에서
저택안에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를 비평하는 데에 있어 <홍등>은 중요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장이머우 감독의 주제 의식과 스타일을 압축해놓은 대표작이다. <홍등>은 시각적인 화려함에 눈을 사로잡힌다. 진어른댁 저택이라는 한정된 장소에서만 사건이 발생한다. 저택 밖 상황은 다루지 않는다. 한정된 장소는 주인공 '송련'(공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송련'은 집안 사정과 계모의 강요에 의해 대학을 중퇴하고 진어른댁 네 번 째 첩으로 들어가게 된다. 벗어날 수 없는 저택 안에서 전과는 다른 생활에 초반에는 적응하지 못했지만, 점차 저택 안의 세상이 자신이 보는 세상의 전부가 된다. 그곳에는 매일 밤 홍등이 켜진다. 홍등이 자신이 머무는 처소에 켜지기 위해서는 진 어른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홍등이 켜지면 집안에서 대우가 달라진다. 그 달콤함을 맞본 송련은 진 어른의 총애를 받기 위해 아양을 떨며 네 명의 부인은 서로 경계하며 살아간다. 카메라의 움직임은 수평과 수직으로 이동하며 남성이 중심된 가부장 사회를 보여 준다. 부인들끼리는 서로 왕래를 할 수 없고, 오로지 진 어른의 선택을 받기 위해 살아가는 삶은 서서히 주인공의 인격을 망가트린다.
홍등을 켠다는 건
<홍등>은 컷을 나누기보다는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영화를 설명한다. 격렬한 카메라 무빙은 없고 미끄러지듯 상하좌우 수직으로만 움직인다. 이는 저택의 폐쇄성 견고함을 보여 준다. 사물과 인간을 일직선 위에 배치하여 원근감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인간은 저택의 벽과 기둥에 포위되어 보인다. 마치 우리 안에 가둬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 외에도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저택 밖을 나갈 수 없는 상황을 지속적으로 암시한다. 이 영화에서 네 명의 부인에게 홍등을 하사하는 인물인 진 어른은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간을 파악하기 위해선 얼굴, 즉 눈을 통해 인물의 심리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의도적으로 진 어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진 어른은 단지 가부장 사회의 이념으로 대상화되고 그 자리에 놓인 남성이라면 어떤 인물이든 진 어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질서와 권력, 위엄을 대변하는 상징인 진 어른은 사실 <홍등>에서 중요 인물은 아니다. 그가 있든 없든 하인들은 정해진 일을 한다. 네 명의 부인은 홍등을 달기 위해 모략과 질투를 할 것이다. 즉 진 어른은 가부장 사회의 남성 모두 지칭한다. 폐쇄적인 사회는 대학에 갈 정도로 똑똑하고 순수했던 송련을 망가트린다. 지시된 것, 정해진 것만 욕망하는 기계로 변하며 주어진 것 이외의 가능성을 창출할 능력을 잃어버린다. '송련'의 하녀 '연아'가 홍등을 훔쳐 제방에 달고 그 등이 새빨간 빛으로 방을 물들이는 장면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그러진 욕망의 무서움을 보여 준다. 오로지 붉은색의 욕망으로 물들어진 공간에서 남성에게 모든 주도권과 목표 의식을 넘긴 '연아'는 무섭기도 하지만 안쓰럽고 측은함이 느껴진다.
봄이 오지 않는 저택
영화 속 계절의 변화를 주목해보면, 여름은 송련이 시집을 가서 진 어른 가문의 관습을 경험하는 계절이다. 홍등으로 상징되는 권력을 맛보고 다른 부인들을 탐색하는 시기이다. 가을은 '송련'이 진어른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는 시기이자 말도 안 되는 관습에 저항하는 시기이자 다른 부인과 관계가 깊어지며 서로에 대해 알게 되는 계절이다. 겨울은 '송련'이 본격적으로 권력의 맛을 알게 되고 집착하는 시기이다. 자신에 의해 '연아'가 죽고 셋째 부인의 외도가 발설돼 셋째 부인 또한 죽음으로 인해 본인 스스로가 정신을 놓는 계절이다. 다시 여름이 찾아오고 5번째 부인이 시집을 온다.
<홍등>에는 봄은 오지 않는다. 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봄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관습은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중국의 가부장 사회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홍등은 매일 밤 켜질 것이다. 저택 안에서 사람이 죽어나고 송련은 광인이 되었다. 그러나 저택에는 다섯째 부인이 시집을 온다. 미쳐있는 송련의 모습을 보며 다섯 번 째 부인은 누구냐고 묻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는다. 끝나지 않는 관습 속에서 사람들은 죽어날 것이고 미쳐갈 것이다. 저택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서성이는 송련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한 저택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는 사람이 미쳐도,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왕래가 없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진취적인 인물이 서서히 홍등으로 표현된 권력에 취해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이다. 특히 중국에서 이런 영화를 만들었기에 더 의미가 깊다. 누구나 그 곳에선 송련, 진어른, 세 명의 부인, 연아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이데올로기는 무섭다. 우리는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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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EONJU IFF 데일리] 결국 세상은 품위를 잃지 않을 것,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
민주주의의 위기가 도래했다. 흔히들 상식과 비상식의 싸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공존보다는 자신의 이익이 더 중요해진 세상이 왔다. 사람들은 기존의 것들을 복잡하고 지루한 것으로 여기고, 짧은 길이의 자극적인 콘텐츠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누가 조금 더 쉽게, 간단하게, 자극적으로 사람들의 귀에 메시지를 집어넣는지의 전쟁터가 됐다. 이 흐름에서 우리는 어떻게 품위있는 모습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품위는 지켜질 수 있을까.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가 보여주는 슬로바키아 정치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
Ms. President
Cast
감독: 마레크 술리크
출연: 주자나 차푸토바
시놉시스
주자나 차푸토바는 위기에 처한 슬로바키아에서 5년 동안 더러운 정치판을 품위 있게 헤쳐 나가며 가장 신뢰 받는 대통령으로 자리 잡았다. 제작진은 5년 동안 그녀를 따라 다니며 밀착 취재할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남성들이 경쟁하는 고위 정치계에서 인간적이고 열린 접근 방식을 취하려고 노력한 한 여성에 대한 놀랍도록 친밀한 초상화.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는 주자나 차푸토바라는 제5대 슬로바키아 대통령의 대통령 선출부터 퇴임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영화다. 차푸토바는 진보 슬로바키아당 출신의 인물로, 정치계와 범죄 조직 간의 유착 관계를 밝히려던 얀이라는 기자가 암살당하면서 일어난 사회적 반발심을 업고 대선에 출마한다. 차푸토바가 출마하면서 내세웠던 핵심적인 가치는 ‘품위’였다. 민주주의는 품위로 지켜져야 하며, 품위 있는 정치가 바로 선 슬로바키아를 만든다는 것이다. 품위보다는 오히려 천박함, 수사적인 말들보다 쉽고 저급한 메시지들이 표심을 흔드는 현시대에 적확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로바키아 국민들은 품위에 손을 들었다. 범죄 조직과 유착한 정치인들을 주류에서 밀어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게 5년, 그녀에게 대통령이라는 직위와 함께 심판의 시간이 찾아왔다. 영화는 대통령으로서의 차푸토바가 임기 동안 어떻게 일했는지를 다큐멘터리적으로 잘 담아낸다. <저항의 기록>에서는 서류철을 순서대로 꽂아 정리한 셈이었다면,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는 하나의 이야기를 잘 정돈한 것으로 느껴진다. 원제가 Ms. President라는 점에서, 여성 대통령이라는 특성을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차푸토바는 민주주의의 품위, 품위있는 정치를 앞세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러나 정치권은 금세 차푸토바의 권위를 무너뜨리려고 시도한다. 모두가 예상할 법한 전개로 이어진다. 차푸토바가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해 ‘여론 흔들기’를 시작한다. 차푸토바의 정책과 노력의 방향에 오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정치권이나 음모론자, 미디어의 급부상으로 핵심 세력이 된 ‘사이버 렉카’들은 차푸토바가 여성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성적 모욕은 물론이고, 차푸토바가 한 가정의 어머니라는 점을 이용한다. 그들은 사저 앞에서 차푸토바 가족, 특히 자녀들을 향해 위협하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만약 차푸토바가 남성이었다면, 정치권을 비롯한 속칭 ‘차푸토바 반대세력’은 이런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특히 성적 모욕에 관한 부분에서 말이다.
<슬로바키아의 희망, 주자나 차푸토바>는 그런 점에서 그녀의 임기 동안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로서의 가치를 지니면서도 여성이 정치권에서 겪는 고충을 잘 담아내기도 한다. 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로 볼 수 있는 것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겪는 고난들을 기반으로 그 속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고충이라는 부가적인 이야기를 그 층위에 잘 쌓았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원제와 시놉시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시피, 이 영화는 차푸토바의 대통령으로서 업적을 치하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여성이 할 수 있는 것들, 겪을 수 있는 것들을 보여주는 것이 중점인 영화인 셈이다.
영화는 차푸토바의 인간적인 면들을 담아내는 데에 힘을 다한다. 나는 영화가 시작할 무렵에 스크린에 비쳤던 차푸토바의 미소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해진 상황, 당선 소감을 밝히러 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인 모습이었다. 긴장한 모습과 은근한 부담감이 엿보이는 미소였지만, 그 자체로 그녀도 한 사람이었음을 단 1초 남짓한 시간에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유독 차푸토바의 임기는 순탄치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임기 동안 사회적 고난들이 거세게 그녀를 향해 덮쳐왔다. 팬데믹이 찾아왔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며 LGBT 커뮤니티 일원이 살해를 당하는 테러가 일어났다. 고난이 연속으로 찾아오는 그 과정에서 영화는 차푸토바가 쉴 틈 없이 보좌관들과 끊임없이 일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는다. 보는 사람들마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상황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러나 차푸토바는 대통령으로서 쉽게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녀를 여성으로서 무너지지 않은 것을 위대하게 평가하고자 하지 않는다. 한 국가의 수장으로서 그녀의 강인함을 자연스럽게 영화로 녹여낸다. 여성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닌 점은 메시지의 설득력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점이라고 본다. 최근 세계적으로 PC주의, 정치적 올바름에 싫증을 내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점에서 그들에 일말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푸토바는 대통령으로서 그 강인함을 보여줬고, 슬로바키아의 희망으로서 일어섰다. 그러나 흔들기는 금세 그 효과를 보여준다. 내각은 투표를 통해 마피아 연루에 핵심이었던 피초 총리의 것으로 되어갔고, 대통령 또한 피초 총리가 대표로 있는 사민당 출신의 펠레그리니가 당선되면서 차푸토바의 후임이 됐다. 정치적 스캔들이 있었던 정당이었지만, 팬데믹을 계기로 정치적 격변이 다시 한 번 사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차푸토바는 그런 사회의 변화 속에서 재선을 바라는 지지자들에게 그녀의 가치를 재차 강조한다. 품위, 그것은 차푸토바를 만들었고 슬로바키아의 현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차푸토바는 업무 스트레스가 과중하다는 이유로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퇴임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는 희망의 메시지를 잃지 않는다. 차푸토바는 품위와 품격을, 상식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딛고 대통령이 됐다. 그녀도 퇴임 연설에서 그 사실을 강조한다. 세상은 결국 올바르게 돌아갈 것이다. 여성으로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닌, 국가를 위한 리더로서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차푸토바가 올라선 것처럼. 그리고 그녀를 대통령으로 임명한 국민의 높은 의식이 있기에. 상식은 지켜질 것이고, 품위는 그 힘을 잃지 않을 것이다. 차푸토바는 퇴임하면서 사민당의 그들을 지켜주기를, 존중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그들도 민주주의라는 질서 안에서 기회를 얻었으니, 그들에게 품격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품위는 느리더라도 강한 힘을 가질 것이다.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차푸토바도 우리도 영화의 끝에 서서 다짐해야 한다. 세상은 결국 진보할 것이라는 것을.
상영 일정
2025. 05. 01(목) CGV전주고사 2관 13:30
2025. 05. 05(월) CGV전주고사 2관 13:30
2025. 05. 09(금) CGV전주고사 2관 17:00
전주국제영화제는 4월 30일~5월 9일 동안 개최됩니다. 자세한 일정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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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FF 데일리] 시시각각 달라지는 삶에도 나아가야 하는 우리의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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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및 출연진
감독 호나카 료스케
배우 우츠미 세코, 사이가 마사카즈, 치쿠니 메구미
시놉시스
렌탈 파파 사업에 종사하는 나카무라는 다양한 의뢰인들의 임대 아버지로 활동하며 나름의 위안을 얻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대생 리카를 만나게 되고 드로잉 모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림의 주제는 아버지의 얼굴이다.
리뷰
어떤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면 뒤로 밀려나는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을 발견해야 할까.
당연한 것들이 녹아있는 만큼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그 당연한 것들을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았을 때, 무언가를 규정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렌탈파파>는 사회가 규정하는 시선에서 좀 더 나아가 우리가 마주해야 할 어떤 세계에 대해서 세밀하게 묘사하는 영화이다.
미래에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영화에는 감독님의 ‘의도적인 설정’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
특히 원제에는 ’틈‘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만큼, 영화의 틈새를 의도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주인공들의 감정변화가 더욱 극적으로 드러난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갈구하는 여자주인공, 딸의 빈자리를 갈구하는 남자 주인공이 맞닿아있다.
또한, 장면의 구간마다 달라지는 표정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이는데, 허탈감과 분노 이상의 서글픔까지 느낄 수 있었다.
결국에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것을 쫓게 되는 그 마음과 감정이 왠지 모르게 공허하게 느껴진다.
가해자의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와 아빠를 빌리는 것이 극 중 소재인 렌탈파파는 이야기할 거리가 굉장히 많다.
그만큼 영화에 많이 담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더욱 흥미롭다.
우선, 가해자의 자녀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영화에서 어쩌면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가해자의 자녀들에게 당연시되는 폭력이 불편해졌다.
가족이니 감수해야 한다 라는 생각은 가해하지 않은 이에게 가해하는 일은 과연 옳은가에 대한 의문이 들게 만든다.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고 결국에는 또 다른 좋지 않은 결말을 낳게 되지 않을까 라는 안타까움이 생겼다.
두 번째로는 아빠를 빌리는 설정이었다. 무언가를 빌린다는 렌탈은 현대 사회에서 필수적인 요소로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처음의 거부감에 비해 만족감은 그 이상을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는 이상적이지만 비관적인 설정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모순을 가지고 있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작용하지만 현실과 멀어진다는 점에서 더욱 공허함이 짙게 느껴진다.
가상의 것을 좇게 되는 이 사람들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이루지 못하는 것을 이루는 ‘렌탈’이라는 소재를 통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우선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통해 소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채우려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이 서비스는 감정 소모를 하지 않으면서 보다 더 간편하게 욕망을 충족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모든 감정은 자신이 감수해야했기 때문이다.
편안함과 동시에 커지는 공허함에 대해 집중해본 적이 있다면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서비스가 아닐까.
영화제 기간
2024.05.01 - 2024.05.10
렌탈파파 상영기간
2024.05.03 17:00
2024.05.04 13:30
2024.05.0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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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래로 지은 에덴동산
이 글은
넷플릭스 [수리남]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글을 퍼가거나 인용 시 반드시 출처를 표시해 주세요.
한국 영화계에는 금기(taboo, banned)가 많았다.
그러나 그 고정관념이 뭐라 하던 상관없이 금기의 선을 넘는 작품들은 조금씩 영화계의 한계를 저만치 뒤로 밀어놓곤 했다.
그 셀 수 없는 수많은 시도들은 쌓이고 쌓여서. 이제는 한국 영화에서도 이런 게 되네.라는 수준을 너머 세상의 중심에서도 조금씩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목소리에 조금 더 확신을 싣기 위해. 윤종빈 사단은 실제 사건을 토대로 한 마약 사범에 대한 이야기로 넷플릭스를 다시 한번 한국 작품으로 장악하려 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는 하반기 작품들 중 최고의 기대작이라 불린 이 작품에는. 이미 윤종빈 감독과 수많은 작품을 함께 한 배우들은 물론 "진짜" 장첸까지 합류해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6부작에 걸쳐 쏟아지는 배우들의 열연이 낯선 수리남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모습은, 아쉬운 추석 연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제격이 될 수 있을까?
인구, 불행의 냄새를 좇아가다.;홍어와 업어치기
사진출처:여성 조선
친구 응수(현봉식)가 홍어로 돈을 벌어보자는 제안을 했을 때. 인구(하정우)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홍어를 먹던 아버지가 떠올랐다.
등을 보이며 덤덤하게 냄새나는 살덩이를 씹어 삼키던 아버지를 향한 서운함 만큼이나, 홍어는 인구에게 빌어먹을 생선에 가까웠건만. 지금의 인구는. 자신이 들이키고 있는 술만큼이나 아버지가 그때 비웠던 잔도. 그리고 아버지 당신의 인생도 쓰디썼을 것이라 이해하는 나이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죽어야만 먹을 수 있는 홍어는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귀한 생선이란 뜻이었고. 알게 모르게 짊어지고 있던 삶의 무게와 홍어에 대한 악감정을 뒤집으면. 어쩌면 행운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인구를 저 멀고 먼 수리남에서 풍겨오는 홍어 빛깔 돈 냄새에 후각이 마비되게 만들었다.
유도에서도 그렇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상대방이 인구를 향해 달려오는 힘을 역이용해 그대로 업어치면. 그 기세만큼이나 빠르고 힘차게 패대기 쳐진 채로 하늘이나 멍하게 보고 있는 상대방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허망한 경쟁자의 눈을 내려다보는 희열은 자신의 것으로 남긴 채.
별다른 도구도 필요 없이. 체급이 비슷하다면 맨몸으로 구르는 건 자신 있었으니. 인구는 인생도 그렇게 업어쳐서 불행을 땅에 붙여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그래 내가 졌다.라고 외치는 순간을 기대하듯이.
그러나 홍어도. 홍어 뒤에 숨어 있는 돈도. 인구가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홍어와 돈의 냄새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가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 시켰지만. 이 상대는 옷깃을 쥐어볼만하면 뒤로 물러서고. 잡았다 싶으면 교묘히 인구의 손아귀를 빠져나갔다. 인구는 애가 타기 시작했고. 결국 업어치기를 위해서는 상대를 잠자코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결국 한판승은 홍어의 것이 되고야 말았다.
온몸을 감싸는 고통에 반해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하기만 한 하늘을 보며. 끝도 없이 몰려오는 서글픔을 느꼈을 인구는. 그 절망을 지렛대 삼아 다시 몸을 일으켰을 것이다.
수리남에서 돌아온 인구의 모습은 예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인생에는 한판은커녕 절반도 없으니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썩 다 못해 들큼한 냄새를 두른 불행에게 패대기를 당했던 뒤통수가 아직도 아프기 때문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요환, 모래로 지은 에덴동산의 주인;무법 지대에서 법이 되고자 하다+야구공
사진출처:경기신문
사탄은 어째서 내게만 이런 공을 날리는가.
요환(황정민)의 원망은 한 달에 두 번씩은 보자고 말하는 안기부 직원의 목을 조르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을 향해 쉴 새 없이 몸 쪽 꽉 찬 변화구를 던져대던 사탄이 요환의 손에서 비로소 숨을 멈추었을 때. 이제 요환은 사탄이 아닌 신의 이름으로. 자신이 투수석에 갈 때가 되었다고 믿었다. 생기를 잃은 사탄처럼 이제 그 어떤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 자신의 널브러진 방망이를 그저 흘낏 쳐다보며. 요환은 텅 빈 투수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부터 요환은. 지지 않는 게임을 했다.
마운드 위에 홀로 서 있는 삶은 외롭지 않았다. 요환이 던지는 모든 공에 환호성을 내지르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타자석에 들어서는 것이 누구이던. 삼진 아웃 당한 채 흙빛으로 자리를 떠나는 모습은 요환을 점점 더 자신감 만큼이나 난폭한 투수로 만들었다.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겁에 질린 채 괜히 방망이를 좀 더 그러잡는(그러잡다:무언가를 가까이 잡다) 타자들의 모습에서. 요환은 희열을 느꼈다. 자신을 옥좨오던 사탄의 눈빛과 자신의 눈빛이 이미 같아졌음을. 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공(Ball, contribution)은 온전히 요환의 것이었고. 누구에게도 넘겨줄 마음이 없었다. 오롯이.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것이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번 게임은 참 이상했다.
그동안 보아온 초식동물의 눈을 가지지 않은 인구는. 몇 번이고 데드볼을 맞고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더니, 기어코 요환의 공을 멋들어지게 쳐 버렸다.
자신이 던진 공이 스스로가 보는 앞에서 저만큼 작아져서 날아갈 수가 있었던가. 요환은 공을 좇아 고개를 난생처음 들어 하늘을 바라보아야 했다. 공은 그렇게 열심히. 자신이 던진 속도만큼이나 사나운 포물선을 그리며 기어코 담장을 넘어버렸다.
늘 요환에게 돌아왔던 공은.
이번만큼은 돌아오지 못했다. 덤덤함 밑에 숨겨진 알 수 없는 비웃음이 인구의 입가에 번지는 것을 보며. 요환은 글러브를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무법지대에서 스스로가 법이 되고자 했지만. 결국 자신이 이룬 에덴동산마저도 모래더미에 불과했음을. 요환은 그제 서라도 깨달았을까. 아니면 인구에게서 또 다른 사탄의 향기를 느끼며 치를 떨었을까.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아래 문단에는 [수리남]의 가장 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경고했어요.
믿음에 관하여.;황정민 아이러니
사진출처:경기 뉴스
총 6부작인 드라마는 정확하게 절반을 넘어가면서 이야기의 결이 바뀐다. 3부까지 장점이었던 점들이 나머지 후반부에서는 모조리 단점으로 작용한다.
그 단점의 중심에는 그 어떤 사람도 "믿지 말라"라는 시리즈의 (메인) 슬로건에 있다. 거의 모든 인물들이 스스로 가진 믿음에 잠식당하는 것을 후반부에서 보아야만 한다.
전반 3부 까지는 자신의 사업 확장에 갑자기 등장한 인물인 인구와 상만(최창호, 넷플릭스 공무원 박해수)을 의심하는 요환의 의심이 살벌할 정도로 펼쳐진다.
그러나 후반부에서는 배우 황정민 아이러니가 발동된다.
신세계에서도 그랬듯. 이 배우의 가장 최측근에는 배신자가 숨어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변기수(조우진, 이 작품에서 연기 미침)는 조금씩 그 의심의 상위 리스트에서 빠져 있다. 그렇다고 요환의 무조건적인 신뢰를 받기 보다 조금은 "도구"처럼 쓰이는 사람에 가깝기에. 이런 부조화는 변기수가 후반에 "어떤" 역할을 할 것임을 오히려 드러내 버린다. 그러니 죽을 고비 한 번 "제대로" 넘기지 않은 그가 갑자기 멀쩡하게 표준어를 쓰며 국정원 직원임을 알게 되는 장면의 임팩트는 매우 약할 수밖에.
또한 최창호(상만이 형, 상만이 형 연기 정말 대단함)가 초반부에 인구를 미끼로 사용했기에 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후반부에서 바보 같을 정도로 연신 사과와 보상을 약속하며 인구의 대답을 기다리는 인류애를 보이는 것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믿음이 결국 뒤통수를 치는 장면은 지구 방위대 미국의 등장으로 급물살을 탄다. 실화에 바탕을 둔 드라마라서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힘든 역할을 도맡아서 해 왔을 국정원 직원들의 무게감이 미국이 띄운 헬기보다도. 혹은 최창호의 가짜 신분인 상만이형의 연기보다도 약한 것은 아쉽다.
마치면서
사진출처:노컷 뉴스
정확하게 시리즈의 절반까지만 괜찮았다.
첸진(장첸)의 역할이 적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구와 요환 사이를 제대로 줄타면서 긴장감을 조성하지 못하고. 누군가의 생각이나 명령에 의해 너무 크게 좌지우지되는 것처럼 보이는 점도 매우 아쉬웠다.
또한 유연석을 가장 똑똑한(혹은 무언가를 많이 알고 있는) 캐릭터로 설정했으나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고 희생시킨 것도 안타깝다. 조금 더 잘 썼다면 심리(두뇌) 싸움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을 텐데.
반전도 너무 알기 쉬웠다.
언제나 적을 숨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적의 심장부에 심어 놓는 것이므로.
한국에서 마약 소재를 다룬 드라마 중에서 "스케일"의 확장은 확실히 이뤄진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엉성한 이야기의 전개가 하필이면 후반부에 왔다는 것은 매우 큰 보완점으로 남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구는 요환과의 싸움에선 이겼지만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이 배우들을 가지고 여기까지가 최선일까. 하는 생각이 함께 겹쳐 많이 씁쓸해지는 결말이었다.
[이 글의 TMI]
1.추석 연휴 동안 고향 왔다 갔다 할 때 봤음
2.졸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흥미진진하지는 않았음.
3.황정민 배우는 성경 책 들고 다니는데 이렇게 무서울 일인가.
4.상만이 형+변기수=이 시리즈의 모든 것.
5.돼지고기는 변기수가 구워주는대로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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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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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주 최신 개봉영화(싱크홀, 프리가이, 더 톨:함정, 암살자들, 생각의 여름)
[WEEKEND CHOICE MOVIE] 2021년 8월 2주차 #개봉영화
#최신영화#영화추천 #영화예고편
영화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naver.com/rainbbox
@Weekend Choice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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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듄」 이 영상을 보셔야 예고편 이해가 100% 됩니다ㅣEBSㅣDUNEㅣ티모시 샬라메ㅣ듄 예고편ㅣ워너브라더스ㅣ드니 빌뇌브
? '듄(DUNE)' 영화 예고편 분석 및 원작소설 / 스토리 요약정리
- 영화 정보
장르: 스페이스 오페라
감독: 드니 빌뇌브
각본: 에릭 로스, 존 스페이츠, 드니 빌뇌브
원작: 프랭크 허버트의 듄(1965)
제작: 드니 빌뇌브, 케일 보이터. 메리 페어런트,조 카라치올로 주니어
주연: 티모시 샬라메, 제이슨 모모아 외
촬영: 그레이그 프레이저
음악: 한스 짐머
촬영 기간: 2019년 3월 18일 ~ 2019년 7월 26일
제작사: 레전더리 엔터테인먼트,워너브라더스
수입사: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개봉일: 2020년 12월 18일#듄 #듄영화예고편 #듄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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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실 : 인연의 시작> 런칭 예고편
열두 살에 만난 첫사랑 '렌'과 '아오이'
한눈에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고 보듬어주며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함께 있어 즐거웠던 시간도 잠시 '아오이' 가족이 쫓기듯 떠나면서 헤어지고 만다.
"운명의 실"이 있다고 생각해"
'아오이'가 준 소원팔찌를 8년 동안 간직한 '렌'
어느 날 소원팔찌가 끊어지고 두 사람은 운명처럼 재회한다.
그 후 우연한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지만 그때마다 서로의 곁에 이미 다른 사람이 있어 엇갈리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