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8-17 06:57:58
[JIMFF 데일리]모토에 충실한 JIMFF의 엔딩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폐막식 현장 스케치
8월 11일부터 16일까지 열렸던 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16일 19시 의림지 야외 무대에서 강준규, 오하늬 배우의 사회로 진행된 폐막식을 끝으로 길었던 여정을 마무리했습니다.
앞선 5일 간의 여정을 되짚어보는 영상으로 시작된 폐막식은 김창규 제천 시장 겸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조직위원장의 인삿말 이후 2022 음악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 지원작 발표, 한국 경쟁 부문 수상작 및 국제 경쟁 부문 수상자가 발표, 폐막선언과 축하 공연, 그리고 대망의 폐막작 상영으로 이어졌죠.

'E.T.' 필름 콘서트가 취소되는 등 이번 영화제는 개막식부터 유독 우천으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서인 폐막식 만큼은 아름다운 노을이 한 눈에 보이는 쾌적한 날씨에서 무난하게 진행 되었습니다. 마치 영화제의 모토를 온몸으로 느끼라는 자연의 의도처럼 보이기도 했는데요.
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슬로건인 ‘a tempo’는 ‘본래의 빠르기로’라는 뜻으로, 일상으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영화제가 짖궂은 날씨라는 장애물을 만났지만 무사히 진행되었듯이, 작년과 달리 온전히 오프라인으로 열린 영화제가 안정적으로 마무리된 것처럼 우리의 일상도 원래 모습을 되찾을 거라고 말하는 듯 하죠.

폐막식에서 눈을 사로 잡은 것은 역시나 수상작 발표였습니다. 신나게 무대를 즐기고,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들을 감상하는 사이 잠시 잊을 수 있었지만 치열한 경쟁의 끝은 언제나 관심을 되찾기 마련이죠. 우선 2022 음악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 지원작은 두 작품, 김태희 감독의 '룩킹 포'와 엄하늘 감독의 '너와 나의 5분'에게 돌아갔습니다.
사실 수상작을 발표하는 심사위원의 평가는 미묘했는데요. 개성적인 작품이 많지 않았다는 아쉬움과 불안정한 소절들이 제작 지원을 거쳐 멋진 화음과 리듬으로 바뀌길 바란다는 희망과 격려가 공존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감독의 상이한 수상 소감에 담긴 절실함은 그 미묘함마저도 잊게 만들었습니다. 부친상에도 불구하고 지키기 위해 돈이 없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김태희 감독은 내년 제천에서 멋진 작품으로 만나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엄하늘 감독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른 채 진심이 담긴 "감사합니다" 단 한 마디로 모든 소감을 대신했죠. 두 감독의 작품은 23년 19회 영화제에서 만나게 될 예정입니다.

열세 편의 단편과 네 편의 장편 영화가 출품된 한국 경쟁 부문은 작품상도 단편과 장편 영화로 나뉘어서 발표되었습니다. 단편 부문에서는 어두운 주제를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풀어냄과 동시에 역사적 의미를 뮤지컬에 담아낸 조하영 감독 '언니를 위하여'가 선정되었습니다. 가능성이 엿보이며 장편으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들뜬 목소리로 쉽사리 소감을 잊지 못한 조하영 감독은 20년도에 제작 지원을 받은 후 지금까지 힘써준 배우와 스태프, 제천 프로그래머와 모든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장편부문에서는 권철 감독의 '버텨내도 존재하기'가 작품상을 가져갔습니다. 극장의 존재를 버팀목으로 삼아 영화의 존재를 보여주듯이 음악의 의미를 보여주었고, 음악과 영화와 삶, 그리고 오랫동안 존재하는 것들과의 관계 안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는 평가가 있었는데요. 권철 감독은 언질을 주는 줄 알았는데 주지 않아서 놀랐다며, 초청만으로도 좋았는데 수상하게 되어 더 기쁘고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폐막작으로 선정되는 해외 경쟁 부문 작품상은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심사위원장 마이크 피기스 감독은 음악이라는 공통점 하에 다양성, 젠더, 민족성, 영화 기술을 담은 다큐멘터리와 장편 영화들을 즐길 수 있었고, 그래서 수상작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는데요. 특히 두 작품이 박빙이었다며 2등을 차지한 작품도 얼마나 놀라운 영화였는지를 꼭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비록 두 영화가 아주 달랐지만 이들이 보여준 새 감수성과 시네마와 내러티브에 접근하는 협업 방식은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였다는 것이었죠.
이에 특별상을 받은 '포저' 팀이 무대에 올라 소감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오리 세게프, 노아 딕슨 감독은 친구들과 저예산으로 제작한 작품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면서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소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작품상은 리타 바그다디 감독의 '사이렌'에게 돌아갔습니다.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한 작품 안에 모두 녹여낸 놀라운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는데요. 미국에 있어서 폐막식에 참석하지 못한 바그다디 감독은 영상을 통해 수상소감을 전해왔습니다. 아랍 여성들이 항상 피해자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던 바그다디 감독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게 해준 메탈 밴드 '슬레이브 투 사이렌' 멤버들에게 감사를 표했습니다. 또 진실과 꿈을 위해서는 항상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는 뜻깊은 메시지도 남겼습니다.

치열했던 경쟁의 끝은 영화 음악과 함께 마무리 되었습니다. 조성우 집행위원장의 폐막사 이후 무대에 오른 박동준 밴드는 멋진 색소폰 공연을 선보였는데요. 영화 '대부'의 ost와 영화 '봄날은 간다'의 엔딩 타이틀 곡인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가필드' 속 'I got you(I feel good)'까지 총 세 곡을 연주하며 별빛이 반짝이는 달콤한 여름밤을 더 아름답게 꾸며주었습니다.
제천 메가박스와 제천 CGV, 하소생활문화센터 산책, 레스트리 리솜은 물론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 제천 비행장과 제천의 대표 명소인 의림지에서 진행되어 더 뜻깊었던 제 18회 제천국제영화제는 이렇게 내년을 기약합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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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쏘았다> 리뷰
씨네랩의 시사회 초대로 아내와 함께 용산 CGV에서 영화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를 감상했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브라질의 천재 피아니스트 테노리오 주니오르의 실종과 비극적 죽음을 중심으로 그려진 다큐 작품이다. 테노리오의 음악적 유산과 남미 우익 독재시대에 음악과 예술인, 그리고 역사가 교차하는 드라마틱한 서사를 영화는 섬세하게 전개해 보여준다.
20세기 중반,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국가들은 수많은 쿠데타와 계엄령, 그로 인한 인권의 억압과 폭력으로 점철되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 파라과이, 우루과이 등 중남미의 우익 군부독재정권과 협력하여 좌파 척결을 공동 목표로 삼으며 ‘콘도르 작전’을 벌였다. 군인들은 매일 밤 골목에서 시민들을 감시하고 체포하였다. 체포된 사람의 대부분을 군부대의 조사실에서 고문하고 살해하였다. 남미의 군사독재 체제하에서 자유로운 예술과 표현은 억압되었고, 많은 예술가들이 좌파 혹은 공산주의자로 낙인찍혀 실종되거나 살해당했다.
영화는 이 역사적 맥락 속에서 브라질의 천재 피아니스트 테노리오 주니오르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며, 한 천재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역사의 희생물이 되었는지 드러낸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우익 군부독재정권 치하의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인권과 개인의 자유가 어떤 식으로 침해되고 탄압받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한 예술가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실종과 죽음을 그리면서 무참하게 짓밟힌 예술혼을 조명하며, 민주주의 체제와 독재와 계엄 체제의 상반된 가치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선으로 테노리오의 삶과 예술 세계를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통해 감성적이고 시각적인 몰입감을 제공하여 깊은 여운을 남긴다. 기록과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전개는 실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로서의 무게감을 더한다.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실제 영상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하며 역사적 진실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에 더하여 AI가 결합되면 과거에는 재현하기 어려웠던 사건과 인물들을 더욱 정교하게 재현할 수 있을 터이다. 기술과 예술의 융합이 만들어낼 새로운 영화와 다큐멘터리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이 영화는 음악, 예술, 그리고 역사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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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자기 멋대로, <로렌스 애니웨이>
<로렌스 애니웨이> Laurence Anyways, 2012 제작
캐나다 외 / 로맨스, 멜로 / 15세 이상 관람가 / 168분
감독: 자비에 돌란
정말 자기 멋대로, <로렌스 애니웨이>
출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스틸컷(네이버)
로렌스는 생일을 맞이한 순간 연인, 프레드에게 앞으로 남자가 아닌 여자로 살겠다고 선언한다. 프레드는 운명이라고 굳게 믿었던 짝의 고백에 혼란과 배신감을 느끼지만 이를 기꺼이 품기로 한다. 선언과 결정, 연인이 함께 또 따로 만드는 궤적에 늘 주요 꼭짓점으로 등장하는 두 가치는 로맨스 장르 영화에서 뼈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로렌스 애니웨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랑이란 긴 선을 온몸에 감은 채 이리저리 방황하며 예상된 지점에서 격렬하게 부딪혀 서로에게 상흔을 남기면서도 미소를 빼놓지 않는 구조가 영화 전반에 짙게 깔려있다. 하지만 자비에 돌란은 자기만의 내밀하고 사적인 방식으로 사랑을 다르게 보이게 한다.
출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스틸컷(네이버)
첫인상은 동물원 앞 가게에서 파는 풍선들이었다. 사자와 원숭이 사이에 천사와 바지와 담배가 낀 거대한 풍선 한 묶음. 전혀 어울리지 않은데 어울리고, 직관적인데 낯설고, 이상한데 맥없이 좋은 그런 느낌. 나에게 로렌스의 이야기는 어떤 풍선이 먼저 팔리느냐에 따라 바뀔 수밖에 없는 길에 놓여있었다. (묘한 미적 쾌감까지 전달하는 아이러니함은 독특함으로 변주되어 시각적‧청각적으로 쉴 틈 없이 휘몰아친다. 단순히 스토리 측면에 한정된 게 아니라 작품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든 영화 언어가 감각적으로 잘 융합된 결과다.)
출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스틸컷(네이버)
그만큼 로렌스와 프레드의 사랑은 변화무쌍하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리는 로렌스와 자신의 오색빛깔 날개를 고통스럽게 뜯어내는 프레드의 어리석고 애처로운 몸짓이 계속될 때마다 그들의 사랑은 끊임없이 모양을 바꾸며 요동친다. 상대의 손길에 쉽게 속살을 내보이지만, 결코 가볍게 자신을 소비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었던 말들을 솎아내지 않고 다 토해내면서 악착같이 끝을 향해 간다. 마치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처럼 불안에 휩싸인 채 말이다. 어느 순간 로렌스는 사각형 틀에 갇힌 정형화된 인물에게서 벗어나 진짜 로렌스로 우리 앞에 선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그가 유일한 나로서 자기 삶의 무대를 현실로 옮기는 그때, 비로소 안개처럼 흩어져 사라져 버리는 흔한 사랑 이야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출처: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 스틸컷(네이버)
무엇보다 영화 속 모든 장면은 벽에 걸린 그림이다.
내 마음대로, 정말 자기 멋대로 작품을 선택해 시간제한 없이 음미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설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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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붕괴된 세상과 쏟아져내리는 절망'
릴리 슈슈의 모든 것
개봉일 : 2005.06.23 (한국 기준)
감독 : 이와이 슌지
출연 : 이치하라 하야토, 오시나리 슈고, 아오이 유우, 이토 아유미, 오오사와 타카오
‘붕괴된 세상과 쏟아져내리는 절망’
* 학교 폭력과 관련된 장면들이 많이 나오니 상처가 있거나 거부감이 심한 분들은 주의하세요.*
<러브레터>의 감독으로 유명한 ‘이와이 슌지’의 아름답지만 기괴하고 완벽히 아름답고 우울한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이와이 슌지 감독의 작품을 즐기는 관객들은 그의 영화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그의 작품 <러브레터>처럼 아른아른한 사랑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화이트 이와이와 밝은 빛이 내리쬐고 있지만 사실은 눅눅하고 절망적인 순간을 그려내는 블랙 이와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블랙 이와이 중 가장 완벽하게 우울한 작품으로 분류되며 이와이 슌지 감독의 역작이라 불리는 작품이다. 145분이라는 러닝타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어둡고 괴로운 순간으로 가득 채워놓은, 빠져나오기 힘든 우울의 늪 같은 이 영화 앞에서 나는 아주 무력하게 몸을 웅크렸다. 우울함에 대항력이 없는 사람이다 보니 거의 하룻밤을 꼬박 이 작품의 공기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했었다.
‘릴리 슈슈’라는 가상의 가수를 좋아하는 열네 살 소년 유이치가 주인공인 이 이야기는 견디기 힘들지만 견뎌야만 하는 인생의 한순간을 그리고 있다. 갑자기 탈선해버린 절친 호시노는 갑자기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변하고, 유이치는 호시노가 휘두르는 폭력에 휘둘린다. 아프고 슬프지만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상처는 점점 곪아가고, 유이치를 위로하는 건 릴리 슈슈의 노래와 그녀가 만들어둔 세계뿐이다. 어른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기에 유이치는 손에 잡히지도 않는 세계에 기대어 하루를 이겨낸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상에 관심 없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렇게나 심한 폭력을 휘두르는데 어른들은 뭐 하는 거야?’라는 질문과 한탄이 절로 나올 만큼 그들은 무관심하다.
나 또한 유이치와 비슷한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유이치가 당했던 폭력과는 조금 다르고, 그 정도로 심하지는 않았지만..) 심리적인 폭력 앞에서 홀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점점 위축되었던 중학생 시절, 유이치의 ‘릴리 슈슈’처럼 나를 지탱해 주던 가수와 그들의 세계가 있었다. 어쩌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의 음악과 단단한 세계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고, 나는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고 있다. 나는 아주 아팠던 그 시기를 ‘지나간 과거’라는 카테고리에 집어넣고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어른이 되었는데, 유이치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도 같은데.. 확신할 수 없는 결말이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유이치가 릴리 슈슈라는 가수와 같은 마음을 가진 팬들에게 의지하며 희망과 절망을 모두 겪었던 그 시절의 기록이다. 도를 넘은 학교폭력과 외로움, 무력함, 우울함, 그나마 조금 쌓아올렸던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절망감. 같은 것들이 버무려진 시간은 보는 이마저도 무력하게 만든다. 다른 아이들처럼 설레는 첫사랑을 하고,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 기록을 남기고, 절친한 친구와 같은 밤하늘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보통의 소년이었던 유이치가 견뎌야 했던 슬픔은 보통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 세상도 잘 모르는 어린애가 슬프면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힘들겠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나이가 어리다 해도 사는 게 버거운 순간이 있다. 어른이 감당해야 할 감정과 책임감, 아이가 감당해야 할 감정과 책임감은 분명 다르고, 어른들에 비하면 아이의 세상은 다소 좁지만,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소년의 어린 날은 누가 뭐라 해도 이미 충분히 버겁다.
작은 감정의 파고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여린 소년의 마음을 자비 없이 푹푹 쑤셔대는 세상에서 소년은 다른 세상에 눈을 돌리며 위로를 받는다. 길고 어두운 터널을 내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 아닌 그저 살아남기 위해 그 자리에서 견뎌내는 시간들. 유이치가 보여준 그의 완전하게 우울하고 축축한 시간들을 끌어안고 한참을 함께 울었다. 드뷔시의 아름다운 음악이 이렇게 나를 우울하게 만들 날이 올 줄은 감히 상상치도 못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시놉시스
'릴리 슈슈'의 노래를 너무나 사랑하는 열네 살 소년 유이치. 그러나 그의 일상은 힘들다. 둘도 없는 단짝 친구 호시노가 어느날 반 아이들의 리더가 되어 자신을 이지메 시키고 첫사랑 쿠노 역시 이지메를 당하지만 그녀를 도와주기에는 자신의 슬픔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 소년의 유일한 안식처는 오로지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릴리 슈슈’의 노래 뿐... 그러나 현실은 노래로 감출 만큼 만만하지 않다...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내 고통은 에테르로 치료된다.”
릴리 슈슈가 구축한 세계 에테르. 그곳은 평온함과 영원함이 보장된 장소다. 릴리 슈슈는 에테르를 음악으로 만든 인물로 많은 팬을 보유한 가수다. 유이치는 첫사랑 쿠노를 통해 릴리슈슈를 알게 되고, 항상 옆에 있던 쿠노와 친구들의 자리가 비었을 때쯤, 릴리슈슈의 세계에 빠져든 유이치는 릴리슈슈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된다.
막 중학생이 된 1999년. 유이치는 신입생 대표로 답사를 읽은, 1등 출신이라고 소문난 모범생 호시노와 친구가 된다.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고,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생겼다. 외계인인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완벽한 친구 호시노, 집안마저 잘살고 엄마도 말도 안 되게 예쁜 호시노. 중학교에 오며 항상 옆에 있던 그녀(쿠노)의 자리는 비게 되었지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친구들이 있어 마냥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1999년 9월을 기점으로 유이치와 친구들의 평온한 에테르 같은 세상은 멸망한다. 호시노의 세상이 무너진 날을 기점으로 말이다.
2000년은 유이치가 14살이 된 해이자 그의 잿빛 시대가 시작된 해다. 엄마의 재혼으로 새아빠를 따라 성을 바꿔야 했고, 통칭 ‘완벽하고 착한 부잣집 아들’이었던 절친 호시노가 갑작스러운 방황을 시작하며 유이치에게도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그 해. 유이치는 언제나와 같이 행동했지만 그를 둘러싼 세상은 그렇게 어두워져있었다.
호시노의 부모님이 경제적 능력을 잃고, 가정이 흔들리자 호시노는 탈선과 폭력을 선택한다. 호시노 또한 초등학생 시절 왕따를 당한 상처가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과 아픔이 기폭제가 된 것인지 그는 동급생을 괴롭히는 일진 학생을 응징하며 그 순간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완벽한 가해자로 변하는 순간. 벌거벗은 일진이 호시노의 발밑에서 기고 있는 장면이 다소 기괴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항상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며 모두가 나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틀에 맞춰 생활하려 했던 아이 호시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를 모르는, 남이 맞춘 세상을 폭파시키기에 이른다. 호시노가 유이치와 피해자들에게 행한 폭력과 잔혹한 행동들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순 없으나, 견디는 것 대신 자신의 세상과 다른 이를 격렬하게 깨부수는 걸 선택한 그의 내면에 쌓인 부담감과 분노는 다소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행동을 포장하거나 미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영화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가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미화하는 것 같다는 불호평을 내놓는 관객들도 일부 보였는데 그건 아마 영화 전반에 깔리는 아름다운 드뷔시의 음악 때문이 아닐까 싶다. 쿠노가 좋아하던 드뷔시의 아름다운 음악들과 화면 안에 가득 차는 따스한 햇빛. 아름답고 평화로운 장면에 주로 쓰일만한 장치들을 잔인한 폭력이 행해지는 순간에 집어넣은 건 이 두 가지의 대립을 통해 현실의 잔혹함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햇빛이 비치는 순간이라 해서 모두 아름다운 것이 아니고 부드러운 클래식 음악이 깔린다고 해서 모두 우아한 순간은 아니다. 유이치가 겪고 있는 현실이 그렇다. 멀리서 보면 괜찮은 것 같은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걷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그저 끌려다니는 것 뿐이다. 어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유이치와 쿠노, 츠다는 그렇게 아픔을 속절없이 삼켜야만 했다.
“죽으려 마음먹었다.”
유이치는 죽음을 생각한다. 혼란스러운 가정의 변화, 호시노의 직간접적인 괴롭힘. 그리고 첫사랑 쿠노가 폭력과 괴롭힘에 시달리는 걸 눈앞에서 보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 유이치는 내 세상을 모두 지탱하고 있는 릴리 슈슈의 라이브 현장에서 죽기로 결심한다. 에테르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릴리슈슈가 있는 공간에서 죽음을 선택한다면 왠지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일까.
하지만 호시노는 마지막까지 유이치를 괴롭게 한다. 호시노는 유이치의 표를 뺏어 쓰레기 던지듯 길바닥에 내버리고 혼자 공연장에 들어간다. 유이치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호시노를 쳐다보고, 그가 들고 있는 파란 사과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유일하게 의지했던 릴리슈슈와 릴리슈슈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유이치의 마음을 위로해줬던 그의 팬. 그게 바로 호시노였던 것이다. 유이치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공연장 주변을 맴돈다. 그리고 사람이 몰린 틈을 타 호시노를 칼로 찌른다. 우리만의 표식이었던 파란 사과에 꽂힌 피 묻은 칼. 유이치가 처음으로 포효하는 모습을 보이며 호시노를 찌른 그날, 유이치의 에테르는 무너졌고 더 이상 고결하지 않은 세상으로 바뀐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간 쌓였던 분노와 울음을 토해내는 유이치의 모습이 다소 낯설고 무섭기도, 안쓰럽기도 하다. 무너진 세상을 돌파하기 위해 유이치가 할 수 있었던 일이 이것뿐이었던 현실이 아릴만큼 슬프다.
유이치는 잿빛으로 물든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새로운 해가 왔고 새로운 머리색을 하고 다른 학년이 되어 다시 등교를 한다. 그리고 첫사랑 쿠노를 만난다. 심한 왕따와 성폭력까지 겪어야 했던 쿠노는 나의 걱정과 다르게 아주 강하게 살아남았다. 어떤 것에 의지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꿋꿋하게 그 아프고 우울한 시기를 견뎌냈다. 여전히 드뷔시를 좋아하는 쿠노는 지금도 릴리슈슈를 좋아할까?
유이치가 호시노를 찌른 날 이후로 릴리슈슈는 불길한 가수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영화에서 릴리슈슈는 결국 불행, 우울 또는 마지막을 뜻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이치를 통해 릴리슈슈의 음악을 접하게 된 츠다는 이내 현실을 이겨내지 못하고 ‘날고 싶다’며 자살을 선택했고, 직접 행동에 옮기진 않았지만 유이치도 릴리 슈슈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날, 자살을 결심했었다. 그리고 릴리슈슈의 기운이 가득한 공연장에서 유이치는 호시노를 죽인다. 누군가에게 현실을 견디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주던 릴리 슈슈의 음악은 한순간에 그들이 마지막을 결심하게 만드는, 또는 마지막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쿠노는 아마 이제 더 이상 릴리슈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환상으로 가득한 에테르에 기대기보단 묵묵히 현실을 견디며 살아남은 쿠노가 아직도 릴리슈슈를 좋아하는진 정확하지 않지만 그녀가 영화의 등장인물 중 가장 희망적이고 강한 인물임은 알 수 있다. 어쩌면 쿠노의 생존은 작은 희망일 수도 있겠다. 쿠노가 좋아하는 드뷔시의 곡이 깔린 마지막 장면, 이전과 다른 머리 스타일을 한 쿠노와 유이치가 마주 보고 서있다. 항상 서로의 옆에 서있던 두 사람이 잿빛 세상을 무너트리고 재회한다. 잿빛을 거둬낸 이 순간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 잿빛으로 물든 기억을 이겨낼 수 있을진 두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는 순간이 이제껏 보아온 순간에 비해 너무 평화롭고 따뜻해서, 나는 그들이 새로운 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 거라 믿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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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객> 사극이라는 늪에 빠지다
1. 인조반정으로 인해 광해군이 폐위되자 조선 최고의 검객이자 광해군의 호위무사였던 '태율(장혁)'은 자취를 감춘다. 한편 청과 명의 대립으로 조선의 혼란이 극에 달한 사이, 청나라 황족 ‘구루타이’(조 타슬림)는 전쟁포로의 몸값을 인상하고 공녀를 요구하는 등 조선을 압박한다. 이렇게 백성들의 고통이 날로 더해가던 중 구루타이의 수하들에 의해 태율의 딸 '태옥(김현수)'이 공녀로 잡혀가고 만다. 이에 세상을 등진 채 조용히 살고자 했던 태율은 딸을 구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검을 잡는다.
각 장르마다 관습이 확립된 가운데 장르 영화에 기대할 수 있는 차별화는 더 이상 완전한 새로움이 아니다. 오히려 부분적인 변화만으로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색다르다. 예를 들어 <아쿠아맨>의 경우 같은 히어로 영화인 <토르>와 정당성을 지닌 형과 왕이 되려는 야심을 지닌 동생 간의 권력 다툼과 숨겨진 가족의 비밀이 판타지 세계에서 펼쳐진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이제껏 볼 수 없었던 수중 세계라는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집중하면서 많은 영화팬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있었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진행이나 인물 간의 관계가 유사하더라도 무엇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결과물은 자신만의 매력을 가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장혁 주연의 <검객>은 변화는 시도했으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온전히 확립하는 데는 실패한 영화다.
2. <검객>은 익숙하다. 사랑하는 딸이 돌연히 납치당하자 수년간 현직을 떠나 있던 아버지가 사활을 걸고 딸을 구한다는 전체적인 이야기는 <테이큰> 혹은 <아저씨>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액션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혈혈단신인 주인공이 다수의 적을 상대하는 모습을 주된 볼거리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기존 액션 영화와의 비교를 피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검객>은 사극 장르를 차용해 변화를 꾀한다. 영화는 인조반정과 병자호란 이후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고, 전쟁 포로 반환 문제를 주인공의 서사와 연결한다. 태율은 인조반정 당시 마지막까지 광해군을 지키는 무사였으며, 반정이 성공리에 끝나자 세상을 등지고 산다. 그런 그는 딸이 청나라가 요구한 공녀가 되어 중국으로 끌려가게 되자 그제야 다시 세상으로 나오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단순한 납치극과는 다른 결의 감정을 일으킨다. 이렇듯 작중 사극이라는 장르는 단지 외관의 변화뿐만 아니라 충분히 봐 왔던 익숙한 이야기에 새로운 색을 더하는 장치로서 의도되었다.
3. 문제는 <검객>이 사극이라는 장르를 차용해서 다른 액션 영화들과의 차별화를 꾀한 것에 비해, 기존 사극 작품과의 유사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주인공의 무기를 검에서 활로 바꾸면 <검객>은 <최종병기 활>과 그리 다르지 않다. 두 영화 모두 청군이 주인공의 딸/여동생을 끌고 가고, 뛰어난 무사인 주인공은 단신으로 열심히 그들을 뒤쫓으며 마지막에는 비등한 기량의 악역을 제압한다는 스토리라인을 지니고 있다. 병자호란 직후이냐 아니면 시간이 조금 더 흘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환향녀(전쟁 포로) 송환이 주요 소재라는 점이나 청나라 사람이 만주어를 사용하는 디테일은 유사성을 더욱 강화한다.
더 나아가 <검객>은 환향녀라는 공통의 소재를 세련된 방식으로 다루지도 못했다. 영화는 크게 두 축으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전쟁포로를 노비로 팔고, 공녀를 요구하는 청나라의 횡포에 어떻게든 맞서려는 조선 조정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러한 정치, 외교적 배경 밑에서는 딸을 지키려는 태율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는 애초에 여동생을 구하려는 오빠의 모습에만 주목한 <최종병기 활>과의 차이점이다. 따라서 영화의 결말은 태율의 딸을 접점으로 같이 묶여 있는 두 플롯을 각각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딸이 청나라 군사들에게 끌려간 직후 영화는 오로지 태율의 액션에만 신경을 쓴다. 딸을 구한 후에도 부녀의 후일담을 잠시 보여줄 뿐, 거시적인 관점에서 청나라의 요구에 조선 조정이 어떻게 대처했는지는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미완의 판타지, 개인의 판타지에 머무르는 결말은 왜 굳이 청나라와 조선의 외교적 충돌을 주요하게 다루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4. 태율의 개인 서사 역시 매끄럽지 않다. 그가 인조반정 이후 산으로 숨어 들어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광해군이 죽을 위기에 처했던 장혁의 삶을 구하고 그의 후원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첫 번째 이유이며,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했던 군주인 광해군을 향한 충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 번째 이유다. 특히 영화는 전쟁 당시 끌려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자식이 공녀로 공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백성의 모습을 비교적 자주, 자세히 묘사하며 두 번째 이유에 설득력을 더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는 <검객>의 실수라고 볼 수 있다. <광해: 왕이 된 남자>와 같은 한국 사극이 지속적으로 견진한 광해군에 대한 해석을 반복함에 따라 사실관계가 왜곡된 이야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광해군은 주로 대동법을 시행하고 사대 대신 청나라와의 전쟁을 피하는 실리 외교를 통해 민생을 어루만진 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광해군이 대동법의 시행 지역을 경기도에 한정했을 뿐만 아니라 시행 지역 확대를 반대했다는 점과 임진왜란 직후 조선에서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등을 건설해 백성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한 사실은 외면당한다.
또한 영화는 기존의 역사적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청나라가 공녀를 요구했다는 무리수를 둔다. 병자호란 당시 청군이 수십 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고, 진군하면서 약탈과 강간을 자행한 것은 사실이다. 끌려갔던 여성들이 조선에 돌아온 후 그들의 처우가 좋지 않았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강대국에 조공의 하나로 여자를 바치는 것을 의미하는 공녀는 전쟁포로와 그 뜻이 엄연히 다르다. 또한 공녀 제도가 고려말 원나라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가 조선 세종 때를 임진왜란 이후에 자취를 감춘 만큼, 병자호란 및 청나라와의 관계는 크지 않다. 결국 <검객>은 주인공의 서사를 강조하기 위해서 엄연한 역사적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악수를 둔 셈이다.
5. 물론 사극이라는 배경은 <검객>의 액션이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다. 사극이 아니라면 두 검사의 대결을 360도로 담아내거나 다수의 포수를 상대로 한 명의 검객이 싸움을 벌이는 장면처럼 '검'이라는 무기를 활용한 액션이 장르적 쾌감을 충족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한편 화려한 동작보다는 절제된 움직임으로 간결하고 빠른 검의 움직임으로 구성된 액션은 과묵한 태율이라는 캐릭터의 특성과 그의 감정이 격해지는 모습을 잘 표현한다. 이에 사극에서 장혁이라는 배우가 지닌 특유의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영화는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각적 쾌감을 선사한다.
그러나 내러티브의 측면에서 봤을 때 사극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결정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 다른 작품과 유사한 서사의 취약점을 완전히 가리지 못했고, 광해군, 인조반정,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다룰 때 사실 관계를 왜곡하는 한국 사극의 기존 한계 역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역사적 사건에 기대어 전개되는 영화라는 점에서 이는 극의 개연성과 핍진성을 파괴하는 단점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검객>은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보여주지 못한 채 조선판 <테이큰>, <최종병기 활>의 리메이크, 그리고 <광해>의 스핀오프에 그친다.
P(Poor 형편없는)
조선판 <테이큰>, <최종병기 활>, <광해>의 스핀오프가 만날 때
* 본 콘텐츠는 브런치 DAY 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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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그댈 속일지라도
*스포일러 있음*
포스터부터 오리엔탈리즘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배경, 설정, BGM, 전개와 결말까지... 굉장히 '동양'스럽다. 뻔하디 뻔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환상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디즈니답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에서 가장 답답했던 것은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떤 애니메이션이든지 동양의 가족으로 넘어오면 무조건 희생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간다. 라야의 아버지인 벤자 족장은 딸을 살리는 대신 자신을 희생하고, 시수의 남매들은 시수를 대신해 희생하고, 나마리는 어머니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한다. 부모든 자식이든 형제든 어느 한 쪽은 희생하는 캐릭터가 존재한다.
같은 '가족'을 다루더라도 [엔칸토]나 [코코]에서는 그들의 단합과 화합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개개인의 역량과 감정 때문에 갈등이 생기지만, 그래도 우린 가족이라는 식이다. 가족단위를 개인의 집합으로 보느냐, 공동체의 일환으로 보느냐, 등등의 차이는 물론 있겠지만 '이제는 이런 틀을 깰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이게 별것 아닌 듯해도, 은근히 이야기를 만들 때 제약을 가하게 되고 그러면 이야기에 점점 차별성이 사라지게 된다.
[라야와 마지막 드래곤]의 배경이 현대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려 해도, 뿌리 깊게 박힌 인식들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어린 소녀가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고 성장해서 세상을 구한다는 도입부 역시 그다지 특색 있는 편은 아니다. 판타지 액션 소년만화에서 흔히 봐왔던 설정이다.
솔직히 나는 이런 계기가 좀 싫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순수한 의지나 목표 때문이 아닌, 책임감이나 의무감 때문에 움직이게 된다는 것 자체가 괴롭다. '네가 마지막 희망이야!'라는 식의 무거운 짐을 아이에게 짊어지게 하는 것 자체가 싫달까...
그럼에도 한 가지 좋았던 점을 뽑아보라고 한다면 라야의 아군이 뻔한 듯, 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여성 캐릭터가 주인공일 경우에는 함께하는 '파트너'를 지정할 뿐, '팀'을 만들지는 않는다. [겨울왕국], [주토피아], [모아나], [라푼젤]... '팀'을 구성해서 함께 모험을 떠난다는 것은 보통 소년만화의 주된 흐름이다. 마법 소녀 물에는 팀을 꾸리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보통 모험을 한다기보단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사건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
그러나 라야는 다섯 대륙의 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데 성공했고, 그들은 서로를 믿고 힘을 모아 화합하기에 이른다.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 힘을 합친다는 전개는 뻔하지만,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였다는 것만은 굉장히 신선한 듯하다. 내가 다른 영화에서 그런 걸 못 찾았을 수도 있고.
안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 보는 내내 재미는 있었다. 영상미도 있었고, 오히려 뻔한 스토리라서 부담없이 봤다고 해야할까? 기억에 남는 명작이라고 할 순 없어도, 볼만한 영화인 것만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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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마더 테레사가 아니라 한낱 인간일 뿐
서른을 앞둔 나이에 괜찮은 직장, 번듯한 남자친구 모든 걸 갖춘 임약군. 하지만 임약군은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친구들의 오지랖, 뜨뜻미지근한 남자친구와의 관계, 클라이언트들의 빗발치는 과도한 요구를 들어줘가면서도 정작 본인의 스트레스를 발산하지 못하고 그저 쌓고만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은 정말 상큼하게 그녀에게 나가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대판 싸우고, 집도 잃고, 한 허름한 방을 소개받고, 잠시 입주하게 되는데, 이 곳 허름하고, 낡았는데, 너무 잘 꾸며놓았다. 임약군은 이 곳에서 백조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 하느라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그녀 인생의 2막을 잘 준비할 수 있을까?
1. 모든 것을 견디고, 참아내는 사람들의 문제
세상에는 임약군이 겪었던 일들 중에서 하나라도 겪었던 사람들을 꽤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자친구의 바람, 상사 혹은 고객들의 갑질, 아픈 가족들이 알게 모르게 짐처럼 느껴지는 상황, 눈치없이 자기말만 해대는 친구들. 이런 경우들 때문에 우울증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주변 탓을 하고 살아도 되는데, 뭐든지 본인이 해결하려고만 한다.
나는 항상 내 멘탈이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항상 나는 어딘가 돌파구를 만들고 항상 심각한 수준으로 미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작년에 논문 주제가 잡히지 않아서 아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논문 주제가 제 때, 잡히질 않고 있는데, 학기 내내 과제는 제 때 해내야 하고, 중간에 시험도 준비해야 했으며, 인간 관게도 대학원 생활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미 졸업한 선배가 갑자기 MT라는 명목 아래 집합시켜서 술도 많이 먹었어야 했으며, 나이대가 더 높으신 어른들은 매번 볼 떄마다 졸업은 언제 하냐며 본인들에겐 안부지만 나에겐 부담인 말들을 무심하게 날리시면 더 소소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때문에 집밖을 잘 못나가니, 생활 패턴도 꼬이고, 하는 일도 꼬이고, 인간 관계도 정리가 안된듯한 느낌이 한 번에 몰아치니, 갑자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난 심각한 수준까지 미치진 않았던 것이, 내가 스트레스가 극에 치닫게 됨을 깨닫게 되면, 나는 오히려 정신이 굉장히 맑아진다. 그리고 하나하나 정리를 한다. 그 때, 내가 정리했던 것은 불필요하고, 부담만 주는 인간 관계였다. 그리고 산책을 많이 하고, 오히려 과도한 잡생각은 줄여가면서 내 페이스를 찾고, 아무 생각 하지 않다가 생각을 해야지 했을 때, 그 생각이 논문에 관한 것이도록 패턴을 바꾸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가족 여행도 따라갔더니 리프레쉬되면서 다시 나만의 페이스로 돌아왔다.
하지만 임약군은 견딜 때까지 견뎌보다가 결국 한 번에 멘탈붕괴가 온 것이다. 어느 것 하나 정리하지 못했다. 남자 친구가 더 이상 사랑스러운 존재가 아니지만 당장 없으면 외로워 질 것이 분명하니, 바람피우는 것 같아도 놓아주질 못하고, 항상 일에 쫓기는데, 가족들이 전화가 와서 헛소리하면 짜증만 나고, 그 짜증은 고스란히 남자친구에게 가고. 그 관계는 악마의 구렁텅이에 빠진 관계라고밖에 정의내릴 수 없다. 이 영화를 보면서 임약군에게 답답했던 점이 이 부분이었다. 쳐내야 할 관계는 쳐내고, 그 중에서 우선 순위가 높은 관계만을 살려놓아야 하는데, 임약군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여러 관계 속의 과부하로부터 몸이 낑겨있는 상태같아 보였다는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임약군처럼 과부하가 오고 있음을 직감하고, 멘탈이 더 나가기 전에 나는 전혀 힘이 되지 않고, 싸움만 하게 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아버지를 돌보던지, 일에 더 매진하던지 하는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즉, 하나를 버리고, 하나를 선택하는 결정을 했을 것 같다.
2. 나와 상극인 사람에게서 얻는 위로라니, 이런 아이러니
사람은 사람에게서 위로받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임약군에게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황천락의 일기를 통해서 일시적으로 연결된 적이 있었던 황천락의 삶을 보면서 치유받은 것으로 보인다. 임약군보다 연봉도 낮고, 남자친구도 없어 우울할 것 같지만 임약군보다 더 웃으며 살고 있다.
임약군과 황천락의 차이는 외적 요소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임약군은 자신이 노력한 것에 반응이 없거나 반응이 예상과는 달리 흘러갔기 때문에 멘붕이 왔던 것이다. 자신의 행한 노력에 대해 결과물로서 반응이 있어야만 한다는 강박 혹은 기대 아래 살아가는데, 삶이란 언제나 노력에 비례한 결과를 주진 않기 때문에 결과에 일희일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천락은 대사에도 나오듯이 뭔갈 기대하고 산 적이 없었다. 그러니 하루하루 삶이 무의미해도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만, 야망은 없었기 때문에 인생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이루지는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두 사람을 합쳐놓으면, 정말 완벽한 인격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둘은 정말 상극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임약군은 상극이었던 황천락이 좋아했던 것들로 가득찬 집에서 1차 위로를 얻고, 그녀의 얽매이지 않는 삶의 방식에 큰 감명을 받았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저 그 사람의 일기를 봤던 것 뿐인데도 임약군은 그동안 회피해왔던 자신의 문제들을 직시하고, 제대로 2막을 살아갈 준비를 한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게서 위로받는다고들 하나보다. 하지만 그 위로하는 사람이 꼭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나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내가 힘들 때, 먼저 뭐부터 쳐내야할 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나와 상극인 인간에게서도 분명히 나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로 쓰고 싶었는지는 모르겠다. 사실 내가 요새 하는 생각과 일치하는 영화를 만났을 때, 그럴 때, 강하게 리뷰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주관의 문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대한 총평을 하자면, 가끔 이렇게 좋은 중국 영화를 찾을 때, 참 기분이 좋다. 일본 영화보다도 작품성이 있는 중국 영화를 그렇게 찾기는 힘들다고 느껴온 것이, 우리 나라에 개봉하는 중국 영화가 대체로 로맨스인데, 오글거리는 로맨스가 많다는 인상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저번에 리뷰 올렸던 '소년 시절의 너'처럼 정말 좋은 영화 하나 소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은 좋다. 조금은 클리셰스러운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영화를 보면 잔잔한 여운이 남기 때문에 별점으로는 5점 만점에 3점 이상은 줄 수 있을 것 같다.
*위 영화는 왓챠를 통해 시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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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션 임파서블 / 시리즈의 화려한 피날레 / 파이널 레코닝 / 톰형의 씹어먹는 액션 / 톰형이 찢었다
영화직관하는남자 홍큐의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후기입니다.
*쿠키영상은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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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문폴> 티저 예고편
지구와 달이 충돌한다!! ☄ [2012] [투모로우]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역대급 재난 블록버스터 [문폴] 티저 예고편 대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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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퇴마록> 공식 예고편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항할 퇴마사들의 탄생⚡ 하늘이 불타던 날🔥 새로운 전설이 시작된다! 1000만부 베스트셀러 원작 오컬트 블록버스터 [퇴마록] 예언의 시작 예고편 공개! 2025년 2월 극장 대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