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tkatniss 2025-06-27 23:18:27
<프레시> : 누가 내 엉덩이 먹으래?
주제와 연출에 관한 단상
데이팅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데에 회의감을 느끼는 주인공 노아 (데이지 에드거-존스) 는 자유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단짝 친구 몰리가 신기하다. 이상한 남자들만 줄줄이 나오는 앱에 지쳐가던 때, 노아는 동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다 완벽한 남자, 스티브 (세바스찬 스탠) 를 만난다.
자연스레 다가오는 스티브에게 푹 빠지는 노아. '운명적인 사랑' 같은 건 믿지 않는다 이야기하면서도 스티브가 내 운명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어느날 서프라이즈 여행을 가자는 스티브의 말에 노아는 행선지도 알지 못한 채 여행길에 오르는데...
(스포일러)
알고보니 스티브는 성형외과 의사로의 실력을 이용해 여자를 집에 가두어 놓고 인육을 잘라 파는 극악무도한 인간이었다. 'Fresh' 한 고기를 위하여 최대한 오래 여성들을 살려두며 고기를 떼어가는 것.
노아는 옆 방 여성 '페니' 와 대화하며 겨우 정신을 붙잡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스티브와 잠을 잔 유일한 피해자 여성임을 안 노아는 스티브를 유혹하기로 결심한다.
[ Fresh meat]
<프레시> 는 영리한 영화다. 깔끔한 주제의식을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편집과 음악, 샷구성 또한 스타일리시하여 정보 전달과 극의 전개를 사족 없이 적당한 리듬으로 해낸다.
오프닝, 노아는 어플에서 만난 남자와 소개팅을 한다. 그들이 먹는 타이 음식에는 게가 들어간다. 재료인지, 장식인지 모를 게가 수조 안에 담겨 식당에 앉은 그들을 빤히 쳐다본다. 후에 노아가 스티브의 집에 갇혀 먹히기만을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게는 복선일지도 모른다.
소개팅남은 진상이다. 첫 만남부터 과거의 여성들이 더 여성스럽다, 원피스를 입어보지 그러냐 운운한다. 그러더니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노아에게 '거만한 년 (bitch)' 이라며 욕설을 쏟아붓고 사라진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소개팅남의 입과, 불편해하는 노아, 그리고 밤거리를 두려워하는 노아의 모습을 통하여 영화의 방향성을 알린다.
여성의 신체를 뜻하는 은어에는 유독 음식과 관련한 단어가 많다. 심지어 젊은 여성을 '싱싱하다' 비유하는 경우도 있다. <프레시> 는 그런 썩어빠진 관습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실제로 살아있는 젊은 여성에게 떼어낸 '프레시' 한 육체를 먹고자 하는 사람의 커뮤니티를 안타고니스트로 삼는다. 그렇다면 이런 기구한 '프레시함'을 갈구하는가? 영화 속 소비자는 주로 1퍼센트의 1퍼센트만큼 돈이 많은 극상류층의 백인 남성이다. 그들은 자신이 먹는 여성의 물건을 소유함으로서 여성을 온전한 자신의 일부로 만들고자 한다. 이들에게 여성이란 그저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파편, 혹은 섭취할 수 있는 '부위' 일 뿐이다. 영화 안에서 인물의 신체는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컷트로 분절되고, 거울에 비친 신체 일부로 스크린에 등장한다. 화면이 파편화한 신체는 여성을 전체가 아닌 신체 부분 부분으로 분리하여 바라보는 사회 문화의 시선과 같다. 페니, 노아, 몰리 세 주인공 여성이 가슴, 엉덩이, 다리라는- 미디어에서 주로 성애화하는- 신체 부위를 잃게 만듦으로서 영화는 여성의 신체를 고기마냥 '부위'로 취급하지 말라 천명한다.
페미니즘 담론과 함께 인종 다양성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자연스레 담아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왜 결국 로맨스는 두 백인 남녀의 것이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동아시아 출신 여성 감독의 초기작이니, 주인공만은 무난히 가야했던 걸까.
그럼에도 세바스찬 스탠과 데이지 에드거 존스의 연기와 미모는 빛이 난다. 특히 세바스찬 스탠의 미모 때문에 영화에 더욱 소름이 돋는다.
[케미, 미친다]
어느새 저 놈이 진심일까? 진심이면 좋겠..같은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여러번 고개를 내저었다. 단 한번도 여주가 그런 남주의 진심(?)에 좋은 감정을 품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멍멍이XX는, 나한테 진심이었든, 잘생겼든, 멍멍이XX다.
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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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부위, 특히 입의 익스트림 클로즈업 샷이 아주 많이 등장한다. 로맨스로 포장한 초반 30분에서도 일관적으로 클로즈업된, 무언가를 씹는 인물의 입을 강조함으로써 잊을 만 하면 불길함을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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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쉬한 편집과 화면 구성, 음악. 진부할 듯 진부하지 않은 대사로 간결하게 극의 정보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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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샷, 매치컷과 보이스 오버, 오프스크린 사운드로 뮤직비디오처럼 간결하게 전개되는 초반의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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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티드 앵글과 불길한 전자음악을 통하여 달콤한 순간에 더하는 끔찍한 내용의 암시/거울을 이용한 상을 자주 이용하여 불길함, 그리고 이중성을 드러내는 화면
[거울의 상을 이용한 로맨스 시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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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시퀀스 - 동적인 샷구성과 매치컷, 익스트림 클로즈업의 분절된 화면의 연속으로 위화감 없이 스타일리쉬한 전개를 이어나가지만, 멈추어 극을 진행시키는 장면들에서는 롱테이크에 가까운 적은 컷과 안정적인 구도, 비교적 넓은 화면 사이즈로 숨쉴 공간을 준다. 여러 몽타주 시퀀스와 대비를 주어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는 덤
[안정적 구도, 넓은 사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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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 로맨스 장면의 노아의 클로즈업 샷에서는 주로 망원과 표준 렌즈를 사용하여 로맨틱하고 intimate 한 느낌을 주었으나, 노아가 스티브의 집에 입성한 후로는 대부분의 노아의 얼굴 클로즈업에 광각 계열의 렌즈가 쓰인다. 상황의 기괴함과 인물이 겪는 스트레스를 나타내는 효율적인 방법. 후반부 드레스를 입고 스티브와 데이트하는 장면에서는 잠시 초반부의 망원렌즈가 쓰인다. 관객들이 가까워지고 있는 둘의 심리적 거리를 함께 느끼게 함과 동시에, 정말 노아가 흔들리는 건지, 아니면 이 모든 게 계략인지 헷갈리게 하기 위한 장치라 생각한다.
[ 망원으로...]
[광각 M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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