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LAB2022-08-18 10:24:05
[JIMFF 인터뷰] OST 마켓 본선 진출자 5인을 만나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본선 진출자 5인 인터뷰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본선 진출자 5인을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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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재능 있는 신인 영화음악가를 발굴하고 데뷔 기회를 제공하는 ‘짐프 OST 마켓’을 새롭게 선보였다. 뜨거운 관심 속 예선 심사 1차와 2차를 거쳐 본선에 진출한 5인의 음악감독(변동욱, 손한묵, 이명로, 정나현, 최종호)과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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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한묵 음악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본선 진출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손한묵:관객, 스태프 등을 거쳐 10년째 이곳에 방문하고 있습니다. 쇼케이스를 할 기회를 얻어 기쁩니다. 재미있게 잘 하고 가겠습니다.
OST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손한묵:저는 가사 없는 음악의 힘을 믿어요. 가사 없는 음악의 ‘전달력’에 매력을 느껴 OST 음악도 시작하게 되었어요.
국악과 서양악 모두 능통한 플레이어 작곡가로 유명하신데요. 손한묵:이번 영화제에서도 방준석 감독님 추모를 위해 국악 작업을 했습니다. 처음 방준석 감독님의 영화 '사도'를 보고 국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년과 올해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에서 사극을 많이 작업하며 국악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클래식 전공인데 섞는 것 자체를 즐겨 하다 보니 퓨전음악이라고 치부되지 않도록 작업하고 있습니다. 서양악이나 국악의 고유한 특성을 무너뜨리지 않고 융합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제작할 때, 명장면에서 흘러나왔으면 싶은 OST가 있을까요? 손한묵:저는 락스타가 꿈이었는데 퀸이 등장했을 때 영화 장면처럼 이미 전 세계인이 아는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오지 오스본의 음악을 택하고 싶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손한묵: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영화, 단편, 다큐멘터리가 많아요. 예술이나 음악 하는 사람들이 음악을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 산업을 이해하기에 좋은 곳은 제천만 한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손한묵:저의 꿈은 락스타인데 환호성이 넘치는 공연 관객 앞에서 락으로써 연주해보는 게 저의 꿈입니다. 영화음악도 락만큼 좋아하기에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하면서 다른 장르의 다른 매체의 일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언젠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 기간이 최대한 늦추어지는 것이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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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동욱 음악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본선 진출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변동욱:운이 좋았습니다. 쇼케이스 준비가 조금은 부담되었지만 예선 심사 1차와 2차를 붙어서 기뻤습니다. 같이 일하는 좋은 동료들도 만나 좋습니다.
OST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변동욱:원래 영상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학교 다닐 때는 저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졸업 이후 소개를 받아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면서 영상음악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보니 저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식 유튜브에 올라온 JIMFF PLAYLIST 속 감독님의 음악은 마음이 편안해지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나요. 변동욱:장면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렵지 않고 들었을 때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제작할 때, 명장면에서 흘러나왔으면 싶은 OST가 있을까요? 변동욱:저의 명장면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아요. 훗날 다가올 저의 명장면에서 엔니오 모리꼬네가 작곡한 영화 '시네마천국'의 OST가 흘러나왔으면 좋겠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변동욱:좋은 영화, 좋은 공연, 좋은 풍경 3박자가 잘 맞춰진 곳에서 잘 즐기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변동욱:좋아하는 일이다 보니 영화음악을 만드는 일을 오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좋은 작품, 훌륭한 작품 만나서 계속 음악 만들고 나이 들어서도 재미있게 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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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나현 음악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본선 진출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나현:본선 진출해서 너무 신나고 기대가 됩니다. 영광입니다.
OST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정나현:재수할 때 드래곤 길들이기 보고 멋있어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 음악에 참여하셨는데 특히 단편영화 참여작이 많으시네요. 정나현:대학교 3학년 때부터 단편영화를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당시 학생이셨던 감독분들이 입소문을 내주셔서 단편영화를 꾸준히 작년까지 해왔습니다. 그동안 작업한 상업영화는 액션, 스릴러 등 어두운 장르의 영화가 많았는데 시리즈물도 좋아하고 잔잔한 영화도 좋아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제작할 때, 명장면에서 흘러나왔으면 싶은 OST가 있을까요? 정나현:아직 인생의 명장면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어떤 명장면이 나올지,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이 무엇일지 모르겠어요. 저는 예전부터 장례식장에서 틀고 싶던 음악이 있는데 '뜨거운 안녕'이 흘러나오면 좋겠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나현:영화 음악을 교육하고 신인 영화음악가를 양성하는 제천영화음악 아카데미가 좋은 취지의 프로그램이라 생각합니다. 영화음악 하시는 분들, 저희 음악도 앞으로도 많은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정나현:필름 콘서트도 하고 싶고 아카데미상을 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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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호 음악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본선 진출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종호:아직 얼떨떨합니다. 쇼케이스를 마치고 나서야 실감 날 것 같습니다. 좋은 기회 주셔서 감사하고 쇼케이스 열심히 준비해서 잘해보겠습니다.
OST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종호: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TV나 영화, 애니메이션 영상물 보는 걸 워낙 좋아하고 노래나 연주보다 작곡에 흥미가 있었습니다. 영상음악은 여러 의미의 음악이 필요하고 작곡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 공부를 시작하고 제천국제음악아카데미에도 지원하며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제작할 때, 명장면에서 흘러나왔으면 싶은 OST가 있을까요? 최종호:저는 제가 쓴 음악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직 못 쓴 것 같아요. 언젠가 쓰게 될 저의 명장면에 어울릴만한 곡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종호: 4년째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 참석하고 있는데 올 때마다 비가 맞아주어서 영화 개막식 때 늘 촉촉하게 시작합니다. 지금은 날도 개고 화창해서 돌아다니기에 좋습니다. 모쪼록 영화제 재밌게 즐기다 가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무엇인가요? 최종호:저는 길게 봐야 하는 꿈인데요. 언젠가 제가 만든 음악들로 콘서트 하면 좋겠습니다. 기왕이면 노력해서 콘서트 지휘도 제가 하는 것이 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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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로 음악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본선 진출하신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명로:본선 진출해서 가장 좋은 건 같은 업종이지만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는 친구들을 만난 것입니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기회를 얻은 것 자체로 행복합니다.
OST 음악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명로:음악이 돋보일 수도, 혹은 영상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역할이 영상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상과 음악이 더해졌을 때의 시너지가 매력적으로 느껴져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조영욱 음악감독님이 총괄 프로듀싱 맡고 작곡하는 음악팀인 The Soundtrackings로 활동하시며 영국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 음악 작업에 참여하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이명로:박찬욱 감독님이랑 작업을 많이 하시는 조영욱 음악감독님의 제안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첫 드라마였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방송국인 BBC와의 소통이 처음이라 시스템이 없었어요. 당시 조영욱 음악감독님은 런던에 계셨고 작곡가 팀은 한국에 있었는데 감독님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고 시차도 있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6부작 드라마였지만 영화 6시간 제작하는 것처럼 매 장면에 맞추어 하나하나 작업했는데 7년 음악 작업 중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성장하는 기회였고 음악도 최상으로 나와서 만족합니다. 당시 저희 음악과 영상을 보며 피드백을 받을 때 저희가 좋아하는 부분을 서양인들도 같은 눈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은 언어가 아니니 느끼는 건 비슷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실질적으로 음악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영화로 제작할 때, 명장면에서 흘러나왔으면 싶은 OST가 있으실까요? 이명로:제가 작업한 음악은 어두운 음악이 많은데 명장면에서는 밝은 음악이 나오면 좋겠어요. 앞으로 인생의 명장면은 많겠지만 이미 경험했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장면에서 밝은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그게 제 인생의 명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명로:조영욱 감독님이 초이스 하신 5개 영화를 상영하는 마스터클래스를 추천드립니다. 제가 참여한 작품도 있고 감독님이 그동안 보셨던 것 중에 선정하신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옆에서 보았는데 정말 많이 고민 하시면서 결정하신 영화들이라 기대하고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저희 제천국제음악영화제 OST 마켓 공연 역시 젊은 느낌으로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앞으로의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인가요? 이명로:어떠한 영화에 어떠한 음악을 썼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영화에 가장 잘 맞는 음악을 장르 가리지 않고 연출하는 영화음악 감독되는 것이 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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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케이스 하루 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맞이해준 본선 진출자 5인은 악기를 하나씩 잡으며 포즈를 취했다. 각자에게 주어진 15분의 시간 동안 현악, 밴드, 국악 등 자신만의 색을 담아 본인의 대표곡을 중심으로 쇼케이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들의 밝은 에너지는 영화음악 산업에 시너지를 불어올 것으로 기대해본다.
글: 하이스트레인저 김미정 사진: 하이스트레인저 김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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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확장하고픈 욕망만 한가득
'스위트홈 2'를 정주행 한 감상평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즌 1 성공에 힘입어 세계관을 확장하고픈 욕망만 가득한 반면, 어디 하나 쉽게 몰입할 구석 없이 산만하기만 하다.
3년 만에 시즌 2로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은 욕망이 괴물을 만드는 디스토피아를 배경을 삼고 있다. 시즌 1에서는 생존을 위해 그린홈 아파트에서 정체불명의 괴물과 사투를 벌이던 차현수(송강)와 그린홈 주민들에게 포커싱 했다면, 시즌 2에선 그린홈 밖으로 나온 이들의 생존기와 또 다른 존재의 등장,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현상들까지 드러난다.
'스위트홈 2' 스토리 초반은 다양한 이야기 갈래로 나눠서 조명한다. 정의명(김성철)에게 몸을 탈취당한 편상욱(이진욱)은 군인들에게 잡혀가던 차현수를 빼돌려 신인류가 되어보자며 자신의 편이 되길 회유하고, 임신한 서이경(이시영)은 남편을 찾기 위해 밤섬특수재난기지에 숨어들어 진실에 접근한다.
그리고 이은유(고민시)와 윤지수(박규영)를 비롯한 그린홈의 나머지 생존자들은 군인들을 따라 안전캠프로 가는 길에서 예상치 못한 역경을 겪는다. 여기에 탁상사(유오성)가 이끄는 까마귀 부대와 괴물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임박사(오정세)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그러면서 주무대는 그린홈 아파트가 아닌 안전 대피소 스타디움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이야기와 갈등으로 엮어낸다.
시즌 1이 공개될 당시 시청자들에게 혹평을 받았던 '몰입도 빌런' OST 삽입은 말끔하게 해결됐다. 최대한 극에 집중하게끔 최대한 잔잔한 톤으로 깔아 두면서 자신들의 장기인 '한국적 정서'로 끌어들인다. 이번 시즌에선 가족애, 모성애로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하려는 게 보였다.
자세한 이야기는 링크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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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리언 질주하는 속도로 휘몰아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2142년에 살고 있는 20대 여자 레인 캐러딘(케일리 스페니)다. 어수선한 세상이다. 아니 더러운 세상이다. 웨이랜드 유타니라는 기업이 식민지로 삼은 지역에서 태어난 레인. 모든 사람에겐 강제노역이 주어졌다. 본인에게 할당된 강제노역의 시간을 가까스로 마무리 지은 레인. 다른 구역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이주하기 위해 행정업무를 보던 도중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린다. 기업이 강제노역 시간을 2배(12000시간에서 24000시간)로 늘렸다는 말이었다. 좌절하는 레인. 좌절하던 도중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타일러에게 연락을 받는다. 타일러는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어떤 정거장에 잠입해 장비를 훔쳐 '이바가'라는 곳으로 이주하는 것이 타일러의 계획이었다. 여기서 죽던지 아니면 정거장에서 죽는 것이다.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한 레인. 정거장에 잠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그 정거장에는 비밀이 있었다. 에이리언들이 숨겨져 있던 것이다. 고개를 드는 크리쳐들. 과연 레인과 친구들은 위협을 이겨내 이바가로 갈 수 있을까?
클래식의 향기 그대로
이 <에이리언 : 로물루스>를 보고 느꼈던 가장 큰 특징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장르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점이다. 어떻게? 우선 공간의 특성을 활용해서 이야기의 서스펜스를 강화시킨다. 이 영화는 공간을 우주로 제한하며 인물들의 동선을 제한한다. 몸에서 피부를 녹이는 산성 액체를 분비하는 크리쳐가 있는데 밖으로 나가면 우주 한가운데다. 이 크리쳐랑 우주선에서 함께 행복하게 살고 끝내는 게 영화가 되면 그건 에이리언 시리즈가 아니다. 둘 중 하나가 녹다운이 될 때까지 추격전을 벌인다. 이 추격전에 윤활유가 되는 장치 두 개. 신체훼손이다. 에이리언이라는 외계인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다. 이 알 수 없는 존재가 신체훼손으로 사람에게 겁을 주면 무서움의 넓이를 쉽게 예상하지 못한다. 또 갇혀 있는 공간이라 ‘쟤한테 걸리면 정말 끔찍하겠어’라며 이야기의 처절함을 만드는데 최적화다.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나 <쏘우> 1편을 생각해 보면 이 서스펜스가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니다. 이 영화가 장르의 관습을 잘 적용한 것이다.
두 번째 서스펜스 요소. 벽과 물이다. 끔찍하게 생긴 크리쳐가 우주선을 쿵쿵거리고 돌아다닌다. 또 게같은 크리쳐가 폴짝폴짝 뛰어다니며 인간들을 위협한다. 그럼 공간과 공간사이에서 도망 다니는 것이 중요하다. 이 추격극이라는 관점에서도 벽이 중요하다. 벽과 관련한 상황이 만들어지며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가 영화 안에서 중요하게 작동한다. 여기서 읽을 수 있는 벽의 성격. 기본적으로 어떤 존재의 이동을 제약한다. 크리쳐는 일반적인 사고방식 외의 것이 틈입한 존재다. 상상의 벽을 넘어 만들어진 존재가 괴물이다. 글쓴이는 이 크리쳐라는 것의 기본적인 속성과 ‘벽을 넘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 등치 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것 중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크리쳐들의 행보가 있다. 이 크리쳐가 어느 순간에 튀어나와서 캐릭터들의 얼굴을 덮칠지 모른다는 점에서 만들어진 서스펜스가 영화를 이끈다. 크리쳐의 모티브를 영화 안에 그대로 투영시킨 것이다. 이 문의 존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영화는 물의 이미지도 차용한다. 원래 이런 영화(들)에서 물을 다룬다고 하면 생명의 탄생을 다룬다. 이 모티브를 영화가 이상하게 뒤틀어서 기이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이런 부분이 영화가 신선하다고 느낄만한 부분이다.
또 이 영화에서 중요했던 것. 에이리언의 생김새다. <더 씽>이라는 영화가 있다. 1982년 영화다. <에이리언> 1편과 함께 크리쳐물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이다. 이 글을 쓰다 글쓴이는 느닷없이 ‘the thing(1982) creature’라고 구글에 검색한다. 끔찍하게 생긴 괴물이 등장한다. 이 비주얼은 지금 봐도 끔찍한데 1980년대 초라는 시대상을 고려해 보면 혁명적이었다. 글쓴이는 이 <에이리언 : 로물루스> 후반부에 등장하는 크리쳐가 <더 씽>에서 따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크리쳐물을 왜 보러 갈까? 그거야 끔찍한 크리쳐가 만드는 서스펜스를 체감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는 그 기획의도를 충실하게 이행한 셈이다. 물론 기존 ‘에이리언’ 시리즈의 크리쳐들과 겹쳐지는 장면도 일부 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은 시리즈의 시그니처라고 봐도 무방하면서 전작들 중 하나가 생각난다. 영화는 이런 식으로 크리쳐들을 끔찍하게 묘사하는데, 그냥 단순히 예전 것만 쓱 가져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을 어떻게 또 무슨 맥락으로 보여줬는지가 중요할 텐데, 이 영화가 어느 정도는 철학적/윤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와의 관계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선택과 집중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장르의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 만든 각본이라고 생각했다. 이 영화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해치우는 영화다. 그럼 당연히 추격극이 전제되어야 한다. 가령 <탈주> 같은 영화들을 생각해 본다. <탈주>의 추격극이 공허하게 느껴졌던 이유. 추격하는 과정은 단순한데 그 외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고, 그 둘은 사실 큰 관련이 없다. 자유의지를 두고 싸우는 인물의 모습과 추격극이 크게 관련이 없으니 총알 안 맞는 인물의 모습이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이 <에이리언 : 로물루스>는 레인의 동선과 한 캐릭터의 활용으로 영화에서 중요한 것이 어느 정도 진행되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 연출이 정말 중요했다. 영화가 크리쳐를 피하던지 / 죽이던지 둘 중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인다는 측면에서 교통정리를 잘한 셈이다. 후반 하이라이트 장면이 충격적으로 느껴졌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보는데, 그전에 불필요한 것들을 말끔하게 정리했으니 하고 싶은 것에 큰 효과를 줄 수 있었다.
또 이 영화가 장르적인 특성을 잘 살렸다는 점은 인물 수에서 온다. 인물 수가 적은 것은 영화가 영리하게 플롯을 끌고 가기 위해 고른 선택처럼 보인다. 이 영화가 다루고 문제들에 비해 인물은 6명밖에 안 나온다. 막 세계의 누가 어떻게 되고 우주의 운명이 갈리고 이랬다면 영화가 정말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을 보여주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반대로 캐릭터 간의 관계를 통해 후술 할 윤리적인 문제를 조명한다. 또, 적은 인원과 넓은 공간이라는 인원/공간 설정을 통해 인간에 의한 변수를 차단한다. 감독의 전작 <맨 인 더 다크>에서 소수정예로 나와 강력한 서스펜스를 보여줬던 것을 이 영화에서 그대로 승계했는데 자기가 잘하는 걸 선택하고 집중한 결과다.
마지막으로 영화가 사운드를 활용한 방식도 탁월하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이 영화 최고의 강점이다. 크리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찌지직하며 몸을 움직이는 듯한 소리, 공간적 배경이 우주인 탓에 일어나는 진공, 앤디의 목소리 톤을 활용한 연출까지 영화가 사운드를 통해 잡을 수 있는 장르적인 장점은 싹싹 긁어모았다. 글쓴이는 앤디가 "Run!"이라고 말하는 장면과 후반부 하이라이트 장면의 사운드 연출에서 보여주는 밀도에서 놀라웠다. 서울권의 관객들은 돌비관에서 봐도 충분할 듯하다.
트롤리 딜레마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이 두 문제를 한 방에 축약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앤디다. 앤디가 내포한 첫 번째 딜레마. 앤디를 우리와 비슷한 인간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부분이다. 앤디는 합성인간이다. 합성인간이라 함은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합성인간은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유대감을 이룬다. 동시에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에 개입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이 두 설정은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개입할 수 있으면서 사람과 유대감을 쌓는 존재는 세상에 인간 말고 존재하기가 어렵다. 반려동물들을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 영화와 유사한 사건을 그대로 겪는다고 보기엔 어렵다. 이 설정을 영화가 처절하게 활용하는데, 이런 앤디가 영화 안에서 보여주는 행동들이 장르적인 재미도 챙기는 선택이기도 했지만 윤리적인 고민을 수반시킨다. 과연 우리는 이런 존재를 인간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이 두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하더라도 존중해야 할 이유는 분명히 있지 않을까? 이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앞에 두고 질주하는 영화이니 만큼 윤리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고간다.
두 번째 문제는 공리주의다. 제레미 벤담을 위시로 한 공리주의를 다룬 철학자들은 많았으니 이미 많은 관객들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다룬 특별한 조건이 있다. 이 공리주의에 대한 부분이 앤디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위에서도 서술했듯 앤디는 인간이 아니다. 앤디 같은 합성인간이야 어디 가서 구매해도 대체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그러나 주인공 레인은 이것을 거부하는 인물이다. 동생 같은 앤디를 지키기 위해 인물이 어떤 행동을 고수한다. 이 레인의 행동은 레인 외의 인물들과 전적으로 대치되며, 특히 어떤 캐릭터의 히스토리와 대비되며 ‘과연 객체를 무시하고 다수의 이익부터 따지는 것이 옳은가?’를 질문한다. 호러영화에서 이런 식의 딜레마를 다루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각본이 영리해서 캐릭터의 특성을 중심으로 잘 구현했다. 글쓴이는 앤디가 프로그래밍된 존재라는 점이 영화가 던지는 윤리적인 수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데, 쓱 지나가는 설정이지만 감정이입의 깊이를 더한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복제인간 유형
이 영화의 단점으로 뽑을 수 있는 건 캐릭터 설정이다. 글쓴이는 크게 두 인물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일단 비요른이다. 비요른은 위에서도 적은 영화가 다룬 윤리적인 문제에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이게 공포영화의 1차원적인 클리셰를 벗어났다는 점에서는 왜 이렇게 설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 인물이 아예 더 막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인물이 겪은 트라우마에 비해 세상 받아들이는 모든 것들이 적당히 찌질하다. 이 사람은 이렇게 1차원적인 캐릭터로 남지 않아도 됐다. 더 강력한 찌질함으로 무장해 사람들을 괴롭히는 캐릭터였어도 이야기에 큰 무리가 없는데 이 위험도에 비해 인물이 납작하니 이야기의 굴곡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예 더 찌질했으면 이야기의 마무리가 더 강렬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레인도 납득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 이 영화에서 레인이 갖고 있는 성격 특성이 있다. 승무원 구성원들을 아낀다는 점과 앤디에 대한 애정 두 가지다. 후자는 잘 알겠다. 초반에 등장하는 레인의 설정 때문에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자는 영화가 굉장히 편의적으로 다룬다. 감정적인 몰입도를 영화가 성실하게 챙기지 못한 것이다. 레인을 지지하지만 옅게 지지하는 캐릭터 케이가 그렇다. 이 케이와 레인은 극 중에서 친하다는 느낌이 없는데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방식은 상호 간에 깊어 보인다. 영화 보기의 관습에 힘입어 ‘아 얘들 친하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냥 납득하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캐릭터의 개성이 없어 인장이 옅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장르영화로서 훌륭해
이 <에이리언 : 로물루스>를 총평하는 ‘재미있는 영화’라는 점이다. 누가 글쓴이에게 ‘야 지금 걸려있는 것 중에 뭐가 제일 재밌어?’라고 묻는다면 ‘이거!’라고 답할 수 있을 정도다. 너무 많은 걸 담으려고 했던 <빅토리> 감정적인 중심만 중요한 <행복의 나라> 평범한 게 장점이자 단점인 <트위스터스>에 비해 장르로서 / 감독 개인으로서의 향이 강한 영화가 이 작품이다. 대신 영화 안의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는 8월 14일 개봉작 빅 4에 비해서도 몰개성한 느낌이 있고, 잔인한 수위라는 점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이런 장르물에 목말라 시원한 사이다 한 방을 기다려온 관객들 아닌가? 굶주린 관객들에게 시원한 마실거리가 될 <에이리언 : 로물루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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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IFF 데일리]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피어나는 꿈
감독: 마리아 자네티,후안 파블로 밀러
출연진: 마이트 아길라르,미란다 데 라 세르나,마리아 유세도,왈테르 제이
시놉시스
1990년대 후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고 있는 열여섯 소녀인 로라는 학교에서 낙제를 받지만 독일 드레스덴에 있는 어느 학교로 교환학생이 될 기회를 얻는다. 그러나 자신의 언니인 홀리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어서 가족은 불안한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환경에서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악착같이 모아 독일로 유학 가려는 로라에게 또 다시 어려운 시련이 생기게 되는데...
로라라는 소녀는 공부는 못하지만 붙임성이 좋아 독일로 교환 학생이 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걸림돌이 있었는데 바로 자신의 언니인 홀리였다. 홀리는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 로라의 가족은 홀리를 치료시키는데 몰두하느라 돈을 다 써버렸다. 그래서 집까지 팔게 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라는 포기하지 않고 그 시련을 자신이 독일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되는데 썼다.
그래도 로라의 가족과 외할머니는 로라의 길을 열어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언니인 홀리가 막장으로 치닫는 데까지도 가족들은 로라를 보호해 주고 응원해 줬다. 또한 친구인 타티도 지지자가 되어주었지만 그 상황 속에서도 어려움을 참고 견뎌낸 로라가 필자의 기억엔 정말 대견하게 각인되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마리아 자네티인데 자신의 10대 시절에 겪었던 불안정한 상황과 가족들의 유대관계를 재구성해서 작품으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청소년인 로라에게는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남자친구 사귀는 것과 운전면허 취득하는 것, 잠시 불량한 친구와 함께 어울려 보는 것 등등 그 당시 10대로서 하고 싶은 걸 모두 이루게 된다. 어쩌면 10대 청소년들 중에 꿍과 목표를 가지고 있으나 불안정한 환경 속에서 살아갈 때 이 영화를 보는 게 어떨까라고 생각하며 우리나라의 10대 청소년들에게도 추천해 주고 싶다. 필자 또한 청춘이기 때문에 아직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인 것 같다. 다만 너무 성급하게 선택하지는 말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희망과 용기!
2023.10.05 (목) 20:30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7관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2023. 10.04 (수) ~ 2023. 10. 1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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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과 매국 사이 애매한 줄타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국 군벌, 마적, 일본군과 일본 경관, 조선인과 독립군이 엉켜 살아가는 1920년대 간도. 그곳에 한 남자가 도착한다. 일본 군복을 벗고 죽기 위해 간도로 향한 '이윤'(김남길). 10여 년 전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전했던 그는 작전 당시 자기 때문에 가족을 잃어야 했던 의병장 '최충수'(유재명)를 만나 목숨으로 사죄하려 한다. 유일한 사랑 '남희신(서현)'도, 친구이자 한때 주인님 '이광일'(이현욱)과의 인연도 뒤로 한 채.
하지만 이윤은 조금씩 생각을 고쳐 먹는다. 경성에서 볼 때는 기회의 땅이었던 간도가 무법천지의 땅이었기 때문. 자기를 죽이러 온 총잡이 '언년이'(이호정)를 만나고, 마적 떼의 습격을 받아 무기력하게 죽어 나가는 조선인을 보면서 그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할 일이 생겼음을 깨닫는다. 독립군도, 마적도 아닌 도적이 되어 어떻게든 살아남기로 결심한다.
만주 웨스턴의 부활?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웨스턴은 할리우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돼 관객과 만났기 때문.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이른바 스파게티 웨스턴은 미국 정통 서부극을 대신할 정도로 인기였다. 원주민과 개척지라는 조건이 미국과 같은 호주에서는 '미트파이 웨스턴'이 제작됐다. 심지어 소련에서도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레드 웨스턴'이 냉전 동안 인기를 모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일제강점기 만주를 배경으로 중국군, 일본군, 독립군, 마적, 그리고 조선인이 얽힌 만주 웨스턴이 있다. 물론 본고장 미국에서도 서부극 인기가 시든만큼 만주 웨스턴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장르로 보기는 어렵다. 김지운 감독의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하 <놈놈놈>) 이후 흥행한 사례도 많지 않다. 그나마 윤종빈 감독의 <군도: 민란의 시대>가 사극과 스파게티 웨스턴의 퓨전을 선보인 정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도적: 칼의 소리>는 이처럼 보기 드문 만주 웨스턴의 명맥을 잇겠다고 선포한 작품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도적: 칼의 소리>가 만주 웨스턴의 부흥을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장르의 근본적인 한계를 깨부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친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본분에 충실한 액션
<도적: 칼의 소리>는 분명 반갑다. 본분에 충실하다. 만주 웨스턴은 철저히 오락적인 이유로 등장한 장르다. 국내에서 서부극에서 볼 수 있는 총격전과 기마 추격전을 맛보고 싶은 욕구가 낳은 장르이기 때문. 즉, 황량한 배경에서 화끈한 액션과 볼거리만 보여주면 만주 웨스턴은 제 역할을 다한 셈이다. <놈놈놈>만 해도 일제 강점기 간도라는 시공간을 빌려 주인공 3명의 캐릭터쇼로 승부를 보는 액션 활극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좋은 선례를 착실히 따라간다. 우선 각 인물별로 확실한 캐릭터를 부여하면서 서부극에서 기대하는 볼거리를 충실히 보여준다. 일본군 출신 총잡이, 궁수, 호랑이 잡던 포수, 도끼 든 광대, 괴력의 거한, 암살자까지. 특징이 확실한 이들이 팀을 이뤄 싸우는 액션은 꽤 인상적이다. 물론 캐릭터 설정이 신선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래도 수위가 높고 각자의 역할이 잘 살아있다 보니 액션 보는 맛은 확실하다.
이에 더해 웨스턴 영화로서 갖출 것도 다 갖췄다. 총격전, 기마 추격전은 당연히 등장한다. 말 탄 도적이 기차를 쫓거나 총잡이들끼리 일 대 일로 총을 겨누는 클리셰도 빼먹지 않는다. 일본군과 독립군, 도적과 일본군, 도적과 마적 등 믿을 사람 없이 서로 싸우는 장면도 만주 웨스턴답다. 만주 웨스턴은 기본적으로 군상극인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액션 활극이기 때문.
나라가 아닌 사람을 지키다
시공간적 배경을 적극 활용한 스토리텔링도 눈길을 끈다. 사실 1920년대 간도는 피카레스크 이야기를 풀어내기에 최적화된 혼돈의 공간이자 시대다. 1920년대에 일제는 문화 통치를 통해 일본과 조선의 물지적 결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추구했다. 자연히 해방 대신 자치를 요구하는 조선인이 늘었다. 간도라는 공간도 혼란스럽다. 중국 군벌, 일본군, 조선인과 독립군까지. 누구 하나 실질적인 행정력과 통제력을 지닌 주체가 없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변절자가 늘고 선악 구분이 무의미한 시공간적 배경에 걸맞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역사적 당위성에 회의감을 표한다. 한국인이라면 일제의 침탈을 막고, 일제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명제를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다. 노비나 백정이었던 사람이 조선과 독립운동에 긍정적일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나 구동매가 그러했듯이.
그래서 <도적: 칼의 소리>는 나라를 구한다는 추상적인 대의 대신 눈앞의 목표에 일신을 던진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대한 독립 대신 개인, 가족, 친구의 생존이 우선순위인 이들을 비춘다. 이윤이 대표적이다. 그는 시대적 대의와 개인의 욕망 중 항상 후자를 고른다. 그가 희신을 돕는 이유도 그저 사랑 때문이다. 남한 대토벌 작전에 참여한 후 일본군에서 전역한 것도 민족 감정이 아닌 개인적인 죄책감이 주된 원인이었다.
이는 의병장이었던 최충수가 독립군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 언년이가 시니컬한 암살자가 된 이유, 더 나아가 그들이 도적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거는 독립군 대신 '도적(刀嚁)', 칼 휘두르는 소리로서 지켜야 할 사람들만 보호하자는 것. 또 이광일이 메인 빌런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자기 영달을 위해 숙부도, 약혼자도, 오랜 친구도 일제에 팔아넘기거나 죽일 각오가 된 인물이니까. 이윤과는 정반대로.
장르와 역사의 충돌
하지만 <도적: 칼의 소리>의 스토리텔링은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만주 웨스턴의 기본적인 한계를 깨려는 시도가 없기 때문이다. 대의 대신 생존을 택한 도적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만주 웨스턴의 묘미에 부합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 만주 웨스턴의 선조 격인 스파게티 웨스턴은 선악 구분이 확실한 정통 서부극과 달리 군상극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택지도 많았다. 도적을 독립군과 차별화하고, 난세에서 살아남는 민초로 그리고 싶었다면 굳이 독립군이 완벽한 선일 필요도 없었다. 독립군이 군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인을 탄압한 '빈주 사건'처럼 독립군과 도적 간의 갈등을 강조할 수도 있었다. 마적과의 갈등, 이윤과 이광일의 개인적인 갈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방법이었다.
<도적: 칼의 소리>는 상상력을 펼칠 기회를 포기한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타란티노가 보여준 배짱과 비슷한 용기는 없다. 독립군 대 일본군의 전형적인 구도를 답습한다. '십오만원탈취 사건', '간도참변', '훈춘 사건', '미쓰야 협정', '길회 철도 부설 반대 투쟁' 등 실제 사건을 변용한 대목은 선악구도를 강화한다. 마치 <봉오동 전투>를 보는 듯하다. 생존을 위한 사투도 알게 모르게 독립군 정신과 합쳐진다. 극이 진행될수록 도적들이 독립군보다 더 독립군스럽고, 일본군에게도 더 많은 피해를 준다.
그렇게 웨스턴 장르의 매력은 급감한다. 피카레스크적인 요소가 곁들여진 장르적 쾌감도,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서사의 매력과 개성도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스토리는 다른 길로 흘러 버린다. 이윤-이광일-남희신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이윤과 희신의 사랑이 싹피는 멜로드라마가 메인 요리가 된다. 액션도 쾌감을 잃는다. 시퀀스만 떼어 놓고 보면 즐기기 충분하지만, 전체 맥락에서는 미묘하게 어색함이 느껴진다.
틈으로 새어 나오는 완성도
장르와 스토리의 지향점이 충돌하는 사이로 부족한 짜임새도 노출된다. 우선 전반적으로 루즈하다. 액션 시퀀스와 대본에 문제가 있다. 액션씬의 경우 과하게 분량을 차지한다는 인상이 짙다. 장르 특성상 이해할 수 있지만, 흐름을 끊는 것은 사실이다. 대본의 경우 동어반복인 대사가 많다. 조금 더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풀어냈다면 1시간에 육박하는 각 에피소드 분량을 줄여서 긴장감을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도적: 칼의 소리>는 많은 넷플릭스 작품처럼 도전 그 자체에 박수를 보내는 데서 만족해야 할 작품처럼 보인다. <고요의 바다>, <택배기사>, <승리호>처럼 과감한 장르 영화가 많아지는 가운데, 시도라는 의의를 넘어서서 어떻게 열매까지 딸 수 있을지 고민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Poor 형편없음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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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세인트 주디(2018)> 리뷰
- 나는 생각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게 값싼 허위의식이 아닐까. 세상이 더 나아져야 한다는 당위명제에 공감하지만 열의에 가득찬 행동 하나 없이 내 생각과 유사한 영화 하나를 감상한 후 이러한 부류의 사회고발 미디어가 보다 많아져야 한다고 막연하게 소망하는 것은. 어쩌면 <세인트 주디>를 감상하고 주변인에게 권하는 것은 무책임한 선의 혹은 오만에 불과할 지 모르며 시류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을 감소시키는 가식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100%는 아닐지라도 어느 부분은 분명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내게 묻는다. 미동조차 없었으니 위선이라 칭할수조차 없는 나의 시시한 생각과 문장은 대체 무얼까. 이 기록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영화를 감상한 후 내 나름의 후기를 적을 때마다 거창한 뜻을 품었던 적은 없으며, 이 작은 리뷰가 내게 어떤 의미겠느냐고 매번 자문했느냐면 정말이지 그랬던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거듭 묻게 된다. 숀 해니시 감독의 영화 <세인트 주디>를, 영화가 최초로 개봉한 2018년이 아니라 미국이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박탈한 이후의 2022년에 감상하는 것은 나에게 독특한 경험으로 재포장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이 영화는 여성의 재생산권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아니지만, 주디 우드(미셸 모나한)이 말한 "전 세계 여자 중 3분의 2는 자기 생각을 가졌단 이유만으로 탄압받는다"는 대사가 기실 여성을 둘러싼 거의 모든 정치적 상황에 있어, 근본적으로 유사하게 적용된다는 것을 떠올려 본다면…….이미지 출처: MUBI영화 밖의 이야기는 멈추고, <세인트 주디>로 돌아오자. 이 영화는 캘리포니아에서 이민법을 전문적으로 다루게 된 주디 우드가 미국에 망명하고자 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아세파 아슈와리(림 루바니)를 변호하는 과정과 그 법정 공방의 결과를 그린다. 아세파는 자신의 고향에서 소녀들을 교육하였고, 이는 탈레반의 심기를 거스르기에 충분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아세파는 투옥당하고, 끔찍하게 고문받는다. 믿었던 가족에게 고발당했다는 것을 알게된 그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기까지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민법은 본질적으로 국가가 외지인에게 시민권을 나누어주는 것에 대한 법인만큼 너무도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얽혀있어 단순히 이상과 정의에 호소하는 것만으론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벽이었다. 판사 벤튼(알프리 우다드)이 아세파를 한 명의 개인대 개인으로서 기꺼이 존경한다 말하겠노라 하였음에도 미국의 판사로서 망명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한 장면은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이데아와 현실 정책의 좁혀지지 않는 괴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그렇다, 우리는 세상을 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배우며 평등해야 한다고 배운다. 하지만 게랄트 휘터의 말마따나 누군가에게는 "국적을 가진 사람만이 존엄(『존엄하게 산다는 것』 中)"하다. 미국의 시작이 이민자들의 나라였고, 아메리칸 드림을 일종의 캐치프레이즈처럼 내세웠다 한들 그것은 과거일 뿐이다. 21세기 미국은 정부측 변호사인 벤자민(커먼)은 이민귀화국이 이민세관단속국으로 개칭되었음을 주지시킨다. 미국의 시민권을 갈망하는 이들은 세관물품과 동일한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인간이 더이상 인간의 존엄을 요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은 -그것이 아무리 부당하다 한들- 주체가 국가일 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에둘러 표현될 수도 있다. 이민, 망명을 신청한 모든 이들이 어떤 자들인지 알 수 없으니 무한한 관용을 베풀어 기존 사회 구성원을 안전하게 보호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존속 의미를 주창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나 나는 "이민정책이 그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지 않거나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지향과 실제로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적으로 ‘소수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 김병록 교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법에서 최소한의 정의조차 찾을 수 없다면, 그 법은 진정 유의미한 것인가? 이상을 조금도 좇지 않는 사회가 과연 건강할 수 있겠는가?이미지 출처: Sight Magazine사실, <세인트 주디(2018)>를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예술적 의미에서, 영화사적으로 대단한 족적을 남기리라고 생각하게 되지는 않는다. 또한 굉장히 강력한 메시지를 지닌 영화이므로 프랑수아 트뤼포가 그리 반기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내게 경종을 울린다. 내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했던 세계의 일면을 보여주고, 나를 돌아보게 만드므로.영화를 본 후의 감상을 쌓아 올리는 것이 유의미한 일인지 아닌지 이 시점의 나는 잘 모르겠다. 또한 이 영화 앞에서 고작 이 정도 고민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다. (영화 <세인트 주디>를 모두 감상한 후 와드 알 카팁 감독의 <사마에게(2019)>를 감상하여 더더욱 그러하다.) 다만 이것만큼은 말할 수 있다. 외압에도 굴하지 않는 인간의 끈질긴 선의는 결국 희망을 현실로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무의미해보이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본다.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연락하는 것, 그 어떤 누구도 결국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것부터. 관용과 신의로 연대는 더 돈독해진다. 너의 일에 발벗고 나설 수 있는 나의 존재, 나의 일에 소매를 걷어부치겠다는 너의 존재가 많아질수록 개인의 삶과 사회는 풍성해진다. 타인과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너와 나의 권리가 동등하게 소중하다는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는 세상이 올 수 있기를. 인생은 혼자 사는 것이라 해도, 인생 길은 타인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믿는다. 작은 다정과 환영이 궁극적인 화합을 위한 첫 걸음일 것이라고.그래, 한 명을 위한 일/투쟁은 결국 모두를 위한 일/투쟁이기에.★★★★참고문헌김병록 "이민정책의 법제와 헌법적 과제" 미국헌법연구 31.2 pp.1-4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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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나치게 정직했던 건 아닐까요 도지사님
주말마다 하는 고민이 있다. '이거 봐야 해 말아야 해?'다. 재미없는 사회복무요원 생활 속 작가님 소리 듣는 건 재미있다. 그래서 CGV 어플을 켜고 프리미어 시사회와 온갖 쿠폰에 민감한지도 모르겠다. 거의 주마다 가는 영화관. 유일하게 생각했던 진로가 물 건너 간 후에 이 영화 저널 쓰기는 나에게 좋은 놀이가 되고 있다.
오늘도 고민에 여념이 없다. 이걸 봐야 해 말아야 해? <정직한 후보>? 1편 그냥 평범했는데. 근 30분간의 고민을 뒤로하고 '그래. 한번 가보자'라고 마음을 먹는다. 버스를 타고 영화관에 도착한다. 이거 장병 할인받고 싶은데요. 네. 5시에 들어가시면 되세요. 이거 맞나? 환불할 수 있나? 어플을 켜서 환불할 수 있나 확인한다. 환불 불가라는 글자가 떡하니 눈에 들어온다. 그래. 한국영화의 부흥을 위해서라고 (다시) 되뇌기로 한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후회했다. 조금만 덜 정직하면 좋았을 것 같았다. 2021년, 코로나19가 덮치지 않은 지구, 대한민국에 사는 백수 주상숙 씨가 정치인으로서의 재기를 계획하고 있다. <정직한 후보 2>다.
나는야 백수
전직 3선 의원 주상숙. 국회의원을 세 번이나 했다. 놀라운 기록이다. 국회의원 한번 해보기도 어려운데 3번이나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것이다. 그런 기록이 있으면 보통 원내정당에서 '중진'으로 불린다. 중진의 뜻은 무거울 중자에 잘 담겨 있다. 조직에서 무게감이 있다는 건 많은 책임감을 수반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영 아니다. 인생에서 뭐가 가장 쉬웠니? 거짓말이오! 거짓말로 3선이나 해 먹었지만 그 탓에 역풍이 날아들었다. 4선 도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시장에 출마한 주상숙. 이미 떠난 민심이 쉽게 돌아올 리가 없다. 당연히 실패했다. 현대사의 여느 정치인이 그랬듯 야인으로 돌아간다. 남편 소유의 아파트까지 팔아 선거 자금으로 댄 주상숙. 그동안 모아놨던 돈은 홀라당 까먹고 강원도의 어느 집에서 남편과 함께 조용히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대로 무너질 거면 주상숙에게 3선의 기운이 날아들지 않았다. 시장에서 생선 손질하고 있는데 트럭 하나가 바다에 풍덩 빠졌다. 수영할 줄 아는 분 없으세요? 없었다. 그럼 내가 빠지고 말지. 무작정 바다에 빠져 트럭 운전수였던 청년 한 명을 구한다. 정작 기절 상태에 빠진 주상숙. 정신을 차려보니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이었던 희철이 반긴다. 뭐지? "누나. 기회가 왔어요." 무슨 말이야? 희철은 병상에 있던 커튼을 치웠다. 바로 자기를 취재하려 찾아온 기자들이 상숙을 반겼다. 이게 무슨 일 이래? 아무 계획 없이 바다에 빠졌던 일이 정치인 주상숙에게 구원의 동아줄이 된 것이다. 과연 이대로 죽으란 법은 없다. 이 사건을 기점으로 점점 부활의 서막을 밟아가는 주상숙. 눈 떠보니 강원도지사다. 몰락한 커리어가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켰다. 고점을 찍는 지지율에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러다가 대통령도 생각해 볼 법하겠어? 그녀에게 브레이크란 없다. 아니 없을 것 같았다. 주상숙은 두 가지 브레이크를 만난다. 바로 다시 찾아온 '그분', 거짓말 못하는 주둥아리와 도지사 곁에서 열심히 해쳐먹는 부랑자들이다. 그녀는 과연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까?
2년 만에 돌아온 신작
2020년 개봉한 1편이 2년 만에 후속작을 냈다. 주인공은 여전히 라미란, 김무열 두 배우다. 전작은 15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손익분기점은 넘었다. 전작을 요약하자면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코미디 쇼'였다. 이는 주상숙이라는 인물의 직업적 특성과도 이어진다. 주상숙은 정치인이다. 정치 인하면 대중적으로 익히 알려져 있는 이미지는 거짓말이다. 선거 때마다 겉으로만 쨘하고 나타나서 달콤한 말로 유권자들을 속이는 모습은 많은 미디어를 탔다. 이렇게 잘 알려진 특성을 '진실을 말해야만 하는' 상황과 결합시켜 코미디 요소를 만들어냈다.
전편을 보며 느꼈던 점은 신선했다는 점이다. 정치인이 진실된 말만 한다는 설정은 그냥 문장 자체가 신선하다.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가지고 하는 범죄, 스릴러물은 많이 봤어도 정반대의 특성을 살려 코미디화 시킨 건 거의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라미란이라는 배우는 이런 낯선 설정을 톡톡히 잘 살렸다. 후반부 신파가 들어간 전개와 전반부 코미디 요소를 살리는 방법, 또 정치인으로서의 모순된 지점까지 디테일을 구석구석 살려 생동감을 부여한 좋은 연기가 돋보였다.
이런 생동감은 앞에서도 서술한 '정치인들의 민낯 드러내기'와 시너지를 낸다. 후보의 비리사실을 지적하지만 그런 인물 역시 뒤가 썩었다는 묘사,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점을 부여한다는 설정, 정치인의 기본 준비물 같았던 원정출산, 언론인 매수 등등 어딘가 익숙했던 현대사의 단면을 코미디화 시킨 것은 아주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ZOO'라는 단어를 활용한 말장난은 살짝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나라 어느 시기의 국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특장점이 앞에서 서술한 라미란 배우의 활용법과 플러스 효과를 내며 나름 좋은 평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상황에서 후속작이 나왔다. 오롯이 장점만 발현됐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연히 발견한 느낌
1편은 좋았다. 신선했고 정치사 이면을 들여다보는 관점까지 나쁘지 않았다. 후반부에 들어간 신파도 뭐 납득이 안 가는 건 아니다. 충분히 뭉클했고 이야기 전개에 억지로 균열을 낼 정도로 뻔뻔하지는 않았다. 또 초반부 '왜 진실만을 말하는 주둥이가 됐는가?'도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었다고 본다. 코미디 영화에서 왜 이게 웃겨?를 일일이 설명하면 장르적인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을 어긋 내는 요소가 있어야 코미디가 성립하지 않겠어?
그런데 이 영화, 그러니까 본편인 2편에서는 안 좋은 부분만 답습했다. 사실 좋은 부분이 안 좋은 부분으로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1편에서 느껴졌던 신선한 코미디를 2편에서 그대로 끌고 왔다. 초반부터 코미디 패턴이 예상되기 때문에 안 웃기다. 이 지점은 굉장히 치명적이다. 주상숙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웃기지가 않다. 이 코미디 패턴이 곡선 형태로 바뀌면 모르겠는데 영화 전반적으로 관통하는 코미디는 이 진실밖에 말하는 입에 의존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코미디 영화인데 식상해서 안 웃기는 것이다.
그렇게 전반부를 이 코미디 패턴에 할애하고 중반부로 넘어간다. 중후반부로 넘어가면 사실 이 영화는 스릴러로 변한다. 도지사가 된 주상숙이 어떤 일을 겪고 해결하는 과정이 영화의 물리적인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 짠 이야기 전개는 예상외로 좋았다. 고공 행진했던 주상숙의 지지율이 원인이 되고, 정치인으로서 지리멸렬했던 과거가 좋은 인재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이를 바탕으로 나름의 전개는 짜임새가 있다. '내가 도지사이기 때문에' 무작정 의사결정을 보여주지 않는 주상숙, 후반부 제시되는 빌런의 정체, 주상숙 친구 캐릭터, 문제 해결을 이루며 소모적으로 활용하지 않은 캐릭터 사용까지. 영화는 코미디를 설계했지만 오히려 스릴러로서의 장점을 발현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왜 코미디가 기능하지 않았을까 더 생각하면 이유가 더 나온다. 일단 초반부.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1편에서 봤던 코미디 패턴이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에 그냥 무덤덤해진다. 또 이 방식이 러닝타임 후반부까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식상하기까지 하다. <육사오>에서 군이라는 공간적 세팅을 통해 다방면으로 코미디 요소를 만들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공조 : 인터내셔날>에서 임윤아, 유해진, 다니엘 헤니, 현빈 네 배우의 장점을 활용해서 만든 코미디와도 다르다. 진실을 말하는 입이 된 차희철과 주상숙이 직설적인 화법으로 특별한 상황을 만들어낸다는 것 그게 끝이다.
이런 코미디 설정은 이야기의 전개 방식에서도 악영향을 끼친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 절반은 '이런 병 아닌 병이 들어온 후 대응하는 주상숙의 모습'으로 축약할 수 있다. 그런데 1편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할머니의 기도가 주효해서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처지가 된 상숙. 무슨 말이냐? 이 사람이 이런 특성을 가진 건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이 영화의 초반부처럼 '이렇게 말하면 예외가 되어서 난감한 상황을 돌파할 수 있어요'를 제시하는 건 조금 아쉬웠다. 영화가 직접 이 작품의 설정 오류를 말해주는 느낌? 신이 소원을 들어줘서 그렇게 된 건데 예외를 두면 '저런 상황에서 잘 참아서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기 쉽다. 그럼 몰입이 깨지는 것이다.
또한 기본적으로 주상숙과 차희철이 이런 처지가 된 사건 설계 자체도 엉성하다. 물론 <육사오>에서의 설정 역시 엉성했다. 보통 그쯤 되는 복권은 알아서 찢어지거나 더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의 기본 베이스는 애초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할머니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사진은 왜 버렸대? 그리고 바다에는 왜 그렇게 자주 빠지는 거야? 또 근본적으로 주상숙이 왜 정신을 안 차렸는지도 의문이다. 그렇게 커리어가 허위 공작으로 부서질 뻔한 인물이 높은 지지율 때문에 변해서 위기에 봉착한다? 코미디 영화에서 인과관계를 따지면 웃길 일이 없다는 것 잘 알지만 이건 좀 아쉽다. 아쉬운 만큼 후에 웃기면 다행인데 단조로운 패턴이 식상하기까지 하니 더 두드러지는 것이다. 또 코미디 쪽 파트에서 이야기가 앞으로 전개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극후반부를 위한 준비물? 생각해보면 그 시퀀스가 없어도 일처리 시원시원한 건 다 알 수 있다. 내가 왜 주상숙이 결혼식 주례 보는 걸 알아야 하지? 큰 의미가 없는데?
이런 식의 이야기 전개가 있다 보니 러닝타임 절반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또 그나마 작동하는 후반부의 스릴러도 각본이 깔끔한 건 아니다. 엉성한 단점이 그대로 느껴진다. 이런 영화의 만듦새 때문에 뭔가 텅 비어 보이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반짝반짝 빛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후반부의 스릴러 코드에서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정치인과 보좌관들이 정책을 설계하며 겪는 노고가 그대로 전해진다. 또 앞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각본이 엉성하긴 해도 이야기 전개가 굴곡이 있는 편이라서 흥미진진하다. 이 과정에서 주상숙 캐릭터 설정이 빛을 발했다. 이 사람이 사실만을 말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성격이 이래서 그대로 행동한 것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를 위해 라미란 배우가 연기를 정말 잘했다. 1편에서 상도 받았지만 오히려 난 이 2편이 이 배우의 최고작 같다. 어디에서 힘을 주고 빼야 하는지를 잘 이해한 좋은 퍼포먼스였다. 또 신파가 들어가진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뭉클해지는 부분이 있다. 이 때도 눈빛, 말투 연기 하나로 극에서 설득력을 부여한다. 라미란 배우가 이정은, 김혜수 배우만큼이나 원톱 롤을 줘도 잘 소화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또 김무열, 서현우 배우도 높은 경험치를 경제적으로 활용했다. 김무열 배우 연기 잘하는 것 같다. <악인전> <소년심판>이랑 연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정말 다르다. 특히 <소년심판>에서의 연기는 나긋나긋하게 침착한 인물을 잘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또 내면에 상처가 있어 그만큼의 동기부여를 작동시키는 게 당시의 김무열 캐릭터 아닌가.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원톱 여성 주인공을 보조했지만 아예 정반대의 퍼포먼스를 소화하며 극을 보조한다. 개인적으로 1편에서 싸움 잘한다는 특징을 준 것으로 아는데 액션 신이 없었던 건 많이 아쉽다. 또 서현우 배우 역시 베테랑 티가 난다. <죄 많은 소녀>에서 이기적인 선생님 역할과 비슷한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또 다르다. 착한 척은 하되 그냥 눈빛부터 나쁜 놈 티가 나면서 차희철 캐릭터와 대비를 이뤄야 하는데, 이 과제를 무탈하게 소화해낸다. 그러나 배우들 중에서 가장 재발견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윤두준 배우다. 하이라이트라는 팀에서 배우를 데뷔한 사람이 누가 있지? 이기광 씨만 기억에 남았는데 윤두준이라는 이름도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말투를 통한 인물 해석이 돋보였다. 드라마에서는 몇 번 나오셨던데 영화에 나와서도 잘하실 것 같다. 역시 액션 연기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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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속 좀비와 #살아있다 가 의미하는 것
영화 살아있다가 개봉했습니다.
저는 시사회를 통해 그럭저럭 봤던지라,
개봉 이후 관람객 평이 생각보다도 더 좋지 않아 조금 놀랐는데요.
이 콘텐츠는 영화 살아있다를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만들게 됐습니다.
오늘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 살아있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살아있다 #유아인 #박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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