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2022-08-21 23:27:56
연애가 최악인가, 사람이 최악인가
연인관계에서 약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영화의 결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으면 글 분량을 채울 수가 없겠더군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제목에서 최악이 되는 대상은 누구인가. 언뜻 들어서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과연 그럴까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영화 안에서 두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 분)는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최악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율리에와 사랑에 빠진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리 분)과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롬 분)는 각자의 매력을 지닌 이들이긴 하지만 완벽한 연애 상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얼마든지 다른 사람들과도 연애할 수 있을 것 같은 율리에는 왜 악셀과 에이빈드를 만나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을 하게 되는가. 악셀과 에이빈드를 만나며 활기차 보이는 율리에지만 정작 가장 밝은 표정을 짓고 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다. <라우더 댄 밤즈>를 통해 한 가족을 집단이 아닌 개인으로서 파헤치고, <델마>에서는 사랑에 빠진 초능력자 레즈비언 여성의 성장기를 보여준 요아킴 트리에 감독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 두 이야기를 합친 것 같은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율리에는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 이미 악셀과 연인 사이였고, 미디어에서 흔히 묘사되는 오랜 커플의 전형처럼 보인다. 미디어에서 흔히 그려지는 오랜 커플이 그렇듯 권태기가 찾아오고, 서로에 대한 의리가 있어 대놓고 바람을 피우지는 못한다.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에이빈드는 악셀보다도 잘 통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옷이 쌓인 침대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급기야 서로 화장실에서 배설하는 모습까지 공유하지만 선을 넘는 신체 접촉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마치 자기 자신에게 변명하듯이 헤어질 무렵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바람은 아니라고 도장찍듯 대화를 나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율리에는 에이빈드의 이름을 묻지 않고 헤어지지만 역시나 많은 영화에서처럼 율리에와 에이빈드는 우연히 다시 만난다. 율리에는 연인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만큼 악셀에게 더 이상 설렘을 느끼지 못하면서 왜 헤어지지는 못하는 것일까. 이 장면은 율리에가 악셀에게 최악의 연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악셀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기 자신에게 못할 짓을 하는 율리에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율리에가 에이빈드를 만나기 전 악셀의 가족을 만났을 때 악셀과 나누는 대화는 도통 두 사람이 연인인 것이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대화를 나누는 주제마다 부딪히고, 특히 아이를 갖는 문제에 대해 입장을 달리하는 율리에와 악셀은 가족을 이루는 문제에 있어서는 율리에가 철저하게 약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자고 싶지 않다며 떼를 쓰는 아이를 혼내고 보채는 건 결국 장면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이기에 율리에에게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세세한 과정에서 실익을 따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악셀은 같은 장면을 보고도 율리에의 입장에 공감해주지 못한다. 심지어 임신과 출산의 주체가 여성인 율리에가 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할 때 율리에는 악셀과의 관계에서는 가족을 이룬다는 전제 하에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위치만을 점유한다. 영화 중반부 만화 작가로 일하는 악셀이 과거에 그렸던 여성 비하적인 내용이 문제가 되면 악셀이 율리에(를 포함한 여성)에게 최악의 사랑이 될 것을 관객은 짐작하게 된다.
이런 악셀에게 지쳐갈 때 만난 이가 아이 생각이 없다는 에이빈드였다. 임신 출산의 주체로서 여성을 인정하고 선택권을 온전히 넘겨주는 정도는 못 되지만 최소한 에이빈드와는 가족을 이루는 문제에 있어 다툴 필요가 없다. 악셀과 함께 사는 집에서 일어나 부엌 불을 켠 순간 세상이 멈추고 에이빈드를 찾아 밝은 표정으로 거리를 달려나가는 율리에의 모습은 악셀과의 세상은 더 이상 역동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모두가 멈춘 세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하고 있는 에이빈드는 멈춘 세상에서 유일하게 매력적인 남자의 모습이다. 그리고 에이빈드와 키스 후 돌아와 부엌 불을 껐을 때 비로소 악셀은 움직인다. 부엌불은 악셀과의 관계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메타포로서 작용하는데, 밝은 빛 아래에서 결점까지 보이는 악셀을 더 이상 율리에가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런 악셀과 살기 위해서는 불을 끄고 어느 정도 흐린 시선으로 악셀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에이빈드라는 선택지가 생긴 율리에는 어둠 속에서 악셀과의 세상을 살아갈 필요가 없다. 그 자리에서 악셀과 이별을 통보하는 율리에는 다른 사람이 생겼느냐는 악셀의 질문에는 거짓말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리에가 악셀에게 최악의 인연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이제 에이빈드를 만나 안정된 것처럼 율리에는 보이지만 파티에서 마약에 탐닉하는 모습을 보면 여전히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에이빈드가 율리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이 아님에도 에이빈드의 전 여자친구인 수니바의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며 자신과 비교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이빈드와의 관계가 안정되어 갈 때쯤 율리에는 두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맞닥뜨린다. 자신이 임신했다는 것, 그리고 악셀이 암으로 죽어간다는 것. 아이 생각이 없던 여성이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취하는 행동은 자신에게 최악인가, 연인에게 최악인가? 임신 자체가 모체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볼 때 어떤 선택을 하든 율리에는 자신에게 최악일 수밖에 없다. 아이 생각이 없었음에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생명을 두고 출산을 고민하는 동시에 악셀을 찾아간 율리에는 에이빈드가 아닌 악셀에게 먼저 임신 사실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율리에가 에이빈드에게 최악의 연인인가? 임신한 여성의 선택의 결과는 본인이 오롯이 그 책임을 감당할 뿐 주변인의 그 누구도 당사자만큼의 책임을 지지는 못한다.
모호하게 묘사되긴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은 율리에의 선택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연애하는 내내 자신에게 최악의 선택만을 하던 율리에는 커리어를 이어가며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한다. 율리에를 인정하지 않고 여성을 공개적으로 비하하던 악셀은 아마도 세상을 떠났을 것이고, 에이빈드는 율리에를 떠나 새로운 인연을 맞이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에이빈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는 율리에는 사랑을 떠나고서야 자기 자신에게 최악인 사람으로부터 벗어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자신에게 최악일 만큼 이해할 수 없는 선택들을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며 이를 통해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을 영화는 밝은 톤으로 보여준다.
*본 리뷰는 씨네랩 시사회 초청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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