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M2022-08-23 02:16:18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Verdens verste menneske
REVIEW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 씨네랩의 초청을 받아 크리에이터로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씨내랩으로부터의 초청을 받아 시사회에 참석하여 이번 달 최대 기대작이었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를 개봉 전에 보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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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걸 찾아 세상으로 나온다. 파티에서 만난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진 율리에, 하지만 삶의 다른 단계에서 만난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걸 원했고 조금씩 어긋난다. “내 삶에서 조연 역할을 하는 것 같아…”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간다.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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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
영화를 보기 전, 영화의 제목만 보고 주인공이 처절한 사랑을해서 최악의 모습이 되는 내용일거라 예상했지만, 실제 줄거리는 내 예상을 빗겨갔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사랑'을 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말에서의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이해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녀가 행한 모든 선택은 사실 고고한 연인간의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신의 성적을 증명하기에 흥미에도 없는 의대를 들어간 모범생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학문들에 이것저것 발을 딛고,
자신의 자유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벼운 원나잇도 즐기고,
자신의 사랑을 사랑하기 때문에 악셀이랑 교제를 하고,
그리고 이어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택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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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쉬운 부분 /
영화의 앞부분은 흡입력이 좋았는데 뒤로 갈수록 뒷심이 딸린다.
마지막 11장과 12장은 어느정도 예상가능한 부분이라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 영화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12장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한 8장 정도로 컴팩트하게 만들었다면 감독이 말하고 싶은 의미도 관객들에게 더 잘 다가오고, 영화도 힘있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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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짤막한 평 /
본인을 사랑하기에 의대를 포기하고 사진을 시작했고,
본인을 사랑하기에 내 옆의 연인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에게 갔고,
본인을 사랑하기에 내 몸 속의 아기가 떨어진 후 미소가 나왔다.
사랑하면 누구나 최악이 된다.
'나'를 사랑하면 누구에게나 '최악'으로 비춰질 수 있다.
별점은 10점 만점에 6.5점 드립니다.
그래도 좋은 영화이니 감상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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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싱타는 여자들 영화 시사회 후기 - 여성 노동자들이 겪은 삶의 이면을 보여주다.
과거 대한민국은 급격한 산업화로 발전을 했지만 지금에 비해 노동자들의 인권과 대우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미싱타는 여자들이라는 영화는 공장에서 노동을 하던 어린 학생들이 공권력의 탄압을 받으면서 생겼던 트라우마와 그날의 기억들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다. 이들은 평화시장이란 곳에서 시다 일을 했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아서 노동교실이란 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 당시에 노동자의 환경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불편하게 일을 했는데 정해진 근무시간이 없고 일을 쉬지 않고 했을 때가 많았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일찍 일을 해야 했던 그들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겨야만 했을까? 마침내 불편함을 참아낸 그 시대의 여성노동자들이 겪었던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털어놓는다.
대한민국의 산업화 시대에서
열심히 살아간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트라우마도 생기기 시작했다.
하니엘의 영화 미리 소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여성 노동자들이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면서 그동안 겪었던 고통을 털어낸다.
대한민국의 과거는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일찍 철이 든 여성 노동자들은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걸 알기에 노동교실을 만들어서 그나마 학습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의 대우는 여전히 좋지 못했다. 노동자라는 이유로 버스 요금도 할인받을 수 없었고 그때 당시에 사회가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곱지 못했다. 가족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고군분투한 삶을 살았던 그녀들의 절박함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삶을 잘 버텨온 게 아닌가 싶다. 그 삶의 이면에는 많은 고생과 아픔의 눈물이 있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의 부모님 세대에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계셨기에 더 나은 근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밑바탕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아무런 절차 없이 거쳐온 게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화 과정을 겪은 대한민국이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그 누구보다 다음 세대에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었을까?
내가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과거 누군가의 불편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하니엘의 주관적인 영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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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다음 챕터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안녕하세요!
영화/OTT 콘텐츠 큐레이션 웹 매거진 '씨네랩'입니다.
<라우더 댄 밤즈>, <델마> 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 유명한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신작인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벌써 내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2021년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에 후보로
올라가며 작품성을 인정 받기도 했는데요. 개봉 전부터 SNS에서 화제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미국 유명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96%를 기록하며 해외 유수 언론 매체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는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더 자세히 톺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출연하나요?
율리엘 | 레나테 레인스베
FILMOGRAPHY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어떤 영향력 (2020)
빌마르크 어사일럼 (2015)
AWARDS
Cannes Film Festival, 2021
Critics Association of Central Florida Awards, 2022
악셀 | 앤더스 다니엘슨 리
FILMOGRAPHY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베르히만 아일랜드(2021)
오슬로, 8월 31일 (2011)
AWARDS
International Cinephile Society Awards, 2022
International Online Cinema Awards (INOCA), 2022
Kosmorama, Trondheim Internasjonale Filmfestival, 2012
에이빈드 | 할버트 노르드룸
FILMOGRAPHY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2021)
포노펑 (2013)
AWARDS
Best Supporting Actor (Årets mannlige birolle), 2014
Kosmorama, Trondheim Internasjonale Filmfestival, 2014
어떤 내용인가요?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의대에 진학한 율리에.
하지만 '마치 목수가 된 것 같다'는 이유로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그 후, 그녀는 서점 알바를 하며 적성과 맞는 사진을 배우게 된다.
그런 율리에는 우연히 파티에서 유명 만화가 악셀을 만나게 되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둘은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고,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된다.
율리에는 인생의 다음 챕터로 달려나가는데...
TMI
첫 번째,
주인공 율리에 역을 맡은 레나테 레인스베와 악셀 역을 맡은 안데스 다니엘슨 리 배우 모두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오슬로, 8월 31일>에 출연했다.
두 번째,
<리프라이즈>, <오슬로, 8월 31일>에 이어 노르웨이 오슬로를 배경으로 제작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오슬로 3부작 중 마지막을 장식했다.
세 번째,
원제목인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의 의미는 ‘율리에가 자신에 대한 감정을 의도적으로
과장해서 표현한 것 같은 말이다’고 감독은 밝혔다.
지금까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간단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어떠셨나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궁금하시다면 8월 25일 극장으로 당장 고고!!
그럼 우리 모두 안전하게 극장에서 만납시다!-!
씨네랩 에디터 camm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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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은 ‘계몽’될 수 있을까
주변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소년의 시간〉에 관한 요란한 상찬이 이어졌다. 원래 인기 있는 드라마는 나중에(심지어는 몇 년 후에) 시차를 두고 보는 걸 좋아하는 터라 버텼다. 그러나 도저히 미룰 수 없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워지고 있다는 느낌에 뒤늦게 그 대열에 합류했다. 작품에 쏟아진 엄청난 반응에 과장이나 부풀림은 없는 것 같다. 얼마 전 화제가 된 글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왔다〉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작품이었다. 전 세계가 청소년 남성의 극우화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하다.
총 4회로 구성된 이 작품은 모든 회차가 원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실제 원테이크로 촬영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시청자 입장에서는 그렇다. 원테이크의 강점은 화면 속 인물들의 경험을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접해 몰입감을 높인다는 점이다. 축약된 시간을 수동적으로 전달받는 게 아니라 주인공들과 ‘함께’ 사건을 경험하고 있는 듯한 효과를 내는 것이다. 청(소)년 남성의 극우화라는 시급한 주제에 걸맞는 연출 기법이다.
열세 살 난 청년 제이미가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되고 경찰 조사를 받는다(1화). CCTV 등은 확보되었지만 범죄에 쓰인 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건의 동기가 오리무중이다. 이 앳된 얼굴의 남자아이가 도대체 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담당 형사가 단서를 찾기 위해 제이미의 학교로 가서 그와 피해자 케이티의 친구들을 만난다(2화). 드라마가 학교를 그려내는 방식을 눈여겨보자. 학교는 처참하고 황량하며 절망적이다. 학교에서는 구토, 양배추, 정액 냄새가 난다. 학생들은 통제 불능이다. 선생님은 그런 학생을 윽박지르거나 어수룩하게 끌려다니기만 한다. 지옥이다. 학교는 “카오스”고, “동물 우리”다. 정말 학교가 저런 곳이었나? 드라마는 자극적인 뉴스로만 접하던 학교 현장을 ‘증명’한다. (다른 시공간에 사는) 내 학생 시절의 기억과 경험이 붕괴되는 듯했다.
학생들을 어찌할 줄 모르는 건 선생님뿐만이 아니다. 경찰, 부모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학생들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독해할 능력이 없다. 참다못한 경찰의 아들이 몰래 그를 찾아온다(그는 ‘유능한’ 경찰인 아빠에게 “아빠는 애들이 뭐 하는지 못 읽어”라고 말한다). 경찰의 아들을 통해 인스타그램에서 제이미와 케이티가 주고받은 댓글과 게시물이 남성성에 관한 잔혹한 조롱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그들 또래의 세계관에서는 80퍼센트의 여성이 20퍼센트의 남성을 좋아하는데, 제이미는 그 20퍼센트에 들지 못했다. 케이티를 포함한 많은 또래 학생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제이미를 조롱했다는 것도 밝혀진다. 고작 열세 살짜리 남자애가 여자를 ‘갖지’ 못하는 상황에 절망했고, 그 절망이 조롱당하자 사람을 죽였다. 능력주의 경쟁 사회에서 학교는 지옥이고, 어른은 무능하며, 학생들은 능력주의에 연동된 젠더 질서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서로를 혐오한다. 이것이 ‘교육’ 현장 학교의 모습이다. 2화의 마지막, 부감 숏으로 학교를 비추던 카메라가 케이티가 살해당한 곳으로 추정되는 주차장으로 클로즈업된다. 그곳에는 죽은 케이티를 추모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너무 늦은 ‘클로즈업’은 아들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어느 ‘유능한’ 형사의 무력감을 대변한다.
얼마 후 심리 전문가가 보호 시설에 수감된 제이미를 면담한다(3화). 전문직 여성인 그녀는 노동 계급에서 태어나 자신을 ‘무시’한 또래 여성을 살해한 제이미와 정반대에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의 숨 막히는 공방이 이어진다. 제이미는 자신을 ‘파악’하려 드는 전문가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궁금해한다(‘전문직’과 ‘노동 계급’ 사이의 긴장은 상담사와 보호 시설의 경비원 사이에서도 드러난다). 제이미는 다른 성별인 그녀가 자신의 범행 동기를 ‘이해’할 수 있을지 우려하기도 한다. 당신이 남자의 박탈감을 아느냐는 것이다. 면담이 진행되며, 제이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노동 계급 남성성을 갖춘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가 들어 있다는 점이 점차 드러난다. 다르게 말하면 ‘루저 남성성’이다. 제이미는 계급, 지위, 연령 등 여러 측면에서 여성 전문가와 대등하게 맞설 수가 없는데, 그는 특유의 영민함과 살인을 저지른 남성이라는 데서 오는 공격적 남성성으로 종종 상황을 반전시키기도 한다.
제이미는 이 대화가 불편하면서도 즐겁다. 대화를 이후에도 계속 이어가고 싶다. 그가 지금껏 해보지 못한 진솔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이해’받는 느낌을 얻고, ‘전문직 여성’과의 ‘관계’를 통해 루저 남성성의 결핍을 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는 몇 번의 긴장감 넘치는 밀도 높은 대화로 자기 일을 끝낸다. 그래서 더는 제이미를 만날 필요가 없다. 그녀는 면담을 마친 후 힘든 과제를 마쳤다는 듯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다시 제이미를 마주할 필요는 없다. 제이미는 폭주한다.
이 드라마에서 3화가 제일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왔다〉의 글쓴이와 3화의 전문가는 같은 입장을 취하고, 같은 정보를 전한다. 그들은 묻는다. 저 남자아이들이 도대체 왜 저러지? 대화 후 ‘이해’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보거나 들은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남자아이는 다시 외롭게 남는다. 기존의 분노와 박탈감은 더욱 커진다. 이 회차를 보고 나서, 수많은 글의 ‘분석 대상’이 되는 남자아이들이 왜 자신들을 ‘이해’하려 드는 사람들에게 그토록 커다란 반감을 갖는지 ‘이해’가 됐다. 누군가가 세계를 이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퍼즐 조각처럼 활용된다면, 나 역시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제이미의 분노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과 접속하고 대화하며 관계 맺을 필요성을 분명하게 환기한다. ‘계몽’의 의도를 내포한 접근이 아닌 그들의 생각과 마음에서 출발하는 내재적 접근, 즉 카메라의 방향 전환이 필요해 보인다.
드라마는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4화). 아빠의 생일날, 누군가가 가족의 자동차에 ‘강간범’이라는 낙서를 남긴다. 제이미의 가족들은 평생을 살아온 곳에서 낙인과 손가락질을 받는다. 아빠는 비눗물로 이 낙서를 지우려다 실패하고, 결국 분노에 차 페인트를 통째로 낙서 위에 쏟아버린다. 깔끔하지 않게, 얼룩덜룩 지워져버린 낙서는 이 가족이 마주한 현재와 미래의 은유다. 자동차가 달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계속 저 차는 왜 저렇게 더럽냐며 수군거릴 것이다. 엔딩은 그래도 자동차가 ‘달릴 수 있다’는 데 더 초점을 둔다. 부모는 이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 아닐까 자책하고, 특히 아빠는 남성성의 ‘건전한’ 계승이 실패했다는 데 좌절한다. 그러나 그 자책과 좌절 속에서도 남은 가족이 어떻게 용기와 희망을 길어낼 수 있는지를 작위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한다. 이렇게, 어느 청소년 루저 남성과 연관된 하나의 세계(학교, 가족, 남성성, 범죄)가 갈무리된다.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왔다〉의 글쓴이는 아들을 ‘구출’했고, 〈소년의 시간〉에서 남은 가족은 아들과 떨어진 채로 힘겹게 자기 자신을 지탱한다. 현실과 드라마라는 각자의 무대에서, 계급적·문화적 자원의 차이로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한 이 두 가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물음과 과제를 남긴다. 내가 얻은 결론은 이렇다. 〈소년의 시간〉과 같은 드라마는 카메라의 방향을 바꾸어서, 즉 ‘루저 남성’이 그에게 박탈감을 주는 대상을 바라보는 방향으로도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이해’ 혹은 ‘공감’ 혹은 ‘계몽’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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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잃은 딸들의 긴 우울
- 영화 <로스트 도터(2021)>는 배우 매기 질렌할의 감독 데뷔작이며, 제78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러한 권위적인 수식은 개개인의 솔직한 판단에 침묵을 강요하는 듯하여 썩 즐기지는 않으나, 영화를 감상한 후엔 각종 수상 이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로스트 도터>가 시의적절하게 제작 및 공개된 작품이라는 데엔 이견을 갖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특히 딸을 잃어버린 어머니조차 '잃어버린 딸'이라는 미아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그려내니, 이 작품은 어쩌면 세상이 잃어버린 모든 딸들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리라.포스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의 캐치 프레이즈 “딸을 버렸어요. 그리고 집을 나왔죠.”는 <로스트 도터>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물론 영화계에서 신화화된 모성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예컨대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2011)>를 경험했고, 봉준호 감독의 <마더(2009)>역시 보았다. 다만 앞선 두 작품은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모성의 불안정성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매기 질렌할의 작품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하기사, <케빈의 대하여> 혹은 <마더>에서 제시한 아들은 모두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이기도 하니 대립적 관계 형성이 더 쉬웠을 수도 있겠다만.어머니와 딸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서는 <레이디 버드(2017)> 등과 같은 영화를 통해 재현되었지만, 대개는 딸의 성장 서사를 기반으로 하는지라 세대갈등으로 해석하거나, 모녀관계는 본디 복잡하기 마련이라는 추상적인 표현을 하는 경우가 잦았다. 엔딩에서 미적지근한 화해라도 내비쳤단 뜻이다(<크루엘라(2021)의 경우 생물학적 어머니와 양어머니의 구분을 둠으로써 이러한 질문을 피해 간다). 이러한 점에서 <로스트 도터>는 적지 않게 유의미한 영화이다. 딸을 버린, 아니 가정에 소원한 어머니의 시점에서 영화가 전개되며 딸인 비앙카와 마사의 서사를 삭제하였고, 주인공인 레다(올리비아 콜먼)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적절한 발화를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정을 버린 어머니에 대해 고운 눈길을 보내지 않는 사회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 시대와 사람 앞에 이러한 자신이 존재하노라고 보여주는 방법 밖엔 없다.※ 스포일러 주의레다라는 개인우선적으로 레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레다는 이탈리아 비교문학을 전공한 학자이자, 그리스의 해변가로 휴가를 보내러 온 교수이다. 젊었을 적부터 빛나는 능력을 발휘한 그는 외모 역시 아름답다고 묘사된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레다가 매력적인 여성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로스트 도터>의 레다는 마흔여덟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매력적이라고 평가하며 본인 역시 반짝이는 젊은이들의 생기를 전혀 잃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레다는 한 두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굉장히 입체적인 인물이다. 해변가에서 조우한 니나(다코타 존슨)와 그의 가족들과 껄끄러운 첫인상을 남겼음에도 다음 만남에서 곧바로 화해하며, 니나의 가족이 위험한 사람이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굳이 그 무리와 거리감을 만들지 않는 담대함을 보인다. 영화관에서 소동을 피우는 남자를 강하게 비난하며 안내원을 부르는 장면은 레다가 어떤 인물인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듯 레다는 대체로 여러 계산을 한다기보단 자신의 직감이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인지 그의 선택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레다가 늘 자상하기만 한 단편적 인물이 아님에도 짧은 휴가 기간 동안 다양한 사건에 얽히게 된 데에는 타인의 오해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지적인 직업여성이라는 데에서 오는 확실한 정체성과 마흔이 넘은, 딸 두 명을 키운 어머니라는 이미지에서 흔히 연상하는 푸근함 따위로 레다를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 아니겠는가.당연하지만 시선은 언제나 주관적인 것인지라 레다 역시 해변가에서 만난 니나에게 자신을 투영한다. 딸을 사랑하고, 남편과의 관계에서 행복하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도망치고 하는 니나, 딸이 자신을 미치게 만든다고 털어놓는 니나는 레다의 젊은 시절과 몹시 유사하다. 또한 영화 초반, 해변가에서 니나는 딸을 잃어버리는데 이를 통해 레다는 오래전 바다에서 비앙카를 잃어버렸던 자신을 떠올린다.잃어버린, 아니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딸영화의 제목은 <로스트 도터>로 잃어버린 딸을 뜻한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이 영화는 어머니의 시선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어머니가 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묻는다. 어머니란 대체 무엇이기에 그들은 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을까? 젊은 레다(제시 버클리)가 남편 조(잭 파딩)에게 숨이 막히는 듯하다고 표현한 까닭은 무엇일까? 아니, '어머니 됨'이란 대체 무엇이며, 레다는 어째서 모성의 거부를 외칠 수밖에 없었을까?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어머니 됨'은 기본적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인데,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해진 요즈음이라지만 이 부담은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아무리 함께 가정을 꾸렸다 하더라도 돌봄 부담은 여성에게 부과되는 경우가 대다수이며, 이미 다수의 논문에서 기혼여성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에서 비롯되는 부담과 지나친 역할 요구로 인해 정신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밝혀진 바 있다(윤명숙, 유현경, 이수비. 2022). 영화 <로스트 도터>에서는 여성이 부딪히는 현실을 뚜렷하게 그려낸다. 레다는 남편 조와 마찬가지로 공부와 가정을 양립시키고자 하지만 뜻대로 일을 할 수 없다. 조는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으며 아내에게 가사와 양육을 미루고 출장을 가지만 레다는 출장을 가기 직전까지 가사도우미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내야 한다. 남편이 집을 비운 동안엔 둘째 딸의 울음에 몇 초만 기다려달라는 레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첫째 딸은 무한히 애정을 갈구하니 육체적/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린다. 논문, 혹은 번역과 같은 작업에 필요한 기간은 너무나 촉박하다. 모든 것이 그를 옥죄어온다. 이때 밝혀지는 한 가지 사실은, 레다 역시 그리 좋은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역시도 친정을 버리고 뛰쳐나온 딸 - 로스트 도터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이기지 못한 여성/어머니에게 배려와 도움을 내밀긴커녕, 억압만을 지속적으로 부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기에 레다의 우울은 더욱 길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이아름, 정정희(2021)에 따르면 양육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높아진 어머니의 경우 방임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레다 역시 한동안 가정을 떠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가 일시적으로 돌아간 순간에조차 잭은 레다에게 당근을 건네지 않는다. 그는 레다가 가정으로 돌아올 때 누릴 수 있을 생활의 안정을 제시하거나 양육 부담을 나눠줄 계획을 공유하긴 커녕 '자꾸 이렇게 행동한다면 아이를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환경인 레다의 어머니에게 두 딸을 보내겠다'라고 협박한다. 비앙카와 마사는 레다만의 딸이 아니라, 본인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돌봄 노동은 여전히 어머니의 몫이다.아울러 세상이 여성을 어떻게 프레이밍하려 하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은 하디 교수(피터 사스가드)와 레다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일 것이다. 하디는 유부녀를 유혹하면서도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자 레다에게 당신이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며, 딸과 전화하는 것이 달갑지 않다고 고백하는 레다에게 그런 식으로 이야기해선 안된다고 훈계하기까지 한다. 정리하자면, 자신은 완전무결하다고 합리화를 끝낸 하디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가정을 버리고 자신을 유혹하는 팜므파탈로서의 레다'라기보다는 '딸을 버리는 어머니로서의 레다'인 셈이다. 가족을 저버린 생활이 어떠했느냐고 묻는 니나에게 상상 이상이었다(It felt amazing.)고 대답했던 레다의 말엔 펼쳐놓기 어려운 감정과 시절이 모두 압축되어 있었으리라.길 잃은 딸들의 긴 우울레다가 젊은 자신을 회상하게 된 인물인 니나는 젊은 레다보다도 코너에 몰린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은 집을 자주 비우고, 시누이는 니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딸은 사랑스럽지만 인형 하나에 세상이 사라진 것처럼 행동하고 니나와 분리불안이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니나는 레다에게 묻는다. 이 감정, 우울증인지 무엇인지 모를 절망감이 끝내 지나가기는 하느냐고. 레다는 질문을 들은 순간에는 답하지 않다가, 영화 후반부에서야 대답한다. 지나가지 않으리라고.실제로 레다는 영화 내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영화 내의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니나의 딸 엘레나(아테나 앤더슨)가 잃어버린 인형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집착을 보인다. 영화는 이런 레다의 행동에 대해, 그리 편안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년 시절을 함께 이겨낸, 레다의 애착 인형 '미나(mini-mama)'가 비앙카와의 실랑이 사이에서 산산이 부서졌던 것이 주요한 원인일 것을 암시한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그의 과거를 니나와 라일(에드 해리스) 등과 같은 제삼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는 것이며, 레다 역시 자신의 행동을 뚜렷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계에서 인정받는, 이토록 놀라우리만큼 똑똑한 여자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설명하지 못하는 원인은 무얼까. 사회가 여성의 우울을 너무도 오랜 기간 방치하고 개인의 잘못으로 떠밀었기 때문이진 않을까. 세상은 지금껏 여성의 심리에 대해 적절한 언술을 하지 않았다. 마련된 단어가 없으니 레다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적합한 설명을 해낼 수 없다. 목을 조르는 듯한, 숨을 쉴 수 없는 듯한 갑갑함을 남편에게 이해시킬 수 없으며 엘레나의 인형을 숨겼다가 급작스레 니나에게 되돌려주는 이유를 마련하지 못한다.그러나 니나의 질문에 답함으로써 자신의 우울이 쉽사리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입 밖으로 꺼낸 레다는 영화 말미에서 스스로를 껴안는 데에 성공한다. 깊게 찔리며 상처입었더라도 말이다. 딸을 잃어버리며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중압감에 시달렸던 바닷가에서 쓰러지고, 파도가 오가는 틈 속에서 눈뜨며 딸과 연락하지만 그저 그뿐이다. 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과중한 책무를 느끼지 않는다. 과거로의 회귀를 갈망하지도 않으며 보편적 인식 속 모성애를 다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지도 않는다. 모래사장에 몰아치다가도 물러나는 파도처럼 감정과 삶은 동적인 연속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파도가 바위에 가닿고 동굴이 깎여나가는 것과 같이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지점들은 언제든 있기 마련이다. 그 시점에 맞추어 마땅히 물러나야 하는 때가 다가온다면 물러나는 것이 옳은 선택일 터다. 영화 중반에 등장한 여성 히치하이커의 말처럼, 우리의 일생엔 너무나 바보 같은 의무라는 이름의 일들이 산재해 있다("We are obliged to do so many stupid things.").나는 레다의 모든 족적에 대해 '옳았다'라고 말하진 않겠지만, '어머니'라는 역할을 깊은 고려 없이 무작정 관습적으로만 재생산해내고, 가정의 일엔 깊게 개입할 수 없다는 스탠스를 유지하는 사회 문화만큼은 재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문정(2021)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대해, 생물학적 양육과 정서적 안정을 주는 것 그 이상이라 표현했다. 어머니란 존재는 가사와 양육을 담당하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욕망하는 딸을 키워내고, 가정에 소홀하더라도 사회의 노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용인받는 아들을 키워내며 기존의 젠더 관습을 공고히 하는 강력한 매개자이기 때문이다. 특히 모성은 사회적 산물에 불과함에도 '본능'이란 단어와 함께 쓰이는데, 이러한 무책임한 모습은 버릴 때가 왔다(아니, 버릴 때가 한참 지났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올바른 양육법/어머니의 의무/모성의 바람직한 모습은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으며, 미국의 임상심리학자 다시 로크먼은 자신의 저서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을 통해 '엄마가 접하는 사회적 세계가 엄마의 행동을 형성한다'고도 썼다. 사회 관습적 어머니 역할을 거부하는 여성을 젠더 질서를 교란시키는 문제적 인물로만 낙인찍을 때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돌이켜보아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딸들을 편안한 말로 외면하고 억압해왔는가?참고문헌김문정 "『여자의 전부』에 나타난 모성의 거부와 젠더 질서의 교란" 어문론집 85 pp.239-261 (2021)윤명숙, 유현경, 이수비 "미혼 성인자녀 둔 여성의 돌봄 부담과 스트레스, 우울의 관계 : 남편 돌봄분담 만족의 조절된 매개효과" 정신건강과 사회복지 50.2 pp.145-169 (2022) : 145.이아름, 정정희. "어머니 양육스트레스와 유아 문제행동의 관계에서 어머니 우울의 종단적 매개효과".열린유아교육연구,26(3),37-62. (2021)★★★★* 본 리뷰는 씨네랩 크리에이터로서 시사회에 참석하여 감상한 후, 주관적 견해에 따라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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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받지 못한 자
영화를 서너 번 봤지만, 이번에 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이 영화를 생각했다.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거의 드러나지 않는 여성들이 있다. 기존의 영화 해석에서는 주인공 윌리엄 머니의 심리적 변화와 기존의 서부영화가 보여주었던 전형적 틀을 깨는 새로운 형식의 서부영화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영화는 몇 가지 점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과거 미국 서부영화에서 뛰어난 총잡이로 활약해 왔고, 영화, TV 시리즈에서도 머플러를 휘날리며, 시가를 물고 악당들을 쓰러뜨리는 총잡이의 아이콘이었다. 심지어 그는 이탈리아에서 만든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도 출연해 미국 서부영화를 희화화하는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존 웨인 이후 서부영화의 주인공으로 깊게 각인된 인물이다.
이 영화는 과거 화려했던 총잡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총을 놓고 시골에서 농부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물 간 과거의 총잡이 윌리엄 머니는 어린 아들과 딸을 키우며 외진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인공 윌리엄 머니 역을 맡은 것은 필연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다른 배우라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건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과거에 유명하고 잘 나가던 총잡이였기 때문이며, 그 인물이 시간이 흘러 퇴물이 된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 감독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퇴물이 된 윌리엄 머니는 몰락한 서부영화를 상징하며, 이제는 흘러간 한 시대의 영화(榮華)에 조종(弔鐘)을 울리는 영화다. 이야기 전개는 단순하다. 시골에서 평범한 농부로 살아가던 윌리엄 머니에게 스코필드 키드가 찾아와 함께 돈을 벌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윌리엄 머니는 거절한다. 그가 다시 말을 타게 되는 동기는 크게 두 가지다. 키우던 돼지가 콜레라에 걸려 죽게 되면서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 돈이 필요하게 된 것과, 스코필드 키드가 말한 내용에서, 카우보이에게 어떤 여성이 칼로 난자당했다는 말 때문이다.
영화가 시작하면서 나레이션이 나오는데, 이 나레이션은 처음과 끝에만 나온다. 나레이션은 윌리엄 머니가 어떤 인물인가를 짧고 강렬하게 표현하는데, 여기서 관객이 알 수 있는 내용은 윌리엄 머니가 총을 버리고 시골에 정착하게 된 것은 그의 아내 때문이며, 아내는 두 아이를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악당은 개과천선해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그를 개과천선하도록 만든 사람이 그 악당의 아내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언듯 봐도 윌리엄 머니의 두 아이 - 딸과 아들 -는 어리다. 나이로만 보면 윌리엄 머니에게는 손자처럼 보인다. 그의 아내는 겨우 스물 아홉살에 세상을 떠났다. 윌리엄 머니와 아무리 적어도 20년 이상 나이 차이가 나는데,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윌리엄 머니를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시켰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윌리엄 머니는 죽은 아내를 극진히 사랑하고 있으며, 그는 아내를 만난 이후 11년 동안 총을 잡지 않았다. 그러니 아들의 나이는 많아야 열한 살일 것이고, 딸은 여덟, 아홉 살 정도로 보인다. 윌리엄 머니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 때문에 가능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그는 아내를 만나 과거와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그의 과거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의 인성이 하루아침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잔인하고 흉포한 인간이지만, 그것이 타고난 인성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그의 삶 전체가 어떤지 관객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여성들이다. 영화의 시작과 끝에 모습은 나타나지 않지만 윌리엄 머니의 아내가 중요하게 드러나며, 윌리엄 머니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동기는 빅 위스키에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이 내건 현상금이다. 1870년대 와이오밍주는 준주였으며 미합중국에 포함되기 직전이었다. 이때도 인구가 많지 않았지만, 현재 와이오밍주는 인구가 50만 명에 불과한, 아주 작은 주정부다. 중서부의 거친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법보다는 주먹이 가까워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총을 가져야만 했다.
남성들은 총을 갖고 싸우거나, 처음부터 총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강도떼와 살인자들이 날뛰면 현상금 사냥꾼들이 그 뒤를 쫓았던 시대였다. 보안관은 그 지역의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으로, 이 영화에서 '리틀 빌'이 그런 인물이다. 리틀 빌도 과거에는 무법자, 범죄자로 살았지만, 운이 좋아서 작은 마을의 보안관이 되었고, 그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남성들의 폭력이 난무하던 시대에서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보통은 평범하게 살았지만, 살기 어려운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많지 않았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여성이 성매매를 하게 되는 원인은 가부장사회의 구조적 압력 때문이다. 즉, 사회가 여성을 성매매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빅 위스키에 사는 여성들도 자신들이 원해서 성매매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포주에게 묶여 있는 몸이며, 카우보이에게 얼굴을 난자당한 여성은 심각한 피해자였음에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포주가 카우보이에게 말을 일곱마리 받는 것으로 보안관 리틀 빌이 판결한다. 여성은 피해당사자였음에도 마치 유령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포주는 여성들을 '재산'이라고 말한다. 즉,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보안관 리틀 빌 역시 여성들을 무시하고, 여성을 가해한 카우보이의 행동을 인정하고 용서한다. 이것은 명백히 남성우월주의자의 모습이며, 여성이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일방으로 당하기만 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단결해 가해자인 카우보이를 응징하겠다고 나선 것은 이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강력한 동력이 된다. 여성들은 힘들게 모은 돈을 현상금으로 내놓고, 두 명의 카우보이를 죽이는 사람에게 돈을 주겠노라고 소문을 낸다.
여성들이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천한 일-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을 하지만, 스스로 자존과 명예를 지키려는 그들의 최소한의 행동이었다. 자신들(여성들)을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된다는 걸 본때를 보임으로써 다른 남자들이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효과도 노린 것이다.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애송이 스코필드 키드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 청년은 왕년의 총잡이 윌리엄 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었고, 그와 함께라면 카우보이 두 명을 쉽게 처치하고 무려 1천 달러라는 거액을 둘이 나눠 가질 수 있을 거라 계산했다.
하지만, 스코필드 키드가 윌리엄 머니를 발견했을 때, 윌리엄 머니의 몰골은 형편 없었다. 다 늙어가는 시골 촌뜨기 농부였고, 자기 몸도 온전히 가누지 못하는 퇴물 늙은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키드는 함께 할 생각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따라오라고 말하고 먼저 길을 떠난다. 윌리엄 머니는 옛 동료 네드 로건과 함께 키드를 따라간다. 윌리엄 머니의 과거를 가장 잘 아는 네드 로건은 원주민 여성과 둘이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 그 역시 윌리엄 머니와 함께 온갖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지만, 지금은 평범한 늙은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현상금을 노린 세 명은 어렵게 빅 위스키에 도착하지만, 윌리엄 머니는 차가운 빗속을 오는 동안 심한 몸살을 앓게 되고, 여기에 리틀 빅에게 걸려 호되게 엊어 맞고 마을에서 쫓겨난다. 키드와 로건은 2층에 있는 여성들을 찾아 올라갔다가 리틀 빅에게 걸리지 않고 도망하고, 셋은 마을 외곽 허물어진 집에서 겨우 모일 수 있었다.
이 세 명의 현상금 사냥꾼을 돕는 사람도 역시 여성들이다. 특히 윌리엄 머니는 리틀 빅에게 죽을 만큼 구타당하고, 몸살까지 앓아서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여성들이 돌아가면서 간호하고, 구완해 정신을 차린다. 즉, 이 영화에서 서사가 이어질 수 있는 바탕에는 여성들의 헌신이 깊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들의 헌신은 사건에 묻혀 관객에게 인식되지 않는다.
카우보이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윌리엄 머니가 쏴죽이고, 다른 한 명은 스코필드 키드가 쏴죽인다. 총잡이라고 큰소리 치던 스코필드 키드는 화장실에 쭈그려 앉은 카우보이를 쏴죽이고, 처음 사람을 죽였다고 머니에게 고백한다. 결국 로건도 살상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키드도 현상금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남은 건 윌리엄 머니.
그가 다시 총을 잡게 되는 동기는 오랜 친구 로건의 죽음 때문이다. 이 정보를 알려준 사람도 역시 여성이다. 마을 보안관 리틀 빅과 그 일당에게 사로잡힌 로건은 모진 고문을 당하다 죽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머니는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폭발한다. 그는 아내를 만난 이후 술을 끊었지만, 로건이 죽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술을 마신다.
이후 벌어지는 쌀롱에서의 결투는 과거 서부영화에서 보여준 화려하고 멋진 결투가 아니라, 그저 개싸움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참혹한 살인 장면이다. 이것 역시 감독의 의도이며, 서부영화는 더 이상 멋지고 화려한 총싸움도 아니고, 과거의 서부영화가 보여준 환상에서 깨어나라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장면들이다.
윌리엄 머니는 뛰어난 총잡이가 분명하지만, 그는 총을 잘 쏜다기보다, 죽음 앞에서 초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었다. 리틀 빅 일당은 총을 쏘기는 해도 이미 당황하고 있으며, 윌리엄 머니의 명성에 기가 죽었고, 총에 맞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다보니 명중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윌리엄 머니는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며, 냉정한 태도로 정확하게 상대를 향해 총을 쐈고, 다섯 명을 빠르게 해치울 수 있었다.
싸롱 밖에도 리틀 빅 일당이 있었지만, 윌리엄 머니는 당당하게 외친다. 자신을 향해 총을 쏘면, 그 사람의 가족, 친구도 모두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엄포였다. 이건 실제 벌어지지 않겠지만, 충분히 공포를 느낄 만큼 윌리엄 머니의 과거 악행은 유명했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자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을 남기며 사라진다. 결국 윌리엄 머니가 꼭 하고픈 말은 이 마지막 말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실화는 아니지만, 윌리엄 머니가 빅 위스키의 악당들을 모두 처치한 이후 와이오밍주는 미국연방에 포함되고, 여성들의 참정권은 미국연방 가운데 가장 먼저 시작되었으며, 악당이 보안관을 하는 불법도 사라지게 된다. 즉, 미국의 흑역사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윌리엄 머니는 두 아이와 함께 살던 곳을 떠나고, 소문에 의하면 캘리포니아주로 갔다고 한다. 와이오밍에 남았던 사람들은 금 때문에 온 경우가 많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금광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와이오밍을 찾았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남았고, 많은 사람들은 서쪽 끝 캘리포니아까지 갔다. 윌리엄 머니 역시 더 이상 와이오밍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고, 신변의 위험도 느꼈을 것이다. 그는 도시에 정착해 평범한 노동자가 되지 않았을까. 그가 마지막으로 총을 잡은 건, 그가 갚아야 할 빚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삶에서 진 빚은 피로 갚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최소한 아내에게 부끄럽지 않은 남자가 되고 싶었던 그의 마음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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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하는 모든 다큐들에게.
N년차 OTT 구독자로서, 넷플릭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다양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다큐멘터리를 제일 좋아하는데, 항상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볼 때 어딘가 아쉬운 몇 % 의 부분들을 마저 채워주는 느낌이다. 그동안 봐왔던 몇 가지 인상 깊었던 다큐멘터리를 소개하겠다.
1. 섹스토피아(2017)
원제_Liberated: The New Sexual Revolution
미국 대학생들의 성에 대한 인식과 문화의 민낯을 확실히 알려준 다큐. 감독이 무작정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대학교 봄방학을 즐기는 모습을 촬영한다. 우리나라에 비해 성에 대해 다소 개방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아무 생각 없이 가벼운 만남을 추구한다는 것에 사실 좀 많이 충격을 받았다. 이제는 '사랑'의 개념과는 많이 멀어진, 그저 단순한 즐거움을 위해 하루를 이름도 모르는 사람과 보내는 것이 다반사 된 그들의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사람을 한 인격이 있는 개체로 보지 않고, 그저 자신을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보는 비정상적인 생각이 일반화되고 있다. SNS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에서 비추는 고정적인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게 되고, 소외되지 않기 위해 평소에는 하지 않을 법한 행동들을 하는 그들을 보면서 어딘가 씁쓸함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여성들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바닷가에서 페스티벌을 즐기는 내내 그들은 남자들의 무차별적인 접촉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하고, 너무 대놓고 이상한 행동을 요구하는 사람들에 맞서 대항하고, 당황해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진정한 해방이란 외적으로 무언가를 드러내고 과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치와 몸을 되찾고 심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이런 실상을 촬영하고 있던 시기, 해당 구역에서 집단 강간 사건이 일어나 큰 파장을 일으킨다. 오히려 피해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 그 상황을 촬영하고 방관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크게 분노한다. 정말 점점 미친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최근에 봤던 다큐멘터리 중에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은 작품이다.
2. FYRE: 꿈의 축제에서 악몽의 사기극으로(2019)
원제_Fyre
FYRE, 이 축제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용두사미이다. 셀럽 모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제껏 경험할 수 없었던 엄청난 규모의 축제인 양 홍보를 해놓고, 막상 초대받은 인플루언서들이 도착했을 때는 기본적인 주거시설조차도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음악 페스티벌 하나를 준비하는데 드는 사람들의 노력과 수많은 비용을 한 사람의 무지와 우매함으로 인해 물거품으로 만든 최악의 비극적인 사건이다. 최근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고, 처음 균열을 발견했을 때에도 그저 강압적으로 축제만 진행하면 된다는 식으로 마구 밀어붙인 대표의 태도에 말을 잃게 된다.
직장인으로서 개인적으로 사건의 흐름보다는 이 페스티벌을 담당하게 된 수많은 직원들이 겪는 심적인 고통과 스트레스에 나도 모르게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다. 마치 마감일이 다가왔는데도 기본적인 틀조차 무시한 채 그저 마무리만 하면 된다는 상사에게 시달리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심지어 급여 문제도 있어서 기존에 받기로 했던 금액조차도 받지 못하고 일을 진행해야 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 사건이 끝난 후 지금까지 트라우마와 심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무엇보다 그 축제에 초대받은 인플루언서들에게는 정말 인생에 몇 없을 비극적인 일 중 하나였을 것이다. 최고급 숙박을 제공한다는 것과 엄청난 게스트들이 등장한다는 사실에 한껏 기대하고 도착한 곳은, 왠 짓다 만 텐트였던 것이다. 심지어 방수시설도 되어 있지 않아 물이 새고,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었다고 한다. 대표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사기꾼인 게 분명하다. 제일 화가 나는 포인트는 이 모든 사건에 대한 판결 이후이다. 결국 이 대표는 보석금을 내고 풀려나고, 지금은 또 다른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제2의 Fyre 사기극을 준비할지도 모르는 법이다. 오히려 핵심 사건보다 그 이후의 근황을 보는 게 더 힘 빠지는 일인 것 같다.
3. 슈퍼맨 각성제(2018)
원제_Take Your Pills
각성제라고 불리는 '애더럴'을 포함한 약물들의 남용 사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나 또한 고등학교 입시 생활을 할 때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적은 있지만, 각성제를 주기적으로 먹어본 기억은 없다. 이미 지나치게 경쟁을 하고 있지만, 일종의 부스터로 각성제라는 옵션을 추가하게 된 사회를 카메라에 담는다.
이런 것에서도 사회 구조가 드러나는 점이 흥미롭다. 고소득층의 자녀들은 여러 가지 과외를 받으면서 좋은 점수를 받을 기회가 비교적 많아지는데, 소득이 낮은 부모의 자녀들은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만 성적을 감당해내야 한다. 좋은 점수는 받고 싶은데, 자신이 없을 때에는 이런 약의 힘을 빌려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아이들의 인터뷰가 놀라웠다. 이 또한 어떻게 보면 부정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격차를 줄이기 위한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한다. 또한 ADHD가 있는 아이들이 애더럴을 섭취하게 되면 집중력이 좀 더 좋아진다고 믿는 부모들도 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의 예술적 재능이 약을 통해서 더 잘 발현되었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약을 먹어야 하는 게 정말 싫었다고 말한다. 그 아이는 거의 10년간 약을 먹어왔는데, 실제로 이렇게 약에 의존하는 아이들의 수가 상당하다고 한다. 너무 어릴 때부터 약에 길들여지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것보다는, 순간의 완화 효과 때문에 득을 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제법 많은 것 같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애더럴은 필수 요소가 되어가고 있다. 특히 증권사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먹는 약들 중 하나라고 한다. 대체 경쟁에서 이기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길래 다들 이렇게까지 하는지, 경각심까지 들게 한다. 심지어 어떤 제약회사에서는 업무 효율을 증가시켜주는 약을 개발 중이라고 말한다. 이제는 약으로까지 경쟁하는 시대라니, 다음엔 뭐가 될지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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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리뷰/해석:동성애에 대한 시선을 바꿔준 영화, 사랑에 조건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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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너무 볼만한 영화를 본거 같습니다. 영상이 길지만 시청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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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로스트 인 스페이스> 공식 예고편
《로스트 인 스페이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시즌의 공식 티저 예고편. 모든 에피소드 곧 공개 예정. 오직 넷플릭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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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밥 말리: 원 러브> 티저 예고편
영원히 기억될 목소리 [밥 말리: 원 러브] ? 시대의 아이콘 #밥말리 가 2024년 극장으로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