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oDAY2022-08-30 07:52:14
올림픽과 전두환을 반추하기에는 너무 얕다
넷플릭스 <서울 대작전> 리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불법 운송 사업을 하며 돈을 벌던 레이서 '동욱(유아인)'과 엔지니어 '준기(옹성우)'. 그들은 양손에 큰돈을 쥔 채 올림픽을 앞둔 1988년 서울로 돌아온다. 그러나 절친 '복남(이규형)'을 비롯해 동욱의 여동생인 '윤희(박주현)'과 디제이 '우삼(고경표)'를 만난 반가움도 잠시, 상계동 판자촌을 무단으로 철거하는 등 기대와 다른 서울의 모습에 그들은 실망을 금치 못한다. 그러던 중 동욱과 '상계동 슈프림팀'의 행보를 눈여겨보던 '안 검사(오정세)'는 전두환의 비자금을 추적하는 비공식 작전을 그들에게 제안하고, 일생의 꿈인 아메리칸드림을 이룰 기회를 잡기 위해 상계동 슈프림팀은 서울 도심을 질주하기 시작한다.
상업 영화의 예술성은 대중의 열망이 반영되는 지점에 달려 있다는 말이 있다. 상업 영화는 최대한 많은 관객을 유인해 최고의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때 개봉 당시 다수의 대중이 공유하는 감정과 열망, 환상을 화면에 녹여내면 자연히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고, 그래서 많은 상업 영화는 공동체의 집단적 경험을 비추는 창이 된다. 예를 들어 <터널>, <판도라> 같은 한국의 재난 영화는 세월호 사고를 다양한 방식으로 소환한다. 정부와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은 할리우드식 구원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대중적 인식을 스크린 속에 녹여낸다. 최근 흥행에 실패한 <비상선언>의 사례는 세월호 사고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과 열망이 점진적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역으로 의의가 있다.
이러한 상업 영화의 특성은 정치적 맥락에서도 유효하다. 실제 역사 속 정치적 인물이나 사건과는 별개로 해당 사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을 영화는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두환 씨가 대표적이다.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정당성 없는 대통령이자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자인 그는 사망 전까지 추징금도 다 갚지 않았고, 광주 시민들에게 제대로 된 사죄의 뜻을 밝힌 적도 없다. 또 이미 사망했기에 그에게 죗값을 물릴 수단도 없다. 영화는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과오를 심판할 수 있다. 그의 사망 전에 제작된 작품이기는 하나 <26년>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이 그를 암살하려는 이야기를 다룬다. 최근에 개봉한 <헌트>만 하더라도 그를 처단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온당한 처사임을 암시한다.
서울 올림픽과 전두환의 관계를 되짚다
8월 26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서울대작전>도 같은 맥락 내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끝내 환수하지 못한 그의 추징금을 탈취하는 카 레이싱 액션은 판타지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의의 심판이나 다름없다. 특히 영화가 88년 서울 올림픽을 배경으로 삼은 것은 영리한 선택으로 보인다. 단지 작품의 핵심 포인트인 레트로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부각하게 적합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서울 올림픽은 전두환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본래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로 인한 불안한 민심을 수습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권의 2인자인 노태우 전 대통령까지 투입하며 올림픽 유치에 몰두했다. 그러나 정권의 방패막이가 되어야 했던 서울 올림픽은 오히려 전두환 정부를 찌르는 칼이 되어 버렸다. 올림픽을 위해 많은 외신이 서울에 들어와 있던 관계로 87년 항쟁 당시 개최가 취소되거나 개최지가 변경될 것을 우려한 정부는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결국 이는 민주화 개헌과 전두환의 실각으로 이어졌다. 올림픽 유치에 전념했던 전두환이 정작 개회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것은 서울 올림픽과 전두환 정부의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서울 올림픽 개막을 목전에 둔 시점을 배경으로 비자금을 몰래 빼돌려 피신하려는 전두환을 끝까지 추격해 심판하는 스토리는 합당한 역사적 심판이자,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낼 영화적 상상력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중반부가 대체 역사물 같은 인상을 주며, 실제 역사와는 달리 모든 비자금을 잃고 백담사에 갇힌 그의 무력한 모습이 냉소를 자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음새가 헐거운 스토리텔링
그러나 <서울대작전>은 과거의 무게를 짊어지기에는 부족했던, 깊이가 얕은 액션 영화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흡입력 있는 소재의 잠재력을 설득력 있게 구체화하는 데 실패한다. 문제는 스토리텔링의 측면과 장르적 관습 두 가지다. 우선 <서울대작전>은 동욱을 비롯한 상계동 슈프림팀의 아메리칸드림과 전두환의 비자금이라는 상이한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올드카를 사랑하고 카 레이싱을 즐기며 힙합에 빠진 만큼이나 화려한 뉴욕 브롱스 힙합 패션을 입고 다니는 이들. 그들은 필(Feel)과 소울(Soul)이 넘치는 문화의 본거지 미국을 동경하며, 자유와 멋이 가득한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
하지만 전두환을 잡아들이려는 야망 가득한 안 검사에게 사우디에서 벌어들인 불법 외화를 비롯한 여러 범죄 행각을 들킨 후 그들은 전두환을 심판하는 비밀 작전에 투입된다. 이때 영화는 머리에 총구가 겨누어지고, 동료가 납치당하는 와중에도 목숨을 걸고 전두환의 비자금을 쫓는 그들의 동기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 안 검사에게 코가 꿰였다고 한들, 그들은 이미 당대의 사회적 고찰, 인식, 성찰과는 거리가 먼 행적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들이 돌연 역사에 먹칠한 독재자를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정의감을 발산하게 된 계기는 쉬이 납득되지 않는다. 작중 불과 1년 전인 87년 항쟁과 관련해 어떠한 언급도 등장하지 않기에 레이싱 패밀리가 정의의 화신이 되는 전개는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이미 갖고 있던 좋은 패를 영화가 활용하지 못했기에 더욱 의아하기도 하다.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경기장 건설 및 달동네 환경정비 및 재개발이라는 명목하에 수많은 주민을 길거리로 내몬 바 있다. 성화 봉송 중 불량주택이 보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판잣집을 무단으로 철거하기도 했으며, 그중에는 상계동 천막촌도 포함된다. 사우디에서 귀국한 동욱과 준기가 자신들의 터전이었던 상계동이 초토화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도입부는 이 사건을 반영한다.
이 장면은 전두환 대 상계동 패밀리의 대립을 더 직관적이고, 감정적이고, 무게감 있게 묘사할 기회였다. 주인공들이 무력한 약자이자 피해자임을 강조해 그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절실함을 더 부각할 수 있었다. 올림픽을 이유로 장애인과 노숙자를 탄압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과 연계해 정의감에 기대는 대신 더 날카롭게 비판을 가할 수도 있다. 이에 더해 라이벌이자 앙숙으로 등장하는 동욱과 '갈치(송민호)'가 협력하게 되는 계기를 더 자연스럽게 풀어낼 윤활유가 될 수도 있었다. 이 기회를 모두 놓쳤기에 <서울대작전>의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이음새가 헐겁다는 인상을 준다.
과해 보이는 장르적 유사성
한편 장르적으로 독창성이나 신선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문제다. 특히 레이싱 액션의 대표주자인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그림자가 짙다. 일례로 작중 카 레이싱이나 체이싱 시퀀스 속 장면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매우 유사하다. 전두환의 조직에 가담하기 위한 시험으로 등장한 도심을 가로지르는 레이싱 장면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다. 작중 남서울 공항에서의 액션 시퀀스는 시작부터 끝까지 그 구성과 순서가 시리즈의 6편인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의 공항 액션 시퀀스와 흡사하다.
또한 캐릭터의 구성도 <분노의 질주>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 동욱은 단단하고 뜨거운 가족애와 동료애로 무장한 리더 '도미닉 토레토(빈 디젤)'와 역할이 같다. 동욱의 여동생인 윤희는 도미닉의 여동생인 '미아(조다나 브루스터)'를 연상시키며, 그녀가 유달리 오토바이를 애용한다는 점은 토레토 크루의 다른 여성인 '지젤(갤 가돗)'과 닮았다. 동욱의 절친인 복남은 리더 못지않게 뛰어난 레이싱 실력을 바탕으로 그를 충실히 보좌한다는 점에서 <분노의 질주>의 또 다른 진주인공 '브라이언(폴 워커)'과 대동소이하다. 기술자인 준기나 DJ인 우삼은 쉴 틈 없는 개그 콤비인 '로만(타이리스 깁슨)'과 '테즈(루다크리스)'를 보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비공식 수사를 펼치는 안 검사는 작전 기획부터 정보와 차량 지원에 이르기까지 '미스터 노바디(커트 러셀)'를 빼닮았다.
이에 더해 80년대 음악으로 가득한 카세트테이프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 것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음악과 드라이브의 조화를 강조하는 연출은 또 다른 카 레이싱 액션 영화인 <베이비 드라이버>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 속 장면을 배경만 바꾸어 활용하는 연출은 한국 영화의 고질병 중 하나다. <탑건>의 한국판이라 할 수 있는 <R2B: 리턴 투 베이스>, <300>과 <킹덤 오브 헤븐>의 액션 시퀀스를 그대로 가져와 배경만 고구려로 바꾼 <안시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기술력이 좋아졌다 한들 독창성이 느껴지지 않는 문제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서울대작전>의 만듦새와 구성은 자연히 얄팍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서울대작전>은 전반적인 설정과 톤을 잘못 맞춘 듯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중 동욱과 그의 팀, 갈치와 그의 팀은 제각기 카센터를 운영하는 자동차 마니아들이다. 이는 미국의 차고 문화를 한국에 맞게 현지화한 듯 보인다. 그러나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 차고 문화는 보편적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따라서 차를 매개로 맺어진 우정이나 가족 의식, 연대감은 자세한 설명 없이는 온전히 전달되지 않고,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들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기도 힘들다.
또한 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하더라도 충분히 다루고자 했던 이야기를 소화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프닝부터 엔딩 크레디트에 이르기까지 빼곡히 삽입된 힙합 음악의 분위기처럼 <서울대작전>은 시종일관 유쾌하고 과시적이고 과장된 멋을 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에 비해 캐릭터들은 붕 뜨고, 송민호를 위시한 여러 배우의 연기도 부자연스러우며, 특히 '강인숙(문소리)' 회장이나 '이현균(김성균)' 실장처럼 무게감을 잡아야 할 악역들은 우스워진다. 그 결과 전두환에 대한 가상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클라이맥스는 기대에 비해 쾌감이 그리 크지 않다. 이처럼 그럴싸한 아이디어에서 힘차게 출발한 <서울대작전>의 질주는 역사의 무게 앞에서, 그리고 잘못된 튜닝으로 인해 간신히 결승선에 도착하는 데 그치고 만다.
D(Dreadful, 끔찍한)
실패하는 지름길만 골라 달려 나가는 88년도 한국판 <분노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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