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엘2022-09-01 19:10:52
[SIWFF 데일리] 레즈비언 축구팀의 이야기!
우리의 작고 친밀한 방
감독: 케테반 카파나데
출연: 조지아의 어느 도시의 레즈비언 축구팀
시놉시스
우리의 작고 친밀한 방이라는 이 영화는 레즈비언 축구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이 레즈비언들은 성소수자 혐오 단체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아간다. 자신들은 도덕주의자를 싫어하는 듯한데 아마도 유럽의 분위기가 진보적인 성향이 있다 보니 동성애자들을 혐오하기도 하지만 하나의 성적 취향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을 듯하다.
이 레즈비언들은 축구팀을 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뽐낸다. 여자들로 이루어진 축구팀이라도 남자 축구팀보다 실력이 없는 게 아니다. 다만 이들은 자신이 성적 소수자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가끔씩 성적 취향에 대해 논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점점 동성애에 대한 논쟁을 격렬하게 하며 성적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것에 무뎌진다.
어떤 한 축구팀 멤버는 자신이 여성이지만 보이쉬한 헤어스타일과 남자처럼 옷을 입으며 다닌다. 자신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그러한 모습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레즈비언들이 서로를 안거나 키스하는 것을 보여준다. 담배도 거리낌 없이 피면서 술도 마시고 파티를 한다. 아마도 이 영화가 주는 메세지는 동성애자들을 다루지만 자신이 어느 틀에 얽매이지 않고 싶다는 메세지를 주는 것 같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08/25(목) - 09/01(목)
2022-08-27 20:30 - 21: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8관
2022-08-29 19:30 - 20:44 메가박스 상암월드컵경기장 4관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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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트로 분위기 속 경쾌한 액션
성장기에 엄마는 절대적인 존재다. 부모이기에 앞서 여러 가지 행동과 선택을 보고 따라 할 수 있는 스승 같은 존재로 그가 걸어가는 삶의 모습은 아이에게 그대로 영향을 준다. 아이는 부모가 하는 일이나 행동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고 비슷한 직업을 갖게 되거나 그 영향을 받아 자신의 일을 찾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또한 보호자로서 가장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인 엄마는 아이에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엄마는 아이 옆에서 많은 것을 해줄 수 있는 존재다. 사랑하는 사람이고, 보호자이면서 스승이다.
그런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아이는 굉장한 혼란 속에 살게 될 것이다. 그간 엄마가 해주었던 모든 일들을 받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절망 속에 보내다 자신만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느 정도 의식이 있는 청소년 정도의 나이라면 아이는 엄마에게 배웠던 것을 이용해 자신의 다음 삶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엄마가 했던 일들, 행동들을 떠올리며 자신 만의 커리어를 만들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간다. 그런 일련의 활동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고 하더라도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타인에 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잠적해 버린 엄마를 잊고 스스로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사라진 엄마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샘(카렌 길런)은 킬러 생활을 하는 엄마 스칼렛(레나 헤디)을 보며 성장기를 보냈다. 성장기의 어느 시점, 스칼렛은 갑자기 샘을 떠나 잠적해버린다. 그 후 샘은 떠난 엄마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하면서 성인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사라진 엄마에게 엄청난 서운함과 무수한 질문을 가지고 있지만 엄마와 똑같은 일을 택해 같은 길을 걸어간다. 그의 차가운 말투와 넘치는 에너지는 스칼렛이 가지고 있던 모습이다. 자신의 일을 할 때, 그에겐 상대방을 향한 감정이 전혀 없어 보인다. 누구도 믿지 않고 자신의 일을 하는 그의 모습은 한 편으론 여전히 엄마를 잃고 슬퍼하는 소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샘을 돕는 회사의 간부인 네이선(폴 지아마티)은 과거 스칼렛을 도와줬고, 이제는 샘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독립적으로 일하는 지금의 샘에게 네이선의 도움은 필요 없어 보인다. 영화에서 회사라고 불리는 청부살인 업체의 간부는 모두 남자가 중심이 된다. 특히 그 중심에 있는 대표자 격인 네이선은 선한 의도를 가진 듯 보이고 마치 아버지가 하는 것처럼 샘이 가야 할 길을 지정해 알려준다. 하지만 영화가 전개될수록 네이선이 가진 의도가 회사라는 시스템 보호라는 것이 천천히 드러난다.
사실 네이선은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게 함으로써 만들어진 안정감을 구성원들에게 제공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켜나갔던 인물인지 모른다. 그가 만든 그 안정감은 한순간에 엄마가 사라진 샘에게 어느 정도 의지할 구석을 만들어줬다. 그렇게 형성된 안정감은 샘에게도 실력 있는 킬러라는 직업의 전문성을 만들어주게 된다. 그런데 그 회사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에게 가진 신뢰는 깨지기 마련이다. 영화 속에서 샘이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어떤 사건은 회사의 안정적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일이다. 다시 그 안정을 찾기 위해 네이선은 샘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기반성 없는 보수적 시스템과 철저한 자기반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조직
영화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다르게 보면 시스템의 안정을 강조하는 가부장적 조직과 대결을 벌이는 여성들에 대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회사로 명칭 되는 조직을 움직이는 이들은 모두 남성들이다. 그리고 그 회사의 안정을 깨트려 부도덕을 드러내고 대결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이렇게 이 영화를 남성과 여성의 대결로도 볼 수 있겠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보수적인 시스템과 진보적인 사람들 간의 대결을 담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보수적인 시스템은 영화 속에서 한 순간도 반성을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정화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반면 시스템과 대항하는 입장에 있는 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여러 차례 사과하며 반성한다.
샘의 반성을 이끄는 건 그가 죽인 어떤 인물의 딸인 에밀리(클로에 콜맨)이다. 실수로 에밀리의 아빠를 죽였지만 그 이후 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찌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처럼 갑자기 혼자 남겨진 에밀리를 보며 그를 지키기 위해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또한 후반부에 샘을 돕는 조력자로 다시 등장하는 엄마 스칼렛, 애나(안젤라 바셋), 플로렌스(양자경), 매들린(칼라 구기노)은 그들의 위치와 지위를 정확히 인지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면서 시스템에 대항해 싸운다.
영화의 전반적인 등장인물과 구성을 보면 영화 <존 윅> 시리즈가 떠오른다. <존 윅>에서 킬러들이 도움을 받는 호텔은 이 영화에서 도서관이 되고, 킬러들에게 임무를 주고 대가를 주는 회사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존 윅>은 개인과 시스템의 대결이 좀 더 강조된다면,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시스템에 반기를 든 작은 조직이 대결을 한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존 윅>에는 꽤 유능한 킬러들이 존 윅을 죽이기 위해 대결을 자처했다. 하지만 <건파우더 밀크셰이크>의 조직에서는 그런 유능한 킬러가 등장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위기를 맞은 시스템을 지켜줄 유능한 존재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샘과 친구들을 제거하려 하는 건 시스템의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의 경쟁 조직을 이끄는 인물이다. 이런 무능한 시스템은 영화의 전반적인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영화의 구성이 어떠하든 이 영화는 액션 영화다. 배우 카렌 길런이 보여주는 액션은 꽤 다채롭고 사실감이 넘친다. 긴 팔과 다리를 이용해 격투 액션을 벌이는 그의 모습은 꽤 빠르고 매력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액션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그의 액션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액션 장면을 책임지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여기에 샘을 도와주는 애나, 플로렌스, 매들린과 스칼렛은 총기나 도구를 활용한 액션을 보여주기 때문에 주로 근접 액션을 보여주는 샘의 액션 장면과는 다른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레트로 한 액션과 분위기, 그럼에도 떨어지는 긴장감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2,000년대 초반 정도로 보인다. 등장하는 음악과 레트로 감성이 듬뿍 담긴 화면은 과거의 모습들을 떠올리게 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이런 이미지들은 영화의 액션이 벌어지는 볼링장이나 작은 식당의 이미지와 융합되며 꽤 근사한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화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음에도 액션만큼은 돋보인다.
결국 이 영화는 샘과 에밀리가 유사 모녀관계를 맺는 것으로 보인다.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샘은 자신의 엄마 스칼렛이 범한 실수를 똑같이 반복하지 않는다. 자신의 엄마의 실수를 바로잡고, 또 자기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반성하면서 에밀리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애쓴다. 그런 철저한 자기반성과 상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에밀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시스템에 대항하는 용기로 전환된다. 샘은 자신이 엄마에게 받지 못한 신뢰와 믿음을 에밀리에게 다시 반복하지 않는다. 아마도 에밀리도 샘이 하는 일과 행동을 따라가겠지만 적어도 엄마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써 겪었던 혼란과 아픔을 에밀리가 겪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샘은 그렇게 엄마에 의지하고 신경쓰던 삶 뿐만아니라 자신이 얽매고 있었던 조직에서도 독립함으로써 진정한 독립을 이루어냈다.
영화를 연출한 감독 나봇 파푸샤도는 이스라엘 출신으로 이스라엘에서 스릴러나 공포 영화들을 주로 연출해 왔다. 특히 그가 2013년 연출한 영화 <늑대들>은 여러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번 연출작인 <건파우더 밀크셰이크>는 그가 할리우드에서 연출한 첫 장편 영화다. 그가 가진 감각과 연출 스타일을 그대로 뽐냈는데 여러 가지 좋은 이미지와 액션 연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가진 긴장감이 끝까지 유지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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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스완 (2011)
-이 글은 영화의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블랙스완>은 이야기 자체의 매력보다도 이야기를 영상으로 다루는 방식이 강렬한 영화다. 영화 <블랙스완>은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내적 고통과 고뇌, 그리고 자아의 분열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 방식이 압도적이다. 믿을 수없는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의 긴장감을 더하는 한편, 16mm의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후 디지털화하여 영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영상의 노이즈들과 극적인 긴장감을 더하는 웅장한 ‘백조의 호수’, 흑조와 백조를 오가는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가 한데 섞인 이 영화는 예술가의 혼란스러운 심리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괴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렇듯 압도적인 요소들이 결합된 영상으로 짜여진 이 영화는 그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완전히 영화의 매력에 사로잡히는 느낌을 받는다. 즉, <블랙스완>은 예술가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단순히 그려내는 것을 넘어 곁에서 체험시키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블랙스완>은 예술가의 혼란스러운 심리를 단순히 그려내는 것을 넘어 곁에서 체험시키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야기를 다루는 강렬한 방식이 눈에 띄는 영화로, ‘완벽’이라는 허상의 것을 좇는 개인의 파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다소 앞서가는 것이거나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놓치고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는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를 통해서 완벽주의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개인적인 욕망이 너무도 강해서 이 영화의 지엽적인 메세지에 불과한 완벽의 추구와 그 허무에 관해서 글을 쓰고자 한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화두를 뜯어 고치지는 않겠지만, 다소간 확장시키게 될 지도 모르겠다.
1. 보이지 않는 고통들을 드러내는 <블랙스완>.
영화 <블랙스완>이 다루는 완벽을 추구하는 예술가의 내적 고통은 ‘나탈리 포트만’이 <블랙스완> 시사회 인터뷰에서 말한 것과 같이 발레 무용수들이 겪는 내적 고통과 유사하다. 아름다운 발레 무용수들의 무대 위 모습과는 달리, 토슈즈를 벗으면 드러나는 성하지 못한 그들의 발과 한번의 무대를 위한 압도적인 연습량으로 닳고 닳은 깡마른 그들의 몸은 그들이 감내해야만 하는 ‘보이지 않는 고통’들이다. 한편, 예술가들이 하나의 보기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내면을 쥐어짜내는 고통 역시 보이지 않는 고통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두 개의 고통을 모두 짊어진 ‘니나’를 통해서 두 개의 고통을 포개어 놓는 것으로 그 고통의 상징성을 강화한다. 이렇듯 발레와 예술가의 내적 갈등으로 상징되는 두 개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중첩시켜 영화속 ‘니나’가 겪는 고통은 배가된다.
발레와 예술가의 내적 갈등으로 상징되는 두 개의 ‘보이지 않는 고통’을 중첩시켜 영화속 ‘니나’가 겪는 고통은 배가된다.
이 작품은 도스토옙스키의 <분신>에서 모티브를 받아 구상되었고, 감독의 누이가 발레 무용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예술가와 발레 무용수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고통’의 상징을 함께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우연치 않게 두 가지의 상징이 구성되었을 수도 있다는 말인데, 우연이고 필연이고를 떠나서 상징을 중첩시켜 인물의 고통을 강화한 이 영화의 각본은 굉장히 현명했고, 특별하다.
1-2. 분신(Dvoinik)과 분열된 자아.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는 도스토옙스키의 <분신 : Dvoinik>을 모티브로 제작되었으나, 그것과는 상당 부분 다르다. <분신>속 자아의 분열은 결과적으로 한 인간의 덧없는 파멸만을 그려내어 탐구가 다소 얕은 반면, 영화 <블랙스완> 속 분열된 자아는 완벽주의에 이르고자 하는 예술가의 심리적 고통과 함께 파멸과 성장의 이미지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영화 속 이야기의 주체의 역할을 맡은 ‘백조’는 그동안 니나가 추구해온 완벽하고 순수하며 순종적인 자아인 반면, 주체에서 떨어져 나온 분열된 자아이자 분신인 ‘흑조’는 저항적이고, 본능적이며, 불완전한 자아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국 두 자아 모두가 니나의 자아라는 점이다.
영화는 발레무용수가 자신이 가진 것 이상(以上)의 연기를 소화해내기 위해 이제껏 가져왔던 자아를 버리고, 백조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두운 자아를 꺼내어 자신의 이상(以上)에 이르고자 한다. 물론 그 이상(以上)의 상태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적인 상태는 아니기에, 이 발레 무용수는 완벽한 예술을 위하여 이전까지의 자신을 버리고 새로이 태어나는 과정 속에서 혼란스러워한다. 결과적으로 새로이 태어나고자 하는 예술가의 욕망(흑조)과 이전까지 유지해온 자기 자신의 삶의 방식(백조)은 두 가지의 자아로 나타나며, 두 자아는 적대적인 관계에 놓이게 된다.
‘백조’는 니나가 추구해온 완벽하고 순수하며 순종적인 자아인 반면, 주체에서 떨어져 나온 분열된 자아이자 분신인 ‘흑조’는 저항적이고, 본능적이며, 불완전한 자아다.
영화 <블랙스완>은 서로에게 적대적인 두 자아의 대결을 다루며 이야기의 장력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또 한편으로 ‘니나’의 자아가 분열되어가는 모습을 ‘거울’을 통해 여러 차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각적 긴장감을 더하여 ‘시각매체로서’ 영화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
2. 완벽이라는 이름의 허상
지금 현재, 존재하는 존재들은 모두 무수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그것들은 정해진 운명이 없기에,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가진 과거의 존재와 미래의 존재보다 우위에 있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 관한 이론으로 현존재를 해석하자면, 지금 나의 무수히 많은 선택들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무수히 다른 나를 만들기 때문에, 현존재는 모든 존재 중 우위성을 차지할 수 있다. 반면, 시간에 얽매어있는 현존재의 성질 탓에 현존재는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 우위에 있음에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이 무수히 많은 가능함이라는 결과 자체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간대에 놓인 무수히 많은 선택지중 하나의 선택지를 택하면, 다른 모든 선택지가 닫혀버리기 때문에, 현존재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시간에 얽매어있는 존재의 성질 탓에 현존재는 모든 존재들 사이에서 우위에 있음에도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을 뜻하는 단어 Perfect {per(모두) + fectio(하다)} 는 시간의 속성에 얽매인 존재들은 도저히 이를수 없는 허상의 단어이다. 때문에,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얼마간은 헛된 일일 수밖에 없으며 완벽을 말하는 것은 어느정도의 거짓이자 자기 기만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지나친 완벽의 추구는 허상의 것을 끊임없이 좇는 일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블랙스완>에서 ‘니나’가 보여주듯이, 완벽한 연기를 위해 겪는 고통과 자멸, 그리고 전락을 암시하는 결말은 허상의 것을 추구하는 행위의 덧없음과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고통을 엿볼수 있다. 그렇다면, 완벽을 추구하는 일이란 결과적으로 한없이 허무할 뿐인가?
3. 완벽이라는 환상의 추구와 그 당위성없는 행위의 당위성.
꼭 그렇지만은 않다. 중요한 것은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현존재는 언제나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함은 우리가 짊어진 숙명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해소되지 않을 결핍을 끊임없이 채워가는 과정의 연속이다. 결코 완전해질 수 없는 존재가 완전해지고자 끊임없이 무언가를 채워가는 것, 그 것이 결과론적으로 허상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마저 의미없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수메르의 바빌로니아에서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 여행을 떠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그는 동시대 바빌로니아인들이 인정하는 가장 뛰어난 왕이자 “깊은 곳을 본”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여정이 비록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해도, 그 과정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시사한다.
앞서 말했듯이 완벽은 허상의 것이다. 그렇다면, 완벽의 추구. 절대로 구해지지 않을 것을 구하는 이 일은 어떤 당위성을 얻게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삶의 당위성을 그 목적지에서 찾는 그 전제가 애초에 들렸다는 점을 지적하고 시작하자. 삶의 목적지는 결국 죽음이다. 완벽한 끝. 삶의 문제를 벗어나, 모든 목적은 그저 ‘완벽한 끝’이므로 죽음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삶의 의미는 목적을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에 있지 않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오해되는 전제를 깔아놓고, 결말만을 두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면 모든 행위는 당연 무의미하고, 당위성을 잃는다. 그렇기에, 완벽의 추구 또는 이상의 추구, 그리고 그게 무엇이든 이룰수 없는 삶의 목적을 추구하는 그 당위성 없는 행위의 당위성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과정 속에서 의미와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각 개인의 몫이므로, 나는 다만 삶의 의미란 의미를 찾아가는 삶속에 있다고 말할 수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완벽을 단순히 추구하는 것이 아닌 집착하는 것이다.
4. 추구하는 것과 집착하는 것은 다르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블랙스완>의 니나는 완벽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자기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인물이지만, 그 과정속에서 “깊은 곳”에 닿지는 못하는 인물이다. 니나가 완벽한 흑조가 되어 마주하는 것들은 혼란과 고통, 전락, 그리고 결과에 대한 구체적이지 못한 자기만족―나는 완벽했어, 그 모호한 한마디―에 그친다. <블랙스완>의 니나는 결과적으로 완벽에 집착할 뿐인 광적인 예술가의 군상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보자면, 그녀는 흑조가 되기 이전부터 기술적으로 완벽한 무용수였고, 이미 ‘백조’의 순수함과 순종 결백 등에 집착하고 있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다 큰 그녀가 어머님의 말에 순종적으로 따르는 모습이나 지나치게 순수한 모습들은 그녀가 백조의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흑조의 날개가 자라나는 환각을 보는 장면이나, 자신의 피부에서 흑조의 깃털이 돋아나는 환각을 보는 것은 백조의 이미지에 집착하여 다른 모든 자아와 의지를 억누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이미 백조에 대한 심한 집착과 몰입을 보여준 예술가 니나가 ‘흑조’ 역할을 맡으며 흑조에게 집착하고 결과적으로 그 자아에 또 다시 자신을 온전히 맡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문제는 니나가 예술가로서 완벽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무대는 완벽했다. 하지만, 백조의 추락과 백조의 죽음을 의미하는 마지막 엔딩씬은 광기어린 무용수의 집착이 결과적으로 그 자신의 파멸을 야기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읽힌다. 물론, 이전까지 니나를 가두었던 백조의 이미지가 죽어버리고 흑조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 니나가 ‘성장’한 것처럼 읽힐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게 감독의 의도이고, 옳은 해석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존재의 공허함을 채우는 과정에서 이전까지의 미숙한 자신을 살해하는 것이 완전한 존재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의 결핍된 모습들마저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결핍된 자신을 채워가는 것이 존재의 의미를 채워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니나가 백조를 자신 안에서 완전히 살해하고 흑조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은 니나 자신을 가두는 백조의 틀을 깨버리는 일인 동시에 니나의 미덕이었던 백조의 모습들마저 버리는 것으로, 흑조로 성장하기보다는 흑조로 ‘변이’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니나가 매번 이렇게 변이만을 반복한다면, 그녀는 끊임없이 이전의 자신을 살해하는 고통을 지속적으로 견뎌내야만 할 것이고, 이 편집증적 고통은 성장통의 고통과는 다르다. 그 고통은 자기 파괴적인 성향을 동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스완>은 한 예술가가 성장해가는 서사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블랙스완>의 니나가 보여주는 것은 예술가의 광적이고 고통스러운 집착일 뿐이다. 다만 <블랙스완>이 다루는 이야기의 방향성과는 상관없이 영화는 정말 잘 만들어졌으니, 이 영화의 이야기를 놓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과는 상관없이 작품의 완성도는 아주 높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 본 콘텐츠는 브런치 데미안 작가님의 자료를 받아 씨네랩 팀이 업로드 한 글입니다. 원 게시글은 아래 출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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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이번 <아바타: 물의 길, 2022>이 역대 6번째로 총 수익 20억 달러를 넘긴 영화가 되었고, 이 중 3편이 한 사람 "제임스 캐머런"에게서만 나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첫 흥행을 알린 영화가 뭘까?
영화 <타이타닉>은 실제로, 일어났던 "타이타닉 호의 침몰 사고"를 다룬 작품으로 별개로 "잭 - 로즈"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가미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최초 10억 달러를 넘겼을뿐더러 이후 몇 번의 재개봉으로 20억 달러까지 넘기는 등.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영화이다. - 참고로, 아카데미 14개 부문에 이름을 올리며 "작품상 - 감독상"을 포함해 11개의 상을 받았는데 역대 아카데미 수상 최다 타이기록이다! 영화는 우연한 기회로 "타이타닉"에 승선한 "잭"은 그 안에 "로즈"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서로의 신분과 상황이 달랐기에 이내 접으려 하나 그럴수록 서로를 향한 마음은 점점 커지는데...1. 어떻게, 사랑받는 걸까?
앞서 말했듯이 영화 <타이타닉>은 20억 달러를 넘긴 역대 6 영화들 가운데 하나이다.
재밌는 건, 유일하게 90년대 영화이고 유일하게 "로맨스" 영화라는 것이다. - 나머지 작품들이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 엔드게임>, <아바타>시리즈,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로 "블록버스터"이다!
그렇다면, <타이타닉>이 지금까지 사랑을 받은 이유가 뭘까?
제목 그 자체로 "타이타닉"의 스케일도 있겠지만, 어렵지만은 않은 "로맨스"에 있다!줄거리에서도 보듯이 "잭"과 "로즈"는 정반대 상황에 처한 캐릭터이다.
극 중. 자유로운 "잭"과 다르게 "로즈"는 모든 것들이 수동적으로 극과 극으로 배치되었다.
지금에서 본다면, "클리셰"로 받아들일법한 상투적인 이야기와 상황들로 큰 어려움 없이 볼 수 있다.
여기에 극 중. 배 안으로 차고 들어오는 물들처럼 배가 두 동강 나면서 사람들이 떨어지거나 미끄러지듯이 내려가는 모습들까지 "볼거리"에 대한 부분도 어렵지 않다!2.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겠지만 영화 <타이타닉>은 이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침몰하는 배에서 연주하는 악단을 비롯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는 엄마, 조타실에 서있는 선장, 그리고 배에 타려고 비열한 짓까지 서슴지 않는 캐릭터들까지 다양한 인물들로 다양한 감정까지 보여준다.
이를 "타이타닉 침몰"이라는 상황 속에서 보여주니 앞서 언급한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블록버스터"로 상충되어 보인다!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많은 캐릭터들이 상당히 평범하게 느껴진다.
극 중. "로즈"의 변화도 있지만 많은 캐릭터들이 단순하게 그려져 이야기가 더 직선적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시간이 흘러 다양한 작품들을 <타이타닉>보다 접한 것도 있겠지만, 기대만큼의 재미는 받지 못한 게 솔직한 내 느낌이다.· tmi. 1 - 제작 당시. "20세기 폭스(해외 담당)"에서 제작하기를 꺼려 해 감독 본인이 투자처를 찾아 "파라마운트(북미 담당)"와 공동 배급을 나섰지만, 결과는...
· tmi. 2 - 그래서, 다음 영화는 온전하게 "20세기 폭스"가 맡았는데 그 영화 <아바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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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추천작] 전쟁 중 울려 퍼진 피아노
시리아 내전 중에도 피아니스트라는 삶을 놓지 않았던 카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가 전쟁 중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했고, 실화라는 사실에 더욱 혹해서 기대됐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피아노 곡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이 작품 속에서 기능하고 있을지 살펴보고 싶다는 생각에 예매를 했던 작품이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시놉시스
극렬 테러리스트들의 점령으로 매일 총성이 울리는 전쟁터가 되어버린 시리아의 세카. 음악마저 금지되어 버린 혼란 속 피아니스트 카림은 피아노를 팔아 연주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떠나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인해 피아노가 망가져 버린다. 피아노를 다시 고치기 위해선 테러리스트의 감시와 공격을 피해 피아노 부품이 남아있다는 이웃 마을로 향해야 한다.
* 해당 내용은 서울국제영화제 공식홈페이지 소개를 참고했습니다.
이 이후로는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전쟁의 황폐화를 보여주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탄식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렇게까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준 영화가 있었을까? 치열한 전투현장을 보여준 영화들은 그간 많이 봐왔지만 이렇게 전쟁 속에서 남겨진 민간인들의 삶에 대해 집중 조명한 작품은 개인적으로 처음봐서 그 충격이 상당했다.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사람이 죽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민간인을 관리하는 테러리스트와 군부대들의 모습을 보면서 민간인들이 얼마나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일상 속에서도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총성이 bgm처럼 들리는 모습들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폭탄이 떨어지고 황폐화된 모습을 드론을 통해 촬영해 보여주는데 회색도시 그 자체였다. 생명이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무너진 건물과 잔해들만 보이면서 전쟁이라는 것이 지나고 보면 인간의 삶과 환경을 파괴시키는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상공에서 황폐화된 한 도시를 보여주는데 약간 공든 탑이 무너진 듯한 허탈하고도 허망한 느낌이 나서 보는 내내 굉장히 안타까웠다.
클래식의 이야기를 알면 더욱 재밌는 작품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기에 작품에서는 중간중간 주인공 카림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한 번쯤을 들었던 곡이 들려온다. 선율을 듣다보면 그의 감정이 잘 드러나고 있어서 딱히 피아노 곡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작품에서 충분히 묻어나오기 때문에 문제는 없지만 만약 작품 속 등장하는 피아노곡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면 음악감독이 이 피아노곡을 선택하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작품이 시작함과 동시에 들려오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 트로이메라이는 꿈, 명상이라는 뜻으로 현실에 대한 기대감 속에서 슈만이 자신의 미래에 클라라를 초대하고자 작곡한 ‘어린이 정경’에 포함된 곡이다. 이 연주를 시작으로 영화가 이어지는데 주인공 카림이 곧 떠날 오스트리아 빈에서의 자신의 삶을 꿈꾸면서 기대감에 부풀어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치였다. 하지만 곧 테러리스트에게 총을 맞고 돌아온 지인이 수술대에 오르고, 카림은 그를 위해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한다.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은 폭우 속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며 작곡한 곡으로 유명하다. 카림은 아마 총상을 입고 수술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에게 끌려가 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지인들을 생각하며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을 연주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 피아노를 고치는 데 성공한 카림은 브람스의 인터메조를 연주하는데, 어쩌면 이 연주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피아니스트로서 오스트리아에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 것처럼 보였다. 브람스는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사랑했지만 끝내 클라라와 이어지지 못하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갔다. 그녀에게 헌정된 이 곡을 선택한 카림은 자신을 브람스에 빗대 피아노를 지독하게 사랑하지만 자신의 꿈을 이루러 오스트리아로 갈 수 없음을 알리는 복선같은 장치였다. 마지막으로 테러리스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길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이 작품의 명장면에서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 이 곡은 베토벤이 새로운 각오와 함께 시련을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과 피아노의 기술적인 발전이 맞물려서 창작된 작품인데, 테러리스트에 저항하면서 자신이 피아니스트로서 이 전쟁에서 테러리스트에 맞서겠다는 각오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갑자기 투사가 되다
전쟁이 한 나라와 인간의 삶을 얼마나 망가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잘 보여준 작품이었지만 마지막 결말은 기존 투사들의 모습과 비슷하게 이어져서 아쉽게 다가왔다. 한국의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는 ‘갑자기’ 독립군이 되는 이야기 구조를 많이 따르고 있다. 예를 들면 그저 자신의 삶이 중요했던 한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이 다치고 핍박 받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독립군이 되어 일본군과 맞서 싸우고, 자신이 원했던 것을 희생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죽음도 불사르는 캐릭터로 거듭나는 서사가 은근히 많은 편인데, 개인적으로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에서의 카림 역시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음악이 금지된 시리아에서 피아니스트였던 카림은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엄마의 유일한 유품인 피아노를 팔아서 밀항할 수 있는 배삯을 벌어보고자 하지만 테러리스트의 방해로 피아노가 망가져 이 피아노를 다시 살리기 위해 피아노 부품이 남아있는 이웃마을로 향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피아노 부품을 가져와 피아노 수리까지 마치고 판매에 성공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아닌 친동생처럼 아끼는 아이를 오스트리아로 보내고, 시리아에 남아 테러리스트와 맞선다.
이제까지 영화 속에서 카림이 무모할 정도로 피아노를 고치기 위해 위험한 이웃마을로 들어간 이유가 자신이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피아니스트로서 성공하기 위해 그런것이라는 개인적 욕망으로 서사가 쌓아져오고 있었는데, 갑자기 마지막에 국가와 내 동료롤 위한 희생으로 바뀌면서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미끼가 되어 길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은 영화 자체의 명장면이었고, 이 과정에서 테러리스트들을 공격하고 그들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카림의 서사와는 조금 배치되는 느낌이어서 ‘갑자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피아노 곡의 복선이 아닌 이야기 자체에서도 카림의 심리 변화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했더라면 ‘갑자기’라는 느낌은 많이 없앨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아의 내전의 참혹함과 그 과정에서 민간인이 겪었던 피폐함에 대해서 잘 표현하고 있었던 영화 <전장의 피아니스트>.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갑자기’라는 느낌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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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의 후속작은 없어야만 해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치기 전이었다. '텔레그램'이라고 하는 것을 적당히만 알던 나. 충격적인 기사를 읽게 된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인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 누군가가 누구를 조종해서 성착취 물로 만들었다는 내용의 기사가 아직도 기억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묘사가 현실로 이어졌다. 곧이어 이 가해자가 몇 만 명이라는 기사가 우후죽순 뜨기 시작한다. 제일 첫 번째로 이 기사를 읽던 때가 생생하다. 강박증이 심한 나. 강박증이 심하면 신체화 증상이 제깍제깍 나타난다. 읽고 헛구역질을 했다. 큰 스트레스가 쑥 들어오니 몸이 반응했던 것이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추적단 불꽃의 한 멤버는 현재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고, 영상 내부 검열이 아닌 성 범죄물의 코드를 검사하는 'N번방 방지법'이 입법과정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코로나19도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엔데믹 추세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한다. 지금 당장 트위터에 #일탈계라고 검색하면 이상한 사진들이 나타난다. 우리 사회는 더 나아지고 있을까. 어떻게 보면 우리는 아직도 성장하지 못한 것 같다. 한국 사회가 서로에게 반문해야 할 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에 이 질문을 대신 전해주는 영화가 업로드됐다,
생각하지 못했던 문자
문자가 왔다. 트위터 DM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닉네임이 뭐 이렇게 생겼어? 발신자는 대충 확인하고 문자 내용을 본다. 엥? 내 사진이 도용됐다고? 뭔 소리야? 정체 모를 이상한 인간은 누군가의 사진이 도용됐다고 말해줬다. 내 사진이 왜 도용이 되지? “장난하지 마세요”라고 답장을 보내는 발신자. “장난치지 마세요, 누구세요?”라는 답장에 발신자는 “걱정돼서 알려드리는 거예요”라고 답한다. 링크 안을 들어갔다. 충격적이었다. 다 발신자의 사진이 맞았기 때문이다. “이거 누가 올렸는지 아세요?”라고 묻는 발신자. 문자 수신자는 어떤 이의 소속 학교와 이름을 말해준다.
지옥이 시작됐다. 문자 발신자의 닉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로 한다. 그의 닉네임은 갓갓이었다. 발신자의 이름을 한 번에 맞춘 수신자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사진을 학교에 뿌리겠다”라고 말한다. 텔레그렘 깔고 들어오라는 갓갓. 갓갓은 대화방에서 발신자의 이름, 전화번호까지 모두 대 버린다. “아빠랑 친구들이 네 사진 보면 좋아하겠다 그렇지?” 발신자는 “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뿌리지만 말아주세요”라고 답한다. 갓갓은 이 답에 간단한 문장으로 응수했다. “옷 다 벗고 얼굴 가리지 말고 사진 찍어. 10초 안에 대답 안 하면 사진 유포 시작한다.”
이게 무슨 소리야?
2019년의 서울, 일요일 아침. 한겨레 소속의 김완 기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입수한다. 애들이랑 놀아주며 시간을 보내던 김완 기자.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고 한다. 제보가 왔다는 말이었다. 메일의 제목은 “텔레그램 아동 유포자 제보”였다. 뭔 소리야? 이걸 기사로 쓰라고? 아동 포르노라는 소재는 이미 예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이거 뭐 기사 되려나? 적당한 일거리로 생각했던 김 기자. 김완 기자는 메일에 딸려온 첨부파일을 천천히 확인했다. 충격적이었다. 한 10대 여학생이 9천여 명이 담겨있는 텔레그렘 단톡방에서 자기의 신체가 담겨있는 영상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켜볼 수 없었다. 기사를 송고하는 김 기자. 기사가 발표된 이후 김완 기자의 신상이 털렸다는 제보 메일이 가득했다. 한 텔레그렘 단톡방에서 저급한 언어로 자기가 모욕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김 기자. 누군가가 김 기자의 아들부터 아내의 이름을 목표로 신상 털기를 주문했다. 포상은 “노예 사진 1회 사용권”이었다. 한겨레는 이 사안을 같이 움직이기로 한다. 같이 한겨레에서 일을 하던 오연서 기자는 이 소재를 취재하기 앞서 그렇게 무거운 마음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 기자 역시 알면 알수록 분노할 수밖에 없는 성착취물 범죄의 민낯을 맞이하게 된다. 이게 이러다가 끝나는 선이 아니었다. 진짜 성착취물 범죄의 몸통이 ‘박사’라는 유저였다는 제보 메일이 왔다.
더 이상 알면 안되지 않을까
우리나라 대구에 살았던 익명의 제보자 조커. 조커의 지인이 ‘박사방’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박사를 찾아와서 “내가 이런 피해를 당했다”라고 심하게 울었다는 말을 전하는 조커. 나체 사진 뿐만아니라 ‘박사 노예’라는 인장까지 찍힌 성착취물이 있었다. 박사와 갓갓의 사기 수법은 교활했다. 갓갓은 트위터에 자기 신체 사진을 올리는 유저들에게 해킹 파일이 담겨있는 메일을 보냈다. 박사는 고액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개인 정보를 빼냈다. 다른 주동자 코알라는 아이돌 팬들이 많이 있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을 만들었다. 수십 명의 피해자들을 모으며 성범죄 가해자들을 린 치하던 갓갓과 박사. 알면 알수록 이들의 범죄수법은 역겹기 그지없었다.
우리나라 대구에 살았던 익명의 제보자 조커. 조커의 지인이 ‘박사 방’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어느 날, 박사를 찾아와서 “내가 이런 피해를 당했다”라고 심하게 울었다는 말을 전하는 조커. 나체 사진뿐만 아니라 ‘박사 노예’라는 인장까지 찍힌 성착취 물이 있었다. 박사와 갓갓의 사기 수법은 교활했다. 갓갓은 트위터에 자기 신체 사진을 올리는 유저들에게 해킹 파일이 담겨있는 메일을 보냈다. 박사는 고액 피팅모델 아르바이트를 미끼로 개인 정보를 빼냈다. 다른 주동자 코알라는 아이돌 팬들이 많이 있는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피해자들을 꾀어냈다. 박사 방을 모니터링하던 한겨레 기자들. 갓갓의 존재부터 시작해서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이미 이 소재로 보도물을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름은 ‘추적단 불꽃’이다.
요란하지 않고 정확하게
영화는 <스포트라이트>의 제작진, 추적단 불꽃, 한겨레의 두 기자들을 중심으로 이 ‘텔레그렘 N번방 사건’에 대해 추적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과정에서 이 범죄를 구성하기 위해 가해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설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가해자들의 수법은 더러웠다. 몇 번 방에 누가 들어있고 가족관계부터 시작해서 자그마한 성행위 특징까지 세세하게 담겨있던 N번방. 영화는 이런 범죄 수법을 가감 없이 묘사하며 범죄의 잔혹성을 보여준다. 이 과정 속에서 사람들의 모양을 애니메이션처럼 연출한다. 이 과정에서 몇몇 영화가 보여줬던 실수를 범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범죄에 있어 피해자라고 하면 역시 성착취 물에 나왔던 사람들일 것이다. 이때 잔혹함을 보여주기 위해 끔찍한 사진/영상물의 내용은 구술로 전하고, 이 외에 범죄 방식을 추적할 때는 시각 애니메이션을 통해 내용을 전개한다. 이때 사운드-시각 그래픽 - 카메라 워킹까지 몰입에 탁월했던 연출 방식을 활용한다. 이런 연출 방식은 역시 선을 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영화의 강점으로 작용한다.
영화 뒤의 사람들
영화 <스포트라이트>부터 시작해서 언론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다. 역시 이 작품도 언론인들을 소재로 다룬 영화이기도 하다. 얼핏 보면 일반적인 언론 영화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차이점은 실화인 범죄 묘사가 현명했다는 점에서 차이점을 갖는다. N번방과 박사 방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범죄다. 또 텔레그렘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잡히기가 굉장히 어려운 매개체 기도 하다. 이 두 매개체의 특성을 바탕으로 느껴지는 허무함과 외로움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정서 중 하나인데, 이 심리 묘사에도 역시 주안점을 둔 것이 영화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감독이 다큐멘터리 몇 편을 찍으셨던 것 같은데 특정 정당 지지를 떠나 경험치가 드러나는 연출법이었다. 적절한 거리를 두며 분노하고, 추적 과정까지 알고 싶다면 이 영화가 좋을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이 일이 있고 나서의 몇몇 행보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일부 피해자들이 '트위터 일탈계(자기의 신체를 일부러 노출시켜 특정 유저들에게 관심을 받는 행위)'나 스폰을 구하려고 했었던 사람이라는 점에 '이 피해자들이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어렵지 않게 이 피해자들이 일부였다(https://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370107/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8637.html/)라는 걸 찾을 수 있다. 일탈계를 운영해서 법적으로 처벌받는 건 그때 가서 따질 일이다. 결국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이 끔찍하고 역겨운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라는 지점일 것이다. 또 이 피해자들(스폰, '일탈계' 운영)이 실질적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해도 멀쩡한 바닥을 핥거나 '박사의 노예'라며 모멸감을 주고, 또 어쩔 땐 신체 훼손 같은 걸 하며 자기의 성적 행위가 담긴 영상을 신상과 함께 공개되는 짓을 받아도 된다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주빈과 문형욱 같은 범죄자들이 딱 한 만큼만 처벌받고 고통받길 바란다. 이 영화는 그냥 성욕이 있는 우리 일반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성욕과 이 영화에 나온 성범죄는 아예 궤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그럴듯한 논리로 포장하며 몇몇 10대와 20대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성범죄를 저지른 인간쓰레기 성범죄자들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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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이란 마음속 울림을 이해하는 것
코다 (CODA, 2021)
개봉일 : 2021.08.31 (한국 기준)
감독 : 션 헤이더
출연 : 에밀리아 존스, 퍼디아 월시-필로, 트로이 코처, 다니엘 듀런트, 말리 매트린, 에우헤니오 데르베스
사랑이란 마음속 울림을 이해하는 것
에릭 라티고 감독의 2014년작 <미라클 벨리에>의 리메이크작 <코다>
<코다>는 코다 루비와 그의 가족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그려낸다. Coda는 청각장애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비 청각장애 아이를 말하며 루비는 가족들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코다다.
<코다>라는 영화를 기대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싱 스트리트>에서 첫사랑과 꿈에 빠진 풋풋한 소년의 모습을 보여줬던 퍼디아 월시 필로 배우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싱 스트리트>이후로 음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보이며 한동안 스크린에서 만날 수 없었던 그를 다시 한번 만나게 되다니. 그것도 새로운 음악영화로! 이 소식을 듣자마자 심장이 얼마나 쿵쾅거렸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만큼의 존재감은 아니었지만.. 그의 새로운 노래를 짧게라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가족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인 루비는 어업을 하는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 새벽마다 고기를 잡고 경매장을 들락날락하며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 일을 마치고 등교한 학교에선 가족들의 청각 장애를 주제로 한 놀림과 따돌림을 받지만 루비는 가족들에게 불평 한 번 하지 않는다. 10대 때 가질만한 꿈과 목표를 내려놓고 대부분의 시간을 말없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루비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루비는 수어를 사용하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수어를 학습하고 수어를 통해 소통해왔다. 가족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루비에게 가장 편한 표현법은 자연스레 수어가 됐다. “노래 부를 때 느낌에 대해 설명해 봐”라는 미스터V의 질문에 루비는 입보다 손을 먼저 움직인다.
말이 없어 가장 조용하면서도 소음이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온 루비는 학교라는 큰 사회에 부딪히기 전까진 말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매일, 매시간 함께하는 가족들과 수어로 대화를 하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루비와 가족들에게 수어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하지만 루비의 가족들을 둘러싼 사람들은 그들의 수어를 쉽게 이해해 주지 않았고, 가족들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없잖아.”라고 체념하며 세상에서 점점 소외된다.
꿈 같은 건 딱히 없고 그저 아빠의 어업을 이어받지 않을까 생각하며 가족의 틀안에만 갇혀있던 루비는 합창단을 시작하고, 마일스와 미스터 V를 만나면서 조금씩 세상으로 나온다. 가족들과 세상을 이어주던 유일한 통역사로서 가족들의 말을 전하는 것 외에 나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내지 못하고 담아두기만 했던 루비가 무대 위에 오르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 보이는 순간이 꽤나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루비는 크게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못하는 세상에서 더 큰 세상으로 나왔고 가족들은 더 이상 루비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알아간다.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세상의 뒤편으로 숨을 필요는 없다. 입으로 말하는 언어도 손으로 말하는 언어도 모두 예쁘고 각자의 가치를 갖고 있는 소중한 언어다. 중요한 건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는지 아닌지가 아닌 그 안에 담긴 울림과 마음이라는 걸 <코다>는 말하고 있다.
코다 시놉시스
음악의 마법에 빠질 시간!
가장 조용한 세상에서 시작된 여름의 노래!
24/7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 '루비'는 짝사랑하는 '마일스'를 따라간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기쁨과 숨겨진 재능을 알게 된다.
합창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일스와의 듀엣 콘서트와 버클리 음대 오디션의 기회까지 얻지만 자신 없이는 어려움을 겪게 될 가족과 노래를 향한 꿈 사이에서 루비는 망설이는데…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루비는 음악을 듣고 루비의 가족들은 음악의 울림을 느낀다. 루비는 고기를 잡을 때마다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자신을 위로한다. 루비의 아빠 프랭크는 정확한 음을 듣진 못하지만 트럭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을 좋아한다. 강한 진동만을 느낄 수 있는 루비의 가족들은 루비가 어떤 음을 가진 노래를 부르는지, 어떤 가사를 읊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있는 루비의 마음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
루비는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가족들은 루비를 통해 세상에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루비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꿈을 저편으로 미뤄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목소리에 담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여러 개인데 들어줄 사람도, 그럴 여유도 없었던 루비의 좁은 세상에 그의 재능을 알아본 미스터 V와 마일스가 등장하고 루비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너는 할 말이 있니?”
미스터 v는 루비에게 묻는다. 루비는 노래를 부를 때 어떤 느낌인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묻는 미스터 v에게 말 대신 수어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한다. 미스터 v는 루비의 목소리와 수어에 담긴 마음을 읽고 루비를 돕기로 한다. 루비는 미스터v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족들을 위해 꾹꾹 눌러왔던 말들을 노래에 담아낸다. 그리고 여느 10대처럼 첫사랑을 하고, 그 순간의 두근거림을 마음껏 느낀다. 꿈을 갖고 사랑을 하고. 가족들을 대신한 목소리가 아닌 내 마음속에 담긴 울림을 세상에 뱉어내는 루비의 모습이 이제야 여느 10대처럼 보인다.
“우리의 공동체는 따로 있어.”
가족들은 농인들은 농인들 만의 세계가 있다며 한계를 규정하고 벗어나지 못한다. 프랭크와 재키는 유일하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루비에게 의지하고, 사람들의 입모양을 관찰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려 노력하는 레오를 아이 취급할 뿐이다.
가족들에게 루비는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이기에 프랭크와 재키는 루비에게 많은 기대를 건다. 대학 대신 이제 막 풀리기 시작한 가족 사업을 위해 희생해 주기를. 어쩌면 그들은 루비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겨왔을지도 모르겠다. 루비도 그것이 자신이 가족들을 위해 해야 할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각자의 삶과 꿈이 존재하기에 이젠 새로운 세계로의 도약과 성장이 필요한 타이밍이다.
루비는 마일스와의 첫 듀엣 무대에서 온 마음을 바친 무대를 선보이고 가족들은 무대를 지켜본다. 그날 밤 프랭크는 루비의 목에 손을 대고 루비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울림을 느낀다. 루비의 목소리를, 음의 높낮이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프랭크는 루비가 어떤 마음을 담아 노래를 하고 있는 지 온전하게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온 마음을 바치는 심정으로 노래하라"던 미스터 V의 가르침은 루비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일을 가족들 대신, 가족들과 함께 이뤄온 루비는 이제 가족들 없이도 다른 이들 앞에 설 수 있게 됐고, 수어와 목소리 모두에 마음을 담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 대학 오디션 무대에서 루비는 가족들과 심사위원들 앞에서 수어를 하며 노래를 부른다. 듣지 못하는 가족들도 노래에 담긴 자신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다.
우린 무력하지 않아
레오는 루비의 가족들 중 가장 진취적인 인물이다. 그는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주눅 들지 않았고 사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으며 가족들이 루비에게 의지하기보단 루비의 꿈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자신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취급하는 부모님에게 불만이 있어도 묵묵히 가족들의 곁을 지킨 그는 자신이 무력하지 않다고 믿는다. 레오는 수어를 사용한다 해서 세상과 소통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고, 다른 사람들이 수어를 배워 우리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엔 레오의 말처럼 몇 개의 수어를 배워 가족들과 소통하는 거티와 조합인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들은 서로의 표현 방법을 존중하고 배워가며 비로소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가족과 타인을 향한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버스조차 혼자 타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마일스와 코다로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앞에 나서야 했던 루비. 두 사람은 사뭇 다른 가정에서 자랐다. 마일스는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루비 가족을 부러워했고 그로 인해 해프닝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루비는 마일스의 마음을 오해하고 그와 거리를 두지만 마일스는 루비 가족에 대한 부러움과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며 루비에게 다시 다가간다. 마일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루비는 마일스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루비와 가족들도 그렇다. 매일같이 배 위에 울려 퍼졌던 루비의 노래를 들어본 적 없는 가족들은 루비의 꿈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후 루비의 노래가 주는 울림을 느끼게 된 가족들은 루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응원하게 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겉모습과 표현하는 방법에 집중하기보단 마음속에 담긴 울림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과는 마음을 나누기 힘들 것이란 하찮은 편견 따위는 저 멀리로 집어던지고 그들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울림과 감정에 집중해 보자. 들리지 않아도 진하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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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글몽글 심야영화’ Ep.02 당신의 겨울에 감성 이불을 덮어줄 영화 5편
크리스마스도, 2017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겨울에, 어두운 방에서 이불 덮고 귤 까먹으며 보면 좋을 영화 5편을 소개해드립니다.
렛미인 / 룸 / 브리짓존스의 일기 / 캐롤 / 러브레터
** 강한 스포일러는 없으나, 콘텐츠 특성상 일부 내용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는 점 알려드립니다.
** 소개 순서는 영화의 선호도와 무관합니다.
** '몽글몽글 심야영화'는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할 때 영화를 켜는 '환몽씨네'의 상명이가, 심야에 들려주는 영화 이야기입니다. 자기 전, 혹은 적적한 밤과 새벽에 한번씩 꺼내 먹는 조그마한 야식처럼 들어 주세요 :)
** 시간 관계상 아쉽게 소개해드리지 못한 영화 5선 (라라랜드 / 인사이드 르윈 / 헤이트풀8 / 물랑루즈 / 이터널 선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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