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a2025-06-03 14:15:23
벗어날 수 없는 상실의 늪
영화 <브링 허 백> 후기
*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아픔 중 가장 사무치는 고통은 상실에 대한 고통이다. <톡 투 미> 이후 다시금 상실이라는 소재로 극장가를 찾아온 필리포 감독의 공포영화는 한층 더 잔인하고 슬픈 서사로 무장한 채 관객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공포라는 장르는 죽음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다.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는 좀비물, 죽음의 공포와 맞서야 하는 슬래셔물,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컬트물 등 어쩌면 너무 당연했기에 잊고 있었던 소재이기도 하다. 우리와 가깝고도 먼 이 죽음을 필리포 감독은 그간 어떻게 다뤄왔을까?
사실 <브링 허 백>의 경우 개봉 예정작인 <톡 투 미>의 속편을 제외한다면 그들의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일관성 있는 필모를 쌓고 있는 셈인데 적어도 이 두 편의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라면 한 가지 사실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죽음에 의한 상실은 때로 누군가를 미치게 한다는 것. <톡 투 미> 속 '미아' 는 엄마의 자살을 받아들이지 못한 십 대 소녀이다. 생전 영매술사의 손이었다던 조각을 매개로 죽은 자들을 본 이후 미아는 악령들에게 시달리게 되고 결국 그들에 의해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이기지 못한 채 최후를 맞는 인물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금기시 되던 '90초를 넘기지 말 것' 을 진즉 어겨버린 그녀였기에 마치 악령들에 의해 살해 된 것처럼 묘사되나 사실 영화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여러 인물의 대사나 행동을 통해 사실 미아가 상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음을 알 수 있다. 원흉은 물론 생과 사의 매개체였던 조각이었을지 모르나 악령들에게 있어 죽음에 사로잡힌 미아의 영혼은 이미 죽음으로 끌어들이기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브링 허 백>은 어떨까. 아빠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위탁모 '로라'의 집으로 향하게 된 '파이퍼'와 '앤디' 남매의 시점으로 시작되는 영화엔 역시나 상실의 고통이 기저에 깔려있다. 하지만 <브링 허 백>은 <톡 투 미>가 보여주었던 매개로 인한 파멸 그 이상의 이야기를 전개하며 좀 더 상실이라는 키워드에 가까이 접근한다.
딸 '캐시'를 잃은 위탁모 로라는 남매 중 유난히 장애를 가진 파이퍼에게 지극한 정성을 보인다. 샐리 호킨스가 분한 로라라는 인물은 어쩐지 앤디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의 전개상 마냥 다정한 인물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로라의 집으로 이사 온 첫 날부터 그녀는 앤디의 핸드폰을 훔쳐보거나 노골적으로 시각장애인이었던 자신의 딸을 파이퍼와 겹쳐보는 등 심리적 거리감을 잔뜩 벌려둔 채 앞으로 그녀가 벌일 난장판으로 관객을 미리 끌어들인다. 그렇기에 관객은 더더욱 로라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오래 전 떠나보낸 강아지를 박제 해 집 한 켠에 둘 정도로 무언가를 떠나 보내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가 다름 아닌 딸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불편한 동거가 진행될 수록 관객은 로라뿐 아니라 그녀의 아들인 '올리버'를 경계하며 긴장 속에 놓여지는데 올리버가 보여주는 기행과 간간히 보여주는 파운드 푸티지를 통해 그녀가 일종의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초반부부터 알 수 있게 된다. 즉 로라와 올리버로 장르적 재미를 살리는 동시에 상실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그녀가 어떠한 방식으로 남매를 갈라놓으려고 하는지 그 과정 자체가 보여줄 충격과 고통에 보다 집중 할 수 있도록 선택한 전개 방식인 것이다.
<톡 투 미>와 마찬가지로 <브링 허 백>에도 역시 매개가 등장한다. 일전에는 추정컨대 박제 당한 영매사의 손이었다면 이번에는 살아있는 아이 올리버이다. 관객은 올리버의 존재가 껄끄럽다.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집을 배회하거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등 확실히 기이한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아이' 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올리버로 지칭되던 아이가 사실 '버드' 라는 이름을 가진 실종 아동이며 이는 사실 로라가 딸 캐시를 죽음으로부터 데려오기 위해서 매개체로 삼은 아이였다는 것이 아마 해당 영화의 가장 충격적인 소재가 될 것이다. 상실의 고통으로 인해 총 세 명의 아이가 고통 받고 있는 이 전개 속에서 영화는 재차 로라의 상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영화는 <톡 투 미>가 그러했듯 어떤 현상에 대한 극복을 제시하기 보다 그 현상이 끝까지 갔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택했다는 것이다.
이 비극의 가장 큰 희생양인 앤디는 극 중 파이퍼의 이복 오빠로 친 아버지에게 폭행 당한 트라우마와 더불어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소년이다. 미아와 가장 닮아있기도 한 캐릭터이지만 그녀와 한 가지 확실히 다른 점을 꼽자면 앤디에게는 지켜야 할 동생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못해 로라의 집에서 그의 아버지가 보여준 차별적이고도 폭력적인 행동과 대치되는 듯한 로라의 행동을 견디면서 앤디는 끝까지 여동생을 지키고자 한다. 상실이라는 공통의 트라우마를 기반으로 공고해진 남매는 타자 로라에 의해 와해되지만 악령의 예언을 빗겨가게 하기 위해 그에 반항을 시도한 이들로 그려지기도 한다. 아빠와 로라, 두 어른을 향한 아이들의 반항이 성공적으로 그려지진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앤디와 파이퍼, 버드 라는 세 인물 중 앤디를 제외한 두 아이가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어쩌면 해당 영화가 끔찍함으로 무장하고 있을지라도 이들이 상실의 늪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리란 점을 시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다른 아이 캐시는 극 중 이미 죽은 상태로 등장하나 어쩐지 의식의 마지막 도중 급하게 '엄마'라고 외치던 것이 캐시는 아니었을까 하는 여지를 남긴다. 버드의 몸 안에 갇혀 자신을 끔찍이도 사랑했던 엄마가 두 남매를 완전히 와해시키는 것을 보고 의식이 성공할즈음에 어쩌면 엄마를 일깨우고자, 말리고자 고군분투했던 또 다른 아이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많은 부분은 설명보다는 보여주기를 택한다. 의식의 과정이나 어디서부터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길 택함으로 보다 로라와 파이퍼 남매에게 집중 할 수 있는 전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다만 생과 사의 매개체인 버드가 식이라는 행위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아이의 몸에 영혼이 비어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해당 영화에서 중요 상징으로 등장하는 원은 생과 사가 흐려지는 공간의 안팎이라는 경계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끝내 상실의 원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인물들과 그 밖으로 벗어난 인물들의 차이를 보여주기도 한다.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앤디는 솔직함을 의미하는 남매의 수식어 '자몽'을 끝내 파이퍼에게 전달하지 못한채 죽음을 맞는다. 그가 미지막으로 파이퍼에게 남기고자 했던 말, 지난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으며 그럼에도 널 사랑한다는 사실이 끝내 로라가 끌어들인 상실의 늪 안에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로라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 내에서 독보적인 안타고니스트로 등장하는 로라는 원 안팎으로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나 이미 의식과 무의식 모두를 상실에 사로잡혀버린 인물이다. 그녀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 원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어쩌면 로라의 최후는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지 모른다. 반면 도망에 성공한 파이퍼는 물론 버드 역시 힘겨울 것을 알면서도 원 밖으로 나가 구조 된다. 영화는 말한다. 그들은 상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연이은 상실이었음에도 분명 파이퍼는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은 그저 비행기를 타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여정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오빠에게서 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로라라는 인물의 상실은 자신 뿐 만 아니라 다른 이들까지 끌어들이는 지독한 우울의 늪이자 구덩이로 묘사된다. 마치 공명하듯 자신과 같은 우울을 갖고 있는 이를 찾아내 어떻게든 그곳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앤디는 결국 파이퍼를 그런 운명으로부터 도망치게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도 처절하다. 온 몸이 흙 투성이가 되고 고통에 몸부림쳐야 벗어날 수 있는 끔찍한 기억들이다. 하지만 그렇게 원 밖을 벗어나야 한다. 망자에, 상실에, 트라우마에 자신을 가두지 않기를 영화는 말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더욱 끔찍하고 슬픈 이야기였으나 결국 죽음에 사로잡혔던 <톡 투 미> 속 미아와 달리 <브링 허 백>이라는, 마치 로라의 절규와도 같은 제목의 영화는 아이들이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상실의 힘보다 사랑의 힘이 더 크기에, 스스로를 그리고 너를 구원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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