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드레2022-09-09 22:58:04
괴롭힘은 관심의 표현이 아니다.
영화 <그 날의 우린> 리뷰
제목만 봤을 땐, 풋풋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여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막상 보니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였다. 확실한 주제와 따뜻한 시선 그리고 단단함이 인상적이다. 일반적으로 주어진 은연중에 내재되어 있는 보편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누군가 정해주는 결말로 한정 짓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할 우리를 중심으로 한 단편 영화 '그날의 우린' 리뷰를 시작해보려 한다.

낯선 것의 시작은 우리에게 있어서 큰 혼란을 가져다주었다.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준 우리의 모습을 본 건우는 그를 빌미로 이상한 부탁을 한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은 황당하면서도 그 피해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더욱이 상대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이용하려는 마음은 그저 끔찍스러울 뿐인데도.

괴롭힘은 관심의 표현이 아니며 그저 폭력일 뿐이지만 아직도 은연중에 남아있는 사회의 편견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보편적인 시선은 아직 쉽게 바뀌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극 중에서 우리가 선택하는 마지막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조금씩은 움직이는 것 같아서 우리를 응원하고 싶었다. 영화 '그날의 우린'은 2022 원주 옥상 영화제에서 볼 수 있으며 퍼플레이 온라인 상영을 통해 관람이 가능하다. 9월 10일 토요일까지 관람 가능하니 참고하길 바란다.
Relative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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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킷> 로맨스, 액션, 정치 스릴러의 무색무취한 만남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애인 '에이프릴(알리시아 비칸데르)'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미국인 관광객 '베킷(존 데이비드 워싱턴)'. 그는 숙소로 이동하던 중 졸음운전으로 인해 차가 전복되어 추락하는 교통사고를 일으킨다. 애인과는 달리 간신히 살아남은 그는 비탄에 잠긴 채 사건 경위에 대한 조사를 받고, 그리스 경찰에게 차가 추락한 주택 안에서 한 남자아이를 봤다고 진술한다. 그러자 친절하던 그리스 경찰들은 사건 현장을 찾은 그를 향해 느닷없이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고, 베킷은 공격을 피해 도망친다. 아테네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베킷은 나라를 가로지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그는 그리스를 둘러싼 정치적 음모의 거미줄에 빠져든다.
13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베킷>은 평범한 미국인 베켓이 갑작스럽게 그리스 경찰에게 쫓기는 추격전을 크게 세 개의 플롯으로 구성한 작품이다. <다이아키>와 <안토니아>로 이름을 알린 페르디난도 시토 필로마리노 감독은 우선 베킷과 에이프릴의 로맨스로 문을 열고,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명>처럼 갑작스럽게 베킷과 그리스 경찰 간의 추격전과 액션으로 노선을 선회한다. 이후 베킷이 자신을 둘러싼 음모에 대한 단서를 맞춰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두 개의 플롯을 포괄하는 그리스 경제위기와 관련된 국내외적 정치 스릴러의 면모를 선보이고, 영화는 윌 스미스 주연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를 연상시키며 마무리된다.
문제는 <베킷>이 선보이는 세 개의 이야기가 전혀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다는 점이다. 각각의 플롯은 그 자체의 매력이 부재하며, 상호 간의 연결고리도 느슨하다. 즉, <베킷>은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려 했는지 의도는 어렴풋이 보일지언정,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는 영화다.
먼저 도입부를 장식하는 베킷의 사랑 이야기를 보자. 상대적으로 보다 주관적 감상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두 배우 간의 호흡은 차치하더라도, 영화는 좀처럼 베킷의 심정에 빠져들어갈 계기나 동기를 제시하지 않는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 커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두 남녀가 그리스에 여행을 왔고, 시위로 혼란스러운 아테네를 떠나 비교적 한적한 관광지를 돌아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베킷이 죄책감에 매우 고통스럽고,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영화는 이들의 현재와 상황을 제시할 뿐, 그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피 흘리는 와중에도 베킷을 끊임없이 뛰고 구르도록 만드는 동기 중 하나인 죄책감 혹은 상실감은 마치 타인의 부고 기사를 읽는 듯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만약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추억을 공유했으며,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깊고 강한 지를 알려줄 장면이 짧게나마 있었다면 이러한 감상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위의 내용만 있어도 베킷의 심정을 이해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영화의 구조상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베킷이 유일한만큼, 주인공에게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 로맨스는 도입부로서 실패라고 볼 수 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베킷과 그리스 경찰 간의 추격전 역시 기대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일단 긴장감이 없다. 사실 한 남자가 갑자기 표적이 되고, 정신없이 쫓기는 와중에 자신을 죄어오는 올가미를 하나둘씩 알아챈다는 전개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클리셰다. 그렇기에 위기에 빠진 주인공이라는 상황만으로는 더 이상 서스펜스를 자아낼 수 없다.
따라서 <베킷>과 같은 영화는 주인공을 다양한 변칙적인 상황 속에 던져 놓아야 하는데, 바로 이 대목에서 <베킷>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경찰에 의해 곤경에 처한 베킷이 그리스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도주하고, 이에 경찰들은 현지인들을 위협해 얻은 정보에 기반해 그를 다시 추격하는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암석으로 가득한 그리스의 산을 비롯해 좁은 공간 그 자체로 서스펜스를 고조시키는 집 내부나 기차 칸 같은 다양한 환경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도 이들을 베켓의 추격전에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시키지는 못한다. 단지 그리스어 대사에 해당하는 자막을 보여주지 않으면서 불안함과 초조함을 가중시키는 재치만이 잠시 빛날 뿐이다.
또한 중간중간 삽입되는 액션 역시 흥미를 돋우는 데 실패한다. 여러 영화에서 볼 수 있었던 액션 시퀀스는 신선하지 않다. 단적인 예로 주차장 건물에서 펼쳐지는 클라이맥스는 시간대만 낮으로 다를 뿐, <다크 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처음 등장하는 주차장 장면과 유사하다. 유사한 주제의식과 이야기를 공유하는 <본 얼티메이텀>을 연상시키도 한다. 액션 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베킷의 능력 역시 몰입을 방해한다. 총탄이 복부를 관통하거나 건물 3층 높이에서 보어내려도 좀처럼 지치지 않고 고장 나지 않는, 슈퍼 히어로에 필적하는 그의 내구성과 신체적 능력은 영화의 개연성을 과하게 파괴한다. 특히 그리스의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 비현실적인 액션은 영화의 전반적인 톤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베킷>은 이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와 유렵연합, 미국이 뒤얽힌 정치 스릴러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지 못했다. 영화는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시리자, SYRIZA)이 정권을 잡고 그리스 구제금융 국민투표를 시행한 2015년 전후를 배경으로 삼은 듯 보인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세 번째 구제금융의 대가로 유럽연합에서 제안한 긴축재정 시행을 두고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었고, 급진좌파연합은 그리스의 경제 주권을 침탈한다는 이유로 긴축안을 거부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한편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경험한 후 러시아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진 미국은 그리스가 유럽 연합 대신 러시아 혹은 중국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고 나토의 방어체계에서 떨어져 나가는 불상사를 걱정 중이었다.
문제는 영화의 불친절함 때문에 이러한 그리스의 국내외 정치적 배경을 좀처럼 알아챌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영화는 철저히 베킷의 시점에서 진행되며, 그 결과 그리스의 정치 상황도 그저 외국인이자 관광객의 시점에서 묘사될 뿐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스,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가 얽히고설킨 국제정치적 상황에 대한 설명이 미국 대사관에 걸린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에 모두 함축되어 암시되는 것이 그 예시다. 베킷이 그리스 정치와 관련된 정보를 미국 대사관과 좌익 활동가로부터 각각 입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베킷이 발견한 어린 남자아이의 중요성을 정반대의 입장에서 파악하고 해석한 정보는 필연적으로 상충될 수밖에 없고, 이는 베킷과 시청자들의 혼란을 가중시킨다. 그래서 그리스의 현실을 자세히 알지 못할 경우, 영화의 흐름과 전개를 쫓는 것도 녹록지 않다.
그러다 보니 <베킷>의 주제의식은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영화는 미국 대사관의 도움에 실낱같은 희망을 거는 베킷과 자국민 보호라는 의무를 저버린 대사관 직원을 대비시키면서 국민의 보호라는 국가의 윤리적 의무와 현실적 이익의 충돌을 담아내고자 한다. 그리스의 정치적 배경이 작중 가상의 그리스 우익 정권을 미국 정부가 돕고, 미국 대사관 측에서 교통사고로부터 그리스 정치계를 뒤흔들 단서를 발견한 평범한 미국 시민을 제거하려는 동기로 작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맥락에서 보면 자국의 이익과 반대로 행동하며 미국을 공격하는 캐릭터인 베킷,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의 변화는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지 않고 신뢰를 저버릴 때 초래할 나비효과를 상징한다. 잘못된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으로 인해 국가가 국민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그리스를 배경으로 하기에 이 메시지는 분명 의미심장하다. 단지 명료하게 전해지지 않을 뿐이다.
<베킷>의 실패는 영화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주연 배우 존 데이비드 워싱턴의 모습에서 직관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존 데이비드 워싱턴은 베킷보다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의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전반적으로 건조하고 침착한 톤을 유지하며, 주인공을 본인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트린다는 흐름 상의 유사점이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킷이 <테넷> 속 '주도자'로 보인다는 사실은 결과적으로 영화가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베킷이라는 인물을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극의 완성도가 높지 못했기에 영화의 얼굴인 주연 배우에게 다른 얼굴이 온전히 덧입혀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베킷 혼자 나오면 무색무취하던 영화가 에이프릴과 레나가 등장할 때 잠시 생동감을 되찾는 것만 보더라도 <베킷>이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펼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Poor, 형편없음)
설렘 없는 로맨스, 지루한 추격전, 이해가 되지 않는 정치극이 빚어낸 총체적 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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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4주 차, 최신 씨네 뉴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의 신작 <트위스터스>가 개봉주 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개봉 첫 주에만 1117억원을 벌어들였고 이는 <오펜하이머>의 개봉 첫 주말 매출과 같은 기록입니다.
정이삭 감독은 2020년 윤여정 주연의 <미나리>로 제 78회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받으며 작품성과 연출력을 인정받은바 있습니다.
영화는 폭풍을 쫓는 연구원 케이트와 논란을 쫓는 인플루언서 타일러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역대급 토네이도에 맞서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국내 개봉은 8월 14일 예정입니다.
7월 4주차 씨네뉴스 시작합니다!
<미나리> 정이삭 감독 연출 <트위스터스> 북미 박스오피스 1위
기상청 직원과 스톰 체이서 인플루언서가 역대급 토네이도를 좇는 이야기 <트위스터스>가 개봉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미나리>를 연출했던 정이삭 감독이 연출을 맡으며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트위스터스>는 주말 매출액 1700억을 넘어서며 24년 개봉작 중 세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한 <괴물> 웨이브 독점 공개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이 웨이브에서 독점 공개를 알렸습니다.
<괴물>은 몰라보게 바뀐 아들의 행동에 이상함을 감지한 엄마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의문의 사건에 연루된 주변 사람들 모두가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이야기입니다.
<탈주> 올 여름 한국영화 최초 200만 돌파
7월 3주 차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탈주>가 기세를 이어 누적관객 수 2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번 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 200만 관객을 돌파한 것은 <탈주>가 처음입니다.
<탈주>는 내일을 위한 탈주를 시작한 북한 병사 규남과 오늘을 지키기 위해 규남을 쫓는 보위부 장교 현상의 목숨 건 추격전을 그리며 <탈주>의 흥행은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작 공개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작들이 공개되었습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THE ROOM NEXT DOOR>, 루카 구아다니노의 <QUEER>, 토드 필립스의 <Joker: Folie a Deux>까지 쟁쟁한 경쟁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요.
다양한 장르와 독창적인 연출을 자랑하는 작품들이 출품되어 영화 팬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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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완전한 삶에서 완성되가는 나
노르웨이 출신으로 30여 개의 단편과 각종 CF로 경력을 쌓고 2006년 첫 장편 ‘리프라이즈’를 통해 분할과 점프 컷을 통한 편집, 시공간의 교묘한 불일치 등 독특하고 감각적인 스타일을 드러낸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오슬로를 배경으로 한 트릴로지 3부작(리프라이즈, 오슬로 8월 31일), 마지막 영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리뷰입니다. 현대인들의 일상과 욕망, 성찰을 초현실적이면서도 달콤 씁쓸하게 다뤄 64회, 68회, 74회 칸 영화제 초청받을 만큼 작품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은 감독으로, 지난해 이 작품의 주연 레나테 레인스베가 노르웨이 배우 최초로 칸 여우주연상을 받고 본인도 94회 아카데미에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후보에 올랐죠. 데뷔 이래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인 만큼 감상 전부터 큰 기대를 해볼 수 있었는데, 과연 어떤 내용이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최대한 자제하였으나 일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정보
내 삶의 구경꾼인 기분이야
의학을 공부하던 스물아홉 율리에는 자신의 인생에서 진정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의대생에서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심리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또 이어 사진을 찍고 싶다며 아마추어 사진사가 됩니다. 촬영을 하다 젊은 모델과 연애하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파티에서 만난 매혹적인 유명 만화가 악셀과 사랑에 빠져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여전히 서점에서 일하는 동안 악셀이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다는 것에 점점 어긋나고 그의 신간 출간 파티를 일찍 떠나며 만난 에이빈드에게 잊었던 감정을 깨닫게 되는데...
예고편│ Trailer
원제: Verdens verste menneske, 영제: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감독: 요아킴 트리에│각본: 요아킴 트리에, 에스킬 포그트
출연진: 레나테 레인스베, 앤더스 다니엘슨 리, 할버트 노르드룸 외 多
장르: 드라마, 멜로/로맨스, 코미디│상영 시간: 128분
국가: 노르웨이│등급: 15세 관람가
평점: 기자·평론가 8.75, 로튼 토마토 신선도 96% 팝콘 86%, IMDB 7.8, 메타 스코어 90점
수상 내역: 74회 칸 여우주연상, 86회 뉴욕 비평가 협회 외국영화상, 57회 시카고국제영화제 실버휴고 촬영상 외 多
개봉일: 2022년 8월 25일
#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평점
난 당신을 사랑해. 근데 사랑하지 않아
요아힘 트리에와 오랜 시간 함께 작업한 시나리오 작가 에스킬 보그트는 이번에 평범하면서 놀라운 일상으로 관객들을 초대해 여행을 떠납니다. 누구나 경험해 봤을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의 주인공에게 까다롭고 괴짜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녀의 달콤하고 매혹적인 연애 성장 이야기인 듯 풀어나가죠. 각각 1개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12개의 챕터로 구성된 형식은 마치 일기를 훔쳐보는 느낌을 만들어 가끔은 자신이 써 내려간 에세이 속을 떠다니는 듯한 상상을 펼쳐내 예상치 못한 영상미를 끌어냅니다. 다른 20대들처럼 선택의 연속이 반복되는 삶에서 연약하고 결점투성이인 사람처럼 보이려 하지만 어느새 어디선가 본 듯한, 언젠가 경험했는 듯한, 누구에게 들었던 것 같은 연애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감독은 창의적인 상상을 통해 율리에를 세상에 가장 나쁜 사람인 양 몰고 가지만, 결국 관객에게 당신의 이야기임을 깨달을 지점을 마주 시켜주죠
사회의 보이지 않은 기준에 의해 한 사람의 젊음이 불가피하게 사라지기 시작할 때 발생하는 불안감이 녹아있는 20대의 끝자락이자, 30대의 힘든 출발을 보여주는 주인공 율리에를 맡은 노르웨이 신예 레나테 레인스베는 가식을 벗어낸 채 사랑에 빠지고 상처받으며 자아 발견과 씨름하는 세대의 불안을 온 몸으로 표현해 작품의 생명력을 넣어줍니다. 성인이라는 무게감에 무언가 증명하기 위해 성취해야 하는 목표처럼 자리 잡은 절박함에 이정표를 따라 불타오르다 꺼지는 불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상황이나 사람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강인함을 매 순간 무모하리만큼 쾌락과 성숙이라는 미궁 사이에서 자신의 스펙트럼을 맞춰가고 있죠. 율리에의 이기적일 만큼 정직한 사랑과 연민의 감정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작고 섬세한 엄청난 감정적인 변조가 느껴지는 레나테의 연기는 캐릭터를 뚜렷하게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해 또 다른 스타의 발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개로 분할된 문학 구조 같은 느낌을 주지만 영화는 진로 변화와 낭만 사이에서 스스로 우유부단함을 탄식했던 대학 시절의 몽타주를 율리에를 통해 관습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방식으로 달콤하고 온화하게 재미를 줍니다. 여성 내레이터의 목소리로 안내되는 통찰력 있는 시각적 분위기를 통해 관객의 이해에 끊임없이 활력을 불어넣고 해리 닐슨의 경쾌한 음악은 그들의 기발한 서사를 북유럽 하늘의 가장 부드럽고 우아한 모습으로 진정한 자신을 채우는 이상적인 수단이 되어주죠. 그래서 종종 흥미진진한 것을 향해 달려가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성년이 되어가는 율리에는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정형화된 해답을 찾으려는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에서 최악의 선택은 무엇인지,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랑하고 있는지,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그리고 답을 찾았는지 말입니다. :)
한 줄 평 : 최악이 최선으로, 깨달아가는 사랑과 인생의 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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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픽사라서 아쉽지만 화려한 SF 애니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주선의 추락으로 인해 지구로부터 4.2백만 광년 거리 떨어진 외딴 행성에 고립된 우주비행사 '버즈(크리스 에반스)', 그의 동료 '엘리샤 호손(우조 아두바)', 그리고 천 명이 넘는 일행들. 행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고장 난 우주선의 광속 비행 장치를 개발해야 했고, 추락 당시 조종간을 잡고 있던 버즈는 죄책감을 떨치기 위해 시험 비행의 파일럿으로 나선다. 그러나 시험 비행은 실패로 돌아가고, 설상가상으로 광속의 비행으로 인한 시간 지연을 발생하면서 단 몇 분간 비행한 버즈는 수십 년의 지난 행성에 도착한다. 그가 떠난 사이 행성은 '저그 황제(제임스 브롤린)'의 공격으로 인해 황폐해졌고, 버즈는 저그 황제에게 대항하는 동료 엘리샤의 손녀 '이지(키키 파머)'와 그녀의 팀원들을 만나 새로운 임무에 나선다.앤거스 맥클레인 감독의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새로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버즈 라이트이어의 모험을 그린 SF 애니메이션이자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 파생된 스핀오프 격 영화다. 다만 <토이 스토리>에 등장한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장난감 '버즈 라이트이어'는 본 작의 주인공인 우주 비행사 버즈 라이트이어를 모델로 만들어졌고, <토이 스토리> 1편 당시 앤디가 이 영화를 관람한 후 버즈 라이트이어라는 캐릭터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언급된다.
그래서인지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버즈 라이트이어>를 본다면 낭패를 볼 수 있다. 개봉 전 아이맥스 버전 상영을 강조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스페이스 오페라 분위기가 강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또 <버즈 라이트이어>에게 이전까지의 픽사 애니메이션을 기대하더라도 당황스러울 수 있다. 영화의 지향점이 다르다 보니 직관적인 재미로 무장한 오락성과 대중성은 확실하나, 기존 픽사 영화에서 맛볼 수 있었던 감동과 메시지가 설 자리는 줄어든 까닭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의 매력
<버즈 라이트이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명백히 SF, 스페이스 오페라의 장르적 쾌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엄연히 <토이 스토리>의 극중극이라고 밝힌 것이나, 버즈의 성우를 본래 담당이었던 팀 앨런에서 캡틴 아메리카의 본체인 크리스 에반스로 변경한 것은 그 방증이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버즈 라이트이어>는 매 장면마다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들의 오마주로 빼곡히 채워 넣고 있다. 우선 냉동 수면 상태로 미지의 행성으로 향하는 장면은 <프로메테우스>나 <아바타>처럼 행성 간 여행을 다룬 영화들과 유사하다. 외계 행성에 착륙하여 식민지를 만드는 것도 <아바타> 시리즈와 닮았다. 광년(光年)이라는 의미의 제목인 '라이트이어(Lightyear)'가 암시하는 상대성 이론에 의한 시간 지연이라는 소재는 <인터스텔라>를 연상케 한다.
이에 더해 스페이스 오페라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스타트렉>과 <스타워즈> 시리즈의 요소들도 빼놓을 수 없다. 낯선 행성에서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착륙하거나 사고로 인해 외계 행성에 불시착하는 것은 <스타트렉> 시리즈를 닮았다. 한편 <토이 스토리> 2편에서 버즈와 대결한 바 있는 저그 황제의 존재나 거대한 우주선의 디자인, 그에 맞서 저항하는 세력의 존재, 그리고 안드로이드 로봇들의 등장은 <스타워즈>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이처럼 다양한 오마주의 조합은 <쥬라기 공원>, <스타워즈> 등 80년대 초 다양한 영화에 대한 찬사를 담고, 또 일부 SF 장르를 오마주했다는 맥클레인 감독의 인터뷰가 전한 그대로다.
그렇다고 해서 <버즈 라이트이어>가 그저 오마주의 집합체인 것은 아니다. 러닝타임을 가득 메우고 있는 액션 시퀀스들은 버즈의 매력으로 가득하고, 그 덕분에 영화는 고유의 개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실제로 포기를 모르는 캐릭터인 버즈는 다양한 상황에서 온갖 종류의 액션을 선보인다. 손을 쥐게 만드는 광속 비행 시퀀스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생명체 및 로봇들과의 사투, 그리고 버즈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비행 팩을 이용한 활공까지 활극에 어울리는 시원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또 이러한 장면은 영화 프로모션에서 줄곧 강조된 아이맥스의 역할도 강조해준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가 최초로 개발한 3D 애니메이션 IMAX 카메라로 제작되었는데, 이는 액션 시퀀스의 역동성을 강조해주며 빛을 발한다.
픽사 애니메이션 <버즈 라이트이어>의 매력
또한 버즈와 버즈의 팀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드라마에서는 픽사에게 기대할 수 있는 매력도 느껴진다. 비록 배경은 우주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실수와 협력이 있다. 우주 특공대 대위인 버즈는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크고, 나쁘게 말하면 독불장군인 캐릭터다. 거추장스럽다면서 신입 장교의 존재를 마뜩잖아하는 그는 모든 위기 상황을 혼자 돌파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독선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불시착한 행성에서 외계 생명체의 공격을 받은 버즈는 급하게 우주선을 이륙시키다가 실수를 저지르고, 천 명이 넘는 일행을 고립시키고 만다. 이에 자신의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그는 몇 번이고 탈출을 위한 광속 비행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의 비행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그렇게 완벽주의자이자 영웅인 그는 세상을 구하는 데 실패한다. 수십 년이 지난 낯선 행성에서 그의 곁에는 로봇 고양이 '식스(피터 손)'만이 남는다.
우주 특공대의 영웅에서 외톨이가 되고, 죄책감과 좌절감에 빠져들었던 버즈. 그러나 인생의 가장 어두운 지점에서 그는 앞으로의 삶을 바꿀 경험을 한다. 다 함께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외계 행성에 침공한 저그 황제의 로봇 군대와 싸워야 하는 버즈. 그는 뛰어난 실력자들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던 이지의 팀이 훈련조차 받아보지 않은 오합지졸이었음을 알게 된 후 실망감을 숨기지 못한다. 그러나 숱한 고비를 넘기고, 로봇들의 추격을 따돌리면서 버즈는 조금씩 팀원들의 진가를 깨닫고 그들의 능력을 인정하며, 그렇게 하나의 팀으로 거듭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듯이, 모든 부담을 혼자 떠맡을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협력이야말로 정말로 큰일을 이룰 수 있는 힘이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처럼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만 헤쳐나갈 수 있는 위기가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는 개인주의적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픽사다운 교훈을 전하는 듯 보인다.
픽사이기에 아쉬운 <버즈 라이트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즈 라이트이어>는 끝끝내 한끗이 아쉽다는 인상을 지우지는 못한다. 화려한 볼거리와 감동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2%가 부족하다. 메시지가 지나치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열정과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버즈의 이야기는 분명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다. 버즈와 버즈의 동료들이 원팀으로 거듭나는 과정도 뿌듯하다. 그러나 그 임팩트가 강렬하지는 않다. 과거 픽사 애니메이션이 선사했던, 환상적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깨달음이나 배움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버즈와 그의 동료들이 진정한 팀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담긴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공과 실패에 매몰되기보다는 삶의 매 순간을 즐기는 게 우선이라고 노래하던 <소울>과 같은 특별함을 <버즈 라이트이어>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작중 버즈는 자신의 실패 덕분에 협력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저 실패가 아니다. 그보다는 완벽주의자이자 엘리트인 버즈가 실패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주 특공대원으로서 버즈는 철저한 능력주의자로 묘사된다. 그의 자부심과 명예는 그가 사관학교에서 고난을 겪으며 쌓아 올린 능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그는 처음 만난 팀원들을 계속해서 시험하고 또 불신한다. 그들에게 충분한 능력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하자 팀으로서 움직이기를 거절한다. 과거 상관이자 동료였던 엘리샤의 손녀인 이지마저도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한다. 다른 팀원들이 특공대원 옷을 입는 것조차 불만스러워하며, 엘리샤와 공유하던 시그니처 대사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를 그들과 나누지도 않는다. 또 그는 다른 팀원들의 상처도 보지 못한다. '모(타이카 와이티티)'가 자신의 실수 때문에 모두를 위험하게 했다고 자책할 때, 그를 위로하는 다른 팀원들과 달리 버즈는 그의 책임을 재확인하는 말을 내뱉고 만다.
이러한 버즈의 모습은 현대 사회 속 엘리트의 부정적인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역사학자인 토마스 프랭크는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에서 엘리트들은 서로를 존중하지만 그들의 범주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연대 의식을 갖지 못하며 연민도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이들은 자신들과 동일한 수준의 능력을 지니지 못했기에 동등한 대우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작중 버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부정적 면모 덕분에, 버즈의 변화에서는 깊이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느껴진다. 버즈의 실패는 능력주의 사회와 엘리트들 역할과 기능에 한계가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변화는 단순히 팀워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어려움과 부담감을 털어놓으며 마음의 문을 여는 버즈의 변화는 한계를 노출한 능력주의 사회를 개선할 방법인 협력과 연대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최정예 요원들 대신 이지와 다른 팀원들을 우주 특공대로 받아들이는 버즈의 마지막 선택이 인상적인 이유이고, 픽사다운 메시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처럼 한 차원 깊고 넓은 메시지는 러닝타임 내내 잘 전해지지 않는다. 일반적인 이야기 밑에 숨어 있는 메시지와 감동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들이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는 특정한 모멘텀이 필요한데, 전반적으로 평탄하게 전개되는 영화에는 그런 대목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버즈 라이트이어>는 미션에 실패한 영웅이 원인을 깨닫고, 능력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한 단계 성숙해진 다음 기어코 임무를 다해낸다는 왕도적인 스토리라인을 착실히 따른다. 그래서 픽사 애니메이션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예상을 빗겨나가는 반전도 없다. 그나마 저그 황제의 목적과 정체가 반전이라면 반전이지만, 주요 소재인 광속 여행, 상대성 이론, 시간 지연의 개념을 토대로 이를 유추하는 데 어려움이 크지 않기에 그 충격은 반감된다. 시선을 강탈하는 고양이 로봇 삭스의 활약도 혼자서 변수를 만들어내는 수준은 아니다. 그 결과, 일반적인 이야기를 뛰어넘는 픽사만의 날카로운 통찰력은 끝내 빛을 보지는 못한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픽사를 상징하는 캐릭터 중 하나다. 1995년에 개봉한 세계 최초의 장편 CG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는 픽사의 성공 신화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작품이었고, 그 중심에는 투톱 주인공인 우디와 버즈가 있었다. 이처럼 픽사의 아이덴티티나 다름없는 캐릭터를 화려하고도 도전적인 영상으로 되살려냈다는 점에서 분명 <버즈 라이트이어>에게는 박수가 아깝지 않다. 다만 버즈와 함께 30여 년 간 발전해 온 픽사의 스토리텔링 역량을 고려하면 기대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어쩔 수는 없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세 개의 쿠키 영상에서 그 아쉬움을 달랠 실마리가 찾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A(Acceptable, 무난함)
버즈의 다음 비행을 기대케 하는, 화려하거나 평범할 픽사의 스페이스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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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과라는 서정
올타임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가 뮤지컬에 이어 이번엔 영화로 곧 관객들을 찾아갈 예정이다. 주인공은 60대의 여성 킬러 '조각'으로 철저하게 원칙 아래 세상에 존재하는 쓰레기같은 인간들을 '방역' 하던 중 그녀의 삶에 등장한 새로운 얼굴들에 의해 그 원칙들이 조금씩 깨져가기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원작에 대한 높은 평가와 더불어 국내 영화 시장에서는 좀 처럼 찾아 보기 힘든 60대 여성 킬러를 소재로 하여 잠잠해진 극장가의 새 바람을 불어올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렇기에 소설을 접하지 않았더라도 보다 <파과>를 즐길 수 있는 몇 가지 포인트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우선 영화는 원활한 영상화를 위해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를 비롯한 디테일들을 구성하여 보다 풍부하게 스토리를 진행시킨다. 122분의 러닝타임 빼곡히 자리한 조각을 둘러싼 새로운 만남들은 오랜 시간 만남을 꺼려왔던 조각의 마음을 뒤흔듦과 동시에 조각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성격적 특성을 빠짐없이 보여주게 된다. 특히 원작보다 풍성해진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는 조각과 상반된 모습과 시종일관 그런 그녀를 뒤쫓는 인물로 그려지며 궁금증을 더하고 조각의 삶을 위협하는 극적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여기서 <파과> 만의 또 다른 진면목이 등장하게 되는데, 관객은 중반부부터 어쩐지 투우가 조각을 향해 분노가 아닌 색다른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조각과 투우, 두 인물의 대면씬마다 생겨나는 이 의구심은 영화의 결말까지 주요 관람 포인트가 되어주며 결국 한 명이 그 '진실'을 알아내는 순간 그간 쌓아올린 인물들의 감정선이 덩달아 폭발하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우 못지 않게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는 '강 선생'은 그야말로 조각의 삶에 터닝 포인트가 되어주는 인물로 배우 투우와는 확연히 다른 차분한 어조와 행동 등으로 차이점을 보이며 의해 그간 흔들리지 않았던 원칙이 깨어지는 장치로 작용하게 된다.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겠다던 조각의 다짐과는 달리 자신을 구해준 강선생을 자신의 삶이라는 영역 안에 두고자 갈등하는 조각의 모습은 서정성을 보이게 되며 과연 그녀의 선택이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일로 향할지 아님 변화의 길로 향할지 궁금증을 남기게 된다.
지금 밝힌 바와 같이 영화는 조각과 투우 그리고 강 선생이라는 묘한 삼각관계를 만들어내는데 이들을 둘러싼 전개가 이전 영화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간의 구조일 뿐더러 재차 강조하는 '60대 여성'의 삶 속에 갑작스럽게 찾아온 변화라는 것에 있어 색다른 관람을 선사하게 된다. 조각이 강 선생과 투우를 어째서 다르게 대할 수 밖에 없으며 투우는 그러한 차이에 왜 분노하게 되는지, 강 선생은 평범한 자신의 삶이 점차 위기 속으로 들어감에도 조각을 신경 쓰는지 등 그 관계성의 뒤를 정신없이 쫓다보면 어느새 영화는 그 끝으로 관객을 인도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강렬한 만남에 간과하게 되는 또 다른 만남이 있다. 바로 강아지 '무용'의 존재이다. 원작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이 무용의 등장은 고단했던 조각의 삶을 상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녀의 변화를 암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역시 점차 변화하는 조각의 모습을 무용에게 건네는 대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길 위의 상처 받고 버려진 존재가 어떻게 세 인물에게 각각 해당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 역시 관람 포인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영화는 일종의 세게관을 형성, 그 이후나 이전에 대해서도 역시 궁금증을 자극하고 흥미를 유발한다. 신성방역이라는 킬러집단의 운영방식과 그 시작은 조각의 회상 등을 통해 보다 구체화 되나 대모 라고 일컫어지는 조각의 무시무시한 존재감에 영화 이전과 이후 역시 상상하게끔 한다. 또한 너무 세계관에 심취하기보다 영화는 과감하게 캐릭텅에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택함으로 화려한 액션 외에도 정제된 킬러의 삶을 거쳐온 조각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점이 조각을 둘러싼 세계관은 물론 회상으로써만 등장하는 스승 '류'와 그에게 많은 것을 전수 받은 '어린 조각'의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게 해 관객을 더욱 그 안으로 빨아들이는 효과를 빚어내게 된다.
인생은 타이밍 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저기 우스갯 소리로 쓰이곤 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삶에 분명한 타이밍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나를 둘러싼 인연이 특히 그러하다. 내 삶을 바꿔놓을 정도의 큰 파장이 사람으로부터 뻗어나온 경험은 다들 하나쯤은 있지 않은가. 여기 조각의 삶이 그러하다. 킬러는 사람들을 죽이는 직업이기에 그 수많은 청소 대상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단 하나 뿐인 사람이 된다. 그렇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역시 기억된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그렇게 킬러의 뒤를 바짝 쫓게된다. 이는 살아남은 이들 뿐만이 아니다. 조각 역시 강 선생에게 구해지는 순간, 스승 류에게 구해지는 순간 잊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영원히 그 시간 속에 살아가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반면 어떤 이는 묵묵하게 그 시간을 가슴에 묻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간다. 그곳에서 비롯된 비극은 극적이나 관객의 가슴에도 크게 남게 된다. 영화 <파과>는 바로 그러한 지점을 놓치지 않고 강조한다. 내 인생을 뒤흔들 만남 그리고 그에 따른 시련 하지만 결국 그 시간을 결코 후회하지 않고 기억하겠다 말하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하필 지금, 하필 이때 고독하게 살아오던 킬러 조각의 삶에 들어온 이들과 그들이 보여줄 서정. 이 영화 역시 다신의 타이밍에 맞게 찾아간 인연이 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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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필 한 여자를 사랑하다니, 그것도 이토록 격렬하게!
8★/10★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은 친밀성‧사랑의 미묘한 감정을 포착해 극적으로 만드는 데 가장 탁월한 재능을 가진 감독 중 하나다. 상류층 중년 여인의 마음에 불어닥친 고요한 폭풍을 펼쳐내는 〈아이 엠 러브〉(2011),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사회가 금지하는 사랑을 ‘식인’에 빗댄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러브 스토리 〈본즈 앤 올〉(2022) 등등. 그가 야심 차게 도전한 공포영화 〈서스페리아〉(2019)가 영 호불호가 갈렸다는 점을 복기해보면, 아무래도 감독의 재능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을 때 극대화되는 듯하다. 〈챌린저스〉는 이를 또다시 입증한다. 〈챌린저스〉를 본 관객이라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감독님, 제발 앞으로는 다른 데 한눈팔지 말고 이런 영화만 만들어주세요!”
여기 테니스 선수 아트가 있다. 아트는 ‘위대한 선수’는 아니지만 ‘훌륭한 선수’ 축에는 든다. US 오픈 우승을 노리고 있고, 의류 브랜드에서 테니스복을 협찬받으며, 자동차 광고를 찍을 정도의 선수 말이다. 아트는 US 오픈 도전 직전, 최근 좋지 않은 성적으로 하락한 자존감 회복을 위해 하부 리그에 참석한 상태다. 만약 이 대회에서 우승해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다면 US 오픈 우승이라는 목표에 더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 그런데 목적이 아닌 수단에 불과한 대회에서 뜻밖의 상대를 만난다. 패트릭이다. 모텔비를 결제할 돈도 없어 폐차 직전의 허름한 차에서 쪽잠 잔 후 대회에 참가한 그는 US 오픈은 고사하고 선수 랭킹도 처참한 별 볼 일 없는 선수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반전의 기회도 거의 없다. 그런데 경기가 묘하게 흐른다. 아트는 내내 예민한 채 긴장한 표정인데 되레 패트릭은 여유롭다. 심지어는 아트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 이 둘에게는 테니스에 한정되지 않는 오랜 인연이 있다. 어쩌면 아련한 우정이고 어쩌면 지독한 악연이다. 둘은 필생의 라이벌이다. 테니스에서도, 사랑에서도.
태초에 타시가 있었다. 유망한 테니스 선수이자 퀸카인 타시는 청소년 시절 같은 대회에 참석한 아트와 패트릭을 단번에 매혹한다. 타시 앞에서 아트와 패트릭은 퀸카와 뭐라도 해보고 싶은 얼빠진 십 대 소년일 뿐이다. 문제는 타시가 폴리아모리가 아니라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쓴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얼빠진 두 소년과 달리 타시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정반대다. 훗날 부상으로 프로 데뷔 직전 선수 생활을 끝내고 코치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전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실력과 멘탈을 갖춰 아트와 패트릭이 넘보지도 못할 레벨의 테니스 유망주였다. 테니스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타시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들 중 누구를 선택하겠느냐 묻는 애타는 두 남자에게 답한다. 내일 시합에서 이기는 남자를 고르겠다고. 테니스 랠리가 사랑의 랠리로 확장된다. 스포츠가 사랑이 되고, 사랑이 스포츠가 된다. 절대로 지면 안 되는 게임의 시작이었다.
그 후 10여 년간 많은 일이 있었다. 아트는 타시의 남편이자 그녀가 코칭하는 선수가 되었다. 타시는 패트릭에 비해 잠재력과 실력 모두 떨어지던 아트를 ‘훌륭한 선수’로 키워냈다. 10여 년 전의 시합에서 패트릭이 승리했다는 점을 덧붙여야겠다. 그렇다. 과거의 타시는 연인으로 패트릭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지금 아트가 타시의 남편이고, 그저 ‘구남친’일 뿐인 패트릭이 타시에게 능글맞게 굴며 아트를 조롱할 수 있는 이유는? 영화를 직접 봐야만 한다. 구구절절 줄거리 설명으로 10년간 불꽃 튀었던 세 사람의 관계 역동을 요약하기는 불가능할 테니까.
영화는 연애에서의 친밀성과 남성성 문제, 여성의 주체성을 넘나들며 아찔한 랠리를 이어간다. 그것도 격렬한 시합에서 통통 튀며 코트를 오가는 테니스공의 속도로. 현재 펼쳐지는 시합과 십수 년간 세 사람이 겪어온 과거를 교차하며 펼쳐내는 숨 막히는 랠리는 도파민을 폭발시킨다. 테니스, 사랑의 승자가 누구일지를 숨죽여 지켜볼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두 남자는 타시가 벌여놓은 사랑/테니스의 판 안에서 질투심과 열등감을 동력 삼아 움직이지만 종종 판을 뒤집어 게임의 주인이 되고, 한 여자는 능숙하게 두 남자를 주무르며 사랑/테니스에서 목표한 바를 이루지만 예측을 불허하는 욕망의 방향성에 종종 무릎 꿇는다.
이 최종 승부에서 아트와 패트릭은 이제 타시와 테니스를 두고 벌이는 싸움의 결판을 내야만 한다. 지금까지는 줄곧 타시가 이들 관계를 주도해왔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두 남자는 지금껏 타시의 장기말이었다. 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생애 단 한 번 ‘남자’가 되어 타시에게 스스로를 증명해내야만 한다. 겉보기에는 번드르르하지만 속으로는 늘 타시가 떠날까 전전긍긍하는 아트와 유망주 시절 이후 모든 면에서 실패의 연속인 삶이었지만 성장하지 못한 채 소년 상태에 머무른다는 바로 그 이유로 종종 매력을 뿜어내는 패트릭. 누가 진짜 타시에게 어울리는 남자이고, 코칭받을 만한 테니스 선수인지 이 한 게임에서 모든 게 결정된다.
테니스 게임의 박진감을 돋보이게 하는 독특한 카메라 앵글과 아드레날린 솟구치게 하는 음악, 질척거리는 치정의 감정이 이렇게 다이내믹했던가 탄복하게 만드는 연출이 삼박자를 이루는 이 영화는 두고두고 반복해서 보고 싶을 만큼의 재미와 매력을 갖췄다. 어디 그뿐인가. 그의 수작을 볼 때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그 감정의 역학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에 푹 빠지곤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래서 나는 〈챌린저스〉를 계기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재능을 추앙하기로 했다. 그는 이전부터 뛰어난 감독이었지만 보통 자기가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주제에 진지하고 느린 속도로 접근했다. 이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그가 〈챌린저스〉에서 지금껏 다뤄온 주제를 스포츠 영화의 박진감을 더해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데에도 의심의 여지 없이 성공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자기 주제를 눈에 띄는 새로운 스타일로 그려내는 일, 결코 쉽지 않다. 그의 재능을 추앙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감독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심지어 〈서스페리아〉 같은 ‘외도’도 눈감아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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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 담긴 상징들 #2
환몽(幻夢) CINE 리뷰 2화_ 우리가 사랑하는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
- 신카이 마코토와 호소다 마모루, 당신의 취향은?
- 환몽이 꼽은 시달소 속 최고의 OST!
- 우리가 시달소를 사랑하는 이유?
- 시달소에 담긴 상징물 3가지의 의미는?
- 시달소 속 최고의 명장면과 한줄평!
영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보고나서 마구 생각하고, 마구 떠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시간을달리는소녀 #시달소 #호소다마모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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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빌리 홀리데이> 티저 예고편
팝 보컬의 예술을 영원히 바꿔 놓은 재즈의 초상 ‘빌리 홀리데이’
무대 위에선 모두의 박수를 받는 ‘레이디 데이’였지만
무대 아래에선 시대의 폭력과 광기에 끝없이 시달렸다.
도망칠 곳 없이 어둠으로 내몰린 삶 속에서도
그녀가 포기할 수 없었던 두 가지
세상을 위한 단 하나의 노래
그녀를 위한 단 하나의 사랑.
Stay tuned for LADY 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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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어시스턴트> 30초 예고편
꿈에 그리던 영화사에서
보조 직원으로 일하게 된 ‘제인’
어떤 일도 능숙하게 처리하는
그녀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사소한 사무실 정리부터 상사의 개인적인 스케줄 관리까지
하루 종일 몰아치는 잡다한 업무에 지쳐간다.
그러한 일상이 반복되던 중
어느 날, 신입사원으로 채용된 한 여성이 찾아오면서
회사 내 부조리함을 마주하게 되는데…